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능력있는 사람 vs 훌륭한 사람 (영왕기상 1장 5-10절)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7. 1. 19. 14:22

 

담임목사 김종웅

 

능력 있는 사람과 훌륭한 사람

열왕기상 1 5-10

2017 1 15일 주일 낮 예배

                                                                                                                                                 No. 298

5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자신을 의지한 아도니야. 1장은 열왕기서를 여는 서론이고 아주 Manual 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떠한 사람도 그 시대와 환경을 따라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봐야 된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리라고 자기를 위해서 병거를 준비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도니야를 왕으로 삼지 않는다.

 

아마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으면서 목사님 열왕기 상하가 얼마나 긴데 그래 가지고 언제 다하겠습니까, 라는 생각을 가질지 모르는데 중간쯤 가면은 3장을 한번씩 한 주에 넘어가기도 할겁니다. 1장은 참 중요한 장입니다. 왜냐하면은 열왕기서를 여는 아주 서론이고 Manual 적인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장에서 여러분들이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되요, 그래서 그 시각으로 앞으로 쭉 보게 되면서, 그 동안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이나 역사를 바라보는 그 관점이 금년에 변화 되어져서 금년의 성경 주제데로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가나무 아래에 평안히 살았더라고 하는 평강의 삶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본문에는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사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봐야 된다 그러면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느냐 하면 유능한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보면은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킨 것을 말해요, 지난 주일은 다윗이 70에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더라 라고 말을 하면서 열왕기를 시작했지요.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되는가 하면은 절대로 우리가 사람보고 살면은 안되겠구나, 우리는 하나님을 봐야 되요, 자꾸 세상의 역사하는 사람을 보게 해요. 심지어는 성경도 설교도 보면은 사람을 보게 하는 설교가 참 많아요. 아브라함과 같이 믿어서 복 받자, 다윗과 같이 믿어야 된다. 모세와 같이 믿어야 된다. 이러니까 사람이 영웅이 되어져요. 우리가 사람을 보면은 어떤 일들이 생긴다고 그랬어요, 분열이 생기는 거에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뭐 좌파나 우파나 그 다음에 세대별 여러 갈등이 생기는 것은 사람을 추종하기 때문이거든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녀도 저를 보면 안 되거든요, 언제나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사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봐야 되요. 그러면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열왕기에서도 우리가 이것 놓쳐 버리면 아무것도 안 되요. 하나님은 남쪽 유다를 사랑하시고 북쪽 이스라엘을 미워하신다, 대부분 이런 선입견이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남쪽 유다와 같이 잘 믿어야 된다, 성경은 그 말 아닙니다. 한 국가 안에 두 체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이게 열왕기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화합할 수 있어요. 교회는 그래야 되요. 신앙이 성숙될수록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져야 되요.

 

그래서 바울은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들에게는 감사의 세가지 중에 나는 여자로 태어나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다고 하는데,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하나이니라. 우리가 열왕기를 보면서 지난주일 말씀을 여러분들이 그대로 가져 가지고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만 보면은 복 준다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가 어떠한 능력 있는 사람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어떠한 사람도 그 시대와 환경을 따라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보셔야 되요. 오늘은 아도니야의 반역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켰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려고 기록된 게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왜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봐야 되느냐 이런다고, 성경은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킨 것은 역사적인 사실인데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느냐 하면은 유능한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을 인정한다는 거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마음에 꼭 가져야 할말, 오늘 설교를 하고 난 뒤에 여러분들에게 떠나지 아니해야 할 한가지의 생각은 유능한 사람을 추종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을 추종해야 되요. 유능한 사람을 존경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을 존경해야 되요. 뿐만 아니고 여러분들의 자녀도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야 되요.

 

2. 하나님께서는 아도니야가 용모가 준수 하고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왕으로 삼지 않는다. 유능한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람을 잘 이용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훌륭한 사람은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다. 훌륭한 대통령, 장관, 목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된다.

 

여러분 오늘 성경 본문 보세요 6절에 보면은 아도니야에 대해서 뭐라는 가 하면은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 아들이 암논인데요 다말과의 사건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두 번째가 길르압이라고하는 아들인데 성경 학자들은 이 아들은 어릴 때에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가 그 유명한 압살롬 굉장히 잘생겼어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귀양을 갔다가 돌아와서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백성들의 여론을 자기에게로 돌릴 만큼 탁월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키다가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 아들이 아도니야에요. 그래서 왕위 개선 1번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아도니야도 그 다음에 보면은 용모가 심히 준수 한자라 압살롬과 비교할만큼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보면은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뭔가 흠 잡을 때가 없는 그런 완벽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도니야를 왕으로 삼지 않거든요, 여러분 왜 안 삼았는가 이것 알아야 되요, 이것은 여러분 지금부터 이 시대가 언제냐 하면은 BC 900년 시대니까 930년쯤 된 거거든요 BC, 3천년 전의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유능한 사람을 추종하게 될 때에 무엇이 생기는가 하면은요 분열이 생긴다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우리나라 한번 보세요 지금, 전부 우리나라는 유능한 사람을 좇아요. 자식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그래요. 유능한 사람하고 훌륭한 사람은 다릅니다. 유능한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람을 잘 이용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훌륭한 사람은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가 지금 힘든 게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잘못 생각해서 그래요, 자꾸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이런 사람들을 능력 있는 사람 뽑아서 그래요, 훌륭한 사람을 뽑아야 되요. 교회도 그런 것 같아요, 교회도 왜 분열이 일어나고 시끄러운가 제가 신학을 다닐 때에는 80년대인데요 그때에는 대부분 신학생들이요 여러분들이 아실는지 모르겠는데 청와대 뒤편에 있는 삼각산 밤 새도록 기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양지총신을 나왔는데 양지 뒷산에 밤마다 기도의 소리가 높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도서관에 불만 밝아요, 밤 새도록 도서관에 불 켜져 있습니다. 왜 그런가 교회가 능력 있는 사람을 목사님으로 모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목사님을 모셔야 되요. 훌륭한 목사님 훌륭한 대통령 훌륭한 장관은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문제는요 능력은 있는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제에요. 목사님도 그렇고, 능력이 있으니까 스스로 왕이 되어서 스스로 높여서 아도니야와 같이 자기를 위해서 병거를 준비하는 자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교인을 위해서 목회해야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이에요 엄마들이 그래 기른 거에요.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사람을 잘 이용하는 능력 있는 사람 출세하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우리 눈 찌르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모르겠어요 제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은 자기 자녀가 IQ가 좋고 능력이 있는데 자기만 알면은 절대로 대학 보내면 안 되요. 지금 우리나라 문제는 뭐냐 하면은 옛날에 자녀들이 많을 때 그 중에 하나 똑똑한 아이 그 아이 밀어 주어서 집안 일으키려고 했든 부모의 잘못된 교육관이 지금 우리나라를 이 지경을 만든 거에요. 제가 열왕기를 강해하려고 12월 달부터 열왕기서를 쭉 읽고 지난주하고 이번 주에는 제가 조선왕조 실록을 쭉 읽었습니다. 정조까지 읽었어요.

 

3. 조선왕조 27왕 가운데 가장 선군으로는 세종하고 정조왕 만이 훌륭한 왕이라고 책의 이야기.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일반의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야 된다. 능력 있고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왕은 피비린내 나는 일을 많이 행했다는 것을 책은 말한다.

 

조선왕조 27왕 가운데에요 선군 이라고 하는 가장 훌륭한 왕이라고 하는 왕은 두 왕 밖에 없어요, 누구냐 하면은 세종하고 정조에요. 이 사람들이 유능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훌륭한 왕이에요.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세종 이야기 종종 하잖아요, 목사님 교회 와서 뭐 성경에 인물도 많은데 뭐 세상 이야기 하느냐고, 여러분들이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되요.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일반의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되요. 세종 아버지 태종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자기 에너지와 능력을 주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피비린내 나는 많은 일들을 행했어요.

 

그 아들 가운데에 아들 넷 있잖아요, 양녕대군은 탁월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효령과 충녕 세종이된 충녕은 별로 능력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양녕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다가 양녕이 어긋나면서 세종이 세자가 된지 52일만에 왕으로 등극하는 겁니다, 전혀 준비되지 아니한 왕이었어요. 얼마나 여러분 별볼일이 없었으면 억불정책을 쓰는 조선시대에 둘째아들 효령은 불교에 심취해서 승려가 되도 내버려 두었든 거에요. 제가 있었든 백석대학이 효령대군 땅을 사서 학교가 시작된데에요. 세종도 역시 별로 아버지의 눈에 차지 안 했어요. 그런데 능력 있는 양녕이 아버지 말 안 들으니까 한칼에 날리고 충녕이 세자를 잡아서 52일만에 왕이 되었는데, 그는 전무후무한 성군이 되었어요.

 

왜 그런가 그는 일반 백성들이 사는 사가에서도 살았거든요, 백성들이 어떻게 고생을 당하는가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금년에 여러분들에게 우리 교회가 무화과나무 아래 포도나무 아래 평안히 살기 위해서 권사님들 보고 심방하세요 라고 하는 거에요. 교인들의 형편을 보면은 사랑하게 되어 있거든요. 심방 못하면은 중보 기도라고 하세요, 참 다행인 것은 이번 금요일도 많은 분들이 갔다 하더라고, 수요저녁예배도 권사님들이 담당 나와요. 여러분 세종이 저는 참 보면서 야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목사인 내가 부끄러울 때가 있더라고, 왜냐하면은 훈민정음을 우리가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뭐 장영실을 등용해서 과학을 발달하고 그 업적을 이야기하는데 아니에요.

 

4.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은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한 애민정신이 있었든 왕이었다. 농사를 지어 본적이 없는 왕이 농민들의 애달픔을 알았다, 그래서 훌륭한 왕이 되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병거를 준비한 아도니야와 같은 사람이 되기 쉽.

 

그 훈민정음도 보면은요 나라 말씀이 듕귁에 달라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홇배이셔도 무슨 말이에요, 우리나라 말이 중국말하고 달라서 어리석은 백성이 읽으려고 해도 못 읽는다는 거에요. 여러분 글자를 아는 사람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의 그 막막함을 몰라요, 세종은 어려서부터 글자를 알았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그 답답한 심정을 이해한 애민정신이 있었든 겁니다. 저는 훈민정음이 세종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해례본에 보면은 여러분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은 잘 알잖아요, 아주 고기를 좋아해서 비만이었잖아요, 그래서 그 아버지가 3년 상하면 고기를 못 먹으니까 태종이 죽으면서 무슨 유언 남겼는가 하면은 세종은 3년 상할 때에도 고기를 먹도록 해라, 하고 유언을 남길만큼, 굉장히 비만했습니다.

 

그래서 당뇨도 있었다고, 말년에 눈이 침침했어요. 그 침침한 눈 말년에요 그 왕권을 내려놓고 한 것이 뭐냐 하면은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보면서 입술 모양을 따 가지고 글자를 만들었어요. 전무후무한 글자를 세종이 만들었어요. 농사를 지어 본적이 없는 왕이 농민들의 애달픔을 알았다고요, 그래서 훌륭한 왕이 되는 거에요. 능력이야 태종에게 어떻게 비기겠어요, 정조도 마찬가지에요. 제일 오래 살았든 영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습니까, 어릴 때 총명하기 그지없었든 사도세자, 사춘기 즈음에 운동에 빠져 가지고 그럴 때에 그 능력에 실망을 해 가지고 뒤주에 죽이잖아요, 그 아버지의 죽음을 11살에 목격했든 정조가 모든 대신이 반대하잖아요, 또 다른 연산군이 날까 봐, 어머니가 폐서인 되가지고 사가에 살면서 백성들이 마음을 읽었거든요.

 

금년에 우리 교회가 권사님들 심방이라는 것이 보면은 눈물이나요, 가서 흉잡으라는 것이 아니에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거에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들의 자녀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 하지 마세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려 해야 되요. 정말 애국이 뭡니까 탁월한 능력이 있는데 자기만 아는 것은 대학을 안 보내는 것이 애국이에요. 저는 토요일은 좀 일찍 자는데 보통 9시 뉴스 전에 자는데 어제는 늦게 잤어요, 왜냐하면 그알 보려고, 그알 아세요, 그것이 알고싶다 ㅎ ㅎ 지난 주하고 이번 주는 봤어요, 지난주는 우병우에 대한 이야기 하고, 이번 주는 김기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야 정말 두 사람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법의 마술사에요, 여론조사에 마술사더라고, 누구나 아닌 이야기를 일 순간에 뒤집어서 유리하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둘 다 썩 좋은 집안은 아니에요. 교장선생 아들이 우병우고요, 김기춘은 별로 좋은 집안 아니고 거제도 촌이에요, 머리는 뛰어났어요. 소년 등과 하는 우병우에요 검사 8년 차에 한 나라의 헌법을 기초할만큼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유신헌법에 기초자 김기춘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이야기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끝나는 선거 판을 도청의 문제를 불거져서 본말을 전도 해 가지고 뒤집어서 뒤집기 해서 왕 대통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은 사람이요. 누구나 다 아는 지금의 사태도 태블릿PC 구입의 경로로 뒤집으려 하는데 이미 학습된 국민들이 안 넘어가지요.

 

수많은 간첩조작의 사건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일을 했습니까,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은 자기를 위해서 병거를 준비한 아도니야와 같은 거에요. 차라리 대학을 안 나왔더라면, 저는 우리 교회가 그래 생각해요. 저는 능력이 있는 목사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교인들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야 되요. 앞으로 한국 교회가 살아나려면은 능력 있는 목사를 청빙 하지 말고, 훌륭한 목사를 청빙 해야 되요, 기도가 있어야 되요, 성경 지식 뭐 알면 뭐해요, 성경의 내용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그것 알려고 성경 전체적으로 보는 거에요. 열왕기를 보면서 저는 여러분들 속에 저는요 이것 계속 우리 속에 있어야 되요.

 

5. 모세가 능력 있는 사람 아니었다. 그를 하나님은 사용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엘리야로부터 이새의 아들이 쭉 가는데 잘생기고 너무 멋있어 기름 부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아서라 놔두라 택한 자가 아니라고, 볼품없는 목동 짓 하는 다윗을 택하셨다.

 

유능한 사람하고 훌륭한 사람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큰일을 하지만 사람을 이용하고 피비린내 나지만, 훌륭한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조선왕조 27왕 중에 불행히도 두 명밖에 없어요, 그래서 성경은 남은 자는 많지 않다는 거에요. 우리나라만 그렇습니까 여러분 성경도 제대로 보세요, 모세가 능력 있는 사람 아니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애굽의 왕자가 되어서 바로로 왕권을 받아 가지고 이스라엘을 인도해야지요, 쫓겨나서 처가살이하고 자기 몸하나 의지 못하는 그를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케 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얼마나 못났으면은 자기가 인도해 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르면은 모세 때려죽이라 그러고,

 

배가 고프면 모세 때려죽이라 할 때 만나 해주고 만나 주니까 또 우리가 기력이 쇠하여 죽게 되었다고 애굽에 있을 때는 고기 가마솥 곁에 마늘과 부추를 먹고 살았는데, 고기도 못 먹고 마늘과 부추를 먹고 살았는데 모든 원망을 하는데도 그 백성들에게 자기 주장 한마디 못해요. 하나님께 하나님 내가 이 백성 낳았습니까, 차라리 나 잡아 잡수세요, 이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 해냈다고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만 다윗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하는 것은요 그건 잘못된 거에요, 성경을 용비어천가로 만들면 안 되요. 사울이 엉망진창이 되니까 사무엘이 이새의 가족 가운데 아들 가운데 왕 삼으려고 찾아 갔어요 기름 부으려고.

 

엘리야로부터 그 아들이 자기 앞으로 쭉 가는데 보니까 너무 잘생기고 너무 멋있거든요, 기름 부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아서라 놔두라, 내가 택한 자가 아니라는 거에요, 다 지나가고 나니까 하나님이 실수 하셨나, 이새에게 물어요 얘들 말고 또 있어요 이러니까 이새가 뭐라는 가 하면은 걔는 볼 것도 없다는 거에요 막내인데, 하도 어줍 잖아서 목동 짓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도 한번 대려 와 보라고 했어요, 와서 보니까 별로 볼품도 없어요, 하나님이 택한 자라고 그랬어요. 다윗의 일생을 보면은요 큰 일한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사랑한 거에요. 세종이 북정 개척 대마도 정벌 세종의 업적이 아니더라고, 대마도 정벌도 아버지가 했든 일들이더라고.

 

유능한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하지만 훌륭한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요. 저는 우리나라가 지금 이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때까지 세계경제 10강안에 7만불 잘살게 해 주겠다고,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냄새의 정치였습니까, 누구 탓입니까 우리 엄마들 탓이지요, 누구 탓입니까 목사님들이 능력 있는 사람을 사용하는 하나님이라고 잘못된 설교의 탓이에요. 본능적으로 내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본능입니다. 성령이 주는 성령의 충만함은 내 자녀가 사람 사랑하는 사람 되기를 바래요. 어릴 때 학교 갔는데 왕 따 친구보고 지도 왕 따 당할 요량하고 그 친구되어 주는 그런 얘들을 서울대학 보내 줘야 되요. 그래야 희망이 있어요.

 

6. 7절에 보면은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요압은 권력욕[權力慾]의 화신이다. 아도니야가 지금 선지자에게 물어야 되는데 요압과 아비아달과 의논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반역이 나타나는 것이다.

 

신학교 성적 1 2등 하는 친구들 목회 못합니다. 좋은 큰 교회는 청빙 받아 가는데 엉망진창 만들어요, 제가 경험한 것은요 능력은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되요. 우리는 그저 하나님 믿고 사람 사랑하면은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 같아요, 아도니야가 또 다른 문제가 어디에 있어요, 7절에 보면은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요압은요 권력욕[權力慾]의 화신입니다. 다윗왕국의 총 군대 사령관이었어요. 통일을 이루었을 때에 그보다 훨씬 더 위에 있고 훌륭한 아브넬이 다윗에게 투항을 해서 통일 왕국을 이룰 때에 자기 자리 위협받을 줄 알고 아브넬을 죽여 버립니다.

 

다윗이 용납한 아브넬을,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압살롬의 군장인 아마사가 다윗에게 돌아 왔울 때에 다윗이 아마살을 요압대신에 군사령관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바의 반역 지나가는 그때에 세바를 지나가기 전에 압살롬의 수염을 잡고 찔러 죽입니다. 자기 사촌입니다. 권력을 위해선 어떠한 피를 흘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요압 이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시대 까지는 제사장이 2명이었어요, 사독과 아비아달요 그런데 이름은 언제나 사독이 먼저 나왔어요, 아비아달은 어떻게 보면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이번 기회에 사독을 제키고 자기가 대제사장에 선임자리에 서려고 했든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과 모의를 했어요. 누가 없었는가, 선지자가 없었어요. 

 

여러분 참 우리가 한가지 저도 설교를 하지만은요 설교는요 여러분들이 듣고 싶은 말을 들으러 와서는 안 되요. 들어야 할 말을 들어야 되요. 참 사람들의 문제는 뭐냐 하면은 들어야 할 말을 안 듣고,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그래요. 그래 되면 파멸이 일어나는 겁니다. 왜 목사님들이 그래 되는가, 교인들이 듣고 싶은 말을 들으러 몰리거든요, 우리 교회 왜 빈자리 있는가, 들어야 할 말을 하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다고 저는 봐요. 자 한번 잘 생각해 모십시다, 수요일날 기도회 할 때나 제가 늘 하는 이야기가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묻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장하는 것이 기도인 줄 알아요. 그러니까 안 변해요.

 

하나님 앞에 물어야 되는데, 하나님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래야 되는데, 하나님 이런 일이 있는데 하나님 이렇게 해 주세요, 주장하는 거에요. 여러분 한번 물어 봅시다, 여러분들의 자녀들도요 참 우리나라에 보면은 저도 사춘기 시절에 많은 아픔이 많았지만 얘들이요 누구 말을 들어야 되요,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을 들어야 되요, 그런데 얘들이 부모님과 선생님에게는 자기 주장하고, 누구 말 듣는가 하면 친구 말 들어요, 결론은 뭐에요, 자퇴하고 가출하는 거지요. 사람이 되려면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은 부모와 선생님 말을 들어야 되요. 친구 말을 듣는 것은 파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는 주장을 하고, 친구에게는 의논을 해요. 아도니야가 지금 선지자에게 물어야 되는데 요압과 아비아달과 의논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반역이 나타나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의 말을 들어야 되요. 교회도 보면 목사님 말 듣기보다는 목사님에게는 자기 주장 하고, 교인들끼리는 의논해요. 그러면은 결론은 시험 드는 거에요. 그래도 우리 교회는 참 어제도 기쁘고 했든 것은 뭐냐 하면은 저에게 묻더라고, 저요 가슴 넓은 남자에요, 어떤 이야기도 받아 드릴 수 있어요. 목사님에게 말하면 찍힌다, 너무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면 찍힌다 아닙니다.

 

7. 훌륭한 Peacemaker가 되려면 사람을 사랑하려면 첫째 설교를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할말을 들어야 되요. 하나님에게 자기 주장하지 말고 물으세요. 유능한 사람 만들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지 견고해 진다.

 

여러분들이 정말 훌륭한 Peacemaker가 되려면은 사람을 사랑하려면은 첫째 설교를요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들어야 할말을 들어야 되요. 하나님에게 자기 주장하지 말고 물으세요. 아이들이 선생님과 부모에게 물어야지, 부모에게 자기 주장하고 친구들에게 물으면은 결론이 나쁘게 나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로님들 온 당회가 이렇게 심방을 가는데 우리 제일 첫 번째로 조장로님 가서 참 그 결정을 하고 오랫동안 제가 고민했어요, 무슨 말씀을 할까, 아 역대하를 읽는데 진짜 가슴이 뜨거워져요, 20 20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의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사람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 신뢰해야 나라가 견고히 섭니다.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형통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과 모의하고 자기가 유능한 능력을 가지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든 아도니야의 결론이 뭡니까, 49절에 가보면 그 패거리들은 다 흩어져 버려요 혼자 남아요, 우리나라 출세한 사람들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외로워 지는 것하고 같아요. 마지막에 어느 누구 하나 도움 못 받고 성전에 가서 제단 뿔을 잡고 살려 달라고 목숨 애걸해요. 큰일 하려 하지 말고요 유능한 사람 만들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지 견고해 집니다. 설교는 여러분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이 설교가 아니고요 들어야 할말을 해주는 것이 설교에요.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용하는 능력과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여론을 조작해서 위대한 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참 사람 살아가는 것은요 힘든 일입니다. 사랑이라는 것 제가 박집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했잖아요, 사랑은 오래 참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나에게 억울한 이야기를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아 주는 것이 사랑이래요. 사랑은 온유하고 참아 줄뿐만 아니라, 그에게 친절히 대해 주는 것이 사랑이래요. 사랑은 믿으며 나에게 어떠한 실망스러운 일과 손해를 끼치더라도 근본적인 신뢰의 관계에 대해서 흐트러지지 아니하는 것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 이야기하는 겁니다. 배반할 줄 알면서 키우는 것이 자식이라고, 배반할 줄 아는 교인을 목회하는 것이 목사라고, 그게 사랑이거든요.

 

위대한 능력 있는 사람은 쉬워도요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 그만큼 어려운 거에요. 얼마나 많은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되는지 몰라요. 일부 예배에 여러분 성경주 집사가 와서 내가 그 이야기했어요, 그 참 두 아들 우리 교회에선 제일 힘든 아들이에요 내가 볼 때에 ㅎ ㅎ 오래 참고 기다려 주고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니까 지금 둘 다 군대가 있는데 둘 다 사람 되었다 하더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이 훌륭한 거에요. 그래서 어떤 어머니도 위대한 어머니는 없어도 훌륭한 어머니들은 많아요. 제가 우리 교회에 장로님들 권사님들 구역장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잖아요, 교인들을 자식같이 보세요. 실망하고 애먹이는 그 사람도 근본적인 관계의 신뢰의 변화에도 흔들이지 않고요 어떠한 사람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할 때 훌륭한 어머니가 훌륭한 교인이 되는 거에요.

 

어찌해야 되는가 어머니가 되니까 전부 느끼는 것이 뭔가 하면은 내가 엄마한테 너무 잘못했어, 이래서 지 자식에게 기다려 주고 참아 주거든요.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려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배반하는데 기다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되어져요.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위대한 사람 유능한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되요, 그러기 위해서 설교를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말고, 들어야 할 (설교)말을 들어서 남들은 인정 안 해도 하나님 앞에 훌륭한 자라고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고, 우리나라가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서 좀 평안한 나라 이젠 교회가 평안한 교회 그런 축복이 우리 가운데 흘러 넘쳐 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우리에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좀더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없는 사람 무시하지 않고, 가지지 못했다고 있는 사람 욕하지 않는 교회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어진 분복을 따라서 구별하여 11조의 예물과 감사의 예물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드리지 못한 손길들의 아픈 심정을 헤아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드렸다고 어깨 힘줄 것도 드리지 못했다고 위축될 것 없는 교회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드린 예물이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복된 예물이 되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하오니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위대한 영웅이 아니오 인류의 역사의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훌륭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완악하고 고집이 샌 우리들을 한 명도 멸망치 아니하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우리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좇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듣고 순종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위대한 사람이 되기보다 유능한 사람이 되기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져서 세상을 화평케 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요란한 세상 가운데 천국의 평화를 맛보게 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와 이 땅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