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6)마태복음 9: 1-8)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8. 1. 18. 17:11



담임목사 김종웅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6)

(그리스도 안의 영생)

마태복음 9: 1-8

2018 1 14일 주일 낮 예배

                                                                                                                                                             No. 349

1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침상에 누운 중풍병 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아멘

 

예수님의 치유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치유와 무당의 치유의 차이. 예수님에게 신성 모독 이라 공격하는 서기관에게 죄 사함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함. 예수님의 축사와 치유는 천국에 대한 시위로서 죄 사함 선언. 인간의 고통과 고난은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분리된 죽음의 증상이다.

 

여러분들이 참 잘아는 성경 본문지요, 중풍 병자 지금이나 옛날이나 참 힘든 병입니다. 왜냐하면 중풍병에 걸려서 죽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혼자 움직이지 못하니까 누군가가 보살펴 주어야 하는 가족을 굉장히 힘들게 하는 병이 중풍병 입니다. 어떤 사람은 20 30년도 사는 그런 거 거든요. 그래서 중풍병이 낫는 것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 중풍병을 예수님이 치유 했대요. 오늘 성경 본문에 보니까 그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니까, 치유가 되었대요. 그래서 이 본문을 가지고 목사님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그 중풍 병자와 같은 믿음만 있으면은 예수님에게 죄 사함을 받아서 병이 낫는다, 그래서 믿음을 참 강요하는데 이 본문을 많이 사용하세요.

 

1. 예수님이 중풍병 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했다. 신성을 모독하는 죄를 지었다 라고 말을 할 때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는 것과, 걸어가라고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시위를 하셨다.

 

좀 지나쳐서 어떤 좀 극단적으로 가는 대는 보면은 병 들리면은 안찰 안수 하다가 사람을 때려죽이는 일들까지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은 신학의 부재 무지에서 나오는 겁니다. 신학이 아니고 국어만 좀 해도 오늘 본문이 그런 말씀이 아니라,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언을 하고 나니까, 이 중풍병 자가 나았는데 한 서기관이 뭐라고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신성을 모독하는 죄를 지었다 라고 말을 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냐 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이래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본문의 행간에서 보면은 지금 무엇에 대한 시비냐 하면은 예수님이 그 중풍병 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에요.

 

이 예수님의 죄 사함을 선언을 하고 나니까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신성 모독이라고 하는 것은, 죄 사함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대 제사장이 제사를 통해서 죄 사함을 하는데,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하니까,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죄 사함을 예수님에게로 했다고 신성 모독이라고 해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언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 지겠지요 중풍병 자에게, 그런데 신학적으로 보면은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것보다 죄 사함을 선언 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거에요, 왜냐하면은 그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고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은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상황이 왜 그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중풍병 자를 낫게 하신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언하니까, 나았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중요하다 이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6절에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자 여기에 보면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이 중풍병 자를 낫게 하신 것은 중풍병 자를 낫게 하는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려 하게하는 것이다.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병 고치는 것은 뭐냐, 지난 주일 이야기 했지요, 이 생각을 여러분들이 먼저 딱 제대로 가지고 있어야 되요.

 

앞으로는 어느 교회에서 치유 세미나 하거든 성경에 무식한 거구나 하고, 가시지 마세요, 돈만 버려요. 그런 데에 여러분들이 가입비 내고 쫓아 다니는 것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정말 몸이 아프면은 한의를 받으려면 김평준 장로님에게 받고, 양의는 이택영 장로님에게 가고, 영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은 염려나 근심이나 힘이 들거든 목사님에게 오면 되는 거에요. 중요한 것은 병 고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 다음에 병을 고치는 것은 지난 주에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시위다, 데몬스트레이선 데모다 라고 말을 했지요. 이 개념이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있어야 되요 신학적으로.

 

2.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낸 것은 하나님의 권세 힘을 과시해서 사탄의 모든 악재에서 해방을 시키기 위한 힘을 과시한 것이다. 사탄에 매여 있는 우리가 사탄의 노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시위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였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도래되도록 하나님의 힘을 과시한 거에요. 데모는 뭐냐 하면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 데몬스트레이션 시위다 이 말입니다. 1987년 영화를 보라 그랬지요. 거기에 보면은 저는 그때 양지 신학교에 있어 가지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도 잘 몰랐는데, 저는 79년도 대학교 4년이라서 유신철폐를 외쳤든 세대에요. 그때에 여러분들이 서울 시청 광장에 백만 명이 모여서 이한열 사건 이런 것 때문에 시위를 했어요. 그 시위와 데모는 뭐냐 하면은 힘을 과시하는 거거든요, 국민의 힘, 시민의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독재 정권에게 과시하는 거에요.

 

왜 과시하는가 독재 정권을 무너트리고 민주화를 이루자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낸 것은 하나님의 권세 힘을 과시해서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을 자신의 굴래 속에 두고 있는 사탄의 모든 악재에서 해방을 시키기 위해서, 힘을 과시한 겁니다. 그래서 사탄에 매여 있는 우리가 사탄의 노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데몬스트레이션 이에요. 이걸 가지고 자꾸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사역이라고 하면은 기독교는 미신화 되는 거에요. 다음 주에는 목사님 그러면은 천주교의 검은 사제들 보니까 구마의식도 있고, 절에도 귀신을 쫓아내는 게 있고, 이런 것들은 목사님이나 선지자들도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뭡니까?

 

이것은 다음 주일 여러분들에게 할거에요. 오늘은 여러분들이 먼저 아셔야 되는 것은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것은 하나님의 힘을 과시해서 사탄을 굴복시키고, 그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케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요것은 지난주와 이번 주에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힘을 과시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데, 죄 사함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 죄 사함의 권세는 하나님 앞에 있는데, 죄 사함이 뭔가에 대해서 모르는 거에요. 우리 한국이 왜 이렇게 자꾸만 미신화된 신앙을 가져서 신앙이 좋으면 좋을수록 사람을 억압하고, 그 신앙이 자신을 학대하게 되는 이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성경에 있는 개념들을 한국적인 용어로 이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에요. 미신화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일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했든 것도 마찬가지인데 죄에 대한 개념도 사회적인 규범을 어기는 것이나 윤리적인 규범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그랬지요. 그래서 요한1 3장에 보면은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였나니, 마귀가 하는 일이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는 건데 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뭐냐 하면은 마귀가 짓게 한 죄, 여러분들이 사회적인 규범을 어기는 것은 대한민국 국법에 의한 죄에요. 여러분들이 윤리적인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감성적인 윤리에 의한 죄에요. 성경에서 말하는 신학적인 죄는 창세기 3장에 의거해서 로마서에서 말하는 바울이 말하는 죄의 개념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 힘을 가지고 이루며 살려고 하는 것, 이게 죄라 말입니다.

 

3. 죄와 허물로 죽었든 너희라고 그랬다. 마귀가 짓게 하는 죄,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살면은 마귀 사탄의 일을 해 주기 때문에 사탄이 나에게 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그 대가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분리 되어서 사탄에게 예속 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사업을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우리의 모든 운명을 거슬려서 아주 엉망진창 만드는 것이 사단이 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귀신의 역할이고 그런 것은 없어요. 사단은 우리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네가 원하는 것을 네 힘과 능력으로 이루며 살아, 라는 거에요. 바로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의 힘으로 이루며 살려고 하다 보니까 전부 사단에 예속 되어져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사탄의 압제 아래서 우리가 허덕인다 이 말입니다. 지난주일 이야기 한 것을 다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은 그래서 에배소 2 8절에 보면은 죄와 허물로 죽었든 너희라고 그랬단 말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에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기도할 떼에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고치는 굉장히 나쁜 죄를 저지르는 거에요.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었든 이에요, 그러면 왜 죄와 허물로 죽었나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사망이라 말입니다. 로마서 6 23절에 의하면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 죄는 어떤 죄라고요, 내가 원하는 것을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이루려고 하는 그 일은 마귀가 짓게 하는 죄다 요한1서에서 보면은, 마귀가 짓게 하는 죄를,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살면은 마귀 일을 해 주기 때문에 사탄의 일을 해 주기 때문에 사탄이 나에게 일에 대한 대가를 보수를 지불해야 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 23절에는 죄의 대가는 삯은 사망이다 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 사망도 여러분들이 생물학적인 사망이라 생각하면은 한국말로 이해한 거에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분리 되어서 사탄에게 예속 된 상태를 말해요. 왜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인간의 실존이다 이 말입니다. 이런 것들을 신학적으로 제가 예전에도 여러분들에게 한번 말씀을 드렸지만 죄와 허물로 죽었다라는 말이 뭐냐 하면은, 이 꽃잎이 지금 살아 있는 겁니까 죽은 겁니까,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어요 아직, 신학적으로는 죽은 거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존재의 근원인 생명을 공급받는 뿌리로부터 끊어진 거에요.

 

죄와 허물로 죽었든 너희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단의 권세에 있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끈임 없이 생명을 공급 해주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 되어서 내가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사는 인생은 이 꽃잎과 같은 거에요. 이 꽃잎은 지금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것은 뭐냐 하면은 자기 내재된 생명 자기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있다고요. 이 생명력이 있는 동안에는 살아 있는 것 같지만은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시들어 버려요. 이 아름다운 색갈이 점점 누렇게 변화 되어져서 이제는 이런 부들부들함도 없이 바싹 말라서 바삭 하고 부스러지는 상태로 가게 될 거에요.

 

4. 우리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생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생명력이 있는 동안에는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어떤 말을 용서 사랑 회해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사망의 상태 아래서 사망에 매여 있는 자인 것을 인식을 해야 된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생이지만은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생명력이 있는 동안에는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80이 되든 90이 되든 100살을 살든 내 내재된 생명을 서서히 갉아 먹으면서 살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내재된 생명을 소진함으로 말미암아 이 뿌리로부터 단절된 꽃잎이 점점 말라 져 가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에는 우리의 내재된 생명을 갉아 먹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소진으로 인한 하나님과 분리된 증상들이 나타나는 거에요. 그 나타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염려라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상한 심령의 치유 뭐 이런 책에 넘어가지 마세요.

 

우리가 심리학적으로 염려나 모든 것을 치유하는 게 아니에요, 기독교 교회는 뭐라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 속에 염려가 있을 때에는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있는 영생을 놓쳐 버리고 분리된 내 힘으로 살려고 하니까, 사탄이 하나님과 분리된 사망의 증상으로 염려가 우리 속에 나타나는 거에요. 욕심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완고하고 고집이 세고, 용서를 하지 못하고, 우리 시어머니 참 감당이 안 돼, 이런 것들은 그저 현상에 대한 해석이에요. 신학적으로도 여러분 보세요, 어린 아이들은 밥 먹다가 싸우고 난 뒤에 숟가락 놓고 나면은 저쪽에 가서 히히덕 거려요.

 

그랬든 저와 여러분들이 나이가 들어가서 이제는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원수가 되어 버려요. 이런 것들이 왜 일어나는 줄 아세요. 이런 것도 모르고 나이가 들면은 고집이 세다고만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가 어릴 때에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한 거에요. 그래서 밥 먹다가 나에게 잘못한 그 친구도 숟가락 놓고는 그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에 또 히히거리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내재된 사랑을 자꾸 써요, 어떻게 써는가 하면은 처음에는 그래 상처를 받았다가 그랬다가도 이게 자꾸 인간 관계에 받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사랑이거든요, 우리 내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력이거든요.

 

그것을 가지고 자꾸 써다 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지 아니하고 써다 보니까 말라 버려서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면은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원수가 되는 것이 말라 버린 상황에 대한 모습이 점점 더 커져 가는 거에요. 어릴 때에는 피부가 요렇게만 해요 탱탱했든 게 이제 당겨도 죽 늘어나서 다시 들어가지 않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생명을 그만큼 쓴 결과에요. 자연스러운 현상들이에요. 그러면은 이런 것이 여러분들이 뭐냐 하면은 내가 상대방의 어떤 말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사망의 상태 아래서 사망에 매여 있는 자인 것을 인식을 해야 되는데, 그것을 심리학적으로 자꾸만 이야기를 하니까 약간의 도움은 되는데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이상하게 심리학 연구소가 되는 거지,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영생의 모습이 교회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느냐 라는 찬양이 우리의 피부에 와 닿아서 경험적으로 나오는 찬양이 아니고, 찬양을 통해서 염려를 기쁨으로 주려고 하는 노래 교실이 예배에 되어져 버린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악기를 동원하고 노래를 해 가지고 노래 교실에 가면은 기쁨이 되듯이 예배가 그렇게 되어 버리는 거에요. 하나님께 찬양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사단의 권세에서 사망의 권세 아래 있든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그 삶에서 경험된 것 때문에 나오는 찬양이 되야 되요.

 

5. 예수님이 중풍병 자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 치유와 예수님께서 축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힘을 과시하셨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사망의 값을 우리 대신으로 치름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탄이 우리에게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죄 사함, 자유, 영생을 주신 것이다, 그건 선물이다.

 

다음 주일 찬양도,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이제는 절대로 교회에서 어디 치유 사역 이런데 가서 등록금 내지 말고, 교회 헌금해요 우리 교회에, 쓸데 없는 낭비에요. 교회는 그런 것 하는 게 아니에요. 교회는 죄가 뭔가, 사망이 뭔가, 어떻게 사탄이 우리 속에 죄를 짓게 해서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우리를 가두어 놓고 있고, 그 상황이 우리의 인생의 실존이 뭐며, 우리가 어떻게 되어져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내가 어릴 때에는 밥 먹다가도 싸워서 숟가락 놓고는 화해 했는데, 내가 왜 이래 됐나, 예배 때 그것 자각 해야지요. 그럼 그걸 가지고 내가 변했다 용서하자, 라고 하면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자 이러면은 사람이 더 죽어 나가는 거에요.

 

예수님이 이 중풍병 자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줄 알아서 그 죄 사함은 예수님께서 뭐냐 하면은 사탄이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해서 우리에게 지불한 것이 하나님과 분리된 사망이라 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그 사망에서 우리가 해방이 되려면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이 되려면은 사탄이 우리에게 지불한 사망의 값을 치러야 해방이 되잖아요. 인질범에게 인질에 잡혀 있으면은 자기가 그 인질 범에게 몸 값을 지불 못하면은 부모가 와 가지고 대신 지불하고 그 인질범에게 잡혀 있는 자에게 해방을 시키듯이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런 일이라 말입니다. 어디에서 예수님의 전 생애에서, 치유와 예수님께서 축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힘을 과시하셨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사망의 값을 우리 대신으로 치름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탄이 우리에게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죄 사함, 자유,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 거에요. 그건 선물이에요.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그러면 이 영생을 우리에게 준 것을 한국 교인들은 아는데 그 다음에 영생의 삶을 모르기 때문에 꼭 1987년 이후에 2017년까지 30년 동안 우리가 민주화는 되어졌는데, 민주화의 그 결과를 누리지 못하고, 또 다른 민주 독재에서 허덕인 거와 같은 삶이 한국의 기독교인의 삶이에요. 1987을 보면서 제가 그 후회가 참 많이 일어났어요. 힘을 과시해서 우리가 민주화를 했어요. 민주화가 뭐냐 하면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것이 민주화인 줄 아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으로 뽑은 그 대통령이 다시 우리를 선거 때는 분명히 우리에게 종 노릇 해 준다 해 놔 놓고, 대통령이 딱 되고 나면은 그 다음부터 우리에게 주인 노릇 하는 거요, 주인 행세하는 거요.

 

그래서 군부 독재에서 문민독재 30년 동안 우리가 허덕이며 살은 거에요. 여러분 이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비로서 민주화가 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 거에요. 민주화가 뭐에요?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앞으로 나에게 주인 행세 하지 말고 뭐 하라고요, 이제 종 노릇 해, 내가 대통령 왜 뽑았는데 내 종 노릇 해 달라고, 국회의원 왜 뽑았는데, 나에게 종 노릇 잘 해 달라고, 그래서 4년 지나고, 종 노릇 잘못하면 갈아치워야 되는데 우리는 왜 민주 시민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나하고 친하다고, 잘났다고, 똑똑 하다고, 나하고 고향 같다고 찍어 주니까, 또다시 나를 종 부리듯이 부리는 자가 된다고.

 

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르시고 그것을 대속이라 한다, 이제 사탄에서 우리를 샀다, 사하는 권세가 하나님에게만 있다, 영생이라는 말은 이제는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자라는 말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영생 천국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여러분 요즘 이런 현상도 아셔야 되요, 왜 문재인 대통령이 70%의 지지를 받는가, 이유는 간단해요, 그에게 이제 국민들에게 종 노릇 하는 것이 뭐든 보여 주고 있거든요. 포항에 지진이 나니까 쫓아 가기도 하고, 제천에 불 나니까 옛날에는 어쨌든 간에 공권력으로 덮었는데 이제는 너 잘못했으니까 충북 소방처장 직위 해제도 시키고, 종으로서 살아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이제는 주인 대접을 좀 받으면서 사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제가 이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잘 들으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르시고 그것을 대속이라 그래요, 이제 사탄에서 우리를 샀어요, 사하는 권세가 하나님에게만 있어요.

 

그것을 시위하는 것이 치유였고, 그 치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가 자신에게 있다 것을 드러내시고, 십자가에서 사탄에게 사망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어요 영생을. 한국의 기독교인은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내 죄를 사해서 이제는 나는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이 되어서 영생이 있어, 이렇게만 생각하는 거에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이제 나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주인의 자리에 갔어, 이것만 생각하는 거에요. 진정한 주인 노릇이 뭔지를 몰랐든 민주화로서 우리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어느 누구도 우리의 종 노릇 해주는 이런 국가가 되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대통령이 좀 이러면은 경상도 말로 흥감해 가지고 죄송스럽고 미안해 하고, 여러분 오늘날 기독교가 똑 같은 거에요. 여기까지만 있는 거에요.

 

죄 사함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다고만 있는 거에요. 그러면 그 죄 사함과 영생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축복이 뭔지를 모르는 거에요. 그것은 영생이라는 말 역시도 사망과 같이 영원히 사는 줄 알아, 영생이라는 말은 이제는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자라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이제 죽으면은 영원히 사는 죽음의 세계가 있다, 죽음 이후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으로 내 손으로 뽑는 것이 민주화의 최종인 줄 아는 거와 같은 거에요. 여러분들이 영생이라는 개념은 뭐냐 하면은 영원히 산다, 이런 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존재의 삶을 살게 된다, 어떻게 하나님과 연합됨으로.

 

어떻게 그리스도가 하신 그 사역을 받아 드려서 이제는 하나님이 내 안에 있어서 이제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이루며 살려고 하는 그 삶을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 있는 거에요,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영생이에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천국 백성 천국 시민다운 삶을 사는 것이 종교 생활, 교회 생활이에요. 이런 것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저 종교 생활 하는 거에요. 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이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니까 또 사탄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은 그 신앙의 고백에서 슈퍼멘이 되는 줄 알아, 내가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못할 일이 없는 줄 알아, 그래서 긍정의 힘을 성령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긍정의 힘 이런 것은 굉장히 잘못된 책이에요 여러분.

 

7. 하나님적 삶, 영원한 존재의 삶, 그 영원한 존재의 삶은 누가 살게 되는가, 하나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믿는 사람. 교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마누엘이 있는 것을 믿는 사람,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셔서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가 하나님적 삶의 영생이다.

 

인간에게 약간의 유익을 주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다음주일 말하는 굉장히 잘못된 거에요. 그런 것이 한국 교회에 온통 베스트 셀러가 되니까 얼마나 웃기는 거에요. 자 약간의 유익이 있어요, 그 유익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 영생의 삶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그래서 영생은 자 이제 정리 합니다. 하나님적 삶, 영원한 존재의 삶, 그 영원한 존재의 삶은 누가 살게 되는가, 하나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믿는 사람. 교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마누엘이 있는 것을 믿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이제는 믿습니다 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자 잘 들으세요. 이 부분이 중요한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30년 동은 문민 독재에 있었든 거와 같이, 우리는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해방이 되었는데도 또 다른 인간이 만든 종교의 독재 속에서 허덕이는 것이 기독교인의 실상이에요. 김영섭 교수도 이런 이야기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 말씀은 영생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면은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해서 나와 능치 못함이 없었다 이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 기도할 때 그런 이야기하지요, 하나님은 언제나 어떻게 해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한다는 말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들었지요, 하나님은 초월 자 인간이 만든 이상한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고요, 인격적인 하나님이요,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셔서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가 영생 하나님적 삶을 삶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게 하는 거에요 그게 영생이에요.

 

이걸 살도록 신앙 생활을 우리에게 규범을 준 거에요. 자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좀 더 자세히 드리면은 이런 것하고 같은 거에요. 여러분들의 가치관이 다 달라져야 되요. 지금도 한국의 교인들은요, 한번 좀 잘못하면 낙인이 찍혀 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저 집사, 저 장로는 저분은 예전에도 그러더니만 전부 유교적인 가치 속에 유대교적 가치관이 나타나는 삶의 모습들이에요. 여러분 성경적인 공동체의 모습 하나님의 영이 있는 모습에는 죄인들이에요. 그 죄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에요. 자 교회는 의인들의 모임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은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거에요. 죄인을 부르러 와서 죄인에게 기회를 준다는 거에요.

 

그러면 성경적 이 개념이 우리 사회에 가치관이 되는 것은 이런 거에요. 제가 부목사로 데리고 있다가 우리 교회에 한 3개월 있다가 부암 교회에 갔든 박승남 목사가 스웨덴에 5년 동안 선교사로 있었잖아요. 여러분 스웨덴 이야기를 좀 해 드릴게요, 우리나라가 왜 힘든가 하면은 우리나라는 기사를 채용할 때에도 무사고 운전 기사를 자가용 기사로 써요, 그러나 성경적 가치관이 있는 나라는 사고를 한번 낸 경력이 있는 기사를 더 채용을 해요, 한번 사고를 쳤기 때문에 반복된 것 말고, 그 다음엔 큰 사고 안 치는 거에요. 무사고는 운전 무서운 줄 몰라 가지고 큰 사고칠 가능성이 있는 거에요.

 

8. 기독교라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영생이 만들어 낸 가치와 제도, 우리는 기독교만 도입을 해 와 가지고 영생만 얻었다, 다시 사탄의 권세 아래 매여 있는 것이다. 교회의 위원회의 방침에 대한 계획. 성도들의 생활을 파악해서 교회가 하나님 노릇 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계획.

 

자 여러분 우리 사회에는 한번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면은 아웃 되 버려, 은행에서도 융자를 안 해 줘,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못 받아, 그러나 왜 은행이 존재하고 국가가 존재하는가, 한번 내가 사고 쳐 가지고 부도가 났는데 눈에 보이는 게 많아, 하는 것마다 부도나는 사람 말고, 한번 실패한 사람은 그 실패를 거울 삼아서 경험 삼아서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런 사람에게 은행에서 융자를 주고, 그래서 미국이나 서양의 은행은 담보로서 부동산으로서 융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신용으로 준다 하잖아요. 그 신용이 뭐냐 하면은 실패를 했지만은 그 실패가 경험이 되어져서 훌륭한 자산이 된 사람에게 다시 이제는 그때 돈 다 쓰고 없으니까 돈을 주어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거에요. 어느 사회가 좋은 사회에요? 후자에요.

 

기독교라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영생이 만들어 낸 가치와 제도에요. 우리는 기독교만 도입을 해 와 가지고 영생만 얻었다, 다시 사탄의 권세 아래 매여 있는 거에요. 여러분 금년에도 우리 교회에 이제 장로님들이 위원장 3년 차가 되는 거에요. 그러면 내년 되면 위원회를 싹 바꾸어요, 3년으로 한 것은 처음에는 뭔가를 알아보고, 두 번째는 시행착오 해서 3년째 자기 것을 만들어서 일을 해 보라고 한 거에요. 그 다음에 타성에 젖기 때문에 바꾸는 거에요 되도록이면, 우리 교회의 싸이즈로 봐서는 12개의 위원회가 있어야 되요. 12개의 교구가 있어야 되요. 금년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장전도사에게 이번에 전임이 되면서 내가 계속 미션을 주는 거에요. 12개의 위원을 만드는데 이 위원회 하나 만들어라 회복 위원회, 우리 교회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인데, 회복 위원회는 뭔가, 상습범 말고, 한번쯤 밀어 주면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사람에게 교회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밀어 줄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그걸 심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우리 교회의 핵심적인 위원회의 역할을 해 보자, 경조위원회가 유명분실화 되요, 그래 앞으로 경조 위훤회는 장례위원회로 만들어 버리고, 회복 위원회로 하자, 여러분 우리 교회의 겨자씨헌금의 정신이 다 그런 속에서 녹아 나도록, 자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교회가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영생을 하려고 하는 이런 역할을 하려면은 여러분들이 천국 시민다운 삶을 살아야 되요. 하나님적 삶을 살아야 되요.

 

그 하나님적 삶의 표현이 뭐냐 하면은 11조라는 거에요. 제대로 알고 하세요. 11조는 복을 받는 하나님의 통로가 아니에요. 그건 종교인들이 하는 소리에요. 자 스웨덴은 그런 기회의 나라에요. 그런데 연말에 소득 신고를 할 때에 쭉 자기 소득을 다 신고 하라고, 맨 마지막에 어떤 게 빨간 글자로 있데, 네가 지금 요렇게 밝혀 진 소득 외에 남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소득은 자진 신고 해라고 빨간 줄로 한데, 그런데 스웨덴 사람들은 다 쓴데요. 왜 쓰겠어요? 내가 부도났을 때 나에게 기회를 주는 나라이기 때문에,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병원에 못 가면은 국가에서 다 책임지기 때문에, 내가 안 낼 이유가 없는 거에요.

 

우리 한국에는 복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자본이 없으니까 하나님에게 복 받는다고 하니까 11조를 온전히 하다가 요즘은 이제 11조 잘 안 해요. 왜 안 하는가, 교회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안 하는 거에요, 11조 거두어서 수양만 사고 딴짓하는 거에요. 뭐 하는가 교인에게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거에요, 자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하다가 부도가 났는데 다 이게 눈에 보여 그게 원래 그러면 국가가 은행을 통해서 해 주어야 되는데, 그래도 다시 힘을 주는 게 누구에요, 가족들이잖아요, 그 혈연의 가족과 같은 것이 영적인 가족이 교회란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부분도 또 나중에 하나님 나라 할 때에 빚진 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회가 할 일이고 교회가 할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사업을 하는데 내 돈 가지고 사업을 했어, 가족은 아무도 안 도와 주었어, 성공했어, 가족 돌봐야 할 의무가 없는 거에요. 거기에도 또 중요한 은혜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에 하도록 하고, 간략하게 이야기 하면 교회에서 내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는데 11조만 내라 해, 유교에요. 오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몸 버려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 되면 그것 빚 갚는 거야, 그게 신명기에요. 금년에 왜 전도해야 되는가, 제가 여러 번 이야기 하잖아요,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지금도 목사님하고 그 사람을 이래 쭉 봤을 때에 조금만 밀어 주면은 될 것 같은 사람은 교회 재정이 안 되니까 내라도 털어서 해 주어요. 왜 그래야 그 사람이 11조를 내라고 내가 말할 수 있잖아요.

 

지금도 한 사람이 한 15년 정도 노하우를 가지고 죽도록 고생하는데, 한번만 밀어 주면 되는 것 같은데, 이제 우리 교회가 힘이 없으니까, 나도 없으니까 이제, 누가 우리 교회의 어떤 분이 아 이번에 하면은 된데, 그래서 내가 되는 것 자랑하지 말고, 되거든 나한테 한 1억 좀 달라 했어요. 왜 요사람 밀어 주려고, 이 목회가 할 이건 목사가 하는 일이에요 여러분, 이게 목회에요. 그래서 이 사람 지 잘되고 무슨 상관 있어요. 이 잘된 것이 다른 교인에게 덕이 되어야지, 그래서 여러분들 보세요, 정말 우리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는 한번 잘못된 것이 영원한 주홍 글씨가 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종교에요.

 

9. 새로운 기회를 받아서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빚진 자의 삶을 사는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목회고, 영생이다.

 

한번 잘못한 그것이 좋은 경험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받아서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빚진 자의 삶을 사는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목회고, 영생이에요. 예수님이 지금 하신 말씀이 이런 말씀이에요 여기에,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으로 병 고친다, 치유한다, 귀신 좇아 낸다, 다 마귀 노름이에요. 다음주일 이 왜 마귀 노름인가 이야기 해 드릴께요. 오늘은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죄 사함 받았다, 영생 얻었다, 끝났다 내 손으로 대통령 찍으니까 끝났다가 아니고, 이제는 우리는 시민다운 삶,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잘 감당하고, 내가 뽑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종 노릇 하지 않고, 주인 행세 하려 하거든 4년 만에 5년 만에 갈아치울 수 있는 그런 시민 의식, 그래야 스웨덴 같은 나라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뭐 비판하기 전에, 나는 11조 생활 잘 하는가 살펴보세요, 그리고 난 뒤에 교회가 재생의 기회를 제공 하지 않을 때, 교회 목사 갈아치우세요. 자기 할 일도 안 하면서 딴말하지 말고요. 자 우리 교회는 이 싸이즈 준 것 저는 가만히 보니까, 제가 목회를 대학 교회에서도 했고, 부목사 시절에는 600 800명 되는 교회도 했었고, 전도사 시절에는 1000명 넘는 교회도 했는데, 저는 2, 4백 명 교회는 작은 것 같아요. 6, 7백 명 되야 그래도 뭐 교인이 뭐 한다면은 한 일 이억은 밀어 주어야지 한국에서, 돈 천 만원 밀어 주어서 뭘 해요. 여러분 앞으로 교회에서 사업이 잘 되고, 이러거든 돈 자랑하지 말고요 저한테 돈 자랑하는 순간 돈 달라 할 거에요.

 

왜 가능성 있는 사람 밀어 주려고, 그래서 우리 교회는 끊임없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빚진 자를 만들어 냄으로 말미암아 노래방이 아니고 노래 교실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 우리 속에 충만하게 되어져서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없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가 되면 전날에 한숨이 변하여 내 노래가 되게 하는 신앙적 경험이 축적 되어져 가는 그런 영생이 존재하는 놀라운 생명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하나님께서 아버지 노릇 해 주심과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는 자만이 온전한 11조의 예물을 드리게 됨을 믿습니다. 그런 11조야 영원한 존재의 삶인 영생의 표현임을 믿습니다. 각자가 이런 삶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임재 하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노릇해 줌으로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나락으로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 구렁텅이의 밑바닥이 되어서 새 힘을 일으켜서 성공함으로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했다고, 모든 만인에 대해서 빚진 자를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게 하여 주시고, 우리 교회는 노래 교실과 같이 찬양을 통해서 즐거움을 회복하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해서 우리의 입술에 나오는 우리 영혼에서 나오는 찬양,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가 되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내 노래가 되었다고 하는 이런 신앙의 고백으로 가득 찬 찬양의 소리가 힘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초석이 되는 예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킨 사단의 모든 사망의 죄 값을 친히 치르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믿음을 강화시키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오늘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어서 슈퍼맨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삶, 자신을 내어 주는 기독교 안에의 온전한 규례를 지키며, 또 당당히 교회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주안에 딴 근심이 없는 복된 생애 영생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