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懲戒]6 (요엘 3: 1-21)담임목사 김종웅

차주희 2020. 5. 1. 01:21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懲戒]6

요엘 3: 1-21

2020 4 26일 주일 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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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19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아멘

 

심판과 징계는 많은 차이가 있다. 징계[懲戒]가 없으면 사생자다. 이제는 갚아 줄 것이다. 그래서 시온에 여호와가 계시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진리의 예수님을 알게 되면은 자유 함을 얻는 영생을 얻게 되는 하나님적 영원한 존재의 생애를 통해서 자유를 누리게 된다,

 

우리가 이 전에도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든 코로나19의 재앙을 맞이하면서 제가 요엘서를 여섯 번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이 신앙인과 비 신앙인의 차이를 그저 교회에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이력서에 기독교라고 쓰느냐 안 쓰느냐 차이로 본다면은 굉장히 피상적으로 형식적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아주 내면은 뭐냐 하면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세계적으로는 코로나19와 같은 사태[事態]도 있는가 하면은 여러분들의 삶에는 희로애락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잖아요. 그 사건을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신앙인이고, 사회적인 통념[通念]이나 자기의 삶의 경험에 의해서 가치 판단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1.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짐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되지 않는다. 공포심은 하나님이 주는 마음이 아니다. 코로나19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재앙이다.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율례[律例]와 규례[規例]를 배웠노라.

 

본질적인 이런 가치판단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 해보지도 못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그런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짐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일어납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가 왜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 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 그래요.

 

또 기성 교회에도 하나님의 징계를 심판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은 사람들 마음에 두려운 마음 공포심이 생깁니다. 두려운 마음 공포심은 하나님이 주는 마음이 아니에요. 그 마음이 들면은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은 그 마음을 들게 하는 주체자가 목사이든 교주이든 그의 말에 사람들은 복종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사람이 추구하는 위대한 과업에는요 성취가 일어나지만은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오히려 그런 신앙은 강하면 강할수록 그 신앙이 자신을 억압하고 학대해서 정말 엄청난 힘든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코로나19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재앙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든 거에요.

 

그런데 이 재앙이라고 이야기할 때에 왜 그 재앙이라고 생각해야 되는가 하면은 제가 이야기 했지요.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일들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그 일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에요. 그러면 인문학이 됩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제가 이야기 했지요. 의료계에서 백신을 개발케 함으로 말미암아 그 코로나19는 정복이 되고 위기를 극복하게 될 거에요. 또 정치권에서는 재난 지원금[災難志願金]을 풀어 가지고 사람들에게 돈을 소비하게 하고, 그러면 경제가 돌아가서 지금 여러 가지 경제적인 파탄을 회복하는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그런 것은 인문학적으로 사람이 하는 일들로 문제의 해결을 가져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개인의 삶에서도 그 문제를 신앙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인문학적 접근이에요. 신앙의 접근은 뭐냐 하면은 그 일을 통해서 우리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야 되요. 그러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려면은 하나님의 징계라 생각해야 된다, 이런 말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러잖아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한다. 징계[懲戒]가 없으면은 사생자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버린 자다 라고 말을 해요. 시편에도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율례[律例]와 규례[規例]를 배웠노라. 그래서 고난 당하는 것이 나에게 유익이다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2. 예루살렘 성전에 기물을 빼앗아서 너희 신전에 가져간 것, 하나님이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고, 그런 것들을 갚아 줄 것이다. 영생에 대한 이해.

 

그래서 이런 것을 징계[懲戒]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저 사람 하나님 앞에 잘못해서 뭔가 하나님에게 매 맞아, 이렇게 판단하고 정죄하거나 아니면은 죄책감에 싸이는 것이 아니고요, 그 징계[懲戒]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뭔가? 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러면은 이 전의 삶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놀라운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코로나19 사태에 전 세계가 여러분 이런 변화가 있어야 되고, 또 우리나라에도 이런 변화가 있어야 되고, 여러분들의 삶에도 새로운 변화가 있어서 이전에 삶하고는 완전히 다른 복된 생애를 살아가는 계기로 삼으라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다 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요엘서 3장에도 보면은 여러분들이 읽어 보시면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이런 이야기 해요. 에돔아 그 다음에 블레셋아, 이런 이야기 하면서 뭐라 하는가 하면은 너희들이 유대인들을 잡아서 인질로 잡아갔고, 예루살렘 성전에 기물을 빼앗아서 너희 신전에 가져가고 이랬는데, 하나님이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고, 그런 것들을 갚아 줄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보습을 취하여서 칼을 만들어라.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라. 보습이라는 것은 농기구를 말해요. 생산을 위한 농기구를 취하여서 칼을 만들어라. 그래서 너희가 전쟁을 일으켜라. 그러면은 하나님이 너희를 이제는 징계[懲戒] 하리라. 여호사박 골짜기도 완전히 멸하게 되리라.

 

이제까지는 너희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힘들게 해도 내가 갚아 주지 안 했는데, 이제는 갚아 줄 것이다. 그래서 시온에 여호와가 계시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라고 말을 하면서 요엘서를 마쳐요.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가지고 봐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할 때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은 언젠가 때가 되면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다 이래 버리면은 유대교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이루어지지 못하는 죽은 종교가 된다. 이런 말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니까,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 많습니다.

 

지금 내가 어렵게 힘드니까, 내가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고 이러는데 내가 예수 잘 믿어서 하나님에게 복 받아 가지고 언젠가는 내가 옳음을 증거하고 내 힘을 한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서 나를 들어내게 하실 거야. 전부 유대교적인 신앙 입니다. 왜 그런가? 그러면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참된 샬롬이 일어나지를 안 해요. 그래서 요한복음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했지요. 너희가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거기에 성경은 구약을 말해요. 유대교가 왜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하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자의 자유 함이나 샬롬이 그들 속에 없었는가 하면은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라고 할 때에 그 영생에 대한 이해를 지금 여러분들이 말하는 제가 이야기한 대로 이방인들에게서 구원을 받는 삶을 영생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단은 육체의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영생이라고 생각해요.

 

3. 영생을 복을 받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왜곡된 신앙의 출발이다. 하나님적 삶, 영원한 존재로서의 삶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이야기하면은 우리나라도 중요하지만 전세계의 인류의 운명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영생이다.

 

우리 한국의 교인들은 왜 성경을 연구하고, 큐티 하고, 와서 설교를 듣고 신앙 생활 하는가 하면은 영생을 복을 받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전부 왜곡된 신앙의 출발입니다. 영생이라는 말은 이번에 코로나19를 통해서 여러분이 이런 개념을 정확하게 가져가야 되요. 하나님적 삶, 영원한 존재로서의 삶을 말해요. 여러분들이 영원한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은 환경에 상관없는 자유와 샬롬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제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게 자유에요. 우리나라 보수의 자유는 반공[反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안 해요. 우리를 얽어 매는 것에서 많은 노임을 받아요.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면서 왜 불행하고 힘든가, 돈의 매여 있는 사람, 명예[名譽]에 매여 있는 사람, 전부 자신에게 매여져 살기 때문에 자기도 힘들고 남도 힘들은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예수님을 알게 되면은 자유 함을 얻는 영생을 얻게 되는 하나님적 영원한 존재의 생애를 통해서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런 말이에요. 정말 여러분 이 말씀을 따라서 이 코로나19 이후에 요엘서 이후에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주신 자유와 구원을 만끽하며 살아야 되요. 제가 그래서 하나님적 삶이라는 것은 뭐냐 초 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했잖아요. 여러분 가정 생활의 비유를 하면은 제일 이해가 쉬워요. 부모는요 부모의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죽도록 고생하고 힘들게 해 가지고 자녀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해요. 이런 사람을 누가 불행하게 하겠어요.

 

여러분들의 가정이 건강 하고 샬롬이 여러분들의 삶의 샬롬이 있으면은 가정이 든든히 서야 되는데 가정이 든든하게 서려면은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가지면 되요. 자녀들은 언제나 자식끼리 비교하면서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을 해요. 그러나 부모는 자기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게 가정이에요. 그럴 때 가정이 든든히 세워 지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거에요.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 영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적 삶이라는 것은 창조주의 삶, 부족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목사가 되어 보면은요 자기네 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더 중요해요.

 

저는 이 코로나19를 통해서 우리 교인들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야 참 성숙되어져 가는구나, 이제는 교회가 제대로 세워 져 가는구나, 여러분들의 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삶이 중요해요. 세계적으로 이야기하면은 우리나라도 중요하지만 전세계의 인류의 운명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영생이에요. 이번에 여러분 미국이나 강대국들이 전부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다가 코로나19때문에, 우리나라만 잘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끼잖아요. 성경에서는 영생을 얻으려고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적 삶을 앎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나를 얽어 매는 것에서 자유 하게 되는 것. 사단은 우리에게 사기치고 있는 거에요.

 

4. 요엘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받은 예언이기 때문에 자기가 받은 말씀이 뭔 내용인지 모르고 기록을 해 놓은 거에요. 2장의 미래형은 전쟁에 대한 묘사이고,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너희를 이제는 징계가 아니고 심판한다는 것이다. 심판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회개하라는 것이다.

 

돈만 많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면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방임이에요 사탄에. 자기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거에요. 우리가 너무나 어릴 때 가난하게 컸기 때문에 내 자녀에게는 내 가난을 경험 안 하려고 돈 물려주는데, 돈 물려주어 보세요 자녀에게, 자녀 망치고 가정 망치고, 내 생애 망쳐요. 여러분 돈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에게 돈을 주어야지 안 그러면은 자기도 망치고 모두다 망친다고. 권력을 다스릴 수 있는 나라가 가져야 되는데 다스릴 수 없는 대통령이 가지니까 온 세상이 시끄럽잖아요. 자기도 결국 안 좋을 거에요. 영생을 얻으려고, 한마디로 이야기하면은 가정에서 부모의 마음 부모의 생각을 가지고 살려고 성경을 읽어야 되요.

 

그런데 유대교는 이 성경이 예수님의 관한 것을 알지 못했다고, 요엘서를 예수님의 관한 것을 알지 못하니까 요엘서를 읽으면서 봐라 유대인들을 핍박했든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멸하고 갚아 줄 거야, 시온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게 할거야 이렇게 해석 해 버린다고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요엘서가 나의 관한 말씀이야, 라고 말을 한 거에요. 그래서 제가 요엘서를 강해할 때에 뭐라 했는가 하면은 요엘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받은 예언이기 때문에 자기가 받은 말씀이 뭔 내용인지 모르고 기록을 해 놓은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고 난 이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 요엘서가 예수님의 관한 말씀인가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요한복음 5 39절의 말씀에 의미도 알게 되었다고, 그러면은 오늘도 여러분 이방인들에게 보습을 취하여서 무기를 만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그 뜻이 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요. 왜 하나님께서 이제까지는 안 갚아 주는데 이제는 갚아 주리라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이라는 프리즘[Prism]을 통해서 볼 때 이 말씀이 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된다고요. 그 말씀을 제가 요엘서를 통해서 말씀할 때 했잖아요. 요엘서 1장에는 메뚜기 재앙이 있었어요. 그래서 요엘서 1장은 완료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말에 가장 해석이 어려운 것이 두리뭉실한 것이 시제가 우리는 분명하지 못해요.

 

완료형이라는 것은 요엘 시대에 너희가 지금 메뚜기 재앙이 왔지, 그래서 너희들이 먹을 것이 없는 경제적인 파탄이 왔지,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야, 심판이 아니고 회개해, 그래서 이 경제적인 파탄이 위기 극복이 아니라, 전화위복이 돼, 이런 말씀이거든요. 그럴 때에도 회개할 때에 무엇에 대한 회개인가를 아셔야 되요. 영생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개가 무슨 회개인가를 알아야 되요. 내가 종교적으로 잘못한 것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 그런 회개만 한국 교회에 난무하니까, 회복이 안 일어나는 거에요. 오늘도 이 회개가 뭔지 여러분들이 분명히 아시고 영생의 삶을 살지 못하는 죄의 대한 회개에요.

 

그리고 2장에 가보면 왜 회개해야 되는가? 이 회개의 삶을 제대로 살아야 되는 2장에 가보면은 미래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요. 메뚜기 재앙으로서 너희가 고통을 당했는데, 여기에서 회개하지 않으면은 2장에는 미래형은 전쟁에 대한 묘사에요.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너희를 이제는 징계가 아니고 심판한다는 거에요. 심판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회개하라는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살면서 사업이 안 되거나 자녀가 뭐 안 되거나 지금 우리 코로나19가 있든지 뭐가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인 줄 알고 영생의 삶으로 돌아서는 회개가 있어야 되는데 왜 해야 되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5. 왜 예수님이 의의 교사를 주는가? 전화위복이 되려면 예수님을 의의 교사로 받아 드려야 되는 것, 요엘이 예언하였든 의의 교사를 보내어 주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는 의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라 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오신다고 했다.

 

그것이 요엘서 1장부터 2 17절까지, 그래서 전화위복의 회개가 어떤 회개에 대한 말씀을 하는가 하면은 이렇게 말해요. 먼저 너희에게 의의 교사를 주고 요엘은 이 말이 뭔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는 요엘이 말씀하였든 하나님이 먼저 의의 교사를 준다는 것이 예수님인지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왜 예수님이 의의 교사를 주는가? 전화위복이 되려면 예수님을 의의 교사로 받아 드려야 되는 것, 요엘이 예언하였든 의의 교사를 보내어 주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데 그것도 예수를 믿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르치는 의의를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식으로 이해 해 버려요 유대교와 같이.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말해 버린다고. 내 억울함을 풀어 주는 보복의 하나님을 이야기 해 주니까 얼마나 자기 구미에는 맞는 이야기에요. 해까닥 넘어간다고요. 지금도 교회에 다니면은 그런 이야기 해요. 지금은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 고통 당하지요,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역전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역전시킬 겁니다. 기분은 좋은 소리인데요 구원받지 못하는 소리에요. 사탄의 소리에요. 예수님이 가르치는 의의 라는 것은 뭐라고 그랬어요 제가. 공산주의 좌파의 의도 아니라 했어요. 공산주의 좌파의 의는 부자의 것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좌파의 의에요.

 

교회가 가난한 사람 구제한다는 것은 좌파의 의의를 말하는 거에요. 예수님은 그런 것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가난한 자들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오늘날 교회가 이념에 사로잡혀서 좌파를 가르치는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파의 의의는 뭔 줄 아세요? 노블레스 오블리즈는 우파의 의에요. 남들보다 부자가 되었는데 그 부자가 되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낙수 효과 나누어 주라, 그것 우파의 의의[意義]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라면 자기 의의만 생겨요.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죄책감만 생긴다고요. 예수님이 가르쳐 주는 의의[意義]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라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오신다고 했지요.

 

관계의 회복이 뭡니까? 이 사람이 예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 천국 갈 사람인가 하는 것은 자기 힘으로 자기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아니고, 나를 존재하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삶. 내 마음에 드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고요, 내 마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은 그 하나님을 의존해서 살려고 하는 삶. 왜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되는가? 그래야지 물질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는 것은 주일에 와서 예배 드리고 날마다 할렐루야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아니고요, 그 사람이 돈의 지배를 받는 사람인가, 돈을 지배하는 사람인가, 이것을 보면 알아요.

 

6.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면 부자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수단인데 그 수단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것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요엘서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오순절[五旬節]의 사건을 통해서 프리즘[Prism]을 통해서 요엘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면은 부자가 되어도 그것 때문에 어깨 힘줄 일도 없고요, 가난해도 기죽을 일이 없어요. 왜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수단인데 그 수단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은 그것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지 안 해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보세요. 부자 되려고 예수 믿는 사람.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안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의의[意義]가 뭔지를 몰라요. 부자 앞에 권력 있는 사람 앞에 가면은 비굴 해지고, 없는 사람에게 가면은 거들먹거리고, 없을 때 기죽고, 있으면 어깨 힘주고, 전부 물질 관계가 잘못된 거에요. 자유 함이 없는 거에요.

 

여러분 물질의 관계가 제대로 되어지면은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불량에서 자기도 누릴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알고, 나눠 주면서도 그 사람에게 갑 질 안 하고, 좀 착한 일 했다고 사람들에게 거들먹거리며 자기를 드러내지도 안 하려고, 이 본질적인 변화가 있어요. 그것이 의의[意義]를 가르쳐 주는 예수님이에요. 이런 사람은 부자 되려고 경제활동 안 해요. 그냥 하나님이 주신 분량을 누리고 나누며 살려고 하니까 성공하든 안 하든 그것은 자기에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런 것이 영생의 삶이에요.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져요. 그것이 오늘 3장이라 말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어요. 하나님이 아버지 되고 우리 모두를 자녀 되게 하는 것, 여러분들이 믿음의 상관없는 역사적인 팩트라 했잖아요. 그것을 경험하도록 요엘서에는 요엘은 뭔지도 모르고 말해 놨어요.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 우리는 그것이 오순절의 사건임을 알잖아요. 그래서 요엘서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오순절의 사건을 통해서 프리즘[Prism]을 통해서 요엘서를 이해하지 않으면 유대교가 되어 버리는 거에요. 나를 핍박하는 자를 보복 해주는 하나님, 나를 무시한 자를 하나님은 보복 해주는 하나님 이래 버린다고 그러면 유대교에요. 그러면 영생을 모르는 거지요. 왜 모르는가, 요엘서가 예수님의 관한 말씀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왜 모르는가, 목사님들이 이것을 모르고 그냥 유대교와 같이 설교를 했기 때문이에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되요. 의의[意義]는 부자가 되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아니고요, 부자의 것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의의[意義]도 아니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어지면은 이제는 물질과 세상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고요, 그때 진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져요.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에 교회의 탄생이에요. 그 탄생은 제가 공동 소유 관이고, 공동 관리 라고 이야기 했잖아요.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그 삶을 재현[再現]할 것인가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그래서 이런 삶을 살라고 이야기를 구원사를 받아 드리라고 이야기 하고 3장에 뭘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제 최종적 하나님이 심판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최종적 심판이 뭔가 이것을 아셔야 되요. 최종적인 심판이 이방인들에게 보습을 쳐서 무기를 만들라 그래요. 이것을 가지고 여러분 이방인들이 지금 무기를 가지고 날 때 가지고 내가 이렇게 당하고 힘들게 되고, 교회가 핍박을 받는데 하나님은 최후의 승리를 이끌 거야, 예수를 통해서 못 보는 거에요. 유대교가 되는 거에요.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요한복음 5 39절에 의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이 말씀을 보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이런 말이에요.

 

7. 보습 농기구 무기 이것 뭐냐 하면 힘이다. 심판은 죽음 이후에 있는 게 심판이다. 이 세상에는 전부 징계하는 것은 사람 되라고. 그 심판 받지 아니하도록. 힘을 평화적으로 사용 안 하고, 전쟁에 사용하는 것은 심판 받는다. 세상은 전쟁터를 하나님이 심판해서 지옥 보낸다는 것이다.

 

여러분 보습 농기구 무기 이것 뭐냐 하면 힘이에요. 세상은요 하나님이 무엇을 심판하는가, 이것부터 정신 차리고 들으세요, 나중에 후회 하지 말고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다. 이단같이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설교를 안 들어도 되요.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설교를 가슴 깊이 세기세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이치고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 심판은 이 땅에서 내리는 것이 심판이 아니에요. 암 걸리는 것이 심판이 아니고, 사업 부도나는 것이 심판이 아니고요, 교통 사고 나서 죽은 것이 심판이 아니고요, 심판은 죽음 이후에 있는 게 심판이에요.

 

이 세상에는 전부 징계에요. 사람 되라고, 그 심판 받지 아니하도록, 그때 무엇을 심판하는가, 한국에는 자꾸 문제가 뭐냐 하면은 암 걸리고, 사업 안 되고, 뭐 하면 하나님의 심판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죽어서 지옥 가는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 신앙 생활 잘못하는 사람, 지옥 간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종교인을 만들어 내는 거에요. 오늘 이 말씀에 의하면, 잘 들으세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평화적으로 사용 안 하고, 전쟁에 사용하는 겁니다. 심판 받아요. 좀더 설명해 드릴게요.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그래서 이 세상은 인간의 세상은 전쟁터라 하잖아요. 모두다 자기 힘을 가지고 상대방과 싸워서 상대방 것을 빼앗아 버려요.

 

그래서 상대방을 억압의 대상, 굴종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요. 그래서 이 세상은 전쟁터라는 거지요. 이것을 하나님이 심판해서 지옥 보낸다는 거에요. 지금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영을 부어 주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약속하고 난 뒤에 지금 이 말씀은 왜 보습을 쳐서 창을 만들고 칼을 만들라고 하는가 하면은 이 말씀은 한마디로 그들이 강하지만 하나님이 심판한다는 게 아니고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면은 누가 심판을 받는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조그만 힘을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전쟁을 준비하는 자. 코로나19 한번 보세요, 옛날의 미국은요 힘을 평화를 위해서 사용했어요. 우리나라가 소련하고 김일성이가 합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니까 미국이 앞장서서 UN을 데리고 와서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고요.

 

지금은 미국은 무엇을 위해서 싸워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힘을 쓰잖아요. 그러니까 강대국이 코로나 때문에 이것 깨달으라고 고통 당하는 거에요. 유럽이 자국의 힘을 가지고 시리아 난민들을 막고, 옛날에는요 잘사는 기독교의 국가들은 약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 힘을 사용했어요. 자본주의 시대 가치관이 지배하면서 기독교 국가들이 자기 힘을 가지고 전쟁을 도모해요. 자기 편 안 들어 준다고 WHO 에 내든 기금을 안 내겠다고 해 가지고 자기에게 복종시키려고 해요. 하나님이 분노한다 이제 갚아 준다 이 말입니다. 그런 결정을 하고 그런 협박을 하는 정상은 지옥 간다고 믿어야 되요.

 

8. 가지고 있는 힘을 전쟁을 위해서 사용하는 자를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심판은 종교 생활 얼마나 잘 했느냐가 아니고, 내 힘을 남용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 오늘 요엘서를 마치면서 생각 바꾸세요. 주일날 예배 한번 빠졌다고 지옥 가는 것도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전쟁을 위해서 사용하는 자를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는 거에요. 남들보다 시간이 많습니까, 시간 없는 사람들 섬기는데 사용해야 되요. 섬겨 주고도 갑 질 안 해야 되요. 남들보다 돈이 더 있습니까, 그 돈을 가지고 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는데 자기의 능력으로 삼는 자를 지옥 보낸다는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요엘서를 볼 때에 자기편의 원수를 갚아 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유대교가 되어 버려요. 나를 괴롭히고 억울하게 하고 나를 무시했든 놈을 하나님은 언젠가는 멸하게 할 거야, 유대교에요. 네기 왜 힘 가지려고 하는가, 전쟁을 도모하기 위해서 하는가, 나 지옥 가지에요. 이 마음이 생겨야 되요. 여러분들이 돈만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각자 각자 나름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힘을 주셨어요. 연세가 드신 분들은 힘없다고요, 경험이라는 지식을 가지고 없는 사람을 무시할 때 하나님은 지옥 가게 만드는 거에요. 다양한 힘을 하나님은 사람들의 얼굴이 천차만별이듯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맞는 분량을 주었는데 인간은 저마다 그 힘을 가지고 전쟁을 도모해요.

 

저 어릴 때에 세계의 대결이 세계의 쇼로 바뀐 이노끼와 알리의 시합이 있었어요. 이노끼는 레슬링이기 때문에 누우면은 이겨요. 알리는 잡히면 끝나요. 둘 다 빙빙 하나는 서서 빙빙 돌고, 하나는 누워서 빙빙 돌고 하다가 끝냈어요 돈만 챙기고. 알리가 그랬지요, 이노끼 보고, 너는 누워서 돈 벌었구나, 그런 싸움이 이노끼와 알리 같은 쑈가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아요. 내가 권투 하는 것은 이 힘은 주먹이 약한 자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써는 것이고요. 이노끼 레스링의 힘은 레스링의 힘이 약한 자에게 힘을 세워 주려고 써야 되는 거에요. 그것을 말하는 거에요. 이 죄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되는 거에요.

 

이 세상은 저마다 자기의 힘을 가지고 전쟁을 도모하면서 살아가는 세상 속에 힘을 가지고 평화로 사용하는 삶은요 좁은 길이에요. 고통의 길이에요. 최종의 심판을 믿지 아니하고는 걸어갈 수 없는 삶이에요. 그래서 저도 목회를 하면서요 참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부르는 찬양이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세상 풍조. 교회는 저마다 힘을 길러서 그 교회의 재정과 성장을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조그마한 힘을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려고 하면은 교회가 얼마나 바뀌었어요, 미국이 변하듯이,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약소국을 보호하든 미국이 이제는 조폭과 같이 힘을 가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나라에 공갈치듯이 교회가 그래 변하는 속에서도 우리는 외길 걸어가야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나는 죽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고 나면 심판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요. 심판은 종교 생활 얼마나 잘 했느냐가 아니고, 내 힘을 남용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거에요. 저에게 목회적 기술과 능력을 기대하지 말고, 이것 보세요. 저 대학 교회 있을 때에 당회장은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종교적으로 보면은 인사권, 재정권, 행정권, 강등권 모든 권한이 당회장에게 다 있습니다. 대학교에 있는 전도사 하나 들어와 가지고 내 일 거수 일 투족을 설립자에게 보고해요. 당장 자를 수 있어요. 그것은 당회의 결의도 필요 없어요. 힘 그래 사용 안 했어요. 그러면은 나 지옥 가기 때문이에요.

 

9. 재림의 확신을 보여 주기 위해서 부활과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 교회는 힘을 남용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재림에 대한 보증이다.

 

우리 교회도요 50넘은 부목사 쓰는 교회 없어요. 애들 대학 다니고, 늦게 신학 해 가지고 목사 안수 받아서 목사님 받아만 주세요, 해서 아무도 안 받는데 받았더니만 부교역자들이 저에게 맨날 그래요, 목사님 저 목사님 이상 합니다. 교인에게 전화만 오면 전화기 가지고 바깥에 나갑니다. 나가서 숙덕 거리고 여선교의 회장들 권사들 대리고 뭐 어디 저 레이드 싸이드 옆에 무슨 식당 이런 데만 돌아다녔다는 거에요. 잘라야 된다고, 놔두어라, 교회에서 개척 시켜도 주는데, 자기가 나가는 것 되었지 뭐, 제가 말 한마디면 자를 수 있어요. 왜 안 하는가, 나 죽을 줄 알거든, 이후에 지옥이 있는 것 알거든요. 스스로 나가더니만 그 때 권사들 여선교회 다 나갔어요. 그래 나가서 개척이나 하는 줄 알았더니만 아무도 안 따라 가더라고 또, 3년 있다 저한테 전화 왔어요, 목사님 잘 계시지요, 갈 때 없으니까 다시 기웃거려요, 내가 받습니까, 안 받지요, 힘을 전쟁에 사용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코로나19를 맞이 하면서 전화위복이 되려면은 미국이 중국이 일본이 조폭과 같이 힘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그것 깨달으라고 징계 했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그것 하나에 첨단의 선진국 세계의 최강의 군대가 아무런 쓸모가 없구나, 옛날의 미국은 약소국가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는 힘을 사용했는데, 이것 전 세계가 깨달아야 되고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우리나라의 경제인들이 무엇을 깨달아야 되요, 우리 기업만 잘하려고 되는 게 아니구나, 내 힘을 가지고 전쟁에 사용하지 아니하고, 섬기는데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려면 대통령 되고 싶은 마음 없겠지요. 재벌 되고 싶은 마음 없겠지요.

 

그래서 그 지옥의 확실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 재림의 확신을 보여 주기 위해서 부활과 성령을 보내어 주신 거에요. 교회는 힘을 남용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교회에요. 그래서 교회는 재림에 대한 보증이에요. 예수의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보증이에요.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에 대한 보증의 삶, 그래서 사도행전 1 8절에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증인 말투스 순교자가 되라는 거에요.

 

10. 순교자의 삶, 힘을 평화로 사용하는 순교자가 되라. 영생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 마음이다. 하나님은 자기 힘을 남용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면 이 세상을 끝장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한 명을 멸망하지 않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그 하나님이시다.

 

힘을 남용해서 전쟁을 사용하는 데에 순교자의 삶, 힘을 평화로 사용하는 순교자가 되라는 거에요. 심각하게 들어야 됩니다. 오늘 여기서 여러분 주일날 몇 번 못 만난 것이 슬픔이 아니고, 힘을 남용하면은 영원히 못 만나요 천국에서. 그것을 두려워해야 되요. 교회에 몇 번 안 만난 것이 힘든 것이었지요. 그 힘든 것을 통해서 무엇에 대한 보증이 되어야 되요. 천국 가서 못 만나면 어떻게 하지, 무슨 생각으로, 내가 힘을 남용하면 안 되는데, 어떤 가정이 세워 져요, 부모로서의 힘을 남용하는 적이 어디 있어요. 자식을 위해서 쓰잖아요. 자기를 위해서 힘쓰는 게 뭔 부모에요, 옆집 아저씨지,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해요. 진짜 복음을 알게 되면은 마지못해서 대통령 되고, 마지못해서 국회의원 되고, 마지못해서 목사 되고, 마지못해서 장로 된다고. 장로 되어서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 행세하려고 하는 마음이 인간에게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왜 못해요, 안 해요, 지옥 가기 때문이지요.

 

영생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 마음하고 같은 거에요. 하나님은 자기 힘을 남용하지 안 해요. 말 한마디면 이 세상을 끝장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한 명을 멸망하지 않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그 하나님, 이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확고하게 세워져야 되요. 그래서 내가 왜 예수 알아 가지고 이 고생하나 저는 이런 생각이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된다고 봐요. 아이구 내가 왜 하필이면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와 가지고 이 복음을 알아 가지고 성질대로 못사는가? 그래서 마지못해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다니면서 천국에서 만나는 그런 복된 생애 그것이 요엘서에요.

 

보습을 취하여서 창을 만들어라, 힘을 가지고 전쟁에 사용해라, 그러면 이제까지 갚아 주지 안 했나 내가 갚아 준다. 이 말씀이 그 말씀이에요. 왜 세계가 이래 되고, 교회가 빛이 되지 못하는가 힘을 남용케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이 그런 삶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왜 이 복음 들어 가지고 십자가 지고 걸어가지, 그때마다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여러분들이 천국으로 한걸음 한걸음 가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고요, 그래서 이 믿음이 있어서 우리나라가 이제는 경제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의의가 회복되는 코로나 이후의 대한민국이 되고요, 세계에 경제가 회복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가 회복된 지구촌이 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듣기 싫은 이 설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좀 들리어 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축도◈

 

의의 교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만민에게 내영을 부어 주겠다는 약속대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힘을 남용해서 전쟁으로 사용하려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서 평화로 사용하며 걸어가는 좁은 길을 걷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사랑하는 권속들과 죽어서 천국에 다 함께 만날 믿음의 권속들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과 하나님의 의의가 실현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