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기독교자료)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

차주희 2015. 11. 10. 21:08

 

 

 

성령의 9가지 열매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

 

성령(聖靈)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창조에 참여하셨고(창1:1~2),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을 가능하게 하셨다(눅1:35).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성경을 쓰게 하셨다(딤후3:16; 벧후1:21). 죄의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신다(요16:8).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성도들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요15:26) 성도들을 중보하신다(롬8:26).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요3:3; 딛3:5), 성도들에게 인치시며(엡1:13), 거룩한 성품을 갖게 하신다(살후2:13). 성도를 인도하시며(롬8:14), 은사를 주시고(고전12장), 성령의 열매(사랑love,희락joy,화평peace,오래참음patience,자비kindness,양선goodness,충성faithfulness,온유gentleness,절제self-control)를 맺게 하신다(갈5:22~23). 성도에게 권능을 주셔서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신다(행1:8). 열매가 뿌리에서 기인한 것처럼, 성령(聖靈)의 열매는 성령에 기인한다. 신자는 율법(律法)아래가 아닌 은혜(恩惠)아래에 있다. 성령의 열매가 있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다.​

 

▶ 하나님으로 부터 유래된 마음의 습관: ​<사랑. 희락. 화평>

 

1. 사랑(Love)

 

다른 덕목들의 기초.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세상을 사랑하신다(요 3:16, 요일 4:8).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적인 사랑, 아끼고 위하고 한없이 베푸는 이타적인 마음이나 행위, 또는 다른 사람의 안녕(安寧)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을 시작하기 전에 방언이나 천사의 말이나 예언이나 믿음이나 구제와 비교해 볼 때 사랑이 ‘가장 좋은 길’(the most excellent way)이라고 묘사했다(고전 12:31).

 

사랑으로 번역된 원어들 

 

 구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히브리어는 ‘아헤브’(?heb)이며, 아가서에서 특히 많이 쓰인 ‘도드’(dod)와 ‘라야’(rayah) 등 여러 단어들이 있다. 신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아가페’(agape)로, 구약의 사랑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단어가 이 단어에 해당한다. 또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 모두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아가페’보다는 훨씬 적게 사용된

‘필레오’(phileo)는 예수님과 나사로의 친밀한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었으며(요 11:3, 36), 마태복음에서는 ‘더 좋아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마 10:37). 특별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셨던 특별한 형태의 우정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었다(요 20:2). 요한복음에서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성부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에 ‘아가파오’(요 3:35)와 ‘필레오’(요 5:20)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두 단어가 구별 없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인격이나 속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는 대상의 조건이나 상황이나 반응에 의존하지 않는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사랑은 자주 나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신 4:37; 7:8, 13, 10:15; 23:5; 대하 2:11; 사 43:4; 48:14; 63:9; 렘 31:3; 호 11:1, 4; 14:4; 습 3:17; 말 1:2). 이것은 특별히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데 근거하고 있으며, 그 선택은 이스라엘의 자격이나 가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젖 먹는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설명되고 있지만(시 103:13; 사 49:15; 호 2장), 하나님의 사랑은 이보다 더 깊고 확고하며 인간의 불순종에도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시 78:68; 146:8; 잠 3:12; 신 4:37; 7:8, 13; 23:5; 대하 2:11; 렘 31:3; 말 1:2)뿐만 아니라 정의나 의(義) 같은 추상적인 것과 관련해서도 사용되었다(시 11:7; 33:5; 37:28; 45:7).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전적이며 독점적인 것이었다.사도 요한은 특별히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요 3:35; 5:20; 10:17; 14:31; 15:19; 17:23-24, 26). 예수님은 각색 병자들을 고치심으로(막 1:41; 눅 7:13), 죄인들을 용서하심으로(눅 15:11 이하; 눅 19:41 이하),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눅 19:41; 요 11:35),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심으로(눅 7:34)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사건이요(요 3:16; 롬 8:37;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사건이다(롬 5:8).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은 새 이스라엘, 곧 교회에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각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진다(요 14:23; 16:27; 17:23; 갈 2:20).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사랑이시다(요일 4:8). 그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기초, 원천, 본보기이다(요일 4:10).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하는 사랑이다(사 55:7).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 

 

 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지극히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출 20:6; 신 5:10; 잠 8:17),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 103:13-14),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요 14:21, 23; 요 16:27), 헌금을 즐겨 내는 자(고후 9:7), 하나님의 자녀들(요일 3:1), 의인(시 146:8; 잠 15:9), 정직히 말하는 자(잠 16:13), 하나님을 아는 자(시 91:14), 부르심을 입은 자들(유 1:1), 나그네(신 10:18), 이스라엘(신 4:37) 등이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 : 성경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뿐만 아니라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말하고 있는데, 다음의 것들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즉 악한 일(시 52:3)과 거짓 또는 거짓말(시 52:3), 이방 여인(삿 16:15), 세상의 향락(잠 7:18), 뇌물(사 1:23), 이방신들(렘 2:25), 어그러진 길 또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렘 14:10), 돈(딤전 3:3; 6:10; 히 13:5), 세상(딤후 4:10; 요일 2:15), 불의의 삯(벧후 2:15) 등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땅한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실제적인 행동을 통해 나타내신 것처럼 그들 역시 행동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을 의미했으며(신 10:12-13), 그 내용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예배와 거룩한 삶, 자발적인 순종과 섬김, 전심을 다한 헌신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독점적이어야 하며, 다른 신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이어야 했다. 이것은 비인격적인 요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말하는 것이며(신 30:6), 또한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그 교제로 인해 생겨나는 즐거운 경험을 말한다(시 18:1; 116:1). 신약도 구약에서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막 12:28-34; 요 14:23; 15:9-10).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나 지식, 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등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동반된다(마 22:39).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사랑하셨을지라도(신 10:15) 그들만이 하나님이 사랑하신 유일한 대상은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그들 가운데 있었던 고아나 과부, 그리고 나그네들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신 10:18-19). ‘곤궁하고 빈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신 24:14, 17; 26:11-13; 27:19).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요일 3:17-18). 이웃에 대한 사랑은 선한 행위들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가를 치렀던 하나님의 사랑처럼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랑이 될 것이다. 신약에서는 구약보다 더 새로운 요구가 추가된다. 즉 이웃에 대한 사랑에, 원수에 대한 사랑도 포함시킨 것이다(마 5:43-44; 눅 6:27). 구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없었으나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그 사람에게 돌리라는 명령은 있다(출 23:4).

 

사랑에 대한 짧은 정의들* 소극적인 측면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고전 13:5). 성내지 않는 것이다(고전 13:5).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고전 13:6).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고전 13:4). 이웃에 악을 행치 않는 것이다(롬 13:10). 투기하지 않는 것이다(고전 13:4). 자랑치 않는 것이다(고전 13:4).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다(고전 13:5).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이다(고전 13:5). 거짓이 없는 것이다(롬 12:9).

 

* 적극적인 측면

 

오래 참는 것이다(고전 13:4).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고전 13:6).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디는 것이다(고전 13:7). 덕을 세우는 것이다(고전 8:1). 서로 우애하는 것이다(롬 12:10).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것이다(롬 12:10).허물을 가리워 주는 것이다(잠 10:12; 잠 17:9). 죽음처럼 강한 것이다(아 8:6).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이다(요일 4:18).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40).“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요 21:15-17).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 질문에서 ‘필레오’(phileo)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근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21:17),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아가파오’(agapao)의 대답을 기대하셨지만 결국 베드로의 수준에 맞추어 세 번째 물음에서는 ‘필레오’로 물으셨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본문은 하나의 같은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두 개의 서로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즉 ‘사랑하다’를 위해 ‘아가파오’와 ‘필레오’가, ‘양들’을 위해 ‘알리온’(arnion)과 ‘프로바티온’(probation)이, ‘치다’를 위해 ‘보스코’(bosko)와 ‘포이마이노’(poimaino)가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물음에 근심한 까닭은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셨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예수님의 질문, 베드로의 대답, 예수님의 응답: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내 양을 치라’: 아가파오 필레오 알리온, 보스코 (15절)아가파오 필레오 프로바티온, 포이마이노(16절), 필레오 필레오 프로바티온, 보스코(17절)

 

2. 희락(Joy)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에게 약속된 심오한 내면의 기쁨과 즐거움, 만사를 총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권에 근거하므로 상황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다윗 왕의 즉위식 때 즐거워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고 적었다(대상 12:40). 또한 역대하 30:26에서는 히스기야 왕 때의 유월절을 가리켜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다”고 했다. 또한 이사야는 고대 도시로 모든 것이 풍부하고 번영했던 두로를 ‘희락의 성’이라고 묘사했으며(사 23:7), 전도서 기자는 세상적인 기쁨이나 향락을 웃음과 희락으로 의인화하여 이런 세상적인 희락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말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희락을 꼽았다(갈 5:22).

 

3. 화평(peace)

그리스도의 선물(요14:27),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안식이며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다(빌 4:7)

 

 

▶ 사랑. 희락. 화평으로 무장되어 '이웃'에게 나아가야 하는 덕목<오래참음. 자비. 양선>

4. 오래 참음(patience)

감정을 거스르는 일을 견디어 내는 속성(고후 6:6, 골 1: 11), 그것은 부당한 취급을 받더라도 보복할 생각을 품지 않는 것.

 

5. 자비(Mercy)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과 같은 박애적 행위,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자비로우심으로(롬2:4, 엡2:7), 그리스도인도 동일한 덕행을 드러내야 한다(골3:12). 무력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인자(창 19:19), 은혜(창 20:13), 긍휼(마 9:13)과 같은 말이다. 구약에서 자비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여러 단어이다. 히브리어 ‘라함’(ra?am)은 긍휼의 감정이며, 주로 ‘사랑’(love)으로 번역되었다. 또 ‘하난’(hanan)은 사랑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적극적인 도움이며, 종종 ‘은혜롭다’(to be gracious) 또는 ‘자비를 베풀다’(to show mercy)로 번역되었다. 주로 ‘인애’로 번역된 ‘헤세드’(chesed)도 ‘자비’(대상 16:41)로 번역된 곳이 있다. 헬라어 ‘엘레오스’(eleos)는 고통에 의해 우러나오는 깊은 정서적 관심을 의미하며,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서 ‘엘레오스’를 사용하여 묘사되는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에 의해 마음이 깊이 움직이는 분이시며 우리를 그분과 원수 되게 하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돕기를 선택하신 분이시다(약 5:11). 자비는 특별히 복음서와 신약의 서신서에 잘 나타난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할 때마다(마 9:27; 15:22; 17:15; 막 10:47-48; 눅 18:38-39)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비가 하나님의 성품의 기본이라고 가르치셨고(마 5:43-48 참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선언하셨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과오 중 하나는 구약 율법의 세부사항을 강조하느라 그 뿌리가 되는 “의와 인과 신”(마 23:23; 12:7 참조)을 간과한 것이었다. 서신서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엡 2:4; 벧전 1:3). 우리는 영적으로 무력하므로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온전히 의뢰해야 한다(롬9:16).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야 하며, 우리에게는 이런 권면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 긍휼, 사랑, 인애를 참고성도가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 이방인(레 19:34). 고아(슥 7:9-10). 궁핍한 자(마 5:7; 요일 3:17-18). 적을 포함한 모든 사람(눅 6:34-35; 갈 6:10). 약한 자(행 20:35). 우는 자(롬 12:15). 이웃(롬 15:2). 시험받는 자(갈 6:1-2)성도(엡 4:32; 벧전 3:8). 과부(딤전 5:9-10)

 

 

6. 양선(Goodness)

 

시간과 금전의 여유와 상관없이, 기회가 닿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려는 태도,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갈 5:22). 이것은 성령의 사람의 특질 중의 하나이며 도덕적으로 뛰어남을 의미한다. 양선을 의미하는 헬라어 ‘아가도수네’(agathosune)는 착함, 올바름, 너그러움을 뜻한다. 간혹 선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롬 15:14; 살후 1:11). 갈라디아서 5:22의 양선을 공동번역은 ‘선행’으로, 표준새번역은 ‘선함’으로 옮겼다.

 

▶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신자의 일반적인 행동강령<충성. 온유. 절제>

 

7. 충성(Faithfulness)

 

​ 충성된 종 처럼(눅16:10), 남들로 하여금 자신을 신뢰(의지)할 수 있게 만드는 속성. 나라, 조직, 지도자 등을 위해 거역하지 않고 몸을 바쳐 순종한다는 뜻으로 히브리어 ‘네에만’(ne’eman)은 확실, 진실이라는 뜻의 ‘아만’(’aman)에서 유래한 말이다. 충성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가 간구해야 할 덕목이다(고전 4:2).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된 자라고 칭찬하셨으며(민 12:7), 히브리서도 모세를 가리키며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다고 언급하였다(히 3:5). 아브라함(느 9:8), 다니엘(단 6:4), 하나냐(느 7:2) 등이 충성된 자였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셨다(히 3:2,6). 충성된 자들에게 큰복이 주어지고(잠 28:20),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되며(마 25:21),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8. 온유(Gentle)

 

하나님의 말씀에 승복하​며(약1:12), 연단이 필요할 때 남의 처지를 사려있게 감안해주는 사랑의 표징(갈 6:1),

쉽게 화를 내지 않는 것. 곧 평정을 이끄는 것​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말한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와’(? nawah)는 자기를 낮춤, 괴롭힘을 당함, 겸손함이란 뜻을 지닌다(민 12:3).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갈 5:23). 온유한 자는 타인에 대하여 관대하며(마 18:21-22), 죄인에 대해서 회개할 때까지 인내하는 자이다(벧전 2:19-25). 즉 주님의 마음을 본받은 자를 가리킨다(마 11:29).“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온유란 단순히 외적인 폭력이나 잔인함의 반대어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그 고통을 인내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자세이다(마 11:29; 약 3:13). 인간이 역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를 끝까지 보살피실 것이라는 신앙으로 인하여 기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기업으로 받게 될 땅의 의미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창 15:18)에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이 메시아 왕국의 절정이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이다(사 66:22; 계 21:1). 세상에서는 강하고 공격적인 자, 무질서한 난폭자가 땅을 차지하지만 천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온유한 자에게 주어진다(시 37:1- 2, 11, 22, 34). 그리스도에게 속한 온유한 자는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이 모두 그들의 소유(고후 6:10)가 되고 마지막 날에 주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다(롬 8:17).

 

모세의 온유함에 대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가장 많았던 사람을 모세라 했다(민 12:3). 자신을 비방하는 소리에 대항하지 않고 감정을 억제하며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묵묵히 참아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는 의미이다. 지도자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역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과 모세 자신이 비난받는 상황에서 참아내는 것이 매우 곤혹스러웠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어느 순간에라도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출 32:32) 인간적인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온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다. 모세의 온유한 성품은 생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얻어진 후천적 기질이었다. 우리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 내게 배우라(마 11:29)”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할 때 비로소 온유한 성품을 소유할 수 있다(마 5:5). 이것은 인간의 본성적 기질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갈 5:22-23).

 

9. 절제(Self-control)

 

자제하는 능력으로 육체적 충동을 억제하는 것. 이 덕목은 성령을 떠나서는 불가능(벧후 1:6, 행 24:25), 신약에서 절제, 특히 정욕(passions)의 통제력을 잠언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말씀한다(잠 16:32).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남들을 다스리는 권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언 25:28).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기 쉬운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이다. 절제는 영적 지도자들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특성이다(딤전3:2; 딛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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