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懲戒]5 (요엘 2: 28-32)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20. 4. 24. 02:45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5

요엘 2: 28-32

2020 4 19일 주일 낮 예배

                                                                                                                                             No. 465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아멘

 

바이러스[Virus]의 의한 질병의 확산 뒤에 하나님 은혜의 손길. 나누며 사는 삶이 의의 교사인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의의[意義]이다. 보혜사[保惠師]파라클레토스는 곁에 있는 자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 라는 말이다.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서 의료계는 백신을 개발하려고 참 노력을 많이 합니다. 백신이 개발이 되면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되겠지요. 감기와 같이 별 것 아닌 병이 됩니다. 또 정치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하여 파탄된 경제를 어떻게 하면은 회복할 것인가? 라고 생각을 해서 모든 우리 국민들에게 긴급 재난 지원금[緊急災難志願金]을 주고, 또 그 지원금을 속히 소비해서 경제가 돌아가도록 이렇게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은 우리가 코로나19의 위기가 극복이 되겠지요, 그런 것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고요, 목사님이나 또 여러분 교인들은 이것을 위기 극복 정도가 아니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아야 됩니다. 우리가 코로나19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려면은 단순히 바이러스[Virus]의 의한 질병의 확산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봐야 됩니다.

 

1. 징계로 봐야함은 위기 극복 정도가 아니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 위해서다. 맛소라[Massora]사본의 원문에 이른 비란 교사라는 말이다. 적당하게 라는 말은 의의[意義]를 가르치는 이시다. 먼저 의의[意義]교사를 주신다고 함은, 예수님은 의의[意義]를 가르치려 오신 분이다.

 

코로나19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이래 버리면은 사람들의 마음의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은 두려움을 가져다 준 종교인이나 교주의 말에 사람들은 복종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만큼 억압을 당하고 학대를 당해요. 그래서 이것은 심판이 아니고 제가 징계라는 제목으로 계속 설교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징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징계라고 하면은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더 건강하게 되고 더 복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징계라고 봐야 할 이유는 위기 극복 정도가 아니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는가, 그게 요엘서의 말씀입니다. 이 요엘서에 보면은 오늘 29절에도 그 후에 내가 또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이래요. 여기에 보면은 왜 그 후라고 했는가 하면은 지난주일 말씀 드린 대로 그 2 23절에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이랬지요.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부자 되고, 하나님 때문에 자녀가 잘 되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님 안 믿는 사람에게도 기쁨이에요.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기쁨이 하나 더 있어야 되요. 그래 되면은 부자가 아닐지라도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갔을지라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 있어야 되요.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여러분 소금이 되지 못하고, 이런 코로나19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가 있는 것은 또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의 강대국이 정말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재앙이 임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지 아니하고, 돈이나 세상의 번영 때문에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왜냐하면 우리나라 성경에는 생략이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하고 그 다음의 말이 오역입니다. 여러분들 지난주일 말씀 드린 대로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라고 번역을 해 놔 놓으니까, 사람들이 회개만 하면은 하나님께서 비를 적당하게 내려서 예전에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잘 내렸을 때에 부유하게 된 것과 같이 이런 재앙에서 벗어나서 부유하게 될 것이다 라는 신앙을 가지는 거에요. 그런데 이 말씀은 맛소라[Massora] 사본의 원문에 보면은 거기에 제가 이야기 했지요, 이른 비라는 말은 교사라는 말이라 했지요. 적당하게 라는 말은 의의[意義]를 가르치는 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 뒤에 보면은 또 예전과 같을 것이라는 말은 먼저라는 말이에요, 예전과 같다는 말이 아니고요. 왜 하나님 때문에 기뻐해야 되는가 하면은 먼저 하나님이 의의 교사를 너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은 제가 여러분들께 지난주 말씀 드린 대로 예수를 사람들은 우리 한국 교회에는 자꾸만 부자 되게 하신 예수님 우리의 삶을 잘 되게 하신 예수님을 말해요. 왜 이 오역 때문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자기의 삶이 잘 되면은 기뻐하고 이런다고요. 먼저 의의[意義] 교사를 주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의[意義]를 가르쳐 주시려 오신 분이에요.

 

2. 의의[意義]를 가르쳐 준다는 의의[意義]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게 한다는 말이다.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존재하게 하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불의라는 것은 사람이 돈을 지배하지 아니하고, 돈에 지배 받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의의[意義]도 사회의 정의의 실현, 좌파가 이야기하듯이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그런 의의 아니에요. 또 우파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의의 부자 더 잘되게 해서 낙수 효과로 가난한 사람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그런 의의도 아니에요. 여기에 의의를 가르쳐 준다는 의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게 한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왜 우리가 빈부의 격차가 있고, 이 세상이 불의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여러분들 하나님만을 의존하도록 하셨어요. 그래서 의존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신앙 생활 잘하면 복 주는 우상이 아니고요, 유대인들이 그렇게 믿었거든요.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가 되심, 너희 창조주가 되심을 가르쳐 주려 오신 거에요. 신앙 생활 잘하면 복 주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유대인들에게 신앙 생활 잘하면 복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은 너희를 존재하게 하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믿는 것이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요, 그런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사람이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도 지난주일 말씀대로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해. 이런 무책임한 삶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은 물질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는 거에요.

 

불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과 관계가 잘못되는 거에요. 물질과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돈이 많아야만이 내 삶이 안전하다는 것, 돈이 많아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것은 다 물질과 인간과 관계가 잘못된 돈에 지배 받는 삶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의한 세상이에요. 불의라는 것은 사람이 돈을 지배하지 아니하고, 돈에 지배 받는 삶을 말하는 거에요. 여러분들께 제가 말씀을 드리지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과 상관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그랬지요.

 

3. 2차세계대전 후 일본이 패망[敗亡]한 것을 일본 한 소위가 인정을 하지 않고 30년 동안 밀림에서 살았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노릇 해 주신 것은 믿음과 상관없는 사실이다. 믿지 않는 것은 일본이 패망한 것을 믿지 않는 오로다히로와 같다. 쓰고 나누는 삶이 하나님 나라의 의의이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면은 여러분들의 삶의 물질과 관계가 제대로 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을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누리고, 사람과 평안을 누리는 복된 생애를 살아가게 되는 거에요. 예전에 제가 여러분들에게도 설교를 하면서 예를 들었는데, 2차세계대전이 1945 8 15일에 일본이 항복함으로 종식이 되었어요. 그런대도 필리핀의 루방 섬이라는 그 섬 밀림 지역에는 일본군 소위인 오로다히로 라는 소위가 일본이 패망[敗亡] 당한 것을 인정을 하지 안 했어요. 받아 드리지를 안 했어요. 그래서 밀림에 혼자 남아서 1974 30년 동안 밀림에서 살았다고요. 그래서 오로다히로를 그 밀림에서 나오게 하려고 일본 사람들이 헬기를 타고 확성기로서 오로다히로 이제 천황폐하가 항복을 해서 이제는 전쟁 끝났다고 이야기 해도 오로다히로는 믿지를 안 했든 거에요.

 

나를 속여서 생포하려고 그런다고 하고, 거기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속에서 혼자 살아갔다고,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해야지 네가 나오겠나 하니까, 자기의 직속 상관이 와서 자기보고 명령을 하면 나가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일본이 그 자기의 직속 상관인 사람을 수소문해서 찾아가서 그 직속 상관이 오로다히로 이제는 밀림에서 나오라고 하니까 나왔어요. 나와 보니까 세상이 완전히 변해 있거든요. 전쟁은 30년 전에 종식[終熄] 되어져 있었다고요. 그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는 그 밀림에서 살았든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완료형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 그런 거에요.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신 것,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과 상관없는 역사적인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 사실을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고, 그냥 하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 하니까 여전히 오로다히로가 밀림에 있는 거와 같이 그 사단의 권세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저 자기가 많이 벌어야만이 내 삶이 안전한 줄 알아 가지고 돈을 쓸 줄도 모르고 나눌 줄도 모르는 돈에 지배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나중에 죽을 때에 돈 써 보도 못하고 죽는 것이 억울해 가지고 아이고 하고 죽는데, 이미 때는 늦었지요. 나중에 지옥에 가는 것은 나중에 문제이고요.

 

여러분 오늘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돈도 오늘 쓸 돈 못쓰면은 평생 그 돈은 못쓰는 거에요. 오늘 누려 보지 못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내일 누리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는 것같이 어리석은 삶이 없어요. 무책임한 삶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서도 오늘에 주어진 불량을 누리며 사는 삶. 자기를 위해서 쓸 줄도 알고,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살 줄도 아는 삶, 이것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의의 교사인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의의[意義]이다 이런 말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 드린 대로, 옆에 있는 사람을 경쟁의 대상이나, 착취의 대상이나 억압의 대상으로 안 삼아요.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그런 불의가 만연해요. 기업인은 종업원을 억압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또 노동자는 기업인을 억압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서 노사 분쟁 갈등 그게 불의에요. 그런 불의의 세상을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기업인은 노동자를 섬기며 살도록. 노동자는 기업인을 섬기면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십자가에서 이루신 거에요. 이제는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킨 거에요.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나 아니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오노다히로와 같이 아니라는 거에요. 아직 안 졌다는 거에요.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거에요. 내 힘으로 살아가야지 생존한다는 거에요. 이 밀림에서 나가면은 나는 생포되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4.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어야 풍요로운 삶 행복이 된다는 것. 의의 교사를 줌으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준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의 프리즘을 통해서 구약선지서를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여러분 정말 이 요엘서를 보면서 코로나19를 하나님의 징계로 보아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면은 내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돈의 노예로 살았구나,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웃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았구나,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요엘서의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보면은 먼저 의의 교사를 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준다고 하는 것은 그래야만이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어야만이 여러분들의 풍요로운 삶이 진짜 행복이 된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 한국이 그 동안 그저 잘 살아 보자 좀더 잘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의한 세상이 되어 버렸잖아요.

 

그래서 아버지 찬스 무슨 찬스 이런 것들이 난무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해방시켜 놓았는데도 그것을 받아 드리지 아니하고, 오노다히로의 삶을 살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받아 드리는 순간 그래서 이 사실을 받아 드리도록, 그 다음에 받아 드리게 되면은 이른 비와 늦은 비 풍요로움이 진짜 부유함이 되는 거에요. 그러면 부자는요 불편하지 안 해요. 부자가 불편한 세상이 되면 안 되요. 우리 한국은 강남에 살면은 불편하잖아요. 불의한 세상이기 때문이에요. 가난하다고 무시당하지 안 해요. 그런 것이 불의라는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셔 놓았는데 이 사실을 안 받아 드리고, 지금도 여전히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에요. 왜 그런가? 이 요엘서를 유대교는 요엘은 이 사실을 경험하지 못하고 계시로만 받은 거에요. 그래서 여기에 보면은 먼저 의의 교사를 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준다 이래 놨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예수님 안에서 경험된 사람들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복 준다는 신앙은 유대교의 신앙인데, 이 사실은 먼저 의의 교사를 줌으로 말미암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준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의 프리즘을 통해서 구약선지서를 이해해야 되요.

 

이렇게 이해하는 신학자들도 별로 없고, 목사들도 없기 때문에 복음이 실제화 되지 아니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거에요 내가 볼 때에는. 그래서 한국 교회는 보면은 유대교와 똑 같아요. 하나님의 의의가 들어 나지 안 해요 교회가. 그래서 유대교가 소금이 맛을 잃어서 세상에 부어져서 사람들에게 밟히는 거와 같이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요. 그래서 저에게도 문자가 왔는데 카톡이 왔는데 이래 왔더라고, 코로나19를 통해서 깨달음 열 가지 이래 가지고 하나는 뭐냐 하면은 유럽이 생각보다는 선진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이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뭔가 하면은 종교는 한 명의 사람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종교는 죽은 종교를 말하는 거에요. 유대교와 같은 종교를 말하는 거에요.

 

5.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함으로 말미암아 물질과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우리의 부유함이 되게 하시려고 오셨구나. 보혜사[保惠師] 파라클레토스 라는 말은 곁에 있는 자라는 말로서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 라는 말이다..

 

루방섬에 있는 오노다히로의 신앙과 같은 거에요. 진짜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믿음으로 물질과 관계가 올바로 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면은 한 명의 생명이 아니라, 온 세계의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종교가 되는 거에요. 이것을 어떻게 보는가? 의의 교사 지금 요엘은 의의 교사가 예수님을 경험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고, 그냥 의의 교사를 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준다고 그랬다고.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 믿는 신앙 이기 때문에 아 요엘서가 말씀이 예수님의 관한 말씀이구나. 그런데 왜 예수 믿는 사람들 삶의 하나님의 의의가 안 들어 나는가? 유대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프리즘으로 요엘선지서의 말을 보지 아니하고, 좌파 우파의 생각이라든지 기복적인 신앙으로 죽은 종교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라고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된다고요. 이 사실을 받아 드려야 된다고, 이 설교를.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함으로 말미암아 물질과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부유함이 진짜 부유함이 되게 하시려고 오셨구나. 그것을 이루신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만이 아니고, 이 사실을 믿도록 경험하도록 그 후에 예수님께서 이루시고 난 이후에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한 거에요. 오노다히로에게 그 직속 상관이 와서 명령을 하듯이, 성령님이 와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깨닫게 하신 거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이래요. 왜 그런 줄 아세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셨을 때에는 시공의 제한 속에 계셨어요. 그래서 예수님과 같은 시공에 있는 사람에게만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요.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어 준다. 보혜사[保惠師] 파라클레토스 라는 말은 곁에 있는 자라는 말로서 예수님을 말씀하는 거에요.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 라는 말이에요. 성령님은 이시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영이신 성령님은 시공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의 심령 속에 거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의 심령 속에 거해서 우리 각자 각자가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때에 임마누엘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떠나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라고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거에요 성경은.

 

요엘은 그 후에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준다는 말이 어떤 사건인지는 모르지만은 우리는 이것이 오순절의 사건임을 오순절에 예언대로 일어난 것을 우리는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오순절의 사건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이해를 해야만이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이 나온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이 있는가 없는가, 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며 사는가? 요한복음 5 39절에는 그러잖아요. 너희가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영생이라는 말을 제가 하나님적 삶이라고 그랬지요. 너희가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려고 성경을 읽는데, 이 성경이 나에게 대한 말인 것을 알지 못한다.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6. 사도행전 1 4절과 5절에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다. 권능을 받고 라고 이야기할 때 그 권능은 두나미스[Dunamis]라고, 두나미스는 영어로 다이나마이트[Dynamite]의 어원[語源]이다.

 

유대인들이 복 받기를 원하는데, 지금 요엘서에 이 말씀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인 줄 알지 못하니까, 회개해서 부자 되어 가지고 잘 살려고 한다고. 그렇게 이해 해 버린다고요.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적 삶을 살게 되면은 성령 받으면은 내가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사람이 되어서 이제는 돈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삼아서, 우리나라가 기업인들은 노동자를 섬기려고 그러고, 노동자들은 기업인을 섬기려고 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요. 그것을 이루어지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신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성령에 대한 예고를 하시면서 또 부활 승천 하실 때에 누가복음 24 49절에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힐울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라.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누가복음의 후편인 사도행전 그 중간에 요한복음이 있지만은 원래 성경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일편 이편이 함께 있는 거에요. 사도행전 1 4절과 5절에도 보면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기다리면서 누가복음 14장에 가보면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명령을 따라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자들과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고요.

 

그런데 이 말씀도 하나님 일 하기 전에 성령 받아서 능력 받아서 하나님 일 해야 돼, 이래 버린다고요.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하니까, 또 사도행전 1 8절에 보면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이야기 하지 안 했나, 성령 받아서 능력 받아서 일 해야 돼, 전부 자본주의적으로 성경을 보는 거에요. 구원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말씀이에요. 여러분 거기에 사도행전 1 28절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이야기할 때 그 권능은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두나미스[Dunamis]라고, 두나미스는 영어로 다이나마이트[Dynamite] 어원[語源]이라고.

 

다이나마이트의 하는 일이 뭐에요? 낡고 잘못된 구도심[求道心]을 다이나마이트로 파괴[破壞]하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멋있는 도시로 재건하잖아요. 성령이 오시면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래서 돈의 지배 받는 삶, 돈의 노예가 되는 삶, 그래서 상대방을 자신의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며 이김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 낡아빠진 가치관을 파괴하게 된다. 실제로 베드로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뭐라고 그랬어요, 나를 오른편 왼편의 자리 다툼 했다고, 오늘날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장로 되는 것, 장로 집사 목사가 계급인 줄 알아요. 장로가 되었어도 수석 장로는 높은 줄 안다고, 성령으로 인하여 파괴가 일어나지 안 해요, 낡아빠진 가치관에 대한.

 

그래서 질서가 예전의 질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지요. 힘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지배하는 질서, 성령이 임하시면은 그 낡아빠진 것이 파괴 되어지고 뭐로 되는가 섬김의 가치관, 왜 우리기 이 세상이 불의한가?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안 해요. 저 어제 우리 최집사님 아들 강현이 결혼식 할 때에 사진사가 와서 그러더라고, 목사님 주례 길게 할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짧게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획 표정이 밝아 지더라고, 그런데 내가 주례는 딱 3분 했어요. 그러니까 장전도사가 들으니까 뒤에 있는 하객이 대박 이러더라고 ㅎ ㅎ 3분 동안 내가 뭐 했는가, 하나님이 사람이 독처[獨處] 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서 하와를 만들어서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면서 돕는 배필이라 했다고요.

 

7.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큰 자이고 그것이 귀한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昇天] 하심에 명령을 따라서 이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 할 때에 사도행전 2 1 3절에 보면은 오순절에 이르매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니 각 사람 위에 보였다라고 한다.

 

타락한 인간은 도움을 받으려고 결혼을 하는 것, 그러면 불행이 시작이 된다고, 성령 받고 은혜 받으면은 도와 주려고 결혼을 한다고, 그러면 행복이 시작이 결연[決然]이 된다고 끝 이랬어요.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가치관 속에서 남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높은 자리인 줄 알아요. 가치의 전도에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큰 자이고 그것이 귀한 거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섬김을 받습니까, 자식에게 종 노릇 하는 거지요. 목사가 교인의 섬김을 받아요, 목사가 교인의 종 노릇 하는 거지요. 장로가 교인을 지배해요? 장로가 교인의 종이 되지요. 종이 되면서 야 내가 참 큰 자이구나 귀한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성령이에요.

 

그게 언제 일어났는가? 오순절의 사건 속에,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 요엘은 그 후에 내가 만민에게 내영을 부어 주려고 그랬고, 사도행전 2장에 와서 보면은 예수님의 승천[昇天] 하심에 명령을 따라서 이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 할 때에 사도행전 2 2절에 3절에 보면은 오순절에 이르매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니 각 사람 위에 보였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 말씀도 성령 받으면은 불 같은 불덩이 체험을 하게 되고, 그러면 사람이 달라지고 능력 받게 돼, 목사 되고 하나님의 일 하려면 선교사 되려면은 이런 성령 받아야 돼. 전부 제국주의적 성경 해석이에요. 물론 그것은 주관적인 체험이 있을 수도 있어요.

 

내 아버지도 용문산 기도원에서 그 체험하고, 어모면 면장에서 목사로 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은 주관적인 거에요. 객관적인 진리는 뭐냐 하면은 여러분 오순절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고,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각 사람에게 보였다는 것은 지금 오늘 여기에 요엘서에 보면은 30절에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내가 만민에게 내 영을 부어 주는데 내 영을 부어 주는 것에 대한 이적이 뭐냐 하면은, 표적이 뭐냐 하면은 증험이 뭐냐 하면은 오늘 하늘과 땅에 베푸는데,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는데 이 말씀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고 바람 같은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각 사람에게 임한다 라고 표현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치는 것하고 같은 거에요.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치면은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느냐 말입니다. 손가락을 보는 사람은 성령 받으면 불 받는다고 그러는 것이고,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달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에 그들이 기도할 때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들 속에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사람들이 기존의 가치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구나.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되었어요? 사도행전2 42절에 가보면은 모이기에 힘쓰고 서로 떡을 떼고 사람들마다 저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이러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더라.

 

8. 하나님의 의의가 회복되지 않는 유대교에 예수님이 오셔서 의의를 가르쳐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예전에 가지고 있든 가치가 파괴 되어서 새로운 질서의 에클레시아 교회가 탄생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신 것은 구원사의 사건이다.

 

이런 일이 사도행전 2장에 실제로 일어난 것이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요엘서의 예언대로 되어 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건 이후의 우리는 안다는 거에요. 요엘은 이 사실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계시 받은 대로 써 놓은 거에요. 그래서 요엘이 계시 받은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속에 이 사이에 있는 유대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회개하면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준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의 의의가 회복되지 않는 유대교에 예수님이 오셔서 의의를 가르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가지고 있든 가치 그게 파괴 되어져서 새로운 질서의 에클레시아[Ecclesia] 교회가 탄생되게 된 거에요.

 

여러분 이럴 때에도 오늘날도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 라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되는 말이에요. 신학자들 속에도 이런 것 몰라요. 구원사의 사건과 신앙의 차이를 아셔야 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게 하신 것은 구원사의 사건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릴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아버지 되게 하신 그 사실을 우리의 삶의 적용하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에요. 그런데 필리핀 같은 데는 고난 주일이 되면은 자기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재현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것은 구원사와 신앙 생활에 대한 구분이 없는 거에요. 지금도 눈물 빼게 하는 것은 고난 주간이에요.

 

구원사의 사건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재현해야 하는가 하는 신앙 생활에 대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그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얼마나 아프셨겠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구원사의 사건으로 알지 못하면은 구원사는 단회적 사건이에요. 신앙 생활은 그 단회적 사건을 연속되게 하는 거에요. 하나의 유명한 조직 신학자 바빙크[Bavinck]가 하는 이야기와 같이, 여러분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구원사의 사건을 재현한다고, 초대 교회 봐라, 모두다 재산을 팔아 가지고 사도의 발 앞에 갖다 놓아서 핍절한 사람이 없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 안 되었나.

 

오늘도 성령 받은 여러분들은 재산을 팔아서 자기 것을 여기지 말고, 목사의 발 앞에, 교주의 발 앞에 갖다 놔서 우리 가운데 핍절한 사람이 없게 하자. 그게 공산주의이고 그게 이단이에요. 공동 소유. 그런 것들은 누구만 좋게 하는가? 교주만 좋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지금 누구좋은 거에요. 평화궁전 이라고 엄청난 궁전에 살면서 교인들은 쪽 방에서 날품 팔아서 사는 이런 일들기성 교회도 공동 소유로 보면은 이단과 같은 거에요. 구원사의 사건 단회적인 사건을 이해 못해서 그런 거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교회에 바치는 것을 소유권에 바치는 것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들 자신이 교회에요. 사용권을 바치는 거에요. 같이 사용하는 것이지, 같이 소유하는 게 아니에요. 이것이 좌파와 공산주의와 성경의 차이라 이 말입니다. 좌파나 공산주의는 이단과 똑 같은 거에요. 공동 소유라는 거에요, 초대 교회가 안 그랬나 이러는 거에요. 볼셰비키[Bolshevik]가 그런 대에서 나왔고, 레닌과 마르크스가 이런 생각 속에서 성경을 보면서 해석한 거잖아요. 구원사의 단회적 사건과 그것이 어떻게 연속되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거에요.

 

9. 내가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다. 왜 불의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람들마다 물질과의 관계가, 인간관계가 잘못 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 자기 이상 비전[Vision]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진심으로 부자들이 존경 받는 그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삶이에요. 그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기에 보면은 내가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장래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자살한다고, 왜 장래 희망이 안 보여요? 불의한 세상이기 때문이에요. 왜 불의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 되어서 사람들마다 물질과의 관계가 잘못되고 인간관계가 잘못 된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찬스 없는 자들은 미래는 희망이 없는 거에요. 그런 사회에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새로운 공동체 전혀 가치관과 질서가 다른 이 세상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안 했든 교회의 공동체를 통해서 젊은 사람들이 미래의 비전이 있기 때문이에요. 힘차게 살아가요.

 

늙은이는 꿈을 꾼다. 이 말이 뭐에요? 늙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만큼 이제는 내가 편안하게 사는 꿈을 꾸는 거에요. 내가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갈까, 이 걱정 안 하는 거에요.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 어떻게 해야 내가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 것인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상 비전[Vision]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 삶을 살아가는 거에요. 우리 사회가 한국 교회가 오늘 천만이라 이야기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집니까? 교회 나이든 사람들이 수고에 대해서 누리는 꿈을 꾸는 사람입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먹고 살 것인가, 일거리를 찾는가, 비전을 따라서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의 사람으로 만드는 교회인가, 왜 그래 못하는가? 유대교와 같이, 문자 주의에 빠져서 그래요.

 

요엘은 이 말씀이 뭔지를 몰랐어요. 왜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사건 전에 받은 계시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요엘을 보면은 이런 게 보이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을 받아야지 그 성령 받은 사람인데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아버지 라고 하는 것하고, 아바아버지 라는 말이 뭡니까?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아버지는 자식에게 철들면은 깨닫는 게 뭐에요? 내가 아버지에게 잘나서 이렇게 사랑 받은 게 아니구나! 자격 없는 나에게 조건 없이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 할 때에 비로서 인간이 되는 거와 같이, 하나님 앞에 그 사랑을 알게 되는 거에요.

 

10. 바울은 나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빚진 자다.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은 너희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너희가 나의 구원의 채무자가 아니고 내가 너희의 구원의 채무자다.

 

그래서 여러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하고 다른 것이 거른 거에요. 교회는 베풀면서 섬기면서 채무자가 되는 거에요. 그게 바울이에요. 나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빚진 자다. 저 사람들이 없으면 내가 사도도 될 수 없었고, 구원도 받을 수 없었는데,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 자녀되고, 사도되게 했으니까 내가 복음을 전해서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은 너희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너희가 나의 구원의 채무자가 아니고 내가 너희의 구원의 채무자다. 성령으로 인하여 두나미스 가치의 파괴가 없이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겠어요.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해 주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그것이 Noblesse Oblige 잖아요. 교회는 섬기고 남에게 나누어 주면서 빚진 자와 같이 채무자와 같이 을의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부른 찬송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이런 것이고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감사해, 이런 찬양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전부 뭐 구원을 찬양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은혜가 하나도 없는 찬양들, 자기 의를 강화하는 복음 찬송만 난무하니까, 교회가 남들보다 더 부자 되어 가지고 갑 질 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교 드렸지만은 은혜 받으면은 을질 하려고 부자 되요.

 

그런 사람은 마지못해서 부자 되지요, 절대 부자 되려고 안 해요. 저는 교회 다니면서 부자 되려고 애쓰는 사람 보면은 그 마음의 중심에 은혜가 없기 때문에 갑 질 하려고 하는 거에요. 목사님에게 갑 질하고, 다른 교인에게 갑 질하고, 내가 내다라는 것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 사람에게 돈 주면은요 자기 불행 해지고 교회 불행 해지고, 다른 사람 불행 해지고, 결국에는 그런 사람 지옥 가고, 을질 하려고 부자 되려고 하면은 부자 되는 게 두려워요. 을질 하려고 목회 하려면 목사 되는 게 두려워요. 을질 하려고 대통령 되고, 국회의원 되려면은 국회의원 되는 게 두려워요. 왜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져 버려서요.

 

코로나19에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저와 여러분들 속에 임하여서 이제 교회가 젊은 사람들이 장래 일을 말하며, 나이든 사람은 꿈을 꾸며, 우리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좇아 살아가는 이런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 그러려면은 구원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성경을 봐야 되요. 우리 한건영 선생이 어메이징 그레이스 찬양 하겠습니다. 허밍으로 하시든 뭘 하든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 시간 여러분들 속에 임하여서 이제는 교회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 되어서 여러분들이 초대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소유로 삼으시되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면서도 갑 질 하지 않는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부끄럽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칭송 받는 그런 귀한 역사가 있는 코로나19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만민에게 부어 진 성령으로 인하여 기존의 가치와 질서가 무너져서 영의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을질 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두렵고, 을질 하는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두렵고, 을질 하는 장로가 되는 것이 두렵고, 을질 하는 사회적인 성공이 두려워 진 천국에 다시 만날 거룩한 무리들과 이들이 모여서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보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와 지구촌 곳곳에 주님이 세우신 참된 에클레시아[Ecclesia]위에 주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