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神은 존재 한다
요한일서 3: 16-18
2019년 4울 28일 주일 낮 예배
No. 416
16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아멘
○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서 그 말씀이 나의 가치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 내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창조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발견 해야 그것이 우리의 영성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계시한 십자가이다.
우리 교회에서 우리 노회에 젊은 목사님들 한 4년 동안 매주 성경 공부하고 말씀을 나누며 섬겼습니다. 그 4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은 목사님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팟방에서 우리 교회의 설교를 들으셨더라고요. 어제 점심을 먹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4년 공부하고 또 설교를 들을 때에 다 아는 줄 알았더니만 아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이제 설교가 들려 진다고, 목사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6월에 미국에 가면서 한 주 빠질 때 우리 교회 와서 2부 3부 설교 하시라고 이랬는데, 여러분 저도 신학을 한지가 30년이 지나서 계속 성경을 읽고, 읽는데 읽을 때마다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 성경을 읽으면서 아 하나님이 이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이런 것들이 깨달아 지면서, 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지는 것 같아요.
1.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가장 큰 숙제가 뭐냐 하면은 신은 존재하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 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부모의 이야기도 그렇잖아요, 어릴 때 부모가 하는 말씀이 늘 그 소리 잔소리 같은데, 우리가 성숙하고 철들고 나면은 왜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가, 그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비로서 그 잔소리가 아니고 그 말씀이 귀에 들리어 지면서 그리워지거든요. 여러분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다고 듣는 것도 아니고, 안다고 아는 것도 아니에요. 성경 말씀이나 설교도 똑 같다고 봐요. 목사님이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그렇게 이해가 될 때에 설교가 들리어 지고,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서 그 말씀이 나의 가치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 내 삶이 변화되는 겁니다.
저도 이번에 오늘 설교 말씀도 부활절 투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이 이미 다 말씀 드렸던 것인데, 그 말씀이 왜 목사님이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그 말씀을 여러분들이 이해 해서 이 설교가 들리어 지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가 다음 주일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스승의 주일, 5월이 계속 되는데 제가 그 동안 절기 때 했든 설교를 이번 주에 다시 한번 다 읽어 봤어요. 읽어 보면서 아 정말 이런 말씀들을 했구나, 해서 그 가운데 또 몇 개를 뽑아서 예전에 했든 설교를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이 부활절에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이 설교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잖아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가장 큰 숙제가 뭐냐 하면은 신은 존재하는가? 그게 가장 큰 숙제거든요.
예수를 믿는 사람도 믿습니다 라고 말을 하지만은 마음 한 켠에는 정말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이런 의문이 들고, 또 믿음의 회의도 생깁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그 잘못된 믿음의 가장 중심은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지 않고,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목사님들도 보면은 설교를 했는데 어떤 교인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고 난 뒤에 아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경험을 했다고,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렇게 간증들을 하니까, 기도를 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는 응답을 받지 못한 교인들은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또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회의에 빠진다고요. 이런 것들은 다 말씀의 매개체가 잘못 되어서 그래요.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 했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야 되는데 목사님이 자기 말을 전한 것이고, 교인이 자기 경험을 말한 것 때문에 여러분들 속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은 우리의 삶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도 되지 못하고, 사람다운 삶도 살아가지 못해요. 우리는 신의 존재 제가 하나님이라 말하지 않고 신이라 하는 것은 너무 일반적인 종교에 익숙해 있어서 여러분들의 기억에 자극을 좀 주려고 이러는 거에요. 또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이 설교를 들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2. 성경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다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고, 그것을 믿었든 사람들의 말씀들이 성경에 쭉 기록이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창조의 하나님 이시니라.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여러분 모든 신앙의 조상이 아브라함 되는 그런 시조인 줄 아는데 그런 게 아니에요. 아브라함이 신앙의 시조가 아니에요.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믿은 그 하나님을 믿는 거에요. 성경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다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고, 그것을 믿었든 사람들의 말씀들이 성경에 쭉 기록이 되어 있는 거에요. 목사님이 믿은 하나님도 아니고요,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그 사람의 하나님도 아니고, 아브라함이 믿은 그 하나님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이것이 들려 져야 되요. 정말 여러분들이 이 설교를 안다는 게 아니고, 왜 목사님이 그 하나님을 그렇게 신의 존재를 이야기하는가? 그것이 좀 전달 되었으면 해요.
로마서 4장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라고 말을 하면서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는가 하면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 신은 부활의 신이에요. 그리고 없는 것을 있게 부르시는 이, 창조의 하나님이에요. 신은 기도의 응답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신을 기도의 응답으로 여러분들이 신을 체험한다든지, 신의 사랑을 확인한다면은 절에 가서 불공 드려 가지고 기도 응답 받으면은 부처가 살아 있고 부처가 사랑하는 것이 되잖아요. 무당 굿 해 가지고 여러분들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지면은 무당이 믿는 신이 살아 있는 것이고 그 신이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신이 되잖아요.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종교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요. 성경의 하나님은 여러분 창조의 하나님이에요. 그 창조의 하나님 그래서 여러분들은 신의 존재를 이제부터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확인 받으려고,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지 말고요, 천지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확신 가져야 되요. 여러분 봄에 죽은 가지와 같은 그것에 새싹이 나는 것이 어떻게 우연히 진화로 되겠어요, 그것이 필요에 의해서 되어집니까, 저는 그런 것을 그렇게 믿는 것은요 엄청난 믿음이라 생각해요. 논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모든 지성이 마비 되어져야 믿어 지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그 새싹의 움이 돋는 것 그게 창조 하나님의 역사잖아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신이 존재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발견 해야 되요. 그게 우리의 영성이에요. 여러분 우리 몸 우리 몸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모든 하나님의 창조를 보면서 하나님의 그 신묘막측한 지혜를 여러분들이 볼 수 있는 자가 영적인 눈이 열린 거에요. 소련의 달나라를 갔든 우주인이 내가 달나라 하늘에 날라 가보니까 신은 없더라고 그랬는데 얼마나 무지한 자입니까, 끝이 없는 그러나 끝이 있는 이 광활한 우주에 지구 벗어나서 그 달 괘도 한번 올라가서 그곳에 신 없다고, 신 없다 이러는 거에요.
3. 부활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지 신의 존재만이, 그 사건이 2천년 전에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믿은 그 하나님을 바울이 비로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학 적으로 부활을 재창조의 사건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달 너머에 정말 광활한 우주를 보면은 이것이 어떻게 진화로 되어졌겠는가, 정말 우주보다 더 크고 완벽한 지혜 자가 아니고는 어떻게 이 우주가 존재하겠는가, 여러분들이 이렇게 신의 존재에 대한 마음을 가져야 되요. 또한 이 창조는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만은 유사이전[有史以前]의 이야기들입니다. 있었든 존재에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확신할 수 없어요 창조를 가지고, 믿어야 되어져요. 여러분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은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 있었든 일이고, 나를 존재한 인간의 존재도 내가 존재하기 전의 행위에요 신의 행위에요. 그래서 과학이 되지 못한다고, 인간은 과학을 넘어서는 것은 믿음이 필요한 것이 지만은요 과학 안에 있는 것은 알게 되는 거에요. 과학의 두 가지 원칙이 경험되는 것과 증명되는 거에요. 경험되지 못하고, 증명되지 못하면 과학이 아니고 론 자기 주장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부활은요 인간의 역사 안에 일어난 사실이에요, 인간이 경험한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증명할 수 있는 거에요. 여러분 부활이라는 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할 때에 죽은 사람에게 다시 살아나는 것 이런 것 아니에요. 죽은 사람이라는 것은 무생물이에요. 부활은 무생물이 유생물이 되는 거에요.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은 이 찬송가(책)에게 생명이 들어가서 지가 꿈틀대고 움직이는 거에요. 이것은 우주 안에 내재된 그 무엇에 의해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요즘 뭐 DNA 뭐 생명 이런 이야기 하지만은 절대로 생명은 이 우주에 내재된 자원의 힘과 에너지에서 일어나지 못해요.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겠어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도 아이구 우리 목사님은 기도 하면은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이야기 해 버리니까 교인들이 헷갈리는 거에요. 부활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지 신의 존재만이, 그 사건이 2천년 전에 일어난 거에요. 그래서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믿은 그 하나님을 바울이 비로서 알게 된 거에요. 그래서 신학 적으로 부활을 재창조의 사건이다 이런다고요, 그 관점에서 지난 주일 여러분들에게 설교를 드린 거에요. 저는 이 부활을 목격한 자들의 삶의 변화와 목격자들이 몇 명 이런 것들을 보면서 신은 확실히 존재하는구나, 저는 그렇게 믿었어요, 그래서 흔들림이 없어요. 이런 신앙은 인격적인 신앙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말해 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존재하는 신이 어떤 신이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창조의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고 하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알아야 되요. 그 말씀이 오늘 요한일서의 말씀이에요. 오늘 요한일서에 보면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고,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종교 자였든 요한이 신앙인으로 변화된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왜 요한이 이런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는가, 그 마음을 알아야 이 말씀을 이해한 것이 된다니까요. 자기는 그 동안의 기도의 응답 유대인들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든 그 하나님의 생각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무너진 거에요.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믿은 그 하나님이구나, 그 신이 창조의 신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까 형제의 궁핍함을 도와 줄 마음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이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것이나, 제사장이 말하는 그런 신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믿은 그 하나님이구나, 그 신이 진짜 신이구나, 그 신이 창조의 신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거에요. 그래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인데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거에요. 왜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되는가 하면은 그래야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거에요. 얼마나 많은 교인들의 착각이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니까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교인이 사람이 되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 보면은 야 저 사람은 진짜 사람답게 사네, 이말 들어야 되요. 저 사람은 예수쟁이네 이런 게 아니고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보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은 진짜 인간이 되었네, 이말 못 들으면 종교인이에요. 왜 안 되는가,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려고 하니까, 전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린 거에요. 사랑의 사도 요한이라 하는데 요한은 예수님의 그 십자가가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잖아요. 그 죽으심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것을 받아 드리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니까 그 다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기가 종교인일 때에는 자기가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이 없는 종교인이었거든요. 저는 하나님 잘못 믿어 가지고 당연히 저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돼, 이렇게 생각했다고, 그런데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까, 형제의 궁핍함을 보면서 도와 줄 마음이 있었다는 거에요. 왜 어떻게 내 속에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서 지금 하는 말이 뭐냐 하면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자.
교회에 얼마나 사랑한다는 말 많아요, 예배 시작할 때 사랑합니다, 그 말만 하지 마라는 거에요. 뭐라고 하는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라. 인사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하라는 거에요. 다른 말로 하면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렇게 알게 되면은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는 거에요. 고난 주간 설교 새벽 기도 때 하면 참아 주게 된다는 거에요. 친절을 베풀게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이야기 할게요. 부모님이 고생을 해요, 부모님의 그 고생을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어요 자녀들은, 우리 아버지는 왜 저래 찌질 해, 우리 아버지는 책임지지도 못하는 나를 낳아 가지고 이 고생시켜, 우리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 해주지도 못하면서 뭐 아버지 노릇 한다고 해, 이렇게 반응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5.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믿음과 상관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인 것을 알 때 비로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한 십자가는 모든 사람이 싫어 버린 바 된 자, 자기 신으로 삼고 싶지 않아 했다.
그 자식은 사람 아니에요. 사람 안 된다고요. 똑 같은 부모의 고생에도 우리 부모가 저 고생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하는 거야, 우리만 없어도 어머님이 저 고생 안 할 것인데, 아침에 여러분 새벽밥 엄마가 해 주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새벽밥 하는 그 엄마의 손길을 알면은 엄마 고마워, 하며 밥 먹어요.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서 자기를 위해서 밥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식은 투덜거려요. 사람 되는 것은 똑 같은 부모의 고생을 우리를 위해서 했는가, 그것을 아는가 모르는 가에요. 여러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과 상관없는 역사적인 사실이에요.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 그러신 것을 알 때 우리는 비로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똑같이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알면서 어떤 자식들은 나는 아버지 같이 저렇게 안 살아야지, 열심히 공부하고 이러는 사람은 인간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인간이 되는가, 우리 아버지가 저 고생을 했는데, 아버지와 같이 힘없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도와 주려고 이제는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서 자기의 성공을 가지고, 아버지와 같은 약한 자들을 귀하게 여기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제대로 된 효도고, 제대로 된 부모 공경이에요. 여러분 성경 아셔야 됩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저는요 교회가 성화를 그려 놔 놓고, 교황이 가운을 입고, 왕관을 쓰고, 홀을 쥐고 전부 로마 제국의 탓이에요.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예수 성화 잘못 그린 거에요. 이사야 53장에 예수님의 모습은 모든 사람의 싫어 버린 바 된 사람, 어느 누구도 그분을 신으로 삼고 싶지 않는 자,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이에요, 내가 말 한마디만 해도 내 소원 다 들어 주고, 모든 것 해 줄 수 있는 그 능력 있는 신을 믿기 때문이에요. 교인이 인간이 안 되는 거에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계시한 십자가에는요, 모든 사람이 싫어 버린 바 된 자, 아무도 자기 신으로 삼고 싶지 않는 그 신, 저는 어떤 신을 믿는가, 아무도 자기 신으로 섬기고 싶지 않는 신이 내가 섬기는 신이에요.
질고를 많이 아는 자, 온 몸이 종합병원인 신, 뭐 그런 신을 신으로 섬기고 싶겠어요. 누가 자기 아버지가 모든 사람에게 철 안 들고는 한번 나타나면은 비단옷에 모든 친구들이 야 너의 엄마 미쓰코리아네, 이런 어머니를 기대하는 자식이 부모의 사랑 아는 게 아니에요. 진짜 인간이 되고 철들면은요 그 늙고 병들고 모든 사람에게 멸시당하는 그 부모가 나에게는 가장 귀한 존재요, 그래서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시 당하지 않도록 내가 열심히 살아서 지도자가 되어야지, 교회 신앙이 그래 출발되어야 되요.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은 콧김 하나에 홍해를 말릴 수 있는 그분인데 로마 제국에 의해서 실패한 독립 운동가로 처형을 당하신 분이에요.
6. 거짓 선지자로 정죄 받고 처형을 당한 어느 누구도 그분을 신으로 모시고 싶지 않는 그 십자가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 우리를 위해서, 왜 그 때 우리가 비로서 사람이 사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관계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행위 이면을 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려한 십자가가,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모두다 가져다 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고요, 힘있는 자에게 처형을 당한 거에요. 완벽한 종교요 유대교에요 거짓 선지자로 정죄 받고 처형을 당한 어느 누구도 그분을 신으로 모시고 싶지 않는 그 십자가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 우리를 위해서, 왜 그 때 우리가 비로서 사람이 사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면서 왜 사람들이 교회 다니면 인간이 돼, 소리를 못 듣는가, 전부 로마제국을 한숨에 꺾어 버리고 유대교를 한방에 보내는 능력의 신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예수래, 그가 십자가래, 그게 사기지 뭡니까.
여러분 부모가 가난해야 효도하는 자식이 난다는데, 저는 그 말도 인정 안 해요, 재벌들도요 얼마나 재벌의 자식들이 우리 아버지가 재벌인데 얼마나 저 고생하는가, 그걸 알 때, 재벌 자식들도 인간이 된다고. 우리 아버지는 재벌의 화려함만 보여 주는 부모들 자식에게는 문제의 얘가 나요. 사람은요 사람이 되려면은 행위나 있는 것의 이면이 보여야 되요. 엄마가 아침 새벽밥 해준 밥만 보일 때에 밥 투정이지만은 눈 비비고 일어나서 아침 자기 잠 줄여서 자식 잘 되라고, 정성껏 밥해 준 엄마의 마음과 행위를 알 때 비로서 인간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관계라는 것은 그 행동과 말이 이면을 보게 하는 거에요.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관계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행위 이면을 보는 것이거든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관계가 없는 종교인들은 교인들이 낸 십일조만 보이지만은요, 관계가 있으면 그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 눈물 흘리고 땀 흘린 교인들의 그 모습이 보이면은 감사가 일어나요.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어떻게 굴욕감을 가지고 직장 생활 하는가 남편의 행위를 알게 되면은 봉투의 두께의 상관없이 감사가 일어나요. 십자가가 그런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 하나님을 그렇게 알지 못하니까 사람이 안 되는 거요. 전부 자기 기도 응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해 버리니까, 저는 재벌들 중에서도 짐승을 키우는 재벌 가가 있는가 하면은 사람을 키우는 재벌 가가 있어요. 사람을 키우는 재벌 가가 되려면은 진정한 기업인이 되어야 되거든요.
여러분 저도 회사를 해봤는데, 지금 담임인데 우리 부 교역 자들은 자기 가족만 먹이는 생활비가 필요해요. 저는요 우리 교회 교역 자들 먹여 살려야 하는 그들보다 열 배는 더 목회를 해서 만들어야 되요. 내 잘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책임감이에요.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재벌들은 Owner 하고 싶지 않지요. 저도 한 달에 5천 만원 벌어야 회사 돌아갈 때, 50만원 가족 생활비는 빌려서라도 먹여 살리겠다 싶더라고, 이 고생이 재벌 가의 있는 자들의 고생인데, 이것이 소명 받은 것인데, 이것이 사람 만드는 것인데, 우리나라 재벌들은 그런 재벌이 별로 없어서 재벌은 어떻까?
우리나라의 먹고 살만한 가정에는 효도가 안 나오는 게 돈이 보이거든요, 돈 이면에 부모의 고생이 보여야 되는데, 왜 교회가 사람을 못 만들어 내는가, 하나님 안에 있는 호주머니와 지갑만 보게 만들거든요. 그 하나님이 우리 인간 되라고, 콧김 하나에 홍해를 말릴 수 있는 그분이 처절한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는데, 그래서 고린도전서는 그렇게 말해요, 우리가 일년 내내 말씀 드렸잖아요. 여러분 지금도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니, 왜 목사님이 저것을 주제로 세웠는가, 그것 모르면은 아는 게 아니에요. 작년 한해도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것이오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7. 십자가의 도 로마에 처형을 당하고, 유대교에 처형을 당한 모든 사람이 신으로 삼고 싶지 않는 모습의 그 십자가가 세상의 멸망을 당할 자들에게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구나. 무엇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연말 되니까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 아 이제 그 말이 조금 이해 되었습니다 이러더라고, 십자가의 도 로마에 처형을 당하고, 유대교에 처형을 당한 모든 사람이 신으로 삼고 싶지 않는 모습의 그 십자가가 세상의 멸망을 당할 자들에게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구나. 우리 부모가 지질이도 못나고 자식이 원하는 것 하나도 해주지 못하는 그 부모가 우리를 위하여 그런 것을 아는 자에게는 그 부모의 못남이 나에게 능력이 되는 거에요. 멸망할 자식에게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부모의 행위가 된다고요. 왜 교회가 사람 못 만드는가, 사람은 뭔가, 아셔야지요.
여러분 사람은요 말라기 한번 보세요, 구약 성경 맨 마지막입니다 말라기 1장 제가 읽을게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고 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면은 내가 이렇게 가난할 수가 있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면 내가 이렇게 병들 수가 있나, 내가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나,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이러는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6절에 보세요,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목사와 장로와 권사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주인을 공경하는데,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말라기 시대 교인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이 시대의 목사들이 장로들이 권사들이 자기는 하나님을 공경한대, 그런데 뭐라는 가 하면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이래요. 그 다음에는 내가 주인인데 주 하나님 지으신 하는데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이래요. 왜 이런 말씀을 하는가, 왜 이런 말씀을 말라기가 하는가, 2장 10절을 보세요,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무슨 말이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날마다, 왜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나님 노릇 해주는 것을 믿으라고 하는가, 이 말을 가지고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나에게 해주는 것이 뭐 있어, 이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왜 내가 이 모양으로 살아야 돼, 이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무엇이 하나님을 공경하는가,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하면은 다른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 그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는 거에요. 그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삶이라는 거에요.
8. 부활의 하나님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의 존재를 알고, 십자가를 통해서 아무런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생명을 내어 주시고 그 처절하게 수치의 십자가를 졌든 그 분이 나 사람 되라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계시하셨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이야기 할 때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해요. 맨날 하나님은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아버지 아버지라고 하라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말라기 시절에는 제사는 잘 드리면서 그 제사를 헛된 제사라고 그랬어요. 똥이라고 그래요 그 똥을 가지고 제사장의 얼굴에 분칠하겠다 이래요.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은 교회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렇게 해, 부활의 하나님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의 존재를 알고, 십자가를 통해서 아무런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생명을 내어 주시고 그 처절하게 수치의 십자가를 졌든 그 분이 나 사람 되라고.
내가 사람 되는 게 뭐냐, 다른 사람을 가족으로 여겨야 되는 이유가 뭐야, 여러분 사람은 사람이 되는 것은 타인을 가족으로 여기는 거에요. 우리가 이 세상이 왜 정글의 세상이 되어 버렸어요.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아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요 어떤 사람도 이용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나에게 이익이 될까, 손해가 될까, 머리 속에 컴퓨터가 작동해요, 그것은 짐승입니다. 짐승보다도 못한 거에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은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섬기고 도와 줄까, 그게 사람이에요. 교회에 등록을 하면은 이 사람을 어떻게 이용해서 성가대에 써먹고, 교사 써먹고, 주차 관리 써먹고, 그러면 회사 입니다 회사. 회사 면접 볼 때 이것 어디 써먹을까, 보는 거지요.
부모가 자식 낳으면서 이것 어디다 써먹을까 자식 낳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게 무슨 부모입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에 써먹을까, 종교인들이 써먹기 위한 핑계이지요. 여러분 지지리도 못난 그 십자가 모두다 섬기고 싶지 않는 그 신이 나를 위해서 그 자리에 간 것을 받아 드리게 되면은 사람을 그 은혜가 내 속에 있으면은 사람을 이용하려 안 해요. 이용 하려고 안 하는 사람은 다 사람에게 그렇게 친절하지도 안 해요. 사람은요 한자에도 막대기 두 개가 서로 바치고 있는 거에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 도와 주라고 하와를 만든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사람 노릇이라는 게 뭡니까, 아 이제 좀 사람 노릇하네, 지 몫을 통해서 공동체와 사람을 섬기고 도와 줄 때 비로서 사람 되었다 하잖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 위에 굴림 하는가, 여러분들은 사람을 보면은 저것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저 사람에게 돈 얼마나 빌리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까, 어떻게 내가 저 사람을 섬기고 도와 줄까, 그러려면은 아무도 신으로 삼고 싶지 않는 수치의 그 십자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미련하게 보는 그 십자가 종교인들의 관점에서 보면은 저주를 받을 그 십자가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신 것을 아셔야 되요. 그 십자가의 사랑을 계시하시고 부활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 거에요.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도록 교회 만드신 거에요. 정말 평생 친구로서 내가 이래 해 주고도 한번도 내가 무슨 그런 소리 안 했는데 이번에 마지막 교회하나 소개했는데 가서 자기는 하나님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안 듣고 간데, 교회 엉망진창 만들어 놨어요. 제가요 저는 그래 생각해요. 나는 하는 짓 마다 망하는 짓을 하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내내 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어요. 이 생각이 있는 사람이 인간되는 거에요. 우리 교회에 나만큼 하는 놈이 어디 있어, 사람 안 되요 괴물 되어져요. 오늘도 여러분 성령이 아니고 어떻게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그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무도 신으로 삼고 싶지 않는 그 십자가가 나를 위한 하나님이신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은 사람 되게 위함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여러분들이 그러잖아요, 뭐 안 한다 해도 앉아 있는 것만 해도 큰일이라고, 설교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요, 왜 목사님이 저 말씀 또 하시는가, 그 마음이 좀 전달 되었으면 해요. 왜 그래야 우리 교회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가면은 인간이 돼, 이런 평가를 받는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종교를 말라기 선지자의 시절에는 잡은 짐승이 똥이라 그랬어요. 그것을 네 얼굴에 분칠해 버린다고 그랬다고요. 오 거룩하신 하나님 그것 아니에요. 아멘
◈봉헌 기도◈
교인들의 피땀 자존심 상해 가며 번 돈을 주님 앞에 드린 헌금이 돈으로 보이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속에 담긴 이들의 땀과 고통이 보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받으실 제물이 되어져서 형제의 궁핍함을 보면서 도와 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신의 존재를 기도의 응답으로 확인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인하려고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 버린 바 된 아무도 신으로 삼기를 거부하였든 그 십자가의 계시된 예수님을 통한 신, 질고를 많이 아는 자, 모든 질병이 그 속에 있어서 병하나 감기 하나 치료할 능력이 없이 보이는 콧바람 하나에 홍해를 말릴 수 있는 그 분이 그렇게 낮아지심은 우리가 인간 되라고,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괴물이 된 인간들 속에 괴물인 인간이 사람 되라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주님의 이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받아 드릴 수 있는 마음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세상이 더 이상 교회를 조롱하지 않도록 사람이 교회 가면서부터 사람 되었다고, 더 이상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나 돈을 빌리려고 하는 것이나 내 목적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도와 주려고, 섬기려고 예수 믿는 교인들이 쉼과 회복이 있는 교인이 되게 하여 주시고, 세상의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그 신을 믿는 구원 얻는 자 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있음을 아는 그런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어져서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땅에서 맛보는 오순절에 주님이 이루신 그 구원사가 용인 한 귀퉁이에서 재현 되도록 오늘도 제가 복음을 전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 하고 믿겠습니까, 성령님만이 하시오니 가난한 마음 노예의 마음, 더하여 주시옵소서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기 위하여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는 그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가 사람 되라고 콧바람 하나에 홍해를 말리고 애굽의 군사를 멸할 능력이 있는 그분이 가장 연약한 자로 가장 더러운 자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창조한 자이기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오늘도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해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그 은혜의 하나님 때문에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사람을 이용해서 성공하려고 하지 않고, 주어진 본분 안에서 섬기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된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에게 천국을 맛보도록 선물로 준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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