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마지막 불꽃
열왕기하 22:14-20(22:1-23:30)
2017년 11월 26일 주일 낮 예배
No. 342
14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15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
16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17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18너희를 보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들은 말들에 대하여는
19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 아멘
●요시아 왕: 아버지 아몬가 반역으로 죽임을 당함으로 8세 왕이 되어 31년간 유다를 통치. 요시아의 개혁.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 책 발견. 산당과 우상과 남창의 집을 철폐. 백성들과 요시아의 차이. 여선지자 훌다의 예언. 요시아는 므깃도에서 바로느고의 화살 맞아 죽었다.
이제 열왕기도 우리가 다음주면은 끝나는데 열왕기를 왜 강해 했는가, 또 우리가 열왕기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왜 들었는가 예배 때마다 선포했든 솔로몬 시대에는 브엘세바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무화과나무 아래와 포도 나무 아래에서 모든 백성이 편안히 거하였더라, 이 솔로몬 시대에는 여로보암 이세의 시대와 달리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 이스라엘의 어떠한 사람들도 먹고 사는 일에는 걱정이 없는 그런 편안한 시대였더라, 라고 말을 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되고, 열왕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가 하면은 또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무엇인가 하면은 이 땅에서 우리가 신앙 생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은 어느 누구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런 편안한 삶,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1. 성전을 통치하는 18년이 되면서부터 수리를 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했다. 율법 책을 읽을 때 옷을 찢고 통곡을 했다. 그렇게 회개하고 난 뒤에 행한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갱신했다. 밝은 빛을 비추어 주면서 이스라엘은 암흑기로 들어가 멸망 당한다.
우리가 참 여로보암 시대에는 일부 사람들은 잘 살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겨서 허덕이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IMF 이후에 중산층이 무너진 우리나라에 정말 이 열왕기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하고, 또 오늘날 교회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는 쌤풀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과 제가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과연 우리 교회의 그런 것이 이루어졌는가, 또 이 땅에 기독교인의 숫자가 많아 지고 예배를 드리는 숫자가 많을수록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는가 우리가 이런 부분에 대한 대답이 오늘 요시아의 관한 말씀입니다. 요시아는 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몬이 반역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서 졸지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31년 동안 유다를 통치를 했는데, 어쩌면은 그렇게 왕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18년 동안에는 왕으로서의 행세를 별로 하지 못했든 것 같아요. 그의 사역을 쭉 22장과 23장을 읽어 보면은 18년이 되었을 때 비로서 그는 성전을 수리했다, 이렇게 말을 해요. 예루살렘 성전이 아버지 아몬의 시대와 가장 길게 통치했든 55년 동안 통치했든 할아버지 므낫세 시대에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아마 벽이 무너지고 또 거미줄이 쳐 있고 이런 방치되어 있는 성전을 그가 통치하는 18년이 되면서부터 수리를 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 속에도 보겠지만은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매우 사람들에게 귀하게 다뤄 지지 안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성경을 여러분들이 얼마나 읽고 사랑하는지 모르겠는데 가지고는 있는데 책장 한 귀퉁이만 읽는다든지 예배당에 올 때에 그저 들고 오는 소장품 정도로 생각하는 거와 같은 시대가 그 시대가 아니었겠나, 율법 책을 읽게 만들 때 그는 그 율법 책을 읽을 때 옷을 찢고 통곡을 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가 그렇게 회개하고 난 뒤에 행한 일이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갱신했다. 23장에 그렇게 말합니다. 언약을 갱신하면서 행한 일이 요시아의 여러가지 개혁이었습니다. 모든 산당을 철폐 하고 우상을 없애 버리기도 하고, 전부 이러한 개혁을 하고,
그는 여호수아 이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지 아니하였든 유월절 절기를 지켰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것이 요시아가 행한 사역인데 어쩌면은 열왕기는요 요시아의 개혁을 말하려고 쭉 기록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요시아는 마지막 정말 불꽃과 같이 정말 환하게 비춰 주는 그런 불꽃이 요시아 이였습니다. 우리 어릴 때에는 백열구 전등을 켰지요, 그 백열구 전등이 수명이 다하면은 마지막에 탁 소리 나면서 엄청난 불꽃을 발하고 꺼져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 요시아는 그와 같았어요. 마지막 그가 밝은 빛을 비추어 주면서 이스라엘은 암흑기로 들어가서 멸망 당합니다.
2. 요시아가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애굽과 바벨론의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완전히 허수아비 왕들로 세워 지다가 곧바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그런 비운을 맞이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로부터 싸여 온 적폐 때문에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 인들의 삶이 요시아와 같은 그러한 불꽃이 우리의 삶이어야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해도 또 이렇게 믿고 살아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종말은 이 세상에 있다고,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고 발버둥을 쳐도 우리의 끝은 죽음이듯이 요즘 보니까 뭐 저스티스리그가 보니까 저도 목요일 날 목사님들하고 성경 공부 하는데 이번 주에 그 영화를 봤어요 보니까 뭐 슈퍼맨, 원더우먼, 뭐 전부 함께 모아서 지구를 구하는 그런 일들을 하더라고요. 세상에는 지구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끝은 종말인데 그런데도 왜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되고 우리가 살아가야 되는가? 요시아의 삶 속에서 우리가 그 답을 찾아야만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잠시 잠깐 이라도 우리에게 경험 되어지고, 솔로몬 시대와 같이 어느 누구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죽어서 가는 그 평강이 우리 가운데 조금이라도 맛보아 지기 때문이다 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이 요시아가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애굽과 바벨론의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완전히 허수아비 왕들로 세워 지다가 곧바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그런 비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시아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오늘 읽은 본문은요 예언자 훌다 여 선지라고 말합니다.
아주 독특하게 구약에는 여자선지 훌다의 예언이 있는데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멸망을 당하는 줄 아니, 조상들의 지은 죄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연자 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로부터 싸여 온 적폐 때문에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세상이 왜 멸망을 당하는가 하면은 어떤 사건 하나 어떤 일하나 때문에 멸망 당하는 게 아니고요, 싸여 온 적폐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제가 이런 설교를 하고 10년 동안 이런 목회를 해 와도, 여러분들 모두가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지 못하는 것은 그 동안 여러분들이 기독교가 가져온 여러 가지 적폐들이 있어요.
사람보다는 예전을 중요시 여기고, 율법의 취지보다는 조문에 더 치중을 하고, 사람보다는 종교적인 성과를 더 중요시 여기면서 선포된 많은 말씀들이 있거든요, 그것이 싸여 와서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가 초래되는 겁니다. 우리는 무언가 어떤 것들의 종말과 멸망이 오면은 어떤 한 사건 어떤 한 일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의 멸망이 어떻게 고종의 무능에 만이 이겠습니까, 조선이 그 동안 쌓아 온 적폐의 결과로 종말을 고한 것이지요.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망이 조상들의 죄, 이 말은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녀들을 심판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부터 지어 온 그 우상숭배의 적폐의 결말로서 멸망을 당한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3. 애굽이 바벨론을 치러 올라 갈 때에 요시아에게 길을 열어 달라 한다. 애굽이 올라가는 북상하는 길을 요시아가 막다가 바로느고의 화살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화액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 품에 안겨서 평안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대려 가신다.
그 멸망을 당하는 가운데에 여선지 훌다는 뭐라는 가 하면은 요시아만은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이 여겨서 왕의 묘실로 들어가고, 이 왕국의 멸망 하나님이 이루신 죄앙을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셨다 라고 말씀을 하셔요. 우리는 요시아가 맨 마지막에 어떠한 죽음을 이르는가 하면은 애굽과 바벨론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꼼짝 달싹 못했어요. 그래서 애굽이 바벨론을 치러 올라 갈 때에 요시아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우리가 바벨론을 치러 올라 갈 때에 요시아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우리가 바벨론을 치러 가는데 너희가 길을 좀 열어 다오, 왜냐하면은 그 길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있었든 그 지역 그 이쪽 지역 트랜스요르단 지역이라고 가장 절약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그곳에 가서 애굽이 올라가는 북상하는 길을 요시야가 막다가 바로느고의 화살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이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중국을 치러 올라가면서 조선의 길을 열어 달라고 한 거와 같이 그 바람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거와 같은 시대가 그 시대였다 이런 말입니다. 요시아가 그렇게 죽임을 당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그런 개혁과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사는 요시아가 화살을 맞아서 죽느냐, 라고 생각을 하지만은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이런 말씀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화액전에 취하여 감을 당한다. 오늘도 요시아가 그렇게 죽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눈으로 보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지 아니하고 왕의 묘실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린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 이 시대에 의로운 사람이 죽을 때 별로 죄진 사람이 죽을 때에는 그게 하나님의 징계나 진노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화액을 당하는 세상의 심판을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 품에 안겨서 평안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대려 가신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왜 요시아와 같은 삶을 살아야 되는가, 멸망 당하는 세상 속에서 왜 우리는 요시아와 같은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멸망 당하는 세상 속에서 왜 우리는 바로 살아야 되는가, 이 세상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이런 신앙 생활 해 나가려면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시고 다른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며 살아간다고 해서 교회는 변화 되지도 않고 세상은 변화 되지도 안 해요. 그런데 왜 우리가 그래 살아야 되는가, 그래 살아야만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땅에만 아니고, 죽음 이후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모두다 자기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교인들을 종교적인 성장 과업 성취에 도구로 여기는 이런 세상 명분은 얼마나 좋아요.
4.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그 요시아의 찬란함이 꺼지고 나니까 암흑기에 도달했는가? 왕 혼자 회개하고 율법을 계시하고,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고 하고, 백성들은 그저 따라갔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다, 적폐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 된다고,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한다는 슬로곤을 내걸면서 교인들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이 세상 속에서 교회가 망하더라도, 교회가 무너지더라도, 하나님이 교회에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면서 교인들 편하면 됐지, 교인들 사랑하는 이런 삶, 교인들도 몰라주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보면 바보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은 왜 살아야 되는가, 구원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요시아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인가 한번쯤은 돌이켜 보는 그런 주일이 되야 됩니다. 오늘 요시아의 이 신앙이 왜 실패를 했는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그 요시아의 찬란함이 꺼지고 나니까 암흑기에 도달했는가?
여러분 이것은 22장과 23장을 집에 가서 읽어 보시면은 분명히 알게 됩니다. 요시아의 개혁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이 뭐냐 하면은 왕이 왕이 왕 혼자 회개하고 왕 혼자 율법을 계시하고, 왕 혼자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백성들은 그저 따라갔기 때문이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개혁이 일어나지 안 한 거에요, 적폐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우리 교회에 여러분 이 정도의 숫자 내년에는 여러분들이 전도해서 교회를 채우려고 해요. 왜 해야 되는가, 이유는 간단해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먹고 마시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런 천국의 맛을 조금이라도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의 다니면서 그런 신앙 생활이 없다면은 그걸 경험하지 못한다면은 목사님 혼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회복이 있는 잔치를 하면서 여러분들 중에 처음에는 왜 목사님이 강의를 안 하는가, 이런 사람이 있다라고, 적폐지요, 그 동안 싸여 온 거지요, 목사님은 가르치고 여러분들은 그저 듣기만 하면 된다는 그 생각으로 접근을 하는 거지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의 주인이고 주최가 되야 되요. 그래서 이번 회복이 있는 잔치에는 제가 뭐합니까 여러분들이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고민하고 만들어 보라는 거에요. 그래야 그런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설교 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목사님들이 세미나하고 떠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왜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구원이 뭔가를 생각하고 그 일에 앞장서야 됩니다. 요시아의 개혁에 실패를 22장과 23장을 읽어 보세요 끊임없이 왕이 왕이 왕이 했다는 거에요. 왕이 하니까 마지못해서 따라온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에 제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믿으세요, 내 힘으로 살려고 그저 돈만 많이 벌면 내 삶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따라오면 안 되요. 여러분들의 삶에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천금이 생긴다고 해서 눈물 흘릴 일이 있으면은 안 하는 삶.
5. 요시아의 회개는 훌다의 말 속에 또 요시아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했다는 말씀 속에 분명한 계시가 있다. 훌다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이 이제는 빈터 사람이 살지 않는 그런 황무지가 되지만은 요시아는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부드러워서 옷을 찢고 회개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그 생활의 주최가 되야 되요. 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 때에 나 하나 편 하려고 빠지면은 누군가가 힘 든다고 하는 이런 가족애 이런 것이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거에요. 이게 목사님의 설교만 있어서는 안 된다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이 요시아는 이 모든 개혁의 주최였어요. 백성들은 구경꾼이었어요. 반대는 안 해도 그 일에 동참하지 안 했기 때문에 조상들의 적폐가 해결되지 않고,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고, 요시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두번째로 요시아의 일은 회개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면은 훌다의 말 속에 또 요시아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했다는 말씀 속에 분명한 계시가 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읽으면은 성경 말씀을 들으면은 개혁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열심히 제자 훈련을 하고 성경을 읽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다 보니까 율법 책을 발견한 거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과 타인을 가족으로 여기며 사는 삶을 살다 보면은 어 말씀이 맞네, 목사님의 설교가 이런 것이었네,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에요. 오늘 우리 최집사님이 기도를 하시면서 그랬잖아요, 이제 뭔가 좀 알 것 같다고, 성경을 보고 깨달아서 행하는 게 아니에요. 복음 안에서 살다 보면은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구원을 이루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요.
한국의 교인들은요 그저 어디에 진리가 있는가 하고 좇아만 다녀요, 순종은 안 해요, 한번 살아 보세요, 내가 열심히 해 가지고 돈 벌어야만이 내 삶이 안전하고 내 자식이 편안하게 산다고 하는 이 환상 이 적폐를 벗어 버리고요,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며 한번 살아 보라고요, 그러면은 이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이고, 구원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어져요.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짐이 될 때에 가족의 눈으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되로 받고 말로 주지 안 해요. 욕을 하는 그 사람을 오래 참고 기다려요, 그때에 목사님이 가족으로 여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이라는 것을 비로서 깨닫게 되는 거에요.
요시아는 율법 책을 보고 성전을 수리한 게 아닙니다. 성전을 수리하다 보니까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된 거에요. 훌다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이 이제는 빈터 사람이 살지 않는 그런 황무지가 되지만은 요시아는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부드러워서 옷을 찢고 회개했다는 거에요. 완악한 마음에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날 수 없어요. 부드러운 마음이어야 되요. 옥토와 같은 마음이어야 되요. 여러분들의 완악한 심령, 부드러운 마음이 뭔가, 말씀 앞에 겸손 해지는 마음입니다. 내가 그 동안 믿어 왔든 신앙의 전통 가치 이것으로 성경을 보지 말고요, 복음으로서 그것을 비판해야 되요. 내가 믿어 온 내가 가져왔든 가치관을 포기하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내 자신을 부인해야 되기 때문에, 부부지간에 왜 말이 안 통합니까, 자기 생각 포기하지 아니하고는 상대방의 말이 절대로 안 들립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 계시 앞에 겸비해야 되요. 이제는 저도 참 답답한 게 그거에요 그 동안 믿어 왔든 종교적인 전통과 관례를 가지고 목사님 이런다고, 이래 믿어도 되느냐고, 여러분들의 생각을 접으세요. 그리고 한번 그 말씀대로 살아 보시라고,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이 부드럽다는 것은 목사님 교회가 맨날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교회가 나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 완악한 마음입니다. 가족의 마음으로 내가 상대방을 봐야 되는 겁니다. 상대방이 가족의 마음으로 나를 이해 해 달라는 것은 완악한 마음입니다. 굳은 마음입니다.
6. 세상은 멸망 당할지라도 죽음 이후의 끝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세상은 망할지라도 그길 걸어가는 것이 요시아의 신앙이고 우리의 신앙 이어야 된다. 나는 내 믿음 지켜 나가야 하는 이유는 주님 오늘 재림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진리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은혜 받으면은 그 말씀이 거울이 되어서 자기를 비추어 보게 됩니다. 그런다고 해서 상대방이 변화되거나 교회가 변화되거나 세상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변화되지 안 해도 내 믿음 지켜 나가는 것이 신앙인 입니다. 변화 되기는 결과가 오기를 바라면서 가는 것은 자기 의의 입니다. 왜 이 세상이 변화되지 않는가, 변화되지 않는 세상을 탓하고, 자신은 변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 혼자만 변하면 너무나 억울하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는 겁니다. 세상은 멸망 당할지라도 죽음 이후의 끝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세상은 망할지라도 우리는 그길 걸어가는 것이 요시아의 신앙이고 우리의 신앙 이어야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언제 한번 이야기했지요, 저는 사당동 총신을 나왔는데 우리 시대에는 복사 시대입니다, 지금은 컴퓨터만 잘하면 되는데 우리 때는 레포트를 쓰든지 뭐든지 다 복사 해야 되요. 그래서 어느 대학이나 정문 앞에는 후문 뒤에는 언제나 복사 집이 쭉 있습니다. 제가 졸업한 신학교 정문 나서서 밑으로 10미터만 가면 복사 집이 있는데 그 복사 집 입구에 뭐라 써 놨는가 하면은 주님 오늘 오십니다 써 놨어요, 이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많은 장례식을 집례했습니다, 수백 번 했겠지요, 그 장례식에 갔을 때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참 열심히 살고, 바쁘게 살고, 바르게 살려고 했든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면서 하는 생각 내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오늘 죽을 줄 알았더라면 이분이 그렇게 살았을까?
참 여러분 바쁘게 살고, 뭔가 이루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오늘 죽는데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겠어요. 신앙은 오늘 죽어도 그렇게 사는 것이 진리의 삶입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해요, 자기 의를 가지고, 들어가 보면 이기인데 자식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오늘 죽을 줄 안다면은 상대방이 한 말이 그렇게 서운하게 들리겠어요? 사탄은 우리에게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데 영원히 살 것 같은 생각을 집어넣어요, 예배 때마다 오늘 주님 재림하실 것을 생각하면서 한날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을 당해도 오늘 주님 걸어가신 그길 걸어가야 됩니다.
내가 그래 산다고 해서 세상은 질대로 안 바뀝니다. 제가 그렇게 설교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안 바뀝니다. 그러나 그렇게 설교해야 되고, 나는 내 믿음 지켜 나가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주님 오늘 재림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진리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나가야 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 교회 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 한국 교회 절대로 안 바뀝니다. 그러나 그 속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그 말씀 앞에 내가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인생의 끝이 죽음이지만은 오늘 살아야 하듯이 세상의 끝이 멸망이지만은 우리가 주님께서 이루신 그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열왕기를 하면서 왜 여러분들이 목사님 무화가 나무 아래서 편안히 살았더라 했는데 얼마나 편안해 졌는가, 돌이켜 보니까 일월 달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어요. 그래도 그래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설교하는 겁니다. 여러분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여러분들의 믿음을 지켜 나가서 시간이 지나고 났을 때 참 주님 만날 때, 부끄럽지 않는 구원을 받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헌금은 복의 통로가 아니고, 구원받은 자의 은혜의 표현이라는 사람을 자극하지도 사람을 흥분시키지도 않는 그 말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믿습니다. 드리지 못한 손길이 많아서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 이루어진다는 이 실존이 우리 속에 경험되지 못할지라도 주님을 만날 그 일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그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나라가 한걸음 한걸음 침로 당하게 하시고, 우리의 인생의 끝은 죽음이지만 오늘 죽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사는 거와 같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탓하고 원망하지 말고, 내 믿음 지켜 나가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세상의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 져 갈지라도 자신의 믿음을 지켜 요시아와 같이 마지막 불꽃이 되기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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