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마라나 타
열왕기하6장 1-7절 (6장-8장 참조)
2017년 10월 8일 주일 낮 예배
No. 335
1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가라
3그 하나가 가로되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 하고
4드디어 저희와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6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무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
7가로되 너는 취하라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취하니라. 아멘
●엘리사의 의한 기적들 / 선지자의 쇠도끼. 아람 군대. 사마리아의 기근과 나병 환자. 수넴 여인의 귀향.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다. (증험과 성취함). 모세와 같은 선지자임에 대한 표적이고 그의 말을 듣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고난이지만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에 믿어야 한다.
엘리사가 행한 여러가지 기적들의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를 좀 짧게 하려고 한가지만 여러분들에게 읽었고 말씀을 드리면은 참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선지자들이 거하는 거처가 좁아서 좀 넓은 대로 옮기려고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 도끼를 가지고 목제를 구하는데 도끼가 물에 빠져 버렸어요. 빌려 온 도끼가 빠지니까 그 선지자가 당황하니까 엘리사가 묻습니다. 어디 빠졌느냐 하니까 이곳에 빠졌다고 하니까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그곳에 던지니까 쇠도끼가 떠올랐든 겁니다. 여러분 이 사건을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이솝우화와 같이 생각할 수 있어요. 잘 아시지요 어떤 사람이 도끼가 연못에 빠졌는데 신령이 나타나서 금도끼를 가지고 와서 이것이 네 것이냐 하니까 아니옵나이다.
은도끼도 가져 나오니까 아니옵나이다. 쇠도끼를 가져오니까 네 것이냐 하니까 그렇다 하니까 신령이 너무 착하다고 다 주었다,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신령이 도끼를 준 것 보다는 교훈이지요. 사람은 정직해야 돼,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성경을 보면서 엘리사가 쇠 도끼를 떠오르게 한 것을 보면서 교훈을 받는다면은 성경은 이솝우화와 같아 지는 겁니다. 또 더 나쁜 것은 이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에게 잘 보이면은 이런 기적을 경험하는 신앙 생활이 될 거다. 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더 나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성경 모든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고자 하는 말씀이 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지금.
1. 성경의 모든 기준은 신명기 이다, 그래서 이 신명기를 토라 라고 한다. 일 점 일획의 변화가 없는 하나님의 율법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받아 드려서 그의 말을 들으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럼 이 사건이 왜 기록이 되어졌고 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가 하면은 쉼과 회복이 있는 잔치 때 말씀을 드렸지만은 우리 다시 한번 찾아 봅시다 신명기 찾으세요 18장 15절 찾아서 보시면서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준은 신명기 입니다, 그래서 이 신명기를 토라 라고 그래요. 일 점 일 획의 변화가 없는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이 신명기에는 또 우리가 배경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을 해서 광야의 길을 걷고 난 뒤에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유언으로 남긴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그곳에 들어가서는 이렇게 살아야 돼 라고 말씀을 드린 겁니다.
그러면서 그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15절에 보세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자 저를 보세요, 모세가 뭐라는 가 하면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의 노예가 되어지고 식민지가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 두지 아니하고, 나와 같은 선지자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너희 민족 가운데 하나를 보내어 줄 거다 라고 말을 해요. 왜 보내어 주는가 너희들이 그의 말을 들으면은 내 말을 들어서 애굽에서 너희들이 구원을 받았듯이 너희가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여러가지 나라가 어렵고 식민지가 되거나 포로로 잡혀 가면은 이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믿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주어서 우리가 그의 말에 순종만 하면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는 것이 유대인이 가지고 있었든 믿음이에요. 신명기를 보면서 그들이 가졌든 신앙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올 때에 복 받는다든지 뭐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여러분들이 받아 드려서 그의 말을 우리가 들으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거라고요.
그러면서 16절에 보세요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한 것이다, 언약의 제사를 드릴 때에 시내산에 있을 때 내가 하나님께 간구한 거다, 라고 말을 하면서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니다 하매. 자 저를 보세요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주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을 들어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왜냐하면은 하나님을 직접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은 죽을까 해서라고 해요, 실제로 우리는 죄인들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은 죽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2.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말이니 너희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제대로 하나 가져가야 되는 것은 앞으로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내가 죽겠다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큰 믿음 교회나 이런 대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서 뭐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죽어요 진짜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면은, 전부 가짜라 말입니다. 왜 성경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주고 그의 말을 듣게 했는가 하면은 죽을까 봐, 그래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보내어 주어서 그의 말을 들음으로 구원을 받게 해 달라고 모세가 기도했다는 거에요. 그리고 고 다음에 보면은 18절에 보세요.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모세가 호렙 산에서 그래 기도했더니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했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너와 같은 선지자를 너희 형제 가운데 한 사람 주는데, 내가 그 사람의 입에 내 말을 두게 된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하는 것을 무리에게 다 말할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들으면은 너희에게 구원이 일어날 거다 라는 것을 말해요. 그러면서 19절에 보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벌을 받게 되는데 20절에 보면은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아니면서 자칭 자기가 선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하면은 거짓 선지자에요. 그런 자들은 반듯이 죽이게 되어져 있어요. 오늘날도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뭐 이단이면 어떻고 삼단이면 어떻고 은혜만 받으면 되지 라는 말이 잘못된 말이에요. 이단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아니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거에요. 그러면 이 성경대로 우리가 실제로 죽이지는 못해도 그는 하나님의 총회 여호와의 총회에서 제외시킨다고, 그래서 이단으로 정제[精製]를 해서 걸러 버린다고.
오늘날도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이 기독교의 전통에 있는 것은 바로 이 말씀 때문이에요. 그리고 21절에 보면은 네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오. 자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라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일성수 잘하면 복 받아, 11조 잘하면 복 받아, 그리 안 하면 벌받아,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오. 라는 말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22절에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3.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보내신 자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그의 모든 사역에는 증험 표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경의 눈, 앉은뱅이, 갈릴리 가나혼인 잔치,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잠잠케 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험적으로 나타내셨다.
자 저를 보세요, 어떤 사람이 그게 목사님이든 어느 누구든지 자기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말을 하면서 내 말에 순종하고 내 말을 잘 들어야 된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가 하는 말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이 없으면은 지 마음대로 한말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우리 교회에 다니지 않고 다른 교회에 가면은 하나님께서 저주해,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이 하는 말이라면은 그 말에 여러분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에게는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하면은 증험이 있어야 되는 거에요 표적이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 이 엘리사가 도끼가 물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라든지 아람군대의 모든 내밀[內密]한 이야기를 알려 준다든지 또 아람군대와 전쟁에서 예언을 하는 것들이나 이런 모든 것들은 그런 기적을 행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엘리사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으라고 이 말씀이 기록이 되어져 있는 거에요. 그러면은 오늘날에도 여러분들이 한가지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려고 그러신 것이 아니에요. 갈릴리 가나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한 것도 예수님은 자기 말씀을 잘 들으면은 기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는 분임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표적이다 이 말입니다. 자 이말 잘 들으셨지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보내신 자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그의 모든 사역에는 증험 표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목사님은 뭐한 분인가, 자기가 기적을 일으켜서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믿게 해서 자기 말을 듣게 하는 것이 목사님이 하는 일이 아니에요. 오늘날 우리 한국 교인들이 이 신명기의 가장 중요한 이 말씀을 모르니까 어느 교회에 가면은 어느 목사님은 은사나 치유 사역을 통해서 한다는데 그 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야, 그래서 그가 하는 말에 순종을 하면은 복을 받아, 이러면은 그 목사님이 교주가 되는 거에요. 교주가 되면은 교인들이 그 목사님에게 절대 순종해서 그 목사님이 추구하는 종교적인 과업은 잘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단을 보면은 이단은 돈이 많잖아요, 그래서 이단은 뭐 건물도 많이 사고, 큰일도 많이 하는 것은 그 교주를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해서 그 교주가 하는 말에 교인들이 절대적으로 순종을 하니까, 그런 일들을 하는데 그 이단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러면 이단은 이단이더라도, 정통 교회도 자꾸만 은사 운동을 하고, 이렇게 하면은 한국 교회가 그런 운동을 통해서 교회는 커졌는데, 과연 신앙 생활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는가, 그런 말에 여러분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에요. 목사님은 뭐 하는가 하면은 봐라 성경에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갈릴리 가나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잠잠케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심을 우리에게 증험적으로 나타내신 거에요.
4. 인간들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고 십자가의 도[道]이다. 성령을 함께 나눈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천국이 침노 당하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래서 여러분들은 나를 믿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야 돼, 라는 말씀을 하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이고, 목사가 해야 할 말이고 여러분들이 해야 할 말이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믿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면은 그분의 말을 들으려고, 여러분들이 예수님은 확실히 소경의 눈을 뜨게 했고, 엘리사는 확실히 도끼를 떠오르게 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심을 표적적으로 나타낸 거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뭐냐, 사랑하라 했으니까 사랑해야 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어야 돼,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인 줄 알아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뭐냐 하면 계속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우리 인간들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그게 십자가의 도에요.
그리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를 영원한 영적인 가족이 되게 하신 거에요. 그러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믿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이제는 여러분들은 내 힘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살려고 사는 것이 순종하는 삶이에요, 이제는 타인을 내 삶의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아니라, 나와 피를 나눈 가족과 같은 성령을 함께 나눈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에요. 그렇게 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거와 같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기를 시작하는 거에요. 천국이 침노 당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다니면서 주일 열심히 성수하고 11조를 하고 뭐 그래서 교회가 자꾸 땅 사고 건물 짓고 뭐 교회가 선교사 천명 보내고, 이런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어서 이제는 내가 돈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내 삶을 안전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나, 남들보다 더 힘을 가져서 자신의 삶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하는 세상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옆에 있는 교인을 나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이런 가치판단을 하면서 살아가면은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침략해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복을 받는 것이나 기적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에요. 요한복음 14장을 펴 보세요. 25절부터 제가 읽으면서 설명할게요,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라고 말을 하면서 뭐라고 그래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자 저를 보세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심과 여러분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삶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피를 나눈 가족과 같은 그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면은 예수님이 주는 평안을 경험하게 되요. 하나님의 나라는 평안입니다.
5.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신 삶의 부유함에 행복의 도구인 줄 알아서 물질을 지배하는 삶, 그것이 의라는 것이다. 내 자녀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믿으면 그 걱정이 기대로 바뀐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고, 내 삶을 인도해 가면 평강이 생긴다.
로마서 14장 17절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추석 때같이 많이 먹는 것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이런 말이 아니고요 로마서 14장에는 유대인들과 같이 먹어서 될 것과 먹지 말아야 될 것을 가리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우리나라 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면은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되는 일을 가리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고 예수를 잘 믿는 것인 줄 아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보내어 준 그 성령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가족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바아버지가 되게 하신 그 믿음을 받아 드리는 삶 안에서 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그래서 타인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생기는 그런 인간의 관계, 이제는 물질이 내 삶을 안전을 가져다 준다고 물질을 숭상[崇尙]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물질을 나에게 주신 삶의 부유함에 행복의 도구인 줄 알아서 물질을 지배하는 삶, 그것이 의라는 거에요. 인간이 만든 윤리적인 의가 아닙니다, 종교적인 의도 아니에요, 그러한 올바른 관계 속에 들어가면은 의와 평강과 평안이 생긴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좀 더 쉬운 말로 하면은 이제 입시를 얼마 앞두고 있지 않는데, 여러분들의 자녀가 좋은 성적을 얻을까 말까 걱정이 되잖아요, 우리 아이가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수능을 망치지 아니할까 걱정이 되잖아요,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되고 뭔가 불안하잖아요. 그런데 내 자녀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믿으면은 그 걱정이 기대로 바뀐다고,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까, 내 자녀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닮아서 공부를 좀 잘 못해, 좋은 대학갈 확률이 적어,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취직이라고 지 밥그릇 노릇이나 하겠나 싶지만은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에게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면은 자녀와 관계도 좋아지고, 평안이 생긴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미래에 대해서 우리나라가 이래 가지고 내가 연금도 못 타는데 걱정이 된다고, 그럴 때에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안전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아버지 노릇 해주실 것을 믿으면은 내가 연금을 좀 못 받아도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해 가실거야 하는 평강이 생긴다 말입니다.
세상에 염려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럴 때에 희락 기쁨이 넘치는 신앙 생활 시작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예수 믿으면은 그런 평안이 생기는데, 그 다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자꾸만 교회가 세상이 주는 평안을 예수님이 주는 평안으로 착각을 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자녀 좋은 대학 보내 주고, 부자 되게 할 거다, 이 믿음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평안이나 우리의 평안이나 같은 것이 되잖아요, 예수님은 전혀 다른 평안을 준다는 거에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거에요.
6.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완전한 평안이 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 믿으면 만사 형통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세속화된 것이다.
이것은 거듭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고 보이는 것이라는 거에요 영적인 눈이.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제가 자꾸만 복 받으려고 예수 믿지 말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복 받는다고 해서 평안이 오는 게 아니에요 잠시에요.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완전한 평안이 온다고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를 내가 40일 기도 했더니만 성적 좋게 해 가지고 오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하고 같은 거에요. 내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자녀와 관계가 좋아지고, 자녀에 대한 기대가 있고, 하나님께서 너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 것인가 이런 평안이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안이라고.
그러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말을 한다고. 16장 그 뒤에 보세요 요한복음 16장 33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자 이상한 말씀을 하세요.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과 옆에 있는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고 그의 말에 순종 하면 구원을 얻는 평안을 얻는데, 너희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한다는 거에요, 예전에 한국 교회는 이런 복음을 선포 했는데 요즘은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는 것은 예수 믿으면 만사 형통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교회가 세속화된 거에요.
만사형통은 동생이 대통령이 되어야 만사형통 되는 거에요. 제가 이번 연휴 때 두 권 책을 읽었는데 대통령이 동생이 되니까 형님은 만사 형통이 되더구먼,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요. 우리가 하나님이 아버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져야 되고, 남들보다 더 힘을 가져야만이 내 삶이 안전하다고 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많이 가지려고 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남들보다 권력을 많이 가지려고 해요. 참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에 장로가 되어서도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과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갈 것을 믿지 않고, 자기가 하려고 하고, 그 권력을 가지고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가졌더라고, 그건 장로나 목사라도 그건 하나님 예수 믿는 게 아니에요.
우리 교회가 교인이 많아 지고 재정이 많아져야지 우리 교회가 천대까지 있겠다 하면은 그것은 교회가 아니에요. 종교 기관이 되어 버린다고. 우리 교회의 교인들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어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좀 편하면 이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로 예수를 믿고, 내가 너무 욕심부리고 내가 내 자신만 생각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교회를 이끌어 가는데 좀 힘들지 아니할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생활해 나갈 때에 우리 교회는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존재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면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남들보다 더 돈을 많이 가지고 권력을 많이 가져야만이 내 삶이 안전하다고 해서, 남은 죽든지 말든지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면은 손해가 되고 환란을 당한다는 거에요.
7. 안 되는 것 같고, 손해가 보는 것 같고, 이렇지만은 담대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세상에서 믿으면서 살아가야 되는가, 예수님이 재림 하시기 때문이다.
저도 나이가 들어서 부모가 이제 점점 되어져서 손자도 보고하니까 자녀들은 세상에 있는 자들과 같이 어쨌든 간에 더 많이 가지려고 해, 저는 부모가 되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까지도 줘, 그래서 그런 자식들하고 함께 사니까 내가 환란을 많이 당해, 자 그런데 그 다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렇다고 해서 자녀에게 아버지 노릇을 포기하면은 안 된다는 거지요, 피의 힘이지요.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상대방은 죽든지 말든지 자기 하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 내가 눈 한번 질끈 감으면은 천금이 생긴다고 해도 저 사람 천금을 잃어버릴 때에 내가 천금을 얻게 될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겠나 해서 그 일을 안하며 살면은 손해가 되고 환란을 당하는 거에요.
주식을 작전 세력을 가지고 주가를 띄어 가지고 왕창 벌어서 팔아 버릴 때에, 그 주식이 깡통이 될 때에 수십만이 우는데 나는 부자가 돼, 그게 세상입니다. 그 방법도 알고 그런 기회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일 안 해,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안 되는 것 같고, 손해가 보는 것 같고, 이렇지만은 담대 하라는 거에요, 그래서 세상을 이기라는 거에요. 그럴 때에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어지고, 우리 교회가 여러분들이 내 하나 편하면은 내가 좀 이기적으로 신앙 생활하면은 다른 사람이 손해 보지 않을 까? 라는 생각 때문에 내 능력의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 내가 해야지, 라고 생각을 하면은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내가 손해가 되고 환란을 당하지만은 담대 하라는 거에요.
왜 우리가 이래 살아야 되는가, 그래 살면 하나님께서 복주고 천국에서 상급이 크기 때문에 이런 것은 종교인들이에요. 그래서 너 신앙 생활 그 따위로 해 가지고 천국 가겠어? 너 신앙 생활 그래 해 가지고 천국에 가면 개털 모자 써, 이런 말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그럼 왜 우리가 그래 해야 되는가, 성경에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예수님이 재림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생각을 바꾸세요, 그러면 천국에서 상급이 크고 복 받기 때문이 아니고,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고 왜 우리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세상에서 믿으면서 살아가야 되는가, 예수님이 재림 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은 예수님은 진짜로 재림하시는가, 이 믿음이 있어야 되잖아요. 성경은 일 점 일 획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했기 때문에 재림해, 자꾸 종교인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까 언제 예수님 재림한다고 이야기 하니까 재산 팔아 가지고 거기에 가서 쫄딱 망해 가지고 제가 이야기 들으니까 이단에 들어간 사람들이 실체를 알아도 못 나오는 이유는 재산 다 팔아 가지고 거기에 들어갔는데 이제 나와서 먹고 살길이 없기 때문에 마지 못해서 거기에 산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왜 확실한가 하는 것은 신명기에 이야기 했잖아요, 하나님이 보내신 자에게는 증험이 있고 또 뭐가 있다고요? 성취함이 있다고요.
8. 예수님은 다시 이 땅에 오신다고 이야기를 했다 십자가에서. 그를 때 승천하시면서 예수님이 그 말씀이 역사적으로 성취함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예수님 재림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서 예수님이 파루시아 [Parusia]우주적으로 다시 재림할 것을 믿는다.
자 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예수님은 다시 이 땅에 오신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자 그를 때에 승천하시면서 했는데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그 말씀이 역사적으로 성취함이 있어야 되요. 그래야 예수님 재림을 믿을 수 있는 거에요. 그러면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대로 다시 오셨느냐, 어떻게 오셨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성취함이에요. 자꾸만 여러분들이 부활을 뭐 생물학적으로만 생각을 하는데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심에 대한 성취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서 예수님이 파루시아 [Parusia]우주적으로 다시 재림할 것을 믿어요.
그래서 부활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재림에 대한 표적이 되는 거에요. 또 오늘도 요한복음 14장을 읽었지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는가 하면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준다고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보혜사를 하면은 성령이라 생각하는데 예수님이 보혜사에요.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에요. 예수님께서 자신의 약속대로 사도행전 2장을 보면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재림하신 것을 봐야 되요. 사도행전 2장을 볼 때에, 우리는 초대 교회와 같이 재산을 팔아 가지고 서로 네 것 내 것이 없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다 유무상통하자 이러면 이단이 되어 버리는 거에요. 보기는 좋은 것 같지만은 그러면 교주만 편하게 된다고.
9. “마라나 타”[Marana ta]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게 기독교 신앙의 전체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화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Marana ta” 에요. 모든 것을 잃어버려서 남들이 다 떠나는 순간 가족은 연락 오는 그런 것이 가족의 힘이다.
사도행전 2장을 여러분들이 구속사적으로 보면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약속한 대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교회를 만드신 것을 보면서 예수님은 다시 분명히 우리 가운데 재림할 것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되요 사도행전에서. 그래서 성령이 임하여서 육신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된 거에요. 그 맛을 보다가 너무나 좋아서 “마라나 타”[Marana ta]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게 기독교 신앙의 전체에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에 대한 염려가 있을 때 여러분들의 삶에 대한 염려가 있을 때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니까 평안이 와, 원리적으로 성취가 된 거에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전부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니까 환란을 당해요. 그런데 이 원리적으로 성취된 이 맛이 좋아서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래서 내가 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맛본 이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화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Marana ta” 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다른 교회는 목사님의 종교적인 과업 성취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노력 봉사하고 헌금 봉사하고 해서 교회가 뭔가 큰 종교적인 과업을 이루었는데 내 삶은 피폐 해져가 이런 신앙 생활을 하다가, 교회 와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과 이제는 나는 내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가족과 같은 문제로 바라보는 사람들하고 함께 살지만은 우리는 여전히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결핍이 있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를 통해서 완전히 경험을 하지 못하고, 맛은 좀 봐, 언제 보는가,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우리 교회 다니면서 신앙의 맛은 여러분들이 삶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에 야 내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잘 다녔지, 그때 느끼는 거지요 평소에 느끼는 게 아니에요. 자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가족들 평소에는 형제가 많으면은 짐이에요, 저도 형제가 많은 집안에 살 때에 내 혼자 독자면 얼마나 좋겠나 했는데 내 처는 무 남 독녀에요 ㅎ ㅎ 그런데 진짜 가족은 언제 힘이 되요?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려서 남들이 다 떠나는 순간 가족은 연락 오는 그런 것이 가족의 힘이에요.
그때에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해, 교회 생활은 그런 거에요. 여러분들이 편안하고 잘되고 하면은 교회 생활 할 때에 짐이에요. 반듯이 짐으로 느껴야 되요 그렇잖아요. 내가 예수 안 믿으면은 이 휴일에 교인이 상 당했어, 갈 필요가 없잖아, 예수 믿고 가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가야 되잖아요, 또 부조를 할 필요도 없잖아요 예수 안 믿으면은, 그래 교인이기 때문에 해야 되요, 짐이라고. 그런데 자기 중심으로 이기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내가 그래 사는 것은 손해고 잘못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교회가 언제 느껴 지는가 하면은 내가 의지할 힘이 없는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이용의 가치로 여기다가 자기의 이용의 대상이 되지 않는 순간 떠날 때에, 그때에 목사님과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힘이 될 때, 내가 뭔가 잘 못했을 때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 하면서 너 때문에 그래 너 안 돼, 하는데 교회 왔더니만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야 그럴 수 있어,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어, 누구든지 약해서 그럴 수 있어, 그럴 때에 야 내가 참 예수 잘 믿었구나, 천국의 맛을 보잖아요.
10. 천국을 “마라나 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실존이 되고, 삶이 되기를 원하는 이게 기독교의 힘이다. 하늘의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가는데 틀림없이 세상의 저항이 온다, 그게 좁은 길이다. 주님의 재림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은 그러잖아요, 여러분들이 바르게 살고 제대로 살면은 전부 잘 산다 했다, 약해서 실족하게 되면은 전부 언제 그랬냐 손가락질 할 때에 집에 오면은 엄마가 뭐라 그래요, 괜찮아 천금 같은 내 아들이야, 여러분들이 왜 고향을 찾아가요, 여러분들이 고향에 찾아가는 이유는 세상에서 늘 경쟁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내가 올바른 길을 걸어 가야 하는데 내가 연약함 때문에 늘 죄책 속에 있는데 엄마한테 갔더니만 나를 그냥 받아 줘서 안식을 누려, 여러분 주일날 예배가 그런 거에요. 왔더니만 교회 왔더니만 목사님이 너 그 따위로 신앙 생활해서 복 받겠어, 장로가 되어서 그래 가 돼, 집사가 되어서 그래, 권사가 되어서 그래, 그러면 목사님이 원하는 종교적인 과업은 잘 성취가 되지만은 쉼은 없잖아요.
내가 장로고 권사이지만은 내가 약해서 그럴 때에 목사님 말씀 들으니까 그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야, 그 쉼을 얻으려고 주일날 오는 거에요, 주일날은 종교적인 옛 법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고향을 찾는 거와 같은 안식이 교회 안에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잖아요. 그때 우리는 뭐라고 그래요, 내가 이 맛본 천국을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래서 이것이 우리의 실존이 되고,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기독교의 힘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쇠도끼를 건지는 엘리야와 같이 능력을 가지고 받아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을 인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신명기의 말씀에 의하면 그 표적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믿게 하시고, 그의 말에 성취함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땅에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맛보며 살도록 성경은 우리 속에 기록이 된 거에요.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 믿으면 그 기적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서 그의 말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모든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는 그 말씀을 받아 드릴 때에 우리는 내 중심적인 이기적인 생각에서 받지 못하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가는데 틀림없이 세상의 저항이 와요, 그게 좁은 길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복과 천국에 가면 상급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날 부끄러운 구원을 당하지 않도록, 천국에 들어가는 기쁨이 더 큰 기쁨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자녀를 이래 길러 보면은 사실은 제가 좀 못되어서 그런지 자녀 때문에 상처받을 일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부모는 죽을 때까지 부모 노릇 포기 안 해요, 그게 피의 힘이에요. 신앙 생활 하면은 세상적으로 상처받을 일이 있지만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과 가족으로 여기는 그것을 포기하지 안 해요. 왜 그게 성령의 힘이고, 그 성령의 힘은 예수님의 재림을 확실히 믿도록 교회를 선물로 준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요, 이런 자들이 주일마다 드리는 기도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곳이 좋사오니 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다니면서 천국을 거저 약간 맛만 보세요.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이 마음에서 맛본 천국이 내 삶의 실제화되고, 내 삶의 전부가 되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남들이 걸어가지 않는 그길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기대하며 걸어가는 그길, 나를 욕하고 함께하면 할수록 손해가 되는 그 사람도 나와 함께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임을 알아서,
교인을 이용하지 않는 목회, 옆의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 삶,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재림의 날 부끄러운 구원을 당하지 않고,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이 그런 것이었네요, 그 천국의 희락이 누구보다도 큰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서 저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 속에 이 믿음이 점점 더 커서 내가 좀 더 수고해야 다른 사람이 편하다 하는 사람이 지치지 않도록 말씀을 들을 때마다 여러분들의 신앙이 점점 성숙 되어져서 세례요한 때부터 침노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복의 수단으로 헌금이 아니고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서 우리 가운데 능력이 좀 부족해서 부유하지 못한 자들도 교회 생활을 통해서 부유한 친척을 둔 자가 누리는 부유함을 교회를 통해서 누리는 복된 신앙 생활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짐, 작은 짐은 스스로 지고, 큰 짐은 함께 나누어 지는 복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종교적인 과업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이 된 것에 대한 믿음이 더욱 더 커지게 하시고, 우리의 가치판단과 우리의 선택에서 이러한 가치의 판단으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침노 당하는 복된 교회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 것과 십자가에서 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가족이 된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고, 세상에서는 비록 환란을 당할지라도 주님의 재림을 확실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승리해서 천국에 입성의 기쁨이 그러지 못한 자들이 누리지 못하는 그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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