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부모 공경과 여호와 경외(에베소서 6: 1-4)주일 예배 설교문-김종웅 목사

차주희 2020. 5. 15. 16:32

 

 

 

 

부모 공경과 여호와 경외

에베소서 6: 1-4

2020 5 10일 주일 낮 예베

                                                                                                                                               No. 468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변하면 우리의 삶에 행복이 없다. 창조 신학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함이고, 부모를 공경함이다. , , , , , 가 모세오경 이고 성경의 헌법이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창조주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일컬어 아카페라 한다.

 

세상은 우리가 생존이 제일 중요해요. 어떻게 하면 생존하는가?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변해요. 또 생존의 방식이 변하면서 가족에게나 모든 것이 변해요.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한가지가 있어요. 그것이 변하면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풍요롭고 잘 되어도 그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지 못하고, 그 물질과 풍요로움이 우리의 삶의 생명을 더하여 주지 못하기 때문에 참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마치 수학에서 아무리 문제가 일이 꼬이고 저리 꼬여도 공식이나 구구단은 변하면 안 되거든요. 구구단과 공식이 잘못되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는 거에요. 우리의 삶에도 저는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1. 17세기 계몽주의[啓夢主義]가 시작이 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농경 사회에서 산업화시대로 변화되었다. 계몽주의 이후에 여호와의 경외의 신앙이 삶 속에서 사라졌고,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졌다. 그 없어진 결과가 인간성이 황폐[荒廢]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어떻게 더 잘살까 만 생각하는데, 교회 와서 여러분들이 한가지 알아야 되는 것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여호와를 경외함이다 이렇게 말해요. 아무리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변하면은 이것이 없어지면은 우리의 삶에 행복이 없어집니다. 또 우리 가정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정의 형태는 시대를 따라서 달라지지만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느 가정 형태라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런가? 오늘 그것을 말씀을 드릴 거에요. 우리가 먼저 우리가 이 세상에 인류[人類]의 역사[歷史]를 쭉 보면은 제일 처음에는 수렵체취의 시대였어요.

 

그저 동물 잡아먹고, 과일 따먹고, 그러다가 농경 시대가 왔습니다. 이 시대가 거의 17세기 18세기까지 그런 산업[産業]으로 쭉 살아왔어요. 그 때에는 가정이 대가족 제도였어야 되요. 그래야만이 사람이 살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동물을 잡을 때에도 혼자 못 잡잖아요, 가족의 누군가가 도움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가족이 많으면은 동물을 잡을 확률도 높았고요, 체취를 할 때에도 많은 가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체취 할 수 있었습니다. 농경 시대에도 가족이 많아야 살아가기가 편합니다. 그래서 대 가족을 이루었든 겁니다. 제가 어릴 때만해도 저도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봄, 가을 모내기 철하고 추수철에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분기 방학을 하게했어요.

 

그래서 모내기 할 때에 못줄 잡아 주기도 했고, 추수할 때에 볏단 나르기도 했고, 이랬다고요. 그래서 그 대가족 제도라는 것은 그냥 대가족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제도였고, 또 그 때에는 자식이 많으면은 자식이 적은 가정보다 부자 될 확률이 많았기 때문에 자식 많은 가족을 참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17세기 계몽주의[啓夢主義]가 시작이 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농경 사회에서 산업화시대로 변화된 겁니다. 불과[不過] 오래 되지 안 했어요. 농경시대 까지만 해도 동양이 서양보다 훨씬 더 잘 살았습니다. 그래서 대가족 제도 이런 데에는 동양이 훨씬 더 그 제도가 앞서 있었든 거에요.

 

그런데 산업화를 서양이 먼저 이루었다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서양이 동양을 앞지르는 선진국이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산업화가 되어지면서 사람들의 생산량이 굉장히 많아 졌고, 이제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 하게 된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보다 기계가 기능적인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생산량이 엄청 많아 졌어요. 그러나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그렇게 생산량은 많아졌는데 인간의 삶은 피폐[疲弊]해졌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사람은 이제는 더 이상 생산에 소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소비의 주체가 됨으로 말미암아 대 가족이 되면은 가난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많으면은 그 거지꼴 못 면한다고, 점점 핵가족화[核家族化]된 거에요.

 

그렇게 핵가족화 되는 가운데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뭐냐 하면은, 특히 계몽주의 이후에 여호와의 경외의 신앙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없어진 결과가 뭐냐 하면은 인간성이 황폐[荒廢]하게 된 거에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산업화로 인하여 굉장히 잘살면서 인간성이 황폐하게 되어져서 정말 공멸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고민을 하기를 시작하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왔는데 저는 우리 한국의 문제가 어디 있는가 하면은 산업화 시대의 유학하고는 선진사회인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것이 유학이지요, 그곳에 가서 그들의 산업화된 것을 배워 오는 것은 좋은데 비판적으로 해 왔어야 되요.

 

2. 케네디를 굉장히 좋은 대통령이라 하지만은 성경적으로 보면 굉장히 나쁜 대통령 중의 하나다. 그가 미국에서 성경을 교과 과목에 가르치는 것을 다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미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학교에 총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 비판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산업화가 가져온 어두운 그림자를 생각하고 그런 것들을 배격해야 되는데, 우리 한국의 사대주의가 뿌리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그런 것들을 추종하고 가져왔든 거에요. 그래서 서양은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는 지금 케네디를 굉장히 좋은 대통령이라 하지만은 성경적으로 보면 굉장히 나쁜 대통령 중의 하나에요. 왜냐하면은 그가 미국에서 성경을 교과 과목에 가르치는 것을 다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고요. 그 이후에 케네디 교육 이후에 미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은 학교에 총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런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에게 공경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축복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많은 사건이 있지만은 한마디로 성경을 이야기한다면은 전도서에 그래 놨지요. 일의 결국을 들었지만은 사람의 본분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가 왜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빛이 되지 못하고 여러분들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는가, 의무감만 가지게 하는가? 죄책감으로 인하여 종교 생활하게 하는가? 여호와 경외의 신앙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여러분들에게 설교 할 때에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장미 빛 인생에게 일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 6.25동란, 월남전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정신 세계는 패닉[Panic]에 빠졌다. 그랬지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히피문화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히피문화의 정신은 자연으로 돌아가자 만이 아니고, 무소유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 봐야 진정한 자유가 없었다고요. 그래서 80년대 후반부터 서양은 미국은 성경 공부로서 성경으로 돌아왔다고요. 그럴 때에도 이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이지 않는가? 저는 이런 생각합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이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정말 우리가 회복해야 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어른과 부모님에 대한 공경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산업화가 되면서 우리가 사람에게 뭐합니까? 김누리 교수의 이야기도 했는데 교육이라는 게 사람의 스팩을 쌓는 교육이 되었다고요.

 

저는 김누리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스팩 이라는 말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잘못 되었는가? 하는 것을 저는 인식하게 되었어요. 김누리 교수가 스팩이 뭐냐 하면은 어떤 무기를 만들어 놓고, 그 무기의 제원[諸元]을 말하는 거래요. 이 무기는 몇 미터 날아가서 폭발되기 얼마이기 때문에 얼마를 줄일 수 있다. 또 기계의 어떤 사용 설명서에 대한 것들이라는 거지요. 여러분 사람이 그렇게 하나의 사용 설명서 사람을 어떤 그런 스팩화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성이 말살되었는가? 그런데 그런 것은 산업화 시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는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대도 여전히 스팩 교육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몰라요.

 

3.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과 부모를 공경하는 신앙을 가지지 아니하면은 인간성은 철저히 황폐화[荒廢化] 되어서 정말 어렵게 된다. 창조 신학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함이고, 부모를 공경함이다. 여호와 신앙이 뭔가? 창조 신학이다.

 

정보화 시대에는 이제는 더 이상 여러분 우리가 보세요, 농경 시대에는 동양이 더 잘 살았지만은 산업화를 먼저 이끈 서양의 선진국이 되면 서양이 잘 살았지만은, 정보화시대에는요 우리 대한민국이 서양을 앞서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코로나19에서 여전히 그런 것 보지 못하고 그저  정말 여러분 아이에게 키스 하지 아니하고 요람에게 하는 것 하고 같다고 봐요. 제가 우리 대한민국이 앞으로 뭐 잘 살게 그 이야기 아니에요. 이런 정보화 시대에 우리 대한민국이 정말 행복 하려면은 목사님들이 정신 차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정신 차려야 되요.

 

어떻게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과 부모를 공경하는 신앙을 가지지 아니하면은 우리가 서양을 앞질러서 잘 살게 되어도 우리 인간성은 철저히 황폐화[荒廢化] 되어서 정말 어렵게 된다고요. 그런 것들이 이번에 이태원 클럽의 사건이나 이런 것들이 여실히 보여 준다고요. 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뭐냐? 이런 것들을 그저 전화 걸면서 할렐루야를 먼저 외치고, 교회 와서 아멘, 찬양 뜨겁게 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 하면은 그것은 종교로서의 기독교에요. 성경이 말하는 여호와의 경외함을 아셔야 된다고요. 제가 이번에도 또 부모 공경도 마찬가지에요. 어버이날 저에게 카톡으로 온 것 중의 하나가 시골에 걸린 프렌카드의 내용들을 찍어서 보냈더라고.

 

그 내용 아들아 너 바쁠 것 같아 알아서 샀다. 입금해라 고맙다. 이런 것을 부쳐 놓았더라고. 꽃으로 퉁 칠 생각하지 마라. 또 어떤 것은 꽃만 받고 끝내기에는 내가 너무 정성으로 너를 키웠단다. 여러분 그런 것들이 부모의 효가 아니에요. 전부 물신주의로 일어난 거에요. 우리가 서양을 비판하지 아니하고 받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은 극도의 개인주의와 일상의 사막화로 인하여 이렇게 산업화 되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는 거에요. 이제 더 나아가서 정보화시대로 넘어가면서 우리나라가 서양이 우리를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그런 때가 와도 우리가 그것 못 보면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뭔지를 모르게 된다면은 우리의 삶은 더 피폐해 질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만큼 교회가 중요해요. 교회가 중요한 것은 목사가 그만큼 각성하고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된다고요. 저는 목회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신앙 관을 깨트리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그래서 차라리 우리 교회 와서 예수 처음 믿는 사람이 훨씬 더 편해요. 지울게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더 편한 사람은 자기의 과거의 신앙이 잘못된 것을 복음을 알면서 깨닫는 사람은 더 편하고 좋은 사람이지요. 여호와 신앙이 뭔가?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했잖아요. 창조 신학이라고. 서양이 왜 그래 되었는가? 계몽주의가 창조 신학을 배격했기 때문이거든요. 모든 신학의 기초는 창조 신학에서부터 출발되어져요. 창조 신학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함이고, 부모를 공경함이에요.

 

4. 야곱은 바로 앞에서 내 나이 일 백 사십 년인데 험악한 세상을 살았다 한다. 요셉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했는가? 여호와 경외의 신앙이다.

 

그 창조 신학을 가지고 기복 신학으로 전부 만들어 버렸잖아요. 제가 여러분들 우리 교회에 몇 차례 설교 하지만 이것은 계속 죽을 때까지 반복할 거에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모세오경이고 성경의 헌법이에요. 이것을 보면서 봐라 야곱은 하나님 잘 믿어서 복 받았다. 요셉은 하나님 잘 믿어서 복 받았다. 전부 우상 신학이고 왜곡[歪曲]된 신앙이에요. 여러분 야곱을 눈 씻고 제대로 한번 보세요. 비판적인 눈으로, 그런 설교에요. 얼마나 고생했어요. 그래서 그는 바로 앞에서 뭐라는가 하면은 내 나이 일 백 사십 년인데 험악한 세상을 살았다고. 지금 목사님들의 설교가 야곱과 같이 험악한 세상을 살도록 만든다고요.

 

요셉 한번 보세요. 노예로 팔려 가 가지고 죽도록 고생한 삶, 그 삶 살라는 거에요. 요셉같이 복 받으라. 야곱과 같이 복 받으라는 것은. 그들의 신앙 속에 있는 창조 신학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고. 험악한 세상 속에 야곱과 요셉은 어떤 다른 삶을 살았는가? 창세기 보면은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참 잘 생겼어요. 오늘날로 치면은 미쓰코리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이름도 사래 나의 공주 이런 말이에요. 히브리어 뒤에 임이라는 것을 빼 버리면 사라가 되잖아요. 그러면 그냥 일반적인 공주 열국의 어미 이런 말이 되요. 그래 너무나 예쁘니까 자기 보기에 그랬는지 몰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외국의 그랄로 이민을 가는데 뭐라는가 하면은 이 이방 땅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에 너 뺏어 가려고 나 죽일까 한다.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속에는 남의 좋은 것을 빼앗으려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세상이에요. 우리 여러분 세상 한번 보세요. 자기 살려고 남 죽이는 것이 세상이잖아요. 그런 것이 오늘 산업재해[産業災害]나 이런 것이 세상에 전부 그 모습이에요. 산업 재해나 이런 것을 보면서 성경적인 시각에서 비판하지 아니하면은 그 뭐 공사 잘못 된 것 주인 욕만 하고 만다고요. 올바른 반성이 일어나지 않는다고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은 사람을 스팩화 해요. 왜 사는가 사람 살기 위해서 사는데, 여러분 그랬다가 요셉 보세요. 요셉은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입니다. 믿었든 형님들에게서 노예로 팔려 갔어요.

                                                                                                         

그것도 죽이려고 하는 것을 겨우 살아 가지고, 그것도 어릴 때에 청소년기이니까 얼마나 그에게 트라우마가 컸겠어요, 요셉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했는가? 여호와 경외의 신앙이에요. 트라우마를 극복한 요셉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이런 것들을 설교 안 들어 봤잖아요. ? 전부 창조 신학이 뭔지 모르고, 기복신앙의 매여 있기 때문이에요. 요셉은 여러분 믿었든 형님들, 그 형님들에게 도시락 갖다 주려 갔다가 형님들로부터 팔려서 노예로 가 버렸다고. 그런데 우여곡절[迂餘曲折]끝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어요. 감옥에 가보기도 해보고, 그런데 자기 형님들이 자기 발 앞에 지금 엎드렸어요. 여러분 우리가 그런 말 하잖아요, 때린 놈은 기억 못해도 맞은 놈은 기억한다고. 저 초등학교 때, 때린 나는 누구를 때렸는지 모르겠는데, 내 만나면 어떤 얘들 그래요, 너 나 참 괴롭혔다고. ㅎ ㅎ

 

5. 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창조 신학이다. 힘은 전쟁을 위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가져야 된다. 십부라와 부아만은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을 살렸다.

 

형들은 요셉의 얼굴을 몰랐어요. 그런데 요셉은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컸으면 형들이 엎드렸을 때 알아봤다고, 그가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창조 신학이에요. 여러분들이 진짜로 구원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 여호와의 경외의 신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 속에 있는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나를 배신하고 나에게 잘못했든 사람들, 평생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 이름들 그게 내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 하나님 경외하기 때문에 보복하지 않고, 제가 여러분 지난 주 설교 그 설교잖아요. 힘은 전쟁을 위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가져야 된다고.

 

하나님 믿는 신앙 성령이 있는 자의 삶 속은 이래야 되는데, 그저 액스타시 현상이나 초자연적인 능력 갖는 전부 도깨비 신앙 귀신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국 교회가 엉망진창이라는 거지요. 요셉은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죽여도 시원치 않을 형들,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이래요. 오늘날 코로나19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교회가요 빛을 바래야 되는 부분들이 이 창조 신학이 있어야 되요. 출애굽기에 바로가 히브리 산파에게 남자 아이 낳는 즉시 다 죽여 버려라. 추상 같은 명령을 내렸는데, 십부라와 부아만은 뭐라 하는가 하면은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을 살렸다. 모세만 살린 게 아니에요.

 

용비어천가 신화 만들면 안 되요.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기 위해서 십보라와 부아를 통해서 살렸다 천만에요. 모든 아이들을 살렸어요. 자기는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여호와 경외에요. 우리가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인간성의 말살 시대에요.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에서 우리가 서양보다 선진국이 되는 것을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선진국이 되면서 이 신앙을 고수[固守]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되요. 미국에 유학 가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사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그저 미국의 좋은 잘 사는 것만 가지고 한다면은 미국의 병패[病敗]가 우리 속에 그대로 나타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학교 현장이 엉망진창 된 것이잖아요.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뭐냐? 사람의 생명 살리는 것, 그저 여러분 사람 생명 살린다 이런 게 아니에요. 왜 그런 것 없는가? 여호화를 경외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에 대한 올바른 신관과 경외에 대한 생각을 바로 가져야 되요. 그저 하나님에게 경외감 가지면 하나님이 내 사업 잘 해주고 우리 가정 복 줄 것이다. 전부 사기치는 도깨비 신앙 이에요. 경외감은 내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상대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에요. 여러분 하나님 생각하면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범접할 수 없는 그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느낌을 가지는 감정을 가져요.

 

매 맞을까 봐 두려운 감정 아니에요. 그 감정이 부모에게도 동일한 거에요. 그러면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생명력 있는 인간 사람이 제대로 되어져 버려요. 교회에서 이런 제자 훈련이 있느냐 말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이런 변화가 있느냐 말입니다. 왜 없는가? 죽은 종교 설교만 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래서 유대교는 어떤 하나님을 말했어요? 왕관을 쓰고, 왕의 홀을 가지고, 눈빛 하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제압[制壓]하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 전리품을 나누어 주는 하나님을 이야기 했잖아요. 그래서 교인들이 왜 충성해요? 그 전리품 받으려고,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어떤 하나님 보여 주셨어요?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

 

6. 십자가의 하나님은 로마의 유대교의 권력 앞에서 처절히 처형을 당한 하나님이시다. 어버이 주일에 우리가 부모를 효도해야 하는 것이 가정의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교회에서 영적인 가족에서 알아야 된다.

 

십자가의 하나님은 로마의 권력에 처형을 당한 하나님이에요. 유대교의 종교적인 권력 앞에서 처절히 처형당한 하나님이에요. 못난 하나님이에요. 누구든지 싫어하는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을 보는 것이 영안이 열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예를 들을 때 이보다 더 큰 예가 없는 것 같아요.

 

최태원의 SK 최태원의 사촌 동생이 물류 회사를 인수해 가지고 그 회사의 차들을 취업시키는데 기사 하나가 안 한다 한 거에요. 그래 일인 시위한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 사무실로 불러 올려 가지고 자기보다 열 살이나 많은 그 사람 엎드려 뻗쳐 시켜 가지고 야구 방망이로 때리면서 한대에 백 만원이다. 백만 원짜리 수표 스무 장 던지고 스무 대 때렸잖아요. 얼마나 못난 아버지에요. 그 아들 중에 진짜 아들과 가짜 아들은 이런 것이잖아요. 나는 우리 아버지같이 저렇게 안 살아, 아들 아닙니다.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을 못 가지는 거에요. 뭐만 보이는 거에요? 존재하게 한 아버지가 보이는 게 아니고 돈만 보이는 거지요.

 

그런데 어떤 아들은 우리 아버지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저 사람에게 엉덩이를 내밀고 맞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저거 맞은 돈 가지고 내가 공부했구나, 저렇게 맞은 아버지 모멸감 가지고 내가 먹었구나, 내가 입었구나, 아버지의 본질을 보는 영안이 열린 자식이지요. 그 자식이 효도하는 거에요. 왜 우리 한국 교회가 전부 우리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것도 못 해주는 하나님이야? 전부 유대교가 섬겼든 하나님 섬기기 때문에 사람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황폐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로마의 권력에 굴복 당하여 처절히 처형을 당한 것은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로마의 권력에게, 입김 하나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유대교의 종교적인 권력에 굴복하고 처형을 당한 것은 나를 위해서. 나 사람 되라고.

 

인간은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스팩을 가지고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 되라고.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지, 정글이 되지 않도록 그랬구나. 성령이 아니면은 받아 드릴 수 없는 거에요. 영안이 안 열리면 모르는 거에요. 설명해 주어도 몰라요. 네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아니? 최신식 스마트폰이 눈에 보이는 자식에게 그 말이 들어올 이가 없지요. 남들보다 부자 되고 싶고, 내 자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속에 그 하나님이 들어올 이가 없으니까 왕관 쓴 하나님을 여러분들에게 선포하는 거에요. 내가 설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오늘 여러분 이 어버이 주일에 우리가 부모를 효도해야 하는 것이 가정의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교회에서 알아야 됩니다 영적인 가족에서. 교회가 교회다워 지려면은 로마의 권력에 의해서 처형당한 하나님. 유대교의 종교적인 권력 앞에 말 한마디 못하고, 굴복 당하신 하나님. ? 나 사람 되라고. 최태원의 사촌 동생 앞에 매 맞는 것, 아버지가 왜 매 맞아요, 왜 싸워요, 아들 입에 풀칠해 주려고. 자기 입에 뭐 먹기 위해서 그래 안 하겠지요. 낳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그 삶을 낳음을 받은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해 버리니까 경외감이 안 생기는 거에요. 그것은 어떤 자식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에요. 부모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에요.

 

7.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준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고, 너희들 생명을 주려고 해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주님의 그 십자가의 사건은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행위에요. 창조주만이 할 수 있는 행위에요. 그 행위를 일컬어 아카페라 하는 거에요. 어버이 주일에 카네이션 못 달아 준 것 안타까워하지 말고 용돈 적게 준 것 안타까워하지 말고, 정말 내가 하나님을 경외 하고 부모를 효 하는 마음이 있는가 돌아봐야 되요. 우리 하나님은요 왜 그래야 되는가? 여러분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부모이기 때문에 꽃 사서 카네이션 드리고 용돈 드리고 선물 드리고, 전부 효를 잘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저는 이 꽃으로 퉁 칠 생각하지 마라, 이 프렌카드를 보면서 슬퍼요. 내 부모는 그런 부모 아니었거든요. 꽃만 받고 끝내기에는 내가 너무 너를 정성으로 키웠다 이러는 부모 아니었어요. 늘 미안해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부모님에게 뭐 해 드리려 하면은 우리 부모님은 뭐라 했는가? 나는 괜찮다. 너희들끼리 잘 살아라. 하나님에게 여러분들이 뭐 교회에 바치고 이런 것, 하나님은 뭐라 하는가 하면은 너희 서로 사랑해라.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준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고, 너희들 생명을 주려고 해라. 교회 왜 다녀요. 복 받으려고요, 종교적인 사기에 넘어가지 마세요. 생명을 주려고 다녀야 되요, 누구에게 하나님에게 아니에요, 내 옆의 사람에게 그게 생명이에요. 왜 우리나라가 선진국 되어야 되요 서양보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생명 주려고요. 이것 놓쳐 버리면은 아무리 잘 살아도 황폐[荒廢]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해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왜 이런 말을 해요? 유대교가 그랬거든요. 부모에게 유대인들은 자기 소득의 일정 부분을 부모에게 효도 비를 내야 되요. 그런데 부모에게 상처 받은 자식이 주기 싫거든요. 그 마음을 이용해 가지고, 부모에게 줄 돈 회당에게 받치면서 고르반 하면 부모에게 한 것하고 같다는 거에요. 부모에게 효하고 형제에게 나누어 줄 것 교회 11조로 퉁 치려고 하는 것이 죽은 종교에요.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그러잖아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와 하나님만 보이느냐, 부모는 안 보이고, 형제는 안 보이냐 이런 말 얼마나 많이 들어요, 맞는 말이에요. 죽었기 때문에 듣는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십의 일은 교회에 받치고, 십의 일은 부모와 형제에게 나누어 주고, 십의 일은 친구와 사회에 유익하게 쓰고, 십의 칠은 자기를 위해서 멋지게 사용하라고. 왜 못사는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소득에서 그래 살지 못하면은 회개 하세요. 적은 부분이나마 그래야 되요. 장자의 명분 장자가 뭐 여러분 더 많은 복을 받고 천만에요, 그런 사람이 장자가 되어야 되면은 큰일나요, 자랑이라 생각하지 말고, 본 받으려고 내 말 들으세요. 여호와의 경외의 신앙이 내 속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자녀 교육도 그래 시켰어요.

 

8. 구유의 주님,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누가 그럴 수 있어요? 창조자이기에, 누가 그런 삶을 살아요? 낳은 자이기에. 여호와 경외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변치 아니함으로 우리의 경제적인 선진이 우리 삶에 진정한 부유함이 되는 그런 우리 한국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 아이들 세 명중에 어릴 때 제일 맞이에게 돈을 주어서 동생들 용돈 주게 했어요. 동생들이 불만이 많았어요. 직접 달라고. 그래도 제일 맞이가 나누어 주게 했어요. 장자로서의 역할을 하라고. 크고 나니까요 장자는 무엇을 가지는가 하면은 책임감을 가져요. 책임감을 가지는 사람은 희생하게 되어 있어요. 희생이 없는 책임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교회의 장로님들은 장자에요. 누구보다도 책임감을 가져야 되요. 그 책임감이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교인들보다 희생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되는 거에요. 왜 없는가 생명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우리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저는 뭐 107은 나를 위해서 써는 사람이니까 안 모아요 잘.

 

목돈 들어갈 일 생겼는데 어찌 되겠지 했더니만 나는 하나님 경외하고, 하나님은 믿었습니다. 큰 게 은행 퇴직금 내 놓을 테니까, 둘째보고 너도 내놓아라, 둘이 수천 만원 내어 가지고 동생 인천 송도에 아파트 전세 해 준거에요. 그게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거잖아요. 어버이날 저에게 용돈 안 주어도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들 가정을 그렇게 키우세요. 우리가 세상에 장자입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그만큼 헌신해야 되요. 그래야 세상이 좋아져요. 자기도 미래 걱정 안 되겠어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에게 무얼 드리려고 할 때에 나는 됐다, 너희가 서로 사랑해라, 우리의 부모들은 카네이션 드리고 무엇을 드릴 때에 됐다 너희들끼리 잘 살아라. 저는 그 마음으로 우리 교회 목회해요. 여러분들끼리 서로 도와 주고 사랑하려고 하세요. 그 사람이 생명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은 아버지가 왜 매맞는가? 우리에게 이것도 하나 못해 줄 거면서 왜 나 낳았어, 부모의 본질을 모르는 자식이지요. 왜 아버지가 자존심 숙여 가며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읍소[泣訴]해 가며 회사 다니고, 사업하는가? 자기 먹으려고 아니에요, 자기 자식 입에 맛있는 것 사 주려고 그랬구나, 그때 진짜 자식이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진짜 백성은 왕관을 쓰고 왕의 홀을 가지고 백마를 타고, 나타나서 따르는 자들에게 전리품 나누어 주는 것은 인간이 만든 착각의 우상이에요. 로마의 권세에 처절히 처형을 당하고, 유대교의 종교적인 권력에 한줌도 안 되는 그런 힘을 가진 자들에게 전능하신 그분이 무릎을 꿇은 것은 우리 사람 되라고, 왜 한국에 교회가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하는가? 이 신성한 강단에서 우상을 가르쳐 주어요. 제가 볼 때에는.

 

금 송아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구유의 주님,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누가 그럴 수 있어요? 나 못해요. 창조자이기에, 누가 그런 삶을 살아요? 낳은 자이기에. 그 부모 그 하나님을 알게 되면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악하니라.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아요. 한국의 교인들 믿음을 배반하고, 불신자보다 악하기 때문에 세상이 변하지 않아요. 코로나19를 보면서 산업화에서 정보화 시대로 넘어 오면은 우리나라가 틀림없이 서양보다 앞서가게 될 거에요. 그 앞서가는 것에 대한 자부와 그 앞서가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지 말고요, 그 속에서도 여호와 경외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변치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경제적인 선진이 우리 삶에 진정한 부유함이 되는 그런 우리 한국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그런 목사들이 한국 교회의 목사가 되도록 신학교가 좀 정비 되도록 기도 하시고요,

 

9. 2020 5월에 코로나19로 인하여 정부에서 전국민에게 긴급 재난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과 기부도 할 수 있다는 소식.

 

태평양 건너갔다 와 가지고 안수 받는 그런 목사 말고요, 3년 신학 했다고 뭐 다 된 것 같이 생각하지 말고요, 하나님 십자가가 왜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계시해 주었는가? 생명을 아는 목사들이 많아져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요 목사 되는 것, 도망가고 도망가고 하다가 되어야 되는 거에요. 우리 아들이 장가 가는 것 사진 보냈는데 보니까 입이 히죽히죽해서 아직까지 아버지가 뭔지 모르는구나 싶더라고, ㅎ ㅎ 코로나19에 우리 재난 지원금을 다 준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이 그 뭐 써도 뭐 크게 도움도 안 되는데, 왜 국가 나라 곳간[庫間] 그러느냐 이러는 분들도 내 주변에 많더라고요.

 

제가 그런 분들에게 그럽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기부하세요. 똑 같은 사실 앞에서도요 생각이 발라야 되요. 저도 나를 가만히 살펴 보니까 그것 없어도 살겠더라고요, 그래서 절반은 기부하고, 절반은 교회 헌금하고, 교회와 국가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국가 망하면 안 되거든요. 상의 연금 주거든요. 나는 아무리 아파도 보훈병원 가면 공짜거든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에 그것 큰돈 아닌데 이것 없어도 사는데, 왜 이런 것 주어서 곳간 나라 곳간 힘들게 하느냐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나라 곳간[庫間]힘들지 않게 기부하세요. 그것에 목말라 있는 사람도 있어요. 하나님 경외하면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경외 안 하면은 그까지 돈, 이래요.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그까지 것 돈 몇 푼 때문에 나라 곳간[庫間]빈다고 비난하기 전에 나 그것 없어도 살 것 같은 사람은 기부하는 사람이 주의 영이 있는 사람인 것을 아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친족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것을 아는 자들이 모여 있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