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열왕기상 22장 24-28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7. 9. 2. 13:23

 

 

담임목사 김종웅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

열왕기상 22 24-28

2017 8 27일 주일 낮 예배

                                                                                                                                                        No. 329

24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25미가야가 가로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26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7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28미가야가 가로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찐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가로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찌어다 하니라. 아멘

 

◈기도◈

 

알파와 오메가 되셔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말씀을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통념을 판단하므로 하나님의 진리 안에 거하는 복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져서 우리의 삶의 모습에 우리의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므로 소망 없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소망을 얻는 복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오늘도 겸손한 마음 종의 마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시종을 주님 앞에 의탁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아합과 여호사밧의 연합군과 아람과의 전쟁. 창조와 구원과 계시의 수단인 말씀은 정글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합의 패배와 죽음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미가야는 아합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이 일어난다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북쪽에 있는 아람 벤하닷과 북쪽 이스라엘 아합과 과거에 두 차례의 큰 전쟁이 있었지요, 그 전쟁에서 하나님이 아합과 함께 하시므로 승리했습니다. 벤하닷이 구걸을 하면서 자기의 목숨을 구걸하면서 그랬습니다. 다메섹 도성에 아합의 거리를 만들겠다. 그리고 과거의 우리가 점령했든 이스라엘의 땅을 돌려주겠다. 라고 약속을 했는데 살아서 돌아간 벤하닷이 그 모든 것을 실현하지 안 했어요.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3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아합이 그 벤하닷의 빼앗겼든 그 땅을 돌려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남쪽유다 여호사밧, 그는 아합과 사돈 지간이었는데 그 왕이 왔을 때에 함께 아람의 땅을 잃어 버린 실지를 회복하는 전쟁에 동참해 달라. 요청을 합니다.

 

1. 아합이 북쪽이스라엘 선지자 400명과 시드기야가 아합의 승리의 예언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가 없는 양을 하나님께서 주인이 없어서 각기 비로서 양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거다. 아합이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어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시게 하였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이 하나님에게 좀 물어 보고 우리가 이 일을 하자 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합이 북쪽이스라엘 선지자 400명을 모아서 물어 보니까, 왕이여 하나님이 이 전쟁에 함께 해서 반듯이 승리할 겁니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이 사람들 말고 다른 선지자는 없냐 하니까, 아합이 그런말을 합니다. 미가야라고하는 선지자가 하나 있기는 있는데 나에게 길한 이야기는 한번도 한적이 없다. 그래서 흉한 이야기만 한다. 그의 말은 들어 보나마나다, 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여호사밧이 그래도 좀 들어 보자 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합의 시종이 미가야를 부르러 갔습니다. 가서 그런 이야기합니다.

 

다른 선지자 모두가 승리한다고 좋은 이야기하는데 왜 당신만 나쁜 이야기할 이유가 어디 있나, 당신도 그들과 같이 말하소서 하니까 미가야가 가서 똑 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아합이 평소와 다르거든요,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해봐라 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이 미가야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가 없는 양같이 흩어졌는데 하나님께서 주인이 없어서 각기 비로서 양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거다, 다른 말로 한다면은 그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 때문에 수많은 억압과 학대를 받았는데 왕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편안하게 될 거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럽니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천상의 하나님의 어전에서 회의가 벌어졌는데 하나님께서 저 아합을 어떻게 죽일꼬 하니까 각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한 영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선지자들에게 거짓의 영을 불어넣어서 아합을 죽게하자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400명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선지자였든 시드기야가 야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언제 나를 떠나서 너희에게 갔느냐,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 아합이 이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어라, 그리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게 하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출전을 합니다.

 

2. 아람군대의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이 갑옷 솔기에 맞아서 아합이 죽임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미가야는 아합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이 일어나는 말씀이다. 예수님도 그런 말씀 하셨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출전을 해서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 지는가 하면은 아람군대의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이 갑옷 솔기에 맞아서 아합이 죽임을 당하였다. 하는 것이 오늘 40절까지 있었든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진짜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 선지자의 말씀의 차이는 뭔가 라고 이야기를 할 때에 하는 말들의 예언이 맞으면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맞지 아니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뭐 이렇게 구분 하려고 이 말씀을 준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 또 하나님의 말씀 많은 말씀들이 존재하지요, 그런데 그럴 때에 인간이 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가 되어야지 인간의 말을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설교만이 아니고, 우리 모든 언어 속에서 인간의 말은 뭔가? 인간의 말은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전쟁과 같은 그런 정글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은 서로 경쟁이 있고, 교회끼리도 경쟁을 하고, 나라와 나라가 경쟁을 하고, 여러분들의 직장이나 어디에서나 사업을 하는 곳에나 항상 경쟁이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 인간의 말은 뭐냐 하면은 이 400명의 선지자와 같이 너 죽으면 뭐해, 너 살아야 돼, 너 죽고 나라 살면 뭐해, 너 죽고 교회 있으면 뭐해, 항상 자신의 안위와 생존만을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부추기는 말은 인간의 말입니다. 그것은 육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미가야는 아합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이 일어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말씀 하셨어요. 예수님 한 사람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살아난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우리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은 뭐냐 하면은 내가 죽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도 그렇게 말씀 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 살리는 것이 영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영은 하나님 아닙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말씀들은 살리는 거에요. 육은 뭔가, 내 살려고 남 죽이는 겁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한번 돌아봐야 됩니다.

 

나의 모든 말은 내 살기 위해서 모든 사람 죽이는 말인가, 내가 하는 행동은 내 살려고 다른 사람 죽이는 것인가, 내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가?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서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합이 죽었다, 우상 숭배했다, 사회적인 통념으로 성경을 왜곡한 겁니다. 미가야의 말은 아합이 죽음으로 모든 백성이 살아났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일 때에도 산해드린에서 예수님을 고발하면서 한 말이 그런 말입니다, 이 사람 하나 죽여서 모든 민족이 살자.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살아나는 겁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해야 구원이 일어나는가 자기 살려고 하는 노력 속에 세상이 구원이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죽으려고 하는 속에 세상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말씀 하셨지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러분 오늘도 우리 기독교가 번창하고 우리 교회가 성장하고 이런 많은 열매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속에 점점 더 확대 되려면은 우리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자기가 죽어 지는 말, 죽어 지는 삶이 있어야 됩니다. 왜 세상에 구원이 없는가, 아무도 죽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거짓 영의 역사입니다. 시드기야와 400명 선지자 속에 역사했든 거짓의 영입니다. 디모데후서 4 3절에서 4절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준다.

 

3. 하나님의 말씀은 네가 죽어야 세상이 산다, 너 손해 봐도 세상 살려라, 이게 그리스도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로마의 그 막강한 군대로서 모든 세계를 지배해서 모든 세계에 있는 모든 물자를 로마로 실어 오기 위한 길이다. 그 질서가 나사렛 예수에 의해서 파괴된다.

 

나의 욕심을 채우는 스승을 많이 두기를 원하는 것이 말세에 일어날 일이라고 합니다. 그 길을 진리에서 돌이켜 허탈한 이야기를 따르게 한다.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너 그러면 잘 돼, 이래야 잘 돼, 전부 허탈한 것을 따르게 하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은 네가 죽어야 세상이 살아, 너 손해 봐도 세상 살려, 이게 그리스도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정글의 세상에서 승리하고 정복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닙니다. 그건 제국주의 자들의 삶입니다. 이런 것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어요. 다 성경을 인용하는데 인간이 만든 사회적인 통념으로 성경을 각색해 버립니다.

 

사도행전 1 8절 제가 수십 번도 더 여러분들에게 하는 말씀이지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성령이 임하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아서 어떠한 강한 적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대될 거다. 제국주의적 사관에서 바라본 선교와 잘못된 왜곡된 해석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두나미스 입니다. 다이나마이트 입니다. 다이나마이트는 기존의 질서를 해체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 나가는 겁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면서 로마의 가치관과 질서가 파괴된 그리스도 인들이 만들어 진 겁니다.

 

로마는 온 세상을 힘으로 정복해서 세상의 평화를 추구했든 겁니다. 자기의 힘으로 온 세상을 정복해서 모든 속국에 금은 보화 자원을 로마로 끌어 드려서 로마의 번영을 추구했든 겁니다. 그래서 로마는 힘이 없는 것은 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팍스로마라고 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로마의 그 막강한 군대로서 모든 세계를 지배해서 모든 세계에 있는 모든 물자를 로마로 실어 오기 위한 길입니다. 그 질서가 나사렛 예수에 의해서 파괴된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여서 이루어진 초대 교회에는 자유인과 종의 구분이 없었든 겁니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희한한 이때까지 존재하지 안 했든 영원한 공동체가 하나 만들어 진 겁니다. 그 기존의 질서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온 유대를 파괴하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말투스 순교자가 되라는 겁니다. 순교자는 뭡니까, 세상의 권세에 자기가 죽어 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이 변화가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의 언어에 내 죽고 남 살리려고 하는 언어입니까, 내 살려고 남 죽이는 언어냐 이 말입니다. 내 살려고 남 죽이는 언어는 인간의 말입니다. 정글의 세상에 인간이 살아가려고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죽고 남 살리는 말씀입니다.

 

4.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사역을 받아 드려서 내 속에 그 사역이 지배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거야, 예수를 시인하는 영이다.

 

오늘 여러분 우리 교회에 이 모습이 있어야 됩니다. 새 가족 오늘도 환영회가 있겠지만은 우리 교회 왜 등록하셨습니까, 왜 우리 교회 오셨어요, 나 살려고 남은 죽든 말든 우리 교회 등록하시면 안 됩니다. 내가 죽더라도 남 살리려고 해야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 보세요, 하나님이 함께하면은 당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치게 할 수 있는가, 나의 정당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그래요.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 초대 교회에도 그런 모습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이야기 있지요.

 

평양에 유명한 깡패 김익두 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유명한 부흥사 가 된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 믿고 변했다는 소식이 평양 시내에 자자했습니다. 한 사람이 김익두를 시험하려고 지나가는데 주먹으로 뺨을 쳤습니다, 김익두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가, 정말 죽었는가, 김익두 목사가 뭐라고 그랬어요? 예수는 내가 믿고, 살기는 오늘 네가 살은 줄 알아, 우리 속에 그게 있느냐 말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있었느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편이 되어서 많은 사람을 정복하고 굴복하는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 속에 이런 변화 있어야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지요, 설교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듣는 시간 아닙니다. 들어야 할말을 듣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친구들은 듣고 싶은 말 해 줍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들어야 할말을 해줍니다. 여러분들은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들어야 할 말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요한 1서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니 분별하라,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서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한다. 그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내가 입으로 말하는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사역을 받아 드려서 내 속에 그 사역이 나를 지배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여러분들에게 도깨비 방망이 되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마 고치는 이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예수님의 통치권 영역에 순종함으로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하신 그 사역이 나의 모든 가치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받아서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너 그러면 안 돼 세상, 그래 살아서 너 세상 못살아, 이런 게 아니고요, 너희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거야, 이것이 예수를 시인하는 영입니다.

 

5.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말은, 세상의 정의로운 사람은 자기가 당한 만큼만 상대방에게 주려는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로 하여금 원수를 사랑하도록 재창조를 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네 힘으로 살려고 하지마, 하나님이 너에게 아버지 노릇 해주셔, 그래서 남 죽이고 살려고 하지마,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건데, 성령이 임하여서 우리 모두를 영원한 가족을 만들었는데, 저것 죽이고 내가 살아야지, 그게 세상입니다. 시인하는 영은 뭡니까, 내가 짓밟고 싶고, 죽이고 싶은 그 상대가 내 가족인 것을 인식하는 삶이 예수를 시인하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성경 좀 한 구절 예수님이 하신 산상수훈을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씀인데 마태복음 5장을 한번 펴 보세요, 이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마태복음 5장입니다 38절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저를 보세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세상이 하는 말입니다. 굉장히 악한 말 같지 아닙니다.

 

누가 네 이빨을 하나 부러뜨렸으면 너도 그 사람 이빨 하나 부러뜨려라 이 말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빨 하나 부러뜨리면은 상대방의 이빨 왕창 뽑아야지 마음이 시원하기 때문에 세상의 정의는 이빨 하나 부러뜨렸으면 너도 이빨 하나만 부러뜨려 이런 말입니다. 남이 네 눈 하나 찔렀으면 너도 상대방의 눈 하나만 찔러야지 눈 다 찌르지마 이런 말입니다. 세상의 정의로운 사람은 자기가 당한 만큼만 상대방에게 주려고 하는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보세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 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거나 네 이웃 북한의 동포는 사랑하되 김정은이는 미워하라는 말이 세상의 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까,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는 자입니다.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않는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가 안 이루어지는가 그게 아닙니다. 인간의 말은 정글의 세상 속에 내 살려고 남 죽이는 말입니다. 너 죽으면 뭐해, 너 끝나면 뭐해, 사람 말입니다. 네가 죽어서 많은 사람을 살려, 하나님의 영이 있는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런 삶을 우리는 요한복음 5장에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한 율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원수를 사랑하도록 재창조를 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언젠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했지요, 여러분 이야기했지요. 저는 아버지가 목사 이였지만 교회 안 다니려고 했어요. 장가를 일찍 간 이유도 교회 안 가려고, 왜 부흥 사들이나 목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저 하나님 믿어야 될까 이 생각이 사춘기부터 했어요. 자기 편들고 자기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그 하나님은 나보다 못한 것 같더라고요. 내가 보고 있는 교회는 다녀야 할 이유를 제가 몰랐어요. 전부 자기 살려고 자기 정당성만 주장하더라고요.

 

6. 잘못한 자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 해주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였다. 예수님과 사람들의 차이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민망히 여기는 마음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성령을 주어서 우리에게 그 마음을 가지게 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하고 부흥사가 말하는 하나님은 다른 게 아닐까? 내가 보고 있는 교회와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교회의 모습은 다른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신학교 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부흥사가 말하는 하나님은 아니더라고요. 젖 먹는 아이를 둔 어미는 아이를 잊어도 우리를 잊지 아니한 하나님이더라고요. 잘못한 자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 해주는 하나님이더라고요. 그 영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 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목사 되기로 했습니다, 고민이 목사는 부르심이 있어야 된다는데, 수없이 삼각산에 가서 기도 했습니다, 비닐 한 장 뒤집어 쓰고 하나님 나를 목사로 부르신 음성 듣게 해 달라고, 마태복음 9장이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을 읽는데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더라고요.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니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더라. 그 무리를 보시고 예수님은 민망히 여기 셨더라. 예수님과 사람들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민망히 여기는 마음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이었어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원수가 당하는 고통이 민망히 여겨 지는 마음이 성령 받은 자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 것을 알게 하셨고, 성령을 주어서 우리에게 그 마음을 가지게 한 겁니다. 늘 우리가 그래 살 수 없습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입니다.

 

나를 대접하는 말, 나를 싫어하는 말이 일어나면은 되로 갚아 주려고 하는 육이 내속에 작용하지만은 곧 기도하면은 내가 갚아 주었을 때 그 사람의 고통이 내 속에 전달이 됩니다. 주일날 여러분들이 와서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살면서 정글의 세상에서 남 죽여야 내가 산다고 하면서 살아가다가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죽이려고 했든 그 사람의 마음 당한 고통이 내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그 마음이 생겨나야 됩니다. 열 번 중에 여섯 번 만이라도, 이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이 설교를 들으면서 원수를 사랑하자 결심하려고 교회 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보복한 그 원수가 당하는 그 고통이 내 속에 전달이 되려면은 그 사람이 내 자식과 같이 여겨져야 되요. 그 사람이 내 가족과 같이 여겨 지는 것이 예수를 시인하는 겁니다. 자녀 길러 봤잖아요, 살아 보면 자식 같은 원수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지만은 자식이기 때문에 그가 고통 당하는 것을 부모는 아프기 때문에 저주하지 않고 축복합니다. 그게 우리 그리스도 인의 육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마음이 세상을 구원하는 겁니다. 아멘

 

◈봉헌 기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게 하신 것을 알아서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세상 속에 사탄의 속삭임 속에 하나님이 아버지의 노릇 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므로 말미암아 이겨야 할 상대방이 섬겨야 할 가족으로 보여 지는 놀라운 성령의 두나미스가 우리의 가치 체계를 파괴해서 드린 예물이 되게하여 주시고, 이 예물이 먼저 믿는 우리들 사랑 없어 실망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성벽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들의 생업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어서 남들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서 남들에게 나누어 주는 자리가 되는 복된 성도의 생애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단의 소유에서 하나님 소유되게 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지극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므로 예수님의 민망히 여기는 마음으로 내 이웃이나 내 원수를 바라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상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