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엘리야의 하나님
열왕기상 18:20-24
2017년 7월 23일 주일 낮 예배
No. 324
20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아멘
●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하나님의 야훼의 선지자 엘리야와 영적 전쟁을 한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불로서 확인 해 주셨다. 열성신학에 사로잡힌 사울이 다마스쿠스[Damascus]에 가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주님을 만나다.
성경 66권이 다 중요하지만은 열왕기상 18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적 사건 복음의 예표가 되기 때문에 이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됩니다. 오늘 갈멜 산에서 엘리야와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해서 850명과 영적인 전쟁을 하는데 그 전쟁의 내용이 뭐냐 하면은 어느 신이 참된 신이냐 라는 문제입니다. 오늘도 엘리야가 그러지요, 너희가 둘 사이에 왜 머뭇머뭇하느냐 하나님이 참된 신이면 하나님을 섬기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바알을 섬기라, 다시 말하면은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고 있는 혼합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알라, 석가모니, 천지신명 들은 신이 아니고 우상이다. 우리를 만든 하나님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고 실체가 있는 신이다. 우리를 만드신 그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은 우리의 삶이 생명이 넘치고 풍성 해진다.
오늘도 이 말씀 속에 여러분들은 나는 정말 엘이야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은 바알이라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을 해봐야 됩니다. 이 세상에 신은 여러분들이 많은 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은 고린도전서에도 말하지만은 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만든 하나님이냐 아니면은 인간이 만든 신이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알라라든지 석가모니라든지 천지 신명이라든지 그 모든 신들은 신이 아니고 우상인데 인간이 만들어 낸 신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라는 말보다 조물주라는 말이 훨씬 성경적인 신에 대한 호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는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되고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어야 되고,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어야 되요. 그러면은 참된 신이 누구냐 말입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우리의 구미에 딱 맞아요, 그러나 실체는 없습니다. 우리를 만든 하나님은 매력적이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고 실체가 있는 신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들을 키우지만은 부모는 자녀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 안 해요. 진짜 훌륭한 스승은 학생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 안 해요. 그러나 옆집 아저씨나 유괴범은 매력적이에요 사탕 줄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제시한다 말입니다, 거기에 따라갔다가는 큰일나는 거지요.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서 인생이 잘못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매력적인 분이 아니에요.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은 우리의 삶이 생명이 넘치고 풍성 해진다고요. 저는 우리 한국에 있는 교인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요 풍성함이 없어요, 예수 믿는 자유 함이 없어요. 왜냐 하나님 우상을 너무 많이 섬겨요. 말은 하나님이라는데 가만히 보면은 바알 하나님이에요. 예수님이라고 주여 주여 응답하소서 믿습니다 하는데 가만히 보면은 바알 하나님이에요.
성령이여 역사하시옵소서 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바알 하나님을 성령이라고 부를 따름이다 이 말입니다. 진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냐, 분별은 기도해 가지고 영 분별 은사 받아야지 아는 게 아니에요. 나는 기도해 가지고 영 분별 은사가 있기 때문에 저 사람 착 보면은 하나님을 믿는가 우상을 믿는가 알아, 저 사람 착 보면 진짜 목사인가 가짜 목사인가 알아, 전부 엉터리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짜 하나님이냐 아니냐는 무엇으로 아는가, 아주 간단합니다. 이 마이크는 사람이 만들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마이크를 조정도 하고, 사용도 하고, 이용도 합니다. 마이크가 사람을 이용하거나 조정을 하지 못해요.
2. 우리를 조정하고 이용하고 사용하는 신은 엘리야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매력적인 신이다. 하나님 저를 사용하시고 내 뜻대로 마시옵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라고 함은 하나님을 만난 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언제나 만든 이는 피조물을 조정하는 겁니다. 여러분 신이 여러분들을 조정하고 여러분들을 이용하고 사용하는 신을 말하면은 그것은 엘리야의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인간이 신을 조정하는 것 같이 말하면은 그거는 하나님이라든지 예수님이라든지 성령님이라 해도 인간이 만든 바알 하나님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부분 정확하게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뢴다 이것하고 또 틀립니다. 자 이야기 잘 들어 보세요, 40일 금식 기도를 하면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진다 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를 조정하는 겁니까 내가 하나님을 조정하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을 조정하는 거에요.
무엇을 통해서 40일 금식 기도라는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신이에요. 그런데 굉장히 매력적이지요. 왜 내가 원하는 바를 나는 할 수 없는데 40일 금식 기도는 그래도 마음 한번 먹으면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해주게 하는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우상이에요. 11조를 하면은 복주는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면은 11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복은 내가 받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복을 주는 신을 만들어서 나에게 복을 주게 하는 것은 우상이에요. 그런 것은 아무리 하나님 예수님이라 해도 우상이에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성경의 전반적인 것은 우리를 조정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오늘날까지 나를 이곳에 있게 하신 그 하나님,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 나를 예수 믿게 하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서면은 금식 기도 하게 되면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하나님 저를 사용하여 주세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내 뜻대로 마시옵고. 하나님을 만난 자가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여러분들이 자녀를 기르다 보면은 자녀들이 어릴 때에는 부모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존재가 부모인 줄 알아요. 그래서 엄마 왜 나에게 스마트폰 안 사 줘, 엄마 왜 나 놀지 못하게 해, 엄마 왜 나 좋은 것 주지 안 해, 걔는 아직까지 부모의 본질을 모르는 얘에요.
그런데 사춘기가 지나고 스무 살 넘고, 군대 갔다 오고 하면 머리가 커지고 나면은 엄마가 좋은 것 사 주려고 해도 엄마 괜찮아 나는, 나 그것 없어도 돼, 성숙된 모습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이 부모가 아니고, 나를 이곳까지 있게 하신 그 엄마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런 것이 보이지 않고, 부모만 가득 보이게 될 때에 어릴 때 가난한 집이 그렇게 원망스럽고 부모가 원망스럽든 사람이 부모님 때문에 행복 해지고 그 가난한 집이 천국과 같이 여겨 지는 그런 놀라운 변화가 있는 거에요.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는 인간에 의해서 조정하는 우상을 섬기든지 아니면은 선교 100주년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유치원 생 정도의 아이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 말입니다.
3. 엘리야의 이름 속에 바알이 하나님이 아니고, 야훼가 하나님이다 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여 응답하소서, 하늘에서 불로 내려와서 제단의 제물을 사르셨다. 하나님의 임재는 구약성경에 언제나 불 가운데 불로 임재 하셨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서 뭐 꼭 우리 교회에 다니라는 법은 없잖아요, 다른 교회에 가도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를 통해서 신을 움직이게 하는 그것은 아무리 하나님 주여 하고 예수님 하고, 응답하소서 믿습니다 해도 우상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여러분들에게 매력적인 존재입니까, 언제나 나에게 잔소리하고 내가 듣기 싫어하는 그 부모가 나를 낳으신 보모에요. 설교는 여러분들 귀에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말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세요, 오늘도 여러분 이 갈멜산에서 바알이 하나님이냐 엘리야의 하나님이 하나님이냐, 엘리야라는 말은 엘은 여러분들이 아시지요 히브리어에서 신이라는 말입니다, 거기에 리자가 붙으면은 소유격이 됩니다, 그래서 사라 사래가 된 것은 사래는 나의 공주라는 말입니다. 사라는 공주라는 말이에요. 엘리 나의 하나님은 야 야회입니다.
엘리야의 이름 속에 바알이 하나님이 아니고, 야훼가 하나님이다 라는 거에요. 그런데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야훼가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들은 대답하지 안 했어요. 그래서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하나님의 선지자 야훼의 선지자 엘리야와 영적인 전쟁을 해요. 그 전쟁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은 송아지 둘을 데리고 와서 각각 송아지의 각을 떠서 제사를 드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사르는 그 신이 진짜 신이다, 라고 대결을 합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에게 하라고 해요, 응답하소서 응답하소서 주여 주여 믿습니다, 응답하소서 해도 응답이 없어요.
엘리야가 조롱을 합니다, 하나님 자고 있는지 모르니까 더 열심히 불러 봐라, 뛰어 놀며 심지어는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전혀 대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열두 돌을 취하여 열두 제단을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다고 해요, 수축을 하고 그 위에 송아지의 각을 뜨고 물을 부어요. 흥건하게 붙는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여 응답하소서, 하늘에서 불로 내려와서 제단의 제물을 사르셨어요. 여러분 이 사실이 왜 성경에 기록이 되어졌는가 하는 것도 아셔야 되고, 오늘도 성령의 불이 내려와서 우리를 뜨겁게 하는 것이 엘리야의 하나님의 체험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은 잘못된 거에요.
자 신학의 부재라는 것이 오늘 한국 교회에 있는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잘못된 신앙을 가고 있는지 몰라요. 종교적인 체험이 신앙 체험인 줄 알아요. 자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엘리야의 있는 그 제물을 불사른 것은 실제로 있었든 일이에요. 이것은 신화가 아니고 지어낸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있었든 이야기에요. 그런데 이 실제로 있었든 이야기는 왜 이러한 기적을 나타냈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구원사적 사건 때문이에요. 자 이말 여러분 제대로 이해 하셔야 되요. 하나님의 임재는 구약성경에 언제나 불로 임재 하셨어요 불 가운데. 성경의 출발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했지요, 성경의 시작은 창세기가 아니고 출애굽기라고.
4. 하나님은 왜 불 가운데 임재 하셨는가 엘리야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에 대한 표적으로 임하셨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제물이 되셨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나의 아버지 되심을 들어내는 제사였다, 불로서 그것을 확인 해 주셨다.
성경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시나무 떨기에 불 가운데 임재 하신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 야훼의 신앙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 가시나무 불 가운데 만났든 그 하나님을 모세가 보니까 우리 조상의 아브라함이고, 이삭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이셨어요. 그래서 창세기를 거스르 가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성경에 불 가운데 임재 하셨어요. 그 불 가운데 임재 하신 그 하나님은 왜 불 가운데 임재 하셨는가 엘리야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에 대한 표적으로 임하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그 역사적인 사실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엘리야의 제단에 불을 내리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왜 불을 내리게 하셨는가?
엘리야의 제사가 진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고 엘리야가 말하는 야훼가 진짜 하나님이고 바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건을 보면서 호렙산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든 그 하나님이 갈멜산에 엘리야의 제단에 나타나셔서 동일한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그래서 우리는 엘리야의 제사가 진짜 제사고 엘리야가 말하는 그 야훼가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오늘도 우리가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말라기에는 그런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엘리야를 보내어 주면은 그 엘리야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리겠다, 라고 말을 해요.
그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바로 엘리야의 갈멜산의 이 사건이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리는 사건이라는 이야기에요. 어떻게 도리는가, 여러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어요, 자신이 제물이 되시고, 엘리야의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드린 거에요. 그래서 그 제사에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계시하신 거에요. 왜 그런 것들을 했는가 엘리야의 그 제사를 이해하지 못했든 엘리야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 드리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그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받아 드리지 안 했거든요. 하나님이신 그분이 오셔서 엘리야의 제사를 골고다에서 드리신 거에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무얼 말하고 싶은가 하면은 너희들이 율법을 지키면은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는 그 야훼는 바알 하나님이라는 말이에요.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드린 그 제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나의 아버지 되심을 들어내는 제사였다는 거에요. 불로서 그것을 확인 해 주었다는 거에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신약성경에 보면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에 대한 제물이 되시고 난 뒤에 오순절에서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겁니다. 거기에 보면은 성령의 불이 불의 혀같이 갈라짐이 각 사람 위에 보였다고 그래요. 저는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는 하나님의 임재 성령이 임재 하시면서 모든 사람이 불이 보였든 거에요.
5. 기록된 계시 외에 더 한마디라도 더하거나 빼면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받을 것이다. 계시의 종결을 말하는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의 그 불로서 우리에게 확정 해주신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게 하신 그 제사가 진짜 제사라는 것이다.
왜 오순절에 성령이 오셔서 불로 오셨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드린 제사가 진짜 제사이지 유대인들이 드리는 유대교가 드리는 제사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확정하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왜 성령님이 오순절에 오셨는가 불로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심 우리의 창조주가 되신 그 하나님이 진짠 하나님이지, 유대교가 말하는 주일 성수하고 11조하고 뭘 하면은 복 준다고 하는 그 하나님은 바알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내용을 알지 못하고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에게 안수를 받으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이 임하여서 그때 그 겨울에도 마루 바닥을 때굴때굴 굴렀다, 라고 말을 하면서 그때부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어 하면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계속 써 나가려고 하는 기록된 계시의 종결을 무시하는 이단이 되는 거에요.
엘리야에게 임하신 그 불로 임하신 하나님이 오순절에 성령으로 임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진짜 제사가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고, 예수님이 계시하는 그 하나님이 진짜 우리 아버지 되심을 충분히 나타내신 겁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기록된 계시 외에 더 한마디라도 더하거나 빼면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받을 것이다. 계시의 종결을 말하는 겁니다. 지금도 여러분 그런 교회에 보세요, 기도하면은 목사님의 안수 받으면은 불 받는다든지 목사님에게 안수 받으면은 기도가 응답이 있다든지 이런데 다니는 교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은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는 것보다 그 목사님을 믿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손가락질 하는 대로 다녀요. 그것은 그 목사님 교가 되는 거지, 예수교가 되는 게 아니에요.
한국에는 예수교보다 목사교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교인들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자유와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저 목사님에게 잘못 보이면은 벌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종교적인 예전을 잘못하면은 하나님에게 저주를 받을까 봐, 또 그러면서 어떻게 하든지 남들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으려고 예수 믿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자 잘 들으세요, 갈멜산에서 분명히 불이 임하셔서 엘리야가 드린 그 제사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엘리야가 드린 그 제사가 참 제사입니다, 엘리야가 말하는 그 하나님이 참 야훼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정해 주셨어요. 이것을 못 믿어 가지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바알 섬기는 유대교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엘이야의 말대로 바알의 하나님이에요. 말로만 야훼이지 섬기는 것은 바알 이었단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말로는 하나님이고 말로는 예수님이고, 말로는 성령님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만든 바알을 섬기고 있어요. 오늘 그 신 뻥 차세요. 오순절에 성령의 그 불로서 우리에게 확정 해주신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게 하신 그 제사가 진짜 제사에요. 하나님이 이제는 우리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실이 진짜 야훼다 말입니다.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믿으셔야 되는 거에요.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예배가 무슨 예배냐,
지금은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릴 때에 어떤 종교적인 체험을 경험하려고 하면은 계속 계시를 써 나가려고 하는 이단들의 행위에요. 우리의 예배는 뭐냐, 엘리야가 드렸든 참된 제사는 뭔가, 성령이 임하시고 난 뒤에 초대 교회가 드렸든 제사가 뭔가, 엘리야의 제사를 보면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돌을 통해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다고 그래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이 나뉘어 져 있고 열두 지파가 갈갈이 나뉘어 져 있는 겁니다 그것이 무너진 제단이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바알 숭배의 결과라는 겁니다.
6. 열성신학에 사로잡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위임장을 받아 Damascus다메섹에 있는 예수쟁이를 잡으러 가는 길에 다메섹 도상에서 밝은 빛 가운데 주님을 만나다. 겉은 멋있는 종교인인데 안은 회칠한 무덤 같은 유대교를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나니아집의 교회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엘리야는 열두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을 올린 겁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에 의한 참된 예배, 제가 주일날 예배 때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 할 때에 그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자기가 죽어 지고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참된 예배라는 말이에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일어난 그 오순절에 그 초대 교회의 그 예배가 엘리야의 무너진 열두제단을 수축했든 그 제사 그 위에 드리는 제물,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여러분들이 받아 드리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라는 말이 말로만이 아니고 그 사실을 진짜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참된 예배는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 속에,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섬기는 그것이 기초가 되어지는 위에 드리는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바울이 모든 복음과 성경의 해석은 바울서신의 관점에서 봐야 됩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율법을 잘 지키면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는 바알야훼를 섬기는 유대교의 최고봉이었습니다. 그 관점에서 보니까 예수는 이단이라 그래서 십자가 처형한 거에요.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들을 처형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열성신학에 사로잡혀서 산헤드린[Sanhedrin]공의회에서 위임장을 받아서 다마스쿠스[Damascus] 다메섹에 있는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밝은 빛 가운데 주님을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예수다. 거꾸러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거꾸러지면서 그는 눈이 멀었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눈이 멀어져요. 눈이 너무 밝은 것이 문제에요. 어릴 때에는 눈이 너무 밝아 가지고 친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보이니까 부모가 안 보여요. 오늘날 우리 한국 교인들이 눈이 너무 밝아 가지고 돈이 보이니까 하나님이 안 보여요. 김용기 장로의 아들 김범일 장로가 그런 이야기 했어요. 왜 한국의 효도가 없는가, 돈 때문이래요 옛날 엽전에는 구멍이 있어 가지고 돈을 통해서 부모가 보였는데 요즘 돈은 구멍이 없어서 돈만 보이지 부모가 보이지 않는데요. 왜 사람이 안 보이는가 돈만 보이거든, 그래서 하나가 안 되요.
교회와도 하나님 돈 주십시오 자녀 잘되게 바라는 게 뭐요, 내 옆에 앉은 사람보다 내 자녀가 돈 더 많이 벌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주여 응답하시옵소서 자기의 몸을 상하고 열광을 해요. 하나님의 응답 없는 예배입니다. 사울이 유대교의 그 모습을 보니까 이방인과 유대인이 나뉘어져 있고 남자와 여자가 갈갈이 찢어져 있고, 노예와 자유인이 찢겨져서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여 응답하시옵소서, 안식일 거룩히 지켜요, 가난한 자를 구제해요, 금식을 해요, 하루에 세 번 기도해요, 겉은 멋있는 종교인인데 안에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유대교를 다마스쿠스[Damascus]에 있는 아나니아집에 있는 교회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겁니다.
7. 예수님의 제사가 진짜 제사이고, 오순절에 불로 임하여서 확정해 준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하는 그 사실의 신앙의 고백 위에 드리는 예배야말로 진짜 예배임을 알았다. 엘리야의 제단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로서 응답하신다.
그 아나니아의 집에 갔더니만 자기를 잡아 죽이러 오는 자기를 자기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그들을 이단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정죄하는 그가 눈이 멀어서 왔는데 내 혈연의 가족 같이 돌볼 때 예수님의 제사가 진짜 제사이고 오순절에 불로 임하여서 확정해 준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하는 그 사실의 신앙의 고백 위에 드리는 예배야말로 진짜 예배이구나. 그래서 그는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자유 자나 종이나 다 하나가 되었구나, 이 사실을 받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이구나, 무너진 제단이 뭐냐, 열두 지파가 각각 나뉘어져서 자기가 잘되기를 바래요.
남북이 나뉘어져서 서로가 대립하고 이기려고 하나님을 찾으면서 응답하소서 하는 제사는 바알의 제사였다는 겁니다. 엘리야는 열두 지파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한 가족임을 드러내는 제단 위의 그 위에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들 교회 와서 하나님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복 주시옵소서 여러분들이 만든 그 신을 하나님이라고 응답 하소서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징계하는가 하면은 기근[饑饉] 으로 징계해요. 엘리야의 제단이후에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로서 응답하세요. 뭐냐 하나님을 믿는 참된 신앙 안에서 생명과 풍요로움이 있다는 겁니다.
작년에 여러분들에게 제가 얼마나 목청껏 외쳤어요,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과 더 풍성함을 주려 왔다고, 왜 여러분들이 아직까지도 하나님 안에서 풍성함을 못 누려요, 그 풍성함이 돈 많은 것이 풍성함이라 생각해요, 그건 바알 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생명과 풍요로움은 뭔가, 누가복음 12장에 이렇게 말해요. 너희 가운데 탐심을 물리쳐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자 오늘 여러분 거듭났습니까 그런대도 여러분들은 어디에,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 사람 아직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자입니다. 종교호합주의 입니다. 그 종교혼합주의에 기근[饑饉] 이 있는 거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이 그래 믿었어요.
율법만 잘 지키면 복 주시는 인간이 만든 하나님을 야훼라고 하면서 열심히 율법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요 왜 내가 창고 가득 각종 보화를 쌓아 놓고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놓고 이제 내 영혼아 편히 쉬고 먹고 마시자, 유대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모습이 그런 모습 아니에요? 남들보다 좋은 학벌은 못할지라도 남들보다 예수는 더 잘 믿을 자신이 있어요 그래서 그 예수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창고 가득 넘치는 물질을 소유하려고 해요 왜 여러 해 동안 자자손손 먹고 마시고 편히 쉬려고, 그 우상에 빠진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지적합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거두어 가면은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에게 부유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 제가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솔직 하자고요 왜 예수 열심히 믿고 예수 믿어요? 내가 돈 벌 자신이 없으니까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이 내 창고 가득 부어 주도록 그래서 쌓아 놓고 여러 해 동안 자자손손 먹고 마시고 편히 쉬자, 유대인들하고 같지 안 해요? 갈멜산에 있었든 이스라엘 백성들하고 같지 안 해요? 그들에게 엘리야가 묻습니다, 하나님이냐 바알이 하나님이냐? 선택하라고, 마태복음 6장에 예수님이 너희 안에 쌓아 놓고 자자손손 편히 쉬자고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여러분들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수단으로 만들면은 우상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은 우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재물을 섬기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되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모든 것을 이 관점으로 좀 보세요. 하나님과 재물을 섬기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에요. 제가 화가 나는 설교가 뭔 줄 아세요, 이런 설교를 하는 목사 앞에 부흥사 들이 그러더라고, 그렇게 믿으라고 그래요, 여러분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복도 받고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고, 이 신앙이 얼마나 좋으냐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결코 돈이 보이면은 사람이 보이지 안 해요. 결코 돈이 보이면은 하나가 될 수 없어요.
8. 하나님의 징계는 많이 쌓아 놨는데 가난하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지니라.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 줄 믿고 다른 사람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인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순간 비와 풍요가 온다.
하나님의 징계는 많이 쌓아 놨는데 가난해요. 목회를 하면서 설교를 30년을 하는데 교인들 보면은요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내가 볼 때 참 가난한 사람 너무 많아요. 저는요 100억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원을 가지고 발발 떠는 사람 너무나 많이 봤어요. 하나님에게 부유하지 못한 자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에게 부유하면은 10만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5만원을 쉽게 자기와 이웃을 위해서 사용해요. 여러 해 쓸 것을 모아 놔 놓고 편히 쉬고 먹자 하는 자에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여러분 열심히 돈 모아 놓고 모으는데 내 자자손손 가난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누구를 위한 거에요. 자녀에게 하나님 주어야지요.
교인들도 자녀에게 돈 주려고 하는 사람은 백억을 가지고 있어도 가난한 사람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귀에 탁 머리에 꽂혀야 되요. 저는 저보다 돈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럽지 안 해요. 저보다 돈을 더 잘 쓰는 사람이 부럽지요.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구 것이 될 건데, 왜 엘리야의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바알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는 그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 공중에 새를 봐라 들에핀 백합화를 봐라,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지니라. 네가 염려하는 대로 굶어 죽는 일이 없을지니라.
설교를 해서 그런지 우리 교회 장로님들 존경해요 부러워요. 이번 수련회에도 장로님들이 저보다 못한 사람도 많은데 100만원씩 했더라고, 어떤 분은 그 다섯 배 하신 분도 있더라고, 다섯 배 한 그분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산이 부러운 게 아니라, 그 쓴 돈이 부러워요. 지난 주일날도 성가대 회식을 하는데 저는 환자가 있어 심방을 가야 되어서 참석을 못했는데 이금희 권사님이 교역자들 위해서 고기를 좀 숨겨 놓았더라고, 누가 냈는데 하니까 어느 장로님이 냈대, 그 장로님이 가지고 있는 많은 돈 필요 없어요 저는, 누구를 위한 것인데, 그 장로님이 쓴 돈이 부럽더라고.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에요.
기근이라는 것은 가난한 게 아니에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아니하니까 만원에 벌벌 떠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요, 하나님이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시는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 줄 믿고 다른 사람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인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순간 비가 와요. 풍요로움이 생겨요. 2백 만원 소득에서는 2백 만원에 걸 맞는 소비를 하면서 풍요롭게 살아요. 4백 만원 되면은 4백 만원에 맞는 풍요로운 소비의 삶을 살아요.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 다 좋은 것은 아닌데 이것 하나는 배울만 해요. 교회를 개척해서 50불의 사례를 주니까 5불을 11조를 하고 45불을 생활비를 했대요.
교회가 커져서 500불을 주었는데 45불은 자기의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돈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부유한 삶을 살아갔대요 그분은, 나머지 11조 드렸다 소리 내가 안 하는 거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 때,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안 해요. 그 외에 있는 돈들은 자신의 수입에 맞는 소비를 통해서 자신과 이웃이 함께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 풍요로운 삶이에요. 한 달에 수입이 1억이 되는데 자기를 위해선 9천 만원을 쓰고, 남을 위해선 만원을 발발 떠는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 가운에 있는 기근 속에 있는 사람이에요. 한 달에 1억의 수입이 되는데 내가 먹고 살고 있는 것은 백 만원 밖에 안돼, 나머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풍요로운 사람이요, 누가 그런 삶을 살아요, 엘리야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
엘리야가 드린 제단 위의 제물에 불로 임재 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 바울이 다마스쿠스 아나니아 집에서 그 사실을 보면서 유대교가 칼야회 거룩한 여호와의 무리가 아니고, 이곳이구나 뒤집어 진 거에요. 예수님이 속죄의 제사를 드려서, 그 제사를 드린 자마다 구원을 얻고 천국 간다고요, 천만에요 그 제사가 무엇 위에 있어야 되는가, 다른 사람도 나와 한 가족이라는 사실 위에 그 제물이 있어야 되요. 아멘
◈봉헌 기도◈
헌금이라는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끌어내려고 하는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노릇해 주셔서 내 삶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알아서 내 형편껏 주님 앞에 드려서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예물을 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바알도 좋고 야훼도 좋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종교 혼합주의에 있는 3년 6개월 동안 기근의 의미를 알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져서 오늘 이후로는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누릴 줄 아는 자를 부러워하게 하여 주시고,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분량에 만족하게 하여 주시고, 여러 해 쌓아 놓고 내 영혼아 편히 쉬자 하는 한국 교회에 그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구 것이 될 것인가, 주님의 말씀이 내 심령을 울려서 오늘 사용할 돈 오늘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행복할 것 오늘 행복하게 사는 삶을 사는 믿음의 권속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많은 것을 가지고도 거지와 같이 사는 기근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이 하나님이 아니오, 엘리야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갈멜산에 무너진 열두 제단을 수축하여 드리는 그 제물 위에 불로 임함과 같이 김씨 이씨 박씨 좌파 우파 호남 영남 갈갈이 찢기어 진 이 세상 속에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내 영혼아 편히 쉬자라고 하는 종교 혼합주의에 빠져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만이 아버지이심을 제물이 되시고 성령의 불을 보내어 주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드리는 그 제단을 세우고, 그 제단 위의 예배가 진짜 예배임을 우리에게 알게 하려고 십자가의 중한 고난을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온 천하보다도 우리를 더 귀히 여기시는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물을 통한 그 제사가 참된 제사임을 알도록 불로서 임재 하신 성령의 역사하심이 오늘도 많은 것을 쌓아 두고 내 영혼아 편히 쉬자 라고 하는 삶을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것이 누구 것이 되겠는가, 하나님에게 부유치 못한 자의 삶을 지적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적을 따라서 하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는 바알 종교를 버리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고 살아감으로 나에게 주신 분복을 누리며 살다가 주님 맞이할 믿음의 권속들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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