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懲戒]4 (요엘 2: 18-27)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20. 4. 17. 17:47

 

 

 

코로나와 하나님의 징계4

요엘 2: 18-27

2020 4 12일 부활 주일 낮 예배

                                                                                                                                              No. 464

18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19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21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부활절의 의미를 새겨서 바로 살아갈 때에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우리의 삶에 경험 된다. 여호와 신앙에 대한 체계가 진짜 신앙인 줄 알고 믿는 것. 교회가 종교적인 억압과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된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나 또 아니면은 국가적으로도 절기를 지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저 절기가 단순히 어떤 행사에 지나치면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절기의 의미를 우리가 알고 회복하게 되면은 우리의 삶이 정말 행복하고 좋아집니다. 어쩌면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거나 여러분들이 거듭난 자로서의 모든 삶에서 자유 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절기를 그저 행사로 치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나라가 농사를 지을 때에 24절기를 지키지요. 24절기를 지키는가 하면은 그 절기에 따라서 살아가게 되면은 그 해 농사가 풍성 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주일 4 19일이 24절기 가운데 곡우라는 절기인데, 아 다음 4 19일은 곡우이구나 이렇게 알면은 의미가 없어요.

 

곡우는 논 농사 못자리를 보는 날입니다. 그래서 곡우가 되면은 못자리를 보는 거지요. 오늘이 곡우 절이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 의미가 없는 겁니다. 부활절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부활절이구나 하면서 칸타타 하고 이러는 것은 왜 하는가 하면은, 부활절의 의미를 새겨서 바로 살아갈 때에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우리의 삶의 경험 되기 때문입니다. 7 4일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독립 기념 일이고, 우리나라 8 15일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날인데, 그날 광복절 날 모여서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다 물도 춤춘다 하고, 광복절 노래 부르고, 행사하는 것, 의미 없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은 우리가 자주 국민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

 

1. 어떤 선지자가 자기가 하는 말을 여호와가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증험과 성취함이 없으면은 그의 말에 두려워하지 말라. 교회가 종교적인 억압과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이제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모든 것을 스스로 지키고 결정해 나아가려고 하는 이런 생각들, 36년 동안 우리 속에 뿌리 박혀 있는 사대주의 식민지 근성을 들어내는 것, 이런 것들이 절기에 있어야 되거든요. 이 부활절의 절기도 똑 같은 겁니다. 이런 절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단이 판을 치는 것이고, 또 그런 이단적인 신앙의 요소가 여러분들의 신앙의 억압과 학대를 가져온다 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요, 신명시 18 22절에 어떤 선지자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입니다. 어떤 선지자가 자기가 하는 말을 여호와가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증험과 성취함이 없으면은 그의 말에 두려워하지 말라, 분명히 말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여러분 이단은 교주가 하는 말에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의 모든 말을 따라가잖아요. 그의 말에 증험과 성취함이 없는데도 두려워하거든요. 저는 그 책임의 일말이 기성 교회, 정통 교회에 있다 라고 생각을 해요. 목사님들이 자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고 말을 하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언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믿도록 만드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에는 이런 증험이 있다. 내가 하는 말에는 이런 성취함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교인들이 목사님의 말씀 안수기도 받으면은 복 받고 목사님에게 기도 받으면은 병 낫고 우리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은 봐라 이렇게 이루어졌어, 라고 하고 목사님을 믿는다고요.

 

그러니까 목사님보다도 더 세게 공갈을 치는 이단이 이야기를 하니까 홀딱 넘어가 버리는 거에요. 목사님의 설교는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이런 증험과 성취함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어서 교인들로 하여금 목사님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만드셔야 되요. 그래야 여러분들의 삶의 예수님 때문에 자유 함이 일어나고, 예수를 믿는 교회에 하나님의 공의가 들어 나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다 이 말입니다. 이 말을 여러분들이 꼭 머리 속에 기억해야 되고, 지난주일 설교도 제가 열 번은 들어 보라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지난주 설교를 녹취한 것을 전부 글로 풀어서 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려 놓았어요.

 

여러분들이 읽어 보고 읽어 보고 해서 여호와신앙의 체계와 우상 신앙의 체계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이제는 앞으로는 여호와 신앙에 대한 체계가 진짜 신앙인 줄 알고 믿어야 되요. 오늘 설교도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열 번은 들어야 되겠지만은 이 설교도 녹취를 해서 교회 홈페이지에 올릴 때에 읽어 보고 읽어 보고 해서 여러분들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서 이제는 종교인 목사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생각에 참 얽어 매는 말은 것에 대해서 자유 함이 일어나고, 이제는 교회가 종교적인 억압과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그런 교회가 되어져야 되요.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시라는 것이다. 그 말씀에 대한 증험이 부활이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다시 너희에게 온다고 한 것이 재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어떤 의미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시라는 거에요. 그 말씀에 대한 증험이 부활이에요. 그저 육체의 소생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 되심과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시면서 이 말에 대한 증험이 부활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되는가 하면은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만을 받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구나, 라는 것을 받아 드려야 되요.

 

그래서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이러한 절기를 통해서 그러한 삶을 회복하는 것이 예배의 참석의 목적이다 이 말입니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 노릇 해 준다고 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유산만 받으며 살아야 된다 이런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혈연의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며 사는 삶,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이라는 것, 또 부활절 절기를 지키는 것은 예전에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삶의 경쟁의 대상이고,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는데, 그래서 옆의 사람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제 옆에 있는 사람을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며 사는 삶. 이런 삶을 살아 가려고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다 이 말입니다.

 

이런 신앙 생활에 대한 결심을 하는 것이 부활절 절기이다 이런 말입니다. 또 그리고 왜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되는가 하면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 오실 때에는 우리의 그러한 삶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라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재림이 없으면 우리가 그렇게 살 필요가 없어요.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상대방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면 상대방을 이기고 상대방에게 착취하려고 하는 세상 속에 내가 상대방을 섬기고,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면은 분명히 우리의 삶에 고난과 고통이 있는데 왜 그래 살아야 되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왜 확실한가 하는 것은 부활 때문이에요. 그래서 부활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뭐라 하는가 하면은 내가 다시 너희에게 온다 그랬어요. 그게 재림이거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 사도신경에는 장사 지낸바 되고, 3일만에 부활했다 이러는데, 영어 사도신경에는 장사 지내서 음부로 내려가셨다가 있어요. 이제 세상에서 떠나서 음부로 세상에 내려 가셨다가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거에요. 이 성취함이 있기 때문에 다시 파루시아[Parousia]재림하실 것을 믿는 신앙, 나는 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는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해서 우리 가운데 다시 오신 것이 역사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기 때문에 저는 우리 옆에 있는 교회를 경쟁의 대상과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섬김의 대상으로 살아간다 이런 말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 신앙이. 너무나 왜곡된 신앙 생활 속에 있는 거에요.

 

3. 회개를 하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비를 적당하게 주고, 예전에 내렸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어서 너희의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사본 중의 제일 권위 있고 오래 있는 사본은 마소라 사본[Masoretic text]이다.

 

그러면 왜 우리 신앙에 왜곡이 있는가? 성경을 잘못 번역해서 그래요. 특히 오늘 요엘서 같은 경우는 여러분 그 요엘서 2 23절을 다시 보면은요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이렇게 번역을 해 놓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은 요엘서 1장이나 2장에 읽으면은 너희가 회개하라. 회개를 하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비를 적당하게 주고, 예전에 내렸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어서 너희의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와 포도 나무가 힘을 내고,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이해를 해 버려요. 왜 오역 때문이에요. 오늘 그래서 이 성경을 이렇게 받아 드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은 자기 사업이 잘 안 되거나 자녀가 잘 안 되거나, 자신의 삶이 좀 어려우면은 내가 하나님 앞에 뭘 잘못했는가, 하고 기도원에 가서 회개하고, 왜 회개하는가, 사업 잘 되려고, 내 삶을 내 자녀 잘 되게 하려고, 그래서 내려와서 회개하고 내려왔는데, 우연의 일치로 그러고 난 뒤부터 사업이 잘 풀려, 그러면 그때부터 아이구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셨다고, 종교적인 헌신과 헌금 하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내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이랬더니만 복 받았다고 간증을 해 버리니까, 잘못된 신앙 우상숭배적 신앙이 한국 교회에 너무나 만연한 거에요.

 

또 어떤 사람은 회개 했는데도 여전히 잘 안 풀려, 그러니까 하나님 살아 있는가, 그 간증은 그 사람 주관적인 한말이 아닌가 해서 신앙의 실족을 가져 온다고요. 그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진리는 누구에게나 맞는 말씀이에요. 그러면 이 말씀이 원래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여러분 성경에 요엘서 이것은 제일 처음 성경은 없어요. 요엘이 기록한 것은. 또 성경의 각자 요엘이나 호세아나 모든 성경들은 에스라가 쓴 것들을 다 이렇게 편집을 해 놨는데, 원래 원문의 성경은 없어요. 마태복음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원래 성경은 없었지만은 그것을 베껴 쓴 것을 사본이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 중의 제일 권위 있고 오래 있는 사본은 마소라 사본[Masoretic text]이라는 거에요.

 

사본은 오래 될수록 권위가 있어요. 또 오래 되었다고, 완전한가 그렇지 안 해요. 인간이 베껴 쓰는 사이에 잘못 베껴 쓸 수도 있잖아요. 또 그 사본을 각 나라의 말로 번역한 것을 역본이라 그래요. 그래서 라틴어 역본이나 수리아 역본이나 많은 역본들이 있어요. 구약성경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70인경이라는 것도 있어요. 그러면 오늘 이 본문에서 마소라 사본은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하면은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너희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라고 하면서 키 왜냐하면 우리나라 말에는 이 번역이 생략되어져 있어요.

 

4. 비와 뒤의 비의 말에 차이는 앞에는 하모래 정관사 하가 붙어 있다. 정관사 하가 붙어 있으면 교사 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불의한 세상에 의의 교사를 주셨다. 예수님은 의를 가르치는 교사, 의의 교사라는 말이다.

 

왜냐하면은 그가 너희에게 먼저 의의 교사를 주고, 이래 놨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의의 교사를 주고 라는 말을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히 내리리라고 해 놔 놓고 있어요. 왜 이렇게 번역이 잘못 되어졌는가 하면은 비라는 말이나 교사라는 말은요 똑같이 모래라는 말이에요 히브리어에서. 마치 우리나라 말에 말 이러면은 언어를 말이라고도 하고, 타는 말을 말이라고도 하고, 또 곡식을 댈 때 말도 말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 모래라는 말은 비라는 말도 있고, 또 그 다음에 교사라는 말도 있는데 뒤에 늦은 비, 이른 비가 있으니까 앞의 말도 비라고 번역을 한 거에요. 그러면 이 비와 뒤의 비의 말에 차이는 뭐냐 하면은 앞에는 하모래 정관사 하가 붙어 있어요. 정관사 하가 붙어 있으면 비라는 말이 아니고, 교사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이 말씀이 참 중요해요. 너희가 하나님 때문에 기뻐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면 너희에게 적당한 비를 내리게 해서 예전과 같이 이른 비, 늦은 비를 주어서 풍요롭게 한다는 말이 아니고, 너희가 왜 기뻐해야 되는가 하면은 의의 교사를 너희에게 주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에요. 그 뒤에 적당하게 하는 말도 의를 위한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그 동안에 이런 간증 이런 설교 너무 많이 들었지요. 예수 믿고 내가 부유하게 되고, 잘 되어졌다, 옛날에는 참 잘 안 되었는데, 그래서 예수님 참 좋아, 하나님 좋아, 이런 것들은 신앙적 오해가 너무 많은 거에요.

 

왜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해야 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불의한 세상에 의의 교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뒤에 보면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예전과 같이 줄 것이라는 말은 이런 말이에요. 우리가 부자가 되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예전에는 우리가 그저 잘 살아 보려고만 했는데, 그래서 힘 있는 사람만 잘 살고, 없는 사람은 고통을 당하는 그런 부유한 불공평한 세상이었는데 하나님이 의의 교사를 주어서 이제 부유함이 모든 사람에게 부유함이 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뻐하라 이런 말이에요. 자 여러분 이 말씀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여러분들의 삶을 잘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 분이에요.

 

이런 부분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 없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되는가, 제일 힘든 게 뭐냐 하면은 교인들 중에 특히 장로들 중에 우리 교회가 막 성장하고, 재정이 많아 지는 것을 하나님 복이라 생각해요. 우상숭배에요. 우리 교회가 진짜 예수님을 믿는 교회라면은 우리 교회는 공의로운 교회 어야 되요. 교회와 세상의 차이는 공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요. 메시야는 어떤 메시아[Messiah]인가, 불의한 세상을 공의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함이에요. 그 적당하게 라는 말은 비를 적당하게 내려서 부유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의를 가르치는 교사, 의의 교사라는 말이에요 예수님은.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생각을 바꾸셔야 되요.

 

5. 방백들은 정의로 다스릴 것이다. 메시아[Messiah]의 시대가 오면은 예수님이 다스리는 시대가 오면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믿는 교회는 공의로 통치하는 곳이고, 목사나 장로는 정의로 다스려야 된다. 예수님이 의의 교사로 오신 것을 믿어야 된다.

 

잘 사는 나라가 중요한 게 아니고, 공의로운 나라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바꾸지 아니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우상 숭배자다 이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그 동안 너무나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잘 살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행복하십니까? 행복 안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공의롭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사야 32 1절에 보면은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라고 그랬어요. 방백들은 정의로 다스릴 것이다. 메시아[Messiah]의 시대가 오면은 예수님이 다스리는 시대가 오면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믿는 교회는 공의로 통치하는 곳이고, 목사나 장로는 정의로 다스려야 되요.

 

그 의라는 것이 어떤 의인가? 있는 사람 빼앗아서 없는 사람 나누어 주는 그런 의 아니에요, 그것은 자타 공산주의에요. 있는 사람 더 잘 되게 해서 낙수 효과로 없는 사람 살게 하는 것도 그것은 자본주의 의에요. 얼마나 교회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의로 물들어 있는가 몰라요. 이 의는 공의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물질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삶, 물질과의 관계가 바로 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인간 관계가 의로워 지는 것. 그것이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주심을 믿고, 다른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는 이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에 이제는 여러분들이 물질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은 돈을 가지고 있느냐를 없느냐를 가지고 사람의 평가하지 않는 것.

 

그럴 때에 인간 관계가 바로 되는 거에요. 어떤 교회가 공의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인가? 없어도 기죽지 않고요, 기죽을 일이 없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는 곳,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좌우파하고는 완전히 다른 색갈이지요. 그게 하나님의 나라에요. 의의 교사라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이 사람이 거듭났느냐 안 났느냐는 뭐를 가지고 아는가? 그저 힘있고 부자에게는 우아한 짓을 하고, 나보다 좀 못하면은 무시하고, 그것은 우상숭배 자에요. 여러분 우아하다는 말 제가 이야기 하지요, 우라지게 아부하고, 거듭나게 되면은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 같이 대해요. 전화가 오면은 대통령이 전화오면 아이구, 나보다 못한 사람은 그래 왔어, 의의 교사를 만난 사람이 아니에요.

 

교회가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요엘서 2 23절은 정말 우리가 진정한 부유함이 있으려면은 공의가 있으려면은 예수님이 의의 교사로 오신 것을 믿으셔야 되요.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치는 의를 가르침을 받아야 되요. 예수님이 가르치는 의는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을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나님께서 책임지라는 무의도식이나 무책임한 삶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을 극복의 대상이나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 노릇 해 주신 것을 믿는 것이고, 이 속에 하나님의 공의의 다스림이 있다 이런 말입니다.

 

6. 예수님이 가르치신 의에 따르지 아니한 것에 대한 회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의가 뭐에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그것을 받아 드릴 때 이웃을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는 그 의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의.

 

이제 여러분들에게 버려야 할 신앙이 뭐냐, 회개하면은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다. 이 신앙 이제는 쓰레기 통에 버리세요. 어떤 신앙을 가져야 되는가, 무엇에 대한 회개인가, 예수님이 가르치신 의에 따르지 아니한 것에 대한 회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의가 뭐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그것을 받아 드릴 때 이웃을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는 그 의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의, 돈을 절대시했든 물질과의 관계에 어그러진 관계를 돈을 상대하는 의. 이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주신 부유함이 진짜 부유함이 된다 이 말입니다. 코로나19에서 우리나라가 회개 해야 되는 것과 전세계가 회개해야 되는 것이 이런 부분이에요.

 

회개에 대해서 교회가 앞장서서 복음을 바로 선포해야 된다 이런 말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이론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여러분들의 삶의 가치판단에서 따라가야 되요. 그러려면은 제가 우리 교회에 이제 장년기 7년 동안 해야 하는 것이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의 멘토를 만들어 내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그 동안에는 전부 예수 믿고, 성공하고 부자 된 것을 멘토로 삼았어요. 이것은 우상숭배적 신앙의 멘토에요. 제가 가끔 만나서 운동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일흔 일곱 먹은 할아버지 인데요 요즘은 뭐 그 연세도 할아버지도 아니더라, ㅎ ㅎ 맨날 이번에도 봄에 목련 꽃이 필 때에 이래요, 야 저 목련 꽃 피면은 자기는 힘들데, 왜 이러니까 자기 마당에 목련 꽃 나무가 있는데 그것 떨어져서 비 오고 나면은 빗자루로 쓸어도 안 쓸린대,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저는 알지요.

 

그 말을 왜 하는가 하면은 우리 집 정원이 150평이야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에요. ㅎ ㅎ 대 저택에 살아요.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회계사인데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런 이야기 해요. 이번에 재난 구호금이 나온다는데 이러데요, 그래서 제가 아마 소득에 따라서 나누어 준다고 이러니까, 나는 지금 소득세는 안 내기 때문에 나도 줄 것인가? 재산세나 이런 것 안 보면은 자기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기대를 하더라고, 사람과의 관계와 물질과의 관계가 의롭지 못하지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지도층이고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우리가 힘든 거에요. 거기에 따른 오늘 예배에 참석해서 내가 대단히 미안한데요 우리 교회 김의수 집사님이 우리 교회 다니면서 하시는 말씀, 8단지 휴먼시아에 살아요. 그 휴먼시아에 사는데 서울시 공무원을 평생 박봉 받으면서 사셨어요.

 

연금 받는 것 11조 꼬박 꼬박 잘 하세요. 얼마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 2백 몇 십 만원 안 받겠어요, 그래서 권사님이 힘이 드니까 9단지 임대 주택이 너무나 좋잖아요, 또 이금희 권사님이나 전부 천국이라고 이야기 하니까 권사님이 우리도 집 팔고 9단지 임대로 가자 하니까 김의수 집사님이 뭐라는가 하면은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느냐고, 연금도 있고 우리는 아직 굶어 죽을 만큼은 아니잖아, 살자고, 누군가가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누군가가 내 가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거에요. 김의수 집사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될까요?

 

정원이 150평 대 저택 100평이 넘는 건물 안에서 살면서도 재난 구호금을 어떻게 하면 받을까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많을 때 우리나라기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는 그런 부유함이 있을까요? 예수 믿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가르친 의가 김의수 집사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는 거에요. 그런 생각이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는 것이고요, 옆에 있는 사람을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는 신앙이에요. 요엘서 2 23절이 그런 말씀이에요. 지금 우리가 국회를 하잖아요, 저는요 우리나라가 정치가 제일 후진성이에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려면은 서로 국회의원 안 하려고 하는 나라 되어야 되요.

 

7. 예수님이 강남산 기도원 가서 예수님이 밤새 기도 한 내용은 진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는 밤새 기도 뭐했는가? 아버지 할만하시거든 이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의의 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예수님이 메시아를 안 하려 했어요. 내가 메시아 라고 자칭하고 자기의 말에는 증험이 있고, 성취함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전부 가짜 메시아에요.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만일 할만하시거든 하나님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강남산 기도원 가서 예수님이 밤새 기도 한 내용은 하나님 회개해서 내가 위대한 메시아가 되어서 나를 따르는 저들을 내가 구원하겠습니다 이렇게 안 했어요. 진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는 밤새 기도 뭐했는가? 아버지 할만하시거든 이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우리나라 대통령 누가 되어야 되는가, 할만하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는 사람.

 

왜 이렇게 안 되는가, 목사의 책임 크지요. 옛날에요 제가 신학교 갈 때만해도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그 싸움이 신학교 저에게도 일년 동안 있었고요, 목사 되는 것이 얼마나 쓰디쓴 고통의 잔인가 하는 것을 알고, 마지못해서 목사 되는 그때 살아 있었어요. 마지못해서 대통령 해야 되고, 마지못해서 국회의원 해야 되요. 지금은 서로 목사 되려고 전도사 되려고 신학교가 경쟁이 있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여러분 부모 노릇은요 마지못해서 하는 거에요. 아버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 안 해요. 자식들과 아내를 억압하려고 하는 사람이지요. 마지못해서 아버지 노릇 해요. 마지못해서 엄마 노릇해요. 그래서 가정이 좋은 거에요.

 

가정이 어떤 공동체 보다 좋은 이유는 마지못해서 아버지 노릇 하는 아버지, 마지못해서 엄마 노릇 하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가정은 세상과 다르다 이 말이에요. 교회에 마지못해서 장로 되어야 되는데, 장로 안 되었다고 안 뽑아 주었다고 시험 드는 한국 교회가 되어 버리니까, 소명 의식이라는 것은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할만하시거든 거기에 소명이 있는 거에요. 우리나라 전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에요. 전부 부자 되려고 그래요. 왜 부자 되려고 해요, 갑 질 하고, 자기 잘난 것 들어내려고, 예수 믿으면은 의의 교사인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인 것을 믿으면은 마지 못해서 부자 되는 삶이에요.

 

제가 볼 때에 정말 이런 사람들 있어요. 진짜로 의의 교사인 예수인 그리스도를 믿는 기업인은요 직원이 부러워야 되요. 여러분 진짜 생각해 보세요. 저도 뭔가 사업 좀 하다가 그만 두고 나니까 너무 편해요. 우리 가족 이 세 네 명은 내가 빌어서라도 먹여 살리겠구나 싶어요. 수십 명 먹여 살리려고 사업해 보세요. 얼마나 힘이 드는데요. 예수 믿는 사람의 길이 그 길이고, 예수님께서는 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에요.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의의 길을 따라가는 길이에요. 예수님은 자기가 메시아 되려고 능력 주시옵소서 하고 강남산 기도원에 간 게 아니에요.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8. 사람을 극복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사는 세상 속에, 섬기려고 살아가는 것이 예수 믿는 삶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섬기는 의의 교사의 길이라면은 할 수 있으면 이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재림은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대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

 

모두다 다른 사람을 극복의 대상 착취의 대상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세상 속에 섬기려고 돈 벌고, 섬기려고 사업하고, 섬기려고 목회하고, 섬기려고 여러분 살아가면은 살아가는 것이 예수 믿는 삶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섬기는 의의 교사의 길이라면은 할 수 있으면 이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안 하겠어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특권 다 빼어 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정치가 제대로 되어져요. 어떤 멘토 교회에 뭐 크게 해서 기여하려고 하는 그런 장로 말고요. 우리 김의수 집사님 같이 내가 좀 힘들지만은 내가 편한 것을 선택하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되지 아니할까?

 

정원이 150평 건평이 100평이 넘는 대저택에 살면서도 재난 구호금을 받을지 아니할까? 기대하는 사람 말고요. 우리 교회 왜 존재해야 됩니까? 이 부활절에 칸타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우울 해하지 말고요, 성찬식 안 하는 것에 대해서 우울하지 말고, 성찬식이 뭡니까? 너와 나는 경쟁의 대상이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 때문에 가족으로 섬김의 대상으로 삼자. 그게 성찬의 의미에요. 왜 그런가? 요엘서에 너희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하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예전에 내렸든 그 비를 주어서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번역 때문이에요.

 

성경에 가장 권위 있는 마소라[Masorah]사본은 너희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 왜냐하면은 앞으로 의의 교사가 주어질 때에 너희에게 예전과 같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정녕 너희에게 행복이 되기 때문에, 이사야는 불의한 세상 속에 한 왕 메시아를 보내어 주면은 그가 너희를 공의로 다스릴 것이고, 방백들은 그를 믿는 정치가들은, 그를 믿는 장로들은, 그를 믿는 기업인들은 정의를 행하리라. 여러분 여러분들 안에 성령이 있습니까, 무엇으로 증거 되는 줄 아세요? 교회 크게 하고 능력이 있고, 그것이 아니에요. 장로에 전하는 횟수나, 무명의 교인에게 전하는 횟수가 같은 목사, 대통령이 전화 올 때나 표현이 이래서 미안하지만 역전 지게꾼이 전화가 올 때나 목소리의 톤이 같은 사람, 있는 사람에게 우아한 짓 안 하고, 없는 사람에게 무시하지 않는 사람, 그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재림을 하게 되면은 마지못해 부자 되려고 안 하고, 부자가 목표인 사람의 그 탐욕에 대해서 심판해서 지옥 갈 거에요. 저는 목회로서 멘토 중의 한 분이 제 아버지에요. 제 아버지는 키가 1m 60이 안 되는 단구에요. 몸 무게는 70키로 이상 나가는 제가 아버지에게 닮은 것은 눈썹 하나밖에 없어요. 호랑이 눈썹을 가진 분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찬송이 88장과 95장 이에요.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자녀 왜 키우는가, 배반할 줄 알면서 마지못해 키워요. 왜 목회하는가, 배반할 줄 알면서 교인을 사랑하며 목회해요. 저의 아버지의 삶을 옆에서 볼 때에는요 쏟은 만큼 돌아오는 것은 상처였든 것을 저는 봤습니다.

 

그런대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마지못해 했든 힘은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는 예수라는 찬양. 예수님의 재림이 왜 있습니까? 다시 오겠다는 약속대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기 때문이에요, 장차 예수님은 재림 하십니다. 그때 재림의 심판은 교회 다녔느냐 안 다녔느냐, 교회 얼마나 헌신했느냐가 심판의 잣대가 아니에요. 얼마나 그가 한 가르친 의를 따라서 살았느냐, 그 심판에 따라서 지옥과 천국으로 갈릴 거에요.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천국에서 다 만나는 그런 교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의 기쁨과 소망이 의를 가르치신 예수님이신 것을 받아 드리고, 마지못해 장로 되세요. 마지못해 부자 되에요.

 

우리나라가 마지 못해 국회의원 되는 그 나라가 속히 임하도록 기도 하시고, 그러한 국회의원 그러한 대통령을 자기를 믿도록 하는 목사의 설교가 아니고, 예수님에게 성취와 증험이 있는 것, 예수 믿도록 만들어서 그런 국회의원 그런 대통령이 교회에서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축도◈

 

불의한 세상을 공평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의의 교사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풍요로움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이 되지 못하는 불의한 세상을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되도록 의의 교사를 주신 우리 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주님이 가르치시는 의를 따라 살려고 주님 마지못해서 장로 되고, 마지못해서 목사 되고, 마지못해서 국회의원 되고, 마지못해서 부자 되는 천국에서 만날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모여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맛이라도 보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