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인간의 수명
창세기 5장 21절-24절
2016년 12월 04일 주일 낮 예배
No. 292
21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창세기 5장의 인간의 수명이 평균 900세. 홍수 전 지구와 인간의 수명, 홍수 후 지구, 인구 증가와 인구수. 에녹의 삶,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창조 신학과, 재림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창세기 5장에 보면은 사람들이요 평균 900살을 살았어요, 라멕이라는 사람은 777세를 살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엔 요절했지요, ㅎ ㅎ 여러분 이 말씀 믿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 있는대로 사람의 수명이 900세 동안 살았지 않다면은 성경은 진리가 안 되겠지요, 그래서 계몽주의 이후에 점점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설화다, 그것이 믿을 것이 못 된다, 그걸 빼고 예수님의 말씀이나 좋은 말씀만을 믿어야 된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라든지 교훈의 말씀을 들으면 된다, 이랬어요 그러면서 기독교의 생명이 사라지게 된 거에요. 교회가 세상을 구원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1.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이 된 것. 예수님의 재림이 확실히 있는 것을 믿는 것. 다윗왕은 70세를 살은 것이 홍수 이후에 인간의 수명이 줄었다는 것이 노아 홍수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 홍수 후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했다.
그러면 여러분 이 말씀이 정말 성경은요 모든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되어야 예수님의 십자가로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이 된 것과 또 우리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확실히 있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성경이 이런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라면은 우리가 그것을 믿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우리가 이 평균 900세만을 생각하는데 창세기 11장에 가보면은요 또 셈의 족보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보면은 셈은 600세를 살았대요, 그리고 셈을 아들 아르박삿은 465세를 살았고, 그 아들 셀라와 손자 에벨도 비슷하게 살았고요, 증손자 벨렉은 239세를 살았어요.
그리고 벨렉의 아들 르우와 스룩은 비슷하게 살았고, 증손자 나홀은 148세로 줄어듭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그리고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어요, 그리고 또 성경에 보면은 모세는 120세를 살았다고 그러고 그 유명한 다윗왕은 70세를 살았어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성경에 인간의 수명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은 성경에 사람의 생명이 줄어드는데 언제부터 줄어들었는가 하면은 셈부터 줄어들었거든요, 그래 셈이 누구냐 하면은 노아의 아들이거든요, 함과 야벳 셈 세 아들 중에 하나라고요,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 하면은 인간의 수명이 노아 홍수와 굉장히 연관성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노아 홍수를 이전의 지구와 홍수 이후의 지구는 굉장히 다릅니다. 홍수 이전의 인간과 홍수 이후의 인간의 모습은 굉장히 달라요. 제가 지구의 창조는 첫째 날이라 했지요 지난주에, 해와 달과 별은 넷째 날 만들어졌어요, 그래 둘째 날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을 나누었다 그래요, 그럼 홍수 전의 지구는 지금 대기권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다고요,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홍수 이전에는 비가 없었고요, 홍수 이전에는 대기권이 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남극과 북극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극지고, 또 적도는 뜨겁고 이런 것이 아니고요 지구 전체가 아열대 기후인 것을 말하고 있어요.
햇빛이 와서 다시 궁창 위의 물에 복사가 되어져서 골고루 따뜻했다고요, 이것이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 하면은 여러분 저 시베리아나 북극 극지에서도 화석이 발견이 되는데 어떤 화석이 발견이 되는가 하면은 이 온대 지방에 있는 활력 수가 발견이 되는 거에요, 극지에는 침엽수만 있어야 되는데, 그러면은 그 옛날에 시베리아나 저 북극도 아열대 기후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거든요, 이랬든 지구 그때에는 지금보다도 먹거리가 훨씬 풍부했어요, 그래서 인간이 먹는 음식도 채소와 창세기 2장 5절에 보면은 과일이다 이래요, 실제로 우리 인체에도 보면은 위는 과일 소화형이에요.
소는 위가 네 개가 되어 가지고 풀의 소화형이거든요,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제철에 나는 과일이 우리 몸에 좋다 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홍수를 보면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창세기 7장에 홍수의 광경을 지하에서 깊은 샘이 터지고 위에서 창문이 열려 가지고 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리고 그 홍수 이후에 어떤 일들이 있는가 하면은 창세기에 말할 때에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창세기 11장 까지를 한번 더 읽어 보세요. 추위와 더위가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리고 홍수 이후에 창세기 9장에 가보면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했다, 고기를 먹게 했다, 왜 먹게 했는가 하면은 지구의 환경이 확 변화되어서 먹거리가 줄어들었어요.
2. 성경은 이렇게 홍수와 인간의 수명이 굉장히 밀접하게 변화된 것을 말하고 있다. 홍수 이전에는 우리가 900세를 살다가 이제 홍수 이후에 우리가 120세를 살았다. 성경의 출발은 출애굽기 라고 했다. 호랩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 성경이 시작이 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채소만 먹기에는 우리가 단백질 부족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고기를 먹도록 허락한 거에요. 고기를 먹으면서 우리에게는요 수명에 많은 단축이 온 거에요. 성경은 이렇게 홍수와 인간의 수명이 굉장히 밀접하게 변화된 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되는 것이 목사님 그래도 900살이 120살이 오늘 70-80세로 줄어드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아무리 환경이 좋다고 그래도 성경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홍수가 날 때에 창세기 6장에 보면은 사람의 나이 120세가 될 거다 이랬다고요, 노아에게 120년 후에 홍수가 나서 세상이 멸망 당할 것을 말하면서 홍수 이후에는 인간의 수명이 120세가 될 거라는 거에요.
실질적으로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모든 동물의 수명은 성장기 곱하기 5거든요, 그래서 개는 3년 동안 성장하기 때문에 15년이 개의 수명이고, 인간은 약 20세에서 25세까지 성장하기 때문에 인간의 수명은 120년이 되는 거에요. 지금 우리가 실질적으로 보면은, 그러면은 그래도 목사님 너무 많이 차이 나지 않느냐, 창세기 6장에 홍수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니라.
여기에서 여러분 신학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사람의 아들들은 뭐며, 또 하나님의 아들들은 뭐며, 사람의 딸들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서 육신이 되는 것이 뭔가를 많은 설명을 하지만은 저는 그 설명 안 믿어요. 우리가 성경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거든 것. 왜냐하면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알고 싶으면은 빨리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면은 여러분들의 호기심이 충분하게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유추할 때에 분명히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하면은 홍수 때는 그런 지구의 환경도 변화 되었지만은 인간도 유전적으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봐요.
그래서 과거에는 우리가 아마 조금 더 유전학이 발전을 한다면은 우리 속에 900세 살았든 DNA가 인간에게 숨어 있으리라고 봐요. 그래서 우리의 몸도 굉장히 많은 변화를 일으켜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중요한 것은 아 홍수 이전에는 우리가 900세를 살다가 이제 홍수 이후에 우리가 120세를 살았고, 지금도 먹거리나 환경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수명이 120세 살 것이 단축되었구나 이것을 말해 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분명히 이것은 사실이지만은 성경은 그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려고 하는가 하면은 이것을 알려면은 지난주일 이야기한 대로 모세의 관점에서 성경을 봐야 된다고 했지요, 성경의 출발은 출애굽기라고 했잖아요. 호랩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 성경이 시작이 되는 거에요.
3. 하나님께서 계시를 모세에게 준 것은 너희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에 있는 일곱 족속의 바알신앙을 좇아서 그들의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과 같은 삶을 살라는 것이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았다, 므두셀라 라는 것은 투창을 던지는 자라는 말인데 장수라는 말이다.
래서 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구원을 해냈는데 이제 그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계시를 주어서 모세에게 주었는가 하면은 너희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은 가나안에 있는 그 일곱 족속의 바알신앙을 좇아서 그들의 삶을 살지 말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너희들은 옛날 뒤돌아 보면서 애굽에서의 삶도 살지 말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백성 선민으로서의 올바른 생애를 살라고 말씀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성경의 원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너희들이 900세까지 옛날에 살았는데 성경은 900세까지 살은 삶이 뭐 그렇게 의미가 있느냐는 거에요. 에녹의 삶을 살라는 거에요.
어쩌면은 여기에 나오는 아담의 족속 계보의 이야기는 하나의 종교인들의 삶일 수도 있어요. 여러분 이 에녹의 삶은 신앙인의 삶을 말할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고 신앙 종교 생활 하는 것 그러면서 120 사는 것 의미가 없어요.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에녹과 같은 생애를 살아가라고 성경은 말하는 거에요. 오래 사는 장수는 유교나 세상의 관점에서 복이지만은 기독교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요, 하루를 살아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을 말하는 거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는 삶이 있을 때 우리는 하늘에서 천국에서 경험해야 할 그 삶을 땅에서 경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럴 때에 우리는 예수 믿고 거듭난 자의 삶이 뭐 특별한 삶 성경에 충만한 사람은, 특별한 삶, 사명에 사로잡혀서 이 어두운 세상을 내가 밝히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하고 여러분 이런 게 아니에요. 그것은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제국주의가 세상에 만연할 때에 그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 말입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이 아실 때에 하나님 여기에 보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더라고 해요, 여러분 교회에 나오는 것은 신앙 생활이고, 전도하는 것은 신앙 생활이고, 여러분 기도하는 것은 신앙 생활이고, 집에서 애들 기르는 것은 세상일이고, 회사 가서 돈 버는 것은 세상일이고 이것은 이분법이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의 삶과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의 차이는 똑 같아요. 무엇이 다른가 하면은, 예전에는 내가 세상사는 사람과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거에요. 자녀를 낳고 신앙 생활하는 것도 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뭐냐 하면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난 뒤에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하는데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에녹에게는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거에요. 그 므두셀라 라는 말은 여러분들에게도 옛날에도 한번 설교했지만 히브리어로 므두 라는 말은 죽음이라는 말이에요, 셀라 라는 말은 평화라는 말이에요. 이 두 개가 합성해 된 말인데 이 두 개가 합성하면은 투창을 던지는 자라는 말인데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그 족속의 장수라는 말이에요.
4.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자 골리앗 하나 죽었는데 블레셋은 전쟁에서 진다, 므두셀라 라는 말은 이 아이가 죽을 때에 세상이 멸망 당할 것을 에녹은 계시 받았다. 라멕의 두 아들 유발과 두발가인이었다, 유발은 퉁수, 두발가인은 쇠로 만드는 과학의 아버지, 소년을 죽이는 라멕의 시대였다.
여러분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는 지금은 우리가 전쟁이 전자 전이 되어서 뭐 군인 숫자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옛날 족장 시대의 전쟁은 족장끼리의 싸움이에요, 장수끼리의 싸움, 그래서 한 족속의 멸망은 그 족속의 장수가 죽는 것은 멸망이라고, 그래 삼국지에 여러가지 이야기나 그건 아니더라도 성경에 보면은 블레셋 하고 이스라엘이 싸울 때에 골리앗이 살아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벌벌 떨고 꼼짝을 못했어요,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자 골리앗 하나 죽었는데 블레셋은 그 전쟁에서 진다고요, 그게 고대의 싸움이에요. 그러면은 이 므두셀라 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이 아이가 죽을 때에 세상이 멸망을 당할 것을 에녹은 계시 받은 거에요.
그는 세상이 멸망을 당하고 사람이 죽는다는 계시를 받으면서 그는 삶이 완전히 변했어요, 자녀 내팽개치고 교회 생활했느냐, 직장 안 가고 기도 생활 했느냐, 가정 안 돌보고 교회에 헌금만 했느냐, 그게 아니에요, 에녹의 변화는 여러분 세상이 멸망을 당하고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자녀를 키우고 직장에 다니는데 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이에요, 그 새로운 형태의 삶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 했더라는데 성천을 의미하는 것도 되겠지만은요 그 사람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그는 점점 성화가 되어져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있지 아니하는 사람과 같은 생애를 산 거에요.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님 만나서 바울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 그게 에녹의 삶이에요.
여러분 이 에녹의 삶을 살아 가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모세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 계시의 말씀을 둔 것은 에녹 시대와 동일한 시대가 가인의 족보가 나와요 창세기 4장에 보면은 이 가인의 족속은 신앙인이 아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라 말입니다. 그 가인시대의 동일한 시대가 라멕이라는 사람의 시대에요. 창세기 4장의 라멕하고 창세기 5장의 라멕은 이름은 같아도 다른 사람인데요 이 라멕은 아내가 둘이에요, 그리고 그 두 아내에서부터 아들을 낳았는데 유발과 두발가인 이래요, 그러면서 여러분 그 유발은 문화 수금과 퉁수를 잡는 자의 조상 굉장히 문화가 발달했어요, 문화융성국을 이루었어요.
그리고 두발가인은 쇠로 여러 기구를 만드는 과학의 아버지에요. 경제성장도 창조 경제와 문화 융성을 이룬 것이 라멕의 시대에요. 그런데 그 라멕은 여러분 23절에 보면은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굉장한 문화의 융성과 창조의 경제로서 과학이 발달하고 잘 살았지만은 그 시대는 자기에게 조금 상처를 냈다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찬양하는 가치관이 있는 거라 말입니다. 나에게 상처되었다고 소년도 죽여 버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라멕의 시대라 말입니다.
5. 성경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로마의 가치도 힘이 정의인 시대였다. 애굽의 바로가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지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다. 바로가 위대함을 나타내려 했다. 그 시대에 에녹은 나도 살면 너도 사는 삶을 살은 것이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한번 보세요 우리가 굉장한 문화의 융성과 경제의 발전을 원하지만은 그 모든 것들은 뭐냐 하면은요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사람은 죽든지 말든지 번영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 그게 세상의 가치요. 제가 박정희 대통령 폄하할 마음은 없지만은요 얼마나 경제의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까 그런데 그때에 얼마나 많은 인권의 유린이 있었어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성경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로마의 가치도 힘이 정의인 시대였다고요, 그래서 로마의 시민권 자들은 자기가 조금 손해 보면은 되로 받고 말로 갚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라 생각한 거에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세상에 가인의 족속의 삶, 어떤 삶인가 아셔야 되요, 여러분들이 자녀에게 공부 잘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이 자녀에게 실력 좋은 사람 되기를 바라는데 왜 그래요, 네것 빼앗기지 말고, 남의 것 빼앗아서 살라는 겁니다. 그게 라멕의 살인의 찬양의 다를 바가 어디 있어요. 애굽에서는 바로가 자기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지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기에 피와 땀을 흘렸습니까, 많이 흘려서 더 크게 지으면은 위대한 바로가 되는 것이 세상이에요. 여러분 인류 전세계가 팽창일로에 있을 때에 개척에 있을 때에 수많은 원주민들을 수탈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우리가 존경하는 마젤란이나 여러 개척자라 말입니다.
콜럼버스 그런데 요즘은요 우리가 그때의 그 잘못을 이제 미국에도 콜럼버스 day를 원주민 day로 바꾸자고 한는 것 아시지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 속에 이 변화가 있어야 되요. 라멕의 시대에 힘이 정인 시대고, 내가 조그만 상처를 받았는데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사람으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자질을 기른다고 하는 그 시대에 에녹은 나도 살면 너도 사는 삶 살은 겁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은 다른 사람에게 눈물이 되지 않는가를 생각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에요. 내 자식이 대학 떨어진 그 자리에 남의 자식이 합격한 것을 보면서 내 자녀 떨어진 것에 대한 위로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위로에요. 내가 못살라는 말 아니에요, 우리의 삶은 닮아야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 지금 얼마나 우리가 기가 찬 시대에 살아가요? 그런데 이 기가 찬 시대가 우리 시대만이 아니었어요. 어느 시대나 다른 사람은 죽든지 말든지 자기 살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인정을 받는 사회였습니다, 우리시대 기가 찬 것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도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 안 해야 되는데 최순실이도 그래 가지고 교회에 감사 헌금 냈다고 그러고, 박수 쳤는지 모르겠어요. 희한한 말하는 어느 당 대표도 성경 펴 놓고 단식해 버리고, 더 기가 차는 것은 현기환도 기독교인이래. 여러분 우리가 이런 사태를 보면서 이 시대에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건 가인 족속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6.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지금 이 말씀 기록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죽음을 경험한 자만이 에녹의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인생에 큰 사고를 경험한 후 삶에 Turning point가 될 수 있다.
아담의 후손들은 900세를 살았는데 그저 종교 생활 하는 것이 아니고,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지금 이 말씀 기록한 거에요. 에녹이 어떻게 해서 이런 삶을 살았는가, 에녹이 살은 것 동행한다고 자녀 팽개쳤다 안 해요. 자녀를 건양하며 잘 살았는가,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세상의 종말과 죽음에 대한 계시를 받으면서 여러분들이 한가지 알아야 되는 것이 이 에녹의 시대까지는요 타살은 있어도 자연사는 경험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아벨은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고, 라멕은 자기의 창성으로 인하여 사람을 죽이고 소년이라도 죽이는 타살은 굉장히 많은 시대였지만 자연사는 한 명도 없었어요.
왜냐하면은 아담이 930세를 살았는데 아담이 죽을 때에 에녹의 나이가 278세였어요. 자연사가 없고 세상이 멸망 당할 것을 아무것도 생각 안 하는 그때에 하나님께서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너 죽는다는 것 경험하게 한 거에요. 세상에 멸망 당하는 것을 경험하게 한 거에요.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지요, 우리 한국에는 또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문제가 뭔가 하면은 학문을 헬라적인 방법으로 한다는 거에요. 성경은 히브리적 사고거든요, 헬라적인 학문은 뭐냐 하면은 사실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도 정보를 알려고 해요. 히브리적인 것은 경험이에요. 죽는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이 멸망 당하는 것 모르는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는 과학이 발달화 되어서 점점 우주는 팽창해서 언젠가는 에너지가 zero가 되는 해체의 상태가 올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지식으로는 아는데 경험으로는 몰라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는 거에요. 죽음을 경험한 자만이 에녹의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번 이야기 했지요, 저는 제 인생에 경험해서 통합 병원에서 제가 중환자 실에서 죽음을 경험한 것이요 제일 엄청난 신앙의 Turning point 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주변에 그런 사람 있잖아요. 사업 부도나고 난 뒤에 비로서 사람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자기 인생에 큰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Turning point 가 되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게 예수 안에 일어나야 되요. 에녹 에게는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난무한 시대에 종교인들은 900살 까지 사는 것이 목적인 그 시대에 세상에 있지 않는 하늘에 속한 자, 하늘의 시민권을 두고 사는 에녹의 삶이에요.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면은 그런 삶을 살라는 거에요. 여러분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뭔 줄 아세요, 저는 등촌동 국군수도 통합병원에 20일 동안 의식 불명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느꼈든 것은요 미운 사람이 없어져요, 죽는다면은 미운 사람 없어요. 죽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가지고 싶은 것이 없어요.
그런데 참 사람이라는 게 간사해요, 아마 여기 보니까 진용이 용서하고 들어, 아마 우리 윤승국 집사님 진용이 군대 제대했을 때에는 야 참 사람 되어 왔구나 싶을 거에요 ㅎ ㅎ ㅎ 6시에 기상 나팔 불든 그 습관이 있어 가지고 벌떡 일어나 가지고 지것 지가 챙기고 이러다가 얼마가요? 3개월 원위치 된다고. 그게 사람이에요.
저도 수도통합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을 때에는요 정말 사람이 귀하게 여겨 지더라고,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필요가 없더라고.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니까 또 미운 놈이 생기고, 또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기고, 이게 인간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랬다가도요, 어느 날 순간에 미움이 왔을 때에 그 미움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는 안 해요. 군대에서 제대해 가지고 3개월 이후가 되면은 옛날 습관으로 돌아간 것 같지만은 옛날 때하고 달라요, 머리는 성숙되어 있어요, 못 따라와서 그렇지, 또 욕심도 나요, 그런데 그 욕심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되어져요. 이게 그리스도가 우리를 지배하는 삶이라고 저는 봐요.
7. 골로새서에 해지기 전에 분을 풀라는 것이 에녹의 삶이 그런 삶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와 함께 죽으러 가자 그랬고,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그랬다. 세상에 있는 것을 경험해서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다.
여러분들이 내가 볼 때에도 문득 문득 목사님이 그래 말해서 좀 미안하지만 열도 받고 하지만 그 열 받은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는 안 해요. 그래서 골로새서에 해지기 전에 분을 풀라는 것이 저는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에녹의 삶이 그런 삶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이런 기독교인의 삶이 왜 이래 욕심이 많은가, 왜 이래 우리가 다른 사람 말 한마디를 들으면은 백 마디로 갚아 줘야 되고, 죽는 줄 모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재림을 상실한 한국 교회에요. 왜 이단 때문입니다. 재림을 이야기하면 이단이라 생각해요. 사람들은 죽음을 이야기하면 싫어해요, 그래서 사람이 안 되는 거에요.
여러분 이단은요 재림을 날짜를 가지고 카운터다운 하는 게 이단이고요, 우리는 삼단이에요 그들보다 한 수 높아요, 한 수 높은 삼단은 뭐냐 하면은요 분명히 죽을 그 심판을 아는데 오늘 죽을 것 같이 사는 거에요. 오늘 세상이 망할 것 같이 사는 것이 삼단의 삶이에요. 그들은 모일 모시에 일어나 카운터다운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고 남은 기간에 마음껏 살아 보자 해보자는 거에요. 우리는 오늘 죽을 줄 아는 삶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나와 함께 죽으러 가자 그랬고요.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교회 나오는 것은 죽으러 나오는 거에요. 죽는 게 뭔가 한 주간 동안 욕심부리고 말 한마디 상처받은 것 백마디 갚아 주고 했는데, 주일에 와서 죽는 것을 경험하는 거에요.
세상에 있는 것을 경험해서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 삶이 우리가 상실해 버린 거에요. 에녹은 분명히 그 계시를 받았을 때 삶이 달라졌어요.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에녹이 므두셀라로 인하여 계시를 받은 것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계시를 받아서 이제 남들보다 좀 못 가진 것 때문에 슬퍼하지 마세요, 남이 한마디 한 것 가지고 남이 나에게 잘못한 행동 하나 때문에 내 삶을 지배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은 대통령과 권력자에 갔을 때에 그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것을 경험해야 되요. 수많은 대통령이 그래서 내려올 때에 비참하게 되었는데, 알아요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서 내려와야 된다는 것 지식적으로 아는 거에요, 경험적으로 아는 게 아니고.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은 오늘 내가 그 자리에서 내려 앉는 것을 생각으로 5년을 사는 거에요.
8. 부정 부패하는 사람들 자기가 네 끼 다섯 끼 먹으려고 부정 부패하는 사람 없다, 내 새끼만큼, 한가지 알아야 될 것은 그것도 내려놔야 된다는 것, 그게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자식을 바친 것이다. 자녀에게도 부모가 다 해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 길러 주는 것.
아무리 사업이 잘 되어도 오늘 사업이 망할 것 같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에요. 한국의 부모들은 여기에 자녀를 낳는다는 말속에 제가 그런 생각 가집니다. 한국의 모든 부정 부패와 모든 인간의 불행은 어디에서부터 시작 되는가 하면은요 자녀 때문이에요. 부정 부패하는 사람들 자기가 네 끼 다섯 끼 먹으려고 부정 부패하는 사람 없습니다, 내 새끼만큼 여러분 한가지 아세요, 그것도 내려놔야 되요, 그게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자식을 바친 거에요. 저는 목사가 참 되어서 좋은 것은 뭐냐 하면은 경험 해보지 못하는 간접의 삶을 내 삶으로 많이 성화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 목사에요. 어려우면 목사 찾아오잖아요, 좋으면 안 오잖아요, 좋은 일은 교인들끼리 하고 안 좋은 것은 목사 찾아와요. 똑 같애, 자식들 좋으면 저희끼리 좋고, 어려우면 엄마 아버지 찾는 거와 똑 같아.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참 교인들 중에 보면은 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식들 엄마들의 애끓는 소리를 한번씩 듣거든요, 그 엄마의 소원이 뭔 줄 아세요, 자식보다 하루 더 사는 거에요. 대부분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엄마들의 소원은요 다른 소원 아니에요, 이 애보다 내가 하루 더 살기를 바란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 애보다 하루 더 살지 못한다는 것 알거든요, 그걸 아는 사람은 어떤 줄 아세요, 제가 어제도 홍집사님의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내가 이 자식보다 하루 더 살지 못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은 내가 없이도 지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 길러 주는 거에요.
오늘날 여러분 최순실이가 괴물 만들어 냈잖아요 유라 라는 괴물, 최순덕이가 장시호 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잖아요, 뭐 다 해 주려 했어요. 내가 없어도 지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되요, 우리 한국의 부모들의 가장 큰 문제 이거에요, 하나님도 다 나에게 해 달라는 거에요, 하나님 없이도 내가 살아 가도록 엎어졌을 때 기다려요, 기다리는 하나님은 더 아파요, 최순실이나 최순덕이 보다 더 능력 있고 더 사랑이 많은데도 해 줄 수 있는데도 안 해 줘요, 이게 에녹의 삶이에요. 저 지난 주일 분리의 이야기 했지요, 점점 분리 독립 시키는 누가 그래 살 수 있어요, 하나님 믿어서요, 라멕은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자에게 살인은 소년이라도 죽여야 되는 살인을 찬양하는 자인데 지 자식에게는 문화의 창달 자로 만들었어요. 철로 기계를 만드는 최고의 과학의 발전으로 만들었어요. 문화창달 창조과학이 아닙니다.
9. 오늘 주님 재림할 것을 믿으면서 사는 사람이다. 나 오늘 죽는 줄 알면서 사는 삶이다, 재림과 죽음은 준비된 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큰 문제다, 어떤 생각이 떠 오르지만 그게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 하는 것이 주님 재림 믿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도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 그 하나님 믿어야 되요.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어요. 누가 동행하는가, 말로만 하나님과 나는 동행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 아니에요, 오늘 주님 재림할 것을 믿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나 오늘 죽는 줄 알면서 사는 삶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도적과 같이 임한다 그랬어요. 예수님은 도적과 같이 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도둑은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는 문제가 되지 안 해요. 잠자고 준비되지 않는 자는 도둑은 위험한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죽음은 준비된 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안 해요.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큰 문제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엄마는 하루를 더 못사는 줄 알기 때문에 오늘 죽어도 지가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면서 살아요. 여러분들 마음속에 더 가지지 못해서 분노가 있습니까, 남들에게 말 한마디 받은 상처 때문에 그것 백 마디로 갚아 주어야 되는데 마음에 분노가 있습니까, 주님과 함께 안 죽어서 그래요. 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할 수 없어요, 루트가 이야기한 대로,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창세기 6장에 육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머리 위로 새가 날아가는 것은 할 수 없어요, 내 머리 속에 나쁜 생각 떠오르는 것은 할 수 없어요, 그 새가 나에게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라고 그랬어요.
오늘 우리 정재훈씨가 설교를 참 잘듣는데 골프 선수잖아요, 같이 저는 군대 국가 유공자라서 가면은요 아 어떤 사람은 죽을뚱 살뚱 때려 가지고 나보다 훨씬 많이 나가, 내가 뭐라는 줄 아세요, 공에 누구 넣은 줄 아나, ㅎ ㅎ ㅎ 그 말이 뭐에요, 생각이 떠 오르지만은요 그게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 해야 되요. 그래서 예수님 재림 믿으면서 사는 거에요. 그것이 우리가 오늘 죽는 것 같이 사는 삶이에요, 교회가 그것 잃어버렸어요. 저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상에만 집착하고 살아서요, 여러분 한번 죽어 보세요, 그렇게 미웠든 사람도요 보고 싶어요, 오늘 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지금 바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루만 더 살았으면 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엄마가 오늘 죽는다는 것을 알면은 자기가 염려하는 것이 뭐 큰 의미가 있어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져서 에녹이 65세에 그 신앙 생활 하고 300년이 지나니까 성화가 되어져서 세상에 모든 것에서 초월한 그런 영화로운 단계까지 간 겁니다. 이러 영성과 이런 신앙의 훈련이 주일날 예배를 한번 더 드리는 연조가 더 해 갈수록 미움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가지고 싶은 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세상에 영화가 하나 둘 내려놓아서 남들이 볼 때에는 무슨 빽으로 저렇게 배짱 있게 살까, 내 속에요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 보니까 LCT가 파고들어 파고 들어 가보니까 최순실이던데 ㅎ, 내 속에 파고 들어가서 파고 들어가서 최순실이 있는 줄 알고 들어가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이 보여 지는 그런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이 되어져서 사는데 우리가 교회 생활하면서 아는 사람 욕 안 할 수 있어요, 욕 들어도 그게 지배하지 않고 욕심이 나서 남 죽든 말든 지하고 싶을 때에 손을 오므릴 줄 아는 그런 에녹과 같은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라멕의 두 아들 유발과 두발가인과 같이 하나 아들의 문화창달과 문화융성과 한 아들의 창조과학을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살인을 찬양하며 살았든 라멕과 같은 세상입니다. 남들보다 좀더 멋있게 더 부유롭게 살기 위해서 섬기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을 생존의 경쟁의 대상이라 생각하는 살벌한 살인의 칭송이 있는 시대를 사는 주의 백성들입니다. 주님 부르심 받아서 재림을 지식적으로 알고 중요한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기본적으로 알게 해서 이제는 나에게 말 한마디 한 사람, 상처 준 사람에게 백 마디로 갚아 주어야 시원한 것이 아니라, 백 마디로 갚아 주고 싶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에녹의 삶을 살게 해 주시고 우주보다 커서 우리의 마음에 물질로 채우면 채울 수록 허기진 인간이 바다 물 먹듯이 더 목마른 인생 속에 하나님으로 채워서 욕심이 나를 지배 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부모라고 생각하고 살인을 찬미하는 내 삶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세상에서
그 아들의 삶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주님 재림하고 오늘 죽는다면은 장애를 두고 있는 그 아들의 대한 염려가 얼마나 부질없는가 하는 것을 알아서 에녹과 같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잊지 아니한 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쓰다 남은 돈 주님 앞에 드리는 것 아닙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다 보니까 남들보다 두꺼운 월급 봉투가 되지 못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액수의 통장이 되지 않지만 하늘의 삶을 하늘의 시민권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도록 주님 앞에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드린 예물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든든하게 해서 에녹의 삶을 살아갈지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염려가 기대가 되어지고, 그 기대가 더욱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복된 신앙 생활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 주님 재림하시고 오늘 죽을 줄 알아서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라멕과 같이 살인을 찬양하는 세상에서 에녹과 같이 주님 동행하며 자녀를 낳으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일 염려하지 아니하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선물로 주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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