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분쟁과 파당(고린도전서 11장 17-19)주일예배 설교문

차주희 2020. 5. 22. 23:31

분쟁과 파당

고린도전서 11장 17-19

2020년 5월 17일주일 낮 예배

                                                                                                             No. 469

 

17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아멘

 

선생님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재능이 뭔지? 그런 것을 잘 살펴서 개발해 주어야 된다. 성경만이 우리의 옳고 그름의 진리의 잣대가 된다. 교회 안에서 위화감[違和感]을 조성하는 것은 내가 절대로 칭찬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안다.

 

요즘 코로나19로 고통을 당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가 굉장히 많은 위로를 주는 것 같아요. 거기에 가수들이 개인적인 스토리가 많은 감동을 주는데 그 중에 김호중 이라는 가수는 선생님 잘 만나 가지고 훌륭한 성악가에서 또 가수로 변신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그와 같은 일을 하시는 일이 선생님이다. 지식의 전달자만이 아닙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재능이 뭔지? 그런 것을 잘 살펴서 개발해 주어서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게 하는 것이 선생님이 하는 일이에요. 우리는 그저 지식의 전달자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바울은 자기를 욕해도 좋고, 배척해도 좋다는 그런 것이 칭찬과 칭찬하지 않는 것의 기준이 되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교회 주일 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여러분들이 이런 부분을 아셔야 됩니다 교회에도 여전히 한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서 재능을 키워 주고 해 나가는 것 그런 것 아닙니다. 그것은 학교 선생님이 하는 겁니다. 어제 스승의 주일 스승의 날이라고 우리 교회의 제일 가난하지만은 마음은 제일 부유한 사람이 우리 교역자들을 스승이라고 점심 대접을 잘 했습니다. 늘 교회 와서 일을 돕는 찬희와 예람이도 또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가 요즘 기도하면서 생각하는 것을 그날 말했어요. 앞으로 우리 교회는 담임은 세습[世襲]할 것이다. 육신의 내 아들을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출신인 영적인 자녀들을 담임목사로 세워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하나의 전통이 되기를 바란다. 하면서 예람이 보고, 엄마 이어서 전도사 해, 신학교 가, 제가 그러고 찬이 보고 삼대째 담임목사 되도록 신학 하는 것도 좋다. 이랬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스승은 그러면은 그 아이들에게 그렇게 세습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가?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해야 되는가? 교회에는 옳고 그름의 판단의 능력을 길러 주어야 되요. 옳고 그름의 판단의 능력은 우리의 사회적인 관념이나 아니면은 통념이나 또 우리의 경험이나 사회의 관습 이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것은 언제나 변해요. 성경만이 우리의 옳고 그름의 진리의 잣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옳고 그름의 대해서도 성경이 뭔가?

 

이런 것을 모르니까, 교회가 옳고 그름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또 우리나라가 얼마나 뭐 좌 우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들의 이런 갈등이 심합니까? 이런 세상의 교회가 빛이 되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성경으로 가치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본문을 보면서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봤을 때, 또 여러분들이 말에 있어서나, 행동에서 옳고 그름을 옳게 분별함으로 말미암아 어디에 가든지, 유익한 사람이 되는, 그리고 또 여러분들을 통해서 교회가 복된 교회가 되고, 교회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가 되는 그런 일의 출발이 되는 스승의 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먼저 17절에 보면은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라고 말을 하는데 칭찬 안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또 11장 2절에 가보면은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린도교회에 어떤 부분에는 칭찬한다고 그러고 어떤 부분에는 칭찬하지 않는다. 내가 명한다 라고 하면서 왜 이렇게 말을 하는가? 이중적인 잣대인가? 그런 게 아니에요. 2절에서 칭찬 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잘 기억하고 섬겼기 때문도 아니고요, 잘 안 섬겼어요. 그들은 바울파 라고 그러고 아볼로 파라고 그러고, 바울을 비난하고, 욕을 했어요.

 

그런대도 나를 기억한다 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좋게 생각 했어요. 그리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하는데 실상의 내용을 보면은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전하여 준 전통을 잘 안 지켰어요. 그런대도 너희가 지킴으로 라고 말을 해주면서 칭찬한다 그래요. 왜 이렇게 하는가 하면은 지금 고린도교회에 있는 이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것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거에요. 자기를 욕해도 좋고, 자기를 배척해도 좋다는 거에요. 그런 것이 칭찬과 칭찬하지 않는 것의 기준이 되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2. 교회에는 예전이 중요하다, 애찬식도 있고, 성찬식도 있는데. 애찬식이 문제가 많아서 사라진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을 본 받아야 되요. 그러면 그 문제가 뭐냐 하면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여자들이 수건을 써야 되느냐 안 써야 되느냐 하는 것은 전통이었습니다. 왜 수건을 써야 되는가 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에요. 그런데 수건을 써야 되느냐, 안 써야 되느냐를 가지고 다투는 고린도교회에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 한국 교회에 보면은 예배를 11:30 분에 드려야 되나? 11시에 드려야 되느냐? 오전 예배를 드려야 되느냐? 오후 예배를 드려야 되느냐? 또 이 코로나 사태에 유튜브 예배를 드려야 되느냐, 모여서 예배 드려야 되느냐,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서 논쟁을 하는데,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전통을 고수[固守]하려고 하면은 수구가 되어져 버리는 거에요. 진리와 복음을 고수하면은 보수가 되는데, 우리가 이런 부분들이 너무 잘못된 거에요. 왜 그런가, 학교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런가, 아니에요. 설교가 잘못 되어서 그렇고, 교회가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요. 그래서 오늘날 교회도 보면은 그저 교리 자기가 믿는 교리를 고수하려고 그러고, 아니면은 배척을 하고, 내가 경험 해 왔든 교회의 예배의 모범을 고수 하려고 하고, 아니면 배척하고, 전부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옳고 그름을 따져야 되는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에요.

 

그저 나에게 잘 해 주는가, 나를 이해하는가 아닌가, 이런 것이 아니라고, 그러면 뭐냐? 17절에 보면은 이렇게 말해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이 일은 고린도교회가 수건을 써야 되느냐 안 써야 되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요, 성찬식을 하는데, 교회에는 예전이 중요하잖아요, 애찬식도 있고, 성찬식도 있습니다. 애찬식이 문제가 많아서 사라진 거에요. 오늘날로 치면은 주일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점심은 애찬식[愛餐式]의 성격이 있어요. 이것은 초대 교회에서 반듯이 행하였든 일들이에요.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은 떡을 떼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이 애찬식[愛餐式]에 자유인들 시티즌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미리 와서 잔뜩 먹을 것을 싸 들고 와 가지고 음식을 우리는 함께 나누면서 가족이다 하고 배불리 먹어요. 또 고린도 교회에는 노예 그룹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인의 눈치를 보고, 허겁지겁 오다 보니까 애찬식에 참여를 하지 못하고, 성찬식에만 겨우 참석을 한다고, 그래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이것은 주님의 떡이다, 우리가 한 형제다, 한 가족이다 라는 것을 기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것들은 내가 칭찬할 수 없다. 본질적인 문제에 분제가 있다. 교회 안에서 위화감[違和感]을 조성하는 것은 내가 절대로 칭찬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런 말이에요.

 

3. 애찬식을 통해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더불어서 살아가는 삶을 나눌 때 그 모임이 유익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지킨 바리새인들에게 회 칠한 무덤이라고 독사의 자식이라 했다.

 

그래서 그 뒤에 보면은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여러분 교회라는 것은 내 혼자 있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믿는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에요 에클레시아. 그런데 우리가 왜 모여야 되는가? 왜 우리가 유튜브에 예배를 드리지 아니하고 현장 예배를 드리는가? 이 모임이 우리의 삶의 유익이 되기 위함입니다. 해로우면은 이 모임은 잘못된 거에요. 그래서 바울이 지금 말하는 것은 머리에 모자를 써야 되느냐, 안 써야 되느냐 이런 것은 그 모임이 유익되게 하는가 해롭게 하느냐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통이거든요. 그런데 애찬식이나 성찬식은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 모임 자체 예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애찬식을 통해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더불어서 살아가는 삶을 나눌 때 그 모임이 유익이 되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 말씀 드리는 것은 앞으로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가치 평가를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지금 하는 말,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교회에게 유익이 되게 하는가, 손해가 되게 하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가치판단 해야 되요. 지금 오늘 말씀이 그런 말씀이에요. 그런데 교회는 얼마나 진리 논쟁이 많아요, 우리 교리가 맞는다 던지, 내가 보는 게 맞는 다던지, 자기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에요. 여러분 믿음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모든 율법을 지킨 바리새인들에게 회 칠한 무덤이라고, 독사의 자식이라 그랬어요.

 

예전적으로 뭔가 험 잡을 것 하나도 없는 외형적인 문제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사람의 것이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되는가 하면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면은 내가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져요. 내가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요. 여러분 교회에도 이런 사람 있지요. 내가 저 사람 잘 아는데, 지옥 갈 사람입니다. 하나님 만난 사람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은 내가 잘 아는데, 전부 신앙의 출발이 이렇게 안 되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 되는 거에요. 그게 아담이 지은 죄 아닙니까? 그래서 이 세상은 시끄럽고 복잡한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이 자신을 발견하면은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닌 줄 알아요. 내가 들은 것이 다가 아닌 줄 알아요. 그래서 나는 모른 다로부터 출발이 되어져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 펙트를 안다는 이야기라든지 진리를 안다든지 자기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전부 이단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사실을 어떻게 가치 판단해야 되는가? 제가 여러분들께 누누이 말씀 드렸어요. 인간은 진리를 모른다고. 진리의 속성을 가지고 진리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우리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몰라요.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우리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요.

 

4. 속성은 유익성 유익하지 않으면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가치 평가 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교회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유 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속성이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유익성 유익하지 아니하면은 아니에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참 저는 코로나19에서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 이 참 답답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하나님이 왜 이러셨을까? 우리가 말로서 얼마나 잘못 말해요. 야고보서 에서도 말하지만, 잘못 말하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교만해서 잘못 말하게 되는 거에요. 교만한 게 뭐에요, 나는 다 안다는 거에요. 나 당신 잘 알아. 나 이 사건 잘 알아. 그래서 자기의 관점으로 말하다 보니까 허물어진다고요. 차라리 말 안하고 침묵하는 게 낫지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말로 자기가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전부 대의명분[大義名分]은, 그런데 나라는 점점 힘들어 져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오늘 여러분 여기에 바울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는 그들에게 전통 안 지키지만 지켰다고 해 주고요, 자기를 위하지 않지만 위한다고 해 주면서 칭찬 한다고 그래요, 왜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찬식에서 애찬과 성찬을 정시에 와 가지고 정확하게 드리면서 없는 사람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그러한 행위는 내가 명하는데 절대로 칭찬할 수 없다. 내가 왜 모이는데, 왜 교회가 존재해야 되는데,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야 되는데, 오히려 모이는 것이 해로움이 되기 때문에 나는 칭찬할 수 없다. 이런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유튜브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현장에서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든지 우리 교회는 저는 그래 생각해요. 대부분의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가치 평가 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되요.

 

목사님 나는 그것 나에게 유익이 안 되는데, 그게 죄성 입니다. 나는 손해보고 나는 잘못 되었더라도, 대다수의 교인에게 유익이 된다면은 그것을 선택하는 거에요. 오늘도 이 설교 이전에는 어떻게 살았든지 상관 없어요. 그 설교 이후에는 여러분들이 어떤 말을 할 때나, 어떤 행동을 할 때에 내가 생각하기에 옳고 그름으로 아니고, 이 행동과 이 말이 얼마나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교회답게 가는 데에 교회답게 라는 것은요 서로 다른 것들을 인정하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 교회다운 거에요. 교회 숫자 많아 지는 것이나, 좋은 일 많이 하는 게 아니에요. 교회의 전통을 얼마나 잘 지키는 것이냐 이것도 아니에요.

 

얼마나 선교를 많이 했느냐 이것도 아니에요. 얼마나 각자가 다 다르지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교회는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유 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가 되는 것, 왜 하나 안 되요? 교만해서, 자기가 보는 것이 다이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진리고,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을 수용을 못하잖아요.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뭐 좌파나 우파나 전부 국민 국민 나라 나라 입에 달고 다니는데, 그들이 나라 망치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로 여러분 그 18절과 19절은 굉장히 또 중요한 말입니다.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5. 분쟁하고 파당이라는 말은 갈등을 말하는 것이다. 장로교만 옳다, 칼빈의 예정론만 옳다, 오대교리만 주장하는 것은 그 뒤에 이단에게 적용하는 파당 하는 짓이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는 교회가 사람들의 모임이 있을 때에 정치나 조직의 차이가 있다. 장로교는 대의정치이다.

 

여기에 분쟁하고 파당이라는 말은 갈등을 말하는 거에요. 그런데 헬라어에요 이 똑 같은 분쟁과 파당이 같은 말인 것 같지만은 용도가 달라요. 분쟁은 어떤 때 쓰는 말이냐 하면은 본질은 같은데 서로 생각의 차이가 있을 때 분쟁이라는 거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부터 4장까지에 보면은 고린도 교회에 파벌이 있었잖아요. 그 파벌이 뭐냐 하면은 나는 아볼로파다 게바파다 바울파다 그리스도파다 이런 파벌을 자기는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에요 바울은. 다 내편 들어야 된다 이런 말 안 해요. 다 바울파 되어야 된다 말 안 해요.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은 있는 게 당연하다. 이런 말을 해요. 무엇 때문에, 그 중심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이것 하나는 변치 아니하고, 그 위에 믿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는 인정하는 거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면은 우리나라의 기독교 중에 장로교가 있고, 침례교가 있고 성결교가 있고, 감리교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18절과 19절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로교만 옳다. 칼빈의 예정론만 옳다. 오대교리만 주장하는 것은 그 뒤에 이단에게 적용하는 파당 하는 짓이에요. 굉장히 잘못된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옳고 다른 교회는 그르다. 이것은 이단에게 쓰는 파당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거에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 되고, 기독교의 여러분 정말 메시아가 보혜사가 예수님이 되려면은 우리가 그 사실 앞에서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교회가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성령이 오시면 교회를 세웁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제가 교회론과 성령론을 같이 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또 성령을 엑스타시 현상이나 이런 상황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유익적인 측면에서 좀 떨어지지만은 이단이라 안 해요 저는. 저는 장로교 목사지만은 감리교를 다르다고 배척 안 해요. 우리 교회는 장로교의 성격이 왜냐하면은 더 교회 답게 하기 때문에 내가 장로교 목사가 된 거에요. 교리가 옳아서가 아니에요.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는 뭐냐 하면은 교회가 사람들의 모임이 있을 때에 이 모임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정치나 조직의 차이가 있다 말입니다. 장로교는 대의정치에요.

 

그래서 제가 우리 당회를 할 때 그래요. 우리 교회 교인들도 보면은 감리교 같이 예수 믿는 사람 많아요. 뭐만 하면은 목사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는데 여러분 그럴 때에도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교인들에게 물어 보세요. 이게 장로교에요. 장로님들은 먼저 목사님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묻고는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내 교구의 교구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당회 할 때에 장로님들이 뭐 주장하면은 장로님 생각하지 말고, 장로님이 섬기는 교구 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말하세요 이런다고. 이게 우리가 똑 같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에클레시아를 이끌어 감에 있어서 어떻게 운영하는가? 대의정치 장로교로 운영하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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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감리교도 예수님이 이루신 에클레시아 교회를 교회답게 하려고 한다. 파당은 이단에게 지칭하는 말이다. 이단적으로 파당 짓지 말라. 어떤 행위가 얼마나 전체 교회의 유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로 가치판단 해야 된다.

 

장로가 되어서 자기 교구에게 묻지도 안 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해 버리면은 감리교로 가야 되요. 감리교 가면 또 감리교 가면 목사 되야 할 사람이라고. 감리교는 뭐냐 하면은 감독 목사가 생각하는 대로 감독 정치에요. 그래서 원래 감리교는 장로가 없어요. 교인의 대표가 없어요. 목사와 감독이 주장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만 있어요. 실행하는 집사님들만 있었다고요. 여러분 장로는 정책을 가치판단 하지만 집사는 실행하는 자이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감리교가 이단인가? 아니에요. 감리교도 예수님이 이루신 에클레시아 교회를 교회답게 하려고, 여러분들에게 좀 더 쉬운 말로 하면은 우리가 정치할 때에 약간의 독재성이 있는 대통령제나 의의[意義] 민주주의를 하는 내각제나 그것은 국민의 형편과 나라의 형편을 따라서 어느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지, 대통령제는 진리고 내각은 잘 못되고, 내각제는 잘못 되었고, 대통령제는 잘 못 되었고 이것은 정말 잘못된 거에요. 지금 그런 짓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그 다음에 보면은 19절에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여기에 파당은 이단에게 지칭하는 말이에요. 이단적으로 파당 짓지 말라. 그런데 이단과 너희들이 파당을 해서 나누어야 하는 것은 너희들이 옳기 때문이고, 그대로 따라가면은 잘못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보세요. 이단 신천지나 이런 데에는 기성 교회는 잘못 되었다는 거에요, 교리 자체가 잘못 되었고, 정치가 잘못 되었다는 거에요. 이것은 파당 짓는 행위에요. 그래서 자기네들만 옳다는 거에요. 교회에도 그런 사람 있지요.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자기 의견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파당을 규합[糾合]하는 것, 이것은 이단이 하는 짓들이에요.

 

여러분 분쟁이라는 것은 내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 생각, 각자의 의견은 알아서 판단 할 수 있도록 그래서 회의를 해서 그 중의 최대 공약수를 도출해 내는 것이 분쟁이라는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에 그러면은 이 파당의 하는 행위가 뭐냐 하면은 파당은 왜 너희들의 옳음을 인정해서 그것을 걸러 내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칭찬하지 않는가 하면은 그렇게 하면은 공동체가 무너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보세요, 이단 같이 믿으면은 기독교 자체가 무너져 버려요. 지금 한국 교회 여러분들이 이런 것 한번 보세요. 우리 한국 교회도 지금 보면은 뭐 전광훈목사가 집회를 해 가지고 막 사람들을 규합해서 이럴 때에 그 사람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 이런 것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되요.

 

행위가 얼마나 전체 교회의 유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가지고 가치판단 해야 되요. 저는 그 사람이 정말 잘못한 것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은 신천지에게 욕 먹을 것을 교회로 돌려 버렸단 말입니다. 신천지는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하면은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코로나19를 통해서 신천지 악함을 들어내서 파괴하려고 했는데, 똑 같이 그래 버리니까, 세상의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신천지나 교회나 똑 같다고 보는 거에요. 저도요 이런 상황에서 현장 예배 이야기할 수 있고요, 뭐 정부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자유로운 거에요 그것은. 다 나라를 위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전체의 유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가들 국회의원들 여당 야당 마찬가지에요.

 

7. 교회에 손해가 있음에도 감당해야 할 일을 행할 때, 자기가 죽어야 된다. 어느 것이 공동체에 유익한가 아닌가를 늘 가치판단 하는 사람으로 교회가 만들어 갈 때에 그런 사람은 국가에도 유익한 사람이 되고, 교회에도 유익한 사람이 된다.

 

왜 제가 여러분들에게 선당후사 이런 말 하는 사람 찍어 주지 말라고 하는가? 선당후사가 아니에요. 선국후당이에요. 나라가 먼저지 뭔 당이 먼저요. 공산당이나 당이 먼저지요. 보수를 주장하는 사람이 선당후사 할 때 그것은 공산당이 말하는 거에요. 당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요.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전부 로칼처치를 위해서 존재해요. 전체 교회에 유익이 되는가 아닌가는 가치판단 안 해요. 저는 우리 교회가 좀 늦게 가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그래서 우리 교회의 교인들이 떨어 져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우리 교회가 이태원 클럽과 같이 발원지가 된다면은 전체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걸음 늦게 간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것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죽어야 되요. 자기가 살아 있으면서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요. 십자가에 못박아야 되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 스승의 날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이 죽어져서 자기 주장이 옳음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것이 공동체에 유익한가 아닌가를 늘 가치판단 하는 사람으로 교회가 만들어 갈 때에 그런 사람은 국가에도 유익한 사람이 되고, 교회에도 유익한 사람이 되요. 아이들에게 재능을 개발해 주는 것은 학교 선생님이 하는 거에요.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에요. 성경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에요. 성경을 왜 가르치는가?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도록. 올바른 가치판단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할 때 내 주장이 옳은 게 아니라는 거에요. 내가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거에요.

 

내가 보고 내가 말하는 것이 얼마나 교회에 유익이 되고,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 우리는 교회가 교회다운 것도 전부 교리적인 측면에서 교회를 교회답게 하려고 하니까 파당 짓 하는 거에요. 이단이 하는 짓 하는 거에요. 우리 예수 믿는 우리들 언제나 분쟁이 있어요. 나하고 생각이 다를 수도 있어요. 그래 용납 안 되는 것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한테 이런 것 좀 배우세요, 저는 저 싫어하고 저 뭐 이러는 사람들 다 용납해요. 그런데 무엇을 용납 안 하는가? 교회를 허무는 일은 그것은 용납 안 해요. 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도 용납하는데, 대한민국을 허무는 일은 안 해요, 못해요 용납 못해요. 왜?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에요. 정체성이 그래서 필요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저는 이런 부모 이런 교사들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목사가 되기 위해서 찬이나 예람이나 십자가에 자기 죽어야 되요. 내 주장이 옳다고 하는 생각이 죽어져야 되요. 내가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 죽어져야 되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함으로 말미암아 나하고 다른 것들을 다 수용을 하면서도 교회를 허물려고 하는 이단적 파당적인 사고에 대해서는 철저히 옳고 그름을 가려 나가서 교회와 국가가 든든히 세워 지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지고,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그런 일들이 우리 이 동백 한 귀퉁이에 있지만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되요. 여러분들 책임이에요. 여러분들이 안 죽어서 그래요.

 

8.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의 말. 재판을 앞두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는 것이다.

 

제가 이 마지막에 여러분들에게 좀 임팩을 줄려고 고민 밤새 고민했는데 새벽에 탁 떠오르더라고,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의 말이에요. 재판을 앞두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당시의 사회적인 통념은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는 거지요. 그래서 사회적인 통념으로 안중근 의사가 죽음을 회피할까 봐,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은 안 죽으려고 한다면은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 저는 우리 주일학교 교사가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교역자들이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 다음에 담임목사가 이런 사람이 당임목사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는 죽더라도, 교회가 세워 지는 것, 그 다음에 또 뭐라 하는가 하면은,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성령의 교감이 있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求乞]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어머니가 이런 사람들이 있느냐 말입니다. 기업하는 사람들의 어머니가 이런 사람이 있느냐 말입니다. 아들 목사 시키려고 하는 부모가 이런 부모가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아이들이 판사 되고, 국회의원 되고, 대통령 되고, 뭐가 되기 전에 이 마음이 있느냐 말입니다.

 

네가 항소를 한다는 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일이다. 남의 일이 멋있다고 하기 전에요 그 멋있는 것이 여러분들 것이 되어야 되요. 네가 만약 나라를 위해 이 일은 즉, 네가 대한민국을 위한다고 하면서 할빈에서 이또히로구미에게 저격을 하고 도망도 가지 않고 그 현장에서 네가 잡혀서 재판을 받는데 마지막 말이 뭔 줄 압니까?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영생이 있는 자만이 자식에게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살 생각하지 말고 죽어라. 여러분 우리 교회에 저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 다니고, 이런 사람들이 장로 되고, 이런 사람들이 권사 되었으면 해요.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세요. 전부 자기 살려고, 대의명분 좇고 자기의 정당성 좇고, 그 논쟁이 얼마나 교회에 많아요. 차라리 죽지요.

 

저는 우리 주일학교가 이런 교사들에 의해서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배출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길 바라고, 조그마한 이익 자기 살려고 나라는 엉망진창 되는데 그런 말로만 나라 나라 국민 국민 하는데 그 말과 주장이 나와 국민을 망치고 죽이는 것,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게 얼마나 많아요. 왜 성경에서 오늘 이 고린도전서 이 말씀에 진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도 여러분들께 말씀 드렸잖아요. 재난지원금 어제 재닌지원금 가지고 우리가 대접을 받았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스 같이 저렇게 복지 하다가 나라 곳간[庫間] 비어서 나라 망하게 한다고. 맞는 말이에요. 틀린 말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다면은 행동이 달라져야 되는 거에요.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 경제가 이런데 돈 나누어 주어서 사람들이 돈 써서 소상공인들이 경제가 돌아서 나라 살린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둘 다 틀린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둘 다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싸운다고. 그 주장에 옳고 그름 보다는 어느 것이 나라에 유익인가, 저같이 생각해야 되요. 저는요 그 두 싸움 속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가 지금 세대가 세 가족 세 명인데 그것 80만원 없어도 살겠더라고, 있으면 좋지요. 없어도 살겠더라고. 그런데 그것 목메는 사람들도 또 있거든요. 그래서 내 생각이 어떤 생각이 더는가 하면은 나라를 위해서, 그래 나 이것 없어도 사니까 나라 곳간을 위해서 절반을 기부하고, 교회 어려우니까 절반은 교회 헌금하고 하자. 어느 게 나라를 살리는 거에요.

 

입으로 애국하고 나라 위한다고, 침 튀기면서 말하는 그게 애국이에요, 저같이 생각하는 것이 애국이에요. 어느 게 진정한 나라를 위한 것이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나 주장의 옳음을 위해서 침 튀기고 거기에 현혹되지 말고요, 어느 주장이 옳은지는 몰라요, 주장은 다 옳아요. 그러나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고, 진정한 교회를 위한 것인가? 이 판단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고 자식에게 말할 수 있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모인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