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懲戒]3 (요엘2: 1-17)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20. 4. 9. 13:04

 

 

 

어서돌아오오2021_02_21_4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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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3요엘 2: 1-172020 4 5일 주일 낮 예배

                                                                                                                                                   No. 463

1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3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4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5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6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7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8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9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 오르며 도둑 같이 창으로 들어가니10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11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12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13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14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15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16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17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아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약속이다. 예수님께서 오시면서 하신 약속을 믿는 것. 성경은 예언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구원사로 성경을 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으면 지금 영생을 얻게 된다. 완료형의 기도가 있어야 된다.

 

저는 성경이라는 말을 참 안 좋아해요. 어떤 느낌이 드는가 하면은 종교의 경전이라는 느낌이 좀 나고, 또 그러다 보니까 성경에서 교훈의 말씀 좋은 말씀 좋은 가르침을 받는 것 정도라 생각해요. 원래 히브리어에는 이 성경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언약서라 그럽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신앙 생활,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게 되어져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는 것이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좀 생명이 있고, 세상의 빛이 되려면은 성경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어야 되요.

 

1. 어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그가 말하는 것이 증험[證驗]이 없고, 성취함이 없으면은 그 선지자가 자기 마음대로 한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에 두려워하지 마라. 성경은 예언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구원사로 성경을 보는 것이다.

 

그럴 때에 중요한 것은 목사님의 설교는 여러분들에게 좋은 위로의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도록 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선지자들의 약속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구약이라고 그러고,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의 약속이라 그러고, 신약 예수님께서 오시면서 하신 약속을 믿는 겁니다. 그럴 때에 오늘도 정말 여러분들이 중요한 것은 그러면은 그 선지자가 하는 말이 진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인가? 아니면은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인가?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지요. 그래서 구약에도 많은 자칭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그 선지자들의 말은 성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만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은 오늘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목사님들의 많은 설교가 있고, 저도 여러분들에게 설교를 하는데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인가? 그렇지 안 해요. 정말 목사님이 진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들 속에도 있어야 되어져요. 그래서 그 분별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어요. 사단 교주 누구를 메시야 라고 그래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교주를 믿는 거지요. 그래서 그가 하는 모든 약속을 사람들은 믿어요.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정말 저 교주가 하는 말이 진짜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분별하지 아니하는 것은 정통 교회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성경으로 가르쳐 주지 안 했다 이 말입니다. 이 성경 말씀이 신명기 18 15절에서부터 22절이 이 부분에 대해서 중요한 말씀인데요, 특히 22절에는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어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그가 말하는 것이 증험[證驗]이 없고, 성취함이 없으면은 그 선지자가 자기 마음대로 한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에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말을 해요. 교주 누가 어떤 이단의 교주가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 내가 메시야 라고 말을 할 때에도 그 말에 증험이 있어야 되고 성취함이 있어야 되요.

 

그러지 아니하면은 어떤 말을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가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 말에 증험이 있다 표적이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다 이루어져, 교인 어떤 교회에 보면 그런 교인들이 많아요. 우리 목사님은 기도 하면은 안수 받으면은 이루어져, 그리고 우리 목사님은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그대로 되었어, 그래서 우리 목사님은 진짜 능력 있는 목사야, 라는 것이 아니고요, 그런 것들은 그 목사를 이단으로 만드는 거에요. 목사님의 설교는 뭐이어야 되는가 하면은, 성경에 모든 그 증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약속이 이루어지신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약속 말씀을 믿어야 돼, 이게 설교이어야 되요. 그런데 전부 우리 목사님이 증험을 가지고 성취함을 이루어진 것을 교인들에게 셋팅 시켜 놔 놓으니까 이단에게 넘어간다고요.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오늘도 예수님만이 말고 요엘서에도 보면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기록이 되어져 있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예언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구원사로 성경을 보는 것인데 이런 것은 없이 그저 성경에 좋은 말씀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을 탁 따다가 붙들고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하고, 뭐 큐티 한다면서 뭐 점보는 것 같이 하는 것 이런 것은 잘못된 신앙 이에요.

 

2. 메뚜기 재앙인데 회개하지 아니하면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있어, 여러분들 이것이 성경이 전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약속 이 예언을 왜 믿어야 되는가, 현재적인 사건이 성취된 것을 보면서 그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2장에 17절까지 내용을 읽어 보면은 참 이 설교를 듣고 읽어 보면은 지금 현실적으로 어떤 메시지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 시간은 여러분들에게 이 성경 말씀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하는 매뉴얼적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해요. 그러면은 그 내용에서 1장은 어떤 내용이냐 하면은 그 1장에 말씀은 완료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요. 2장에는 미 완료형이에요. 이런 것이 이제 신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되고,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 목사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경을 읽어서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는 거에요. 그러면 이 말씀이 완료형과 미 완료형으로 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것은 요엘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은 메뚜기 재앙이 있었다 이 말입니다.

 

엄청난 재앙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가난해 지고, 고통스러웠어요. 그럴 때에 완료형 이 메뚜기 재앙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내린 징계야! 그래서 1장 마지막이라든지 2장에도 보면은 계속해서 뭐라 하는가 하면은 회개해, 마음을 돌이켜,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그러면서 또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이 메뚜기 재앙인데 회개하지 아니하면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있어, 여러분들이 이것이 성경이 전체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다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코로나19는 이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믿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내린 징계다 이 말입니다.

 

또 저 지난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그것은 코로나19만이 아니고, 아담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숭배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재판 아래 있게 되었다, 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믿기를 시작해야 되요. 그래서 우리는 우상숭배가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는데, 왜 이 신앙의 삶을 살아야 되는가?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최후의 심판에 대한 약속 이 예언을 왜 믿어야 되는가, 현재적인 사건이 성취된 것을 보면서 그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요엘 시대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면은 이 메뚜기 재앙이 내렸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를 안 했어요. 특별히 이 재앙의 가장 중심에는 요시야 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있었다 이 말입니다. 이 요시야는 여러분 그 어머니 아달랴 알지요 이세벨의 딸입니다. 우상숭배의 표상입니다. 자기가 섭정 하려고 모든 아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그 때에 여호야다 라고 하는 제사장이 요시야 라고 이 핏덩어리를 숨겨 놨어요. 그래서 이 아들이 하나 세워 짐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왕조가 이제 유지가 되었는데,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성전을 수리하고, 율법을 준수하는데 굉장히 열심이었어요.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고 난 뒤에 이 요시야가 우상숭배로 빠지게 됩니다. 아마 이 요엘서는 그 시점에 기록이 된 것이다 이렇게 봐요. 그 때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왕에게 그렇게 하면 안 돼, 라고 이야기를 해 준거에요. 그런데 그 소리를 요시야는 듣지 아니하고, 그 스가랴를 죽여 버립니다. 그래서 그 스가랴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이 되어졌는데,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어요. 그래서 2장에는 보면은 메뚜기 재앙이 아니고, 군대 전쟁에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져 있어요. 아람 군대가 몇 명이 왔는데요, 수만의 이스라엘들이 전멸을 당하고, 요시야는 반역이 일어나서 죽어 버립니다.

 

그 죽을 때에 죽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요시야는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역대하 24장에 가면 그는 다윗의 묘실 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서 오늘도 우리가 요시야나 그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우상숭배에 빠지면 안 된다 말입니다. 그러면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정말 아름다운 구원이 우리 속에 나타나지 안 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코로나19나 이런 사건을 보면서 또 우리의 삶을 통해서 회개 해야 되요. 그래서 신앙은 회개로부터 출발을 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1 5절에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말을 해요.

 

3.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이 뭔지? 성경 언약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으면은 지금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과 구원사를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면 하나님적 삶을 살게 된다.

 

사도행전 2 38절에도 베드로가 설교할 때 뭐라 하는가 하면은 각각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으라 라고 해요. 그래서 신앙은 회개로부터 출발인데, 회개는 자기의 무엇에 대한 뉘우침이냐 종교적인 행위를 잘못한 것도 아니고요,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고, 윤리도 아니고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신앙에 대한 회개에요. 이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은 우리가 이 땅에서도 구원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마지막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해요. 다윗에 묘실에 들어가지 못한 요시야 와 같이요. 여러분들이 이 코로나19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는 말은 그러잖아요. 위기 극복 정도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되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면은 우리가 올바른 회개가 있어야 되요.

 

그러면 이 올바른 회개와 전화위복의 삶을 살아가려면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이 뭔지? 성경 언약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이 뭔지에 대해서 아셔야 되요. 우리 한국 교회가 제가 볼 때에는 너무 미신적인 요소가 많은 것은 성경을 구원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왜 믿어야 되는가 하면은 올바로 믿기 위함이에요. 지옥 안 가려고 가 아니고, 그것은 나중의 문제에요. 여러분 그러려면은 이 구원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는데, 제가 요한복음 때 다 강해를 했잖아요. 요한복음 5 24절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이래요. 그럴 때에 영생을 얻었고 할 때 얻었다는 말은 현재형이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으면은 지금 영생을 얻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의 삶에, 우리 여기에는 주일 학생들도 이 설교를 듣고 있겠지만 개념 정리가 정확해야 되요. 영생을 길 []자 생명 생[]자로 해 가지고 육체의 영생을 믿으면은 그것은 이단과 같은 거에요. 정말 무식한 거에요. 원래 성경은 한자로 쓰여 졌거나, 한글로 쓰여 진 것이 아니에요.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쓰여 져 있는데, 그 헬라어와 히브리어 조차도 헬라어 사전에는 히브리어 사전을 찾아서 나오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 개념을 하나님의 구원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적용을 해서 의미를 부여한 거에요.

 

이런 것도 알지 못하고, 영생을 육체의 영생으로 성경 봐라, 교주 믿으면은 영생 얻는다 하지 안 했나 이래 버린다고요. 또 이런 것도 알지 못하니까 신앙 생활을 뭐라 하는가 하면은 종교 생활 열심히 하는 것인 줄로 알아요. 그래서 종교 생활 잘해서 복 받는다, 종교 생활 잘 해야 천국 간다, 겨우 이런 원시 기독교로 만들어 버린다고요. 그러니까 신앙 생활이 뭔지를 모르는 거에요. 영생은 제가 이야기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그 약속을 믿고, 구원사를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면은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적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신앙인의 삶의 모습은 종교인의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 삶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요.

 

4. 우리는 이제는 사망과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와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고, 그게 영생이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아담의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를 의와 생명의 삶으로 옮겨 놓으셨다. 과거 형이에요.

 

그런 부분들 제가 다 설명한 거에요. 그 다음에 뭐라 하는가 하면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 이 세상은 이미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게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거에요. 코로나19는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진 것이고요, 그 외에 아담 이후에 이 세상에 모든 삶은 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의 삶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는 사망과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와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고, 그게 영생이에요. 이 차이를 모르니까 종교 생활, 죽은 종교 생활 해 버린다고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인 데 이것도 육체의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줄 알아.

 

그 사망은 죄와 사망의 권세, 사망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의 삶을 사는 거에요. 그게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삶이고, 그게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삶이에요.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아담의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를 의와 생명의 삶으로 옮겨 놓으셨어요. 과거 형이에요. 그래서 이미 이루어진 이것을 믿어야 되요. 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았는가, 또 여러분들이 미래의 심판의 이르지 아니하도록. 우리가 죽어서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는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의 삶이 아니고, 의와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함이에요.

 

여기에 의라는 것도 사회 정의나 종교적인 의나 윤리적인 의가 아니에요. 하나님과의 관계, 올바른 관계의 삶, 그게 생명이라는 거에요. 이것이 이 사건을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런 정체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 하려면은 이런 것 하고 같은 거에요.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전부 도께비 노름 해요. 사탄은 우리의 삶의 운명을 장난치는 거라 해서 사탄이 우리에게 병 걸리게 하고, 암 걸리게 하고, 사업 질 못되게 하고, 그래서 사탄의 권세만 물리치면은 우리의 삶의 사업이 잘 되고, 내 인생의 운명이 활짝 피고, 전부 도깨비 신안이에요. 목사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이야기라고요. 그런 말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신명기는 말하고 있어요.

 

오늘날 한국 교회에 얼마나 그런 말에 두려워서 종교 생활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신명기는 그런 말에 두려워하지 마라는데, 사단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의와 생명의 자리로 이미 옮겼다고 하는데, 그것이 성경의 역사에요. 이것을 서양의 신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면은 잘 들어 보세요. 세계2차세계대전이 1949년에 일어났어요. 그래서 나치 독일이 전 유럽과 아프리카를 점령해 갔어요. 연합군이 대항을 했어요. 그래서 이 전쟁이 한참 붙다가 언제 연합군이 디데이 우리가 뭐 흔히 디 데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영어로 디씨즌데이[Decision day], 결판이 났다는 거에요.

 

5.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삶과, 의와 평강의 삶이 뭔지 알아야 된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그런다.

 

그 결판의 날이 언제냐 하면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에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히틀러 나치는 이제는 끝장났다는 거에요. 그러나 상륙 작전을 하고도 히틀러도 살아 있고, 나치 잔당도 살아 있는데, 완전히 V day Victory day는 언젠가 하면은 1945 8 6일 히틀러가 자살을 하고, 독일이 항복을 선언할 때, 완전히 승리가 일어나는 거에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심판의 날이에요. 그러면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라는 거에요. 그러면 이 노르망디 D dady V day에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은 나치잔당 소탕 작전을 하는 거에요. 나치 잔당들이 곳곳에 있어요.

 

그런데 그 전쟁은 이미 결판이 났기 때문에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에요. 그래서 그 나치 잔당을 완전히 몰아내야만이 V day 이후에 있는 평화가 오는 거에요.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에도 그대로 있는 거에요.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귀신 노름이나 하고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우리가 경험 해보지 못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할 때 뭐라 하는가 하면은 기도를 미완료 형으로 하지 마세요. 완료형의 기도를 하세요. 하나님 나를 사랑해 주시고, 미완료 형이에요. 그러니까 불안한 거에요. 결판 Decision이 일어나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사탄의 잔당을 나치의 잔당을 파괴하지 못하는 거에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 나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료형의 기도가 있어야 되요. 2장을 보면서 이 기도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에요. 왜 한국 교회 교인들이 쓸데 없는 목사의 말에 두려워하는가 이단의 말에 두려워하는가, 구원사를 모르니까, 나치 잔당, 사탄의 잔당을 파괴해야 되는데, 이것을 파괴하지 못하니까 늘 이미 승리가 보장된 속에서도 나치 잔당이 살아 가지고 총 한번 쏘는데 거기에 승리가 보장 되었는데도 픽 쓸어 져 죽는 사람이 있잖아요. 예수 믿고도 픽픽 쓰러져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너무나 안타까운 거에요. 여러분 한가지 아셔야 되요. 그러기 위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삶과, 의와 평강의 삶이 뭔지 아셔야 되요.

 

요한복음 3 18절 다시 한번 여러분 강의를 또 해야 될 것 같아. 요한계시록도 제가 강의를 새로 한번 하려고 그래요. 요한복음 3 18절에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그래요.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죽어서 받아야 할 그 심판을 이미 지금 받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보내신 진짜 하나님을 믿게 되면은 심판 이후의 그 천국의 삶을 여러분들이 이미 누리며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 우리 교회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교회를 통하여 맛본 천국이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6. 실제적인 성취는 재림과 함께 있는 것이다. 디씨즌[Decision] v day 사이에는 우리가 맛만 보는 거에요. 왜 재림 그 천국을 바라보는가? 이 땅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며 사는 의와 생명의 삶을 살려고, 재림과 함께 완성될 그 천국을 소망 중에 바라보려고.

 

신앙 생활은 뭐 해야 되는가 하면은,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맛보며 사는 거에요. 이것도 알지 못하고, 지옥을 맛보며 사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왜 거짓 선지자의 말에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교회 와서 이 해방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된다 이 말입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다녀도 그렇게 기쁨과 평화가 없는데, 당연한 거에요. 그것은 죽음 이후의 생이 있는 거에요. 실제적인 성취는 재림과 함께 있는 거에요. 디씨즌[Decision] V day 사이에는 우리가 맛만 보는 거예요. 제가 가끔 그러잖아요. 백화점에 여러분들이 식품 코너에 가서 시식 코너에 가서 먹으면서 시식 코너에서 먹으면서 배 부르려고 하는 것은 도둑놈이에요. 왜 시식 코너에서 그 음식을 맛보는가? 사서 온전한 행복을 누리려고, 교회에서는 여러분들이 천국을 조금 맛보고는 재림과 함께 완성될 그 천국을 소망 중에 바라보려고.

 

왜 재림 그 천국을 바라보는가? 이 땅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며 사는 의와 생명의 삶을 살려고, 자 이말 참 중요해요. 그러면은 이미 벌써 받은 심판이 뭐냐 하면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은 사망은 제가 이야기 했잖아요. 하나님과 분리된 삶. 우리는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야 되는데, 내 힘으로 살려고 그래요. 그게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자의 삶이고, 그게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삶을 사는 거에요.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내 생각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며 내 힘으로 살려고 하면, 인간의 삶 속에 사망의 증상이 있다 이 말입니다. 그 사망의 증상이 뭐냐 하면 심리적인 파탄.

 

코로나19라는 것은 바이러스인데 그 바이러스에 걸리면은 자 무증상이라 하지요, 지금 사탄의 바이러스에 걸려 있는데, 사람들은 그 증상을 자각하지를 못해요. 제가 볼 때에는. 그 자각이 뭐냐, 심리적인 파탄. 여러분들이 우리 아이가 이렇게 공부를 못하면은 이것 미래가 어떻게 되겠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면은 공부를 못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에요. 이 객관적인 사실에 내가 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책임 지려고 하는 내 능력으로 책임지려고 하는 인간의 힘으로 책임 지려고 하니까 공부를 잘해야지 이 아이의 미래가 보장 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거에요. 그래 되면은 염려라는 것이 우리 속에 있지요.

 

그래서 이 염려는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염려한다는데 천만에요,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다 못삽니까? 부산상고 나온 노무현이는 대통령도 되는데, 학교 제대로 안 나온 정주영 한국 제일의 재벌도 되는데, 전부 거짓 선지자의 말에 두려워서 그런 것에 넘어가는 거에요. 여러분 아셔야 되요.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해 가지고 미래가 걱정이 되어지면은 그 다음에 무슨 생각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지금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들어갔구나, 사망과 사단의 권세 아래서 내가 들어왔구나, 하나님은 이미 결판을 내 놓았는데, 이래서 하나님이 인자와 선하심을 믿어야 되요.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 아이를 참 사랑하시는 분인데.

 

7. “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삶의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디씨즌데이를 우리에게 주셨고 이제 V day 만 남았는데 이 사이에 하나님의 그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은 우리가 뭐 해야 되는가? 사탄을 소탕해야 된다.

 

그 관점에서 내 아이를 보면은 어떤 생각이 들어요? 염려가 극복이 되잖아요. 그게 의와 평강이에요. 그래서 로마서 14 17절에 보면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행위 하는 게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삶의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하는 거에요. 그러면 평화가 생기는 거에요. 평화가 생기면은 그 다음에 보세요, 기쁨이 희락이 생기는 거에요. 내 아이가 공부를 잘못한다.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내 힘으로 내 아이의 미래를 책임 지려고 하니까, 그 사단의 바이러스가 내 심리적인 파탄을 일으키니까 우리 속에 있는 욕망 감정이 파탄이 일어나요.

 

어떤 파탄이에요, 욕심이 생겨요. 어떤 욕심이 생기는가, 내라도 열심히 해서 내 아이에게 많은 돈을 물려 주어야지, 집이라도 하나 사 주어야지, 이런 욕심이 생길 때마다, 내가 지금 사단의 바이러스에 들어가서 사망의 증상이 나에게 나타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거에요. 사탄 소탕 작전을 전부 도깨비 신앙으로 해 버리니까 이런 것을 알지 못하는 거에요. 신학적 개념과 구원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목사들도 거짓 선지자와 같이 교인들을 두렵게 만든다고요. 여러분 이 설교는요 오늘 이해 안 되거든 열 번, 스무 번도 더 들으셔서 이게 여러분들의 신앙의 셋팅이 제대로 되어져야 되요.

 

왜 욕심이 생기는가? 사탄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이에요. 사단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에요. 그래 되면은 어떻게 되는가? 인간 관계에 파탄이 오는 거에요. 어떻게 와요? 아이를 닦달 하는 거지요. 공부해. 그래 살지마. 그래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아버지는 자식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자식은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어 가지고 또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에요.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섬김의 대상의 이웃을 생존 경쟁의 대상으로 극복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고요. 이게 죄악이에요. 이런 죄악에서 회개해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나타나는 거에요. 제가 이번에 코로나19를 가지고 이야기했지요, 미국, 일본, 중국도 회개해야 된다고, 보세요 이번에도.

 

프랑스에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마스크 안 만드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탁 차단을 해 버리니까 중국에서 이것 가지고 떼돈 버니까 프랑스로 마스크 딱 수출하려고 하는데 공항에서 3배 가지고 자기 쪽으로 싹 다 가져가 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신문에 뭔가 하면은 우방도 설 힘도 없이 되어져 버렸다. 왜 없이 되어져 버렸는가? 코로나19가 하나님의 징계라는 관점과 구원사로서 이것을 알지 못하다 보니까 사탄의 잔당을 소탕하는 신앙 생활을 못하니까, 남 죽어야 내가 산다 생각하는 거에요. 예수님의 이 구원과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보세요 이런 것 알지 못하니까 뭔가 하면은 국경 폐쇄해야 돼, 그렇게 되면은 전 세계가요 경제 파탄이 일어납니다. 어떤 생각을 해야 되요? 우리만 살려고 했구나, 우리 모두가 코로나를 극복하려고 머릴 맞대어야 돼요.

 

WHO에서 강대국의 눈치만 보는 게 아니고, 진정한 코로나19를 어떻게 해서 인류가 극복할 것인가? 그런 생각은 어디에서 나와요? 의와 생명의 지배를 받으려고 하는 데에서 나오는 거에요. 안 그러면은 국경 폐쇄라든지 나만 살려고 해 버리면 다 죽는다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이미 디씨즌데이를 우리에게 주셨고 이제 V day 만 남았는데 이 사이에 하나님의 그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은 우리가 뭐 해야 되는가? 사탄을 소탕해야 되는데, 사탄의 소탕이 뭔지를 신학적으로도 정리 안 되고, 그저 도깨비 신앙으로 가지고 이야기를 해 버리니까 희한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거에요.

 

8.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언제나 이 예배 때 와서 목사의 설교는 여러분들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크리노멘 하게하는 거에요. 무엇에 대한 크리노멘 디에크리노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그 심판을 피하려는 게 아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에요. 미래가 걱정이 되잖아요. 그러면은 내가 지금 사탄 소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요. 돈의 지배를 받고 있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구나, 미완료 형으로 내가 믿고 있구나, 그래서 교회도 다른 교회 죽어야 내가 우리 교회 산다고 하니까, 한국 교회가 같이 공멸해 가잖아요. 관계의 파탄, 물질과의 관계의 파탄, 돈을 숭상하는 거에요. 돈이 있어야 내 삶의 미래가 보장 되는 줄 알아요. 천만에요. 제가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돈 없으면 죽는다고요, 돈 제어 놓고 죽는 사람 얼마나 많아요. 건강 있어야 안 죽는다고요, 남은 건강 가지고 써 보도 못하고 죽는 사람 세상에 얼마나 많아요. 착각하지 마세요.

 

구원사로 봐야지 여러분들이 명쾌한 팩트가 보이는 거에요. 이것 안 보이니까 삶이 전부 어그러지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저 지난 주 제가 말했지만 고린도전서 11장에 뭐라고 그래요,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여러분들이 언제나 이 예배 때 와서 목사의 설교는 여러분들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거에요. 크리노멘 하게하는 거에요. 무엇에 대한 크리노멘 디에크리노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살펴보게 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징계가 뭐라 그랬어요. 코로나19가 하나님의 징계이고, 여러분들이 염려하고 근심하고 욕심 부리려고 하고 돈을 숭상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언제나 이용하려고 하고, 파탄에 이르는 그것을 돌아보라는 거에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삶을 돌아보라는 거에요. 돌아봐서 이제는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평화를 누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 관계를 회복이 되어서 희락 기쁨을 누리라는 거에요. 돈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서 이제는 돈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수단으로 삶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그 희락을 누리는 삶이 신앙 생활이라는 거에요. 이런 삶을 살려면은, 여러분 용기가 있어야 되요. 무슨 용기, 주님 믿습니다, 전부 더 사탄의 매이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그랬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되는가?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것이 사탄을 소탕하는 거에요.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죽음의 권세에 대항하는 원자탄이라 이 말입니다. 교회 왜 나오는가, 죽음 겁 안 내려고, 망하는 것 겁 안 내려고 와야 되요.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이고, 그래야 인간 관계가 회복이 되고, 그래야 물질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그래야지 마음의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어요. 이런 구원사를 모르니까, 누가 여러분 죽는 것을 겁 안 내요? 카타크리노멘 하나님의 심판, 왜 믿어야 되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천국을 누리려고, 그 심판을 피하려고 가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의 소망은 앞에도 이야기 했지만, 교회 다니면서 요것 원리적인 성취 맛만 보는 거에요. 어떻게? 내 미래나 내 자녀의 미래가 걱정이 될 때마다 내가 내 자녀에 대해서 하나님 되려고 했구나,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내 마음에 평화가 왔는데, 여전히 현실에는 어떤 것이 와요, 현실에는 여전히 닥치지 않는 미래 때문에 불안하잖아요. 그냥 마음으로 믿음으로 맛만 보는 거에요. 그러나 그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재림과 함께 있을 것을 믿는 거에요. 그 믿음을 가지고 망하는 것 겁 안 내고, 죽는 것 겁 안 내야지요. 코로나19를 전부 지금 보세요, 안 망하려고 국경 차단하고, 다 차단 하면은요 세계가 공멸해 버려요.

 

우리 문 열고 같이 한번 극복해 보자고, 그래서 강대국이 잘못을 인정하고, 처음에는 코로나19나 이런 것들은 전부 동양만 있는 줄 알아, 미개한 데만 있는 줄 알고, 어깨 힘주다가 지금 미국이나 유럽이 얼마나 고통을 당해요. 여러분들이 이런 구원사로서요 현실을 봐야 되요. 왜 못 보는가, 목사가 못 보니까 그렇지요.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예수님께서 이미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우리에게 의와 생명을 주시고, 장차 재림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의 약속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믿음 속에 참된 평화와 희락의 삶을 사는 믿음의 권속들과 장차 우리가 누려야 할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도록 선물로 준 교회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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