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마라나 타 (요한계시록 22장 19-20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7. 1. 5. 14:24

 

 

담임목사 김종웅

 

 

 

 

 

마라나 타

요한계시록 22 19-20

2017 1 1

                                                                                                                                                            No. 296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 타. 아멘

 

실패한 이스라엘. 성경의 시작은 출애굽기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 타 / 예수님에 의해서 시작된 새로운 시작. 예레미야도 2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했지만 이스라엘이 그 말에 순종하지 안 했기 때문에 솔로몬 시대에 그 번영이 그들 가운데 임하지 아니했다.

 

여러분 우리가 금년 한해는 열왕기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려고 합니다. 열왕기상 4 25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 대한 요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구영신 예배에 드렸듯이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포도 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거하였더라, 어느 누구든지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일도 없고, 또 연세 드신 분들이 은퇴를 두려워해서 고용의 절벽이라는 이런 말도 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런데 참 불행한 것은 예레미야도 그렇게 말씀했지만은 2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했지만은 이스라엘이 그 말에 순종하지 안 했기 때문에 솔로몬 시대에 그 번영이 그들 가운데 임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의 선포에 순종 해야 된다는 것은 성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보고 모세에게 내가 너를 보내노니 너는 그들을 구원하라, 이것이 성경 전체의 시작이다. 세상의 고통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서 구원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의 목적이다.

 

성경만이 아니지요 H.G. Wells 라는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역사는, 인류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 해주고 있다. 우리가 참 끊임없는 어리석은 역사가 되풀이 되어져요. 얼마나 개혁이라는 말, 새로워져야 된다는 말이 참 많니 난무하지만 왜 그러지 못하는가, 또 교회 안에서도 왜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되지 못하는가, 그저 성경을 알고만 있지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종을 하고 열심히 하는데도 하나님의 나라가 맛보아 지지 않는 것은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들이 가만히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기독교의 전통과 기독교의 어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말씀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목사님의 사상과 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하는 말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설교에 순종을 해야 되지만은 그 설교의 순종은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순종 해야 됩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말씀이 뭔데요 성경이거든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경을 여러분들이 다 구분해서 순종하려면 참 어렵습니다. 그러려고 했든 사람들이 유대교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규례들을 613가지로 정리해서 순종하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세요. 너희도 지지 못할 짐을 왜 타인에게 지려고 하느냐, 유대교를 만들고 유대교를 이끌어 가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뭔가라는 것을 아셔야 되거든요, 그런 규례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면은, 창세기로부터 시작이 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성경은 출애굽기 3장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남으로 시작이 되는 겁니다. 기독교의 시작이 그곳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그때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애굽의 노예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에게 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보고 모세에게 내가 너를 보내노니 너는 그들을 구원하라, 이것이 성경 전체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여러 가지 부주의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고, 보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나라에 지금도 여러분 tv만 틀어도 그런 소리가 이제는 짜증이 나는데, 교회 와서 제가 그런 말도 되풀이 하기도 미안하지만 여러 가지 국정의 농단으로 인하여 우리 젊은 사람들은 희망을 상실해 버렸고, 연세 드신 분들은 은퇴를 걱정하는 희한한 부르짖음이 탄식이 하나님 앞에 들려져요,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데 이모든 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구원하려고 하는가 하면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존재가 바로 그런 거에요. 우리 교회가 오늘날 세상의 고통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서 구원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의 목적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셔서 광야 40년 동안 그들의 삶을 인도하셨다. 광야 40년 동안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만나와 메추라기로 너희를 먹여 왔는데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면은 상황이 달라진다.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라 하셨다.

 

그 구원이 죽어서 가는 천국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가야 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도래 되기를 원해요. 어떻게 하나님의 무슨 말씀으로 이것 아셔야 되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이 뭔가,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셔서 광야 40년 동안 그들의 삶을 인도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민수기를 가지고 제가 강해를 했지만은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은 이것 못 보면은 민수기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 됩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생활 속에는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별로 차별이 없는 차이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렇잖아요, 여행을 다니면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부자라고 많은 옷을 가지고 먹을 것 싸 들고 가 봐야 짐밖에 더 되겠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 걸어갈 때에 성막 위에 구름이 머무르면은 유진해야 되고, 구름이 떠오르면은 이틀이든지 삼일 이든지 장막을 쳤다가도 거두어서 이동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부자라고 텐트 크게 쳤다가는 이동할 때 짐밖에 되지 않습니다. 부자라고 양식을 많이 비축을 하면은 이틀이 지나면은 벌레가 나고 썩어 버려서 짐밖에 되지 않는 것이 광야 40년의 삶을 말하는 거에요. 그런 생애를 살고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려고 하였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그들에게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주된 요점이 그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제가 신명기를 한해 동안 강해를 다 했었는데 여러분 그 말씀이 뭡니까, 광야 40년 동안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만나와 메추라기로 너희를 먹여 왔는데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면은 상황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곳에 가면은 정착민으로 살게 되면은 능력이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남들보다 집을 크게 짓는다는 겁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미래에 삶의 안전을 위해서 양식을 비축하게 된다는 거에요. 그 상황을 내다 보면서 모세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하는 말씀이 뭐냐 하면은 부자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네가 열심히 일해서 더 큰집을 짓고, 네가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양식을 소유하게 될 때에도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라고 그래요.

 

우리 다시 한번 신명기에 말씀을 뒤돌아 보자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추수를 할 때에는 밭 가장자리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내버려 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강한 자들 있는 자들에게는요 참 뻔뻔함이 있는데 우리가 오늘의 사회에도 보면은 참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은 그러한 뻔뻔함이 없어서 남의 굶어 죽을지라도 남의 밭에 들어가서 자기가 따 가야 할 몫조차도 당당히 못 들어 갑니다. 그래서 가장자리의 양식을 남겨 놓으라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도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골목 상권을 싹쓸이 해도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사는데요, 참 가난한 골목 상권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자기가 뭐 좀 더 하려고 하면 옆의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3. 하나님은 가난한 그들을 배려하는 공동체 이스라엘은 천대까지 보존될 거라 하셨지만, 배려가 없는 그들이 희망을 접는 시대가 되면 삼 사대가 되면 망하리라 하셨다. 에녹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에 계시를 받고 알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마음을 두고 산 삶이었다.

 

그래서 가장자리에는 놔두라고 그래요. 신명기를 읽어 보면은 너희가 추수를 해서 곡식 단을 싣고 가다가 떨어 떨이면 뒤돌아 가서 줍지 말라는 거에요. 그것은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배려한 몫이라는 거에요. 너희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그래야만이 너희의 공동체가 천대까지 보존되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종교적인 전통과 목사님이 하는 말, 하나님의 말씀 말고요, 그 말에 순종하면 여러분들이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가난한 자도 나와 하나님이 지으신 한 가족임을 알아서 그를 배려하는 공동체가 될 때에 이스라엘은 천대까지 보존될 거라는 말이에요, 그러나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 그들이 희망을 접는 시대가 되면은 삼 사대가 되면은 망하리라 그래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 장로님이 기도하면서 나라와 교회를 생각하며 울먹이며 기도가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경제에 11위에 대국이지만은 삼 사대 일세기가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이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한국 교회가 숫자를 자랑하고 번영을 자랑하지만 망하는 것은 30년이면 족해요. 이 경고의 말씀을 하는 거에요. 어떻게 망하지 않게 되느냐, 라고 말을 하기 위해서 창세기를 기록한 거에요. 너희들의 원조상의 역사 원 역사를 우리 한번 보자 라고 말을 하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어쩌면 신명기 다음에 기록되어야 할 말씀이에요.

 

그러면서 1장부터 11장까지 얼마나 중요한 말씀을 하세요, 작년 년 말에 여러분들에게 창조 1, 2, 3, 4, 을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려고 그것을 알게 하려고 기록된 말씀이 아니에요. 진화론이 아니고 창조론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기록된 말씀이 아니에요. 사람이 900살 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기록된 것이 아니에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을 하는데 그 가운데 아주 두드러지게 들어 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녹이고 하나는 노아에요, 에녹과 노아는 그 당대에 사람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가운데에 다른 삶을 살았다는 거에요.

 

그들이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며 살았는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는가, 그걸 말 해주는 거에요. 에녹은 여러분들에게도 말씀을 드렸지만은 에녹이 278세가 될 때에 아담이 죽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에녹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타살 외에는 사람이 자연사하는 것이 없는 시대라고요,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살 거 라고 생각하는 때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에 계시를 받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그는 땅에 마음을 두고 살지 않고, 땅에 살면서도 하늘에 마음을 두고 산 사람이 에녹의 삶이에요.

 

4.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패역한 세상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접는 세상에 홍수로서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계시를 노아에게 주셨다. 세상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재림의 시대가 열리는 신앙을 우리가 회복해야 된다. 하나님 안에서 배려할 줄 아는 자가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삶이다.

 

노아는 홍수 이전에는 지구에 비가 없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비가 없는 그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패역한 세상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접는 세상에는 홍수로서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그 계시를 받아서 산 사람이 노아 입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크게 집을 짓고 부유롭게 살 때에 노아와 에녹과 같이 가난한 자의 대한 배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내 능력으로 이것을 이루었다고 할 때에 파멸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새해에 첫날에 희망찬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만 정말 금년 한 해에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세상은 정말 엉망진창일지라도 교회 속에서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솔로몬 시절의 평강이 임하려면은 저와 여러분들이 무엇을 알아야 되는가 하면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 드려야 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내가 진실로 속히 너희 가운데 오리라고 하신 이 말씀, 반응이 뭔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마라나 타 이 신앙이 있어야 되는 거에요. 한국 교회가 세상에 빛이 되려면은 목사님이 국민통합위원장에 앉거나, 직권당에 새로운 위원장으로 앉는 것, 이런 게 아니에요. 기독교인들이 이 나라 살려 달라고 모두다 눈물로 기도하는 것 아니에요. 교회가 어떤 신앙을 회복해야 되는가 하면은, 나와 하나님이 지으신 한 백성이 가난할 때 그것에 대해서 외면하게 될 때 세상에 종말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신앙을 우리가 회복해야 됩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주일마다 인식해야 되요.

 

예수님의 재림이 분명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예전에 한국 교회가 재림 신앙이 만연할 때에 한국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었습니다. 재림 신앙이 사라지는 순간 이단들의 전유물로 사라지는 순간 한국 교회는 세속화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금년에 여러분들이 세상은 희망이 점점 줄어 들어가는 세상 속에 우리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편안한 삶을 살아가려면은 우리 이 신앙 알아야 되요. 우리는 죽고 예수님의 재림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성령 받은 사람의 마음임을 알아야 됩니다. 내 자식이 귀한 만큼 타인의 자식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임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왜곡[歪曲]하고 있어요. 우리 그러잖아요 한 부모 밑에 태어난 자식도 형제들끼리는 경쟁을 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은 어느 자식이든지 다 같은 자기 자식입니다. 그걸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성숙한 자녀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성숙이라는 것이 뭡니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거든요. 신앙의 성숙이 뭔가? 교회가 정해 진 전통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성숙인가, 교회가 정해 놓은 과업에 온몸을 던지는 것이 성숙인가, 그렇지 안 해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한 인류 한 사람이 나와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며 그를 배려할 줄 아는 것, 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가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삶입니다.

 

내가 좀 먹고 살면은 내가 돈 더 먹으려고 설치면은 좀 능력이 없는 사람은 문 닫지 아니할까, 이 생각 할 줄 아는 사람이 생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래요, 예전에 목회 초년 시절에는 어쨌든 간에 교회를 의롭고 그래서 번영하는 교회를 생각했는데, 목회가 20년이 지나면서는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동백에서도 우리 교회 예배당이 거의 제일 큰 축에 들어갑니다. 다른 교회는 십 만원이 없어서 전전긍긍하지만 우리 교회는 천 만원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백 만원은 쓸 수 있어요. 그래서 교인들에게 좀 더 활성 할 수 있는 프로그렘을 할 수 있는데 너무 이러면은 적은 교회가 문을 닫지 아니할까, 그러면서도 우리 교회가 번영해 나가야 되는 고양이 목에 방울 거는 그 지혜가 필요한 목회 쉬운 것 아니라 생각해요.

 

5.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접는 사회에는 하나님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우리를 세계 열강[列强]가운데 흩어 버릴 거라는 경고를 하신다. 자신이 제물이 되시고 너희들이 성막에서 드렸든 진정한 예배가 십자가에서 드려 질 거라고 하셨다. 성령을 보내셔서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이루셨다.

 

왜 우리가 그래야 되는가 주님 만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은 그들은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다른 나라보다 더 부유하려고 왕정 정치를 도입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보다는 인위적인 방법의 다스림을 추구해 갑니다. 그래서 여로보함 시대나 웃시아 시대에는 세계에 제1의 최강의 나라가 되었지만은 솔로몬 시대와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잃어 가는 그때부터 구약의 선지자들이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선지자의 말씀은 신명기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고하는 겁니다.

 

먹고 살만하냐,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되었나, 그런데도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접는 사회에는 하나님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우리를 세계 열강 가운데 흩어 버릴 거야, 그 경고를 하는 말입니다. 흩었지만은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의 새 판을 짜게 될 거야, 라고 말을 합니다. 그게 선지서 전체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앗수르의 파멸되게 하고 난 뒤에 새로운 시작이 하나님에 의해서 건설되는 나라가 솔로몬 시절에 제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선지자들의 말대로 새로운 시작이 역사에서 일어나지 안 했습니다.  

 

예수님이 올 때에도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는 비참한 상황에 있을 때, 예수님은 오셔서 선지자들이 말씀하였든 그 새로운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이 된다 라고 선포한 겁니다. 자신이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어서 너희들이 성막에서 드렸든 진정한 예배가 십자가에서 드려 질 거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할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는 사도행전 4장에 보면은 세상에는 가난한 자 부한 자가 서로 대립하는 세상 속에 이스라엘만큼은 핍절한 자가 없었다, 그게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경제적인 대국이 되어야 우리나라가 가난한 사람 없어지는가 아닙니다.

 

세상에 종말이 있을 것과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을 알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하나님이 아바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 모두가 영을 나눈 가족이 된 것을 받아 드리게 될 때에 우리 가운데 그렇게도 원하든 핍절한 자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이제 그 망상 버려야 됩니다. 어떤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거나 위대한 경제학자가 위대한 경제 정책을 쓸 때 우리나라는 부유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벗어 버려야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그 구원을 받아 드려서 나의 삶의 경쟁의 대상이 섬김의 대상이 되는 놀라운 그리스도의 성령의 공동체를 받아 드릴 때 우리는 부유함이 함께하는 나라가 될 겁니다, 교회가 그래야 됩니다.

 

한가지만 여러분들에게 말해 봅시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할 때에는 대학 졸업 초년병들이 연봉이 월 한 20에서 30만원 정도입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한 30만원 그러지 못하면 한 20만원, 지금은 10배가 넘는 연봉을 받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가 더 가난한가? 저는 지금이라 생각해요, 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왜 없는가 혈연주의와 연고 주의입니다. 최순실이의 국정 농단에 깊은 뿌리는 잘못된 모성애입니다. 그게 최순실이에게만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최순실이가 가지고 있는 힘과 환경과 여권이 없을 따름이지, 그것이 주어진다면은 유라에게 한 짓을 우리 모두도 하지 않겠어요.

 

6.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우리 모두는 핍절한 자가 없는 세상이 된다. 타인을 배려하며 산다는 것은 분명히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이다. 주님께서는 좁은 길을 걸어가라고 하셨다. 세상에 종말이 있고 새로운 시작이 예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되는 신앙을 회복해야 된다.

 

성령 지배 받는 사람 아닙니다. 오늘도 이 말씀에 순종해야 됩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때 누군가가 이일 때문에 울지는 않는가 하는, 그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우리 모두는 핍절한 자가 없는 세상이 되어 집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연봉이 열 배 이상을 받는대도 가난한가, 옛날보다 사교육비가 너무 많습니다. 왜 사교육비가 많습니까 내 자녀만큼은 잘되자고 하는 겁니다. 내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타인의 자녀도 잘 되기를 바란다면은 저는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없어지리라 생각해요. 그것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는 가난한 삶을 사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 하는데 어찌해야 됩니까, 내가 편안하면 누군가가 힘들다는 생각이 예수를 믿고 성령 받은 자의 마음이어야 됩니다.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이 참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최순실이 같이 자기와 자기의 가족만 알고 끊임없는 소유의 집착 속에 사는 세상 속에 타인을 배려하며 산다는 것은 분명히 좁은 길이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좁은 길을 걸어가라고 합니다, 그 좁은 길은 넓은 길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다 이렇게 가는 길 속에 거슬러 올라가는 길입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모두다 올라오는 그 길을 거슬러 갈 때에 저항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두다 자기와 자기 가족과 자기만을 생각하는 세상 속에, 타인을 배려하며 사는 것은 분명한 저항이 있고 고통이 있는 삶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에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에 채우는 삶이 신앙의 삶이라고 합니다. 왜 그래 살아야 되는가 주님 재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종말이 있고 새로운 시작이 예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되는 신앙을 회복해야 됩니다. 주님 만났을 때 영원히 인정받는 가치의 삶도 있지만은 여러분들의 삶에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해보셔야 되요. 순종하는 자만이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는 이런 말에 속지 마세요.

 

금년 한 해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여러분들의 삶에 작년에 일어났든 모든 어려움이 없는 복되고 형통한 삶이 증명될 거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현혹되지 마세요.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작년에 그렇게도 경험 해보고 싶지 않는 여러분들의 삶에 문제가 2017년도에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에 그렇게 크게 되는 문제들이 금년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져야 됩니다, 그게 성숙입니다. 여러분 성령 받고 은혜 받으면은 작년에는 내가 그 문제 때문에 죽고 사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희한한 생애가 있습니다. 그 삶이 노아의 삶이고 에녹의 삶입니다. 기독교의 2천 년의 역사 가운데 그런 삶을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안 해요.

 

7.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삶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삶이 경험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종말 이후에 새로운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문제가 컸든 것이 굉장히 작게 보여 지는 생애가 있다.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삶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삶이 경험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든 생애를 살아가는 겁니다. 전혀 경험 해보지 못했든 생애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으로 해결하며 사는 생애가 아닙니다. 그 삶은 똑 같은 생애에요. 예전에는 그렇게 그 문제가 컸는데 예전에는 내 자녀가 대학에 떨어지면은 살맛이 없는 생애였는데 예전에는 내 월급이 줄어들면은 살맛조차 없는 세상이었는데 그것이 굉장히 작게 보여 지는 생애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생명력은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 드려서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과 공동체에 대한 인식의 마음이 생기는 순간 그렀습니다. 한번 경험해 보셔야 됩니다.

 

새로운 17년에는 여러분들의 생애에 16년의 어려웠든 삶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16년도에는 나와 내 자녀와 내 가정만 생각하니까 그 문제가 너무나 크게 되어져서 세상 살맛이 없는 해였다면은 17년도에는 성령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서 그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이전에 경험 해보지 못한 생애를 경험해야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많아 질 때 우리나라는 열광의 먹이 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러시아가 일본이 우리를 눈치 보는 나라가 됩니다. 최순실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우리 얼마나 지향했든 삶입니까, 그의 종말은 아무것도 아니었잖아요. 저는 년 말에 T.V.를 볼 때마다 머리 속에 남는 말 한마디가 내 속에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 가운데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가, 18년 동안 개구리가 도약하기 위해서 웅크렸든 그 삶으로 뛰어올랐든 그것이 종말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마라나 타 아멘 주여 오시옵소서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홀연히 우리 가운데 온다고, 오늘도 이 종말 이후에 새로운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 내 능력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자 되게 할 능력을 주심을 알아서 내가 잘되고 내가 편안할 때 이 편함과 잘됨 때문에 누군가는 울고 있지 않는가, 그 삶을 살지 않는 공동체에는 개인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붙들고 살아야 됩니다.

 

국민 연금이 4천억의 손실이 오더라도 220억의 투자만 하면은 3 8백억의 이득이 생길 것 같은 결점이 오늘을 있게 한 것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은 내가 왜 그랬겠나, 왜 그랬는가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너무 크게 봤어요. 삼성의 재력이라면은 4천억은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크게 보였거든요 왜 그 4천억 가운데 있는 국민들의 눈물이 안 보였거든요, 삼성만 욕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속에 없습니까, 편안한 삶의 대한 추구만이 아니고 그 삶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No cross No crown 을 아셔야 됩니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저는 종종 내 마음속에도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타협의 마음이 싹틀 때가 있습니다.

 

내라고 왜 인생의 문제에 그것이 나를 지배하려고 할 때가 없겠습니까 그때에 아버지가 했든 말씀 한번씩 기억합니다. 사자가 배가 고프다고 풀 뜯어 먹으면 사자가 아니지, 사냥을 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해서 사냥해서 먹어야지, 기독교인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배가 고프다고 타협하면은 만왕의 왕 하나님의 왕족이 아니지, 김좌진보다 못해서 되겠습니까, 만주 벌판을 누볐든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은 자식이 천개천에 거지로 사는 게, 독립운동 하다가 집에 찾아와서 거지꼴로 있는 자식이 애비의 마음으로 왜 안 아팠겠어요,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안 했어요 왜 그에게는 나라의 독립과 2천만의 국민의 얼굴이 보였거든요.

 

8. 금년 한해도 솔로몬 시절의 평안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자, 타인에 대한 배려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길은 참 좁은 길이다, 작년에 여러분들이 큰 문제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순간 그 문제는 작아 질 겁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가 그래 되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길은 참 좁은 길입니다. 금년 한해도 솔로몬 시절의 평안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자, 타인에 대한 배려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삶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금년에 제가 그런 이야기한 겁니다. 오늘 이곳에 와서 앉아서 기도할 때에 2부에 성령이 나에게 강하게 하시는 말씀이 또 말이 되지 않고 삶이 되려면은 구체적인 지시가 있어야 된다고 해서, 그래서 김동호 목사 불렀습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내년에는 우리 교회 권사들이 이름만 있는 권사가 되지 않고, 성령의 유기체를 만들어 가는 권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중보기도회에 권사님들 조를 짜서 참여시키라 했습니다.

 

여러분 중보 기도회는 기도의 응답이 있는 능력의 기도가 아닙니다. 중보 기도를 하면은 타인에 대한 아픔이 내 것이 됩니다. 그러면 내 문제가 작아 집니다. 교회에 대한 눈물의 기도는 내 개인의 삶의 문제를 작게 만드는 희한한 능력이 중보 기도에 있습니다. 이것 경험 못해 봤잖아요, 그걸 해 보셔야 됩니다. 금년에는 예고된 심방 교역자들이 여러분들에게 찾아가는 것은 행정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는 심방은 여러분들이 가서 봐야 됩니다. 왜 권사 세웠습니까 어려운 교인을 돌보라고 세운 겁니다. 나 권사인데 하라고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심방에 조를 짜서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을 담당을 정해라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 있어야 오늘 이 설교가 공허한 공기를 진동하는 소리가 되지 않고, 평안한 삶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 권사님들에게 제가 간곡히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생애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중보 기도를 하고, 심방을 하면은 그 문제가 너무나 작게 보여 지는 희한한 신비한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세상의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져 갈지라도 좀 그런 것이 있어야 됩니다. 만 명, 십만 명, 모이는 교회가 영원히 존속하지 않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텅 빌 수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에 모든 목사들의 로망인 로버트슐러의 크리스탈처치 는 30년이 지나고 흔적이 없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도 내가 잘되면은 내 잘됨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이웃이 있는 것을 배려하는 교회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10권 안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존재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굴복 시킬 수 없습니다. 힘으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힘으로 우파는 좌파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좌파는 우파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서로의 배려가 있어야 됩니다. 금년에 우리 권사님들 중보기도와 심방에 한번 참여해서 이전에 못 봤든 희한한 하나님의 나라를 좀 경험해 보시고요, 또 우리 사랑하는 교인 여러분들은 그냥 예배 때마다 포도 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앵무새가 나불거리듯이 의미 없는 나불거림이 아니고, 작년에 여러분들이 큰 문제들 타인데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순간 그 문제는 작아 질 겁니다. 사자가 사냥하기 힘들다고 풀 뜯어 먹으면은 사자 아닙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과도히 아낄지라도 남는 것이 없고, 흩어 나누며 구제할지라도 부족함이 없었다는 잠언의 고백을 생각하며 귀한 예물 드립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의 은혜가 사랑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들의 생업과 이 땅의 교회에 흘러 넘쳐 나기를 소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난한 자들의 배려를 잊지 않는 이스라엘의 공동체는 천대까지 보전되리라 했건만,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혈의 피 흘려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천국에 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임을 받아 드려서 땅에서도 일어나는 문제를 지극히 작게 여기는 신비한 신앙 생활을 하게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지극하신 사랑하심과 중보 기도와 심방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한 지체의 아픔이 우리 모두의 아픔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지체 가운데 한 지체의 즐거움이 우리 모두의 영광이 되게 하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이들의 생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주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이 땅 위에 새 초부터 새말까지 함께할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