담임목사 김종웅
내 일을 도우사(소명)
역대상 4: 9-10
2018년 12월 9일 주일 낮 예배
No. 396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나의 지역을 넓히사”을 Living Bible 은 “내 일을 도우사” 로 번역했다. 사사시대에는 자기 생각이 옳은 대로 살았다. 이런 시대에 야베스는 달랐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 대강절 4주 동안에는 야베스의 기도를 가지고 우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좀 들으려고 해요. 그 이유를 여러분들이 먼저 아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야베스는 사사시대의 사람이라 그랬지요, 이 사사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사람이 자기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였더라, 끊임없이 사사시대는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은 사사시대에는 저마다 자기 생각이 옳은 대로 살았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지 아니하고, 또 그러다 보니까 전부 자기 이익을 좇아서 살아가는 그런 시대였다는 겁니다. 이렇게 살면은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하면은 하나됨이 없어요. 하나됨이 없으면은 수고를 남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1. 에브라임 지파가 당하면은 열한 지파는 뒷짐지고 구경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광의 먹이 거리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야베스는 달랐다.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야베스가 믿은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 천국은 수고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곳이 천국이다.
그래서 사사시대에는 한 지파의 추수 때가 되면은 블레셋이나 구산 리사다임이나 이웃에 있는 나라들이 침략을 해 와서 그 추수한 것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럴 때에도 에브라임 지파가 당하면은 열한 지파는 뒷짐지고 구경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광의 먹이 거리가 되었든 그런 겁니다. 이번에도 제가 이 대강절에 무엇을 설교할까 하다가 이 야베스를 설교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은 우리 시대가 너무나 비슷해요. 전부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세상에 있는 사람이나, 정치하는 사람이나, 자기 속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요. 말씀의 영향을 받지 안 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이익만을 좇아 살아갑니다.
정치하는 사람도 보면은 국가는 없고, 자기 당에 정권만 잡으면 되는 것 같고요, 기업을 하는 사람도 나라는 어떻게 되었든 내 기업만 잘 되면 되는 것 같고, 또 국민들 모두다 자기 살길을 좇아서 살아가요, 그러다 보니까 사사시대와 같이 우리나라가 열광의 먹이 거리가 된 것 같아요. 이럴 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교회가 깨어나야 되요. 이번에도 여러분들이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상관 없이 내 교회만 잘 된다고 하니까 교회가 세상에 조롱 거리 먹이 거리가 되어 버린다고요. 이런 시대에 야베스는 달랐다는 거에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야베스가 믿은 하나님을 믿어야 되요.
그래야만이 야베스 같은 사람이 되어져요. 그 야베스는 어떤 사람인가, 그 시대의 사람과 같이 그래 살지 아니하고, 말씀을 좇아 살아간 거에요. 그래서 그의 기도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도하고 다른 거에요. 그런데 그 기도조차도 우상숭배적인 기도로 이 말씀을 가지고 야베스와 같이 기도해서 복 받아라 이래 버리면은 성경 완전히 잘못 보는 거지요. 오늘 부분에서는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10절에 보면은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이 부분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이래 되어 있지만 Living Bible 에는 내 일을 도우사 이렇게 말을 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이 아니라, 내 일을 복되게 해 달라, 이렇게 말을 해요. 여러분들이 이 기도가 또 이 생각이 왜 중요한가 하면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죄악시하는가 하면은 무의 도식 하는 것을 죄악시해야 되요. 불로소득을 죄악이라 생각해야 되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왜 믿는가, 불로소득을 얻으려고, 노력한 것 없이 많이 얻으려고, 또 무의 도식 일 안 하고 그냥 먹고 살려고, 그래서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서 그냥 무의 도식 하는 사람을 보면은 참 부러워하는 것은 말씀이 그 속에 없기 때문이에요. 천국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산해진미를 먹는 곳이 아니에요.
천국은 수고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곳이 천국이에요. 불로소득이 있는 곳이 아니고,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정확한 대가가 주어져요. 그런 게 달란트 비유잖아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려면은 여러분들이 야베스가 믿은 하나님을 믿고, 야베스가 가졌든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되요. 초대 교회에도 데살로니가 교회가 오해를 많이 했어요. 어떤 오해를 했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일어날 줄 알았다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일을 안 했어요. 그럴 때에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어야 되요.
2.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리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야베스와 같이 자기의 삶을 근실히 해 나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달란트 비유에도 한 달란트 받아 숨긴 자,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이렇게 말한다. 너희 마음을 겁약 하게 말며 이 땅에 들리는 풍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일하기 싫거든 죽어라 이 말이에요, 안 먹으면 죽잖아요. 그만큼 우리는 노동을 신성시하는 것이 기독교 사상이에요. 여러분 타락한 우리에게도 창세기에 그러잖아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리라,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대강절에 예수님이 오심을 기뻐하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나라가 복 되게 하려면은 이 생각이 있어야 되요.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야베스는 흑 수저로 태어났지만 환경 탓 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나라 탓, 사회 탓, 부모 탓 하지 말고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서 야베스와 같이 자기의 삶을 근실히 해 나가는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 13절에도 보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 된 평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초대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말씀을 보니까 오늘날 우리나라 모습의 생각이 안 떠올라요? 오늘날 저는 식당이나 점심때 카페 이런데 가보면은 젊은 사람들이 거기 몰려 와 가지고, 쓸데 없는 말들 아무런 가치가 없는 말들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뭐라는가 하면은 집사님 이런다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되요.
여러분 누가 식당에서 밥 먹고 카페에서 해야 되는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백발이 면류관인 분들, 그런 분들이 그런 데에서 누리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젊은 사람들은 하나님 믿으면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지구본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쭉 돌려보면은 기독교 벨트가 있어요. 나라들마다 기독교가 왕성한 나라의 벨트를 보면은 다 잘살아요 왜 잘사는가 경제적으로, 이 말씀 때문이에요. 예수 믿고 난 뒤에는 내가 불로소득이 죄악인 줄 알고, 무의 도식 하는 것이 죄악인 줄 알고 열심히 일하게 되거든요. 그 달란트 비유에도 보면은 한 달란트 받은 자, 자기가 받은 그 은사를 숨겨 놨을 때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정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는 이 말씀이 야베스의 설교 속에 우리 가슴에 울림이 되어야 되요. 예레미야 51장 4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해요. 너희 마음을 겁약 하게 말며 이 땅에 들리는 풍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많은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요. 그런 것을 가지고 시대 정신이니 뭐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 말에 여러분 귀 기울이지 마세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그 시대에 따라서 생각이 변화되는 시대 정신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그 시대에 정신을 성경으로 비판해야 되요. 그런데 왜 또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봐야 되는가 하면은 야베스가 일을 했는데 열심히 일을 했는데, 성경에 보면은 야베스가 무슨 일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3.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의 일이다.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사도 직을 가지고 말한다. 운명 주의 숙명 주의라는 말은 자기의 운명을 그슬리면 파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아낭케[Anatkh]라는 말이다.
여러분 이 시대에 풍설이 뭐냐 하면은 무슨 일을 하면은 돈이 된다 이게 풍설이에요.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면 안 되요. 기독교인들이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시대 정신을 따라서 이 시대에는 이런 일을 해야지 돈이 돼, 그러면은 내 속에 영이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해야 되요. 목사님들의 설교가 뭘 하면 복되고, 뭘 하면 잘된다고 생각하면은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고, 그 시대의 풍설을 말하는 것이구나, 이래 생각해야 되요. 야베스에는 무슨 일 했다는 것이 없어요. 또한 고린도전서 9장 나중에 이제 또 고린도전서를 강해 해 나가면 여러분들과 함께 보겠지만은 9장 16절에서 18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은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것은 바울의 소명 사상인데 굉장히 중요한데 이 말씀을 가지고 목사님들이 뭐라는 가 하면은 무슨 일을 하든지 선교가 목적이 되야 되요. 그래야 하나님이 복 줘, 바울 봐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 할 것이 없으면 내가 부득불 할일 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가 화가 있을 거라 안 했나, 네가 사업을 해도, 그 사업을 통해서 선교해야 되고, 네가 직장을 다녀도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다녀야 돼, 이런 말이 아니에요 여러분, 이것은 목사님들이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왜곡한 거에요.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에요. 그래서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의 일이라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것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부른 일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거에요. 거기에 뭐 선교 목적 갖다 붙일 이유도 없어요. 바울이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이야기할 때에 언제나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사도 직을 가지고 말을 해요.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여러분들이 사업을 해도 그 사업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임을 믿어야 되요. 직장에 다녀도 나의 나 됨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이래야 되요.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이야기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입니다. 여기에 부득불 그 다음에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은 내가 화를 당한다. 아낭케 [Anatkh] 라는 이 말은 굉장히 이교적인 말이에요. 헬라사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말이에요. 우리가 쓰는 말들 중에 여러분 우리가 인연이다 이런 것은 불교 용어잖아요. 이런 용어를 가지고 성경 말씀에 기록을 했어요. 왜냐하면은 이 말씀을 가지고 충격을 주려고, 헬라인들의 사상을 대표적으로 말을 하면은 운명 주의 숙명 주의에요. 그래 운명 주의 숙명 주의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자기의 그 운명을 그슬리면은 파멸이라는 말이에요, 그 말이 아낭케[Anatkh] 라는 말이에요.
4. 야베스의 생각은 바울의 생각과 같이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운명이다 사도가 된 것은 내가 선택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소명이다. 월급이 얼마냐를 가치 평가하는 것은 그 시대의 풍설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은 자기는 운명을 그슬리는 자가 되어서 파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운명적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이런 말이에요. 내가 사업을 하는데 이 사업은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은 운명이라는 거에요, 내가 이것 안 하면은 파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라는 거에요. 여러분 가정 주부가 되어서 요즘은 전업 주부로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업 주부 일지라도 이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은바 운명적인 일이다, 내가 이것 안 하면은 파멸이다 이런 마음으로 전업 주부 하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뭐 전문직이 되라 이런 말로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안 해요. 대통령이 되라 이런 말 하고 있지 안 해요.
그래서 야베스는 무슨 일 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야베스의 생각은 바울의 생각과 같이 그렇게 생각했든 거에요. 내가 하는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운명이다. 이것을 하지 아니하면 나는 파멸이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고, 영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다음에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받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라고 말을 하면서 그런즉 내 상이 뭐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내가 선택한 직업이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소명이라는 거에요. 여러분들 목사만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가정 주부로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가정 주부로 부르신 소명으로 주부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나에게 맡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왜 이 생각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를 바랄 수 없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하면은 자기가 하는 일에 반대 급부로서 월급 받으려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 한국에도 좀 뭔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면서 주부의 일도 뭐 300만원이니 이렇게 이야기 하면은요 기분 나빠 해야 되요. 내 일이 그것밖에 가치가 안 돼,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우리 사회가 무슨 일을 하면 얼마가 일어나고, 전부 자의로 일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 일에 전부 반대급부 월급이 얼마냐를 가지고 그 일의 가치를 평가해 버린다고. 목사들도 그렇고 교인들도 그렇고, 그러면 그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힘든 거에요,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도. 설교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듣는데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게 아니고, 그 시대의 풍설을 듣고 있기 때문이에요.
5. 바울은 자기가 사도로서 일을 할 때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사도가 되었기 때문에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값없이 전했다. 헤럴드 스미스에 야베스의 축복의 원리 이런 책은 그 안에 몇 마디 괜찮은 말들이 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직업이 없고 힘듭니까, 그 주부의 그 소명을 하찮게 여기니까 여자들도 전부 나가서 일하려 하잖아요, 그래서 일하니까 결국 남자들의 일을 빼앗아요, 남자들의 일을 빼앗았으면 여자들이 전문직이 되었으면은 능력 없는 남자를 만나야 되는데 능력 있는 남자 만나니까, 능력이 좀 그 시대의 능력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힘들어 지는 거에요. 여러분 이 정신이 있다면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힘들지 안 해요. 정치를 잘못해서 정책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목사님들이 복음을 전하지 안 했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나는 전업 가정 주부입니까, 그 일을 할 때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내가 이 일을 했다는 소명감으로 가지고 하세요.
누군가가 그 일을 돈으로 측정하려고 하거든 기분 나빠 해야 되요. 바울은 자기가 사도로서 일을 할 때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사도가 되었기 때문에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값없이 전했다. 내게 있는 권리를 쓰지 아니했다, 왜? 불러 주신 자의 뜻을 따라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기독교인이 몇%이고 교회가 얼마고 이것을 떠나서 얼마나 이런 하나님의 말씀과 유리된 사회입니까, 이것을 통탄이 여겨야 되요. 이 대강절에 여러분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일인 줄 알아서 월급 받으려고 일하지 않고요, 그 일의 부가가치 발생하는 부가가치 일을 일의 가치를 정하지 말고요,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일을 굉장히 존귀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이게 언제부터 이래 바뀌었는가 교회가, 제가 80년대에 신학교 다녔는데요, 80년대 신학교 다닐 때에는 목사님들이 월급이라면 화를 냈어요. 내가 무슨 직업이라고 하면 화를 냈다고, 목사가 무슨 직업이냐고,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으로 일을 하는 것이지. 어디에 가서 내가 얼마 받는다고 자랑하는 것은 그러면 왜 신학 하는데 이래요. 신학교 3년 동안 어떤 싸움이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내가 자의로 하는가, 이 싸움이 있다고, 밤마다 소나무 뿌리 잡고 기도하는 게 뭐냐 하면은 하나님 내가 자의로 신학을 왔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입니까, 여러분 이 싸움이 있었기 때문에 목사들이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교회 몇 명 목회하느냐에 따라서 어깨 힘 들어가고 힘 빠지고 이런 것 없었어요. 어디에 가서 자기 많이 받는다 이러면은 그러면 왜 목사 되는데 이랬다고요, 이게 목사만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래야 되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하는 일에 얼마 월급을 받느냐의 자기 가치를 평가한다면 이 시대의 풍설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에요. 자기 하는 일이 하나님이 부르신 귀한 일임을 이 대강절에 여러분들이 인식하고 깨달아야 되어져요. 교회에도 보면은 아이구 목사님은 귀한 일 하고, 사찰 집사는 천한 일 하고, 전부 시대의 풍설이 교회에 들어온 거지요. 옛날에는요 민족의 지도자들 장로들도요 교회에서 종치는 것, 사찰 일하는 것을 존귀하게 여겼어요.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를 믿으면은 그 일을 부여하신 하나님이 눈에 보이면은 자기의 일이 너무나 소중히 여겨져요. 우리 시대가 열심히 일만해서 성공만 하라고 했지, 이 소명을 말하지 안 했다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야베스의 기도도 부루스 윌킨슨의 이런 기도 절대로 읽으면 안 되요. 헤럴드 스미스에 야베스의 축복의 원리 이런 책은 사람들에게 인기도 없지만은요 정말 그 안에 몇 마디 괜찮은 말들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이런 일에 대해서 이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성전을 건축하는데 저는 뭐 성전을 건물이라 이래 안 보지만은 뭐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이야기하면.
6. 성전을 건축하는데 돌을 깎는다고, 주춧돌을 놓는다고,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성전을 건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야베스는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이다. 랍비 Harold Kushner 란 사람이 축복은 당신 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 달릴수록 축복에서 멀어 진다.
성전을 건축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돌을 깎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데요. 어떤 사람은 주춧돌을 놓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데요 똑 같은 일을 하면서,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은 성전을 건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데요, 야베스는 이런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가정의 주부의 일을 해도, 저 정말 경상도 이런 말들은 좀 고쳐야 되는 것 같아요. 뭐라는 가 하면은 아내 보고 밥 재이 이래요, 밥하는 사람이래요, 밥 재이 가 아니고요 아내가 우리 가정을 건강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사람, 똑 같은 일을 가지고도 여러분들이 교회의 종을 쳐도 내가 사찰 종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우리 교회 와서 여러분 보세요, 제가 뭐 참 교회도 보면 여전도사는 목사님의 종인 줄 알아, 그일 자체가 존귀해요. 목사는 설교자로 부름을 받은 거에요. 지휘자는 지휘로 부름을 받았고, 여러분 대원은 대원으로 부름을 받았지만은 그 대원이 하나님이 부르신 거에요. 이런 성가대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성가대에요. 반주자는 지휘자의 종이라 생각하면 그것은 합창단이지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나라가 교회 몇 명 모이느냐,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몇%냐 이런 것 자랑이 아니고, 이런 가치관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닯음이 있어야 되요. 여러분들은 돌을 깎는 자입니까, 주춧돌을 놓는 자입니까, 성전을 짓는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이루어 가는 거에요.
내가 비록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얘 학교 보내는 일, 세상의 풍설로는 하찮은 일이지만은 이 일이 목사님의 설교만큼 귀하게 여겨 지는 사람, 귀하게 여겨 지게 하는 설교가 생명 있는 설교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에요. 왜 집사가 장로로 승진해야 되요, 장로라는 말은 얘들 늙었다는 말인데, 경험이 많아 가지고 많은 자에게는 장로고, 여러분 정말 이 시대의 풍설이 교회에 얼마나 밀려와서 교회를 변화시켰는지 몰라요. 특히 이 대강절에 여러분들은 자신의 하는 일에 바울과 같이 운명이라 생각 하세요, 내가 이 일을 안 하면은 파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되요.
그리고 이것은 내가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로 부여한 일임을 알아서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쓰지 말고요, 보수를 받으려고 일하지 말고요, 참 교회에도 보면은 세상의 풍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것을 나팔을 부는 사람들 참 많이 봐요.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일을 즐기는 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 그것은 풍설이지요, 그래서 일은 즐기면서 해야 돼, 성경은 뭐냐 하면은 이겨서 뭐 하려고요, 성령 받으면 그것 이겨서 뭐 하려고요. 여러분 축복이라는 것은 그 책에 나오는데 랍비 헤럴드 쿠쉬너 [Harold Kushner]라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인데 축복은 당신 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 달릴수록 축복에서 멀어 진다 이래요. 이 말이 뭐냐 하면은 세상의 풍설은 내 앞에 있는 뭔가 이루는 성공을 위해서 달려간다고 하는데 진짜로 내가 은혜 받고 보니까 성공과 축복이 내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뒤에 있다는 거에요.
7. 소명을 받은 마음으로 내가 이제까지 한일 내가 존재하는 것, 이 자체가 복이고 성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자기 일이 복되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을 때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진다. 무슨 일을 하든지 존귀하다 이렇게 말을 한다.
그래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면 쫓아 갈수록 성공은 멀리 달아나는 것이고, 복은 멀리 달아난다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 소명을 받은 마음으로 보면은 내가 이제까지 한일 내가 존재하는 것 이 자체가 복이고 성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세상의 풍설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에게 받아드려져요. 세상의 풍설 성공주의에 사로잡히면은 결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런다고.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앞에 있는 성공과 복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이미 주신 복을 누리며 사는 자가 되어야 되요.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 이 일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이 자리에 있게 했다고 하는 이 부르심이 있어야 되요.
요즘은 신학교 가도 전부 목회 기술만 배워 설교 기술만 배워 나오려 해요. 교인들도 목사님 설교 얼마나 잘하나, 목회 얼마나 잘하나, 전부 기술자만 쫓아다닌다고, 80년대는요 내가 내 자의로 신학교 간 것 아닌가, 내가 착각한 것 아닌가, 이 싸움이 있었어요. 직업을 여러분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선택하니까 어느 직업을 선택해야 돈이 되는가를 가지고 보는 거지요. 그러니까 자기 직업이 복이 못 되는 거지요.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정하심이다 뒤를 보세요, 그러면 자기 일이 복되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을 때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겠어요.
이번 주에도 좀 미안한 일이지만은 우리 홍민유 권사님이 연말이라고 교역자들 밥 산다고 해서 밥을 점심을 먹었어요, 저는 그럴 때 어떤 생각이 있나 하면은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 있을 터인데 기대하고 물어요, 그래서 음식을 잘 먹는데 권사님이 뭐라는가 하면은 저 지난 주 권사님이 미안마 다녀 오셨잖아요, 그래서 지난 주일날 예배를 드리다가 졸았대,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서 목사님 얼굴 보기가 너무나 부끄러웠대,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를 탁 치는 거에요, 야 우리 목사님들이 너무 못할 짓을 많이 했구나.
여러분 옛날의 목사님들은 졸아도 교회 와서 조는 것을 귀하게 여겼어요. 여든 가까운 권사님이 멀리 미안마 갔다 와 가지고 예배에 나온 것만 해도 고맙고요, 나와서 졸음을 쫓으려고 이른 모습이 얼마나 귀한 모습이에요. 그런데 예배는 이래야 되고, 무엇은 이래야 되고, 딱 정형화 시켜서 사람을 그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목사가 하는 짓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니에요,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선교가 목적이 되고, 전도가 목적이 되어야 되는 요런 정형을 만드는 것은 목사가 만든 것이지, 하나님이 만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존귀하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8.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는데 내가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닌데,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고, 내가 보수가 눈에 보이지 않고, 그 일을 존귀히 여기기 위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한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존귀함이 보였기 때문에 일 자체가 존귀하게 여긴다.
저는 우리 사회에 전업 주부가 얼마나 존귀한가 하는 그 가치를 교회가 부여해 주어야 된다고 봐요. 그래야 여러분 청년들 실업 문제가 해결이 되어져요. 제가 80년대에요 그래서 부흥사 안 되기로 했어요. 지금도 활동하는 한국에 첫 손가락 두 세 손가락 꼽는 부흥사를 해운대 제일 교회에서 부흥사로 초청해서 부흥회를 했어요. 그 해운대 제일 교회의 교역자들이 제 친구 전도사들이 다 마치고 난 뒤에 사례를 가지고 호텔방에서 드리니까 그 자리에서 열어 보더니만 2백만 원이니까 던지면서 이것도 돈이야 5백 채워 와 이러더래요 그게 뭐 목사에요. 2백 만원 주어도 내가 2백 만원 가치 밖에 안 돼,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내야 나 그냥 갈게. 얼마나 멋있어요.
여러분 우리나라가 지금 국회의원이 그런 마음으로 국회의원 해야 되지 않겠어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세비 몇 푼 받으려고 국회의원 해 백성들 이렇게 어려운데, 저희 세비 올리는 그런 짓거리하고,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유치원 법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는 자한당 내년에 다 떨어져야지 다음 번에, 소명 의식이 거기에 어디 있어요. 대통령이 장관으로 콜을 하게 되면은 월급이 얼마지, 여기에 이권이 뭐지, 이런 게 아니고 내가 한 시대에 대한민국의 역사를 책임진 것 때문에 보수가 눈에 안 보여야지요. 그러려고 예배 드리고 그러려고 설교 듣고, 그런 사람 되게 하려고 설교 하는 거에요.
오늘날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자녀의 직업을 전부 뭐 해야지 얘가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을까, 세상에 풍설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에요. 내가 사업을 하고 내가 직장에 다녀도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 시대의 교회의 풍설을 따라서 사는 거에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인데 내가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닌데,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고, 내가 보수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그 일을 존귀히 여기기 위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해야 되는 거다 이 말입니다. 옛날에는 찬송가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신 주 밤낮 불러도 찬송을 하면서 늘 아쉬운 마음이다.
나를 부르시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존귀함이 보였기 때문에 그 일에 포함되어져 있는 월급이 보이지 안 했어요. 일 자체가 존귀하게 여겨졌지요. 이 복음이 있을 때 우리나라가 경제가 성장한 거요, 80년대 까지만 교회의 복음이 존재 했었거든요. 그 이후에 복음은 없이 세상의 풍설이 교회에 밀려 들어왔든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이 이 대강절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신 주 밤낮 불러도 늘 아쉬운 마음이다. 이 신앙이 행복이 되어져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해도 참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하나님이 눈에 보여서 돈의 적고 많음에 따라서 귀 죽고 어깨에 힘주지 않는 그런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어지고, 교회들마다 그래 됨으로 말미암아 지금 비틀거리고 넘어져 가는 대한민국이 우리 교회 때문에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좀 되었으면 해요.
특히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전업 주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두루 다니면서 망령된 평론하지 마세요. 우리 연세 드신 분들은 열심히 일해서 점심때가 되면 좀 고급 레스토랑에서 경치 좋은 카페에서 밥을 먹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대한민국, 젊은 사람들은 일터에서 땀을 흘리는 대한민국, 누가 만들겠어요, 교회가 만들어야지요. 아멘
◈봉헌 기도◈
게으름을 익혀서 좋은 식당 좋은 카페 돌아다니며 게으를 뿐만 아니라, 허탄한 말들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하며, 일들을 만들어 내는 이 시대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는 야베스가 믿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오늘도 듣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는 일이기에 이 일을 하지 아니하면은 내가 파멸될 것이라고 하는 소명감을 가지고 일을 보게 하여 주시고, 그 소명이 그 일 속에 있는 인간이 만든 가치 평가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값없이 전하였든 바울과 같이 자기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였든 영이 있는 바울과 같이 일을 통하여 얻어 지는 부가가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오늘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이 예수님만 되게하여 주시고, 밤낮 불러도 늘 아쉬운 마음이 있는 이런 영성이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대강절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삯 터서, 전업 주부를 하찮게 여기고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부러워하는 이 땅에 한줄기의 빛이 되는 그런 교회가 하나 둘 늘어나기를 원합니다.
탄식의 소리가 높은 이 땅에 교회를 통하여 찬양으로 변모 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역사를 대통령에게 정치가에게 기업인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목사와 믿는 자 손에 맡김을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도록 오늘도 종이 설득한다고 설득이 되겠습니까, 성령께서 역사 하셔야만이 가능한 줄 믿사오니 그 동안에 풍설이 풍설에 매여 살든 생각이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팟방을 통하여 말씀을 즐겨 듣기를 원하고, 이 북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가 사상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잡을 수 없는, 잡으려고 하면 더 멀리 달아나는 성공과 축복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뒤에 주신 복 내 뒤에 있는 성공을 볼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자들이 드린 예물을 주님이 열납 해 주어서 교회 때문에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교회 되게 하시고, 교회 때문에 병원 못 가서 죽는 법이 없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부유한데 교인은 힘든 종교적인 억압이 있는 종교 기관이 되지 않도록 성령께서 우리 장로님들 우리 교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오며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땀을 흘려야 일을 하는 세상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귀한 소명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하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 지기를 원하며 십자가의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유대교의 풍설에 의해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시고, 참된 하나님을 십자가에서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창조하는 자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세상의 풍설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 되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머물러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일함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자기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았든 바울과 같이 월급이 눈에 보이지 않고, 일을 주신 하나님이 눈에 보이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야베스가 무슨 일을 한 것을 기록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최선을 다하여 성공한 그 성공이 자신과 이웃과 나라의 유익이 되게 하였든 거와 같이 결과를 따라서 축복을 따라서 달려가는 자가 아니라, 이미 주신 그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죽어서 가야 할 그 천국이 땅에 임하도록 선물로 주신 교회 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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