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 (7)
요한복음 5: 1-18
2018년 1월 28일 주일 낮 예배
No. 351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12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아멘
● 조문보다 취지: 38년 된 중풍병 자를 고쳐 주신 것은 깨어진 안식을 회복하여 천국이 도래하러 오신 시위하신 것이다. 안식일 제정에 대한 취지. 하나님의 완전 창조가 깨어진 것을 회복한 것이 구원이고 안식일이다. 일을 하지 말라는 안식일 규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 다시 여러분들에게 강조하지만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서만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죽어서 가야 할 그 좋은 천국을 예수님이 이 땅에 이루신 것을 알기 때문에 교회에서 천국을 경험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겁니다. 또 여러분들은 왜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고 성장 되어져야 되는가, 우리의 신앙이 더욱더 바르게 성숙 되어지면은 하나님의 나라를 더 많이 경험하는 남들이 보면 참 모든 것에서 자유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평안이 넘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에 보면은 교인들이 종교적인 과업 성취를 위해서 자신의 신앙이 자신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1. 베데스다 연못가의 전설은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할 때에 먼저 내려가는 사람은 병에 걸려도 낫는다는 전설이다. 예수님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유대인들은 항상 십계명을 지키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자리를 들고 가는 것도 일이라 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하여 위대한 종교적인 과업은 성취가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하고는 좀 상관이 없는 교회, 열심과 봉사를 해서 살아가는데 자신의 삶에 누림이라든지 자유라든지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신앙 많이 봅니다. 왜 그런가, 똑 같은 성경을 가지고 믿는데 성경의 해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성경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 베데스다 연못가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전설이 뭐냐 하면은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한다 움직이게 한다 아마 지진이 있었든지 그렇겠지요. 그럴 때에 제일 먼저 내려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려도 낫는다는 전설입니다.
그래서 그 베데스다 연못가 행각 다섯 개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를 보고 낫고자 하느냐 하니까, 나를 저 물이 동할 때 대려 가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 말씀과 동시에 이 사람에게 팔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갔어요. 이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어떤 병도 고치고, 우리 인생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지성을 다해서 예수를 잘 섬기면은 그런 기적을 경험하게 될 거다. 라고 말을 하면서 치유의 신학이라든지 문제의 해결이라든지, 기도의 응답이라든지 이런 신앙을 추구해 나가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신학을 안 해도 국어만 좀 할 줄 알아도 여러분들이 이 본문을 보면은 그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안식일에 이 사람이 자리를 들고 들어가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네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못하다. 유대인들은 항상 십계명을 지키는데 그 가운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된다. 내 아들이나 내 딸이나 내 집에 거하는 종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나그네까지도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되다. 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유대교였다고요. 그래서 그 율법에 의하면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에 의하면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일이 되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고 한 거에요.
오늘날도 여러분들이 우리는 주일 성수를 하는데 주일날 어떤 일을 하면은 안 된다 어떤 일도, 요즘은 그런 규정마저도 없고, 안식일의 본질을 모르는 정말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가는데요, 예전만 해도, 주일날은 예수를 믿는데 주일날 내가 장사에 문을 닫아야 되는 것이 큰 고민이었고, 또 그 문을 닫는 것이 굉장한 신앙의 표현이었다고요. 직장을 구할 때에도, 주일 성수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자기 직장을 구하는데 조건이 되었든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오늘 본문의 관점에서 보면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은 굉장히 주일 성수에 잘못되었다 해서 그런 일들을 비판을 합니다.
심지어는 80년대에 제가 신학을 할 때에는 가평 현리 라는 곳의 교회는 목사님이 바뀌었는데, 현리는 그 당시 유원지인데, 주일 하루 벌어 가지고 이 사람들이 6일을 사는 사람들에게 문을 다 닫으라 하니까, 우리보고 굶어 죽어 라는 말이냐 해서 목사님하고 교인들이 큰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목사님은 그 교회에 목회를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는 일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있었다고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이지, 예수님을 통해서 병을 낫거나, 개인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성경 본문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이 환자가 뭐라는 가 하면은 자기를 낫게 한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나는 그랬다고 하니까, 그가 누구냐 하니까 예수님이 이미 피하였기 때문에 내가 누군지 모른다 이렇게 말을 했어요.
2.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네가 더 심하게 되지 않도록 해라, 하니까 예수님인 것을 알았다. 유대인들이 그때부터 예수님을 박해하기를 시작 하니라. 안식일의 준수는 일을 안 하는 것만이 아니다, 아버지라고 하나님과 동등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죽이려 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래서 네가 더 심하게 되지 않도록 해라 라고 말을 하면서 예수님인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고, 자리를 들고 가라는 이가 예수라는 사람이라 이러니까, 이 유대인들이 그때부터 그때부터 예수님을 박해하기를 시작 하니라. 자신들이 생각하는 안식일의 규례에 어긋난 일을 한다고, 예수님을 박해하기를 시작했다는 거에요. 어쩌면은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분들이 굉장히 많은 자유를 주는데 정말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그런 부분에 대한 박해, 목사님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것은 예수를 박해하는 거에요.
그럴 때에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은 안식일의 준수는 일을 안 하는 것만이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일을 하시니까 나도 일하신다 이래요. 이것도 예수님이 자기가 한 일을 변명하거나 합리화 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고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나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런데 우리의 삶의 실존에서 보면은 안식일에도 사람이 태어나기도 하고, 요즘 같으면은 제왕절개를 해서 조정이라도 하겠지만, 또 안식일에도 사람이 죽는 일이 있거든요.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아니냐, 하나님이 그러한 일을 하시니까 나도 일하는 것이다 라고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하나님과 동등이라고 이야기 한다고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죽이려고 하였다,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쳤다는 것은 지난 주, 저 지난 주, 말씀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데몬스트레이션 데모다 힘을 과시해서 사단을 제압을 해서 사단에 속한 자를 하나님께 속한 자로 만들므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데모의 성격이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가져오신 거에요. 그 가져오신 것이 뭐냐 하면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뭐다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게 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이제부터는 주일 성수가 여러분들의 짐이 되는 신앙 생활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자녀가 이제는 직장을 구할 때에 주일 성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런 종교적인 규례에 의한 짐이 아니고, 주일 성수가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이루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서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 하신다고 하는 그 일을 제대로 이해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되요. 다른 말로 하면은 주일 성수를 제대로 성경적으로 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그런 문제에 대한 자유와 평안이 넘치는 것은 제가 목회를 하면서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주일 성수의 관점에서 주일 성수와 신앙 생활을 하도록 하니까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되는 거에요.
3. 출애굽기에 십계명중 제 4계명이 안식일에 대한 규례다.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시고, 제 7일에 쉬셨기 때문에 거룩히 지켜라. 신명기에는 애굽에서 구원해 내었기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완전했다는 말. 첫째날 둘째 날 사이에 갭설이 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변화된 사람들을 보면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시민들의 삶의 가치관과 삶이 뭔가에 대해서 알면서 이제는 종교인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으로 변화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이 주일 성수 안식일의 규례를 왜 하나님이 주셨느냐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 규례를 준 이유와 취지를 알지 못하고 조문만 가지고 있으면은 그 조문이 우리를 꼭 죈다고요, 그 조문이 뭐냐 하면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그리고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되다. 이건 조문이에요. 하나님이 왜 이러한 안식일의 규례를 주셨는가, 신명기에 십계명이 나오고, 그 다음에 출애굽기에 십계명이 나오는데 그 십계명 중에 제 4계명이 안식일에 대한 규례인데 그 제정에 취지에 보면은 각각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시고, 제 7일에 쉬셨기 때문에 거룩히 지켜라 이러는데,
신명기에 가보면은 애굽의 종 되었든 너희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내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이런다고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이 출애굽기와 안식일에 신명기에서 안식일 규례의 취지와 기원이 창조와 출애굽인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아야 되요. 이런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안식교나 하나님의 교회 같은 데에는 구약에는 분명히 안식일을 지키라 했지 주일을 지키라 했나, 기독교는 잘못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여러분 지금 그 신명기와 출애굽기에 그 안식일의 제정의 법을 보면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도록 주신 규례인데 안식일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은 아름다웠다는 게 아니라, 완전했더라 이런 말이에요, 뭐하나 잘못된 것이 없는 완전한 창조물이었더라, 그래서 제7일에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완전한 창조를 하시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7일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7일 신학도 예전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목사님이 물리학을 모르면은 엉뚱한 소리를 하고요, 물리학만 알고 신학을 모르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에요. 창조 신학에는 물리학과 신학을 동시에 알아야 되요. 그러니까 창조 과학자들은 젊은, 지구론을 이야기하면서 지구의 역사는 6천 년이라고 하니까 너무 큰 갭이 일어나거든요, 여러분 그런데 어떤 신학자들도 잘 믿는 신학자들은 그걸 또 6천년 그대로 믿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또 물리학을 인정하는 신학자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첫째 날 둘째 날 할 때에 그 날은 히브리어요 욤인데 히브리어로 욤이라는 말은 몇 억년이다라고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첫째 날 둘째 날 사이에 갭이 있다, 이게 갭 설이에요. 그래서 수백 억년이 된다. 백 억년이 넘는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 것들은 다 자기 주장이에요. 저는 주영훈 교수한테 창조 신학을 배운 사람인데 이분이 물리학자에요, 굉장히 뛰어난 물리학자인데 신학자이면서, 아버지가 유대인이라서 주가 아니고 쮸영훈 이랬다고, 지금 돌아가셨어요, 이번에 이야기 하면은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은 우주의 날이라는 거에요.
4. 하나님께서 넷째 날 해와 달 별을 만드시고 일자와 연한과 시한을 이루니라. 성경은 타락 후에 하나님의 7일에 관한 말씀이다. 말세라는 것은 크로노스적인 시간의 말세라는 의미가 아니고 카이로스적으로 이제 마지막 7일 시대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네 능력으로 재물 얻었다 하지 마라.
실제로 여러분들이 창세기를 보면은 하나님께서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일자와 연한과 시한을 이루니라 이랬어요. 지금 우리가 쓰는 24시간과 일년이라는 것은 해와 달이 만들어 지는 넷째 날에 창조된 거에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그전에는 시간의 절대성을 주장했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이 넷째 날 창조 되었는데 그러면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뭐냐는 거에요. 시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그것은 우주의 창조에요. 그래서 우주는 모자이크로 되어서 지금도 이 불렉홀 검은 것과 밝음이 교차되어져 가는데 이게 한날이라 보는 거에요.
그러면 그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오늘 제 7일은 과거의 어느 날이 아니고요, 타락한 이후에서부터 지금까지는 창세기 7일에 속하여 있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종말 말세 이런다고. 종말 말세라는 것은 크로노스적인 시간의 말세라는 의미가 아니고, 카이로스적으로, 이제는 마지막 7일 시대다. 성경은 바로 타락 이후에 하나님의 7일에 관한 말씀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7일에 관한 것이 성경의 내용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그 완전한 창조가 인간에 의해서 파괴가 된 거에요, 훼손이 된 거에요. 그래서 이 우주 만물에는 지진도 있고, 이런 화마도 있고, 이런 강추위도 있고,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가 인간에 의해서 어그러진 거에요.
어떻게 어그러졌는가 하는 것도 여러분들에게 예전에 한번 설교 했어요. 또 여러분들이 지금과 같은 여러분들의 모습이 아니에요. 우리는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랑만이 있는 인간이었어요. 그랬든 우리들이 타락하면서 우리 속에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불안전한 인간이 되어져 버린 거에요. 출애굽은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뭐냐 하면은 원래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그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은 사람 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가치로서 조화를 이루어 가는 그런 공동체였는데, 깨어진 거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가 되어졌고, 또 애굽의 사람들은 자유인으로서 노예를 부리는 그런 계층이 생겨난 거에요.
이런 우주 만물과 공동체와 인간을 하나님은 구원하시기를 시작했다는 거에요. 구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풍요에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요, 그곳에 가서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 되어져 있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이 땅에 도래되게 한 거에요. 그게 이스라엘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걸 알지 못하고 종교 집단으로 바뀐 것이 유대교에요. 여러분들이 그래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면은 절대로 네 능력으로 재물 얻었다 하지 마라, 네가 짓지 않는 집에 거하게 되고, 심지 않은 포도원에서 포도를 먹게 될 때에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은, 네가 좀더 가지고 있다고, 사람 위에 굴림 하려고 하는 거나,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거나, 또 없다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런 삶을 살지 마라는 거에요.
5.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 것은 타락한 인간에서 파괴된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회복하신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네가 내제적 자원과 네 지식도 네가 사회의 유기적인 상황 속에서 경제활동 하는 것도 일을 쉬라는 것도 내가 너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이라는 것이 그런 거잖아요. 가족에는 형님이 못산다고 무시 안 해요. 잘 산다고 해서 어깨 힘주지도 안 해요, 그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에요. 출애굽의 구원이 그런 거라 말입니다. 그러면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 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타락한 인간에서 파괴된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회복하신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에요. 그러면은 여러분들 속에 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에 일을 하지 말라고 했느냐 하는 것도 아셔야 된다고요. 그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것에서 일을 신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나는 장사하고, 나는 사업하고, 나는 회사 다니니까 그 회사가 일인 줄 아는데 그런 것은 일의 종류이지, 일의 본질적인 개념은 아니에요.
일은 뭐냐 하면은 창세기 3장에 의하면은 인간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내제적 자원을 통해서 경제활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내 생명을 유지해 가는 행위가 일이에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이 공부를 해서 지식을 가지고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 관계 속에서 얻는 여러 가지 이런 것들 성품들 이런 것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경제활동 거기에 자본과 노동을 플러스 시켜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들이잖아요, 그게 일이에요. 그러면은 일을 그만두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 말씀을 할 때에 출애굽기에 보면은 6일 동안 힘써 일하고, 이랬다고요.
하나님의 안식이 깨어진 우주 공간에서 사는 인생들은 이제는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열심히 내 생명을 영위하려고 하는 행위를 해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내 생명이 유지되는 거에요. 이게 타락한 인간의 삶의 실존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을 가지고 노동의 신성성 이러는데 한 부분만 보는 거에요.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제적 자원을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를 해야 되요.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 가야 되요.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이 있다고, 그 틀에 잘 즉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어져요.
그래서 사람이 사는 사회에 불공평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타락한 세상 속에 하나님께서 일을 6일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7일에 쉬어 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네가 열심히 일을 해서 남들보다 더 가지게 되었냐,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네가 내제적 가지고 있는 자원이 네 것이 아니고 내 것이야, 그리고 네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내 것이고, 또 네가 사회의 유기적인 상황 속에서 경제활동 할 수 있는 것도 다 내가 너를 생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야, 그래서 일을 쉰다는 것은 네 삶의 주체의 자리에서 네가 내려앉고, 하나님이 네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 일을 쉬어 라는 거에요. 아시겠습니까?
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사는 것이 신앙인의 본질이다. 소유가 내 삶의 안전과 소비의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은 주일 성수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면서 일을 쉬어 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단순히 하든 행위를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고, 네 모든 삶의 주인의 자리에서 네가 아니고, 네 생명을 영위하는 것이 네가 주체가 아니고, 내다 하나님이, 그것을 고백하라는 것이 일을 쉬는 규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이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뭔가 하면은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자잖아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앞에 사단의 권세에 이야기할 때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의 힘을 가지고 이루며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사는 것이 신앙인의 본질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나 우리도 여전히 타락한 아직까지 어그러진 제7일 속에 사는 우리들은 우리가 일을 해야 되요 누구든지, 그런데 우리는 세상사는 사람들하고 우리의 차이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자신의 삶의 안전을 확보하는 거라 생각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살아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소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전에 예수 믿기 전에는 지금도 이래 믿는 사람은 이제는 자기의 모든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가 달라져야 되요, 우리 교회 와서 그래야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여러분들 속에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시작하는 거에요.
예수를 믿고 교회 와서도 여전히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서 내 삶을 안전하게 하고, 더 많은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것은 주일 성수를 하지 않는 잘못된 삶이에요. 내가 공장문을 닫을지라도 내가 주일 성수를 위해서 내가 직업을 잘 선택했을지라도 그 직업을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짐으로 내 삶이 안전하고, 내 자녀의 삶이 안전하고, 더 많은 소비를 통해서 소비의 쾌락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주일 성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주일날 장사 문 여는 사람이 주일 성수 안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장사의 문을 닫아도, 장사 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해서 그 소유가 내 삶의 안전과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일 성수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유대인들은 주일날 일 안 하는 것이, 주일 성수하는 그들에게 아버지가 일하니 나도 일한다고 말을 하면서 38년 된 병자에게 여러분 다시 한번 14절 다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자 여기에서도 죄와 고난과의 관계를 일대 일로 가져가면 잘못된 거에요. 얼마나 많은 한국의 교인들이 죄와 고난을 일대 일로 가져감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지 몰라요. 그 부분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언젠가는 한번 다룰 문제가 있지만은 이 사람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너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한 것은 종교적인 규례라든지, 윤리적인 규례를 어기지 말라 이 말이 아니에요, 그런 것은 인간이 만든 거에요.
하나님이 만드신 법에는 이 사람이 지은 죄는 뭐냐 하면은 과로의 죄에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 됨이 없으면은 과로해요. 그래서 여러분 그 인문학 이런 데에서는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과로는 하나님도 책임 못 진다고. 그런데 우리는 그 과로를 미덕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온 산업화 시대에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여러분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생각한다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을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고요. 그것은 누가 만드는가, 그것은 여러분들 회사 사장만이 좋은 일이에요. 교회 신앙 생활 할 때에도 뭐 장로 집사들 하면 나는 교회에 봉사를 못해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 해요, 그것은 목사만 좋게 하는 거에요. 주일 성수가 아니에요 여러분.
7.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에 맞도록 수고를 누릴 줄도 알고, 다른 사람과 나눌 줄도 아는 은혜의 삶이 안식일 준수다. 미국의 석유 시장에 90%이상을 장악하게 된 록펠러 때문에 독가점 금지법이 생겼다. 휘기병이 생긴후 장학재단과 기부의 행위, 멘하탄의 수도세도 다 록펠러가 감당했다.
이 사람은 과로화 해서 어쩌면은 중풍에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네가 지금 안식일에 논쟁이라고, 이제는 네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해서 네 생명을 스스로 확보 하면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분량 있잖아, 그 분량에 맞도록 생활을 해서 네 수고를 누릴 줄도 알고, 다른 사람과 나눌 줄도 아는 은혜의 삶, 이게 안식일 준수에요. 이 변화가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되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우리 교회 다니면서 주일마다 어떤 기쁨이 있어야 되는가 하면 6일은 힘써 일을 하고, 주일날 올 때마다 내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안 다녔으면 일의 중독자로 일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면서 사는 자였을 텐데, 내가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생명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알고부터는 일을 상대화 하게 되었다. 참 좋다 참 내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다니면서 비로서 일의 사슬에서 해방 되었다.
이 기쁨이 주일마다 있어야 되는 겁니다. 언젠가는 여러분들에게 록펠러 이야기 했지요. 록펠러는 스코트렌드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집안의 자식이었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고 인쇄공 수많은 기술자로 살면서 그는 그 시대에 시대를 잘 타서 정유 석유 사업을 하면서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어요. 43세에 미국의 제일의 부자가 되었어요. 53세에 스텐다드 오일컴퍼니를 통해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어요. 그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현대적 가치로 평가하면은 빌게이츠 재산의 3배가 되는 부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가 부자가 될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자기가 경쟁하는 모든 정유공장은 어쨌든 간에 말살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그 거대한 석유 시장에 90%이상을 장악하게 되었어요. 록펠러 때문에 독가점 금지법이 생겨나기를 시작한 거에요.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자산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소비와 즐거움의 삶을 살아가는 53세에 최고 부자가 되었을 때, 그에게 병이 찾아왔어요, 머리가 빠지고 의사의 선고로는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거에요, 희귀병[稀貴炳]이 왔어요. 다 이룬 그에게 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 입구에 걸려 있는 액자 주는 자가 복되다. 사도행전에 있는 그 말씀이 자기 눈에 왔어요. 평생 동안 남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기의 소유의 수단과 도구로 삼으면서 무자비하게 살아왔든 그에게 마지막 사형 선고가 나고 보면은 그 순간에 그 말씀이 자기에게 오면서 병원에 병원비 못 내는 한 소녀의 병원비를 대주면서 자신의 삶이 변화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소유의 즐거움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누림과 나눔의 즐거움으로 살기 위해서 록펠러 재단을 세었고, 시카코대학에 출신의 60명 이상의 노벨상을 타는 자와 장학재단과 수많은 기부의 행위가 그로부터 출발이 된 거에요. 미국의 멘하탄이 수도세를 내지 않는 것은 록펠러재단에서 그 모든 수도세를 감당하기 때문이에요. 이게 주일 성수에요. 그는 그 이후에 40년을 더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저는 용인에 있기 때문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봐요, 용인의 재정의 적자가 에브렌드 경전철 내가 알기로는 1년에 2천억 적자가 난데요. 이건희나 이재용이가 그 용인의 경전철을 사서 자신이 운영을 한다면은 2천억의 적자도 안 날것이고, 그 2천억이 삼성에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돈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삼성과 이건희를 존경하고 그의 그 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까? 왜 우리나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을까?
8. 예수 믿고 내 수고를 누릴 줄 아는 삶을 살게 된 것이 이게 주일 성수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누리며 사는 삶이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의 주인 되심을 믿으면 그때부터 일을 상대화해야 되고, 돈을 상대화해야 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수고의 분복을 누릴 줄 알게 된다.
오늘도 교회 다니는 여러분들의 삶에도 주일 성수는 주일날 일안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그건 소극적 경건주의에요. 이제는 내가 힘써 일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내 삶의 안전을 도모하고 더 많은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것은 주일 성수를 하지 않는 죄의 결과에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의 주인 되심을 믿습니까, 그러면 그때부터 여러분들은 일을 상대화해야 되요. 돈을 상대화해야 되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수고의 분복을 누릴 줄 알아야 되요. 앞으로 저 앞에서요 예수 믿고 큰돈 벌은 것 자랑하지 마세요, 예수 믿고 내 수고를 누릴 줄 아는 삶을 살게 된 것이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게 주일 성수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누리며 사는 삶이에요.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과 더불어 누릴 때, 내 수고와 그 일과 그 물질이 얼마나 큰 복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데요. 저는 우리 교회에서 참 바라는 게 그런 거에요. 우리 교회도 속히 이런 권사가 좀 나왔으면 싶어, 저는 목사가 될 때에 지금 현재의 저는 합동측 또 고신바람이 아주 심한 근본적인 신학이 심한 그 속에서 자랐어요. 누구보다도 교회의 전통과 규례의 얽매여 살았어요. 그런데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그 규례의 취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거에요, 신학교 다니면서, 주일 성수 일하지 말라, 왜 하나님이 이러셨을까, 그래서 제가 부목사 시절에 이 설교를 이대로 했어요.
그 교회에 제일 부자가 김창수 장로에요. 테이프공장을 하는 분인데 그 부인이 우순열 권사에요, 새벽 기도 한번 빠진 적 없고, 심방 대원 한번 빠진 적 없고, 가장 모범적인 권사였는데 뭘 몰랐는가 하면은 누림과 나눔을 몰랐든 거에요. 그래서 그 아들이 세 명이 있는데 그 세 명 다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안 해요. 왜 엄마가 교회에만 살았지, 가정 생활 안 했거든요, 저보고 하는 소리가 목사님 일찍 알았더라면은 우리 아이들이 신앙이 참 좋은 아이들이 되었을 건데, 이 권사님이 연말이 되면은 목사님 봉고 있지 교회, 부산 분입니다, 그것 가지고 우리 집에 와 봐, 이런다고, 가면은 쌀 포대가 쭉 노여 져 있고, 반찬이 노여 져 있고, 봉투가 가득 있어요.
그것 가지고 교회에 심방 다니면서 어려운 가정들 목사님 같이 가요 하면서 다니면서 그 사람들에게 다 선물을 주는 거에요. 예전에는 완벽한 종교 생활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존경이 되었다면 이제는 온전한 주일 성수를 통해서 그 권사님이 말 하마디 하면은 모든 교회 교인들이 조용 해져요. 젊은 집사들이 교회가 어떻니 목사님이 어떻니 하면은 그 집사를 워커힐 피자힐이 있어요, 고 옆에 명월관 이런데 데려 가서 갈비 사주고 피자 사주면서 교회와 목사님에게 그런 말하면 안 되지, 우리 자신을 보라고, 예수 믿고 나는 돈을 쓸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아는 거에요, 이게 예수의 구원이야, 교회가 잠잠하고 은혜로워요.
9. 주일 성수를 7일만이 아니고, 인생의 주일 성수를 하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고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규례의 취지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과로하지 않고 과욕하지도 않는다. 율법의 주인 되신 예수를 자신들이 만든 율법의 규례로 박해하고 죽인 유대교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 성수를 6일에서 7일만이 아니고, 인생의 주일 성수를 하세요. 이번에도 장로를 뽑는데 사람들이 자기는 일을 하고, 또 어머니 성이 이래서 못한데요,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왜 장로는 정통적인 생각으로 생각하느냐고, 열심히 일하는 장로가 있으면 안 되느냐고, 저는 그래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인생의 주일 성수가 뭐냐 하면은 60년 동안에는 열심히 일을 하세요. 60이 지나면서부터 자기의 수고를 누리면서 그 누림이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눔이 되는 그래서 여러분들이 참 60부터 우리가 100세 인생 아닙니까? 40년은 정말 멋있게 살다가 주님 앞에 가는 삶, 30살 까지는 누구보다도 실력을 갖추세요.
자기의 내재적 자원을 충만케 하세요, 30세부터 60세 까지는 열심히 일을 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되, 그 소유가 내 삶의 안전과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서 60세부터는 해외 여행도 갈 줄 알고, 내가 해외 여행 갈 때에 교회에 해외 여행 한번도 안 가본 가정을 데리고도 갈 줄도 알고, 이게 주일 성수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내가 이래 병 고침 받고, 부자가 되었다, 감사하다, 전부 종교인이 만들어 낸 신기루에요. 나는 예수를 믿고 난 뒤에 누구보다도 일을 열심히 했고, 그 일의 열매들을 쌓다가 만 죽은 것이 아니라, 누리며 살다가 나누며 살다가, 가장 멋진 생애를 예수 때문에 살다가, 내 생애를 마감했노라, 이 고백을 하게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고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규례의 취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여러분들의 소유를 자랑하지 마세요. 다비다, 다비다가 죽었을 때 수많은 과부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겉옷과 속옷을 내놔 놓으면서 이게 다비다가 해 준건데, 다비다 죽으면 안 되는데, 다비다 없으면 우리 교회 안 되는데, 그 다비다를 살린 거에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자기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왜 못하는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심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과로, 과욕하다가 인생 망치는 거에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과로하지도 않고, 과욕하지도 안 해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불량에서 누리며 나누며 사는 멋진 생애, 그 생애를 오늘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고, 유대인들의 그 종교적인 규례에 의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셨어요.
그 예수를 율법의 주인 되신 예수를 자신들이 만든 율법의 규례로 박해하고, 죽인 유대교에요.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본질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 믿는 기쁨이 소유의 증대[增大]에 있는 줄 알아요. 예수 믿는 기쁨은 관리자로서의 누림 속에 있어요. 예수 믿기 때문에 돈에서 자유하게 되고, 일에서 자유 하게 되어지고, 남들과 비교해서 자유 하게 되어지고, 모든 사람의 섬김이 될 때, 여러분들의 생애는 진정 모든 사람의 존경 받는 생애가 되요. 저는 우리나라를 위한 기도와 교회를 위한 기도는 하나님 이 나라도, 하나님 우리 교회도, 존경 받는 부자가 많아 지기를 원합니다. 가난한 자가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안식일 준수를 아는 자가 드리는 기도에요. 아멘
◈봉헌 기도◈
하나님이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심을 알고,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알아서 돈을 절대화하지 않고, 내 생명이 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함을 고백하면서, 내 수고의 분복을 누리게 되는 놀라운 안식일의 축복을 주심을 고백하면서 주님 앞에 예물을 복되게 하사, 한번밖에 없는 인생, 오늘 누리지 못한 것은 평생 누리지도 못하는 줄도 알고, 깨어진 하나님의 안식 속에 힘써 일을 하고 그 수고의 열매를 누리며 나누다가 주님 앞에 가는 신앙의 승리자가 되는 신앙의 표현이신 믿음의 표현인 예물을 받아 주시고, 이 예물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워서 그저 주일날 장사 안 하는 것이 주일 성수고, 직장 안 가는 것이 주일 성수라는 소극적 경건주의에 매여 있는 한국에 진정한 주일 성수에 주님 몸 된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은혜의 선물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들 땀을 흘리고 엉겅퀴가 있는 세상입니다. 정당한 수고가 주어지지 않는 엉겅퀴와 땀의 고통이 있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삶의 주인이 되어서 이들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복된 생애를 영위케 하여 주시고,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정의로운 공동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않는 공동체, 정의로운 공동체, 수고의 분복이 주어지는 공동체, 같은 노동에 같은 임금[賃金]이 주어지는 정의가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통해서 세워 져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죽도록 일하다가 누리지도 못하고 죽을 인생에게 자신의 수고의 분복을 누릴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아는 천국의 삶을 살도록 병자를 고침으로 사단을 제압해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내 자신이 아니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충만하심이 오늘도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절대시하고, 소비의 쾌락으로 사는 삶에서, 이제는 일의 종류도 선택할 줄 알고, 나에게 좀 더 이익이 되면 누군가 에게는 피눈물이 되는 일이 아닌가도 헤아릴 줄도 알고, 자신에 주어진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로와 과욕도 하지 아니해서 은혜의 분량 안에서 복된 삶을 살다가 주일마다 이러한 삶을 회복하다가, 주님 품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불의한 세상 우리가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할 어그러진 세상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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