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현대의 알모젠
요한복음 14장 25-27절(신명기16:11)
2017년 07월 02일 주일 낮 예배
No. 322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산업과 가족: 농경사회 가족/생산수단, 산업사회/노동력을 기계. 정보화 사회/1인 가족, 하나님 대안으로서의 교회. 인문학 학문들을 통해서 현상에 대한 판단 하고, 처방은 성경으로 해야 된다.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은 교회를 만드신 것이다. 성찬 예식을 통해서 가족이 된다.
어떤 사람도 불안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지고 있으면은 가진 대로 불안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지지 못한 대로 불안하고,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병든 사람은 또 병든 대로 불안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불안이 왜 왔는가? 내가 가지지 못해서 불안한 줄 알아요. 그래서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도 하고, 남들보다 더 건강 하려고도 노력을 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여러분 뭐 가난하고 싶은 사람 어디 있습니까, 제가 어릴 때에 초등학교 국민학교 때지 우리 때는 전부 급훈[級訓] 중에 안 들어가는 말이 없는 말이 뭐냔 하면은 성실[誠實] 근면][勤勉] 이에요.
1. 하나님께서는 이미 2천년 후에 일어날 일을 예비해 놓으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장에서는 다시 내가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어 준다 라고 말씀을 하셨다.
모두가 다 성실하기를 바라고 근면하기를 바라지만은 또 그래 산다고 해서 잘 살아 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불안은 왜 한가, 소유하지 못해서가 아니고요, 가족의 관계가 잘못되어 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대입니까, 그런데 예전보다도 더 불안해 해요, 그 이유를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인문학이나 사회의 이런 학문들을 통해서 현상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있어요. 진단은 그런 것들로 하고, 처방은 성경으로 해야 되거든요. 여러분 예전에 우리 인간들은 농경 시대이었습니다, 거의 17세기 18세기 까지는, 그 농경 시대에는 가족이 많으면은 부자입니다.
왜냐하면은 한 가족이 생산의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이 많은 사람은 자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게 산업화가 되면서 생산의 수단인 인간이 기계로 대치된 겁니다. 그래서 항상 여러 사람이 하는 것을 기계 하나가 감당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훨씬 생산량이 많아 진 거에요. 지금같이 풍요로운 시대가 이디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은 산업화의 열매들이거든요. 그때부터 인간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가 하면은 예전에는 생산의 수단이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식이 많으면 잘 살았는데 이제는 기계가 모든 것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 사람이 많은 것은 가족이 많은 것은 가난해 지는 거에요. 그래서 자식을 적게 낳는 겁니다.
정보화시대가 되면은 이제는 최소한의 가족이 없어도, 없이사는 독거 가족이 많이 생겨나는 겁니다. 예전에는 여러분 뭐 남편이 죽어도 대가족 제도이기 때문에 그래도 먹고 사는 일에, 굶어 죽을 걱정은 없었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가족이 있어도 자식 한둘이 연세 드신 부모를 봉양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런 기대 못하니까 불안하다고, 여러분 이럴 때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런 2천년 후에 일어날 일을 아시고 예비해 놓으신 거에요. 우리가 성경 해석을 잘못해서 그렇지, 오늘 여러분 성경 26절을 다시 한번 보세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자 저를 보세요 여러분들이 문자주의에 메이면은 성령이 오시면은 성령 받으면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말씀이 생각나고 깨닫게 된다, 여러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행간의 의미를 잘 모르는 거에요. 예수님은 지금 이 땅에 지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들어내고, 조금 있으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언약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아바아버지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가로막힌 모든 죄를 다 도말 할 십자가를 지시려고 해요, 그러면서 오늘 14장에서는 뭐라는 가 하면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어 준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2. 성령이 만드신 교회는 인간의 역사에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공동체를 만드셨다. 사도바울이 유대교에서 그리스도 인으로 변화된 대표적인 사람이다. 사울(바울)에게 사형 권까지 주면서 다메섹 지금 다마스크스에 있는 나사렛 땅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처형하라고 보냈다.
그러면 그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뭐였는가 하면은 교회를 만드신 거에요. 여러분들이 요것 정말 정확하게 알아야 되요. 자꾸 성령 받으면은 방언하고, 성령 받으면은 엑스타시 현상을 경험하고 그런 것 아니에요,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은 교회를 만드신 거에요. 여러분 이 교회는 그 동안에 인간의 역사에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공동체를 만드셨어요. 그 동안에는 여러분들이 뭐 왕국도 있고, 동창회도 있고, 그 다음에 가족의 혈연적 가족도 있는데 사도행전2장에 보면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순절에 임하면서 정말 인간이 가장 완벽한 혈연의 가족의 공동체가 혈연을 넘어서는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 거에요.
그래서 교회라는 말을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 [Ecclesia] 라고 하는데 제가 요한복음 강해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그럴 때에 헬라어 사전을 보면서 에클레시아가 뭔가 보면은 이 의미를 잘 모르는 겁니다. 원래 에클레시아는 헬라의 그 도시 국가에서 그 마을 공동체의 문제가 생기면은 그 회의를 여는 그 마을 공의회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를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만들어 진 오순절에 교회의 공동체의 그 말씀을 개념을 새롭게 해서 사용한 거에요. 그래서 이 교회는 여러분들이 정말 예전에 어떠한 혈연의 공동체보다도 더 완벽한 공동체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성령님이 오셔서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는가 하면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고 깨닫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아버지가 되게 하신 거 거든요.
그래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 것을 깨닫고 알게 되는 거에요.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나에게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가 하면은 교회를 통해서 경험해야 되요.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고 교회를 종교 기관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하나님은 쌀독의 먼지가 변해서 쌀이 되게 하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믿으니까 신비종교 가 되 버린다고. 기독교는요 오늘 이 말씀 잘 들으세요.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셔서 이루어진 그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게 하신 그것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한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은 우리가 목회가 달라지고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이 달라져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종교적인 예전을 열심히 지키면 복 받는다 안 하잖아요. 교회는 뭔가,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고, 또 교회 안에 있는 여러분들이 성령을 나누어 가진 가족인 것을 경험을 하는 거에요, 그걸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요. 사도바울이 유대교에서 그리스도 인으로 변화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그리스도로 안 받아 드렸거든요, 거짓 선지자라 그랬거든요. 그래서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에게 사울에게 사형 권까지 주면서 다메섹 지금 다마스크스에 있는 저 나사렛 땅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처형하라고 보냈어요.
3.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바울은 예수님이 거짓 선지자가 아닌 참된 그리스도이심을 알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아셨고, 거룩한 칼야훼 거룩한 무리임을 알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면서 다녔다.
그래서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로 밝은 빛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니까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라고 이야기했든 거에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바울은 예수님이 거짓 선지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참된 그리스도이심을 알았든 거에요. 그런데 그가 그 밝은 빛 속에서 눈이 멀어 버린 거에요. 그래서 그 일행들이 이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 라는 사람 집에 데리고 간 거에요. 그런데 그 아나니아라는 사람의 집은 다마스크스에 있는 가정 교회입니다 교회, 그것에 가서 아나니아에게 예수님이 진짜 어떻게 그리스도 되심과 성령님이 오셔서 어떤 교회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을 들은 거에요.
들으면서 그 곳에서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신, 지금 이단이라고 거짓 선지자를 믿는 자라고 그 자신들을 처형하러 온 자기를 가족과 같이 받아 주거든요, 거기서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뭔가 하는 것을 깨달은 거에요. 여러분 그 동안에는 자기는 그저 유대교의 예전을 따라서 드리는 그 이스라엘이 칼야훼 여호와의 거룩한 총회인 줄 알았습니다.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의 공동체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을 알은 거에요. 그기에는 그저 율법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종교적인 예전만 열심히 지키고 이런 게 아니라는 걸 알은 거에요.
자기가 경험해 보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제는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을 아셨고요, 그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의 모임은 혈연의 가족보다도 더 상대방을 위하는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가르침을 깨닫게 된 거에요. 우리는 그리고 난 뒤에 사울은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3년 동안 수행을 하다가 그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는 사도로서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은 일정한 기간에 수행을 통해서 기도로서 능력 받아야 된다, 소설 쓴 거에요. 거기에 아라비아라는 것은 싸우디 아라비아 사막지역이 아니에요, 다마스크스 다메섹에 있는 그 공화국이 나바티안 공화국이고요, 그 다메섹 인근에 지역이 아라비아 지역이라는 거에요.
그는 그 아나니아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과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인 교회가 구약성경에 말하는 그렇게 거룩한 칼야훼 거룩한 무리임을 알며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면서 다닌 거에요. 3년 동안 다니면서 전하다가 이것 내가 내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서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함께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맞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는 다시 안디옥 교회에 파송을 받아서 선교의 길로 갔든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종교적인 예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예전에 참여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에요.
4.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게 하신 것과 성령을 보내어 영원한 가족이 된 것을 받아 드리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 두나미스 [dunamis]기존 질서를 해체[解體]하는, 혈연과 연고로 뭉친 세상에서 질서가 파괴 되고, 새 질서가 생기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받아 드리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데, 하나님은 그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교회를 통해서 경험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가족애는 어디에서 느껴요? 가정을 통해서 경험 하잖아요. 바로 이런 것이 성경인 거에요. 그래서 바울은 또 요한은 이런 이야기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에서 13절에 보면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니까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그런 말 아니에요. 11절에는 보면은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가 이 땅에 왔는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받아 드리는 거에요 메시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사실을 그리스도이심을 받아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진짜 하나님의 자녀는 13절에 보면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나지 아니하고 그런 것은 사람의 뜻으로 나는 거라 했어요. 영접하는 자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게 하신 것과 성령을 보내어서 영원한 가족이 된 것을 받아 드리는 자만이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자녀다 이런 말이에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도 이렇게 말해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할 때에도, 그 성령 받으면은 방언도 받고, 병 고치는 은사도 받고, 능력 받고 이런 것 아니에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 두나미스 [dunamis] 영어로 다이나마이트 [dynamite] 다이나마이트가 뭐요? 기존 질서를 해체[解體]하는 거에요. 그저 자기와 자기 가족만 알든 혈연의 관계만 매여서 살든 내 자신의 가치관이 파괴가 일어나는 거에요. 만인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 노릇 하는 그 가치가 파괴가 일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혈연과 연고로 뭉쳐서 서로 다툼을 하는 이 세상에서 질서가 파괴 되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생기는 거에요, 그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성령 받으면은 나와 내 가족만 알든 사람이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는 놀라운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요.
이것은 예수님의 그리스도로 받아 드릴 때에 일어나고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점점 성숙되어져 가야 되요. 그래서 또한 바울은 뭐라는 가 하면은 그런 교회가 교회 되도록 헌금의 개념을 바로 가르쳐 주는 거에요. 여러분 헌금은 뭐 복을 받는 수단이다, 꾸어서라도 십일조를 해라 그것은 목사님이 하는 이야기지요. 성경은 잘 들으세요 고린도후서 8장에 헌금의 개념도 여러 가지 나오는데 그건 다음에 하더라고 여러분들이 한가지만 이야기하면 알모젠이라 그래요, 또 순례의 예물이라 그래요, 순례의 예물이라는 말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이사야 60장에 비젼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은 이방의 여러나라들이 보화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 거다, 이 예언이 있는 거에요.
5. 동방박사 3사람이 황금과 유황과 모략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드릴 때에 그 사건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헌금을 이방인의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 줌으로 이방인의 교회와 예루살렘의 교회는 다 하나의 교회가 되었다
그래서 여러분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은 이방의 모든 보화들이 모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메시야가 오면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동방박사 3사람이 황금과 유황과 모략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드릴 때에 그 사건은 무슨 사건이냐 하면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말해요. 그러면은 많은 보화가 이방인들이 여러분들의 저금 통장을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렇게도 기다리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도래했구나, 이 믿음 가져야 되요. 그리고 그 알모젠이라는 것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의 교회의 공동체가 있었어요.
바울은 주로 어디로 갔는가 하면 이방인들에게 다녔어요, 그래서 이방인 교회가 세워졌어요. 그런데 예루살렘에 극심한 기근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어요. 그럴 때 바울은 자기가 세운 이방인의 교회의 다니면서 뭐 했는가 하면은 헌금을 거두었어요, 거두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 주었다고요, 그럴 때에 그 교인들에게 뭐라 했는가 하면은 이제는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할례[割禮]안 받아도 돼, 유대교가 만든 율법, 성경의 율법 말고요, 그 율법 같은 것 그렇게 중요한 것 아니야, 그런데 너희들이 꼭 한가지 해야 할 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헌금 알모젠은 반듯이 해야 돼.
내가 가서 달라 하기 전에 너희들이 준비해 놔, 라고 말을 한다고, 그러니까 이방인의 교회들이 개척한 바울에게 대해서 뭐라는 가 하면은 저 목사는 돈만 아는 목사야, 이런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 헌금을 전달했다고, 그런데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가 하면은요 그 헌금을 이방인의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 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교회와 예루살렘의 교회는 다 하나의 교회이다. 예수님의 그리스도 이심과 성령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하나의 교회이다, 라는 표징이 알모젠이에요. 만약에 그 사건이 없었다면은 지금 기독교는요 유대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예수교가 있을 것이고, 바울을 중심으로 한 바울교가 생겼을 거에요.
바울은 자기가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자기 종교가 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그렇게 섬겼든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한가지 우리가 아셔야 됩니다. 저는 좀 규모가 크다고 하는 목사님들하고 필립핀이나 어디에 가면 참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하나 일어나요, 주로 새벽 1시쯤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목사님이 도와 주는 선교사들이 1시에 나와서 도열[堵列]해서 목사님 인사하고 들어가요, 그 무슨 짓입니까, 그 필립핀의 선교사 보낸 게 지점 차린 겁니까 그곳 필립핀에 있는 교회도 이곳에 있는 교회도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지요, 여러분들이 시골에서 큰 교회가 선교 비 보내 주는데 그 시골 교회가 큰 교회의 하청 업체입니까, 하나의 교회라고요.
6. 교회 안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을 구재[救災]라고 하면 안 된다 나눔이다. 혈연의 자식만 내 자식입니까, 여러분들의 이 복음의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 이게 알모젠 이다. 상대방을 판단과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해야 된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것이 헌금의 정신이고 알모젠이에요. 저는 우리 교회 다니다가 내가 좀 싫을 수도 있지요, 그러면 교회 옮기는 사람 이해가 안돼, ㅎ ㅎ 나보고 예수 믿습니까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주인은 예수님인데, 또 다른데 갔더라도 뭐 원수에요, 다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데, 이 생각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되요. 로마서 15장에는 그런 이야기 해요. 너희가 영적인 것을 나누어 가졌은즉 영적인 것은 성령을 말해요,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진 너희들이 육 적인 것 물질을 나누지 아니하는 것은 나쁘다는 거에요. 마땅히 물질로 섬겨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에 교회 안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을 구재[救災]라고 하면 안 되요, 나눔이지요. 부자 형님이 가난한 동생 도와 주면서 구재 했다고 그래요? 구재는 남에게 하는 거에요. 나누어 주는 거라고, 왜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생이 받았다고 형님에게 자존심 상하고 굴종합니까 아니잖아요, 한 아버지 밑에 있기 때문에 당당하잖아요, 이래야 그 집안이 좋은 집안이지요.
우리 교회에 여러분 다니시면서 오늘도 이 정신을 성찬식에 회복해야 되요, 저는 우리 교회에 내 레이다망에 어려운 교인의 이야기가 들어오면은 저는 그것 묵살한 적 하나님 앞에 별로 없습니다. 능력이 안 돼서 그저 기도만 해주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 교회의 능력이나 내 개인적인 능력의 범위 안에서는 해요, 왜 가족이기 때문에요, 제가 목사 된 이유도 그래요, 대학 교회에 있을 때에 아버지 전도사가 돌아 가시고 엄마하고 아이하고 둘이 나올 때 우리 대열이 용돈 줄 때 그 아이 용돈 똑같이 주었어요, 혈연의 자식만 내 자식입니까, 여러분들의 이 복음의 깨달음이 있어야 되요 이게 알모젠 이에요.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지요, 가족은 믿음이에요, 저는 제 어머니가 왜 좋은가 제가 어릴 때 그렇게 개구쟁인데 제 어머니는 그래요, 우리 웅이가 그럴 얘가 아니래, 누가 뭐라 하면은 아니야 사모님 웅이가 그랬어요 그러면 뭐라는 줄 아세요, 우리 웅이가 그랬을 때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꺼야 믿음의 관계지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요? 그저 조그마한 흠만 하나 나오면은 와서,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사건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디모데후서는 또 이렇게 말해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그래요.
교회가 뭐 선교하고 큰일 하는 것 이런 것 원하는 게 아니에요. 너희가 한 가족이라고 하면서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 지옥 간다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 다음에 하는 말씀이 불신자보다 악하니라. 저는 이 성찬 예식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는 상대방이 이제는 내가 경쟁과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 되는 이제는 상대방을 판단과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 되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해야 되요. 이번에 맥추감사도 그래서 여러분 수련회에 쓰려고 하는 거에요. 저는 우리 교회 신앙이 아직 어리면 제가 감당해야지요, 내가 못 가도 참여하는 것이 가족이잖아요.
7. 칠칠절에 네 자녀와 네 집에 있는 노비와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 하나님의 절기는 그런 의미이다.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세워 지는 것이 다른 교회도 유익이 되는 그런 교회들 그게 알모젠이다. 영원한 가족이 되는 아름다운 표현이 알모젠이다.
좀 여유가 있으면은 더하는 게 가족이잖아요. 교회가 뭐 회비 내 가지고 앞으로 하는 일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해요. 오늘 신명기에도 칠칠절에 뭐라는 가 하면은 네 자녀와 네 집에 있는 노비와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 하나님의 절기는 그런 의미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여름 수련회나 있는 특별한 행사 때마다 어느 누구 한 사람 소외됨이 없이 함께 즐거워하는, 교회에는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없다고 무시 안 당해야 되요, 믿음이 약해서 신앙 생활 좀 잘 못해도 무시 안 당해야 되요. 있는 사람이 불편하면 안 되요. 오늘 이 성찬이 여러분들 속에 이런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을 더 강화시키는 복된 성찬이 되려면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을 아버지 되게 하시고, 우리를 그냥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을 선물로 주신 그 사실을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여러분들의 삶에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교회에서 일어나야 되요. 우리 교회만 잘되는 것 생각하지 마세요, 그럼 종교 믿는 사람 됩니다.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세워 지는 것이 다른 교회도 유익이 되는 그런 교회들 그게 알모젠 입니다. 헌금은 축복을 받는 수단이 아니에요, 영원한 가족이 되는 아름다운 표현이 알모젠 입니다. 이 성찬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더욱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참 불안하잖아요 목사도 불안하지요 뭐 나이 들면은, 그런데 나는 하나 배짱이 있어, 교회가 날 외면하면 굶어 죽지 뭐 ㅎ ㅎ.
그러면 어디 갈거요, 천국 가잖아요 그 배짱 없이 어떻게 살겠어요, 이 내 배짱이 여러분들의 배짱이 되기를 바래요. 죽는 것 겁내지 마세요. 죽으면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서 그냥 맛보았든 그 천국이 완전히 여러분들 속에 확인 되는 날이에요. 그래서 어떤 분들이 자꾸만 목사님 천국을 묻는데 재림 묻는데 바울은 그랬어요,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한가지 방법이 있어요 빨리 죽어 보면은 확실히 빨리 알아요, ㅎ ㅎ ㅎ 우리 가기 전까지 그저 정말 교회가 종교 기관이 아니고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되어져서 여러분 뭐 부자 집안이 행복합니까, 상대방을 한 가족의 공동체로 여기는 그 집안이 가난해도 행복한 거에요. 그런 신앙 생활이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성찬의 참여가 더 해 갈수록 더욱더 깊어 지는 그런 귀한 신앙 생활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인간이 짜 놓은 세상의 털에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가져가고, 남은 이삭을 주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은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지고,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보여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주님 앞에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 예물 위에 복을 더하여 주어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들은 남에게 꾸지 아니하고, 나누어 질지라도 그 사람 위에 굴림 하지 않는 빚진 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귀한 삶을 살아서 우리가 주님 재림할 그때까지 발을 땅에 디디고 살아야 할 이 세상이 조금 더 정의롭고, 그러면서도 정이 넘치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서부터 생수로 세상으로 흘러 넘처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이 예물을 적은 예물을 크게 사용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름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영원한 가족임을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 교통하심이 오늘도 만인을 생명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믿음의 권속들과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되심을 경험해야 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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