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내 생각에는 (열왕기하 5장 8-14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7. 10. 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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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김종웅



내 생각에는

열왕기하 5 8-14

2017 10 1일 주일 낮 예배

                                                                                                                                                      No. 334

8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아멘

 

영적 나병 / 타인의 아픔에 동감하지 못하는 것이고, 세상의 문제 (Blacklist와 부 교역자 사임..)예수님의 치유 /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된다. 왜 안 되는가? / 종교적인 선입견 때문이다.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 하나님을 알게 된 것만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우리 열왕기 이 부분은 교회를 좀 오래 다닌 분들은 너무나 잘아는 내용이지요. 옛날에는 부흥회가 항상 교회에 일년에 몇 차례씩 있었는데 그 부흥회가 되면은 이 엘리사의 사역 엘리야의 사역을 참 많이 설교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이스라엘의 적대국 아랍 나라의 나아만 이라고 하는 위대한 장군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 장군은 나병 흔히 우리말로 문둥 병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 있는 여종이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우리나라의 엘리사 선지자 앞에 가면은 그 나병도 낫을 터인데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이 왕에게 청하여서 예물을 가지고 이제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1.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어라 했다. 나아만이 생각을 꺾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니까 자기 몸이 어린아이 살과 같이 깨끗하게 나았다. 천국에서 누리는 평강, 자유, 기쁨,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는데, 그런 기쁨이 있는가?

 

엘리사에게 찾아가니까 엘리사가 뭐라는 가 하면은 문도 열지 아니하면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어라, 이렇게 말을 한다 말입니다. 나아만이 굉장히 기분이 나빴어요, 분노 했다고 그래요, 내가 찾아와서 이러면은 자기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자기 몸의 상처 부위에 안수도 하면서 좀 흔들어서 기도도 해줄 줄 알았는데 그저 요단강에 가서 내 몸을 씻으라고, 내가 생각할 때는 우리나라에 있는 두 강 아바나와 바르발 강은 요단강 보다 훨씬 더 나은데 내가 그곳에 가서 씻어야지 하고 돌이키고 가려고 합니다. 그의 종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시여 그보다 더 큰일을 행하라고 하였으면 안 했겠느냐고, 왜 그렇게 쉬운 일을 하지 않느냐고, 요단강에 속는 셈 치고 가서 한번 몸을 잠그 보라고, 그 말을 들은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꺾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니까 자기 몸이 어린아이 살과 같이 깨끗하게 나았다라는 거에요.

 

여러분 이 말씀을 가지고 대부분 많은 목사님들 부흥 강사님들이 이런 설교를 했어요. 주의 종의 말을 잘 들으면은 구원을 얻는다, 복을 얻는다, 여러분들의 소원이 성취가 된다. 그래서 한국의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은 목사님의 말씀에 잘 순종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교회가 굉장히 커졌어요. 또 교회가 건물도 잘 지었어요, 교회가 선교도 많이 해요. 유래 없는 program과 모든 것이 아주 왕성하게 돌아갑니다. 기독교의 역사에 이만큼 한국 교회와 같이 활성화 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교회가 큰일 하고 크라고 성경이 주어진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가야 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져서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천국을 맛보는 신앙 생활하라고 이 말씀을 주어졌거든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그 천국에서 누리는 평강, 자유, 기쁨,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는데, 그런 기쁨이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보면은 고개를 좀 갸우뚱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이 말씀이 어떤 의미냐,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병을 치유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병에 대해서 알아야 되는데, 이 나병은 우리 몸에 감각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코가 문더러 지기도 하고, 손끝이 잘려 나가는데도 아픔을 못 느껴요, 이게 나병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이 나병을 치유한 것과 같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영적인 나병을 치유하여 주셨어요.

 

여러분 이 세상의 문제가 뭐냐 하면은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정, 그게 이 세상에 문제에요. 영적인 나병에 걸리면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그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든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이 영적인 나병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님이 우리 속에 임하면은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 속에 성령으로 오게 되면은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은 타인의 아픔과 즐거움에 대해서 동일한 감정을 느껴요. 옛날에 한국 교회가 살아 있을 때에는요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함께 느끼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또 교회도 내 교회 부흥과 성장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교회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든 그런 교회에요.

 

그런데 요즘은 교회가 살아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은 주일마다 교인이 등록을 하고, 교회 교인들이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런 교회를 살아 있는 교회라고 하는 거에요. 그것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지 결코 영적인 관점 성경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아니다 이 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저는 참 뉴스를 보면서 답답할 때가 뭐 정권을 잡은 정권이 Blacklist 를 만들어서 뭐 어떻게 어떻게 했니 하니까 한쪽에서는 그것을 적폐청산[積弊淸算] 이라고 그러고, 또 한쪽에서는 보복이라고 그러고 저는 그것이 적폐청산[積弊淸算] 인지 아니면은 정권에 대한 보복인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요. 왜 그게 나쁜가, 자기의 조그마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한 사람의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 말입니다.

 

여러분 그 파탄에 이르게 하는 그 가정은 어떻게 해요? 이런 것이 무감각이라는 겁니다. 우리 속에 이런 것이 얼마나 많아요. 저는 예수를 안 믿는 대통령이 그런 것은 이해가 되는데, 장로 대통령이 그런 것은 이해가 안 되요. 여러분들이 교회가 살아 있다는 게 뭐에요? 저는 우리 교회에 지금은 부 교역자 팀이 잘 짜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참 부목사들 많이 왔다 갔어요. 부목사들 모집할 때 우리 장로님들 중에는 좀 젊고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 목사님 뽑읍시다 라고 했는데 저는 자꾸 손이 가는 것이 오십 넘은 나이든 부목사들이 손이 가더라고 부목사들이, 장로님들의 예상대로 그런 사람들은 와서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고, 많은 문제를 야기했어요. 어쩌면 그런 부목사들이 우리 교회에 없었다면 우리 교회는 지금 숫자의 배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뽑았든 사람들, 와서 문제를 일으켰든 사람들 왜 뽑은 줄 아세요? 그에 딸린 가족들이 그 교회에서 조금 주는 사례에 목숨 줄 걸고 있거든요, 저는 그게 보이더라고.

 

2. 교회가 살아 있고 생명이 있으려면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 그게 성령의 충만함이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내가 혈연을 통해서 느꼈든 그 공감을 타인과 공감하도록 만든 것이 예수님의 구원이다.

 

제 아버지가 오십에 신학 했다 말입니다. 어느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인가, 매주일 등록이 있고 교인들이 선교 여행 단기 선교 여행 저는 이런 것이 아니에요. 살아 있는 교회는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함께 공감하는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에요, 예전에 교회는 그랬습니다. 저는 한번도 교역자들을 내 손으로 그만두라 한적이 없어요, 내가 바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의로워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나는요 그 사람이 그만 두면은 거기에 딸린 식솔들은 어떻게 하나, 그 생각 하나였어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가 살아 있고 생명이 있으려면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요. 그게 성령의 충만함이에요.

 

그게 말씀이 우리를 지배 받는 거에요. 새벽 기도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교회 일을 하고, 뭐 찬송하고 예배 드리고 이런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좋은 일이 있으면은 그 좋은 일이 내가 당한 거와 같은 그런 공감, 이게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나병에서 치유 받은 자의 모습이다, 이런 말입니다. 지난 주일도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분의 부모님은 이 굴다리를 지나서 영원 교회에 다니는데 우리 교회에 모시고 싶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놔두세요, 라고 했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저도 개척을 하고, 동백 제일 보이지 않는데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교회가 참 동백 교회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영원 교회 목사님이 얼마나 그런 마음이었겠어요, 그래서 교회의 전도도 열심히 한다 하더라고, 그래서 어머니가 전도할 때 받은 라면 때문에 거기에 일을 못 떠난대요,

 

여러분 그게 참 한번 그 목사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고요, 우리가 같은 주님의 교회이고,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같은 목사라 할 때 그런 마음이 느껴져야 살아 있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은 우리 교회가 주님의 교회 앞에 있는 것을 참 다행으로 여기지만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초창기에 동백에 간판도 거의 안 걸었다고, 간판보고 오는 교인은 예수 믿는 사람이지요. 초창기에 주님의 교회에 등록하신 분은 우리 교회에 등록 할 수 없다고 안 받았어요. 그래서 경희대 교수 부부가 차 마시러 와서 등록하고 싶다 해도 안 된다고 했어요. 여러분 오늘도 이 나아만의 영적인 나병의 치유,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적인 나병의 치유가 이런 모습인 것을 아셔야 되요.

 

그런데 왜 이런 나병이 치유되지 않는가, 사람들은 타고난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러면 생명 있는 사람인가, 그렇지 안 해요. 여러분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가, 죄인이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자기가 경험 해보지 못한 것은 절대로 알 수 없거든요,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을 몰라요. 제가 부목사님들을 그렇게 대했든 것은 내 아버지가 늦게 신학 해서 가족의 그 생계의 고통을 안다고. 오늘도 여러분들이 경험 해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동일한 그냥 너희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의 공감해, 사랑해, 용서해, 다른 사람과 함께 즐거움을 가져 이러면은 기독교는 인문학과 같은 거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험 해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르는 우리에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원을 이루신 거에요.

 

어떻게 이루셨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를 성령을 함께 나눈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만드신 거에요. 참 희한하잖아요 여러분 자식은 자기가 경험 안 해도 자식이 경험한 것이 곧 자기의 경험과 같이 여겨 지잖아요. 추석에 여러분들이 가족을 만나겠지마는 그 가족이 뭔데 혈연이 뭔데,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도 가족 중에 한 사람이 힘들면은 모두가 그것이 함께 마음이 아파하는 것이 있잖아요, 그게 피의 힘이에요. 사단은 그것을 우리의 혈연적 관계로 묶어 놓은 거에요. 그것을 확대 하게한 것이 예수님의 구원이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내가 혈연을 통해서 느꼈든 그 공감을 타인과 공감하도록 만든 것이 예수님의 구원이에요. 오늘도 우리가 사는 사회가 교회가 세상을 구원할 능력이 있으려면은 그런 부분이 있어야 되요.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의 영적인 무감각을 깨달아야 되요. 오늘 일부 예배도 우리 장전도사가 우리 교회 10년 되었잖아요, 초창기부터 있었는데, 학생회 맡고 있거든요,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이제 입시가 7주 남았습니다, 하면서 우리 아이들 공부에 집중해서 좋은 대학 가고 이래 기도 안 하더라고, 하나님 왜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이렇게 공부에 올인을 해야 되고, 이래야 되느냐고.

 

3. 내 자녀가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기 전에, 참 이런 사회를 보면서 예수님 안에서의 구원이 어떻게 이런 문제도 해결했는가? 나아만이 그랬다, 내 생각에는 엘리사가 나와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내 몸의 상처에 손을 얹고 흔들기도 할 줄 알았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입시의 문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도 그런 공감이 있어야 되거든요.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만드셨잖아요, 다 다르게 만들었어요, 공부도 능력이라고 저는 보거든요. 운동도 능력입니다, 예술적 감각도 능력이에요. 타고나지 안 한 사람을 타고난 사람과 함께 노력하면 절대로 못 이겨요. 여러분들이 이런 입시를 보면서 그런 아픔이 있느냐 말입니다. 왜 우리나라는 공부 잘하는 그 능력이 모든 능력의 탁월하다고 생각하는가, 왜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지위에 있거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윤리적으로 생각하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힘든 거 거든요. 이런 감각이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생겨나야 되요.

 

저는 대학 교회에 있을 때에 장관도 세 명 있었고, 대학 총장도 세 명 있고, 박사 학위는 대부분인데 내가 본거는요 많이 배운 사람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교활해요, 사회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작 속여서 gentle 한 것 같지만은 내면을 들여다보면은 똑 같아요. 그런 착각이 우리의 권리를 위임해서 하니까 잡는 순간 희한한 사람으로 변화되거든요. 이런 사회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내 자녀가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기 전에 참 이런 사회를 보면서 예수님 안에서의 구원이 어떻게 이런 문제도 해결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되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가 떨어진 그 대학의 자리에 누군가의 자녀의 합격에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떨어졌지만 예수님 안에서 위로가 있어야 되거든요.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은 어떤 독점과 독과점의 아이템이 있을 때 내가 더 많이 가져가면은 이것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를 믿으면서 생겨나는 마음이 되어야 되요. 그 생기가 우리 속에 있어야 된다 말입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이 자꾸 늘어날 때에 그것 막을 수는 없지만은 어는 교회의 목사는 그것 때문에 울고 있지 않을까, 이 마음이 있어야지요. 왜 없는가? 내 생각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참 내 아픔을 나와 같이 공감 해주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가 설교를 그래 안 해서 우리 교회가 그런 모습으로 안 갑니까, 왜 안 되는가? 내 생각에는 에요.

 

엘리사가 가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하니까 나아만이 그랬어요, 내 생각에는 지가 나와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내 몸의 상처에 손을 얹고 흔들기도 할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의 강이 요단강 보다 못한 줄 아냐? 내가 우리나라 강에 가서 씻으리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오늘날 왜 영적인 나병이 치유되지 않는가 예수 안에서 예수님의 구원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어서가 아니고요, 교인들이 이래 생각해요. 그래도 하나님에게 은혜 복 받고, 그 다음에 신앙 생활 좀 하려면은 성경도 공부도 하고, 제자 훈련도 하고, 뭔가 단계도 좀 뛰어넘고, 뭔가 내가 그래도 신앙 생활 했다고 하는 자각이 생길 수 있는 행위를 해야지, 이 생각을 하는 거에요.

 

4. 영접이 뭐냐, 11절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더라. 예수님은 나를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다. 혈연적 관계에서 공감 했든 그 공감이 혈연을 넘어서는 공감으로 가게 된다. 성령을 보내어 주신 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 드리면은 구원이 나타난다.

 

내가 그래도 신앙 생활 좀 한다면은 이런 연휴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해 가지고 방언도 좀 받고, 영적인 체험도 하고, 이래야 뭔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고, 예수 믿고 내가 뭔가 되는 거와 같은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어요.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을 받아 드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서 우리 교회 오신 분들 중에 그런 분들 많아요. 목사님 쉼과 회복이 있는 잔치 다음에 코스는 없습니까, 왜 우리 교회는 뭐 기도회나 이런 것 많이 안 합니까, 다 여러분들의 종교인들이 주입한 종교적인 선입견이에요. 성경은 뭐라는 가 하면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그랬어요. 영접만 하면 되는 거에요. 영접이 뭐냐, 11절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더라.

 

왜 영접을 안 한 줄 아세요? 유대인들은 자기 생각에는 메시야는 그리스도이면은 이런 일들은 해야 될 줄 알았어요. 안식일 철저히 지키고 자기네들보다 율법적인 규례를 더 잘 지킬 줄 알았는데 예수는 안식일 날 밀이삭을 따먹어도, 병자를 고치기도 하고, 자기네들의 종교적인 규례에서 볼 때에는 이건 아니었어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다.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메시야가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면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나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는 혈통과 연고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나는 새롭게 위로부터 거듭나는 자다.

 

혈연적 관계에서 공감 했든 그 공감이 혈연을 넘어서는 공감으로 가게 된다 이런 말이거든요. 내 같은 동창에게 느꼈든 동질감이 동창을 넘어서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고, 내 동향에서 느꼈든 그 감정이 내 동향을 넘어서는 공감이 일어난다. 바울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그래도 율법을 지키고 경건 생활을 좀 하고 그래서 종교적인 체험도 좀 있고, 종교적인 업적을 좀 이루어야지, 하나님의 구원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우리가 뭘 좀 해야 의가 이루어 진다고 하는데, 자기가 깨달은 것은 예수를 주로 입으로 시인만 해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이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기만 해도 구원에 이른다고 그랬어요. 그 말도 예수님이 2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 역사적인 사실을 받아 드리면 이런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음이 유대교의 관점에서 보는 하나님의 저주의 죽음도 아니오, 해방주의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죽음도 아니오, 하나님과 우리와의 언약의 제사,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그 제사인 것을 받아 드리면은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를 홀로 버려 두지 아니하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 드리면은 우리의 삶에 구원이 나타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영적인 감각이 살아나려면은 이제는 타인의 그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려면은 예수 믿고 뭐 좀 하려고 하지 마세요.

 

5. 성령을 나누어 가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내 몸에서 난 자식이 당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공감과 희한한 삶이 시작된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 받을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느니라.

 

아주 간단해요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의 사건을 받아만 드리라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누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우리의 모든 사회 속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제 자꾸 가치판단하고 선택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 사람이 나와 성령을 나누어 가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마치 어떤 일이 일어나면은 내 몸에서 난 자식이 당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공감과 희한한 삶이 시작이 되어져요. 이 삶을 자꾸만 내 생각에는 성경 공부도 좀 해야 되고, 제자 훈련도 해야 되고, 뭔가 기도해 가지고, 방언도 받고, 종교적인 체험도 해야, 내가 뭐 하나님의 자녀다운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생각 내려놓으라고요.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목사님 볼 때에 여러분들의 가족의 눈으로 보세요. 나는 여러분들을 볼 때에 가족의 눈으로 본다고, 교회 그렇게 애를 먹였든 부목사도 가족의 눈으로 보니까 그 딸린 식솔들이 걱정이 되더라고. 추석이 이래 오니까 우리 교회의 아이들에게 추석 용돈이라도 좀 주어야 되는데, 봉투를 챙겼다가 별로 요즘 호주머니가 좀 얇아서 잘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 육신의 손자도 안 주려고 ㅎ ㅎ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잖아요. 우리 교회의 어른들을 좀 섬겨야 되는데 뭐 그런 섬기든 안 섬기든 그런 마음이라도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영적인 감각이라 말입니다.

 

성경은 바울이 그렇게 깨달아서 이야기 한 거에요. 십자가의 도는 멸망 받을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다. 옛날에 자기가 율법을 지켜야만이 구 원을 얻고, 좀 뭔가 종교인으로서의 의를 행해야만이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어서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하신 그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거라고 여겨 졌다는 거에요. 자기가 구원을 받고 나니까 그것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 가 뭔가 하면은 이 세상에 지혜 자가 어디에 있느냐, 지혜자 라는 말은 철학자가 어디에 있느냐 이런 말이에요.

 

바울이 사는 당시에 헬라시대에는 최고의 지성,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따라야 할 자가 누구냐 하면은 철학자였다고. 자기가 예수님의 구원을 그리스도적 사건 구원을 구원받고 십자가의 도를 보니까 그 철학자는 아무것도 이니 더라는 거에요. 이 세대의 선비가 어디 있느냐, 선비라는 말은 랍비 율법학자룰 말하는 거에요. 유대인들이 모두다 존귀하고 이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어야 이 세상은 존재한다고 하는 그 랍비들과 율법학자들도 자기가 구원을 받고 보니까 십자가의 도 앞에서 보니까 미련한 것이더라는 거에요.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에 있느냐 이 세대에 진리를 논하는 자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느니라.

 

저는 요즘 교인들이 인문학에 열광을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법정이나 혜민이나 뭐 이런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내가 잘나서 그런 게 아니고요, 복음 십자가의 도를 알고 보면은 그런 것들은 미련하기 짝이 없이 보여져요. 그런데 왜 교회 교인들이 그러는가 목사님의 설교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고 인문학을 선포하고, 목사님의 설교가 윤리를 선포하고, 목사님의 설교가 종교를 강요하다 보니까 그런 게 크게 보이거든요. 여러분 인문학은 저도 뭐 요즘 tv만 틀면 인문학 강좌가 참 많아요, 뭐 책을 볼 필요도 없더라고, 보면은 전부 쓰레기 통에 들어갈 이야기들이에요. 그 인문학은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는 진단은 정확하게 잘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번 보세요 처방은 하나도 안 되요.

 

6. 삶의 문제는 십자가의 도만이 해결책이다. 신앙과 복음이 지배하는 삶이 뭔가를 생각해야 된다. 나아만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기의 나병이 치유가 되고 나니까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온 천하에 하나님 한 분 여호와밖에는 없다고 고백을 하면서 고향 갈 때 흙을 좀 가지고 간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 여러분들의 문제나 여러분들의 모든 삶의 문제는 십자가의 도만이 해결책이에요. 십자가의 도를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수단으로 생각해 버리는 종교성이 문제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지금 사교육의 문제 간단합니다. 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상대방의 경쟁자도 내 몸에서 난 자녀라고 생각하면은 우리 달라지지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뭐 적폐[積弊]나 모든 것들 다 가족의 눈으로 보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들이거든요. 여러분들이 다니면서 속상하고 뭐 댓글이나 이런 것 얼마나 가슴 아파요. 싸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내가 말하는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은 다 해결 되어져요. 

 

교회는 법을 만들고 재정을 만들고 사람들을 깨우치는 게 아니에요. 아주 간단한 방법 같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라는 것이고, 이번에 추석에도 우리 윤성복 집사님이 샘물호스피스에 간다고 그래요, 제가 다은에게 문자 그래 보냈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은 더 좋은 일이 있을 건데, 그건 종교에요, 다은아 천국은 하나님은 인자와 선하심이 많다, 하기 힘든 일이지만은 엄마가 어쩌면은 이 지상에서 너와 함께 마지막 추석을 맞이 할지도 모르는데 병 때문에 슬픈 추석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게 처방이에요, 같이 아파해 주고 눈물 흘리는 것, 그런 마음이 여러분들 속에 있느냐 말입니다. 예수님의 그 그리스도적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가에요.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보세요,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가 전부 내 생각, 사회가 만들어 놓은 통념, 자기가 경험한 조그마한 경험, 종교인들이 만들어 낸 종교적인 선입견, 이런 것을 가지고 성경을 전부 각색해 버리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와서 듣는 이야기 그 이야기잖아요. 하나님이 아버지 입니다. 아버지 노릇 해주심을 믿으면 살아서 이제 상대방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섬김의 대상으로 삼으세요, 나에게 잘못한 사람 화가 나지요, 그럴 때에 가족으로 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참아 지지요. 이런 교회가 생기가 있는 교회입니다. 뭐 막 교회가 돌아가는 교회가 아니고, 돌아가는 것은 그런 생기 있는 그거는 주식 회사고, 가정에 가면 막 돌아가고 분주합니까?

 

여러분들이 추석에 가서 막 음식 먹고 막 뱅뱅 돌리는 것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일이고, 요즘은 그렇지도 않더라 만은, 진짜 가족은요 그러지 안 해요. 그저 얼마나 힘들었니, 며늘아 멍 때리고 좀 앉아 있어, 안보면 되지 뭐, 여러분 신앙과 복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이 뭔가를 생각해야 된다고요. 이러고 나니까 나아만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기의 나병이 치유가 되고 나니까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요 온 천하에 하나님 한 분 여호와밖에는 없다고 고백을 해요. 그러면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흙을 좀 가져가서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만들겠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이것 하나는 좀 양해를 바랍니다 라고 말을 해요.

 

7. 세상의 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고 그 하나님만이 이 세상에 유일한 구원자이시고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건을 우리에게 이루신 것이다. 타인의 좋은 일에 함께 즐거워도 할 줄 아는 삶이 죽어서 가는 천국을 땅에서 맛보는 삶이다.

 

우리 아람의 왕이 림몬[Rimmon]을 섬기는데 림몬 섬길 때 신전에 들어갈 때에 꼭 내 손잡고 가는데 왕이 그 신전에 무릎을 꿇을 때, 나도 함께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림몬을 섬겨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거니까, 내가 혹시 무릎을 꿇더라도 그건 좀 용서해 주세요. 하나님 한 분만 내가 섬기겠다고, 여러분 참 그저 제사상에 절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절 안 하는데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안 받아 드리는 그리스도 인들은 너무나 많아요, 진정으로 여러분들이 무릎을 꿇지 말아야 할 것이 뭐냐,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이 세상의 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고 그 하나님만이 이 세상에 유일한 구원자이시고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건을 우리에게 이루신 것이다.

 

그것을 받아 드리는 것만이 이 세상이 구원을 받는 것이고, 내가 사람답고 구원받는 자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는가? 고린도전서 1 31절에는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이래요, 저는 이 번역을 한국 교회를 망치기 위해서 사탄이 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고린도전서 1 31절의 말은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이 아니고, 자랑 하려면은 주님만을 자랑하라 이 말이에요. 예레미야 9 23절과 24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예레미야 9장에는 그래요 지혜 있는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맹이 있는 자는 자기의 용기를 자랑하지 말고, 부한 자는 부한 자를 자랑하지 말고,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 하나님을 알게 된 것만을 자랑하라는 거에요.

 

왜 한국 교회가 내가 하나님 은혜 가운데 40년 동안 거룩한 성역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렇게 크게 성장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이렇게 복되게 해서 잘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회사를 이렇게 크게 하고 잘되게 했습니다. 얼마나 이런 간증 많아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만 명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3천명 선교사를 파송 하게 했습니다. 이런 한국 교회에 자랑하려거든 주님만을 자랑하라고. 여러분들 속에 아 이거는 무너트리기가 너무나 힘들어요, 오래 믿은 사람, 중직 자 일수록 안 무너져, 고전 관념이 너무나 많아요. 목사님은 그래 믿으세요 나는 복도 받고, 천국도 갈랍니다. 그래 되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 사람치고 또 잘되는 사람도 또 없더라고.

 

자녀를 길러 보면은 고3되면은요 대학 들어가는 것만 들어가도 세상에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은 얘 대학 보내 보세요, 취직 걱정은 더 커요, 취직만 되면 이제 부모로서 나는 세상 다 살은 것 같지만은 또 살아 보세요 결혼은 더 크고요, 결혼만 시키면 다 끝나는 줄 알았지마는 돌아올까 봐 더 큰 걱정이고,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은요 예수님의 그 구원 그것을 받아 드려서 타인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줄도 알고요, 타인의 좋은 일에 함께 즐거워도 할 줄 아는 그런 삶이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땅에서 맛보는 삶이에요. 간단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어떻게 살아나야 되는가, 기도해 가지고 은사 받아 가지고 방언해야 되는가, 종교인들이 만들어 낸 성경의 스탭을 따라서 제자훈련을 하면은 그런 것들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지는가, 천만에요.

 

8.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을 받아 드리고,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살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만들어 진 것이 교회인 줄 알라, 그런 교회가 죽어서 가는 천국을 맛보는 교회 된다. 게하시가 사례를 하려고 할 때 엘리사가 no 했다.

 

오늘 이 시간부터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것을 이루신 것을 받아 드리고,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살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만들어 진 것이 교회인 줄 알아서, 이제는 여러분들이 항상 모든 것을 볼 때에 제가 이런 설교의 간증을 하고, 무슨 찾아 예를 하려 해도 없어, 그래서 내 이야기하는 거에요. 제가 신앙 생활 해보니까 그때부터 완전히 보는 게 달라져요, 그렇게 미운 사람도 그 사람 얼굴에 우리 얘들 얼굴을 한번 갖다 바꾸어 보세요 완전히 달라져요.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에요. 우리나라에 지금 산적한 모든 문제는 가족으로 보지 않는 자본주의가 만든 세상 속에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그 가치관이 보기 때문이에요.

 

예수를 믿으면서 여러분들이 생각을 바꾸세요,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발 강이 더 안 낫겠나, 그곳에 가서 몸을 잠그지. 엘리사의 말에 순종 안 하려고 했습니다, 지가 하나님의 종이면 종이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내 생각에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내 몸의 상처에 손을 얹고 흔들어서 무언가 좀 일을 해서 고칠 줄로 알았는데 예수를 믿고 성령충만 받고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복 받으려면은 성경 공부도 좀 해야 되고, 기도도 해 가지고 은사도 받고 뭘 좀 해야지 하나님께서 복 주시지, 전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요. 교회는 뭔가 하나님을 위해서 선교도 하고 뭐도 해야 되는데 그저 목사님은 오니까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어, 옆에 있는 사람 네 가족이라고 생각해, 그게 뭐 세상을 구원하고 내 삶을 변화시킬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요.

 

그런 교회가 죽어서 가는 천국을 맛보는 교회 됩니다. 게하시가요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병이 낫고 예물을 주어서 엘리사에게 사례를 하려고 할 때 엘리사가 no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게하시가 좇아가서 두 선지자가 있는데 가난해, 옷도 두벌 좀 주고 좀 돈도 달라고 하니까, 이 나아만이 얼마나 감사해요, 돈을 선물로 준거에요, 자기집에 감추어 놔 놓고, 엘리사에게 떡 오니까 엘리사가 어디 갔다 오느냐 횡설수설 하니까 네가 하는 것 내가 옆에서 다 봤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너에게 걸릴 거다. 한국 교회가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복을 좀 받으니까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안 보여, 그 감각이 사라져 버린 거에요.

 

옛날의 한국 교회는 교회에 오면은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같았고요, 옛날에는 다른 교회 다녀도 6.25 때 헤어진 형제를 만난 거와 같은 마음이 있었고요, 옆에 교회에 부흥회를 하면은 우리 교인 가서 은혜 받으라 그랬고요, 옆의 교회 건축하면은 은혜 받고 가서 헌금도 하라 했든 그 한국 교회가 게하시와 같이 돈맛 알면서 무감각하게 된 거에요. 아멘

 

◈봉헌 기도◈

 

교인들이 하나님이 재물 얻는 능력을 주어서 얻은 물질을 주님 앞에 드렸는데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한 신의 응식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사회적인 통념으로 예물을 보아서 드린 헌금의 액수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로 여겨 질 수 있도록 주님의 마음으로 이 예물을 드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없어 드리지 못한 자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믿음이 부족해서 드리지 못한 자도 수치스럽지 않는 믿음의 분량을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을 따라서 자원하고 기쁜 예물만이 주님이 받으신다고 하였으니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믿음이 점점 더 커져서 인색하고 아까운 마음이 사라지게 하여 주시고 그래서 쌓다가 가는 어리석은 자들 오늘밤에 네 영혼을 거두어 가면 이 쌓은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신 주님 말씀을 따라서 오늘 쓸 수 있는 돈은 오늘 쓰고, 타인과 함께 나누며 살다가 내 생각 내 염려대로 내 인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가는 줄 알아서 주님 앞에 갈 때, 빈손 들고 갈 수 있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그렇게 살아도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고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체험을 통해서 나아만과 같이 천하에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구나, 하고 고백하고 림몬 신전의 왕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꿀을 지라도 마음의 무릎을 꿇지 않는 신앙의 신실함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사장에 절하지 않는 싸움만이 아니라 재물에 굴복하지 않는 신앙의 절개를 교인들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오며, 내 세울 것 없는 우리들을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소유된 자 되게 하시고 천국을 유업으로 주며, 부활의 소망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평생 쌓다가 누구의 것이 되지도 못하는 재물에 매여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십자가의 언약의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으로 옭아매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이제는 경쟁과 이김의 대상이 아니라 남의 아픔에 무감각한 영적인 나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를 하나님을 함께 나누어 가진 영원한 가족이 되도록 강림하신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어떠한 어려움에도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주실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인간 관계 속에서도 자신의 혈연의 가족을 바라보는 눈보다 더 진한 사랑과의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내 생각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사건을 받아 드리기를 원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며 살다가 천국 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세상과 전혀 다른 공동체 주님이 몸 버려 세우신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