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혹시, 하나님을 파시나요?”
역대상 4: 9-10
2018년 12월 23일 주일 낮 예배
No. 398
9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 야베스의 기도 중에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기도의 핵심이다. 온니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산리사다임의 손에서 구원을 하게 된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이전과 다른 삶.
우리 대강절에 야베스의 기도를 함께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야베스의 기도 가운데 맨 마지막에 보면은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기도의 핵심이지요. 또 우리의 삶에 소망이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 아마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바를 허락 하셨더라 이래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 하셨다, 어떻게 허락했는가에 따라서 신학이 결정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1. 구원이 실제화 되지 못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교인들이 성경을 옛날의 이야기로 아니면은 교리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가 구하는바, 나의 환난을 면하여서 근심이 없는 것은 어떻게 했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는가, 그가 모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을 살은 것이 아니지요. 그 뒤에 보면은 그의 손자 시대에 누가 있는가 하면은 온니엘 이라고 하는 사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온니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산리사다임의 손에서 구원을 하게 됩니다. 이 사사의 구원의 역사가 야베스의 기도의 응답이지 아니했나 저는 그렇게 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또 신앙 생활 할 때에 아마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은 느끼겠지만은 저는 왜 교회가 이렇게 구원의 힘을 잃어버리는가,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어서가 아니고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자꾸 교리화 시켜서 도금화 시키기 때문에 문제다 이렇게 생각 해요.
그 중심에 스콜라 신학이라는 게 있는데, 스콜라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 교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신학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교육의 문제도 동일하리라고 생각을 해요. 여러분 학교라는 영어 스쿨은 스콜라가 어원입니다. 우리 학교 교육도 보면은 이론 교육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삶의 현장에 나오면은 별로 쓸모가 없어진다고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에요. 성경은 예전에 있었든 이야기도 아니고, 오늘의 삶 속에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말씀하는 거에요. 예수님의 구원은 지금도 우리의 삶의 실제화 되어져야 되요. 그런데 그 구원이 실제화 되지 못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교인들이 성경을 옛날의 이야기로 아니면은 교리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설교를 할 때에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이 오늘날의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 성에 대해서 많은 설교를 합니다. 이원론도 문제입니다. 교회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별개로 생각하면은 잘못된 거에요. 오늘도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좀 더 실존적인 삶으로 설명을 하자면은 또 제가 목회를 하고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바가 뭔가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자면은 이 야베스 시대에는 사사 시대였잖아요, 굉장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였다. 여러분들 속에 머리 속에 와 닿는 이야기는 어느 시대와 같은 가하면은 우리가 구한말 조선의 말기 시대, 고종 시대하고 같아요.
여러분 미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 그 다음에 중국 청나라는 우리 조선을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개화파 수구파가 서로 싸우고 난리를 지기고 있다고요. 전부 자기가 옳다는 것만 추구를 하고 자기 살길만 찾는 그런 시대에 여러분 세계 열광에 쫓기고, 또 결국 우리나라는 미국하고 일본이 가쓰라 태프트 조약에 의해서 필리핀은 미국이, 일본은 우리를 먹는 이런 비극이 우리의 삶에 도래한 겁니다. 이것과 똑 같은 것이 사사시대에요. 사사시대는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 지파만 살려고 하다가 외적의 먹이 거리가 되는 시대였어요. 이런 시대에 야베스는 달랐다는 거에요. 어떻게 달랐는가, 나에게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환난을 면하여서 근심이 없는 것은 어떻게 했는가? 그가 구하는 바를.
2.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 공동체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 그의 손자인 온니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가신다. 열광의 먹이 거리가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그 하나님.
그의 기도를 따라서 세워 진 공동체 그의 후손 가운데 온니엘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함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없게 하였다. 여러분 이 말씀이 너무나 중요해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삶을 붙들어 주신다, 그러면은 우상숭배하고 비슷해요 신앙 체계가, 우리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 가운데 오셔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성령님이 교회에 공동체 안에서 통하여서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 공동체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 이것 놓쳐 버리면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목회라든지, 우리의 삶의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도록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교회가 교회다워 지도록 그래서 교회가 제대로 서서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샬롬의 삶을 살도록 이것이 목회의 목적이고 당회의 존재의 이유이고,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하는 삶의 목적이 되어져야 되요.
그럴 때에 우리 시대의 하나님이 그러셨는가, 그런 게 아니에요,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손자인 온니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제대로 된 신앙 이에요. 여러분 우리 고종 황제 시대에는 저마다 자기 살길 찾았잖아요. 그러면서 이완용 일파 나라를 팔아먹은 칠적은 자자손손 지금도 떵떵거리고 잘 살잖아요. 그런데 모든 백성들은 환난과 고통 속에 들어갔다고요. 이것이 현실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세종 시대를 한번 보라고요. 세종대왕 시대는 태평성대였어요. 우리 조선이라는 조그마한 나라가요 여진족 육진을 개척 했고 북쪽에는, 남쪽으로는 대마도를 정복을 했었어요.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참 솔로몬 시대와 같이 무화가 나무 아래서 편안히 거하는 시대였어요. 여러분 이 세종의 시대를 열게 한 게 누구에요, 저는 태종이라 생각해요. 당태종이 수많은 피를 흘려서 기득권층들을 다 척결함으로 말미암아 왕조가 든든히 섰다고 생각해요. 저와 여러분들은 정말 저는 태종의 시대와 같이 저는 목회를 하면서 피를 많이 흘릴 수 밖에 없는 개척자이거든요. 우리 다음 세대 오늘도 예배를 참여했지만 지인이나 해인이나 혁주 이런 아이들 시대에는 환난이 벗어나 근심이 없는 그런 교회를 물려주려고 국가적으로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우리나라의 이 번영은 지금 우리 어머니 세대들 아버지 세대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로 우리가 누리잖아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렇게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서 알아야 되요. 야베스의 기도를 듣고 야베스는 환난과 근심을 벗어나는 삶을 살았다, 이래 버리면은 우리가 이 성경을 잘못 보는 겁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따라서 그 후손 가운데 온니엘을 통해서 열광의 먹이 거리가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그 하나님,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다행히 우리 교회는 주일 학교가 참 많아요. 앞으로 저는 우리 장로님 세우실 분들은 자녀들이 교회에 나와야 되요 왜 그래야지 우리의 수고가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이 내 자녀 대 내 손자 세대에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그런 샬롬의 삶을 경험하며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3. 성탄절이 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데 내 성공이 뭐 다른 것 몰라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주님이 오셨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그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이 자꾸 기적으로만 우리 속에 와 닫는데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생각 속에 있는 게 아니에요,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이전과 다른 삶,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구한말에 개화파 수구파 싸우듯이 오늘날 뭐 북한을 도와 줘야, 안 도와 줘야 된다, 뭐 미국 편 들어야 된다, 중국 편 들어야 된다, 그런 것은요 의미가 없어요. 좌파다 우파다 자한당이다 뭐 더불어 민주당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뭐 그런 게 중요해요, 오늘 야베스와 같은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려면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 지기를 바라고, 그 세워 진 공동체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하나님의 샬롬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되고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야베스와 같이 성공해야지 흑 수저지만, 그 성공의 목적이 나와 내 자손만을 내 자식만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성공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그런 성공들, 우리 교회도 얼마 전에 등록하신 젊은 집사님 부부가 노무사인데 교회 와서 자기가 이제는 가서 회사에 조언해 주는 것이 다르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xx 기업이 기독교 기업 선교 목적 진짜 입에 욕 나오려 그래요. 하나님의 기업이라면은 어떻게 하든지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다른 회사보다 많이 주려고 기업을 하는 것이 기독교 기업이에요. 내 회사의 하청 업자의 단가를 올려 주려고 기업을 잘하려고 하는 것이 그게 기독교 기업이지요.
선교사 많이 파송 하고 종업원들 월급 가장 적게 주면서 하나님 일한다고, 그러면서 미국에 뭐 LA다저스를 사려고 하고, 쓸데없는 짓이나 한다고, 왜 그런가 성경 잘못 봐서 그래요. 오늘도 여러분 성탄절이 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데 내 성공이 뭐 다른 것 몰라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주님이 오셨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그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했다는 것을 아셔야 되지요. 제가 여러분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이야기 했잖아요, 제가 아버지가 목사지만은 제가 교회 졸업하려고 했든 것이, 기도하면은 자기만 잘 되게 하는 그 하나님이라면은 나보다 못한 하나님이잖아요.
교회 서로 요만한 일 가지고 따지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 저런 교회 왜 다녀야 되느냐고, 그랬다가 성경에 보니까 그런 하나님이 아니더라는 거에요.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신 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니더라는 거에요.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로 야베스의 사건을 보니까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더라는 거에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복음을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짜 성경 해석을 제대로 해 줘야 되겠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목사님 설교에 얼마나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제가 성경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머리에 번개가 쳐야 되요. 벼락이 쳐야 되요.
4. 목자 없는 양,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는 마음,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고, 그게 창조주의 마음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야 되며, 그러려면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의 영접을 받아 드려야 된다.
아 성경이 이런 말씀이었구나, 이래야지 우리 교회에 다니는 맛을 아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그런데 내 개인으로 보니까 도저히 그렇게 살 자신이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목사가 되야 될까 말아야 될까 싸움을 할 때, 내 속에 두 성경 구절 마태복음 9장 36절에 목자 없는 양을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는 마음,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뭘까,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뭐냐 하면은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에요. 그게 창조주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사람이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볼 때에 그의 아버지와 엄마와 같은 것으로 보느냐 안 보느냐로 가지고 하나님의 영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 되는 것이지 다른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저는 우리 뭐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은 가만히 있으면 제 육신이 발동을 하지만 기도를 하게 되면은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눈으로 부모의 눈으로 그 사건과 그 사람을 봐요, 그러면 어떤 악인도 용납이 되어져요. 사람을 필요에 따라서 취하거나 버리지 안 해요. 여러분 얼마나 종교적인가 우리 교회 이익이 되는가 이런 것 가지고 판단되는 게 아니에요. 기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느냐 못해 주느냐 얼마나 종교적인 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이런 것이 선악의 기준이 되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가지게 되는가 로마서 5장 5절에 보면은 제 머리를 쳤든 말씀이에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이 사랑이 너에게 부은바 됨이니, 성령님이 여러분들 안에 거하시면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야 되요. 그러려면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의 영접을 받아 드려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성화 신앙의 훈련이 날마다 훈련이 뭐냐 하면은 왜 교회 오는가, 그 마음으로 사람을 보려고요.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보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교인들을 보는데, 교인들 여러분들이 나를 볼 때도 마찬가지에요. 종교적인 목적으로 보는 사람은 목사님으로 봐요. 타인으로 봐요.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은 나를 볼 때에 내 어머니 아버지의 눈으로 보게 되어져요. 피차 그래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잖아요, 제가 대학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또 개척을 하면서 이 큰 예배당을 짓고 하니까 친구들은 야 우리 친구 대단해 친구 목사는, 이러면 내 부모는 네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교회 갔니, 네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교회를 그렇게 크게 지었니, 느낌이 다르고 보는 눈이 달라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그런 눈으로 봐야 됩니다. 지금 여러분 강능에 참사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이니까 강집사님은 누구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겠지요. 그래서 기도도 나오는 거지요. 그 사건을 볼 때에도 그 아이의 부모로 보세요, 김영균을 볼 때에도 그 아이의 부모의 마음으로 그것을 본다면은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구원이 비로서 나오는 거에요.
5. 성령님이 왜 오셨는가, 모든 것을 타인으로 보는 시각 속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를 시작하도록, 그 구원이 2천년 전에 시작이 된 것이고 그게 야베스다.
성령님이 왜 오셨는가, 모든 것을 타인으로 보는 시각 속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를 시작하도록 그 구원이 2천년 전에 시작이 된 거에요. 그게 야베스에요. 이런 사람은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려도 후손의 태평성대를 위해서, 내가 그 열매 따먹으려고 사과 심지 안 해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태종이 모든 기득권층들을 처단하고 나니까, 왕조중심의 세종태평성대가 이루어지잖아요. 농사를 지어 본적이 없는데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 주잖아요. 쌍놈 양반 유교의 정신으로 세운 조선에 천민출신 장영실이를 등용하잖아요. 장영실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장영실을 보잖아요. 우리 다음 세대에는 어차피 우리가 세울 때에 피를 많이 흘릴 수 밖에 없지요 저와 여러분들은.
그러나 오늘 예배에 참여한 지인이나 해인이나 혁주 우리 주일 학생들의 시대에는 우리가 흘린 피 땀이 결실을 맺어져서 환난이 벗어나 근심이 없도록. 오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것이 우리 부모 세대가 그랬다는 것을 알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삶, 부모가 어떻게 자기 먹으려고 재산 모아요, 자식 편하게 해 주려고, 그게 야베스의 신앙이었고, 그것이 신앙의 목적이 된다고요. 오늘 왜 이렇게 어려운가, 그 마음이 실종 되어져 버린 거에요. 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부 교리로 설명해요.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아요. 그리스도의 구원은 실존인데. 오늘 여러분들에게 영상 하나 보여 드릴 테니까 이 영상 제목이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 파세요에요? 보시면서 도전이 되는 그런 대강절이 되시고, 그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가, 여러분들은 어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예수 믿는 사람, 우리나라가 지금 이런 것은 저는 억만장자와 같은 부자들이 없기 때문이에요, 재벌이 없기 때문이에요. 직원 월급 많이 주려고 내 기업 성공하려고 하는 그런 기업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청 업체 단가 높여 주려고 기업 열심히 하는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기적이 희귀하게 되었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래도 여러분들이 평안이 길을 갈 때에는 우리 교회가 좋은지 몰라요, 힘들고 어려운 분들은 우리 교회가 얼마나 목회가 제대로 가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요.
아마 송정아 집사님이 경험한 것들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다 백만장자가 되어 가지고 억만장자가 되어 가지고, 삼촌의 병을 치료해 줄 수는 없지만은,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그 아이에게 삼촌은 되어 줄 수 있겠구나.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들 자꾸 어려운 사람 돈으로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삼촌이 되어 주는 것. 아버지의 눈으로 봐주는 것, 엄마의 눈으로 봐주는 것, 그것은 누구나 해 줄 수 있잖아요. 우리는 얼마나 사람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화살을 맞고 쓰러질 때 참 많잖아요.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며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오고 교회가 생각나는 그런 교회 저와 여러분들이 흘린 피 흘린 땀이 우리 다음 세대에는 평안을 누리는 그런 것을 위해서 신앙 생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이 흑 수저 출신일지라도 야베스와 같이 자기가 사는 분야의 성공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성공이 자기와 자기 자식들과 손자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영상을 본 억만장자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1달러로 하나님을 사게 하는 그러한데 쓰임 받는 야베스와 같은 억만장자가 우리 교회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이들 위해서 우리가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립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복음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복음을 벗어나는 어떠한 말씀도 천사가 전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거라고 하였든 거와 같이 우리의 싸움은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나의 정당성에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느냐의 싸움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삶의 실제화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전쟁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 종의 마음 허락해 주시고, 우리가 드리는 이 예물이 암을 고치고,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어린 아이의 삼촌의 병은 살리지 못할지라도 삼촌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드린 예물이 되어져서 아버지 하나님 태종 이후에 태종의 태평성대가 열린 거와 같이 다음 세대는 쉼과 회복이라는 말이 교회 이름만이 아니라, 교회의 실존화 될 수 있도록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내 먹으려고 사과를 심기보다 내 자손 먹이려고 사과를 심는 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소견이 옳은 대로 행하는 이시대 정치인들이 우리 교회를 보면서 부끄러워 지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샘플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은혜 더하여 주시고, 과도히 아끼고 움켜쥘지라도 남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흩어 나누어 질지라도 부족함이 없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날마다 경험하며 사는 쉼과 회복이 있는 가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는 암을 치료하는 능력은 없을지라도 암을 초월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암으로 인하여 가족의 빈자리가 대신 채워 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오늘도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부은바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마음을 품도록 지금도 성령을 보내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배부르게 하라 더웁게 하라 중보기도 하면서 나는 그런 기도하는 의인이야 라고 자처하는 유대교에게 배부르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려고 성령을 보내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계시해 주시고, 승천하셔서 오늘도 성령을 보내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창조주 하나님이기에 어떠한 악인의 악도 덮고, 어떠한 어려움도 자기의 눈으로 아니라, 창조주의 눈으로 바라봄으로 사람은 포기하는데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지금도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불어넣어 주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그 어린 아이에게 억만장자의 역할은 못해 줄지라도, 해 줄 수 있는 삼촌의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하나님 노릇 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그래서 하늘의 평안을 맛보도록 이 세상에 선물로 주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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