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하나님의 사람의 표징(열왕기상 17장 1-7절, 24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7. 7. 15. 12:27

 

 

 담임목사 김종웅

하나님의 사람의 표징

열왕기상 17 1-7, 24

2017 7 9일 주일 낮 예배

                                                                                                                                                         No. 323

1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24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아멘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자, 이제야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면은 증험[證驗]표적[標的]이 있을 거다, 그의 말은 성취된다. 공중에 나는 새도 들꽃도 하나님 천부께서 기르신다.

 

참 우리가 답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말을 해도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사람입니다. 그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사람은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에는 행간 이면에 의미가 포함 되어져 있어요. 기독교에도 보면은 설교를 하는 거나 교인들이 하는 말들 중에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받아 드려서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 본문 중의 하나가 또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의 내용은 어떤 내용이냐 하면은 엘리야가 아합 시대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하였든 오므리 왕조의 중간입니다.

 

1. 한끼 먹을 양식밖에 없는데 그 양식을 엘리야에게 주었다. 사르밧 과부의 쌀독에 쌀이 떨어지지 안 했고, 기름이 떨어지지 안 했다. 과부의 아들이 죽으니까 엘리야가 그 아이를 데리고 다락방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이 아이에게 혼을 돌려 달라고 하니까 이 아이가 살아났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가서 까마귀가 3 6개월 동안 아침 저녁으로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3 6개월이 지나고 그릿 시냇가에 물이 마르자 두로와 시돈 지방에 있는 사르밧 이라는 곳에 과부에게 갔어요. 가서 내가 물 좀 주세요 하니까 이 과부가 물을 가지러 갈 때에 뭐라는 가 하면은 물만 말고 먹을 것도 좀 달라고 하니까 이 사르밧에 있는 과부가 뭐라는 가 하면은 참 답답하네요, 이제 우리 집에는 한끼 먹을 양식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들 하고 이 양식을 먹고 이제 죽으려고 하는데 라고 말을 하면서 그 양식을 엘리야에게 갔다 주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놀라운 기적이 생겼는데 그 땅에 기근이 있는 동안에 비가 오기 시작하는 그때까지 이 사르밧 과부의 쌀독에 쌀이 떨어지지 안 했고, 기름이 떨어지지 안 했다. 하는 이런 기사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죽으니까 이 과부가 그 사람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왜 나를 괴롭게 하느냐고 내 죄가 생각나게 하고, 그러니까 이 엘리야가 그 아이를 데리고 다락방에 가서 세 번 엎드려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이 아이에게 혼을 돌려 달라고 하니까 이 아이가 살아났어요. 이것이 오늘의 성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보시면서 대부분 이렇게 많이 들었어요, 하나님의 종에게 잘 섬기면은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준다.

 

사르밧 과부가 자기가 먹고 죽을 양식 마지막 남은 양식을 주의 종에게 바쳤더니만 하나님께서 얼마나 복을 주셨나 여러분 이렇게 해석을 하고 알아듣고 그걸 믿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 많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에 가장 마지막에 뭐라는 가 하면은 엘리야가 그 과부의 아들을 죽은 것을 살리고 나니까 이 과부가 뭐라는 가 하면은 당신이 진짜로 하나님의 사람인 줄 내가 이제 알겠다 이런 거에요. 그러면은 이 말씀 속에 중요한 의미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은 거에요. 그리고 그 다음에 왜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어야 되는가 하면은 그 다음에 말은 이제 내가 당신이 하는 말은 여호와가 하시는 말로서 진실된 줄로 믿는다 라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그럼 오늘 본문에서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은 엘리야는 하나님의 보내신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말해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이 열왕기는 대부분 많은 신학자들이 예레미야가 기록했다는 거에요. 그 예레미야 시대는 어느 시대냐 하면은 남쪽 유다가 이제 마지막 멸망을 당하는 그런 시대였어요. 왜 멸망을 당했는가 하는 것도 알아야 되요. 여러분 나라가 어렵고 힘들 때에는 언제나 기득권 자들이 자기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에게 희망이 없는 그런 시대가 되여 집니다. 그런 시대에 지금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과거에 북쪽 이스라엘의 아합 시대의 사건을 가지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우치고자 하는 겁니다.

 

2.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면은 증험[證驗] 표적[標的]이 있을 거다, 그리고 그의 말은 반듯이 성취된다. 엘이야는 죽은 자를 살림으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나타낸 것이고, 또 그의 말은 반듯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원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자신이 부활하셨다.

 

옛날에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어요, 그는 진짜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 것은 그는 죽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표징적으로 보여 준 거야, 우리가 그렇게 엘리야를 믿어야 하는 것은 엘리야의 말을 믿어야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다 지금 이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그냥 예레미야가 한 말인가, 여러분들이 성경을 볼 때에 모든 성경은 율법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기본입니다 이건 토라 입니다 이건 변함이 없는 율법이에요. 그 신명기에 보면은 이런 말씀을 하는 거에요.

 

우리 교회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주 인용한 말씀이잖아요. 신명기 18 22절에 보면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말을 할 때에 그 사람이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면은 증험[證驗] 표적[標的]이 있을 거다, 그리고 그의 말은 반듯이 성취된다. 그런데 그가 자기 말 안 들으면은 벌받고 저주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증험과 말의 성취함이 없으면은 너희들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씀을 한 거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선지자에게는 항상 네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표적적으로 보여 다오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의 말을 따라서 엘이야는 죽은 자를 살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나타낸 것이고 또 그의 말은 반듯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을 때에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에요. 지금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열왕기를 지금 기록한 거다 말입니다. 그럴 때에 오늘날에도 기독교인들 중에 그런 사람 많아요. 또 우리 목사님은 어느 권사님은 가서 기도 받으면은 병이 낫는다고 그래, 기도를 받으면은 사탄이 물러가고 병자가 낫고 부자가 된다고 해, 진짜로 하나님이 보내신 자의 그런 것을 보면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또 목사님들 중에서도 안수기도해서 병 낫게 하려고 하고, 또 축복 기도하고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의 표적으로 삼으려고 하는데 그런 말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은 목사님은 무슨 말씀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 신명기의 말씀대로 엘리야는 죽은 자를 살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표적적으로 보여 주셨고, 또 그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그 말씀을 들어야 구원이 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안 했어요.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와 그 뒤에 아합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고.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잖아요, 자신이 부활하셨잖아요, 바로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표적이라 말입니다 엘리야와 같이.

 

3. 예수님의 표적을 보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들으면 우리의 삶에 구원이 나타난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 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죽은 나사로의 사건을 보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우리가 믿어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받아 드리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거에요. 목사는 이렇게 모세의 오경의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나타나서 예수님을 믿게 할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교인들에게 말해 주어서 목사님이 주장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받아 드려서 예수님의 그 말씀의 성취로 나타나는 구원이 우리 속에 경험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목사가 하는 설교에요.

 

목사님이 자꾸 표적을 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은 자기 말을 교인들에게 자꾸 주입을 한다고, 그래서 목사님 말 안 들으면은 벌받을까 봐 무서워서 목사님 말씀 듣다가 종교적인 억압과 학대가 얼마나 우리 가운데 많이 생기는 거에요. 자 일차적으로 여러분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셔야 되요. 엘리야가 죽은 아들을 살리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에요.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사람들에게 믿도록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은 그의 말을 믿어야만이 그 약속을 믿어야만이 인간 세상에 구원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자신이 부활하셨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려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그 표적을 보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들으면은 우리의 삶에 구원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거에요. 앞으로는 누가 뭐 기적을 행하였다 뭘 했다 하거든 그건 성경에 이미 다 이루어진 구원인데 뭐 거기에 첨가할 게 있겠어요. 그러면 두 번째로 엘리야가 지금 하는 말이 뭐냐 하면은 1절에 보세요 1절 우리 다같이 읽어 봅니다 시작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 다음에 뭐라고 그래요,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 말씀을 가지고 다시 저를 보세요 봐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말이 없으면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 기근이 있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거다, 그래서 우리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야 돼,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일이 안되면 자꾸 내가 목사님 말씀 안 들어서 그런가, 이렇게 깨달아 라고 준 게 아니에요. 여기에 내 말이 없으면 이라는 말은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들에게 없으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은 백성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삶의 경험과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서 살아간다 이말 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자신의 삶의 안전과 행복을 확보하면서 살아가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있는 것 까지도 빼앗겨서 살아가기 힘든 불균형 불의가 세상에 나타난다 말입니다.

 

4. 하나님의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지금 엘리야가 그렇게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징계한다고 레위기에서 말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기근을 준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해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암만 들어도 여러분들이 모든 가치판단과 모든 일의 선택에서 여러분들이 살아오면서 경험된 가치관과 우리 사회의 편만한 사회적인 가치관에 의해서 가치판단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뭐냐 하면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성공이고 복이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거에요, 지금 엘리야가 하는 이 이야기는 만약에 그렇게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징계한다고 레위기에서 말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레위기 26장 그 다음에 또 에스겔서 14장 요한계시록 6장은 다 예레미야 26장을 기초로 해서 한 말씀들이에요. 그 말씀은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너희가 우상숭배를 하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깨닫게 하도록 뭐라는 가 하면은 기근을 준다는 거에요. 지금 오늘 그 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돈을 숭상하는 우상숭배에 빠져서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삶을 사는 그들에게 그래 살면은 하나님이 기근을 준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럴 때에는 전염병이 돈다고 말을 해요. 그리고 들짐승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치안이 부재 되어지고 그리고 전쟁에서 패망하리라 이런다고요.

 

여러분들 이 말씀을 가지고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 안 하면 저주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자 이 말씀은 잘 알아 들으세요.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요, 그래서 남은 죽든 말든 나 하나만 잘 살려고 한다면은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린다는 거에요, 왜 징계 내리는가, 망하게 하도록 그게 아니에요, 사람 되게 하려고, 특별히 능력 있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 편안한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것 이해하셔야 되요. 내 속에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우리 나라가 불경기가 올 때에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나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는 뭔가 문제가 꼬이고 안 될 때에는 내가 다른 사람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이 생각 해야 되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한가지 하나님의 심판은 내가 그런 생각도 안 하고 남은 죽든 말든 나만 잘살고 잘 먹으면 돼, 그런데도 하는 일은 잘 돼,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내가 저주받은 자가 아닌가, 그 생각해야 되요. 하나님의 저주는 유기 내버려둠이에요. 이 믿음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없는 사람도 희망을 가지는 사회가 되지 않겠어요, 그럴 때에 북한 핵이 우리를 침범하겠어요, 중국이 우리에게 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예전에 옛적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나타내는 구원이라 말입니다.

 

5. 우리가 무슨 생각해야 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되요. 선지자는 그걸 지적하는 것이 선지자에요.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 몰랐다, 나그네에게 자기 먹고 죽을 양식을 주었다, 그후 사르밧 과부는 일용할 양식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살았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적용 할게요, 여러분들의 자녀가 앞으로요 올바른 부모의 징계는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은 몰라도 교회 다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자기 자녀가 공부 못한다고 혼내면 안 되요, 이기적일 때 혼내야 되요, 친구는 어쨌든 지만 잘되는 것을 바랄 때에 혼을 내야지 그게 올바른 부모지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니면서 저를 모범으로 보세요, 제가 우리 교회에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 주일 한번 빠졌다고 내가 혼낸 적 한번도 없어요, 11조 안 한다고 내가 뭐라 한적 없어요, 저는 언제 화가 나는가 장로 권사 집사가 돼 가지고 지와 지 자식만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을 때 화가 나는 거에요.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못한다고 혼낸 적 없어요, 자기만 알 때 혼내는 거요. 오늘 엘리야에게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싶은 거에요. 우리가 왜 지금 이렇게 어려워요,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상은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되가 있어요 가만히 놔두면, 그러면 자기가 능력을 가지고 가진 그 돈이 또 다른 능력이 되어 가지고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요 능력의 극대화가 일어나서,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이 생기는 거에요. 그때 우리가 무슨 생각해야 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되요. 선지자는 그걸 지적하는 것이 선지자에요.

 

목사님의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 생각 안하고 자기만 생각하면서 사는데, 하는 일들마다 잘돼, 아우 우리 삼성 복 받았네 이러는 게 아니고요, 하나님이 버린 자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해야 된다고. 내가 어렵고 힘들게 되어졌을 때에 내가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냐 라고 생각을 해서 이제 다른 사람도 나와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변모 되어 질 때에 그가 가지는 물질이 지신과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삶을 누가 살아갈 수 있어요, 그 앞에 내용이 참 중요한 거에요. 이런 사람은요 이런 삶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요.

 

기도하면은 우리의 탐욕을 채워 주는 하나님을 믿으면은 그건 우상이에요. 우리 한국 교회가 왜 이기적인가 우상숭배하는 거에요 말은 하나님이고 말은 예수님이고, 오늘 여러분 이 자 보세요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하면은 그릿 시냇가에서 물 먹으면서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물을 먹고 사는 거요, 양식 고기와 떡, 사르밧 과부의 삶이 어떤 삶이에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 몰랐어요, 나그네를 대접한 거에요. 나그네에게 자기 먹고 죽을 양식을 대접을 했는데 어떤 일들이 앞으로 일어나는가 하면은 일용할 양식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살은 거에요. 이 삶이 어디에 있어요, 출애굽기에 있는 삶이잖아요.

 

6.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거에요. 그릿 시냇가에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까마귀를 통해서 하루 분의 양식을 가져다 주었고, 엘리야를 먹이신 그 하나님은 사렙다 과부의 집의 쌀독에 쌀이 하루도 떨어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거에요. 그릿 시냇가에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까마귀를 통해서 하루 분의 양식을 가져다 준거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여기와서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에 어떻게 기도해요, 주기도문 하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는 그래 해 놔 놓고 살아가면서 뭐해요? 자자손손 걱정하지 않게 살아갈 양식을 주옵시고, 그러니까 세상이 불의하게 되는 거요, 자자손손 먹고 사는 양식을 주는 축복의 하나님은 우상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거에요. 그런 간증 믿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 보모보다 못하겠어요? 저는 제 시대에는 참 먹을 것이 없어서 부모들이요 자식의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 보면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에 제 어머니에게 최대의 무기가 뭐냐 하면은 오늘 밥 안 먹어요, 그러면 제 어머니 전전긍긍해요, 제가 또 고집이 좀 셌어요, 어떨 때는 3일까지 안 먹으면 제 어머니가 반듯이 손드는 것 알아요. 그런데 제가 밥 안 먹어요 이러면 제 어머니가 와서 뭐라는 줄 아세요, 웅아 오늘 못 먹은 그 밥은 평생 못 먹는 밥이다. 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오늘 쓸 돈을 못쓰면은 그 돈은 여러분들 생에 속에 평생 못쓰는 돈이 되요.

 

여러분들이 오늘 행복하지 못하면은 그 행복은 여러분의 70 80년의 생애 속에 없는 거에요. 일용할 양식이 그런 거에요. 저는 목사지만은 친구들이나 목사들이나 사실은 교인들 만나도 저는 제가 거의 밥 삽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부자인 줄 알아,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저는요 일용할 양식 주시는 하나님 믿거든요. 여러분 이상하잖아요, 자기 어머니에게 아침 먹고 난 뒤에 점심 주실란가,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점심 얻어 먹기 위해서 오늘 엄마에게 잘 보여야지 이게 올바른 삶이에요 자식의 삶이 아니잖아요, 얼마나 우리 한국 교회 이래 가르치는 게 많아요, 오늘까지 하나님이 살게 했는데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전전긍긍 해서 내일 양식도 얻어 가야 된다고. 오늘 아침 주시는 어머니는 점심도 줄 것을 믿고, 동생하고 사이 좋게 지내고 내 할일 하면 되는 거요.

 

여러분 오늘 아침 주신 엄마가 말 잘 들어야 점심도 준다고 하면은 요즘 계모 말고 옛날에 콩쥐 팥지 계모와 같은 사람이요. 우리 하나님이 그런 콩쥐 팥쥐 계모보다도 못한 하나님이십니까, 저는 그런 하나님 안 믿어요. 오늘 여러분 이 엘리야에게 와서 주의 종에게 좋은 것 했더니만 평생 복 받았다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신 그 하나님 사렙다 과부의 집의 쌀독에 쌀이 하루도 떨어지지 않게 하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 출애굽기에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그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세요.

 

7. 하나님의 사람과 아닌가 차이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인가, 나의 탐욕을 채워 주는 하나님인가 차이다. 예수님도 구하는 자에게 주며, 내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고, 주라 그리하면 너에게 줄 것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나님의 사람과 아닌가 차이가 어디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과 우상의 차이는 절에 가서 부처에게 절하느냐 교회 와서 하나님 부르짖어 기도하느냐 이 차이가 아니라니까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신가, 나의 탐욕을 채워 주는 하나님인가 이 차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믿으니까 이 세상이 불의한 세상이 되는 겁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요 저보다 돈 잘 쓰는 사람이 부럽지 많이 가진 사람이 안 부러워요. 돈은 가지고 있는 게 내 돈이 아니라니까요 쓴 만큼만 내 돈이에요. 이 세상에 쓴 만큼만 자기 돈이고 일용할 양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국가 준거에요, 교회 준 거에요. 그래서 불의한 일이 있을 때에 예기치 못한 일이 있을 때에 국가는 개인에게 책임져야 되요, 그게 복지에요 국민을 나태하게 하는 게 복지가 아니고요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세요.

 

이제 여러분 하나님에게 잘 보이고 종교 생활 잘 하면은 여러분들에게 자자손손 복 주는 그 하나님은 우상이니까 오늘 발로 뻥 차 버리세요. 오늘 아침을 주신 내 어머니는 점심을 한번도 어기지 않고 주셨습니다, 자기는 안 먹더라도 주셨어요. 여러분들의 인생 가만히 두고 보세요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내일 항상 내일 걱정하며 살았잖아요. 그래서 내일이 오늘이 왔을 때에는 어제 걱정이 쓸데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60년 살아온 사람은 60년 동안 경험하면서 살았고, 40년 산 사람은 40년 동안 경험하면서 살았으면서 앞으로 생활도 그래 살려고 그래요. 이제까지 그렇게 어리석게 살았다면은 이제 생각 바꾸세요.

 

왜 우리가 그런 하나님 믿어야 되는가 그래야 자기도 누릴 줄 알고 다른 사람도 나눌 줄 아는 거에요. 사르밧 과부는요 자기가 먹고 죽을 그 양식을 신명기의 말씀을 따라서 나그네를 대접한 거에요. 그럴 때에 그 가정에는 평생 동안 일용할 양식의 가람이 없는 축복이 있는 거에요. 우리나라 경제는 내가 먹고 죽을 양식을 사회적인 약자와 함께 나누며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나라는 평생 동안 일용할 양식의 걱정이 없는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거에요 이 말씀은. 신명기에 과부와 고아를 위해서 신원하라 그래요, 예수님도 구하는 자에 주며, 내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고 그랬고, 주라 그리하면은 너에게 줄 것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그랬습니다. 이게 신앙인의 삶이에요.

 

지금 이건 옛날 그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말입니다. 바로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예레미야가 과거의 아합시대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깨우치려고 한 거에요.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이것도 아셔야 되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은요 타인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지 안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투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라요. 저는 그것 때문에 목사가 되었고, 그것 때문에 예수를 믿었고,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는요 저는 한번도 외면한 적 없습니다. 어떻게 했는가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만 해 줘요.

 

우리 교회가 해줄 수 있는 만큼만 해 줘요. 그 이상 하는 것은 내가 메시야 되려고 하는 거에요. 나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거에요. 여러분의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녀에게 자기가 하나님 되려고 해요 기독교인들은, 저도 서른 여섯 살 먹은 아직 시집 안 갔는데 걱정 안 해요, 공부 시켜 주었으면 됐지 나머지는 지가 알아서 하는 거지요. 철들었는데 부모가 그것까지 책임질 것 뭐 있겠어요. 시집을 보내서 애를 낳아도 AS 하는 부모들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자기도 누리지 못하고, 애도 엉망진창 되고, 만나를 하루 분의 양식을 더 가지고 있을 때 그 만나는 벌레가 나고 썩는 거에요.

 

8. 공중에 나는 새를 하나님 천부께서 기르시고, 들에 핀 백합화를 길쌈 하지 안 했지만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만 못하다. 저 공중의 새들보다 나의 형상대로 지은 너희를 내가 더 사랑하는데 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살아? 예수님이 하신 말씀.

 

제 젊은 날 친구들은 준 재벌 아이들이 많았어요, 버스회사, 택시 회사, 학교 재단, 아버지에게 다 받아서 노동 한번 안 해도 먹고 살라고 하니까 그 돈이 다 썪더구만 정신이. 여러분들의 자녀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이 하나님 노릇 하려 하지 마세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면 되요,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라고요. 왜 동백 살면서 강남 사는 엄마와 같이 자식 하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자기 인생 망치지, 아이 인생 망치지,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요, 그릿 시냇가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져다 주는 까마귀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르밧 과부에게 그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신 그 하나님.

 

이스라엘의 40년의 광야 속에 한 톨의 양식을 심은 적이 없지만 그들의 배를 주리지 안 했고, 길쌈을 안 했지만 그들이 옷이 헤어지지 안 했고, 40년의 길을 걸어갔지만 발이 부르트지 아니한 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가 만든 신을 하나님인 줄 알고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더 많은 돈을 가져서 남들보다 더 많은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인생 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런 말씀하신 거에요. 공중에 나는 새를 봐라 창고에 모아 드리지도 안 했지만 하나님 천부께서 그들을 기르시고, 들에 핀 백합화를 봐라 길쌈 하지 안 했지만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못하였느니라.

 

오늘 피었다 지는 들꽃과 있다 없어지는 저 공중의 새들보다 나의 형상대로 지은 너희를 내가 더 사랑하는데 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살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 믿으세요? 목사님을 잘 섬기면 복주는 하나님 믿으세요? 이제까지 살게 하신 하나님에게 내일도 잘 살게 하려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알짱거리는 삶을 사는 신앙 생활 하시려 해요. 평생 벌어서 써 보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닥치지도 않은 내일 때문에 만날 걱정하며 살다가 인생 Period 찍을래요? 우리 교회 다니면서 성경 말씀 제대로 알고, 성경에 계시된 그 하나님을 제대로 믿어서 속는 셈 치고 내 말대로 한번 살아 봐요. 내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모세 오경의 말씀이에요.

 

자신의 능력껏 능력의 범위 안에서 누리세요. 내 능력에 지나치게 자식이나 남에게 하려고도 하지 마세요,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맡겨서 참 그 하나님 믿어서 여러분들이 일생을 다 지나고 난 뒤에 내가 참 멋있게 살았노라. 그리고 주님 앞에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야 되지 않겠어요. 저는 예수님을 통해서 만난 이 하나님이 좋은 이유는 정말 그 이후에는 저는요 내일 일을 하나님께 맡겨요. 나도 걱정이 안 되겠어요? 누가 그러데 내가 이 설교 하니까 아 자기가 걱정이라고 하든데, 나도 걱정이 되기는 되는데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없으면 죽지 뭐, 더 좋은 천국이 있는데, 진짜에요.

 

여러분들의 걱정대로 절대로 여러분들의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주권자 이시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기적과 표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위해서 자기의 종교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서 말에 넘어 가시지 말고요,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이세요, 그분이 하신 말씀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믿어서 오늘에 쓸 돈은 오늘 쓰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서 그래 살아가서 내일 걱정 내일 하면 평생 걱정 없는 삶 살아요. 예수님 때문에 또 목사님이 성경 해석 바로 해주고 바르게 가르쳐 주어서 내 인생 참 행복하게 살았노라 말씀이 없었으면 평생 걱정하고 살 건데 참 행복했노라, 이런 신앙의 간증이 여러분들의 인생의 역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하나님께서 재물 얻는 능력을 주어서 남들보다 조금 더 가지게 되면은 능력이 부족해서 살기가 좀 힘든 사람을 배려하도록 내 소득의 10분의 1을 구분해서 하나님 것 되게 하신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서 10 1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종교적인 목적과 종교적인 과업을 달성하는 대에 이 예물이 사용되기보다는 우리 안에 좀 능력이 부족해서 노력을 해도 살기가 힘든 사람 예기치 않은 환란 속에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한 가족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되게 하시고, 내가 집에서나 사회에서는 없어서 외식 한번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지고 있는 자들의 좋은 문화를 경험하는 그런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되도록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날마다 염려하게 하는 사탄을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의 가람이 없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해서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며 살고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주신 믿음의 불량을 따라서 감사하며 살며,

 

수고의 분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쌓다가 죽는 누가복음의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나도 누릴 줄도 알고 내 가족들도 누릴 줄도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 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누림으로 나의 소유가 더욱 나를 행복한 생애로 이끄는 귀한 수단이 되는 그런 신앙의 고백이 되도록 오늘도 이 예물의 이 신앙의 고백을 담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는 강현이와 입원 중에 있는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 능력으로 강건케 해 주시고 없어서 죽는 게 아니라, 병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 있는 오늘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에게 병환 가운데 있는 자에게 이러한 믿음의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소유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평생 쌓다가 만 살다가 수고의 분복을 누려 보지도 못하고 평생 내일의 염려 때문에 오늘 행복하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할 인생들을 긍휼히 여겨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십자가에서 친히 언약의 제사로 계시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살도록 그 중한 고난을 겪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생존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인 가족임을 알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도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나의 탐욕과 야망을 채워 주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오 나의 일생 동안 사르밧 과부의 쌀독의 쌀이 끊어지지 않게 하신 그 하나님, 나의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수고의 분복을 누리며 그 분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사는 천국의 삶을 살다가 재림의 날 그 천국에 입성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을 닮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