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새 계명 (요한복음 13: 34-35)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20. 4. 2. 22:18

 

 

 

 

새 계명

요한복음 13: 34-35

2020 3 29일 주일 낮 예배

                                                                                                                                            No. 462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아멘

 

● 어떻게 해서 메가처치[Mega church]가 되는가?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서 세우신 그 교회를 이곳에 어떻게 하면은 실현하고 구현을 할 것인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들의 불행이 너희 불행이 되고, 그들의 행복이 너희 행복이 되는 것.

 

제가 우리 교회를 설립14주년이라 하지 않고, 여러분들이 개척 14주년 감사 예배 라고 하는 이유를 좀 분명히 알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한국 교회가 80년대에 들어오면서 교회가 브랜드화 되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교회에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로컬처치[Local church] 동백에 동백 교회가 있었고, 분당에는 분당 교회만이 존재를 했습니다 천주교와 같이, 그러다가 80년대부터 한국에 메가처치들이 생기면서 교회가 브랜드화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메가처치[Mega church]가 되는가? 좋은 이미지의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질과 상관 없이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되어지고, 그러한 브랜드에 속하고 가지게 되면은 자기의 어떤 존재 가치가 올라간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주시고,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의 설립의 날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나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세웠든 그 교회를 이곳에 우리가 개척을 하고 세워 나가려고 할 때에는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하려고 해야 된다.

 

그것은 굉장히 세속 된 자본주의적 가치가 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동백교회라 해야 하지만 동백 교회가 있기 때문에 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라는 브랜드를 할 수 없이 달았지만은 교회는 그 기운이 언제 설립이 되었는가 하면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주시고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의 설립의 날입니다, 그 때 설립된 교회를 우리는 이 동백에 와서 고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구현하기 위해서 14년 전에 이곳에 만든 겁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제 목회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제 목회철학이 예수께서 세우신 그 교회를 구현하려고 하는 그 정신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야만이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이 되시고, 언제나 교회가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그런 교회가 됩니다. 그러지 아니하면은 교회가 우리 교회가 14주년 설립 주일이라 하면은 저의 목회 관이나 장로님들의 어떤 생각이 이 교회에 중심이 되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늘 개척 14주년이라는 이 말씀 속에서 이 마음을 잘 헤아려서 정말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서 세우신 그 교회를 이곳에 어떻게 하면은 실현하고 구현을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있고, 또 우리 자신이 얼마만큼 그것에 충실했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는 그런 귀한 시간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 나는 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등록을 했는가? 자기를 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이단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이단에 다니는가? 육체 영생을 위해서 다닙니다 사기지요. 왜냐하면은 육체 영생은 있을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런데 그 육체 영생을 위해서 그곳에 다닙니다. 왜 다니는가 지난주에 말씀 드렸지요. 또 우리 한국 교회에 많은 교인들은 복 받으려고 교회에 다녀요, 저는 그것도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은 그러면은 당연히 교회에 다니면은 부자가 되고 모든 일이 잘되어야 되는데 교인만 잘되고 부자가 아닌데, 자꾸 복을 받으려고 다니는 것은 육체의 영생이 있다고 하고, 이단에 오라는 것하고 별반 다를 바가 어디에 있어요? 이런 사기가 먹혀 들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은, 사람을 동물과 같이 훈련시켜야 된다고요. 동물 훈련 시킬 때에 방법이 뭐냐 하면은 채찍과 당근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단은 채찍과 공포심을 주어서 6개월 동안 세뇌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공포심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래서 공포심이 일어났을 때 교주되는 사람을 세우고 그의 말을, 사람들은 100% 믿게 만든다고요.

 

여러분 동물도 훈련시킬 때 당근, 엎드려 하면은 여러분 간식을 주는 것, 그 훈련을 끊임없이 시키면은 안 주어도 엎드리게 되잖아요. 그런 것이 오늘날 여러분 교회에 있는 모습이 아니냐 말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나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세웠든 그 교회를 이곳에 우리가 개척을 하고 세워 나가려고 할 때에는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하려고 해야 되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도 뭐라는가 하면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랬다고요.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얼마만큼 사랑하려고 다녔는가를 살펴봐야 되고요, 또 우리 교회가 세워 지려면은 여러분들 각자 각자가 얼마만큼 사랑하려고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요.

 

2. 로마서에서는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래서 교회는 믿음이 기초가 되는 것이고,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겨자씨와 같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점진적이다. 그러나 말씀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성장한다.

 

이것은 채찍과 당근의 훈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의 선포에요. 또 여러분들의 믿음이에요.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뭐라는가 하면은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래서 교회는 믿음이 기초가 되는 것이고,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한 거에요. 그 믿음이라는 것은 일순간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그 구원의 기쁨이라는 것은 순간적인 기쁨도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 지아이 로고는 여러분들 이 앞에도 있지만은 겨자씨에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라고 한 것은 유대교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가 하면은 메시야가 오면은 일순간에 천지개벽하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든 자들이 유대교에요.

 

일순간에 144,000명은 육체의 영생 한다고 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은 메시야관이에요. 예수를 믿으면은 사람이 일순간에 변화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일순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이 생각하는 거에요. 그것은 채찍과 당근에 의한 거에요. 겨자씨와 같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점진적이다. 그러나 말씀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성장한다. 우리 교회가 14년 동안 여러분 돌이켜 보면은 별로 변한 것 같지도 않고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이러지만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쭉 던졌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여러분들도 모르게 우리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고 성령을 나눈 피보다 더 진한 가족이라는 말이, 제가 볼 때에 10년쯤 지나고 난 뒤에 교인들 기도의 말이나, 말 속에 점점 나오기를 시작한다고.

 

그래서 예수님이 세우신 그 공동체인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서 맛보아 지게 될 때에 구원의 기쁨을 맛보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듣고, 또 여러분들이 지식적으로 깨달아서 채찍과 당근이 아니에요. 어떻게 깨닫게 되는가, 세워 진 교회를 통해서 그 말씀을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경험하는 거에요. 그래서 히브리어에 야다라는 말은 어떤 정보를 아는 것은 아니에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경험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신앙의 체험이라는 것은 눈감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아니고요, 세워 진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어지고,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사건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이 사랑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서 그 사랑을 흉내 내어져 가기 때문에 신앙의 본이라는 거에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교회를 통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좀 경험하게 되면은, 아 예수 믿고 얻은 구원이 이런 것이다. 하는 기쁨을 누리는 거에요. 그런데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제가 개척 기념 주일 때마다 지금 14년 동안 설교를 했는데 제일 처음에 제가 우리 교회가 모여서 제일 첫 예배 드릴 때에 제가 이 말씀을 가지고 새 계명이라는 말씀을 설교했고, 또 매년 설립 주일 개척 주일이 되면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제가 신학교에 갔을 때에 목사가 되려고 개강 수련회 첫해에 받은 은혜의 설교입니다.

 

3. 구약성경은 모든 사람이 너희가 원수라고 생각하고, 없어져야 할 이방인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니까 너희도 그들도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된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누가 되는 줄 아느냐?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야.

 

그런데 여기에 보면은 새 계명이라고 하는 이유를 아셔야 되요. 구약은 공의의 하나님, 신약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잘못된 모든 이단의 뿌리가 되는 세대 주의적 성경 해석 관이에요. 구약에도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유대교와 그 구약에 성경 계명 사랑하라는 계명을 오해를 한 거에요. 그래서 유대교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못하고, 죽은 종교가 되어져 버린 거에요.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보내어서 구약에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유대교가 생각하는 그 계명을 새롭게 한다는 거에요. 그 새롭게 하는 것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되리라 할 때에 이 사랑은 첫째는 뭐냐 하면은요 사랑의 대상이 유대교와 같은 대상이 아니고, 새로워 져야 된다는 거에요.

 

무슨 말이냐, 유대인들에게는 사랑의 대상이 유대인들만이었어요. 유대인들만이 너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구약성경은 모든 사람이 너희가 원수라고 생각하고, 없어져야 할 이방인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니까 너희도 그들도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된다.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가장 빼어난 설교인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에 보면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랍비의 설교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서 나름대로 해석해서 너희 이웃 유대인은 사랑하고, 네 원수들 저 블레셋을 미워해야 된다. 그래야지 우리 이스라엘이 튼튼하게 된다. 이런 설교가 랍비들의 설교였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유대인을 사랑하고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 져야 된다 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자기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저 이방인들은 사탄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누가 되는 줄 아느냐?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 참 많이 다르지요?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지 하나님의 자녀인가?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 다고 하고 입으로만 할렐루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인가,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없어요.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왜 우리 교회 다니는가? 복 받으려고, 다른 교회 가세요. 우리 교회 정체성에 맞지 안 해요. 육체의 음성 이단에 가세요. 우리가 왜 우리 교회 다녀야 되는가, 원수를 사랑하려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려고,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요. 우리 교회 설립의 목적이 이때까지 개척의 목적이 그곳에 있어요. 그 다음에 뭐라는가 하면은요 왜 그래야 되는가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이제까지 너무 많은 한국의 설교가 교회의 목사님 말씀 잘 듣고, 하나님 사랑하면은 복을 주고, 안 그러면은 벌 줘,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훈련을 시켰는데, 유대교가 그랬는데, 예수님은 해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골고루 비추어 주는 하나님이다. 악한 부모도 말 안 듣는 자식이 눈에 밟혀서 눈을 못 감는데, 여러분들 하나님을 이제는 신관을 바꾸어야 되요.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밭에 골고루 비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착한 사람에게만 비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그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은총이 존재하는 거에요. 특별 은총을 받은 자는 그 일반 은총을 인정하는 자에요. 설명이 말이 필요한 게 아니지만.

 

4. 세리라는 말은 유대인들 중에 제일 못된 사람의 표상이에요. 교회가 이런 모습으로 점점 성화가 일어나지만 곧 안 되고, 말씀을 듣고 듣고 하다 보면은 10 20 30년이 지나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나를 박해하는 자를 욕하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됨이라.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생각 속에 내가 진짜 하나님의 마음에 들려면은 여러분 내 가족 내 마음에 드는 사람, 우리 교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원수를 사랑하고요,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려고 예수를 믿고, 우리 교회 다니면서 그 몸부림이 있어야 되요. 얼마나 복 받으려고만 몸부림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화가 안 일어나는 거에요.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이때까지 하나님에게서 상 못 받았다면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려고 했구나.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라는 말은 유대인들 중에 제일 못된 사람의 표상이에요.

 

가장 나쁜 사람도 자기 자식은 귀한 줄 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가장 나쁜 사람과 같이 살아가면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런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이런 모습으로 점점 성화가 일어나요 금방 안 되요. 말씀을 듣고 듣고 하다 보면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나를 박해하는 자를 욕하지 않고요,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될 거에요. 10년이 지나고 나면은 내 자식 내가 내 이익이 되는 사람만 사랑하지 않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을 거에요. 옛날에 우리 교회 10년 동안 기도하는 사람들 보면은 이런 기도 없었는데 요즘은요 기도가 내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해요.

 

오늘 우리 기도하신 장로님의 기도에 그런 기도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은 복음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교회가 앞으로 좀 더 여러분들이 참 교회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생기면은 남 탓 하지 말고요, 내가 사랑하려고 교회 다니는 거야, 유대교와 같이 사랑하려고 교회 다녔구나 이런 생각을 해서 십사오년 십육주년 시간이 지나갈수록 좀 더 걸림돌이 되는 사람도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야 저 교회 좋은 일 많이 해, 저 교회 엄청나게 성장했어, 이런 평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 교회 다니면은 희한한 사람들이야, 자기 자식만 생각해도 모자랄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의 자식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데, 희한해 망하려고 예수 믿는 것 같아, 이런 평가가 있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될 때 비로서 우리는 교회의 설립이 오순절이 되는 그런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5.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한계를 알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아야 된다. 내가 이 하나 뽑혔는데 상대방의 이 하나 뽑으려고 하는 사람은 진짜 공정한 사람이다.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오리를 가려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두 번째로요 왜 예수님이 새 계명이라 했는가 하면은 사랑의 수준이 달라져야 되요. 유대인들의 사랑의 수준은 레위기 법에 따라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정도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마타복음 5 38절에서 48절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여러분 이것을 우리는 보복의 법이라고 그러지요. 해교도 그러지요, 그래서 어떻게 사랑의 종교가 이렇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라고 하는 레위기 법이 있어 이러는데, 얼마나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한계를 알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요 상대방의 이하나 뽑히면은 상대방을 이 하나 뽑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이 하나 뽑혔는데 상대방의 이 하나 뽑으려고 하는 사람은 진짜 공정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자동차의 사고가 났을 때에 내 차 고쳐 주면은 고쳐 주는 것으로 되었다고, 이런 사람은요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냐 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교도소는 안 가 봤지만 교도소는 전부 억울한 사람들만 다 있데요. 왜 억울한가, 자기가 지은 죄값만, 죄값은 언제나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전부 자기 합리화가 난무한 세상이잖아요. 그런 세상에 유대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내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내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저도 우리 교회에 목회 하면서요 저보고 명예 훼손으로 고발하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악한 자를 대적 안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러면 내가 세상 사는 사람들하고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잖아요. 저에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저는요 거절하지 안 했어요.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배워야 되요 여기 와서, 아 우리 목사님 교회 열심히 했더니만 저렇게 복 받았어 이런 게 아니에요.

 

저에게 일원 꾸고자 하면은 내 호주머니에 만원 있으면 만원 줬어요. 그러면 되는 거에요. 다 해결하려고 하면은 자기 의가 되어져요. 사랑의 수준이 달라져야 되요. 우리가 얼마나 자기 일은 관대해요, 자기 편에게는 관대해요. 그럴 수 있지 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다고, 그게 뒤집어 지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 거듭난 사람의 모습이에요. 자기가 그랬을 때에는 내가 그럴 수 있지, 하고, 타인이 그랬으면 그럴 수 있지, 우리 부모들이 자식을 향한 사랑이죠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에요 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다녀야 되는가, 이것 없으면은 헛 다니는 거에요. 연조가 뭐 20 30년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예수 믿는 것 뭐 모태 신앙 중요한 것 하나도 아니에요.

 

목사 장로 중요한 것 하나도 아니에요. 이 변화가 없으면 죽은 종교인이에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제가 결혼 주례할 때나 간혹 이야기할 때, 샴쌍둥이 머리가 둘이고 몸이 하나인 것, 저는 하나님이 창세기를 보면서 인간을 썀쌍두이로 만들었구나 이래요. 아담에게 하와를 취하여서 갈비뼈를 가지고 주면서 뭐라 그랬어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되라, 둘이 두 이성 머리는 둘인데 둘이 연합하여 한 몸, 샴쌍둥이잖아요. 인간의 타락한 죄성은 샴쌍둥이가 몸은 한 몸인데 지금 우리가 코로나19로 알잖아요, 전부 유기체적이잖아요. 머리는 각각 다른데 각각 다른 생각해요. 유대인들은 문제가 생기면은 랍비에게 가져가요. 썀쌍둥이가 한 사람입니까 두 사람입니까, 하니까 랍비가 한 아이 머리를 탁 때리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히죽히죽 웃어요, 이놈은 둘이라고, 한 아이 머리를 때리니까 한 아이 옆에 있는 아이가 아야 얘는 하나라고.

 

6.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이 되고, 남의 불행이 내 불행이 되려고 예수 믿어야 된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빚어 놨다.

 

왜 예수 믿어야 되는가? 옛날에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었든 사람이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이 되고, 남의 불행이 내 불행이 되려고 예수 믿어야 되는 거에요. 이것이 안 된다고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의 불행이 우리에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그들의 불행이 너의 불행이 되고, 그들의 행복이 너희 행복이 되고, 하나님은 그렇게 만든 거에요. 쌈쌍둥이로 만들었는데 이 죄성이 머리와 몸을 가르게 한 거에요. 지금 여러분 금년의 주제가 바로 이 부분 아니겠어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 듣는 것 같아요. 교회에요 동백에 우리 교회의 행복이 다른 교회의 불행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교회가 14년 설립 주일을 가지기 때문이에요.

 

2천년 전 설립된 교회의 이곳에 14년 전에 개척했다고 할 때에는 다른 교회 불행이 우리 교회 불행으로 느껴져야 되요. 이 목회 해 온 거에요 여러분. 어제 우리 김동호 목사가 우리 교회의 5년 동안의 교회의 변화 교인의 숫자의 변화, 재정의 변화, 새 교인 등록 현황 이런 것을 논문 작성 하듯이 도표로 잘 해서 교역자 회의 때 보고를 하더라고, 그래 뭐 장로님들에게 다시 이래서 교회를 제가 그것 보면서 그랬어요. 그 해석에 제가 다 듣고 난 뒤에 참 바로 간다, 우리 교회가 최근에 와서 새 신자가 많이 등록이 안 되요. 경영학적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 거지요. 목회학적으로 보면 바로 가는 거에요. 우리 교회가 이제 손익 분기점 넘어서서 교회의 이제 적자가 되지 않으면서부터 제 입에 전도 소리 거의 안 해요.

 

쉼이 있는 잔치 강조 별로 안 해요. ? 우리 교회 데리고 오는 사람, 다른 교회 목사의 가슴 아프게 하고 데려 오는 거에요. 우리 교회가 존재 여러분 생존의 위협이 올 때에는 이종근 장로 불러 가지고 부흥회도 하고 전도도 하고, 왜 우리 교회가 살아야 되거든요. 이런 것이 우리가 함께 공유 되어져야 되요. 아직도 나는 배가 고프다, 목회 무엇을 듣는지 모르겠어요."새 계명" 우리 교회가 여러분 이곳에 개척이 왜 되었는가? 이제 사랑의 수준이 좀 달라지자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사람 안 넘어가잖아요. 그래서 사랑의 능력이 새롭게 되게 한 거에요 예수님께서,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사랑하기로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부 자기 의에 대한 설교에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빚어 놨어요. 샴쌍둥이로 회복시켜 놨어요. 어디에서 십자가와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교회를 통해서, 물리적으로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교인이라 착각하면 안 되요. 그 사람 교인일지 몰라도 신자는 아니에요. 이력서에 기독교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에요. 교회 출발부터 잘못 되었어요. 저도 이 설교를 제가 신학교 첫해에 개강수련회 첫날 김덕신 목사님 말 들으면서 야 이거구나 제 머리에 전기가 통했어요. 그런데 그분은 신비주의에요.

 

7. 성령 받는 것은 예수님의 행하신 그리스도 사역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성령님을 예수님이 보내어 주어서 오순절에 교회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 진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워 진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체험 된다, 그때 거듭난 사람이 된다.

 

이 부분 세 번째 와서 저하고 달라요. 그분 성령 받으면은 그래 돼 이래요. 저는 성령 받는 게 뭔가? 기도해 가지고 성령 받는 게 아니고, 성령 받는 것은 예수님의 행하신 그리스도 사역을 받아 드리는 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 것을 받아 드리는 거에요. 성령님을 예수님이 보내어 주어서 오순절에 교회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 진 것을 받아 드리는 거에요. 이 받아 드린 교회를 이곳에 개척하려고 하는 그런 것이 예수를 믿는 거에요. 그게 성령 받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로마서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 바 됨이니, 이 말씀을 성령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물 붓듯이 부은 바 됨이니 해 버리면 신비주의[神秘主義]가 되는 거에요. 실존주의 철학인 신학이 안 되는 거에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 괄호 안에 뭐에요? 성령이 오셔서 뭐 만드셨어요? 교회를 만든 거에요.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워 진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체험 되어 진다. 그때 거듭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지금 내 목회에 쌤플 만드는 거에요. 제가 앞에서도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기도 해 가지고 사랑 받는 게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경험하는 거에요. 야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라고 성경에 있는 요한복음 3 16절의 말씀을 내가 암송하는 게 아니에요. 교회를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그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거에요.

 

어떻게 안수집사는 장로님의 모습을 통해서, 장로님의 어떤 모습, 원수까지 사랑하고 대적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 장로님이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의 다른 사람의 자녀도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게 한 사람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체험하는 겁니다. 서리 집사나 안수집사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 체험하는 거에요.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가 하면, 여러분들에게 예를 든다면은 여러분 부모의 사랑은 어디에서 경험해요? 가족을 통해서 경험하잖아요.

 

그 부모의 철저한 희생을 통해서 세워 진 가족을 통해서 부모의 사랑을 알면서 형제를 사랑하게 되잖아요. 형제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베드로에게 있는 거에요. 예수님 3년 따라다녔든 베드로가요 여러분 성경 해석 너무나 잘못 된 것이 여러분들 속에 너무나 셋팅 되어져 있어요. 그래서 안 변하는 것 같아요. 여러분 3년 동안 예수님 제자들이 따라 다니면서 마지막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한 짓이 뭐냐 하면은 누가 높은 자리에 앉느냐, 오늘 평생 예수 믿으면서 누가 더 복 받느냐, 누가 더 장로 되느냐,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느냐, 이 싸움 했다고.

 

8. 주님께서 내가 지는 십자가를 네가 질 수 있느냐 할 때 서로 진다고 했었다. 베드로가 선동한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련다 디베라 바닷가에서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은 게 없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인데 지시 대명사다.

 

주님께서 내가 지는 십자가를 네가 질 수 있느냐 할 때 서로 진다고 했어요. 주님이 십자가 딱 지자 베드로 뭐 했습니까, 베드로와 도마와 나다나엘과 또 다른 제자 같이 있는데 베드로가 선동해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련다. 선동이 뭐냐, 김종웅 목사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고, 나는 세상의 복도 받고, 예수 복도 받으련다, 선동한다고. 그러니까 다른 제자 쪼로록 따라가요. 디베라 바닷가에서 밤새 고기를 잡았어요. 한 마리도 잡은 게 없데요. 밤 새도록 평생 돈 받으려고 했는데 통장은 텅텅 비어져 있어요. 설령 그것이 채워 졌더라도 죽을 때에 아무런 행복을 못 느껴요. 평생 내 자녀 잘되고 성공하려고 모든 혼신을 다해서 대통령 만들어 놔도요, 죽을 때 내가 이거 하려고 했던가, 그게 조금 전에 부른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 하다가 세상일만 좇다가 3년 동안 베드로가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십자가 아래서 십자가가 그의 삶 속에 딱 부딪히니까 물고기 잡으러 간다. 아무런 손에 쥔 것 없었어요. 그런데 주님이 나타나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153마리 모나미 153 건졌어요. 주님인지 감히 묻지도 못했어요.

 

뭍으로 나오니까 숯불에 생선이, 숯불이 피어져 있었어요. 네가 잡은 것 좀 가져 오라, 주님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에요. 베드로의 미안함을 상쇄시키기 위하여, 갖다 주니까 피곤하지 조반을 먹어라. 세상 산다고 힘들었지, 조금 주고 난 뒤에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우리 이 개정개역에는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인데, 그게 인칭 대명사가 아니고, 그냥 지시 대명사에요. 이것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네가 돈 버는 것보다 교인 더 사랑하려고 했느냐, 네가 부자 되려고 하는 것보다 교회 더 세우려고 했느냐, 이런 말이에요. 주여 내가 사랑하는지 주님이 알지 않습니까, 네가 아카페 했느냐인데, 내가 필레오 했어요. 나에게 이익이 될 때만 주님 따른 것 아시지 않습니까, 이 말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아카페 하느냐, 주님 내가 필레오 하는 줄 알지 않아요. 내가 복 받으려고 예수 믿은 것 주님 아시잖아요, 이 말이에요. 세 번째로 주님이 네가 나를 필레오 하느냐, 예 그러하옵니다. 주님 저 복 받으려고 예수 믿었습니다. 높은 자리 앉으려고 예수 믿었습니다. 수제자 자리에 앉으려고 예수 믿었습니다. 교회 다녔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그래요, 네가 젊어서는 띠 띠고 다녔으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라. 젊어서는 네가 네 대로 예수 믿고, 네가 하고 싶은 것 했지만은 네가 조금 있으면은 나를 위해서 순교자가 되리라. 그런 말씀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베드로가 뭐라는가 하면은, 그 옆에 있는 요한을 보고 예수님 쟤는요 이래요, 여러분 새 계명이 얼마나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여러분 우리 언제나 그러잖아요, 쟤는요? 그가 어떻게 되는지 놔두고, 네가 나를 따르라. 우리 언제든지 교회 다닐 때 저 사람은 저렇게 믿는데, 그 사람은 그 사람 몫이에요. 그러든 베드로인데요, 오순절에 성령이 와서 교회가 되고 난 뒤에 베드로는 달라집니다. 성전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을 때 모든 사람이 베드로 베드로 할 때에 왜 내가 쟤를 고친 줄로 알고 나를 보느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김종웅 목사가 개척했다고 김종웅 할 때에 두려워 떨려요. 남들이 우리 장로님 같은 사람 없어 할 때에 왜 나를 주목하느냐, 언제 교회가 세워 지고, 그 교회가 성령을 나눈 가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수준이 달라지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9. 김인호 과장이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안수 받고 한센병자가 있는 소록도에 갔다. 나에게 목사 인간이 주는 목사 라이센스가 뭐 중요하냐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늘밤에 부름 받았다고, 친구 목사 총회장에게 내 눈썹도, 내 손마디도 하나씩 떨어져 나가네, 주님 만나는 그곳에서 만나세.

 

이 변화로부터 신앙이 출발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 이런 부분 많이 들었지만 얼마나 자본주의적으로 각색해서 말씀을 해요 종교적으로 각색해서, 수련회에서 저에게 정기를 일으키는 예화 김덕신 목사의 예화 내가 저래야 되겠다 생각해요. 그래서 어디에 가면은요 저는 내 묘비에 김종웅 목사 안 쓰고 성도 김종웅 쓰라는 거에요. 목사가 뭐 직능이 목사지 목사가 신분입니까, 장로가 직능이 장로지 뭐 장로가 신분이에요, 주님 앞에 신분은 성도에요. 제가 우리 김종대 목사님 존경하는 것이 가장 저런 목사 없어요 진짜 은퇴하고 나도 목사 짓 하려 하고 목사 행세하려 하고 목사 대접 받으려 하지요. 김인호 장로 이야기 우리가 몇 번 했지요, 이 출발 새롭게 해 보자고요 여러분이 개척 14주년에.

 

조선총독부에 김인호 과장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세리의 해결을 듣고는 자기도 이제는 헛된 세상의 욕망을 따라서 사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고 해서 간 곳이 소록도라는 거에요. 일제가 우리를 지배할 때에 소록도에 모두 요즘 한센병이지만 여러분들에게 좀 자극을 주려고 문둥 병자 그곳에 다 갖다 넣었잖아요. 그곳에 가서 봉사하는 거에요. 밥도 떠 주고 봉사, 예수 믿고 이제 나도 좀 착하게 살아 보려고 봉사하려고 하는데 한센병자가 안 받아 주는 거에요.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받는 거지요, 여기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여러분 상처가 있는 사람은 호의와 사랑을 못 받아요.

 

코로나19가 무서운 게 뭐에요? 암도 가족의 돌봄을 받아요 진정한 사랑에, 이것은 걸리는 순간 격리되요. 감정이 없는 의사의 손길만이 이런 말이 자기에게 존재하게 되잖아요. 한센이 그런 거잖아요. 그곳에 가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자기네들에게 봉사 한다고 도와 준다고 하니까 이 사람들이 저의가 있다고 안 받아, 내 본심은 안 그런데 하고, 그래서 자기가 목사가 안 되어서 그런가 하고 신학을 안 해서 그런가 하고 그 길로 신학 하려고 보따리 싸 가지고 신학교에 갔다는 거에요. 가서 맨날 기도가 하나님 왜 나는 하나님 사랑 빚 갚으려고 봉사하려고 소록도 갔는데 저 사람들이 왜 호의를 안 받습니까 하는데, 졸업을 앞둔 얼마 앞둔 그날 밤에 성령 불이 자기에게 내려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정말 자기에게 지식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와 닫더라는 거에요. 저는 요 부분이 다른 거에요 김덕신 목사가.

 

그 길로 그 다음부터 또 갔대요 그 길로 보따리를 싸고, 내려가니까 옆에 있는 전도사가 이제 조금만 있으면은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안수 받고 가면 되지 왜 가느냐니까, 나에게 목사 인간이 주는 목사 라이센스가 뭐 중요하냐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늘밤에 부름 받았다고, 그 길로 내려갔는데 내려가서 사는데 그때부터는 한센병자가 주는 것을 먹고 한 이불을 뒤집어 써도 피부에 소름이 안 돋더라는 거에요. 한 사람 한 사람 소록도 환자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대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대구에 있는 최목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이 최목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딴섬 소록도에 가족으로부터 아내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자신마저도 버림받은 이 사람들과 함께 내가 살아왔는데, 이 외로움 속에 친구 목사가 목회 잘한다고 총회장 되었다는 소식들이 가끔 나에게는 위로였는데 이제 우리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이제 주님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 눈썹도 하나 둘 희어 져 가고, 내 손마디도 하나씩 떨어져 나가네, 주님 만나면은 별로 부끄럽지 않을 것 같네, 그 곳에서 만나세.

 

10. 가족은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거에요. 평생 걸림돌이 되고 가시가 되어도 가족이기 때문에 같이 살아가는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이다. 주님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우리 이웃에 있는 사람 우리 교회는 제가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겨자씨 헌금 구제 헌금이라 하지 말자고, 나눔이라고, 여러분 가족의 사랑이 뭐에요, 구제는 기분 좋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거에요. 가족은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거에요. 제가 하고 있는 목회는 그런 거에요. 나에게 이익이 되고 좀 좋았다고 우리 교회 와서 우리 목사님 같은 분 우리 교회가 그랬다가 조금 마음 안 좋으면, 그것은 거듭난 것 아니에요. 평생 걸림돌이 되고 가시가 되어도 가족이기 때문에 같이 살아가는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에요.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십자가에서 들어내시고, 성령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이에요.

 

예수 믿는 출발을 입으로 고백하고 물방울 몇 방울 떨어뜨리는 세례로부터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요, 장로님을 통해서 그 사랑 경험해 보고, 집사님을 통해서 그 사랑을 경험 해 봐서 아 이런 것이구나, 우리 교회 장로님은 자기 자신만큼 타인의 자식도 사랑하고, 자기 명예의 손상이 올지라도 참고 사랑하고, 손해를 볼지라도 사랑하고, 꾸고자 할 때에 거절하지 않고, 그것 경험해 볼 때 형아는 안 한다고요. 부모 사랑 어디에서 경험해 보아요? 가정에서 경험해 보면서 맨날 형아는 저러는데 나는 왜 이랬든 사람이 동생 판사 시키려고 먼지 뒤집어쓰면서 재봉틀 돌려요. 입으로 누구나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요.

 

동생 의사되고 판사 되어 가지고 좋은 집안에 시집 장가 가 가지고 잘 살 때에, 자기는 전세 집 살면서도 그 동생 때문에 자부심 가지고 즐거워해요. 이런 사람이 되려고 우리 교회 다녀야 되요. 이런 사람이 되려고 예수 믿어야 되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 되리라. 유대인들은 유대인만 사랑하려고 그랬고요, 이는 비로서 갚으려고 하는 그런 사랑 정도 머무른 그들에게, 주님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한국 교회가 전부 목사가 설립한 교회인 것 같아 내가 볼 때에는.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서 교회를 설립하시고, 그 설립한 교회를 이룩할 동백의 한 귀퉁이에 와서 구현하려고 14년 동안 온 거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은 교인들의 기도의 소리에 한마디 한마디 변화 되어져 갈 때 여러분 심는 거에요. 물주는 이는 성령이고, 거두는 이는 내 다음 대에 목사가 될지도 몰라요. 우리 함께 심어 보자고요.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성령을 나누어 가짐으로 우리 모두가 피보다 더 진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시고, 그 영적인 가족인 공동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조차도 사랑하고,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 리를 가주는 하나님의 자녀 된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모여서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보는 2천년 전 설립된 그 교회를 이곳에 개척하여 14년의 역사가 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