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懲戒]2(요엘 1: 2-20)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20. 3. 26. 22:15

 

 

 

 

코로나와 하나님의 징계[懲戒]2

요엘 1: 2-20

2020 3 22일 주일 낮 예배

                                                                                                                                                  No. 461

2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4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8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9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13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14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5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16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아멘

 

● 성경에 나오는 모든 단어의 개념[槪念]은 우리의 삶의 실제[實際]에 대한 설명이다.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시편은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시며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신다.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에까지 미루지 말라.

 

우리 기독교가 언제부터 생명을 잃어 져 가는가? 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부시대부터다. 그때 교부들이 한 일이 뭐냐 하면은 스콜라 철학을 신학에 도입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의 삶의 실제고 실존인데, 이것을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기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이 하나의 교리화 되고 이론화 되는 것이 그때부터 시작이 되어졌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단어의 개념[槪念]은 우리의 삶의 실제[實際]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래요. 그럴 때에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이런 것을 가지고 죄는 원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고, 이렇게 설명도 하고, 또 때로는 설교를 하면서 그 죄에 대한 지적을 할 때에 종교적인 규범을 어기는 것을 가지고 강조를 합니다.

 

1. 우리가 범죄하고 난 이후에 인간의 세상에는 억압이 존재해요. 그 억압이 어떤 억압이 있는가 정치적, 경제적, 노동력, 종교적, 권력을 가지고 억압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진리를 알지니 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권력에서도 자유 하게 되는 에클레시아[Ecclesia]교회가 세워졌다.

 

가령 주일날이면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교회의 규례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어기면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 아래 있게 된다, 이렇게 설명을 해요. 그런데 거기에 죄 이런 것도 또 국가적인 국법에 대하여 어기는 것, 도둑질하지 말라, 사기 치지 말라, 이런 것인 줄 알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할 때에도 그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남들보다 더 잘살고 또 남들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해 버린다고요. 그런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실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죄를 말할 때에는 그 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말해요.

 

그렇게 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나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뭐냐 하면은, 우리의 삶의 샬롬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천국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은 샬롬 인데 그 샬롬이 없어지는 것이 뭐냐 하면은 억압 아래 있게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죄하고 난 이후에 인간의 세상에는 억압이 존재해요. 그 억압이 어떤 억압이 있는가 하면은 정치적인 억압이 있어요.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국민이나 약한 사람을 억압하는 거에요. 그럴 때에는 사람들이 힘이 무서워서 어느 정도 복종을 합니다. 그랬다가 야 이것 도저히 못살겠다 하면은 저항을 해요. 그런 저항이 뭐냐 하면은 밀란 이라든지, 혁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서 그 억압의 사슬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려고 그래요. 경제적인 억압도 있습니다.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회사를 운영할 때에 직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억압, 예전에는 정말 우리나라가 그랬잖아요. 잘 먹고 잘살자고 저 임금의 과중한 노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야 이것 도저히 이렇게 살기에는 너무나 힘이 든다. 또 왜 사장만 잘 먹고 잘살아 이러면은 저항이 일어나요. 그 저항이 노동운동이고, 파업이고 이런 것들이 일어나요. 그래서 지금은 기조 노동자들이 생겨 날만큼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억압 중의 제일 큰 문제가 뭐냐 하면은 종교적인 억압이에요. 종교적인 억압은 당하면 당할수록 더 복종하게 되어지고요, 그 억압에서 헤어 나오려고 노력을 하지 아니하고, 당연시 하고 운명적으로 받아 드려요.

 

그런 것들이 지금 이단들 속에 나타나는 거에요. 정말 그 이단에 빠지게 되면은 종교적인 억압에 빠지게 되면은 그 교주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면서 철륜을 거슬리고 인륜을 거슬리는 것 까지도 복종을 하면서 헤어 나오려고 하지 안 해요. 건져 내려면은 오히려 저항을 한다고요. 그래서 이 종교적인 억압이 참 문제인데 이런 종교적인 억압이 이단에게만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에요. 모든 종교에도 있고, 기독교 안에도 죽은 기독교 안에도 있다 이 말입니다. 앞에 말했든 정치적인 억압이나 경제적인 억압은요, 종교적인 억압에서 풀려 나면은 자동적으로 정치적인 억압이나 종교적인 억압에서도 풀려 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진리를 알지니 라고 말씀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는 예수님을 말씀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 하게한 것이 구원인데 어디에서 자유 하게 했는가, 구약성경을 잘못해서 죽은 종교가 된 유대교의 억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종교적인 억압을 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제사장이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권력에서도 자유 하게 되는 에클레시아[Ecclesia] 교회가 만들어 진 거에요. 그래서 교회 안에는 경제적인 억압도 없어서 가지고 있는 자들이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음으로 말미암아 핍절 함이 없는 그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샬롬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말입니다.

 

2. 성경은 하나님께서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짐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짐이 없고,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신 하나님이 오늘 코로나19가 일어난 것도 이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 제사장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재앙에서 피할 길이 없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의한 구원의 삶이 실존적으로 나타났는데 교구시대에 와서 이것을 자꾸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고 교리화 시키면서 이런 삶의 모습은 사라진 거에요.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들이 코로나 하나님의 징계라고 제가 두 번째로 말씀을 드리는데 요엘서에서 보면은 그렇게 말씀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지만은 성경을 우리는 그대로 믿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짐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짐이 없고,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신 하나님이 오늘 코로나19가 일어난 것도 이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뜻을 잘 알게 되고 이것을 이단과 같이 잘못 해석을 해 버리면은 성경을 가지고 또 다른 억압이 일어난다 말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은 요엘 시대에도 전무후무한 오늘 본문에서 그러잖아요, 이전에도 없었고, 여러분들이 이때까지 경험 해보지 못한 환란, 그 환란이 뭐냐 하면은 메뚜기의 재앙이 임하였다고, 그럴 때에 요엘이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 재앙에서 1장에 이제 말씀하기를 뭐라는가 하면은 어느 누구도 피할 길이 없다는 거에요. 거기에 보면은 늙은이들이라고 할 때에는 경륜이 많은 어른들도, 삶의 경험이 많은 자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잘 들어라. 그리고 취하는 자들 취하는 자들이 뭐냐 하면은 포도주에 취한 자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살맛 나는 사람들도 깨어 울어라 하는 거에요. 이 재앙에서 너희가 피하지 못한다.

 

그리고 11절에 가면은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경제에 활동을 하는 경제인들아 부끄러워해라. 너희들 열심히 해서 농사 잘 짓는다고 해서 부자 되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 13절에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성전에서 수종 드는 자들아 그렇게 하라.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 제사장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재앙에서 피할 길이 없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에요. 그 말이 로마서 3 23절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는 것이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세상에 실존을 말씀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단들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우리한테 오면은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어 이런다고.

 

여러분 이 말이 먹혀 들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어야 되요.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알면은 앞으로 이단들이나 아니면은 정말 복음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줄 알게 된다고 영 분별을. 그 동안에 여러분들이 믿어 왔든 그런 신앙을 탁 내려놓고요 이 관점에서 한번 보시라고요. 이단에서 6개월 동안 교육을 해서 세뇌를 시킨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자기네들에게 오면은 피할 수 있다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 공포심을 심어 주는 거에요. 그러면 정신분석 학자들이 인간의 공포심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여러분 인문 학자나 그런 분들은 현상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잘해요. 세 가지래요 첫째는 지식이 부족할 때, 사람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는 거에요. 이단의 신천지의 세뇌가 뭐냐 하면은 성경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부족했는가?

 

3. 이단들은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겁준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평안을 주러 왔다. 1세기에 그 파르티안 제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기근과 고통 사망이 엄습[掩襲]해 올 때에 배교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기성 교회에서 성경을 복음적으로 잘 가르치지 못하니까, 이단이 말하는 성경 공부에 후딱 넘어 가 가지고 겁을 낸다고. 오늘도 여러분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자꾸 보면서 두려운 마음과 공포심이 생기는 것은 잘못 가르치는 거에요. 기쁜 소식이 아니에요. 이단이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말씀을 많이 하고, 이단들은 다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겁주어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뭐라 하는가 하면은 나는 너희에게 평안을 주러 왔다. 예수 믿으면은 마음이 편안 해져요. 이것 아셔야 되요.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공포를 느끼게 하는가 하면은요 불안할 때에요, 그래서 멀쩡한 사람도 자꾸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6개월 동안 하는 일이 그런 일이에요. 어떻게 불안한가? 닥치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당겨서 생각하게 하는 거에요.

 

지금도 여러분 뭐 4월 총선이지만은 좌파나 우파나 전부 국민들을 자기 논리로 불안하게 하면은 공포심을 가지면 자기 표 찍거든요, 어찌 될지 몰라요. 그래서 너 그러면 하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불안을 조성하는 것, 이단의 장기에요. 정통 교회에서도 그러면 안 되요. 그리고 세 번째로 관계의 단절이에요. 그래서 보라고요, 천륜과 인륜마저도 단절시켜요. 부모로부터 떼어 놓아요. 왜 때어 놓는 줄 아세요, 그런 것을 가지고 자꾸 뭐 천륜 인륜적인 접근을 하는 것은 사단의 전략에 대해서 모르는 거에요. 왜 모르는가 정신과 분석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부모로부터 떼어놓아야지 애가 공포심을 가지고 그 공포심이 일어나야만이 말도 아닌 말에 넘어가게 되고, 한번 넘어가면은 저항하지 아니하고.

 

그래서 누구는 평화 궁전 지어서 그렇게 잘 사는데, 자기들은 좇아 다니면서 온갖 짓 다해 가지고 헌금하고, 경제적인 억압이 일어나지요. 또 정치적인 억압이 일어나지요. 그런 억압이 이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통 교회에도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유 하게 되었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오면 피하는 게 아니라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제가 다음주 설립 주일을 지나고 그 다음주 코로나와 하나님의 징계 3번째 말씀을 드릴 텐데 오늘은 여러분들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 아래 있다 사망의 권세 아래 있다. 요한계시록에도 제가 말씀 드렸지요, 1세기에 그 파르티안 제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기근과 고통 사망이 엄습[掩襲]해 올 때에 배교자들이 생겨난 거에요. 황제 숭배 사상으로 억압을 할 때, 그럴 때에 복음으로 그런 억압에서 피하게 하려고 했든 거에요. 정치적인 억압이나 종교적인 억압에서. 그럴 때에 적황색 말 그 다음에 뭐 청황색 말, 말 인봉 떼고 이런 것은 뭐냐 하면은 그런 억압의 시대에 복음을 전할 때에 상징과 암호가 아니면은 더 이상 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그 말들이 다 통용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는 다 알아요.

 

4. 요한계시록 6 15절에 임금도 왕족도 귀족도 자유인도 부자도 노예도 못 피한다, 어디에 숨을 생각을 하지 말라. 우상숭배에 대한 징계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는 것이 뭔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뭔가를 알아야 된다.

 

그럴 때에 또 6 15절에 가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임금도 못 피한다. 왕족도 못 피한다. 귀족도 못 피한다. 자유인도 못 피한다. 부자도 못 피한다. 노예도 못 피한다 이래요. 어디에 숨을 생각을 하지 말라.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세상에서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우리 교회 오면은 암 낫아, 우리 교회 오면은 뭐 돼, 이단하고 같은 말이에요. 이 세상은 그 어디에도 피할 길이 없는 세상이에요.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징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무엇에 대한 징계냐 이 말입니다. 종교적인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일부 목사님들은 이런 상황에도 종교적인 규율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규율을 지키는 것을 신앙의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요, 그 복음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정확하게 복음을 아셔야 되요. 그러면은 하나님의 징계는 종교적인 규율을 어기는 것이나, 국법을 어기는 것이나 이런 게 아니에요. 우상숭배에 대한 징계에요. 우리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며 살아야 되는데 우상을 섬기며 살게 되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는 것이 뭔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뭔가를 알아야 된다고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우상숭배가 뭔가? 제가 우리 교회에 그렇게 달도록 이야기 해도 못 알아야 들어요. 여러분 이 코로나 19의 이런 문제에 있어서 저는 뭐 안 걸려 봐서 모르지만은 열이 나면은 해열제 먹는 게 아니에요. 오늘 우리 김평준 장로님도 한의사지만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아야 된다고, 백신을 개발 못했기 때문에 지금 어려운 것이잖아요. 여러분 우상숭배 사망의 권세 아래 있을 때에 우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지 예수는 백신이에요. 그것을 가지고 해열제 주듯이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이런 거에요. 절에 가서 부처에게 절하지마, 제사상에 절하지 마, 해열제 주는 거에요. 부처에게 절하는 것이 왜 우상숭배인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왜 우상숭배인지, 등산을 하다가 돌탑 쌓는데 돌을 얹으면서 기도하는 게 왜 우상 숭배인지, 그 바이러스를 잡아야 되요.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볼 때 알 수 있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런 바이러스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 속에 있는 모든 억압에서 풀려 나서 자유 하게 되는 그 삶을 살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되요. 그러면 우상숭배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 인간은 누구나 신 인식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이제 기억나지요, 여러분 동물하고 사람의 차이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가 말을 할 줄 아는가 이것 아니에요. 원숭이도 도구를 사용해요. 그래서 원숭이 뼈에 구석기 도구 있다고 그게 뭐 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고, 도구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가 동물이냐 사람의 구분은 사회학적으로는 말할 수 있어요.

 

언어도 마찬가지에요. 돌고래도 휘파람으로 의사 소통하잖아요 물고기도.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신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에요.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라고 할 때에도 올바른 그리스도의 구원의 실존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은 이 사람이 신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는 거에요. 신이 어디 있어 내 주먹을 믿어라, 동물이에요. 여러분 예전에 목사님들이 우리 하나님은 누구나 다 그런다고 하면서 옛날에 스님이 대동강변 건너갈 때에 목탁을 두드리고 그 얼음판에 나무아미타불 하고 가다가 얼음이 찌지직 하니까 어이쿠 하나님 안 했느냐고, 스님도 급하면 하나님 찾는데 하나님이 진짜지,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에요.

 

5. 신 인식[ 認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성이다. 그 신이 어그러진 것이 타락이다.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정말 네가 따라오려면은 자기를 부인하라.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오늘도 여러분 교인들 중에서도 하나님 이름 부르고 예수님 이름 부르고 기도하면은 하나님을 믿는 것인 줄 알아요, 우상을 믿는 거에요. 하나님 우상, 예수 우상, 그래서 이단이 판을 치는 거에요. “신 인식” [” 認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성이에요. 그 신이 어그러진 거에요. 그게 타락이에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또 하나가 뭐냐 하면은 자기 주장이에요.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장이 있고, 원하는 게 있어요. 여러분 점점 우리의 생명이 쇠진해 가고 늙어 갈수록 원하는 것이 적어 지잖아요. 생명력이 지금은 줄어드는 거에요. 어린아이 때는 뭐 대통령도 되고 싶다가, 되고 싶은 게 그리 많잖아요.

 

그러니까 범죄한 인간,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에게는 신 인식이 어그러지면서 자기의 주장이 있는 거에요. 이 두 개가 합의를 이루면 종교가 되어져요. 합의를 이룰 때 종교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자기 주장을 종교적인 행위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가 인식된 신의 능력을 끓어 내려고 하는 것이 종교에요 요즘 개신교에서도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어요. 여러분 이런 부분 있잖아요, 내가 지금 사업이 잘 되고 싶다. 새벽 기도 하고 내가 열흘 금식 기도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종교적인 행위잖아요, 그 행위를 통해서 기도 자기 주장 원하는 것, 자기가 인식된 신하나님이라는 글자와 예수라는 글자의 신 인식이 된 사람은 하나님 예수님 부르면서 자기의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고 해요. 이게 우상 숭배의 신앙 체계에요. 그러면은 하나님의 신앙 체계 야훼의 신앙 체계가 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요.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은 자기 주장 자기의 원함이 사라져요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 하는가 하면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내가 계시한 하나님,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정말 네가 따라오려면은 자기를 부인하라, 뭐요 네가 원하는 것을 부인해라. 자녀 잘 되고 싶은 것 부인해라. 부자 되고 싶은 것 부인해라. 남들에게 네 과업[課業]차리려고 하는 것 부인해라.

 

그리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거다. 이 사람이 하나님 만났는가 아닌가는 뭐로 보는가 하면은 날마다 하나님 할렐루야 하는 것으로 아는 게 아니고요, 자기를 부인하느냐 안 하느냐를 가지고 알아요. 이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교 했지요, 여러분 부모님을 얼굴 인식을 통해서 부모님을 아는 것은 아는 게 아니에요. 얼굴보고 아 우리 엄마구나 그것은 아는 게 아이에요. 엄마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되요. 어떻게 아는가, 엄마가 나를 존재하게 했구나, 여기서부터 엄마를 알기 시작을 하는 거에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분 조직 신학적으로 체계를 잡는 것이 하나님 아는 게 아니에요.

 

6. 로마에서 처절히 처형을 당한 예수, 천하보다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구나, 이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경제적인 자유 나눔이 일어난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는 샬롬이 일어난다, 이게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할 때 하나님이 나를 천지를 창조했다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재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구나. 그리고 난 뒤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님이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멋진 부모가 아니고, 세상에 나가면 부끄러운 그런 연약한 부모이지만은 나를 천하 하고도 바꾸지 못해. 내가 오늘 이렇게 존재한 것은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내 어머니 아버지, 받을 자격 없는 나에게 낳은 자이기 때문에 베풀어 준 사랑이야. 그것 아는 것이 부모를 아는 거에요.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 해주는 그 하나님 아는 것은 부처하고 하나님을 구분하는 인식의 구분만 있는 거에요.

 

로마에서 처절히 처형을 당한 예수, 정말 못난 모습의 신이지만은 우상에 비해서 화려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신이지만은 그 신이 나를 존재해서 자기의 아들과도 바꾸지 않는 생명을 주셨구나, 온 천하보다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구나, 이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 그게 야다라는 히브리어 인데요 그렇게 연합이 되는 순간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그렇게도 옛날에 귀하고 좋든 것들이 값없이 되어져요. 옛날에는 엄마 낳았으면은 그것 하나 사주지 그것도 못 사 줄 것 낳아 가지고 뭐하느냐고 그래서 내 친구들에게 기죽게 하느냐고 이랬든 아들이 엄마의 본질을 알고 나면은 엄마가 그것 사 주려고 해도 엄마 나 필요 없어, 우리 엄마가 제일인데, 그때부터 그 아이에게는 얽어 매였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자유가 일어나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해요. 세상이 주는 평안하고는 달라요.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를 창조했다면서 하나님이 암 하나 못 고쳐, 우리를 창조했다면서 하나님 내 사업하나 못 일으켜 주어, 이랬든 인간이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은 그게 시시하게 보여져요. 하나님 한 분만 자랑하게 되요. 그 휘황찬란[輝煌燦爛]한 우상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초라한 로마에 의해서 처절히 유대교에 의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그런 죽음이신 예수님에게 주님과 바꿀 수 없다. 세상의 부귀도 권력도 명예도 그때부터 자기에게 이단에 매이지 않게 되요. 내가 만든 하나님 신에게 메이지 않게 되요. 내가 만든 예수의 신에 메이지 않게 되요.

 

그럴 때에 사람을 힘있다고 무시 안 해요. 정치적인 자유가 일어나요. 돈이 있다고 없는 사람 무시 안 해요. 경제적인 자유 나눔이 일어나요.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는 샬롬이 일어나요. 이게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거에요. 이게 코로나를 잡는 백신이에요. 예수 믿고 부자가 되었다, 나도 저 사람같이 믿어서 부자가 되겠다 해열제에요. 더 큰 병을 일으켜요 죽음의 병을 일으켜요. 코로나19의 백신 안 잡고, 해열제 먹는 순간 죽어요. 예수를 믿고 만날 우상숭배적 신앙 체계로 백신 먹는 순간 카타크리노멘 하나님의 영원한 유기당해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진리가 자유케 함을 누리지도 못하고.

 

마태복음 6 24절에 이렇게 말해요. 여러분 정말 부흥 강사들 어떻게 보면은 사탄의 자녀에요. 그 자기 그래 믿으라 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 땅에서도 부자로 살고, 천국 가면 얼마나 좋으냐고, 사탄의 속삭임이에요. 마태복음 6 24절에 예수님이 그런 그들에게 뭐라 하는 줄 아세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못 섬긴다. 스마트폰이 좋게 보이고 메이크 신발 좋게 보이는데 부모 섬길 수 없어요. 낳아 놓고 뭐하세요 해요. 뭐라 그래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지금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물신주의가 교회에 얼마나 난무해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부자 되기 위해서 예수 믿어요. 건강하기 위해서 예수 믿어요.

 

7 하나님 제대로 믿으려면 우상숭배 신앙의 체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백신으로 파괴해야 된다. 왜 우리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는가? 품삯을 당일에 주고 미루지 말라,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너에게 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느 교회같이 이단 때려 잡는다고 하면서 이단 짓 하는 교회가 생겨나는 거에요. 진짜 하나님 만나면은요 죽음에서도 자유 하게 되요. 암에 걸려도 나아도 하나님 감사, 안 나아도 더 감사, 가난하게 되었을 때 가난해도 감사, 부유해도 감사, 이제는 더 이상 가난하고 부유함이 나를 얽어 매고 불안하게 되는 것에서 하나님 제대로 믿으면 자유 하게 되어져요. 하나님 제대로 믿으려면은 우상숭배 신앙의 체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백신으로 파괴해야 되요. 너무나 해열제 우상숭배적 신앙 체계를 여호와 하나님 예수에게 갖다 붙이는 해열제가 난무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언제 세상을 심판했는가, 왜 우리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는가? 한가지 아셔야 되요.

 

왜 요엘시대에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에게 메뚜기 재앙으로 더 많은 고통을 주었는가, 우리나라가 지금 살기도 힘 드는데 왜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고통을 가져다 주는가, 이것 아셔야 되는 거에요. 뭐 교회가 깨달았고 성경에 근거해서 이야기해야지요. 여러분 이것 아셔야 되요, 백신 개발 기대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것 깨달아야 되요, 회개가 뭔지 알아야 되요. 왜 그랬는가, 하나님은 뭐 여러분 크게 부르짖으라 응답한다. 받을 때까지 구해라, 전부 종교인들이 성경을 왜곡되게 해서 여러분들을 얽어 매게 한 거에요. 성경은 시편은요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시며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신다.

 

금식하는 자의 기도를 잊지 않는 게 아니고요,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한다. 신명기에 뭐라는 줄 아세요? 신명기 강해 다했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음에 안 담아서 그렇지,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에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함으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것이 너에게 죄가 될 것이다. 코로나 왜 일어났는지 아세요? 가난한 자들이 호소할 때 없어서 하나님께 호소하니까 코로나 재앙이 온 거에요, 이 인식이 있어야 되요.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빠요, 김정은 지켜 준다면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방위비 요구해요. X이 무서워서 피해요, 더러워서 피하지. 골머리 앓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이라 봐요.

 

고도미사일이 왜 우리에게 필요해요, 방사 포 막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그러면서 그 설치비 우리에게 돈 내라 해요. 시진핑 그것 했다고 우리 무역 막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호소하잖아요. 오늘의 코로나19저는 약소국가가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호소할 수 밖에 없으니까 코로나19 온 거에요. 여러분 이 인식이 있어야 되요. 그래야 세계가 좋은 세계 되지요. 회개가 이런 회개가 일어나야 되요. 여러분 옛날 미국 인 그랬어요. 일본의 길과 독일의 길은 너무나 달라요. 코로나19 안에서 요한계시록에 말한 대로 중국은 안전했습니까? 미국은 안전해요? 일본은 안전해요? 누구도 피할 길이 없어요. 신천지 간다고 안전해요? 우리 교회 다닌다고 안전해요? 누구도 피할 길이 없어요.

 

8. 성경은 죽음을 피하는 위기 극복이 아니고, 전화위복이어야 된다.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율례와 규례를 배웠노라. 하나님의 뜻은 만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고 그랬다. 코로나19 이후에 대한민국이 없는 사람도 숨쉬는 나라가 되었네, 요엘서 주제가 그것이다.

 

국제의 정세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왜 이단이 저래서 이 난리 나게 되었어요? 그들은 그렇더라도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치인도 못 믿고, 종교인도 못 믿고, 제사장도 못 믿고, 누구도 못 믿고,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어찌합니까? 이 소리가 하나님께 들린 거에요. 이제는 우리가 물신주의에서 벗어나서 참 하나님 만남으로 말미암아 없는 사람도 기죽지 아니하고요, 약한 나라도 강대국의 눈치 안 보고요, 이런 복음의 가치관에 설 때, 코로나는 백신으로 인하여 잡히겠지만 그러면 위기 극복밖에 안 되요. 전화위복이 되어야 되요. 성경은 죽음을 피하는 위기 극복이 아니고요, 전화위복이에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율례와 규례를 배웠노라. 그 고난이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삶. 코로나19가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가 인류의 유익이 되는 삶, 그게 복음이에요. 코로나19가 우리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 4 15일 셧다운[Shut down] 해서 사라지게 하는 것, 그게 복음이 아니고요, 코로나19 이후에 대한민국이 없는 사람도 숨쉬는 나라가 되었네, 요엘서 주제가 그거에요. 우리가 역사를 보는 시각이요 복음적인 카이로스 적인 시각이 없어서 이 나라가 이렇게 갈등을 하는 거에요. 그런데 목사들이 신학을 안 하고, 인문학이나, 지금 무식하니까 이것을 못 보는 거에요.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진영논리의 문제는 선악의 분별에 대해서 사라지게 한다고.

 

진영논리가 사람에게 셋팅 당하면은요 우리 편은 선이고 상대는 악하다는 거에요. 요즘 목사들 보면 머리 아파요. 전부 말하는 것 보면 진영논리에요. 여러분 카이로스를 아셔야 되요. 왜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가? 하나님의 카이로스 뜻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한때는 박정희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잘살 수 있나, 진영논리의 시각으로 보는 거에요. 박정희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법살인 이라고 무고한 사람 전부 진영논리로 보는 거에요. 여러분 이것을 벗어나는 게 뭔가? 하나님의 뜻은요 하나님은 만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고 그랬어요. 박정희 시대, 시대 정신은 잘살아 보세 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때는 박정희 방향이 옳았어요, 잘살아야 되요. 왜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여러분 못 먹으면 죽어요.

 

사람이 죽는 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하나는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고요, 그게 암이에요. 하나는 폐렴으로 죽어요, 숨을 못 쉬어서 죽어요. 사람이 먹기도 하고, 숨을 쉬면은 사람은 살아요. 그래서 사람 사는데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한 거에요. 성경은 그것을 부정 안 해요. 우리나라 박정희 시대에는요 먹는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뭐 거기에 인권이 뭐 있고 할렐루야가 어디 있어요 교회마저도, 하나님 믿고 우리 잘살아 보자고. 시대 정신이 잘살아 보자에요. 잘살게 되었은즉 문재인의 시대 정신, 잘살아 보세 아니에요, 시계 꺼꾸로 돌리는 거에요 지금, 목사들이나 뭐 수구지요, 지금도 더 잘살아 보세 시계 꺼꾸로 박정희 시대로 돌리는 거에요.

 

9.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부한 자들을 경고하고, 사람들에게 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게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게 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도록 그렇게 회개 해야 된다.

 

지금은 디모데전서에 의해서 우리가 왜 그렇게 잘살려고 했던가, 이 질문이 교회 안에 있어야 되요. 왜 잘살아야 되는데, 왜 잘살아야 되는 시대에 잘살아 보세 시대 정신을 갖다 붙이면 안 되고요, 잘살아 보세 시대에 왜 잘살아야 되는 시대 정신을 갖다가 평가하면 안 되요. 하나님은 박정희 시대는 잘살아 보세였고, 지금은 왜 우리가 잘살아야 되는데, 그래야 코로나19같은 것이 넘보지 못해요. 디모데전서 이야기 하잖아요, 먹을 것이 있고, 마실 것이 있은즉 자족하는 것이 경건의 유익이다. 지금은 자족할 줄 알아야 되요. 오늘 아침에도 어떤 목사 뭐 교회가 뭐 이래서 내가 그랬어요, 쓴 만큼만 네 돈이야, 오늘 못쓴 돈 평생 못쓰는 거야, 누가 쓸 수 있어요, 자족이에요. 죽을 때 아이고 하고 죽지마, 지금은 왜 잘살아야 되는데,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박정희 시대는 쉬는 것도 일하기 위해서 쉬어야 되요.

 

문재인 시대는 일하는 것도 쉬기 위해서 일해야 되요. 이 카이로스를 모르고 목사들이 이편 저편 나누고 있으니까 교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어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 그랬어요. 내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목사들 부한 자들에게 마음을 높이게 하지마, 시진핑 아베 트럼프 건방 떨지마, 우리나라에 돈 없다고 건방 떨지마, 너 코로나19 피할 수 없는 재앙이야,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제가 살아 보니까요 만원 못쓰는 사람은 백만 원도 못쓰더라고, 교회 백만 원 할 때 11 10만원 못하는 사람은 천만 원주면 절대로 백만 원 11조 못해요. 제가 경험이에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 다음에 뭐라는 줄 아세요?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 코로나19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 부한 자들을 경고하고, 사람들에게 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게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게 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도록 그렇게 회개 해야 되요. 여러분 똑 같은 성경을 보았는데요, 2차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은 똑 같았어요. 성경을 믿었든 독일도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어요. 지난주에 이야기 했지만 1차세계대전에 전쟁배상금에 허덕이는 그들에게 하나님 믿으면 끝나 하나님은 우리 독일 민족 게르만 민족을 사랑하셔, 하일히틀러 내가 전쟁 배상금 안 내게 해 줄게, 박수 쳤어요. 일본 사무라이 정신으로 군국주의 대동아 평화를 기치로 내 들고 전쟁 일으켰습니다.

 

10. 인간이 만든 우상 하나님을 믿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된 그 하나님 처절하게 처형당한 그 못난 하나님이 나를 존재하게 하셨고, 나 때문에 십자가 달려 진 것을 알아서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삶.

 

그 이후의 길은 너무나 달라요. 독일은요 우리가 성경 잘못 봤구나, 나누어 주기를 즐겨 해야 되고, 너그러워야 되는데 부한 자에게 마음을 두지 안 해야 되는데, 그래서 우리가 2차세계대전에서 이 수많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정신이 동독 서독을 하나되게 한 거에요. 우리 한국에 그 마음이 교회 안에 있습니까, 똑 같은 성경을 보고도 우리는 하나님 믿어서 복 받았고, 하나님 안 믿으면 북한은 저 고통 당해, 그게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든 독일이 보는 성경 관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저항 교육 생태 교육 지난주에 이야기 했지요, 오늘 독일 보세요, 얼마 전에 유럽에 가장 큰 문제가 난민 문제였어요 시리아 난민, 물밀듯이 밀려왔어요.

 

모든 유럽이 문을 닫을 때, 독일은요 국제기구에서 20-30만 이야기 할 때, 우리는 100만 한다 그랬어요. 실제로 백 십 몇만 받았어요. 그들을 받는데 쓴 돈이 16조에요 왜 1차세계대전 이후에 성경을 잘못 봤거든요. 성경을 눈 씻고 봐서 우상숭배적 신앙 체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고 나니까 하나님 만나고 나니까 그 돈을 기꺼이 지불해서 독일 경제의 밑바탕이 되고 있어요. 누가 독일 경제 근로자에요, 난민들이에요. 언젠가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스페인이 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네델란드가 왜 세계를 지배하고, 오늘의 미국이 왜 생겼는가, 성경적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되요. 정신 차려야 되요 대한민국이 교회 목사들부터. 독일은 성경 잘못 봐서 2차세계대전 일으켰구나, 우상숭배적 신앙이 야훼 신앙인 줄 알았구나.

 

하나님 제대로 만나서 원함이 없어지니까 나누어 주기를 즐겨 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니까, 모두다 문 닫을 때 난민 받았어요. 우리나라 어때요, 통일의 주체가 교회가 되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끄러운 거에요, 제주도에 400명 예멘난민 왔어요. 저거 받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교회 난리치고, 국민 난리 쳤지요, 한 명 난민 심사 통과했습니다. 박정희 시대 때 저는 그랬으면 이해 해요. 세계 경제 10대 대국에 들었다고 하면서, 오늘도 여러분 진짜 하나님 만나면은 내 원하는 것이 없어져요. 나도 살아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교회 크게 하고 싶고, 더 많은 것 도와 주는 멋진 목사 되고 싶은 원함이 있지만은 하나님 만나고 나면은 그게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요. 죽음에서도 자유하게 되요.

 

가난한 자 무시하지 않고, 있는 자에게 비굴해 지지 안 해요. 권력 없는 자 무시하지 않고, 있는 자 대통령 앞에 가서 비굴하지 않는 목사 되요. 오늘도 인간이 만든 우상 하나님을 믿지 말고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된 그 하나님 처절하게 처형당한 그 못난 하나님이 나를 존재하게 하셨고, 나 때문에 십자가 달려 진 것을 알아서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삶, 세상 부귀 영광 쫓았든 그 죄를 회개하고 오늘의 코로나 사태가 트럼프 시진핑 아베 때문인 줄 알아서 약소국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밖에 부르짖을 수 없어서 일어난 것 알고, 작게는 이 땅의 큰 교회들이 하도 어깨 힘주니까 작은 교회 목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그 소리가 하늘에 닿은 거에요. 이 땅에 아버지 잘못 만난 유리 천장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기댈 곳 없으니까, 하나님 해서 코로나 온 거에요.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위복의 기회를 삼도록 복음적 시각으로 이 사태를 바라봐서 내가 우상숭배적 신앙에 빠져 있구나, 그래서 약소국이 미국을 믿지 못하고, 중국을 믿지 못하고, 일본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하소연한 결과이구나, 이 땅에 부모 잘못 만나서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곳 없는 젊은이들의 탄식이 하나님께 상달 되었구나, 이 땅에 가난한 자들이, 이 땅의 국민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가진 자들에게 하소연하지 못해서 하나님께 하소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내려진 재앙이라는 것을 알아서 이 재앙이 재앙 당함이 고난이라고 고백함이 유익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공포심으로 교주에게 매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평화의 복음을 따라서 하늘의 그 샬롬이 땅에서 맛보도록 선물로 준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