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겸손한 아비(에베소서 6: 4)주일 예배 김종웅 담임목사

차주희 2020. 5. 8. 12:03

 

 

 

 

 

겸손한 아비

에베소서 6: 4

2020 5 3일 주일 낮 예배

                                                                                                                                              No. 467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멘

 

●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더 좋은 세상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70인의 제자와 12제자를 파송 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복음을 전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어린이 주일이 되면은 부모님이나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사주지요. 굉장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또 설교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 중의 최고의 선물이 더 좋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그저 물질적인 눈에 보이는 선물, 복 이런 것은 정말 시간이 지나면은 사라지지만은 성경은 보다 근본적인 것,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하나님 나라 아니겠어요. 그의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도 그래서 이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또 우리 보교역자들에게도 그랬습니다.

 

1. 차이나는 클라스 김누리 교수의 강의 들어 보기. 첫 번째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된다.

 

팟방에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라고 하는 프로를 링크해서 좀 듣도록 해라. 여러분들도 들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147회에 중앙 대학에 있는 독어독문학과에 김누리 교수의 강의는 좀 반듯이 다 들었으면 해요. 강의 제목이 뭐냐 하면은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독일 교육 이런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아이들에게 뭐 좋은 선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정말 새로운 나라 새로운 국가 더 좋은 나라를 선물로 주는 것같이 더 귀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그 강의를 여러분들이 들으시면서 그냥 듣고 끝나 버리면은요 아 그 교수 강의 좋았지 이렇게 끝나 버립니다. 좋은 강의는 여러분들의 가치관이 되어져야 되요.

 

그래야 그 강의의 효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에요. 설교를 듣고 끝나니까 아 오늘 목사님 설교 은혜 있었어 좋았어 끝나 버립니다. 설교가 가치관이 되지 아니하면은 삶이 변화되지 안 해요. 그저 하나의 죽은 종교인이 되어져 버리고, 또 가치관의 변화가 없으면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설교를 듣고 난 뒤에 이 설교를 자기 말로 해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차이나는 글라스에 김누리 교수 강의를 듣고 내 말로 다른 사람에게 한번 설명을 해 봐요. 그래야지 그게 내 가치관이 됩니다. 설교도 왜 교인들이 그렇게 오래 예수 믿으면서도 변화 되지 않는가, 설교로 자기 말을 안 해봐요.

 

예수님께서는 70인의 제자와 12제자를 파송 한 것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복음을 네 말로 해 보라는 거에요. 그게 전도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세력에 확장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이 내 삶의 가치관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살게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팟방에 링크해서 다 듣도록 해라 했는데, 저도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세 번 들었어요. 또 오늘도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그 강의 내용을 그대로 말하는 게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성경적으로 왜 독일은 그런 교육을 하게 되었으며, 그런 교육의 바탕이 왜 이루어졌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새로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성경적 관점에서, 보는 눈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제가 설교 주제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때에도 저는 첫 번째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 말씀이 뭐냐 하면은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오는 너희 자녀롤 노엽게 하지 말고, 라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제가 87년도에 이태원에 있는 대성교회의 초등부를 담당했는데요, 깜짝 놀랐든 것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상을 줄 때에 이 아이들이 상을 받고 나가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요. 그 상이 뭐였는가 하면은 학용품이었거든요. 저는 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에는 학용품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80년대에 왔을 때에는 이제는 학용품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선물이 되지 못하는데, 교회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학용품으로 선물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3호터널을 지나서 명동에 가서 제가 사례를 17만원 받을 때인데 그 받은 사례를 가지고 매주일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 시계 사서 주었습니다. 하나도 안 버리고 너무나 좋아해요. 그러고 아이들이 제 눈빛만 봐도 아이들이 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을 하더라고, 오늘도 여러분 정말 우리가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 주려고 할 때 우리 어른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어야 되요. 그런데 오늘날 부모들 중에 보면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녀에게 주려고 하는 부모들이 참 많습니다. 왜 그런가? 교만해서 그래요. 교만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다인 줄 알고, 모든 것을 그 경험의 잣대로 맞추어서 바라보는 겁니다.

 

2. 겸손은 회개를 낳는다. 반성, 회개, 누가 하는가,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성경 앞에 겸손해서 우리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가 됨으로 최고의 선물을 주는 그런 어린이 주일이 되기를.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보면은 우리 얼굴이 각자 다르듯이 우리의 능력도 다 다르다.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 많지요. 자기가 보는 것이 다인 줄 알고, 그것 가지고 가치 평가 하고 말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부터 구원이 시작이 되는데, 그 겸손은 회개를 낳는 겁니다. 반성, 회개, 누가 하는가,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용품이 최고의 선물이었는데, 지금도 그 것 주어야 된다고. 수구지요. 전통을 고집하는 것. 아이들이 원하는 것. 제가 그랬을 때에 교회 어른들이 전도사 때문에 교회 망친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교회에서 어떻게 장난감을 선물로 줄 수 있느냐고.

 

어떻게 시계를 선물로 주느냐, 여러분 정말 오늘도 여러분들의 자녀를 왜 망치고 좋은 세상 못 주는가, 부모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꾸 주려고 그래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줄려고 해야 되요. 그것이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한 설교는 제가 14년도에 여러분들께 왜 어떻게 해야 노엽게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말씀을 드렸어요. 두 번째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지만은 유익한 것을 주어야 되요. 그럴 때에도 부모가 볼 때 내 아이에게 유익한 것 주는 게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익한 것을 주어야 되는데, 많은 부모들은 자기가 경험한 시대의 그 가치관을 가지고 이게 유익한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주니까 시대가 완전히 변화 되었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세계가 그대로 답습[踏襲]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씀이 뭐냐 하면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들이 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고,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성경 앞에 겸손해서 우리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가 됨으로 말미암아 최고의 선물을 주는 그런 어린이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면은 첫째는 자녀들의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각자의 능력이 다 다르지요. 그런데 부모는 뭐냐 하면은 자기의 경험에 의해서 우리 아이는 뭐든지 잘할 수 있는데 안 한다는 거에요.

 

그 잣대가 어디에 갖다 붙이는가 하면은 공부로서 전부 그런다고요.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에요, 여러분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찬양 노래하는 것이나 타고난 재능에 따라서 그 능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한건영 선생이 이찬양은 저는 신발 벗고 좇아가도 못 가요. 그런데 내 자녀에게 건영이 같이 노래 잘 하게 하려고 하고, 또 어떤 화가보다도 위대한 그림 그리게 하려고 하고, 손흥민이 같이 축구 잘 하게 하려고 하고, 그리고 공부도 잘하게 하려고 하니까 자녀들이 노엽다 말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보면은요 우리 얼굴이 각자 다르듯이 우리의 능력도 다 달라요.

 

3. 큰 그릇이 있고, 작은 그릇이 있고, 금 그릇이 있고, 질그릇이 있다. 성경적인 가치관은 뭐냐 사람은 누구나 잘 못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라. 성경 해석에는 언제나 맞는가 아닌가 상고해야 된다.

 

그래서 디모데서에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큰 그릇이 있고, 작은 그릇이 있고, 금 그릇이 있고, 질그릇이 있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금 그릇은 귀한 것이고, 질 그릇은 귀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가치의 잣대로 판단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어려운 겁니다. 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성경적으로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세요,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앞에서 말씀 드렸지만은 겸손한 생각이에요. 똑 같은 2차세계대전에 전범국[戰犯國]인 일본과 독일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가잖아요. 독일은 2차세계대전 이후의 독일과 이전의 독일은 완전히 다른 나라 입니다. 일본은 이전의 나라나 지금의 나라나 같아요.

 

그 중심의 뭐냐 하면은 성경이지요, 독일은 왜 그랬는가? 독일은 기독교 국가입니다. 근대 독일이 되기 전에 프로이센[Preussen] 제국이라고 신선로마 제국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의 모든 가치가 그들의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은 오늘날도 우리 한국은 너무나 유교적이고 유대교적인 가치관으로 모든 것을 봐요. 그래서 교회가 시끄러운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니면 참 편한 것은, 제가 기독교적인 성경적인 가치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은 뭐냐 하면은 사람은 누구나 잘 못할 수 있다. 독일은 기독교 국가로도 그렇게 극악무도한 아우슈비츠[Auschwitz]의 사건 사람을 6백만 명을 가스실에 넣고 그 시체에서 나오는 기름을 가지고 비누를 만들고 화장품을 만드는 극악무도한 짓은 기독교 국가에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나 기독교 국가는 성령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아는 거에요. 여러분 이 사람이 성령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는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합리화 하느냐,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나도 부족하다고 알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냐 그것으로 안다고요. 로마서에서 바리새인이었든 유대교인 이었든 바울은 의의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라. 그래서 독일의 교육은 여러분들이 김누리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은 그 기초가 뭐냐 하면은요 저항 교육, 비판 교육 입니다.

 

저항하지 아니하고 비판하지 아니하면은 그 교육은 쓸모 없는 교육이라는 거에요. 우리의 생각 우리의 신앙 생활하고 굉장히 다르지요, 우리는 순종하는 교육을 시켜요 유교입니다. 잘못된 기독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멘 주의 말씀에 아멘 이라고 할 때에도 주의 말씀에 아멘 이지,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그리한가 상고해서 신사적이었다 그래요. 여러분 성경 해석에는 언제나 맞는가 아닌가 상고해야 되요. 비판해야 되요. 그래서 제가 우리 부교역자들에게도 항상 제 설교를 비판해라, 왜 더 성경적으로 되기 위해서. 여러분 회개는 어디에서부터 되는가? 비판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져요.

 

그래서 독일이 왜 그랬는가? 우리가 2차세계대전에 왜 그랬는가? 1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난 뒤에 우리가 전쟁 배상금을 물을 때 너무나 힘이 드니까 히틀러가 안 하겠다고, 강한 독일을 군국주의[軍國主義]로 나치즘[Nazism]으로 무장을 시킬 때 모든 국민이 하일히틀러[Heil Hitler]저항을 안 한 거에요. 그래서 독일이 우리가 엄청난 죄를 저질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요. 그래서 그 이후의 교육은 저항하지 않고, 비판하지 아니하면은 안 된다는 거지요. 여러분들 오늘날까지 내 자녀에게 공부의 능력을 극대화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저항해야 되고, 비판해야지 자녀들이 노엽게 되지 않는다고요. 여러분 그래서 독일은 그 이후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이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갔던 거에요.

 

4. 위대한 독일 국민인 것은 왜? 회개하는 성령이 그들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주려면은 노엽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분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독일이 여러분 독일의 수상이 시리아 난민 올 때에 모든 유럽이 문을 잠글 때, 독일은 백만 명 받아 들였다고요. 백 만 명 받아 들이기로 한 그 수상을 향하여 모든 나라가 다음에 정권 잃을 거라 했는데, 그는 여전히 정권을 잡았다고요. 위대한 독일 국민이에요. 왜 회개하는 성령이 그들 속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존경 받는 나라가 된 거에요. 지금 미국이나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힘을 가지고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런 때에, 오늘도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때,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 자녀의 능력을 너무 여러분들 무한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각자에게 주었다는 거에요. 이것 인정하는 것이 겸손한 부모에요. 이것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데, 그런 이야기 해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지 몰라요. 이기기 위해서 즐기라는 말이에요. 원래 그 말은 그 말이 아니에요. 이기려고 하지 말고 즐기라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기려면 즐기라고 한다고. 얼마나 모순된 말이에요. 자기가 타고난 재능과 타고난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어요. 행복하지 않는 거지요. 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되는가 하면은 저는요 내가 살아온 세대하고, 우리 자녀들이 사는 세대가 반듯이 다르다고 봐요.

 

저는 우리 세대에는요 공부 안 하면 굶어 죽는 세대였어요. 생존의 시대였다고. 죽느냐 사느냐로 공부를 해야 되지만, 지금은 그런 우리들의 수고로 인하여 이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잖아요. 저는 이번에 코로나19에 깜짝 놀랐어요. 전 국민의 가정에 백 만원씩 준다는 것, 이제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도 여전히 옛날의 가치관을 가지고 과거급제[科擧及第]하듯이 아이에게 공부만 강요해 버리니까 얼마나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자녀를 기르고, 자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줌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노엽게 하는가 하는 것을 깨달아서 우리 자녀들의 세대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에요. 왜 우리가 그렇게 처절하게 살았어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살기 위해서 못했는데, 내 자녀에게는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도록 내 그래 살았다.

 

그랬으면 그런 사회를 향하여 내 가치관으로 아이에게 강요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은 또 그 다음 자녀들에게는 더 능력을 자유롭게 여러분 서로 인정해서 각자 각자의 맡은 능력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 오늘도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주려면은 노엽게 하지 마세요. 노엽게 하는 이유는 자녀들의 능력의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마세요. 저는 30년 전에 독일 선교사로 있었든 안재웅 교수한테 내가 들은 이야기인데 김누리 교수도 이야기 하더라고. 참 독일이 좋은 부분은 뭐냐 하면은 아이들이 대학을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는 초등학교 선생이 결정을 한대요.

 

5. 독일의 의사가 되는 교육 제도.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사소한 규제로 자녀를 얽어 매지 말라는 거에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부모님들이 그 결정을 다 따른다는 거에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여러분 우리나라도 일반 학문은 4년으로 학사 학위를 주지만은 의사는 거기에 2년 더 해야 되요. 그리고 인턴[Intern]하고 레지던트[Resident]해요 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 의사이기 때문이에요, 자격 시험도 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생님에 대한 자격을 그렇게 요구합니까? 사람이 죽고 사는 의사보다 더 중요한 게 아이 한 인생이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 선생님이에요. 그래서 독일은 4년 동안 교과 과목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나면은 일차 시험을 친대요. 시험을 치고 통과하면 2년 동안 또 실습을 해서 2차 국가 고시에 통과해야 교사가 되는 겁니다.

 

중등 교사가 되려면은 그리고 난 뒤에 3 4년 동안 논문을 또 써야 된대요. 국가고시 치는 것이 시작이 아니고, 끝이 아니고 그때부터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자격 있는 교사에 의해서 아이들이 길러 지는데 한 아이 한 반에 한20명 되는 아이를 한 교사가 4년을 한대요. 그러니까 부모보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더 잘아는 거에요. 그래서 얘는 학문에 능력이 없으면은 직업으로 가게 한다는 거지요, 또 부모도 그것을 인정한다는 거지요. 사회적으로도 여러분 우리 이런 사회를 좀 지향해 보자고요. 독일에는 김누리 교수 강의 들어 보면 여러분 뭐 원어로 이야기 했지만 저는 독일어를 못하니까, 고등학교 나오면은 벤처 타고, 대학 나오면 골프 탄다, 그게 독일 사회에요.

 

일찍 경제활동을 해야 더 잘 산다는 거지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얼마나 공부를 가지고 자녀를 노엽게 하는가? 공부도 능력입니다. 공부 능력 뛰어 난다고 모든 게 뛰어 나는가 그렇지 안 해요. 세상은 그렇더라도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만이라도 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자녀를 길러 나갈 때 우리 다음 세대에는 지금보다도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겸손해 지세요 좀, 너무 교만해요, 자기 경험을 절대 해요, 내 경험은 벌써 20 30년 전 거라고.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화되고 있는데. 두 번째로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사소한 규제로 자녀를 얽어 매지 말라는 거에요.

 

참 여러분 우리는 그러잖아요, 그냥 자식 이 얘가 이것 하나 잘못하면 인생 끝나는 줄 안다고. 디도서에 이렇게 말해요. 이 디도서 번역도 참 잘못 되었어요. 개역 개정이 아니고 여러분 이번에 번역된 것보다 이전 성경이 훨씬 더 원어[原語]에 가깝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해석을 언제나 비판하라는 거에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성경은 그래 되어 있어요.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를 가져요. 그런데 원문은 또 이전에 개역 성경에는 선한 일을 도모하는 친 백성이라 그랬습니다.

 

그 친 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제가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 강조했는데, 우리 어릴 때 소 먹이러 가면은 쇠줄을 길게 느려 뜨려 가지고 거기에 딱 고정을 시켜 놓아요. 그러면 그 쇠줄 안에서 고삐 안에서는 소가 자유롭게 뜯어먹어요. 뭐 토끼풀 먹든지, 뭘 먹든지 그것은 소가 알아서 하는 거에요. 친 백성이라는 말이 이런 말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만들어서 자유롭게 살도록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요 제 아버지는 고신총회 있는 부산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너무나 사소한 것을 가지고 제 신앙의 규제를 많이 했어요. 영화 보면은요 지옥 가는 줄 알았어요. 우리 교회에 이번에 코로나19로서 우리 어른들 와서 바둑을 두면서 하루 시간을 잘 보냈는데, 제 아버지는 바둑판 장기판 보이는 순간 사탄 놀음이라고요 도끼로 잘라 버렸든 아버지에요.

 

6. 죄책감은 타인의 규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지만은, 죄의식은 자기의 깨달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져 보기도 하고, 상처도 받아 보고, 실패도 해보고, 누가 그럴 수 있는가, 겸손한 부모다.

 

그냥 주일에서는 뭘 해서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사소한 것을 너무나 많이 얽어 매요. 그러면 내 속에 생기는 것이 뭐냐 하면은 죄책감이었어요. 죄책감은 굴종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선악의 판단에 대한 능력이 없어져 버려요. 그래서 독일은 죄책감을 가지는 교육 하지 않도록 성교육이 그 교육이래요. 그게 정치 교육이고 나아가서. 저는 언제부터 진짜 신앙인이 되었는가, 제가 성경을 보는데요 진짜 깜작 놀란 것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선악과를 따먹을 자유까지 주었더라고, 하나님은 그 하나님이에요. 죄를 지을 자유까지 주었어요. 죄를 짓도록 했는가, 죄를 짓고 난 뒤에 복음을 통해서 죄라는 것을 의식하게 한 거에요.

 

죄책감은 타인의 규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지만은, 죄의식은 자기의 깨달음 속에서 생기는 거에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제가 종교적 권위를 가지는 목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대로 생각해요. 말도 잘 안 들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죄의식을 주는 거에요. 이것은 시간이 필요해요, 때가 되어야 되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참 인문학적으로 그러잖아요. 실패[失敗]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이야기하는데, 조그마한 사소한 규정 왜 실패하지 마라는 거지요, 성공만 그러니까 성공이 안 일어나는 거에요. 창의가 없는 겁니다. 왜 우리나라가 노벨상 못 타는가? 우리 부모들 탓이지요.

 

세부적[細部的]인 것 까지도 규정 다 해요, 그게 유대교 아닙니까 그게, 그게 탈무드고 그게 미신화 아니에요. 성경의 규정은 굉장히 광범위해요. 하나밖에 없어요, 나중에 하겠지만, 그 하나의 범위 안에서 자유로운 선택, 때로는 죄도 지어 보고. 오늘도 여러분 왜 우리가 사소한 규정이에요, 공부 좀 떨어지면은 그 다음에 내 자녀의 인생 끝난다 생각해요. 자기 생각이지, 전혀 상관없는 거에요. 저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 합니다. 사람 인간들이 회는 자연산 좋아하면서 얘는 양식으로 키우려고 한다고. 그러니까 얘들 비실비실한 거에요. 맛도 없는 거에요. 때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져 보기도 하고, 상처도 받아 보고, 실패도 해보고, 누가 그럴 수 있어요, 겸손한 부모지요.

 

자기의 경험 실패한 경험도 절대화 하지 않고, 성공한 경험도 절대화 하지 않고요. 우리가 여러분 공부라는 그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사소한 규정하잖아요. 규정이 뭐냐 하면은 다 공부에 방해 되는 것들, 자르는 것, 왜 우리가 그래야 되는가, 제가 보는 경험은요 짧은 경험에 의하면은 성공하고 건강한 사람은요 자존 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존 감은 자그마한 성공에 자만하지도 않고요, 자그마한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자존 감 강해요. 사소한 규정으로 하니까 전부 자존 감이 떨어지는 겁니다. 우리나라 어느 심리학자가 이야기하더라고, 대한민국에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려면은 관악산 가보라고, 관악산 밑에 다 모여 있다고, 공부라는 우월 의식 하나가 다른 것 가지고 전부 자존 감 낮아지는 거에요.

 

7. 자녀들에게 정말 좋은 세상을 물려 줄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시키려 하지 말고, 자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살펴야 된다. 성경의 유익성을 알아야 되요. 성경이 유익하다 그랬어요. 편애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지요. 어디에서 편애 나와요? 비교와 경쟁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지도층이 되니까, 이번에도 국회의원들이 전부 고시페스한 사람들이 40몇 명 되니까 건강한 사회가 안 되는 겁니다. 왜 젊은 사람 국회의원 세워 법 잘못 만들면 큰일난다는 거지요. 큰일날지 안 날지 어떻게 알아요. 앞으로의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한 세계하고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 지는데, 코로나19에 백만 원씩 주는 이런 나라의 세계가 펼쳐 지리라고 우리가 누가 생각 해봤어요. 오늘도 여러분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겸손해야 되요. 우리나라에 보세요. 좌파 우파 이념 전부 뭐 자기의 경험을 절대시해 가지고 보편화 시켜 버린다고.

 

그래서 그러면은 공산화가 되고 이러면은 나라 망하고 이러면은 뭐 어쩌고 저쩌고, 안 되잖아요. 오늘도 우리에게 자녀들에게 정말 좋은 세상을 물려 줄려면은 내가 원하는 것을 시키려 하지 말고요, 자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살펴야 되요. 내가 유익한 것을 줄려고 하지 말고요, 성경의 유익성을 알아야 되요. 성경이 유익하다 그랬어요. 세 번째로 편애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지요. 어디에서 편애 나와요? 비교와 경쟁입니다. 독일은 비교하고 경쟁하는 교육을 제일 나쁘게 본대요. 파쇼 교육이라 그래요. 강자만 살아남는. 우리나라가 지금 그런 교육이지요. 히틀러 교육이지요. 그래서 독일은 시험이 있기는 있는데 독일의 시험은요 날짜를 안 가르쳐 준대요. 날짜 가르쳐 주면은 부모가 닦달 하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그 공부가 자기 실력이 되는 거지요. 우리 날짜 아니까 벼락치기 공부해 가지고 암기력 뛰어난 얘가 성적 좋고, 시험치고 나오면 싹 잊어버리잖아요. 우리의 지식이 하나도 우리의 삶이 되지 못하잖습니까, 성경은 비교하고 경쟁하지 안 해요. 우리 한국 교회도 보면 교회끼리 얼마나 교인끼리 얼마나 경쟁시키고 비교해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편한 게 뭐에요, 제가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헌금 소리 안 해요.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시간 이야기 안 해요. 각자 자기에게 주신 은혜의 불량대로 하라는 거지요. 하고 어느 것이 더 귀하고 덜 귀하고가 없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복음이에요.

 

독일에도 여러분들이 다 안 들을 것 같아서 제가 잔소리 삼아 할게요. 의사 되는 것은 인기가 있대요, 그런데 독일의 의사가 되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래서 선택을 할 때에 학업성적은 20% 밖에 안 본데요. 무엇이 가장 배점[配點]이 큰가? 대기성적 이라네요. 일년 기다리고, 이년 기다리고, 삼 년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배점이 커 가지고 3년 기다리면 의대 다 들어간대요. 우리 좀 심각하게 생각해야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집 사주고, 좋은 것 사주고, 전부 자기가 원하는 거에요. 자기가 생각할 때 유익한 것을 말한다고, 이미 그 바탕은 우리가 만들어 놔 놓고, 있으면서, 우리 다음 세대는 저는 그래 생각해요. 교회마저도 교인끼리 경쟁 얼마나 시킵니까? 보험회사같이.

 

8.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을 주려고 할 때 좋은 세상을 선물로 줄 수 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 교훈과 훈계라는 것은 종교적인 규범이나 사회적인 규범이나 윤리적[倫理的]인 규범도 아니고,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이다.

 

교회 구역 그래프[Graph] 다 그려 놔 놓고 그런 교회 다 성장하지요. 행복 안 해요. 이말 깊이 가지세요. 성경은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익한 것을 주려고 할 때 좋은 세상을 선물로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누가 그러는가, 하나님 믿는 거지요, 하나님 믿는 것은 뭐냐 하면은 내 경험이 절대가 아니라는 것부터 하나님 믿어 지기 시작하는 거에요. 전부 자기의 경험 자기가 본 것을 절대화해 가지고 얼마나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회개 입에 올리고, 뭐 하는데 나는 머리 아파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유익한 것이 주의 교양과 훈계[訓戒]라 그랬어요. 그럴 때에도 교양은 말로 하는 교육이고, 훈계는 행동으로 하는 교육이라 했는데, 교육만 머리 속에 있어요. 주님의 의가 빠져 있어요. 주의 교양과 훈계 뭡니까?

 

사소한 규정 613가지 탈무드 그 많은 규정 없어요, 딱 하나에요. 주의 교양과 훈계, 아이들에게 무엇을 본을 보여 주고, 무엇을 말해야 되는가? 공부해라 텔레비 보지 마라, 이게 아니에요. 게임 하지 마라 아니에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왜 하나님 사랑해야 되는 줄 아세요?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교회 와서 충성하고, 전도하고 목사님 말씀 잘 듣는 것이라는 것은 목사가 하는 이야기지요. 왜 하나님 사랑하라 하는가 하면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자기 사랑이에요.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최고의 부모를 사랑하는 게 뭐에요, 엄마 나를 이렇게 낳아 주어서 감사해요. 그것보다도 부모를 사랑하는 말이 어디 있어요.

 

부모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 엄마 나 왜 이렇게 낳았어, 하나님 사랑은요 코로나19에도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이 하나님 사랑 아니에요. 자기를 사랑하는 거에요. 사회적인 통념이 무너져야 되지요. 그것 깨기가 쉽지 안 해요. 우리는 너무 규범이 많아요. 여러분 뭐 규범 깨는 게 뭐에요? 예수 믿고 이런 자유가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되요. 우리 사회에 남자의 키는 뭐 175 이상 되야 되고, 뭐 여자의 외모는 이래야 되고, 전부 사회가 만들어 낸 죄악 된 규정들이잖아요. 최소 한도로 미국, 저는 미국 닮아서는 안 된다 하는데, 이것은 가서 닮으세요. 미국에 가서요 금기 사항 3가지 있잖아요, 하나는 외모로 가지고 사람을 말하면 안 되잖아요.

 

미국 한번 가보세요, 흑인들 여자들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 배꼽티 입고 다녀요. 생긴 것 가지고 사람 판단 안 하거든요. 왜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우리는 뭐 키다리는 전봇대 뭐 땅딸이 이런 것 다 무너져야 되요. 제가 그런 이야기하면 키 작다는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보면 네가 더 크다고, 꼭 키를 땅에서 제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오늘도 저는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들의 외모라든지 여러분들의 삶의 모습이라든지,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시는 것, 하나님이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공부 못하는 게 부모 탓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준 것인데, 공부 못하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해 주어야지요.

 

교훈과 훈계라는 것은 종교적인 규범이나 사회적인 규범이나 윤리적[倫理的]인 규범도 아니에요.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이에요. 독일은요 학교 교과 과목이 행복이라는 과목이 있대요. 행복 하려고 공부 하는 거에요. 성공도 행복 하려고 성공하면은 성공하는데 행복 안 하면 성공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했는가 우리를 행복한 사람 되게 하려고. 제가 여러분 우리 교회에 존재의 이유를 그러잖아요.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거에요. 그래서 헌금 내라 소리 안 하잖아요. 봉사 안 해도 제가 말 안 하잖아요. 스스로 깨닫도록. 죄책감 안 주잖아요.

 

9. 자녀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자기를 사랑하도록 해 주어요. 그게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다. 왜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줄 아세요? 이웃을 사랑해야 행복한 사회가 된다. 나만 행복하면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행복한 사회에서 행복한 자아가 있어야 된다.

 

오늘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자기를 사랑하도록 해 주어요. 그게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겁니다. 그래야 자녀가 행복한 거에요. 우리가 그런 사회를 위해서 우리가 희생해 온 거에요 우리가. 사회적인 규범과 획일화 교육 이런 것을 통해서 그런 사회를 물려 주려고 우리 희생했잖아요 우리 인생들이. 제가 언젠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인문학 책 목사들도 좀 읽어야 되요. 2002년도 월드컵에 대한민국의 열정에 반해서 우리에 남아 있었든 옥스포드 출신의 특파원 그가 쓴 책,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기적으로 성공을 한 거에요. 기쁨은 없어요. 오늘 이 설교가 뭡니까?

 

우리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 너무 많이 희생했잖아요. 기쁨 찾자는 거에요. 행복해 지자는 겁니다. 이 김누리 교수도 어디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한국을 규정할 때에 일상의 사막화로 규정한대요. 우리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못 느껴요, 밖에 있는 사람은 느껴요. 우리가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사람 몰라서 하지 마세요,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보는 것이 밖에 있는 사람의 눈이에요. 그게 겸손한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안의 생각 때문에 여러분들을 모르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는 다 안다고 해요.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을 보라고, 설교에 비추어서 보라고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듣고 싶은 말 들으려 하지 마세요. 들어야 할말 들으세요.

 

설교는 듣고 싶은 말 들려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선물 좀 준 것, 금방 사라져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자녀의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사소한 규정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는 것은 뭐 때문인가, 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도록. 그래서 행복 해지도록. 참 우리 가족 이야기 죄송한데, 우리 대열이가 용인 대학 나왔어요. 공부 가지고 잣대를 한번도 안 드려 댔거든요. 몸이 좋아서 몸 좋은 것 가지고 잣대를 대니까 자존 감이 높아졌잖아요. 공부 때문에 자존 감이 한없이 낮아진 아이를, 대학 가더니만 용인 대학 가서도 자기가 대한항공 들어간다고 꿈을 꾼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래 자기 친구들은 전부 노는데 얘는 엠티도 안 가고 4년 준비해 가지고 들어가더라고, 자존 감이 높아서 그런 거에요.

 

자신을 사랑하게 하자 자신을,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두 번째 왜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줄 아세요? 이웃을 사랑해야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나만 행복하면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에요. 행복한 사회에서 행복한 자아가 있어야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면은 그래야 행복한 교회가 되는 거에요. 자기만 사랑하면은 행복한 교회가 되지 못해요. 자기만 사랑하는 교인들 많아요. 그래서 국가나 교회는 행복한 교회와 국가가 안 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그것을 외부의 눈에서 우리를 평가할 때 뭐라는 줄 아세요, 극도의 개인주의라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 얼마나 극도의 개인주의로 해요.

 

10.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그래서 아마 행복한 사람 많아요.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타인도 사랑하자. 그래야 진정한 행복한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내 가정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가정도 소중할 때 내 가정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분 꿈밤 꿀밤 같은 게 뭐냐, 행복한 교회 만들려고, 행복한 국가 만들려고, 김누리 교수에게 질문을 하더라고 누가 거기, 독일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해 달라고 이야기 하니까 안 그래도 자기가 독일 갔는데 열차를 타고 가는데 엄마하고 아이가 있어서 물었대요, 학교에 다니는데 불만이 학교에 대해 물으니까, 아이가 자기는 하나도 없고, 행복하대요. 부모에게 물었더니 부모가 한참 고민하더니만 하는 이야기가 뭔가 하면은 없다 이랬대요. 우리 일본 같은 사회 줄라 하지 말자. 일본의 그 뭐요 전쟁 우리가 뭐 그런 것, 독일과 같이 우리가 기독교 국가 되야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우리 잘못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 우리 잘못 살아왔어요. 이제 이 말씀 앞에 우리가 다시 돌아보면서 이 설교 이전에 여러분들괴 이후에 여러분들은 달라져야 되지 않겠어요? 우리 교회 다니면서 여러분들, 여러분들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그래서 아마 행복한 사람 많아요.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타인도 사랑하세요. 그래야 진정한 행복한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기주[利己主義]로 개인주의로 자녀를 가르쳤어요, 그래서 저는요 죄의 근본은 이기라고 그래요. 교회에도 보면은 그저 자기 자녀 자기 가정만 아는 그것 잘하는 게 신앙 생활 잘하는 거잖아요. 내 가정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가정도 소중할 때 내 가정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을 아셔야 되요.

 

자녀에게 정리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주려고 하지 말고, 자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 살피세요. 내가 유익한 것을 주려고 하지 말고, 성경이 유익하다고 하는 것을 주려고 해야 되요. 그래야지 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훨씬 더 좋은 세상을 선물로 줄 수 있고요, 이런 가치관의 경험 속에서 큰 우리의 자녀들은 그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현명한 부모가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항하세요. 비판하세요.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내주 교통하심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선물로 주려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모여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