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
열왕기상 22: 51 - 열왕기하 1:4
2017년 9월 3일 주일 낮 예배
No. 330
51유다 왕 여호사밧 제 십 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아비의 길과 그 어미의 길과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바알을 섬겨 숭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기를 그 아비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열왕기하 1: 4
1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찌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아멘
●아하시야 시대 / 아합의 아들로서 아버지 밑에서 섭정왕으로 2년 통치. 선지자의 역할이 무엇이냐? 여로보암과 아합과 이세벨의 길을 지적하는 것이다. 불은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표현이다. 엘리야가 자신을 잡으러 온 50부장과 50인의 군사를 하나님께서 불로 죽임.
우리 열왕기 상하 또 장절의 구분은 원문에는 없는 겁니다. 쭉 한 권의 책이었는데 후대에 우리가 편리를 위해서 이렇게 만든 겁니다. 오늘 본문은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관한 행적들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비 아합의 길을 따랐고, 또 이스라엘을 범죄 하게한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 라고 말을 하면서 그에 있었든 몇 가지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이 죽자 에돔이 배반한 것과 그리고 이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떠러져서 병이 들었을 때 이 아하시야는 하나님에게 묻지 아니하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었더라. 에그론은 블레셋 지방에 있는 다섯 도시 가운데 북쪽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이 있는 도시입니다.
1. 엘리야가 아하시야에게 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묻느냐, 당신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라고 말을 한다. 엘리야의 말대로 아하시야는 살아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들이다.
그 도시에서 섬기는 신이 바알세붑 신인데 바알은 주라는 말이고, 세붑 이라는 말은 파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파리를 주로 섬기는 그런 신에게 물었다 이런 말입니다. 이 말이 엘리야에게 들린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 아합의 사자들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는 그 사자들을 불러서 책망을 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이방 신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 이야기를 들은 사신들이 돌아가서 아하시야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가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이방 신에게 물으러 가느냐 책망하더라, 그러니까 아하시야가 물어 봅니다. 어떻게 생겼더냐 이러니까 우리 성경에는 몸에 털이 많다고 했는데 그런 말이 아니고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었다 이러니까 아하시야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엘리야 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잡으러 오십부장에게 5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잡아 오라 라고 말을 했어요. 그래서 그 오십부장이 엘리야에게 가서 내려오라 왕에게 가자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이 엘리야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저들을 사르라고 하니까 즉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 50명이 다 태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아하시야가 다시 오십부장과 50명의 군사를 보내었는데 역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저들을 사르라고 하는 순간 그들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다 살라 졌습니다. 세 번째 보냈는데 세 번째 오십부장은 이 엘리야에게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귀히 여기소서, 왜 우리를 죽이는가, 무릎을 꿇고 간청을 하니까 엘리야가 내려가서 아합에게 같이 갑니다. 가서 이 아하시야에게 엘리야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묻느냐, 당신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라고 말을 해요. 엘리야의 말대로 아하시야는 살아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 뭐 신화와 같은 그런 이야기도 아니고 분명이 역사에 일어났든 사실들입니다. 북쪽이스라엘 오므리왕조 시대에 일어났든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 사실들을 보면서 해석이 각각 다 달라요.
2. 올바른 해석을 해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얻는다. 북쪽이스라엘의 오므리왕조의 역사는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가 반역을 일으켜서 세운 역성혁명을 일으켜 세운 왕조가 오므리왕조 45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는데 성경의 분량은 3분의 1 이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정말 제대로 된 해석을 해야만이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여러분들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 해져서 우리를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얻어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또 우리 속에 많은 자유 함을 얻으면서 우리를 반대하는 원수조차도 사랑하므로 주변의 모든 사람과 평화가 일어납니다. 이게 신앙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은 더 욕심이 많고 누리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더 논쟁적이고 더 많은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대표적이고 드러난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분리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강한 자기의 생각들로 뭉쳐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분쟁을 일으킵니다. 자신의 믿는 바가 그대로 자신을 얽어 매어서 자신 속에 자유가 없습니다. 요즘도 제가 들은 이야기로는 어떤 인근의 교회는 주일날 여행을 갈 때에는 구역장 에게 허락을 받아야 된데요. 그런 매임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 모든 것은 성경의 해석이 잘못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단들도 성경을 해석을 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 해석의 기준이 잘못된 겁니다. 교주의 주관적 해석입니다. 이단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통 교회에서도 이 성경이 목사님이 주관적 해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이 말씀을 보면서 한가지 알아야 되는 것이 이 열왕기를 쭉 읽어 나갈 때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사울에서 부터 시드기야에게 이르는 분열왕국에 이르는 한 400 년 정도의 왕조의 역사입니다. 이 왕조의 역사를 기록을 하면서 분량이 제일 많은 분량이 무엇을 차지하는가 하면은 북쪽이스라엘의 오므리왕조의 역사는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가 반역을 일으켜서 세운 역성혁명을 일으켜 세운 왕조가 오므리왕조 입니다. 45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는데 성경의 분량은 3분의 1입니다. 이 시대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다. 또 열왕기에는 열두 명의 선지자들의 이름이 나오고 수많은 이름없는 선지자들이 나오는데, 그 선지자들의 사역 가운데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이런 부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로 이루어지려면은 선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왕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에 100% 순종해서 하나님만을 섬길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이 선지자를 목사님이라고 생각하거나, 이단에서 설교하는 설교자가 선지자라고 생각을 한다면은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또 다른 종교가 되는 겁니다. 제가 선지가 아닙니다 여러분. 선지자의 하는 모든 사역과 말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이 되는 겁니다.
3.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도 구약의 이 사건이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언약의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사역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 보면은 이단들은 교주가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그 교주가 선지자요 그리스도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교주교가 되는 겁니다. 정통의 교회도 여러분들이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돼, 목사님이 주일날 여행을 갈 때에는 구역 장에게 허가가 나야 가야 돼, 이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는 것은 그 목사가 교주가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은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나 그리스도는 누구냐,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구약에 있는 이 사건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사역의 비추어서 해석 되어져야 됩니다. 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도 구약의 이 사건이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불 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구약 예전에 했든 그 약속이 예수 안에서 새로운 언약으로 변모되는 그런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여기에 있는 진짜 엘리야나 많은 선지자들 성경에 기록된 이들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한 모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 선지자들의 말이 어떻게 역사에 실현 되어졌는가 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은 목사님의 설교는 뭐냐, 자 요 부분은 잘 들으세요, 목사님의 설교는 여러분들에게 주일 성수 하세요, 십일조 하세요, 그러면 복 받습니다 이건 목사님의 주관적인 주장입니다.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한, 그 속에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성경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해야 됩니다.
구약에 이런 이런 사건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 중에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증거 해주신 참된 선지자임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이어야 되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서 어느 목사님이 하시는 말, 그 말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목사님이 구약의 어느 성경을 보든지, 신약의 어느 성경을 보든지, 예수님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이시다 하는 것을 선포하는 말을 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이 뭐냐,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말에는 100% 순종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성경에 모든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받아 드려야 되요.
누가 뭐해서 복 받았다, 누가 뭐해서 벌 받았다 이런 말 믿지 마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여러분들이 받아 드린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사역을 제가 받아 드린다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사역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언약의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사역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받아 드리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사님의 설교가 어찌해야 되는가 하면은 이제는 네가 원하는 것을 네 힘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 이게 설교 전체여야 됩니다.
4. 사두개파와 바리세파와 모든 파벌들이 서로 대립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구약 성경이 예수님의 관한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완성하였든 그 사건을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사건을 통해서 봐야 된다.
매일 와서 들어야 할 것이 여러분들 그 말입니다. 우리는 한 주간 살다 보면은 세상에서 먹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먹어야 살기 때문에 돈이 내 생명을 유지해 준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한 주간 살면서 내 이웃은 나와 생존의 경쟁의 대상이고, 이 사람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그런 죄악 된 세상의 틀 속에 사는데, 주일날 와서 목사님 설교를 들으니까 그것이 아니구나, 내가 한 주간 살아온 것이 하나님이 내 삶을 붙들어 주셨구나, 아버지 노릇 해 주셨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므로 말미암아 주중에 경쟁의 대상으로 상처 난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구원을 경험하며 사는 신앙 생활입니다.
한 주간에는 돈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고, 이래 살다가 주일날 와서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 되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염려가 부질없는 염려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평안으로 들어가는 이런 구원을 누리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려면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 자가 아닙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여러분들에게 증거 해주는 자입니다. 성경의 모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받아 드리도록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겁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나에게 관한 말씀인 줄 모르는구나.
유대교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유대교가 이방인들과 배타적인 관계를 가지고 유대교 안에 세리들이나 많은 죄인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배타적이 되어져서 서로가 사두개파와 바리세파와 모든 파벌들이 서로 대립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구약 성경이 예수님의 관한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서로 교파끼리 싸우고 다른 종교하고 싸우고 교회 안에서 나하고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싸우고 교회와 교회들이 대립 이 모든 것들은 성경 이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기 위한 말씀인 줄 모르고 자기가 믿는 바를 통한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하려고 하는 데에서 나온 잘못된 것들 입니다.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아하시야가 군대를 보내어서 엘리야를 잡으려고 할 때에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 군대를 불 사른 것을 가지고 목사님에게 대적을 하면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저주를 받아 망해 주관적인 이야기 입니다. 교주가 하는 종교적인 규범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진노를 해서 망해, 교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50명의 군대를 불사른 것을 무엇으로 봐야 되는가 하면은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사건을 통해서 그 사건을 바라 봐야 됩니다 구약의 이 성경을 기록한 이자는 그 사건을 모르고 기록을 해 놓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완성하였든 그 그리스도적 사건을 아는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사건을 통해서 이 사건도 봐야 됩니다.
5. 구약의 모든 성경에 불은 하나님이 이 땅에 현현하신 것에 대한 표현이다. 아하시야가 지금 병에 들어서 바알세붑에게 묻는 것은 왕으로서 어떻게 하면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할까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만이 아하시야의 문제였다.
그러면은 목사님에게 대적을 하면은 하나님께서 불이 내려와서 망하게 한다고 해서 겁을 주어서 종교 생활 잘하게 만드는 그래서 그 교회는 종교적인 과업을 어떤 교회보다도 잘 성취해 나가는 그런 신앙 생활 안 합니다. 이 사건을 여러분들이 아시려면은 오순절의 사건을 아셔야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이 우리 아바아버지가 되게 하셨고, 그것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는 사실이라고요. 그 사실을 받아 드리게 하신 것이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입니다. 그 사건을 오순절에 불이 혀가 갈라짐과 같이 바람의 소리와 함께 성령님이 오순절에 임하셨잖아요 그럴 때에 그 항상 구약의 모든 성경에 불은 하나님이 이 땅에 현현하신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가시나무 떨기에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살랐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강림하셔서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신 것을 스스로 들어낸 사건이란 말입니다, 오순절에 불로서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면은 불이 내려와서 군대를 살랐다는 말은 우리의 적군을 불사르고 우리를 대적 자로 불살랐다는 말이 아니고, 아하시야의 군대는 권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아하시야가 지금 병에 들어서 바알세붑에게 묻는 것은 왕으로서 어떻게 하면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할까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내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만이 아하시야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에게 물으려면은 무엇을 물어야 되는가 하면은 어떻게 하면 내가 왕으로서 이 백성들이 행복하게 되겠습니까 내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이런 질문이 이런 기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인데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네 병이 낫느냐 안 낫느냐 이것을 가르쳐 주고 이병을 낫게 하거나 잘 보이는 자에게 낫고, 못 보이는 자에게 죽이는 그런 하나님은 아무리 하나님이라 해도 바알세붑 입니다. 바로 오늘날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여러분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천 번 부르고, 하나님을 천 번 부른다 해도 바알세붑에게 기도하는 겁니다. 아히시야와 같이. 그런 우리들에게 왜 하나님께 물어 보지 않고, 바알세붑에게 묻느냐, 한국 교회에 하는 말씀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서 여러분 행한 것이 뭐냐, 그래서 제가 사도행전 1장 8절을 여러분에게 여러분 해석을 이렇게 해야 된다 했기 때문에 생약 합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이 임하시면은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돈과 권력을 사랑하였든 그 내 자신이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제는 눈에 보이기를 시작합니다. 돈과 권력을 바라는 사람 속에 다른 사람의 안위가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성령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가, 돈과 권력을 보면서 자신의 삶에 안위와 자신의 풍요만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그것 불살라 버려 가지고 내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생기면서 사람이 보이게 되는 겁니다.
6.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모두를 창조하셨다.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기가 죽더라도 우리 생명을 살리는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든 그들은 조롱과 채찍과 궁핍과 환란을 받았으나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일컬어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다.
여러분 여기에 아하시야의 군대를 무너뜨렸다는 것은, 불살랐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성령 받으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게 하신 그 사실이 믿어 지고 받아 드려져서 그때부터는 돈과 권력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에 주인되심, 오늘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이시고, 나의 머리털까지 세심 바 되고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짐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지 않는 그것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이구나, 과거에 내가 바알세붑을 섬길 때에는 내가 예전에 왜 그랬던가? 내가 그러지 안 했으면 오늘 이런 고통이 없을 것인데 이래 생각했는데 성령이 임하신 그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이 나의 모든 육신의 자아를 무너뜨리고 나니까 그때 그 사건 때문에 내가 오늘 이렇게 인간이 되었구나, 후회하든 과거가 감사로 변화되는 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적 사건을 받아 드리는 겁니다.
이것이 목사가 여러분들에게 구약의 모든 성경이든지 이 모든 것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세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은 그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창조하신 겁니다. 그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기가 죽더라도 여러분들의 생명을 살리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력을 다 소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게 설교입니다. 이것을 받아 드렸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히브리서 11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 세력, 칼과 창의 세력 앞에서도 굴하지 안 했습니다. 권력에 의해서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포기하면은 네 생명을 살려 준다고 해도 구차히 풀려 나기를 원하지 안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이 사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게 하셨고, 그 하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든 그들은 조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실현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나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안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심과 하나님이 나에게 아버지노릇 해 주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그렇게 후회스럽든 일들도 감사가 되어지고, 닥치지 않는 미래의 염려 때문에 언제나 오늘을 희생하며 닥치지 않는 미래 때문에 부부지간에 싸우고 갈등하든 사람이 그 미래를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기대로 바라보는 그 삶을 살아가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포기하지 않는 이 신앙 그 무엇이든지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설교를 들어야 됩니다.
신앙의 연조가 더해 갈수록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이 점점 적어져야 됩니다. 교회의 연조가 더해갈 수록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졌다 해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점점 커지니까 교회가 손익 분기점이 넘어도 아직 나는 배가 고파. 다른 교인은 쓰러지든 말든 교인들 끌어 모으는 것 그리스도 믿는 신앙 아닙니다.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며 끌어 모으는 그 삶, 이런 모습이 오늘 교인들의 모습 속에 참 많이 있잖아요. 왜 바알세붑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목사님의 설교가 종교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설교만 있는 것이지, 교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설교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7.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아버지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 크신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지배하는 삶.
목사님 스스로가 자기가 선지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선지자 아닙니다. 내가 선지자이면 내가 하는 설교는 계속 성경에 기록이 되어져야 됩니다. 저는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을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믿게 하는 자입니다. 점점 내가 원하는 것이 적어져서 예전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누림이 많은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어 가는 그런 것이 커져가야 됩니다. 이 성화가 왜 안 일어나는가, 성경을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시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은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성경을 읽으나 이 성경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인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참 우리 교회 신앙의 연조가 더해 갈수록 옛날에 그렇게 좋았든 것들이 별로 의미가 없어져 가야 됩니다. 내 것을 이루기 위해서 남은 죽든 말든 생각했든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형편을 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세워 져 가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되야 됩니다. 저도 그런 성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겁니다 내 속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것이 내가 십자가에 예수님과 같이 못박히는 것을 재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게 한 그 사실이 이제 내가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였든 그 내 자아가 그 사실에 지배를 받아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신 것과 주실 것을 믿으며 사는 그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삶, 나의 생각 가치판단, 윤리의 모든 선택에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권력과 돈을 의자하며 살았든 나에게 자아가 소멸된 그 그리스도적 사건이 나를 지배하는 삶,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내가 생물학적으로 내 생명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것도 나를 사랑하사 자기의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나를 아버지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 크신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이 나를 지배하는 삶, 살아 있는 동안에 그래 살아 라는 말입니다.
1) 목사님이 바라보는 어느 교인의 병을 고치려는 방법이 결코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여러 곳을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믿는 하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 부활의 영광을 주시는 그 하나님.
성경의 모든 것들은 목사님들이 주관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목사님 대적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살라 버린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해 가는데 여러분들이 희생당해서는 안 되요. 교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든 성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그 사건으로 해석 해봐야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목회하면서도 언제나 내 마음 속에 한 켠에 남아 있는 사건들이 왜 없겠어요. 서울에서 따라와서 창신동 저 오금동 윤항기목사 하고 목회하는 데에서 그 다음에 여기 와서 참 함께 신앙 생활하였든 그 정의성 집사님이 폐암에 걸렸다고요, 제가 이런 설교 안 한 것 아니에요.
그 폐암에 걸렸을 때에 조영애 권사님이 남편 살리려고 어디에 가면은 병 낫는 은사 있다면 그 아픈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 곳에 가서 헌금하고 이틀이든 삼일 이든 방바닥에 재우면서 안수기도 받고, 또 여기 있다면 또 저기 가고, 영아 부실에 있는 오렌지색 소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집사님이에요, 조영애 권사가 여기에서 새 신자 실에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실 것 같다면서 헌물 한 겁니다.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다닌 겁니다. 제가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에 찬물 끼얹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책들을 주었다고요, 그 책들을 읽어 보라고 한 책이 뭐냐 하면 그런 책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 CEO 53세 되었어요 암에 걸렸어요, 의사에게 갔더니만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한다 해서 낫는 확률이 좀 낮았어요.
이 사람이 결정을 합니다, 내가 항암 치료받고 이렇게 하면서 내 생명을 좀더 연장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은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이제는 길이로 살지 아니하고, 질로서 살 것인가, 그 사람은 후자를 선택해요. 53세에 세계적인 기업의 CEO 라니까 자기 인생을 돌아보니까 한평생 비행기 탄 것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60세에 은퇴해서 80세까지 살면은 20년 동안 아내와 하고 싶은 일들을 주어진 시간 안에 다 해보자, 20년 동안 가족과 해야 할 일들을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속에 다 해보자. 친구와 친지들과 해야 할 20년 동안 길게 해야 할 일들을 짧은 시간에 해보자, 그는 아내와 하고 싶은 것, 가족과 하고 싶은 것,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것,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싶은 것, 자기에게 주어진 몇 년의 시간 속에 해 나갈 때, 몸은 점점 쇠약해 지고 마지막에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축하 속에 생애를 마감하는 이야기였어요.
그 책이 전혀 영향을 못비치고 돌아가실 때까지 은사 찾아 다녔어요. 여러분 어떤 하나님 믿으세요? 제가 믿는 하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하나님을 믿어요. 내가 죽더라도 다시 부활의 영광을 주시는 그 하나님, 조영애 권사님이 그 은사를 받으면서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였는가, 저에게 매달렸다면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다, 그 하나님이 정의성 집사님에게 병이 들었을지라도, 낫게 해 주시더라도, 멋있는 생애를 사시다가 돌아가시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생애를 이제는 길이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압축해서 멋있게 살다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아 땅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 이런 삶이었구나, 돈보다 사람이 귀한 것을 알았구나.
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어떤 순간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에 자유케 되어지고, 성공과 실패에서 자유 함을 얻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성령 받고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보는 순간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
그곳에 가면은 돈 때문에 싸울 것이 없는 천국입니다. 권력에 짓눌림 받지 않는 곳이 천국입니다. 정집사님이 어쩌면 지금쯤 우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를 통해서. 오늘도 우리 양권사님 남편이 전립선암에 걸려서 퇴직 이제 12월이면 하는데, 기도 받을 때 제가 했습니다, 평생 일만하다 살아왔는데 이 기회에 일보다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경험하게 하는 거라고, 이 사건 없었으면은 정년퇴직 이후에 닥치는 그 허무감을 극복하지 못할 터인데, 내가 코로 호흡하는 이 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호흡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래 되면은 암이 낫는 것이나, 암에서 하나님 부름을 받아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나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어떤 순간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에 자유케 되어져요. 이것을 종교적인 과업의 성취를 위해서 진영논리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 유대교이고, 오늘날 우리 속에 얼마나 만연해 있느냐 말입니다. 저도 끊임없이 성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 우리 교회를 개척했을 때에는 하나님 진짜로 내가 이 복음 때문에 사로잡혀 있고, 복음적인 교회를 해야 되는데, 우리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하나님이 무너지는 겁니다. 살려 달라고 일년에 열 번씩 금식 기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그래 안 해요. 우리 교회 없어지는 것이 왜 하나님의 실패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실패지, 성공과 실패에서 자유 함을 얻었어요.
여러분들이 암에 지고 사업의 실패가 여러분들의 실패입니까, 하나님의 실패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세요. 자기 교회만 보이고 다른 교회는 죽든 말든 사라지든 말든, 이기적인 그 마음을 하나님은 내려놓게 하더라고, 성령의 역사하심은 그런 거에요. 불로서 소멸이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는 것이 그런 겁니다. 혈연적 관계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것은 이단들입니다. 성령 받고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보는 순간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집니다. 저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력 없는 사모와 세 명의 자녀 때문에 어깨의 짐이 무거워요.
큰아이가 취직 했다는 소리가 그렇게 기쁘더라고요, 이제 내 없어도 저희들끼리 먹고 살겠구나 ㅎ ㅎ 둘째가 취직이 된 때는 기쁨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참 좋더라고, 아들이 취직이 되니까 참 좋아요, 거기까지만 있으면 목사 아닙니다. 지난 주일 홍미애 사모님이 목사님 감사해요, 우리 요한이 최종 공무원 합격했어요, 문자를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영실이 취직할 때에 그 기쁨이 내 속에 있더라고, 그게 측은지심이 그 마음을 만들어 낼까요, 아니에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 드려서 그 사실이 나를 자꾸 지배해 나가게 할 때, 효영이가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는데 너무 좋더라고, 저는 국가 유공자라서 얘들 대학 등록금 만원만 냈거든요. 안 그래도 대학교 되었으면 다 주었겠지요.
그래서 장학금 받는 기쁨은 잘 몰라요 애들이, 나는 애들 다 만원만 내고 대학 다니는 줄 알았어요 학생 회비만. 그런데 요즘 제가 이래 보는 것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올 때에 등록금 전부 빚이 되어서 몇 천 만원 빚지고 나온다는 거에요. 저도 대학에서 교수 봉급 받으면 가장 많은 것을 했는데, 혜택은 많이 받았지만 대학의 설립자가 재단이 그 빚 내 가지고 장학금 내는 아이들이 내 배 아파서 난 자식으로 보여 지는 순간 저는 그래 안 한다고 봐요. 왜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대학이 등록금 많이 안 올렸다고 총장을 자르는가,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종교적인 과업만 있는 겁니다.
9. 하나님의 의로운 손으로 내 것이 붙들렸다는 것을 믿어서 심지어는 그 어떤 인간도 해결하지 못했든 죽음에서까지 자유 하게 되어졌든 그 복음의 능력! 성경의 모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도록 하신 내용들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요. 엘리야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여서 50명의 군사를 태운 것이 나의 대적 자를 태운 것이 아니에요. 돈과 권력을 의지하는 내 육신적 자아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게 한 그 사실이 그 육신적 자아를 불태워 버리고, 모든 사람을 내 가족으로 보고 돈과 권력이 내 생명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손으로 내 것이 붙들렸다는 것을 믿어서 심지어는 그 어떤 인간도 해결하지 못했든 죽음에서까지 자유 하게 되어졌든 그 복음의 능력! 설교는 예수 잘 믿어라, 주일 성수 잘해라, 11조 해야 복 받는다, 목사님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 대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도록 하신 내용들이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다, 세례요한이 그러지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나를 믿지 마시고 내가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해석해 줄 때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말했듯, 주일마다 듣는 그 말씀이 여러분들 속에 받아 들여져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이 점점 적어지고, 내가 원하는 것 때문에 내가 억압되고 속박된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누려서, 여러분들의 주어진 그 시간이 예수님 때문에 가장 주어진 삶에서 누리다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 누림이 정말 행복이 되는 삶을 사시다가 돈 때문에 싸울 곳이 없는 그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영원토록 누리는 복된 성도들의 생애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봉헌 기도◈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돈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그 돈을 주시는 이가 아버지 하나님임을 우리는 알아서 돈에 매여 사는 삶이 아니라, 돈을 지배하며 사는 성령의 불로서 내 자신을 소멸하신 오순절의 사건을 받아 드려서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 노릇 하는 그 믿음이 더 커져 가서 나를 사로잡아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혈연적 요소, 권력적 요소, 물질적 요소에서 자유케 하시고, 내 자신의 누림이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더불어 누림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가 이 예물을 통하여 우리 안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힘든 자의 아픔이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에게 느끼는 감정이 되도록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게 하시고, 우리와 함께 신앙 생활하는 자의 영광이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의 즐거움이 되는 그런 복된 교회가 되도록 오늘도 목사님의 일반적 계시에 환호하지 않고,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을 믿도록 하는 말씀에 100% 아멘 하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자신을 억압하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얻고, 그 억압하는 것이 자신의 누림이 되지 못하게 하는 삶 속에 여호와로 인하여 누림과 나눔이 되는 아름다운 생애를 살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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