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 (4)
누가복음 11:14-22
2017년 12월 31일 주일 낮 예배
No. 347
14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 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기이히 여겼으나
15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아멘
21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아멘
●예수님의 치유와 유대인들의 반응. 유대인들의 반응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 하여지고,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성전 회복.
사람들마다 자신의 삶에 전환점이 되는 그런 사건들이 참 많이 있지요. 어떤 사건을 좀 경험하고 난 뒤에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지요. 목회에서나 또 저도 저의 삶에 몇 가지의 사건들이 있는데 1994년도 중국이 개방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중국에 동북삼성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심양에 갔을 때에 가장 유명한 서탑 교회에 가기보다는 변두리에 있는 청념 교회라는 곳에 갔습니다. 아주 열악한 잠자리 그때는 여러분들도 아시지요 중국에 갈 때에 여자들이 양산을 가지고 가야 되는 이유, 화장실에 문이 없고, 또 옆에 앉아서 보는데 벽이 없는 그런 열악한 상황 그런 교회였습니다. 2박 3일 동인 있으면서 그 교회의 교인들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어요.
1. 홍이병이 들어왔을 때에 겪은 환란들. 공산주의 속에서도 살아남은 교회. 이사야 55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말씀. 손양원 목사님의 대한 말씀과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열 가지의 기도의 감사 기도를 드렸든 목사님. 그렇게 만든 사람을 양아들로 삼았다.
공산당 홍이병이 들어왔을 때에 자신들이 겪었든 여러 가지 많은 환란들 그리고 문화 혁명 때에 고깔 모자를 씌어서 이 심양 거리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돌 팔매질을 당하였든 그러한 경험들 참 생명 있는 기독교가 뭔가 하는 것을 생생히 듣고 그 공산주의 아래 속에서도 살아남은 청념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말미에 이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여든이 훨씬 지난 장로님의 입에서 뭐라는 가 하면은 자기네들이 담임했든 목사에 대해서 욕을 참 많이 하더라고요, 왜 욕을 하느냐 하니까 양 때를 버려 두고 자기만 살려고 도망간 목사다 이래요, 어디로 도망을 갔느냐 하니까 홍이병이 들어오니까 후닥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도망을 갔다고 이러더라고요.
참 이름을 묻기가 조심스럽지만 물었어요. 혹시 그 목사님의 성함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하니까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 석자는 가히 상상하지 못할 분의 이름이었어요. 그분은 한국에서도 아주 인품에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목사님이셨고, 또 그가 목회하는 교회도 그 교단에서는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큰 교회를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신 분이었고, 또 그분의 연세가 100세가 넘도록 정정하게 살아 계시면서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목사님이셨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에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이사야 55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말씀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에는 그 사람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하냐 그가 일생 동안 어떤 일을 이루었느냐 이런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을 하는데 하나님의 판단은 전혀 그렇지 않구나.
그 사람들은 그분이 한국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어떤 목회를 했는가에 전혀 모르고 그저 자기 교회에 있었든 그때에 그 상황만을 기억 했기 때문에 그 목사님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면서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우리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정말 얼마나 주관적이고 잘 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합니다. 이틀 전 국민 일보에도 우리 한국에 있는 5천명의 교인들에게 존경하는 목사가 누구냐 라고 했을 때에 쭉 나열을 했는데 제가 우리 한국 교회가 얼마나 세속화 되어졌고,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 하는 것을 거기에서 발견해 봤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조용기 목사와 장경동 목사보다도 존경을 덜 받더라고요, 그 이유가 여러분들 잘 아시지 않아요.
손양원 목사님은 소록도 라고 하는 한센 병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평생 목회를 했습니다. 그 한센 병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직접 빨아서 간호했든 그런 분이고, 또 여순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 그 목사님의 아들이 공산 사상에 물들은 친구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에 그 아들의 시신 동인이와 동신이의 시신 앞에서 하나님 앞에 열 가지의 기도의 감사 기도를 드렸든 목사님, 지금도 그 감사의 기도는 많은 사람들의 울림을 주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자기 두 아들을 죽였든 그 안 재신이라는 사람을 양아들로 삼아서 법무부에 탄원을 내어서 잘 길러서 목사로 만들었든 그런 목사님이셨습니다.
2. 사람은 종교적인 업적과 인생이 이룬 것을 가지고 가치판단 하지만, 하나님은 얼마나 사람을 사랑했느냐 비록 손해가 될지라도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평가하신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생명의 씨앗이 마음 속에 있으면 이전에 귀하게 여겼든 것들이 별로 가치 없게 여겨 진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6.25가 일어나자 그 목사님은 그 한센 병자 교인들이 우리야 세상으로부터 부모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병자들인데 공산당이 와서 어찌하겠느냐고, 그러나 목사님은 지금 피하여 가시는 것이 좋다고 배를 대나 놓고 등을 떠밀 때에도 내가 양 때를 놔두고 어디로 도망을 간다는 말이냐, 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 자리에서 순교를 당했든 목사님이 손양원 목사님 입니다. 그런 목사님을 어떻게 그렇게 9순위에 두고 있는가, 우리는 사람의 캐릭터인 성품을 가지고 그 사람이 좋다 안 좋다고 판단도 하고, 또 그 사람이 어떤 종교적인 업적이나 자신의 인생이 이룬 것을 가지고 가치판단 하지만 하나님은 정말 얼마나 사람을 사랑했느냐, 그것도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가 될지라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는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는 거에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영접하고 난 뒤에 우리의 이러한 가치의 판단이 변화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도 못하고, 또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좀 먼 종교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정말 우리 새해에는 2017년도에 내가 귀하게 여겼든 것들이 과연 하나님 앞에 영원한 가치의 것이었던가, 일시적인 가치의 것을 귀하게 여겼는가 돌아보면서 변화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들이 어떤 환경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사는 삶, 또 우리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런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 천국을 맛보는 그런 교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 몇 번째라기 보다는 정말 우리 젊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도 먹고 살기에 걱정이 없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은퇴를 해도 은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 지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데 가 교회의 출발점이 되는 좀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가치의 변화가 없는가, 그저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똑같이 그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들 예수를 믿고 난 뒤에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이 존경하는 것을 예수를 믿고 난 뒤에도 존경하는 이런 변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시각으로 왜곡해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에도 보면은 이전에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되었다고 했어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난 뒤에 여러분들에게 정말 생명의 씨앗이 마음 속에 있으면은 이전에 그렇게도 귀하게 여겼든 것들 존귀하게 여겼든 것들이 별로 가치 없게 여겨 집니다. 이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은요 별반 차이가 없어요. 저는 그 목사님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사람들은 참 화를 안 내고 이러면은 훌륭하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면은 그분은 참 이기적일 수도 있겠다.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고 먼산 쳐다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훌륭할 수 있겠다.
3. 육신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내 안에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삶의 시작이 신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2 천년 전에 유대 땅에서 귀신을 쫓아낸 예수님의 사역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이 유대교의 신성모독으로 인한 처형이란 것은, 성전 정화에 대한 반발에서 만들어 낸 빗댄 말이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은 그 이룬 것이 티끌만도 못하거든요.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으로 바라보는 것도 있지만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삶의 시작이 신앙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요. 오늘도 이 성경을 보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말 못하는 자를 귀신을 쫓아내니까 그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더라.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유대 땅에서 행하신 사역입니다. 여러분 이 사역을 보면서 말 못하는 것은 귀신 걸린 것 때문이다, 성경에 봐라, 병 걸리는 것은 귀신의 장난이다, 사업이 잘 못 되는 것도 귀신의 장난이다.
그 귀신만 쫓아 내면은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 하는 것은 성경을 정말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분명히 고치신 그 사람은 귀신 때문에 말 못하는 자였고,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냄으로 그에게 말을 하게했는데, 왜 이 예수님이 이것을 행하셨고 이것을 성경에 기록했느냐 하는 거에요. 그 이유는 15절에 나옵니다, 15절에 보면은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이 성경을 읽을 때에도 귀신의 왕의 이름은 바알세불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에 깊이 통찰하는 신학자들, 거듭나고 영성 있는 신학자들이 이 성경을 연구했을 때에 바알세불 이라는 말이 다른 문서에도 나오는가 보니까 별로 없어요.
그런데 왜 예수님에게 귀신을 쫓아내서 말 못하는 자를 말 하게한 예수님의 사역에 유대인들이 그를 향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냈다 라고 비난을 했는가 하면은 이것은 바알세불 이라는 말을 조어 만들어 내었다는 거에요, 당시의 사람들이, 세불이라는 말은 거처지 라는 말입니다. 바알은 설명 안 해도 알지요. 예수님은 바알의 본산지의 힘을 가지고 귀신을 쫓아 냈다, 라고 비난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어떤 사역하고 연관이 있는가, 이것을 연구를 해 보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뭔가,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러 오셨어요.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 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당대에 유대교에서 진행되는 많은 성전의 제사들 유대교의 관습들, 유대교의 규례들을 예수님은 부정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유대교를 통해서 치부의 수단으로 삼았든 종교인들과 또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는 사욕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교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기존 예루살렘 성전과 제사와 규례를 부정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반감이 컸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이 바로 유대교의 신성모독으로 인하여 처형이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예수님을 바알세불에 힘입어서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에 대하여 반발에서 만들어 낸 빗댄 말이다 이런 말이에요.
4. 유대교의 여러 가지 제사들과 규례를 예수님은 개혁을 해서 하나님의 올바른 성전과 하나님의 나라의 올바른 규례를 제정하시러 오셨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내 자아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은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여러가지 제사들과 규례를 예수님은 개혁을 해서 하나님의 올바른 성전과 하나님의 나라의 올바른 규례를 제정하시고 만들러 오셨다는 것을 받아 드려야 되요. 그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은 예수님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예배 자들로 가득 차 있는 유대교에게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도록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 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기 전하고 예수를 믿고 난 뒤에 가치판단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앞의 이야기로 하면은 그저 사람 좋은 인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지나치게 존경한다든지 그 사람이 이룬 어떤 삶의 업적에 압도를 당하는 것은 참된 예배 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의 성품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가치판단에서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되어지고, 전혀 새로운 가치관의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보지 못한다면은 목사님의 목회가 잘못되거나 교회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내가 이전에 종교인으로 있을 때의 가치를 가지고 지금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영이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고, 종교로서의 교회로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현상이다 여러분들 이런 것들 판단할 줄 알아야 되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은 유대교에서 유대교의 기존 유대교의 성전과 제사와 규례에 대해서 개혁을 하고 회복 하려고 하는 유대교의 반발의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이루신 성전의 제사가 뭐라고 그랬어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우리의 아 버지가 되게 하심, 예수를 믿는 것은 이제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기대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삶이고, 그것이 예배의 삶이에요.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하신 것이 오순절의 사건이고 교회의 탄생입니다. 내 혈연의 자식이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눈으로 가치판단하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예배 입니다.
교회에서 설교는 그 눈으로 그러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만드는 것이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십니다. 그러면은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슈퍼멘이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내 자아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를 시작한다는 겁니다, 왜 우리가 이러한 신앙 생활을 해야 되는가, 왜 교회가 종교 기관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존재해야 되고, 내가 허울좋은 종교인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만약에 귀신의 왕이라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내 나라를 분쟁시키는 것이 아니냐, 스스로 망하게 하는 왕이 어디 있느냐?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5. 20절에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하신 일이다, 한센병에 걸려서 버림받은 그들과 함께 순교를 당한 손 목사님 안에 하나님의 손이 힘입어서이다.
19절에 보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여기에서도 너희 아들들이라니까 우리 목사님은 우리 권사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귀신도 쫓아내고 치유도 하고 무슨 소리야, 정말 무식한 이야기 입니다. 여기에 이 말은 너희 아들들이라는 말은 집단의 개별화를 나타내는 말인데 너희들 중에도 어떤 사람 중에는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는 일도 하지 않느냐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뭐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20절에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우리 다같이 읽어 봅니다 시작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손을 힘입는다는 말도 우리 목사님은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해, 그래서 안수하면 능력이 있어 이런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의 손이 라는 말은 초월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내재하여 역사하신다 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하신 일이다 이런 말이에요,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의 교인들 한센병에 걸려서 부모로부터 자녀로부터 버림받아서 있는 그들을 자기의 가족과 같이 여겨서 버려 두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순교를 당한 것은 손양원 목사님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손이 힘입어서 그런 거에요.
우리가 뭔가를 하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 그래서 여러분들이 언제나 모든 사건과 말이나 일들을 볼 때에 내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말하지 말고, 내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판단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요, 그게 기도에요. 하나님 이런 일이 있는데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은 예수님은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귀신을 쫓아 내셨어요. 그러면 이 쫓아낸 것은 너희들도 귀신을 쫓아내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임한 줄 알아라,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이미 임한 줄 알아라, 그것을 알게 해서 귀신을 쫓아내신 거다, 이런 말입니다. 자꾸만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니까 기독교가 미신화 되는 겁니다.
그러면은 앞에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예수님은 죽은 종교인 유대교에게 와서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능을 완성해서 우리 모두가 진정한 예배 자가 되게 하셨는데 왜 우리가 그렇게 진정한 예배 자가 되고 신앙인이 되야 되는가, 성경은요 죽어서 갈 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으로부터 이미 시작 되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냄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도래했기 때문에 그래서 교회는 천국에 가기 위한 대기 장소도 아니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곳이에요.
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하신 그 사건을 받아 드려서 천국을 맛이라도 보도록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음성을 듣고 판단함으로 하나님의 의가 실현된 세상이 되야 된다.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아직 완성 되지는 못했지만 교회는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위대한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하는 곳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 모두를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하신 그 사건을 받아 드려서 우리가 그렇게도 가기를 원하는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도록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전에 좋든 것 이제는 왜 값없이 살아야 되는가, 그래야만이 그렇게도 가기를 원했든 그 천국이 경험 되여 집니다. 설교를 귀로만 들었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보는 신앙 생활이 됩니다.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 거하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들이 귀 기울이며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그저 내 생각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음성을 듣고 판단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의가 실현된 세상이 되야 되요.
이런 말이 너무나 고무하고 이론적이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은 페이스북에 창시자 마크 저크버그 라는 사람 나이 30대에요, 저는 뭐 페이스북에 가입은 해 놓고 뭐 자꾸 누가 친구 맺자 이러는 것도 있는데 하나도 할 줄을 몰라서 못해요. 그 창시자가 페이스북이 그게 큰 부자더라고, 52조를 사회에 환원했어요, 죽을 나이도 아니고 30대에, 그런데 그 52조를 놀래도 안 하네, 52조의 뭐 감각이 있어요, 52원은 알지만은 ㅎ ㅎ ㅎ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0분의 1이 더 되는 돈이에요.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뭐라고 이야기 했는가 하면은 그걸 가지고 사람들과의 연결 페이스북이 그런 것 아니에요 인간관계를 맺게 하고, 뭐 사람들에게 학습 이런 것들에 귀하게 쓰이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자기 딸 이름이 멕스인데 내가 사랑하는 딸 멕스를 위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딸의 아버지로서 내가 어른으로서 서른 살 짜리가 다음 세대에 도덕적 의무로 일을 한다.
여러분 이런 말들만 하니까 사람들이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말인지를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책을 쓴 여러분 책도 여러분들의 생각으로 보면은 그 책의 가치가 안 보입니다. 목사님이 왜 이런 글을 써 놨지, 그걸 봐야 되요. 우리 조장로님이 그림을 취급 하는데 그림도 내 눈으로 보면은 그림의 가치가 안 보입니다. 그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에서 이런 그림을 그렸느냐를 볼 때 비로서 그 가치를 아는 거에요. 성경도 내 눈으로 보면은 귀신 쫓아내려고 하는 것 밖에 안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를 보면은 많은 게 보입니다. 저크버그가 어른으로서 자기 사랑하는 딸의 다음 세대에 도덕적 의무라는 말이 이런 겁니다.
7. 혈연에 매인 마음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당연한 본능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으로 생각을 덧입히면 도덕적 의무가 생긴다, 그러면 다음 세대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아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런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는 혈연에 매여서 그저 지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잖아요.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당연한 생각이에요 그건 본능이에요. 그 본능에 하나님이 오셔서 영의 생각을 덧입히면은 도덕적 의무가 생깁니다, 그 도덕적 의무가 뭐냐 하면은 이런 거에요,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성공하기를 바라고,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는 것,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목사나 어느 누구에게나 다 있는 마음이에요. 그런데 영의 마음이 있으면은 어떤 생각이 우리 속에 드는가 하면은 내 자녀가 성공을 해서 내 자녀 다음 세대에는 지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아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런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녀를 뒷바라지 합니다.
자 이말 참 중요해요. 이 하나님의 영이 있을 때에 생겨나는 마음이에요. 저는 돌이켜 보면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못살았든 것 같아요. 왜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해도 교회를 이전하는 데에도 한 주를 거르지 못했어요. 왜 다음달 사례 안 받으면은 그 다음달 우리 가족이 굶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 모두는 그래 살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부자가 되기를 바랬어요, 그건 본능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내가 왜 부자가 되고, 내가 왜 성공을 해야 되는가, 내 자녀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려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자녀 세대에는 아버지 세대보다 잘살 가능성이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겁니다.
우리의 그 절박함은 경제의 성장은 이루었지만은 그 다음에 영의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망해 가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존을 위해서 처절하게 살아올 때에 우리 자녀들은 지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내가 열심히 일했어야 되요. 여러분들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데 내 손자 대의 손자는 너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일하다가 죽는 인생이 아니고, 지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수 있도록 이 생각이 있어야 되요. 우리 세대에는 죽도록 일하다가 아무것도 노후 준비 못하고 직장에서 내몰려 은퇴를 하는데 내 다음 세대에 도덕적 의무는 내 자녀가 잘되어서 성공해서 나라를 좌지 우지 할 수 있는 위치에 가서 은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그런 나라가 되는 도덕적 의무를 가진 자가 영이 있는 자입니다.
한국 교회 이것 있습니까, 조용기 목사와 장경동 목사를 손양원 목사보다 더 존경하는 한국 교회에는 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저 외면에 보이는 인품과 그가 이룬 종교적 업적만 가지고 보고 있는 육신적 관점만 있는 거지요. 오늘도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잘 기르세요. 그런데 그 자녀가 잘 되야 하는 것은, 내 손자는 지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수 있도록 사회 구조도 바뀌고 제도도 바뀌고, 우리 때에는 여러분들이 사회 기득권층들이 말하는 것에 휘둘리지 마세요, 성경에 휘둘리고 설교에 휘둘리세요. 요즘 젊은이는 힘든 일 하려 안 해요. 우리 때는 닥치는 대로 살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힘든 일을 젊은 아이들이 왜 안 합니까, 일은 힘든데 편한 일보다 봉급이 작기 때문입니다. 호주는 광부의 봉급이 그 나라의 수상의 봉급보다 많습니다. 스웨덴은 빌딩의 청소부의 월급이 의사의 월급하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디로 나가야 되고 왜 예수를 믿어야 되고 왜 예배 자가 되어야 되는가, 왜 종교인이 되면 안 되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누구든지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나라이고요, 미움이 없는 나라입니다. 오늘도 정말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우리의 운명을 거슬리는 모든 귀신을 쫓아내서 우리의 삶이 평탄한 게 아니고, 잘못된 예루살렘의 유대교의 예배를 성전을 올바로 회복하러 오셨다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그것 하니까 기득권층인 종교인들이 예수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 말대로 내가 귀신을 쫓아낸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유대교에는 너희들이 참된 예배 자가 아니기 때문에 외형적인 종교적인 경건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안 했는데 내가 이루는 내 몸을 찢어서 만드신 성전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성령을 보내어 주는 그 생명 있는 기독교가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경험 되도록 내가 이 일을 행하였노라. 행간에 이런 말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지 마세요.
8.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해 간다는 것을 인정 해야 된다. 이 세상에 같은 일을 하면은 같은 임금[賃金]을 받는 그런 공의가 실현되는 나라. 내 자녀에게 아버지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 내가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 그 믿음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된다.
정말 여러분들이 이전에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되어져서 그래 되려면은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해 간다는 것을 인정 하세요. 이제는 타인을 타인으로 보지 말고, 내 혈연의 자녀만큼 타인도 성령을 나눈 가족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비로서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와 여러분들을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하게 되어져요. 그렇다고 해서 육신의 한계를 우리가 벗어 버릴 수 있는가, 아직은 완성되지 안 했어요, 그래서 우리 속에는 내 배에서 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본능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과 타인을 가족으로 여기는 그 사실을 받아 드리는 순간 이제 왜 잘 되어야 되는가 본질을 알게 되요.
다음 내 아들 손자는 지가 하고 싶은 것 하면 살아도 되는, 이 세상에 같은 일을 하면은 같은 임금[賃金]을 받는 그런 공의가 실현되는 나라, 오늘 아침에 일부 예배에도 우리 곽채진 집사를 제가 안수 기도 해 주었는데 곽집사는 여러분 참 잘 생겼어요 키도 일 미터 구십 되잖아요, 유명한 프로 선수였지요, 해태에 갔다가 부상으로 중도에 은퇴해서 지금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내가 그런 이야기 했어요, 왜 우리나라는 못 먹고 못사는 사람이 운동 해 가지고 헝거리 정신으로 성공해 가지고 가정 일으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지, 아버지 때문에 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운동을 해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운동 선수가 되고,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목구멍의 방편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할 때에 그 예술의 경지가 높아지고, 어떻게 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사람은 남들보다 직장 생활하고 뭘 해서 살기가 훨씬 열리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 누가 그런 나라를 만듭니까, 내 자녀에게 아버지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 내가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 그 믿음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되요. 지난 주일도 이야기 했지만은 왜 아버지가 재벌인데 자식은 그 하청 업체를 관리하는 또 다른 회사를 만들어서 땅 집고 헤엄치는 그런 나라가 되야 되느냐, 그러면 망합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재벌이면은 벤처 해서 페이스북 같은 이런 것, 구글과 같은 것, 만들어 가는데 백 번 실패해도 아버지가 또 밀어 주잖아요. 그런 아버지를 못 둔 사람은 재벌의 영의 아버지가 납품해서 안정적으로 자기의 자본을 구축해 가는 것, 여러분 성경에 이런 것들은 이런 사회에 대한 이야기에요, 죽어서 믿으면 천국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죽어서 천국 간다는 종교는 기독교의 기득권층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요. 주님은 죽어서 가는 그 좋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곳에 가져오셨어요, 참된 예배를 회복함으로. 여러분들의 예배의 횟수가 더해 갈수록 내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거기에 내 손자는 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내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세요. 내 손자 대에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그 계획은 하나님이 오늘 밤에 네 영혼을 거두어 가면 네 것이 되겠느냐? 아멘
◈봉헌 기도◈
네가 짓지 아니하는 집에서 거하게 되고, 심지 않은 포도원에서 먹게 될 때에 네 능력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두려워하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셨느니라. 네 마음이 교만할 때에 삼사 대에 망하리라, 경고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주님 앞에 드리는 이 재물보다 네 수중에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베풀어 주신 것을 알아서 인간이 만든 사회적인 구조에 적응하지 못해서 경제적인 약자로 전락한 자들의 아픔에 동참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천대에 이르는 한국과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죽은 종교적인 형식으로 종교적인 과업의 성취만을 이루려고 하는 유대교에게 참된 예배 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계시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참된 예배 자가 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그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어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은 영의 생각을 하게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내가 부자가 되고, 자녀가 잘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다음 세대에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편만 해져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불의한 세상에 빛과 소금 되는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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