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나를 기념하라
고린도전서 11:23-26
2017년 11월 19일 주일 낮 예배
No. 341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아멘
●미국 의회 리차드 핼버슨 목사 1984년도에 비판을 했다. 그리스에서는 철학, 로마에선 제도, 유럽은 문화, 미국은 기업이 되었다는 비판이었다. 떡을 떼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 나를 위하여 기념하라, 잔을 나누면서 내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강남에 큰 교회가 세습을 한다고 요즘 많은 비난이 있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그 사건을 다루면서 미국 의회 목사 리차드 핼버슨 목사의 1984년도 미국 장로교 총회에서 행한 설교문을 인용해서 비판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 비판의 내용이 뭐냐 하면은 기독교가 그리스로 와서는 철학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로마로 옮겨 가서는 기독교가 제도가 되어 버렸다. 유럽으로 건너가서 기독교는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으로 와서는 기독교가 기업이 되어 버렸다. 라는 비판의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은 기독교의 2천년 역사를 가장 잘 비판하고 요약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서도 복음은 교리가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삶,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설교는 여러분들에게 교리를 설명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 해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여러분들의 전통 제도와 전통과 예식에 의해서 예전을 고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윤리와 문화가 아닙니다. 더더구나 복음은 기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장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여러분들은 복 받기 위해서 예수 믿지 말고,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라는 그런 말씀들을 아마 이러한 정리 속에서 나오는 설교들을 얼마나 여러분들이 받아 드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이 비판의 글 속에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야 되는 것이 그러면은 기독교는 무엇인가?
1. 기독교는 철학도, 제도도 문화도, 기업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복음은 무엇인가? 바울은 성찬이 예수님에게 받은 것이라 했다. 떡을 떼어 주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 나를 위하여 기념하라는 것은 아남네시스라는 그 사건에 내포 되어서 우리 가운데 재현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기독교가 철학이 아니고, 기독교가 제도가 아니고, 기독교가 문화가 아니고, 기독교가 기업이 아니라면은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복음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이 없으면은 그저 들어 난 현상에 대한 비판만 난무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성찬 예식을 행하는데 이 성찬 예식을 행하면서 하시는 이 말씀이 예수님이 이루신 그리스도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아주 적나라하게 정확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성찬 예식을 행하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자기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래요, 예수님에게 받은 것이다. 여러분 설교는 목사님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하고 말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 편들어 준다고 하는 덕담을 듣는 것이 아니고, 들어야 할 말을 듣는 시간이 설교의 시간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언제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말씀을 해야 된다. 여러분 여기에 보면은 예수님에게 받은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떡을 떼어 주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 나를 위하여 기념하라, 그리고 잔을 나누어 주면서 내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라고 말을 하는데 여기 이 기념한다는 말 때문에 성찬식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츠빙글리를 따라야 되느냐, 칼빈을 따라야 되느냐, 루트를 따라야 되느냐, 천주교를 따라야 되느냐, 아마 이런 설교를 교회에 좀 다닌 분들은 다 기억하리라고 생각해요. 그저 회상하고 기념하는 정도다, 또 칼빈은 영적 임재다.
떠는 순간 성령이 영적으로 임재 하는 것이다. 또 천주교에서는 실제로 먹는 순간 피가 되고 주님의 살이 되기 때문에 이 피를 흘리면은 안 되기 때문에 사제들만 먹고 성도들에게 주지 않는 이런 교리 논쟁이 아닙니다. 기념이라는 말을 여러분들이 잘 또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한국 교회는 성찬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얼마나 고통을 받으셨는가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성찬을 받으면은 은혜 받았다 라고 말하는데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당하신 그 고난을 회상하며 그 감정을 잠시 가지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 기념이라는 말 아남네시스라는 말은 그 사건에 내포 되어져서 그 사건이 우리 가운데 재현되기를 바란다 이런 말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언어의 습관인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하신 사역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드리나 받지 아니하나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마치 실존한 사실인 거와 같이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하라고 창조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교리적인 논쟁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2천년 전에 하나님이신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우리에게 친히 나태 내 주신 것에 대해서 받아 드리는 순간 감사가 있고 우리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2. 성찬을 땔 때마다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주심을 기대하는 삶을 재현하는 것이 성찬이다. 삶의 중요한 모든 가치판단을 항상 가족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그 삶 자체가 예배라는 것이다.
뿐만 이니라 우리를 고아와 같이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버려 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오순절에 임한 그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짐으로 말미암아 혈연을 넘어서는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시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또 그러한 삶을 살도록 우리 이 성찬을 땔 때마다 나는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내 생각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주심을 기대하며 사는 삶을 재현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이제는 혈연의 가족만이 소중하지 않고, 내 혈연의 가족의 소중함과 같이 타인도 동일한 가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성찬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저 나는 기독교인이다, 예배다 봉사다 열심히 종교적인 예전과 종교적인 제도를 고수하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중요한 모든 가치판단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 때에 항상 가족의 눈으로 모든 것을 가치판단하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그 삶 자체가 예배라는 겁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힘을 성찬과 예배에서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가 되어야 됩니다.
이런 삶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목사이지만은 교회 안에서나 밖의 어떤 사건이 생기면은 내가 살아온 관습대로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뭡니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족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많은 해석이 달라져요. 또 생각이 굉장히 많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성령의 충만함이고, 지배함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언젠가 이야기 했지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것만이, 각박해 져 버렸잖아요. 여러분 얼마나 우리 신문지상에서 날 때에 그것이 참 혀를 차면서 우리가 보았든 기사가 있지 않습니까?
네 사람이 해외에 골프 치러 가려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 기사가 중간에 심 정지를 당했는데 119에 신고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뒤에 오는 택시를 잡아서 가 버렸잖아요. 그래서 그 택시 기사는 죽었잖아요. 여러분 왜 그랬습니까, 우리가 이럴 때에 세상이 참 각박하다 이제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게 아니에요.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 우리가 그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적 사건으로 우리가 해석을 해야 되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그것 혀 찬다고 세상이 달라집니까 저는 그들 중에 틀림없이 기독교인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해요. 어쩌면은 예배를 드리고 허겁지겁 가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겠어요.
3. 그리스도의 사건 성찬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그 택시 기사가 내 아버지 형제 같고 가족이라면은 못 가더라도 하겠지요. 그런 삶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하는 것이다. 먹을 것이 있고 마실 것이 있은즉 자족하는 것이 경건에 유익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여러분 그럴 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택시 기사가 심 정지 당하여 죽어 져 가는 것보다 내가 비행기 놓쳐서 골프 못 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타인이잖아요. 그런데 그 순간에 나도 그러고 싶은데 목사인 나도 내가 편하고 싶고 나에게 이익이 되고, 뭔가 거추장스러운 것은 싫은데 그리스도의 이 사건 성찬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은 그 택시 기사가 내 아버지 같고 내 형제 같고 내 가족이라면은 못 가더라도 하겠지요. 그런 삶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하는 거다 이 말입니다. 교회도 세상과 같이 똑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교회는 달라야 되겠지요.
여러분들이 누군가가 연약해서 잘못하고 이럴 때에 참 싫고 힘들고 화가 나지요. 그런데 그가 내 자녀라면은 우리의 그 사건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 져지요. 이게 거듭남의 출발입니다. 바로 이런 복음이 선포되고 이 복음에 순종할 때 우리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교회가 그래야 된다는 거에요. 나를 기념하라는 말은 그런 말씀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놓치고 성찬에 참여한다면은 성찬에 합당치 않고, 먹고 마시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런 것만이 아닙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왜 우리가 전도를 해야 되는가, 왜 복음을 전해야 되는가, 우리는 그저 미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교회의 성장과 기업과 같이 마치 커지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고 교회만 커지면은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기독교가 기업이 되는 가치관 속에서 바라보는 거에요.
원래의 창조의 에덴에서의 그 모습,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에게 주신 그 모습 속에 우리의 인간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복 받으려고 교회 다니지 마세요, 사랑하려고 다니세요. 행복 하려고 다니세요 라고 말을 할 때에 어떤 분들은 그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고래의 전통을 버리지 못하면은 우리가 복 받는 것을 싫어하는가 이런다고요. 그 선포된 메시지를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고 내 자신을 한번 살펴 보라고요. 여러분들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생명입니다. 우리가 생존의 위협이 오면요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게 광야 생활입니다.
그 생존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지면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살아야 되는가, 내가 왜 돈을 벌어야 되는가, 성경은 이 질문을 하라는 거에요 그게 신명기 입니다. 디모데전서 입니다. 너에게 먹을 것이 있고 마실 것이 있은즉 자족하는 것이 경건에 유익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여러분 왜 이런 말씀을 했는가, 저는 예수를 믿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들은 예수를 왜 믿어요? 저는 예수 믿는 이유가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사람이 살면서요 돈 쓰면서 가장 행복해요, 누가 돈 씁니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 노릇을 해 주는 것을 믿는 사람만이 돈을 제대로 쓸 수 있어요. 그 믿음이 없으면은 소유의 즐거움으로 살아요.
4.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멋지게 살았노라, 이런 고백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이루신 그 사건이 나를 지배하도록 해야 된다. 큰 교회가 욕 들어먹는 것이 아니라 존경 받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신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이 된 사회에는 소유의 즐거움으로 살게 되면은 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또 다른 능력이 되어져서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는 사회가 되어져 버린다고요, 그 사회가 되면은 파멸이 된다는 거에요. 그 동안 우리는 60년대 너무나 가난한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성실해야 되고 근면해야 되고, 열심히 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에 만능 복음이에요. 88올림픽을 지나고 90년 되고 2천년 되는 순간에 우리가 가나안의 삶으로 전환 되어져야 되는데 전환되지 못했어요. 왜 교회가 복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먹고 살만하면은 내가 왜 부자가 되어야 되는가, 이 생각을 해야 되요.
우리가 어릴 때에는 60년대 70년대에는 아이들에게 뭘 가르쳤는가 하면은 저축하는 것을 가르쳤어요. 돈을 절약하는 것을 가르쳤어요. 그러면 유대인 됩니다, 80년 90년 되면서 무엇을 가르쳐야 되는가 하면은 소비 교육을 시켰어야 되요, 네가 열심히 번 것 가운데 일부는 너를 위해서 쓸 줄 알아야 되요. 성경은 수고의 분복을 누리라고 그래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일부를 드릴 줄도 알아야 되요, 또 일부는 부모와 형제를 위해서도 쓸 줄 알아야 되요. 일부는 친구들 하고도 쓸 줄 알아야 되요. 이런 소비 교육이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영원한 가족으로서의 삶을 놓쳐 버린 거에요. 왜 그저 절약하고 모으고 열심히 사는 60년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걷는 그때에 하나님만 바라보았든 거에요.
오늘도 성찬 하시면서 여러분들이 왜 우리가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어야 되는가, 교리가 아니고요 여러분들의 삶이 수고의 분복을 누리며 살아서 여러분들의 마지막 생애를 살 때에 참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멋지게 살았노라, 이런 고백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이루신 그 사건이 나를 지배하도록 해야 되요. 성찬의 회수가 참여하고 설교를 들은 회수가 늘어날수록 참 균형 있는 멋있는 삶을 살아가야 되요. 우리나라의 가장 지금 필요한 것이 뭡니까 여러분, 부자가 존경 받는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부자가 욕 들어먹는 곳이 아니고, 부자가 존경 받는 사회가 하나님이 지배하는 사회에요.
큰 교회가 욕 들어먹는 것이 아니라 존경 받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에요. 우리가 참 가난한 시절에 교회가 그렇게 되어졌어요.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6.25 세월 긴 우리 나라의 세월 속에 사람들은 더 많은 땅을 확보하고 더 많은 돈을 곡간에 채우려고만 살았든 우리 사회의 복음이 들어오면서 초창기에 제가요 80년대 90년 초반 이때에 내가 강도사 부목사였는데 제가 이런 설교를 신학 졸업하면서부터 했거든요, 그 교회 변화 되더라고. 권사님 한 분이 지금도 여러분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는 대로 고린도전서에 그러잖아요. 너희 가운데 문벌이 좋거나 능력이 있는 자가 많지 않다.
세상에 비해서 학벌이 좋거나 능력이 있거나 가문이 좋은 사람들이 교회에 안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그런 사람이 없는가, 있다 말입니다. 그럴 때에 위화감이 조성되면은 합당치 않고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에서 이야기 했어요. 올바른 성찬이 시행 되었을 때에 지금도 저는 참 우리 한국 교회 그런 분들 많았어요. 60쯤 먹으면은 사람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도 있거든요. 연말이 되어지면은 그 권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목사님 교회 봉고 가지고 우리 집에 와 봐요 이런다고, 가면은 권사님이 쌀 10kg 20kg 짜리 많이 해 놔 놓고, 김장 많이 해 놔 놓고, 봉투 준비 해 놨다가 교회에 어려운 사람들 가정을 찾아 다니면서 내려 주고 손잡고 기도하고 그런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5. 오늘날 큰 교회가 욕먹고 부자가 비판을 받는 이 불행한 사태가 도래 했는데도 성찬에 의미 없이 참여하는 것은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자기 자식이 귀한 만큼 타인도 귀하게 여기는 삶 속에 감히 범인이 살지 못하는 거룩이 거기 보인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교회가 세워 진다.
교회에 존경 받는 부자들이 참 하나 둘 생겨났다고요.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 중의 하나 명동의 영락교회 아닙니까,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든 교회인데 그 교회가 오늘날 수조 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교회인데요 돌아가셨잖아요, 한국 유리의 최창근 장로님 그 교회 헌금한 것이 4천억이래요. 한경직 목사님이 어느 날 교회 주일 학교만 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 설교를 했더니만 지금도 응암동 그 자락에 있는 영락 고등학교를 사 가지고 목사님 제가 이 학교 사서 교회에 드릴 테니까 목사님이 원하는 대로 한번 해보세요. 여러분 그런 일들이 한번 보세요, 내 혈연의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족으로 여겨 질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었고, 그 복음의 능력이 상실 되어져 버린 거에요.
그래서 오늘날 큰 교회가 욕먹고 부자가 비판을 받는 이 불행한 사태가 도래 했는데도 성찬에 의미 없이 참여한다고, 죄를 먹고 마시는 거에요. 그 장로님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을 한다고 했을 때에 자녀들의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예전에는 부자 아버지 믿고 자기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모르는 썩은 동태눈을 가지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그런 결심을 하고 난 뒤에는 눈에 생기가 돌더라는 거에요. 누가 그런 삶을 사는가, 교회에 저는 우리 교회에 정말 이런 부자들이 나타나기를 바래요. 어머니와 같은 권사님, 할아버지와 같은 장로님, 실제로 우리 교회에 이런 변화가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는 거에요.
이 설교를 듣고 여러분들이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부자들을 비판한다면은 설교 거꾸로 들은 거에요. 여러분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뭐 자기 잘난 것 자랑하는 것, 뒤 돌아서서 욕합니다. 저는 왜 예수 믿는가, 존경 받으려고, 누가 존경 받는가, 큰 일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기업이 된 교회 속에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자기 자식이 귀한 만큼 타인도 귀하게 여기는 삶 속에 감히 범인이 살지 못하는 거룩이 거기 보이잖아요. 80년 70년 까지만 해도 그런 장로님 권사님 많습니다. 교회가 하나 세워 질 때마다 그런 분들에 의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교회가 세워 졌다고요. 저는 우리 교회의 그런 어머니 같은 권사님이 속히 나오도록 기도하는 거에요.
그 권사님이 연말 되고 이러면은 명절만 되면 저를 불러서 그렇게 해주면은 교회는요 젊은 사람은 말이 많게 되어져 있어요, 어느 사회에도, 뭐 목사님이 어떻니 교회가 어떻니 하면은 그 권사님이 집사님 목사님에게 그런 말하는 것 아니야, 교회에게 그런 말 하는 것 아니야, 그런다고 안 좋아져, 그러면 교회가 잠잠 해져요. 왜 시끄럽습니까, 존경 받는 어른이 상실 되었어요. 아이들은요 지만 알아요, 어른은 자기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성찬에서 예배의 회수가 늘어날수록 이런 멋있는 삶, 저는 왜 예수 믿는가 하면은 돈 쓰는 재미 누리며 살라고, 나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 내 때문에 풍족한 삶을 누리도록 우리 노회에 와서 보세요. 밥은 제가 다 사 줘요, 돈은 제가 다 냅니다. 얼마나 그러고도 유세하지 안 해요.
6.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버지 되게 하셨고, 성령으로 가족 되게 한 것은 원래 인간의 삶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종교적인 예전과 전통만 고수하는 유대교에게 저항했든 예수님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정결케 되어서 소유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된다.
성찬이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것이 되도록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릴 때에 경제 교육 절약과 돈을 많이 모으는 교육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용돈을 11조도 할 줄 알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쓸 줄도 알고, 부모와 형제에게 나눌 줄도 알고 친구들에게 밥 살 줄도 알고,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버지 되게 하셨고, 성령으로 가족 되게 한 것은 이런 원래의 인간의 삶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저 종교적인 예전과 전통만 고수하는 유대교에게 저항했든 것이 예수님이지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존경 받는 교회되도록 여러분들의 삶이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존경하는 생애를 사는 삶이 성공한 생애고, 승리한 생애입니다.
오늘도 이 성찬에 이것이 없다면은 우리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가 정결케 되어져서 소유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세상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소비라는 용어가 여러분들에게는 굉장히 나쁜 용어로 들려 질지 몰라도 정말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올바른 소비의 삶은, 이런 삶이 되어져서 우리 교회가 좀 정말 언제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문제도 있고 말도 많아요. 누군가 한번 어험 기침하면은 부끄럽고 잠잠해 질 수 있는 그런 교회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사람의 인생이 70 이요, 건강하면 80 이요 그러나 마른 풀과 같다고 하신 주님, 100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의 인생이 천년만년 살 것같이 수고의 분복을 누리 보지도 못하고, 남과 더불어 사는 행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쌓기만 하든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내 혈연의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가족으로 여기는 그 속에 정의가 물같이 공법이 하수같이 흐르게 하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하나님이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살 찢음으로 친히 계시해 주시고, 문벌이 없고 능력이 없는 우리가 이 복음의 비밀을 알아서 미련한 자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멸망 받은 자들이 미련하게 보이는 그 십자가를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로 여기며 살아가도록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정말 귀한 물질을 주님 앞에 드렸습니다.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이제는 좀 든든히 세워져서 어떠한 우리 가운데 한 지체가 주님 앞에 부름을 받더라도, 교회에 장로님이 계시고, 권사님이 계시고,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있기 때문에 편히 주님 앞에 갑니다. 기쁨으로 다시 만나기를 원합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복된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수단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보혈을 흘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남들보다 좀더 가지면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하는 신기루와 같은 인생을 혈연의 가족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가족으로 여기는 그 삶이야말로 진정 모든 사람의 존경 받는 생애가 되는 것을 깨닫도록 그러한 삶을 살도록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 됨을 만들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영원한 가족이 되도록 그 중한 고난을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가치 없는 자를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그 사건이 2천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이 오늘 우리의 삶에 재현 되도록 타인을 내 혈연의 가족과 같이 소중히 여기도록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성찬에 참여하면서 소유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했든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과, 아름다운 더불어 누리는 소비의 올바른 생애를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들어내기를 원하며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교회를 통해서 맛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가진 자들이 더 가짐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 까지 빼앗기는 탄식하는 이 땅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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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불꽃(열왕기하 22:14-20(22:1-23:30)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7.12.02 |
죄인에 대한 심판이냐? 죄에 대한 심판이냐?(열왕기하 21장 1-9절)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7.11.15 |
무엇을 위해 예수를 믿는가?(열왕기하 18장 17-25절. 18-20장 참조)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7.11.10 |
여호와 이레의 신앙 (열왕기하 17장 34-41절(14-17장 참조)종교개혁 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7.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