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안 요약문(구역공과)

신명기 38 (Paradox 3)

차주희 2015. 10. 23. 13:58

신명기 38 (Paradox 3)

Paradox 3 (모세의 축복)

신 33:26-29 (1-29)                                                                                                                       여기에 모인 우리

여러분은 ‘하나님’ ‘교회‘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 ‘교회’하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로구나! 우리와 같이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누구일까!” 이런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구원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입니다. (26-27절)

일반적인 종교는, 신은 초월적인 존재로서 잘 섬기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고 합니다. 신을 잘 섬기는 것도 자신들의 제시하는 종교적인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성경의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초월에서 이 세상에 내재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요 14: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합니다.

하나님은 멀리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외면하는 그 때에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27-28절)

신명기 시절에는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는 외적의 침략과 기근입니다. 외적의 침략은 자신들의 것을 빼앗겨서 살기가 힘들고, 기근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이 두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외적의 침략과 기근을 해결해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요 3:17절에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합니다.

요 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합니다.

 

셋째 신명기적 공동체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내재하신 하나님입니다.

신명기 27절에 이스라엘의 피난처가 되시고 그 팔로 안아 주시며 야곱의 우물을 마시며 살게 되고 하늘의 비가 내려 그들의 산업이 풍족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어의 성경) 즉 신명기적 공동체가 세워지면 외적도 침략하지 못하고 설령 침략을 한다고 해도 감히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외적이 침략해서 곤란을 당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신 31:17절과 같이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신명기적 공동체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적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입니까?

 

은 군사력이나 외교력을 의지하지 말고, 왕권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사유 재산을 가지지 말라 즉 탐욕스러운 교회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 17-18장)

즉 이 말씀 이면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와 같이 힘에 의한 강한 국가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백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가가 되어 사회적 약자들까지도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국가가 되면 어떤 외적도 침략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순종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알지만 그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신9:24절)

아니나 다를까, 가나안에 들어가서 세운 이스라엘은 다윗왕의 시대 말라고는 한번도 그런 국가를 세운 적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신명기적 공동체를 세울 것을 촉구하지만 선지자들의 메시지조차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선포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서 신명기적 공동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을 예언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 세상에 오셨고, 신명기적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요 14:16-17절은 “...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공동체에 거하시면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성령의 공동체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이 사실을 받아들여만 인간의 영원한 숙제 분열과 분쟁으로 인한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는 이기는 것이 아니고,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삶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한 가족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고전 12:12-13절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합니다. 즉 모든 사람들 안에 하나님께서 영으로 거하신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모세의 축복의 내용을 보면, 12지파에 대한 축복의 내용을 보면 긍정적인 지파도 있고 부정적인 지파도 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물질적인 풍요와 외적으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위한 축복들이다.)

 

교회에도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부정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가족임을 알고 부정적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긍정적인 사람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되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우리와 같이 구원을 얻은 백성이 누구냐 라는 고백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신 33:29절에 “너희는 언제까지나 여호와만 의지하며 살라고 합니다. (현대어의 성경)

 

* 나누어 봅시다.

 

1.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들입니다. 설교도 순종할 것을 기대하며 선포하면 실족하기 쉽습니다. 설령 교인들이 말씀에 순종하면 자신이 잘 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이듯이 우리의 사명 역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진리이고,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다가 실족한 적은 없는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2. 목사님께서는 도시에 살아도 시골에 살아도, 어떠한 직업을 가져도 사는 것에 걱정이 없는 돈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했습니다. (신 28:3-6) 특히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공동체를 물려 줄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공동체가 되면 어떠한 외적의 침략으로 인한 손실(국방비, 외교력의 낭비)이 없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공동체의 모델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더 이상 훌륭한 건물(국방비)이나 프로그램(외교력)으로 유지하려고 하지 말고 교인들이 행복해 함으로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가 되어 세상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고 이런 영원을 담아 10년 목회를 하면서 예배를 마칠 때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찬양을 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