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천국의 찬양 방
고린도전서 1: 27-29
2018년 6월 17일 주일 낮 예배
No. 371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는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도 없다. 지명하여 불러 자녀 삼아 주시고, 천국을 유업으로 주신 은혜에 감사한 마음 때문에 찬양을 드려야 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찬미의 제사와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는 예배다.
우리 3부 예배에 찬양 예배로 드립니다. 찬양 예배로 드리면서 오늘 이 말씀을 선택 했는데 제가 80년대에 신학교를 다닐 때 참 한국 교회에 Sensation을 일으켰든 것이 동부 이촌동에 있는 교회에 경배와 찬양 예배라는 겁니다. 그 동안에 전혀 보지 못했든 형태의 찬양 예배가 도입이 되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 곳에 와서 은혜 받고 또 감격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한번 가 봐야 되겠다 해서 갔는데 정말 뭔가 이런 곳이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흥분의 도가니였어요. 그런데 나오는데 내 옆에서 그렇게 열렬히 찬양하든 한 젊은 사람이 빨리 나가려고 서로 밀고 밀치는 과정에서 누가 다리를 밟았는데 화를 벌컥 내면서 욕을 해요, 제가 그것을 보면서 조금 전하고 이것하고는 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1. 천국의 찬양방이 되어야 된다. 찬양과 예배는 뭐냐 하면은 거듭난 자가 드리는 것이 예배이고 찬양이다. 성령 영은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에 의해서 거듭난 자가 드리는 찬양과 예배가 참된 예배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자가 드리는 찬양과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그러면서 찬양이 뭔가, 예배가 뭔가 신학교 이제 졸업할 때쯤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오늘도 우리가 3부 예배에 찬양 예배를 드리면서 세상의 노래방 같아서는 안 되겠다, 노래방에 가면은 흥분이 되고 사람들이 얼마나 스트레스 날리고 좋아해요, 천국의 찬양 방이 되어야 되요. 노래방이 아니고 찬양 방이 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80년대에는 우리 한국 교회의 예배의 paradigm 이 참 바뀌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저녁 예배가 오후 예배로 이래 올 때에 연세 드신 분들은 교회가 망조가 걸렸다 그랬고, 또 예배의 기타가 동원이 될 때에 이게 세상이지 교회냐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외형적인 많은 다툼 속에 이제는 그냥 찬양 예배가 자연스럽고 교회의 기타가 아니라 드럼이나 그 모든 것이 도입이 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그런 것이었는데 우리 속에 본질적인 찬양에 대한 이해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찬송가를 부른다고 해서 찬양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찬송가도 얼마든지 자기가 좋아서 부를 수 있습니다. 제가 그 경배와 찬양에 참여했든 그 젊은 사람은 누구보다 더 열렬히 찬양하는 모습에서 보면서 야 참 나도 목회 하면은 저런 경배와 찬양의 예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기쁘게 해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 했는데 나오면서 그 생각이 싹 사라지는 거에요.
그러면서 예배와 찬양은 뭔가라고 할 때에 여러분들이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가지고 접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교회에 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성경 구절 요한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선포하면서 드리는데 그 말씀은 여러분들이 찬송가를 부른다고 해서 찬양이 아니고, 예배의 여러분 묵도에서부터 축도에 이르기까지 순서에 참여한다고 해서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니에요. 찬양과 예배는 뭐냐 하면은 거듭난 자가 드리는 것이 예배이고 찬양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은 어떠한 감동의 찬양도 그것은 노래에요. 거듭나지 아니한다면은 기타와 드럼이 동원되지 않고, 파이프오르간만이 존재하는 그런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것은 예배가 아니에요.
한가지 종교적인 행세이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고 할 때에 그 영과 진리도 예수와 성령을 도구로 해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이 아니고, 성령 영은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에 의해서 거듭난 자가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예배 전에 먼저 여러분들에게 그는 도전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거듭나는 것은 뭔가 거듭나는 것은 여러분 그저 종교인이 되는 게 아니에요.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에 보면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했는데 그 거듭남이라는 것은 변화가 아니에요.
2.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Born again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똑 같은 아이라도 태어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 되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다. 세상의 천하고 멸시 받는 것을 택하여 있는 것을 폐하려 하심이다.
교회에 안 다니든 사람이 교회에 다니고, 부처에게 기도하든 사람이 예수에게 기도하는 것 이런 변화가 아니에요, Born again다시 태어난다는 거에요. 엄마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영아이지만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오면은 여러분 엄마 배 속에 있는 아이는 태아이지만은 영아가 되지요, 여러분 태아와 영아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태어난다는 것이, 이 배속에 있을 때에는 양수 물속에 살지만은 태어나면은 공기 속에 살아요. 그래서 태어난 아이를 엄마 배속에 잡아 넣으면 죽습니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는 똑 같은 아이라도 태어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기 전의 자유인과,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여러분들은 똑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그 존재가 어떤 것인가, 바울은 그런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여러분들이 못박히지 아니하면은 거듭난 자가 아니에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뭔가, 계속해서 제가 고린도전서 강해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은 여러분들이 새롭게 태어나면은 완전히 달라요. 엄마에게 있을 때에는 태중에 있을 때는 엄마와 태아와 사이에 연결된 탯줄에 의해서 살아가지만 태어나는 순간 더 이상 엄마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지 아니하고, 여러분 세상에 음식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이 Born again 하고 나면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살아요.
그 새로운 세계가 뭐냐 하면은 이전에 그렇게도 귀하고 아름답고 좋았든 것들이 값없이 되어져요. 예전에는 하나님 하면은 그저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님이고, 나에게 뭔가 이루어 주는 하나님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분으로 여겨 집니다. 이 마음이 있어야 찬양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지금 여러분 세속화 되었다는 것은 예배나 찬양이 사람들의 흥분,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은 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고, 오늘 이 시간 내가 좋았다는 거에요. 진짜 은혜 받은 것은요 정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그 무엇도 귀한 것이 없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은혜 받은 거에요.
이런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이고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런 것을 알고 바울은 그런 이야기하지요. 내가 옛날에 그렇게 귀하게 여기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그랬고, 또 히브리서에 가보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찬미의 제사와 함께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예배를 하나님은 더 기뻐하신다. 우리의 삶에 대한 이런 예배가 수반되지 아니하고 입술에 찬양만은 의미가 없음을 말을 합니다. 여러분들 속에 오늘도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여러분들 육이 못박힘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크고 위대한 것에 가치를 두었든 여러분들이 그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서 오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어지고 또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이 되어지고, 크고 위대한 것을 귀하다고 여기는 이 세상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정말 교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했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했고, 세상의 천한 것과 멸시 받는 것과 없는 것을 택하여 있는 것을 폐하게 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3. 사람 구실 하지 못하고 엉망인 이런 자녀를 죽을 때까지 부모 노릇 포기하지 않는 부모들이 대한민국에 90%이상이고 그 부모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존재하는 거다. 어려움 속에서도 목회 손 놓지 못하는 그분들이 한국의 90몇%이다. 그분들에 의해서 한국 교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 설교를 몇 주전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했지만은 하고 난 뒤에 그날 오후에 감사 헌금 봉투는 저에게 줍니다, 뭐 다른 거 여러분들의 명단은 안 줘도 거기에 이런 헌금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 3부 예배 때는 안하고 2부 예배 때는 했지만은 우리 한국을 받치는 것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부모가 받치는 게 아니다, 자녀를 잘 길러서 서울 대학 나오고 연세대 나오고 판사 검사 만들고 의사 만들고 대통령 만들고 훌륭한 기업인 만든 부모에 의해서 이 나라가 지탱이 되는 것이 아니고, 거듭나게 되면은 아무리 투자를 하고, 아무리 갖다 넣어도 도저히 성적이 오르지도 않고, 아무리 사랑을 쏟아 부어 주어도 사람 구실 하지 못하고 엉망인 이런 자녀를 죽을 때까지 부모 노릇 포기하지 않는 부모들이 대한민국에 90%이상이고 그 부모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존재하는 거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나 이런 위대한 정치가들과 위대한 경제인들이 이 나라를 받드는 게 아니고요, 거듭나게 되면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이번 달 봉급 못 받으면, 이번 달에 내가 이 장사 안 하면은, 이번 달에 우리 공장 그치면은 내 자녀들 내 아내 입에 음식 들어가지 못할까 봐 마지못해서 자존심 죽여 가며 무릎 꿇어 가며 그렇게 열심히 죽을 때까지 자기일 손 놓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받치고 있다. 오늘 말씀이 그런 말씀이에요. 대한민국의 한국 교회는 여러분 큰 교인들과 많은 재정을 가지고 위대한 일을 하는 목사들이 받치는 게 아니고요, 10년을 목회해도, 20년을 목회해도, 30년을 목회해도,
열명 스무 명 변함없는 숫자 아무리 설교 준비를 잘해 가서 설교를 해도 그 설교가 좋은 설교인지 어떤 설교인지도 알아 듣지도 못하는 교인들, 하고 싶은 일이 태산 같지만은 교인이 없고 재정이 부족해서 생각만 있지 하지 못하는 수많은 목회자들 그러지만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그 목회 손 놓지 못하는 목사들 그분들이 한국의 90몇%입니다. 그분들에 의해서 한국 교회가 유지되는 것이지, 입만 벌리면은 내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도 할 수 있는 인적자원 재정이 있는 큰 교회가 받치는 게 아니에요. 거듭나게 되면은요 정말 그런 작은 교회의 목사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야 되요.
4. 우리 사회가 없는 사람이 기죽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작은 교회 목사들이 기죽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이런 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성령의 능력이다. 산헤드린공의회에 종교적인 권력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절히 처형당한 하나님이시다, 나를 위해서임을 받아 드리는 자가 거듭난 자다.
저는요 목요일마다 그 섬기는 이런 것들 가끔 목사들이 그렇게도 이야기합니다. 세미나 해서 목사님의 목회에 철학이라든지 쉼 있는 잔치 합시다 해도 저는 이 하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요, 그분들이 그렇게 섬겨 줘도 고마운 줄도 모르지만은 내 마음에 빛 진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게 거듭난 거에요. 이 설교를 듣고 한 집사님이 이번 달에 받은 보너스 몇 백 만원을 자기가 교회를 그 동안 쭉 살아왔는데 우리 교회에 올 때에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교회에 있다가 오신 분인데요 한 다섯 교회 자기가 예수 믿게 되었고, 쭉 거쳐왔는데 가만히 돌아보니까 20명 30명을 붙잡고 지금도 20년 30년 목회하는 목사님들이 눈에 보였든 거에요.
그분들에게 드리라고 지목 헌금을 했더라고요, 여러분 이것이 생명 있는 예배입니다. 그분이 늘 그런가 내가 늘 그런가, 그러지 안 해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는 175세를 살았는데 100년 동안 신앙 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에 도전을 받고 하나님을 인식한 것은 여덟 번 밖에 안 되요. 십 년에 한번쯤은 여러분들이 예배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고 10년을 살아가는 거에요. 눈만 감으면 하나님 보이고, 눈만 감으면 은혜 보이는 게 아니에요.
이번 찬양 예배나 오늘의 이 예배가 여러분들이 그 동안에 형식적 종교인에서 거듭난 자 참된 예배 자가 되어져서 여러분들이 세상이 보이는 눈이 달라지는 그런 귀한 예배가 되어져서 여러분들이 예수님 때문에 가장 행복하고, 또 여러분 이런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없는 사람이 기죽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작은 교회 목사들이 기죽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이런 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성령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알기 때문에 저도 부족한 것이 참 많지만은 큰 교회 목사 앞에서 저는 주눅들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 여 위에도 작은 교회 목사님이 올 때에 최대 한도로 낮춥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속에 이런 변화가 있으면은요 누구도 불행하게 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 질 때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든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나 사회 안에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에 계속 이야기하잖아요, 십자가의 로마의 황제 하나 이기지 못하고 산헤드린공의회에 종교적인 권력을 이기지 못하고 십자가에 처절히 처형당한 그분이 하나님이세요, 나를 위해서 했다는 것을 받아 드리는 자가 거듭난 자입니다.
그 못난 부모님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평생 그렇게 사신 것을 안다면은 부모님 외에는 더 귀한 것이 없이 보입니다. 어떤 위대한 부모보다 더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자가 됩니다. 그런 신앙이 사람 만들어 가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입만 벌리면 다 해주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지 말고요, 너무나 무기력하게 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연약한 그 하나님은 내가 사람 되라고 그 낮은 자리에 오셨다는 것을 받아 드려서 그렇게 옛날에 크고 위대한 것에 가치를 두었든 옛 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서 만인에 대해서 빚진 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이 되시고, 여러분들이 수없이 드리는 예배 속에 아브라함이 백 년을 신앙 생활 하면서 여덟 번 하나님을 인식한 거와 같이 오늘 이 시간이 그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있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오늘도 구원의 빚진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예물, 아벨의 제물과 같은 예물이 되어져서 우리 교회가 없다고 기죽을 일도 없고, 있는 사람이 불편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고, 좋은 생각이 수없이 떠오르지만 돈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하지 못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확립된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없는 자 주눅들지 않고, 있는 자 불편하지 않도록 우리를 새롭게 창조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육신의 생명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그 수치와 멸시의 십자가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지신 것임을 알아서 주님 외에 그 어떤 것도 귀한 것으로 여겨 지지 않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이전에 좋든 것 이제는 값없이 되어져서 세상의 그 무엇도 자신을 불행하게 하지 못하고, 불의와 불공평이 있는 세상을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인 위에 거듭난 자의 삶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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