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 (14)(마가복음 14:22-25)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8. 3. 23. 00:19



담임목사 김종웅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 (14)

마가복음 14:22-25

2018 3 18일 주일 낮 예배

                                                                                                                                                No. 358

22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구약의 모든 기준은 모세 오경에 의한 공동체를 이루려는 것이 구약이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레위 지파 그 중에도 아론의 계보로 이어져 왔다. 대제사장이 드린 제사는 더 이상 제사의 효력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한다.

 

오늘 이 말씀은 성찬을 제정하는 중요한 말씀이지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예식이 성찬식입니다. 예전에는 매주일 성찬식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마는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성찬식이 일년에 한 세 네 차례, 우리 교회도 한 세 차례 정도 드리는데 왜 그러는가, 성찬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성찬이 형식으로 흐르는 것은 큰 죄입니다. 성찬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 다와 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성찬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우리 구약에서는 이 부분이 성막을 중요시 여기잖아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성막의 모형을 해서 교인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성막 그 자체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구약이 왜 성막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1. 구약 성경의 대제사장은 다른 제사장하고는 달리 대속죄 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사함 받는 것은 언약의 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대속죄일과 일을 집행하는 대제사장은 너무나 중요하다. 성경 전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성막의 모든 일을 집행하는 사람이 대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약을 보면서 이 대제사장의 성막에서 행하여 지는 이 제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은 성경을 모르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구약 성경의 이 대제사장은 무엇을 하는가 하면은 다른 제사장하고는 달리 대속죄 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지 전에 먼저 자기의 죄를 먼저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사함 받습니다, 그 사함을 받아야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자격을 대속죄 일에 얻게 되는데, 이런 것이 뭔지 모르고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모르니까 기독교가 참 이상한 기독교가 되는 겁니다.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들어갈 때에 방울을 달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끈을 묶습니다. 그가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는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리는데 딸랑딸랑 소리가 나지 아니하면은 대제사장은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이 또 일반 제사장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끈으로 묶어서 그 시신을 꺼내어서 처리를 하는 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속죄 일에 드리는 그 제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공동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제사를 알지 못하고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는 언약의 공동체성이 상실 됩니다.

 

그렇게 되면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평화가 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강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을 보면서 대속죄일에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제사에 참여하는 겁니다. 거기에 죄는 종교적인 죄도 아니고 윤리적인 죄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언약을 어긴 죄입니다. 이 사람들은 일년 동안 경제활동하고 살아가다 보면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나님 노릇 해 주시는 것은 잊어버리고 열심히 살아요. 그런데 대속죄 일에 하나님이 아버지노릇 해 주셔서 살아온 것을 잊어버린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사함을 받는 거에요.

 

그래야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언약의 공동체가 회복이 되어져서, 가지고 있는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더불어 부유한 삶을 사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이 대속죄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이 일을 집행하는 대제사장은 너무나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이 대제사장들이 타락을 하고 제사장 그룹이 타락을 해 버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약의 공동체가 상실된 겁니다, 상실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말라기에 이번 수요일 날까지 이제 마지막 말라기를 제가 열 번에 걸쳐서 강해를 했는데 우리 이윤철집사님이 팟방에 올려 놓으니까 여러분들이 좀 들었으면 해요.

 

말라기 1 2절에 보면은 성경 전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하고 안 믿는 사람은 차이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을 받아 드리지 않는 사람의 차이에요, 그냥 교회에 주일날만 오면은 이 사람은 종교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이 말씀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라 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뭐냐는 거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은 우리나라가 이럴 수가 있고, 내 삶이 이 모양 이 꼴이냐, 이런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은 제사장 너희들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2.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레위의 언약은 생명과 평화의 언약이다. 말라기가 하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너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11조를 드려 봐라, 공동체와 개인에게 한 약속이 헛갈리면은 기복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사장들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너희가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너희가 아버지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왜 공경 안 하는 거냐고 하니까, 너희들이 흠 있는 제물을 드리고, 부정한 제물을 드리지 한 했나, 너희가 드린 것을 총독에게 드려 봐라, 총독이 기뻐하겠느냐, 이런 말씀을 해요. 그러면 거기에 흠 있는 제물이라는 것은 오늘날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교인들이 열심히 십일조를 해 와서 드린 이 헌금을 너희들이 어떻게 사용하는가 보라는 거에요. 교인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사용하느냐, 제사장들과 레위인 들을 생활비로 제대로 사용하는가, 다 쓸데 없는데 사용하면서 쥐꼬리만큼 드리는 것이 아니냐,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면은 말라기에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들은 그래서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다, 레위의 언약은 생명과 평화의 언약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런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생명이 없고 평화가 없는 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하는 거다, 그런 것들은 너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면서 공경함이 없는 것이고, 너희들이 공경함이 없는 것은 백성들이 드린 그 제물을 흠 있는 것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제사장들이 그렇게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어떤 일을 했는가 하면은 하나님은 한 분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면서 이 백성들 사이에 가족으로서의 하는 일이 너희들이 뭐 있느냐?

 

이방인들과 같이 이방 잡족화 되지 안 했느냐고, 이방인들은 자기 혈연의 가족만을 좋아하고 타인의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혼합이 너희 가운데 일어나지 안 했나, 이스라엘은 김씨 이씨 박씨라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라도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모시는 한 가족인데 그런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다는 거에요. 없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모양 이 꼴이니까 3장에 가면은 말라기가 하나님께서 너희가 간절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하니까 너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11조를 드려 봐라, 그러면 창고 가득히 넘치게 복을 줄 거다. 이 말씀도 부흥사들이 개인에게 적용하는 거요.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공동체에게 한 명령이냐, 개인에게 한 명령이냐, 공동체에게 한 약속인가, 개인에게 한 약속인가가 헛갈리면은 기복신앙이 되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들이 대속죄일에 드리는 그 제사가 잘 못 되어져서 언약의 관계가 회복이 되지 못해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성이 상실되어 버렸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형식적 종교 11조 생활을 하지 아니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거에요.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되는데 경험하지 못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 생활은 아주 형식으로 흘렀든 거에요.

 

3.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로서 11조의 삶을 하면은 창고 가득 풍요롭다는 것도 개인에게 적용하면 안 된다.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너희들을 아버지에게로 마음을 돌리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리게 하는 일들을 행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예수님이 오셨다.

 

그런 그들에게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면서 너희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로서 11조의 삶을 하면은 내 집에 가득 채우라는 이런 말씀들은 너희 공동체가 모두가 부유한 공동체가 될 거다. 잘 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창고 가득 차고 넘치는 그런 풍요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이지, 그것을 개인에 적용하면 안 되요. 개인에게 적용하면 11조 생활 잘해서 가난한 사람은 뭡니까 그러면은, 좋은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은 모든 백성들이 세금을 하나도 떼먹지 아니하고 다 내면은 우리나라가 풍요로운 나라가 될 것인데 집행하는 사람들이 그 세금을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사용되지 아니하고, 잘 못된데 사용하니까 백성들이 나라가 나에게 해주는 것이 뭐냐, 이래서 세금을 잘 내지 않는 거와 같은 그런 현상이 이스라엘에게 벌어졌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11조 생활을 잘 하는 백성들이 그러면은 내가 11조 생활을 잘 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렇게 묻는다고요. 다 떼먹고 사는데 나 혼자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니까, 말라기 선지자가 때가 되면은 하나님께서 네 선한 일들을 기념 책에 다 기록하고 있느니라,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면은 선인과 악인의 모든 행위가 판별나고 들어 나게 될 거다, 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렇게 이제 하나님의 저울의 추에 기우러 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가 상실 되었기 때문에 용도 폐기 될 것이다. 용도 폐기를 하고, 메시야를 보내어서 새로운 언약의 공동체가 세워 질 것이다.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너희들을 아버지에게로 마음을 돌리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리게 하는 일들을 행할 것이다, 라고 예언을 하고, 예수님이 오신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구약을 읽으면서 왜 대제사장들이 그렇게 타락을 해서 잘 못 되어졌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을 읽으면서 제사장이 제일 중요해요. 제사장이 자기 역할을 잘하고 제사를 올바로 드리면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 하나님이 그들에게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그런 아름다운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세워져서 이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 세워서 자자손손 이것이 이어지기를 했어요, 그 레위지파 가운데 모세의 형님인 아론에게 대 제사장의 직임을 주어서 그 후손들이 제사장 되게 한 것은 오늘날과 같이 목사님 세습하는 것을 그런데 빗대어서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 대제사장의 고유의 영역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하고 나가기를 바랬든 거에요.

 

4. 다윗 왕이 세워져서 엘리 제사장의 후손인 아비아달과 사독이 대제사장의 역할을 다윗 시대에 했는데 다윗의 말년에 그 아들 아도니아가 자기가 반역을 일으킨다, 솔로몬이 되기 전에, 레위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다. 하스모니안 왕조가 무너진 후엔 해롯왕이 대제사장을 임명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어 보면 역사서에 보면은 엘리 제사장의 타락이 나옵니다, 그 아들들이 엉망진창 그래서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제사장에서 멸종을 당할 것이다 그래요. 그 이후에 다윗 왕이 세워져서 엘리 제사장의 후손인 아비아달과 사독이 대제사장의 역할을 다윗 시대에 했어요, 했는데 다윗의 말년에 아도니아가 그 아들 아도니아가 자기가 반역을 일으킵니다, 솔로몬이 되기 전에, 그때에 아비아달 제사장이 그 아도니아의 반역에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이 아비아달은 제사장에서 파문이 됩니다. 이 파문을 일컬어서 성경은 엘리의 죄가 아비아달 때 와서 결과로 나타난 거다,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사독계열이 쭉 대제사장으로 이어져 갑니다.

 

이 사독계열이 이어 가는데 지난주일 말씀 드린 대로 셀루키드 왕조에 와서는 이 사독계열의 제사장을 파문을 하고, 일반 백성을 대제사장으로 세운 거에요. 이것 때문에 반발해서 전쟁을 일으킨 마카비 형제도 그 혁명의 성공을 하고는 자기 아들 요나단을 대제사장의 자리로 앉힌다고요, 그래서 하스모니안 왕조는 다윗시대와 같이 백 년 동안 위대한 독립 국가를 이루었지만은 모두다 다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제사장들과 제사장도 아니지요, 정치의 기득권층만이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그래서 성경에는 한 줄도 기록을 하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 나라가 경제도 우리가 2만불 소득 되면 뭐합니까, 국민 모두가 잘 살아야지 의미가 있는 거지요.

 

우리나라가 10만불 되면은 뭐해요 삼성만 잘 살면은, 그런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다 이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교회가 생명이 있고, 레위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했는데, 그 교회가 생명이 있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는 언약의 공동체성은 뭐로하는가 하면은 교회가 점점 성장하고 잘 되면은 교인들의 삶이 부유해 지고 평안해 지는가, 이게 중요한 거에요. 몇 만 명 모여 가지고 예산이 수백억 되면은 그 교회의 가난한 사람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리고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문화를 경험 할 수 있는가, 우리 한국 교회가 큰 교회에 다니면은 삶의 걱정이 적은가, 그렇지 않다면은 언약의 공동체성이 상실된 죽은 종교 기관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스모니안 왕조 이후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말라기 시절에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게 뭐냐 라고 이야기를 하고, 백성들이 형식적 종교로서 11조를 드리지 아니하는 이런 악순환이 일어났는데 하스모니안 왕조가 무너지고 난 뒤에 그 다음부터는 해롯왕이 대제사장을 임명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임명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3, 4년 지나다가 다른 x이 돈을 또 총독에게 갔다 바치면은 총독이 해롯왕이 임명한 제사장을 파문하고, 돈 받고 자기 제사장 임명하는 거에요. 그런 것이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일어난 악 순환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면 돈 주고 제사장 되었으니까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본질적인 일들이 뭔지를 몰랐다고요.

 

5.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 언약을 어긴 죄를 사함 받아 언약의 공동체가 회복이 되어야 되는데, 돈 받고 된 제사장이 그런 것 몰라, 데제사장이 속죄일에 언약의 죄,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믿지 않고, 내 힘으로 살은 것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된다.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 언약을 어긴 죄를 사함 받음으로 말미암아 언약의 공동체가 회복이 되어져야 되는데, 돈 받고 된 제사장이 뭐 그런 것 알겠어요, 어쨌든 간에 교인들에게 11조를 많이 해 가지고 호주머니 챙기는 일들만 하는 그런 대제사장이 된 거지요. 오늘날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가 커져 갈수록 교인들의 삶이 부유 해지고, 풍요로워 져야 되요, 개인이 아니에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못하는가, 한국 교회도 목사님들이 아무나 되는 거에요. 제가 신학을 할 때에는 내가 신학교 가고 싶다고 해서 신학교 못 가요, 노회에서 추천서를 써 주어야 가는 거에요.

 

신학교에 들어가면은 전도사라고 안 하고 목사 후보생이라고 그래요, 신학교는 아무나 학생을 못 뽑아요, 희한한 요즘 신학교들이 생겨 가지고 신문에 광고 내 가지고 학생 모집 하는 이런 것은 다 헤롯에게 돈 주고, 총독에게 돈 주고, 제사장 되는 것하고 똑 같은 거에요. 일년 동안 신학교 그래서 신학교는 교단에서 위탁 교육 기간이에요, 일년 마치지요, 그러면 제가 신학교 다닐 때만 해도, 노회에서 계속 추천서라는 것을 받아 가지고 학교에 내야만이 2학년에 올라갈 수 있어요. 일년 동안 이놈이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보고, 목사로서의 소양이 부족하면은 계속 추천서를 안 써 주어요, 그러면 공부를 하려 해도 더 이상 못해요.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면은 이 사람이 이런 지금 제가 설교하는 거와 같은 이런 복음을 알고 성경을 이런 것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봐 가지고 있는가를 따라서 강도사 고시를 치는 거에요, 그 강도라는 말이 설교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 이후에 설교사 자격을 주고, 또 일년 동안 그 사람이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을 보고, 목사로서의 자질이 있다면은 아무리 설교를 못해도, 설교를 암만 잘해도 목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면은 목사 고시와 면접에서 탈락을 시켜 버리는 거에요. 이렇게 목사가 되어 진다고. 그런데 지금은 자기가 돈 내 가지고 목사 되는 거에요. 신학교도 자기가 학생 뽑는 거에요. 어디 하나 그런 첵크 기관이 없는 거에요.

 

그렇게 노회에서 목사 후보생을 보내고 나면은 자기가 등록금 내는, 저는 이상한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한번도 등록금을 받은 적이 없지만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전도사의 등록금을 다 대주는 것이 보편적이에요. 그렇게 목사가 되어서 이런 설교를 할 줄 알아야 되는 거에요. 데제사장이 속죄일에 언약의 죄 종교적인 죄도 아니고, 윤리적인 죄도 아니에요. 그것은 필요 할 때마다 드리는 속죄제 속건제 이런 것은 대속죄일에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말입니다. 살면서 거짓말하고, 도적질한 것 이런 것들은 주일날 예배 때마다 와 가지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성찬식에는 무슨 죄에 대한 것인가, 내가 일년을 살면서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의지하며 살아야 되는데 내 힘으로 살은 것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되요.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거에요. 그것을 위해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들어가는 거에요.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자신의 모든 그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럴 때에 그러면 예수님께서 대 제사장이라면은 쭉 레위의 지파에서 사독의 계열로 예수님은 아니잖아요, 유다 지파잖아요, 무슨 자격으로 예수님은 자기가 대제사장이라고 했는가, 이런 것도 아셔야 되요.

 

6. 멜기세덱“의의 왕”평강의 왕은 시작도 끝도 없고 무시무종, 아비도 어미도 없다, 그런 대제사장을 만난다,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리라. 앞으로 메시야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어서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는 자가 그리스도이시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목사들이 처음 듣는 거래, 얼마나 한심해요, 기독교의 핵심인데 이런 것이 도둑질하고 뭔 질하고, 이런 것들 하나님이 다 기억조차 안 해요. 그러나 언약을 어긴 죄만큼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성찬식에 아무나 참여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하고, 교회를 헤치게 되면은 수찬정지를 시켜서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 밖에서 근신하라 이러는 거에요. 이런 것이 없으니까 교회가 거룩하지 못한 거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무슨 자격으로 자신을 대제사장이라 했는가, 여러분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는 아론의 계열에서 사독의 그 후손으로 쭉 대제사장이 이어 오지만 그 안에 있는 진짜의 대제사장의 본질은 어디인가 하면은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 하고 북방 그돌라오멜 하고 연합군 하고 전쟁을 해서 롯이 포로로 잡혀 가고 재산을 다 빼앗겨요.

 

그때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병을 데리고 가서 북방 왕을 물리치고 포로들과 그 탈취 물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이상한 사람을 하나 만나요, 그 사람이 멜기세덱이라는 거에요. 멜기세덱 의의 왕평강의 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사람은 시작도 끝도 없다, 무시무종이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그런 대제사장을 만나는 거에요. 그게 누구에요 하나님이지요. 무시무종 아비도 어미도 없는 스스로 있는 자, 그에게 11조를 드리는 거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공동체의 출발이에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 바쳐서 복 받았다 이런 것은 천 개 중의 하나에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이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다 그렇게 되었으니까, 시편 110편에는 이미 예언을 하기를 뭐라 했나 하면은, 시편 110편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리라. 앞으로 메시야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어서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는 자가 그리스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히브리서 6장에는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대제사장으로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우리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언약의 죄를 언약을 어긴 죄를 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게 히브리서에요.

 

그 히브리서를 다음주 고난주간에 여러분들에게 크게 이렇게 제가 설명을 할 거에요. 그러면은 이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은 그 멜기세덱의 반차에 와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온전한 제물로 하나님 앞에 지성소에서 드렸다. 그래서 그 십자가는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구약의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 들어가서 한번 언약의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된 것과 같은 그런 일들을 예수님이 하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렇게 예수님이 하신 대제사장 영원한 대제사장이 하신 것은,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그 제사, 날마다 또 지으면은 이런 회개를 해야 하는 사함을 받아야 하는 그 제사를 단번에 너희들의 모든 죄를 사하였다.

 

7. 언약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그것이 형식화 되면 언약의 공동체성이 상실 되면 하나님의 평강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용도 폐기하고, 그 폐기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이젠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이제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자녀이기 때문에 어떠한 죄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는 너희 가운데 없다. 그래서 너희들은 이제는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를 드리지 말고, 너희가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지난 주일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돌로 지은 예배당이 아니고, 우리들의 모임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 성전의 성격은 히브리서 10장에 보면은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하여 모이는 그 모임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교회에 복 받으려고 오지 마세요, 열심히 일하려고 오지 마세요, 사랑하려고 오세요.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이런 것을 모르면은 교인들을 열심히 일을 시켜서 교회를 크게 하는 CEO 가 되지 목사가 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은 교회가 아무리 커져도 교인들의 삶에는 평화가 무관한 교회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교회가 점점 형식으로 흘러 버리고, 교인들의 11조는 사라진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10장에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다른 데에는요 요즘 이런 대제사장으로서의 그 지성소에서 드리는 그것이 어떤 죄고, 그것이 어떻게 언약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그런 그것이 형식화 되면은 언약의 공동체성이 상실 되어지고, 그러면은 하나님의 평강이 없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용도 폐기하고, 그 용도 폐기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이제는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지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회개하고 사람들에게 죄책감 불러 일으켜서 헌신을 이끌어 내는 이런 것들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말라기에 이야기한다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 한대로 하면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모시는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되어서 그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런 공동체가 그런 것이 예배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주일날 와서 우리 만나 주일날 사랑과 선행이 격려 되지 아니하면은 형식만의 예배에요. 어떤 분들은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쉬워요, 가족의 눈으로 보세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을 내 가족의 눈으로 보는 거에요. 교회 와서 자기의 정당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까라 뭉개는 이런 일 안 한다는 말이에요.

 

8.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받아 드린 예수님의 그 대제사장으로서의 온전한 제사와 그 제사의 결과로 나타난 주님의 몸 된 교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는 이 공동체를 이탈하지 말라, 예배와 함께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

 

내가 이런 말 한마디 하면은 교회에 유익이 될까 덕이 될까를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거에요, 그런 것이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거에요. 내 하나가 편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아니할까, 이런 것이 사랑과 선행이 격려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거에요. 그러한 공동체가 되려면은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을 가지라는 거에요, 그 믿음은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사니까 말라기 있는 대로 자기 혼자 손해고 유익이 뭐냐 이런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유대교로 돌아가고 배교가 일어나는 거에요, 일어나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구약에 대제사장이 그랬든 유대교의 그 제사는 이미 용도 폐기 되었다.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받아 드린 예수님의 그 대제사장으로서의 온전한 제사와 그 제사의 결과로 나타난 주님의 몸 된 교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는 이 공동체를 이탈하지 말라, 이것을 받아 드려라, 이 믿음이에요. 그렇게 받아 드리면은 손해가 있고 힘이 드니까 12장에 가서 영원한 도성을 바라봐라, 징계는 징계가 없으면은 사생자다. 예수 믿고 영광 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에 남은 고난을 겪으며 가라, 영원한 도성이 있다, 천국이 있다, 그러면서 13장에 마지막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가 뭔지 아니, 찬미의 제사 지금 여러분들이 드리는 이 오전에 드리는 이 예배와 함께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를 잊지 않는 제사에요. 그러니까 뭐 선을 한다고 하니까 뭐 여러분들이 아니에요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는 동이어로 사용하는 거에요.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올바른 사람인가,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 그 나누어 주는 것도 상대방을 가족으로 생각해서 나누어 주는 거에요. 자기 의로 긍휼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 나누어 주는 몫이 뭐냐 하면은 11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으로 분리해서 드려서 교회 당회는 그것을 가지고, 땅 사고 건물 사고 뭐 이러지 말고,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이런 것들이 선순환적으로 일어나서 교회가 없어지면 다 없어진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는 그 제사를 주님이 재림하는 그날까지 너희 가운데 있기를 바란다, 이게 히브리서에요. 이게 선경 전체에요.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공동체를 위해서 반듯이 일년에 한번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이 지은 죄, 그 죄는 언약을 어긴 죄,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지 아니하고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했든 그 죄를 속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공동체가 회복이 되어져서 모두다 한 하나님을 모시는 그러한 영적인 가족을 위해서 아브라함이 드리는 그 11조 멜기세덱이 드렸든 그 11조의 정신이 너희 가운데 실현되기를 원한다. 오늘날 여러분 자 우리 교회가 가는 방향을 한번 보세요, 이런 것을 참 답답한 것은요 목사들도 몰라요, 그러니까 목회를 왜 해야 되는지, 이 교회를 어떻게 끌어 가야 되는지, 그러니까 어디 가서 목회 기술이나 배워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사서 교회만 크게 하면은 그 목회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것은 CEO 지요, 그게 어떻게 목회가 되어요.

 

교인들은 또 그런 목회에 박수치고 있는 거에요. 교인들은 죽어 가든 말든 외부에 뭐 구제만 많이 하면 된다고, 천만에요. 여러분들이 오늘 주일날 특히 성찬식은 하나님의 언약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내가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믿지 아니하고, 내 힘으로 살려고 했든 것들, 그게 뭐냐 하면은 11조 떼먹은 것들, 왜 안 했는가 말라기 시절에, 11조가 교인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사용되지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여러분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면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활비 외에는 다 돌아가는 것이라면은 안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땅에서 교회에서 경험 해야 되겠지요.

 

한국의 교회가 이런 시절이 없었나, 예전에는 이런 교회였어요. 80년대 제가 신학을 갈 때에 해운대 제일 교회에 전도사로 시무했든 서성진 전도사가 같이 가는데 뭐라는 가 하면은 이번 주에 우리 교회에 오수영 장로가 2천만원 11조 했다고 그래요, 아 그래서 저도 오수영 장로를 알거든요, 그 장로님 요즘 사업 잘 되는 갑네 이랬더니 그게 아니래, 뭐냐 했더니만 그 오수영 장로가 뭐 아파트 집인가 지금 기억은 부동산을 10억에 샀는데 12억에 팔은 거에요, 차액의 2억에 대해서 11조를 드린 거에요. 그런 게 비일 비재 했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동백에 집사 가지고 올라가 가지고 올라간 그것을 차액만큼 11조 하면 그런데 그렇게 11조 했는데 아무나 목사가 되니까 이 목사들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줄 모르니까, 아무나 장로가 되니까 장로들 마음 속에 교인들을 내 자식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당회서 뭐 하는가 하면은 저 어디에 부동산 사 가지고 우리도 투기해 가지고 재산 널리자 이런 소리나 하는 거에요.

 

그럼 그게 회사지 무슨 교회에요, 여러분들 속에 그게 있느냐 말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은 주는 자가 행복하다고 그래요, 여러분들이 그 말씀도 설교는요 인터넷 뒤져 보세요, 수백 개 설교문 떠요 그 중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와서 설교문 줄줄 읽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설교는 뭔가, 내 생각과 내 삶을 성경에 비추어서 변화된 것을 교인들에게 들어내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성경적 지식의 정보가 아니고, 성경으로 인하여 변화된 내 모습과 내 삶과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들어내는 거에요. 주는 자가 복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앵무새같이 그 말만 하는 거에요.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거듭나서 제대로 알게 되면은 설교 이렇게 하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열심히 일하지요, 자기 돈 쓰려고 일하는 아버지 잘못된 거에요, 열심히 일해 가지고 가져와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풍요로움을 주려고, 자기는 된장 찌개 먹었는데 회사 가서, 아내와 아이들은 레스토랑 가서 그때 점심에 커피 마시고 이러는 것을 즐거워해요. 신비한 일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 한국에 점심때 가보세요 여자들이 전부 식당에 많은 여자들 틈바구니에 남자 하나 있으면 그것은 목사 아니면 보험회사 소장이에요, 진짜로 가서 보면은요 한심한 게 아니라 그게 당연한 거에요. 아버지들은 자기는 된장 찌개 먹어도 아내는 레스토랑 가서 칼질하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 해요. 그게 사도행전 20장 이에요.

 

9.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가족으로 받아 드린 자 속에 생기는 마음이다. 위대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름이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회복이 성찬식이다.

 

엄마는 자기 먹으려고 맛있는 밥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것은 자기는 맛있는 음식을 하면서 간 보다가 입맛 다 버려요, 그래서 밥 먹을 때는 진짜 그 맛을 모른다고, 그런데 그 엄마들은 남편과 자식들이 그 밥 먹으면서 맛있는 것을 보면서 참 행복해 해요. 이게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가족으로 받아 드린 자 속에 생기는 이상한 마음이에요. CEO가 되면은 목사가 자기 사례 많아 지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 하지만 제가 임직 자들이나 이런 분들 밥 사주고 이러니까 교회 카드로 쓰는 줄 알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사 드려요, 왜 내가 쓰는 것보다 교인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더 좋거든요.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은 정말 우리 교회도 온전한 11조를 여러분들이 드리면은 우리 부 교역 자들 부유하게 해주고, 여러분들 모두가 부유하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저에게 어려움을 이야기 하면은 제가 보험회사 넣은 것 털어서 주는 사람입니다. 왜 행복하니까, 이런 것 경험 해보지 못하고 그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되고, 다 성찬의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찬의 효력이. 교회에서 큰일 하려 하지 마세요, 11조의 몫은 하나님의 것이에요. 장로님들은 그 교회의 부유함을 통해서 교회의 뭐 재산 늘리려 하면 안 되요, 제 꿈은 년 말의 정책당회 때 장로님들이 예산을 더 많이 타서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교인들을 더 즐겁게 하려고 11조는 안 하면서 자기 개인적으로 하면서 자기 명예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은 거듭난 것 아니에요. 11조만 하면 되요,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 모든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야지 뭐 내가 크게 내요, 자기 의이지.

 

80년대 중반 이전 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는 교회가 무너지면은 내 삶도 없다는 언약의 공동체 성이 조금 살아 있어요. 지난번에 이야기 했지만은 교회라고 다 교회 아니에요, 한국 교회를 망친 긍정의 힘 이런 것 쓰레기 통에 갖다 넣어야 되요. 그 모든 것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로버트슐러의 크리스탈처치 얼마나 화려하게 지었습니까 모든 목사님들이 부활절만 되면은 하늘의 예배당이 천사들이 날아가는 퍼포먼스와 야 대단하구나, 하나님은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라졌습니다. 그 적극적인 사고와 긍정의 힘과 로버트슐러의 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교회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랬든 목사들이 크리스탈처치가 한세대에 사라진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해요. 왜 모르니까.

 

위대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름이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언약의 회복이 성찬식입니다. 구약을 보면서 어떤 좋은 경부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에 의한 일년마다 드리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언약의 공동체, 언약을 어긴 그들을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언약의 공동체가 회복이 되어져서 어느 누구 하나 가난한 사람이 없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했든 그것을 일어 버린 거에요, 그것 예수님이 회복하신 겁니다. 저는 CEO 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참 신비해요, 저를 욕하고 이래도요 미워 지지를 안 해요, 그 성령의 신비한 것을 경험해 봐요. 나하고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배척하거나 미워해 진 적은 없어요 저는.

 

저도 굉장한 감성한 사람인데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하면서 신비한 캐릭터의 변화가 와요. 내가 좀 무슨 소리 하면은 그 사람은 인격적 명예 살인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입을 막게 되는 순구약 신약 약속입니다, 언약입니다. 아멘

 

◈봉헌 기도◈

 

우리 모두가 주님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기 몸을 찢고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주님의 그 고통으로 선물로 주셔서 험악한 땅에서도 하나님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노릇 해 주심으로 어떠한 약한 자도 굶어 죽을 일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실현된 교회를 선물로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시작도 끝도 아비도 어미도 없는 멜기세덱 대제사장 앞에 11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믿음의 백성 된 표시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러한 제도가 말라기 시절에 제사장의 타락으로 인하여 교인들의 형식적 종교 생활이 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지 말라.

 

하나님의 것을 제사장들아 목사들아 장로들아 흠 있는 것을 교인들에게 드리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너의 바벨탑을 쌓지 말라, 그런 공동체는 용도 폐기 될 거다. 한국 교회의 수많은 목사들이 그렇게도 닮기를 원했든 로버트슐러의 크리스탈쳐치는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소멸 되었는데도 그 여진이 아직도 한국 교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내가 돈 내고 내가 목사 되고, 내 돈으로 교회 개척하고, 내 돈으로 학교 세워서 학생 뽑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교인의 숫자가 더 해지고, 재정이 늘어날수록 부 교역자들의 삶이 부유해 지고, 교인들 모두의 삶이 부유 해지고 누구 하나 걱정할 수 없는 그런 교회를 선물로 주심을 알아서 내가 교회를 위해서 들었다 놨다 할 헌금은 아니고, 주신 분복을 따라서 11조를 드린 예물입니다.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교회가 되도록 성도들의 생업을 부유케 하시고, 병마와 더불어 살아가는 김운희 집사와 송정아 집사나 모든 집사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병을 낫지는 못하더라도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는 그런 교회로 만들어 주시고, 기도해서 공부 못하는 아이를 서울 대학 보내 주는 기적의 교회가 아니라,

 

그렇게 공부하고 싶은데 부모가 능력이 없어서 대학 못 가는 아이에게 대학 보내어 주는 그런 교회 되게 하여 주시고, 자식 잘못 만나고 나라 잘못 만나서 평생 죽도록 자녀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자기 노후 준비하지 못한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병원에 못 가서 병들어 죽을까 봐, 걱정하지 않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도록 성찬의 효력을 더하여 주시고, 예배 때마다 드리는 이 예배가 형식의 예배가 되지 않도록 종은 전할 따름입니다. 믿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받아 드리고 받아 드리지 않는 것은 자신의 몫임을 믿습니다. 먼 훗날 주님 만날 때 부끄럽지 않는 구원받은 자 되어서 나의 정당성 때문에 남을 명예살인 하는 그런 교회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사랑과 선행이 격려 되어져서 네 편 내편이 없고, 친하고 덜 친한 것이 없고, 진영을 따라서 대립함이 없는 교회가 되어져 주님의 몸을 다시 찢는 어리석음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삼으시기 위하여 그 어두운 지성소에 들어가서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자신의 몸을 온전한 제물로 드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아론의 반차를 따라서 대제사장이 되어야 되지만 돈 주고 대제사장이 된 그들에게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그 제사가 아무런 효력이 없어서 언약의 공동체가 상실 되어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경험 할 수 없는 이스라엘이기게 헤렘 용도 폐기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세사장이 되어 갈보리 십자가의 지성소로 들어가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져서 어떠한 죄도 용서 안받는 영원한 언약의 관계를 채결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그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사역을 받아 드리고 유대교의 옛 낡은 것을 폐기하게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모셨기 때문에 내가 손해보고 상대방이 유익이 되어지고 내 감정의 손해로 상대방의 감정을 보다듬어 가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살아 있는 찬미의 제사가 되게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말 한마디 우리의 행동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기념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주님이 당하신 그 억울한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동지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