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너, 나 위해 무엇 했느냐?
고린도전서 3: 10-15
2018년 7월 29일 주일 낮 예배
No. 377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1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아멘
●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세워 나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이 계시 해주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바탕이 되어야 된다. 어떤 생애가 가치가 있고, 어떤 생애가 영원한가 변하지 않는 생애인가, 주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장례식에 가는 복장을 입었습니다. 유인희 권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마련했든 장례식 복장인데 지난주일 우리 김화옥 권사님이 뜨거운 태양 볕에 허리가 굽으셨잖아요, 그래서 앞을 잘 못 봐요 땅만 봐요, 그러다가 보니까 방향을 잘 못 잡아서 교회 뒤편에서 아무도 못 보신 것 같아요 마당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주일 하루는 또 조의를 표하는 마음, 그리고 또 제 중학교 동기 노회찬이도 죽었다고 하니까 또 좀 마음이 그래요, 그래서 이 복장을 입었는데 입으면서 왜 이런 장례식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옷을 입어야 되는가 라는 생각을 해 봤어요, 흰색은 성경에서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해요. 왜 삶과 생명과 죽음을 검은색이라고 할까, 우리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생명과 죽음이잖아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생명의 삶이고, 죽음인데 그것을 흰색과 검은색으로 표현해요.
1. 예수님의 터 위에 흰색의 바탕 위에 생명의 바탕 위에 예수의 생명의 바탕 위에 여러분들의 인생의 그림을 그려 가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이 아름다운 인생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존재의 양태는 take 하지 않고 give 나누어 준다.
그 위에 우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색 갈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려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특별히 우리의 생애의 흰색이라고 한 것은 흰색만이 그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성경에 보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세워 나간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인생의 집을 짓는 건축자이지요. 또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도 이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인생의 그림을 그릴 때의 빨간 색이냐, 파란 색이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흰색의 도화지를 만드느냐,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는가, 우리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셔야 되고, 여러분들의 인생이 예수님의 터 위에 흰색의 바탕 위에 생명의 바탕 위에 예수의 생명의 바탕 위에 여러분들의 인생의 그림을 그려 가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이 아름다운 인생을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바울이 자기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를 닦았다고 하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참 많았거든요, 서로 자랑하고 시기하고 질시하고 이랬습니다. 왜 이랬는가, 그 터를 예수의 터 위에 세우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고린도전서를 보면서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다면은 그것은 그 교회가 예수의 터 위에 세우지 아니하고 다른 터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터를 세울까 삼가 조심하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교회가 되려면은 여러분들 인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자기의 인생을 세워 나가려고 해야 되요.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고 여러분들의 생애를 산다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터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얀색 도화지에 세우지 아니하고, 빨간색의 그림을 그리고 회색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그림의 색갈이 완전히 바뀌어 져 가는 겁니다.
그저 교회에 다니고 예수 믿는다는 말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 하나님의 받은 사명을 위하여 산다. 이런 게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이 계시 해주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바탕이 되어야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대한 오해가 교인들이 참 많아요. 지성을 다하면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유대교적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오늘도 고린도 교회의 큰 문제는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헬라 철학에 기초한 신앙인들, 게바의 영향을 받은 유대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문제에요. 그들에게 헬라 철학적 기반이나 유대주의적 기반에 신앙 생활하지 마라, 그러면 종교가 된다 이런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다는 것은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11절에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렸지만은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계시해 주셨어요. 구약에 있는 그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시하신 그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이미 설교 했지만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다시 드리면은 우리 인생은 유한한 존재에요. 그래서 모든 인생의 존재의 양태는 take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뭔가 이루려고 해요.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존재의 양태는 take 하지 안 해요 give 해요 나누어 주어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이루려고 하지 안 해요.
2.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해 주셨다. 하나님이 결혼 이라는 제도를 준 것은 사람이 독 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도와 주는 존재다, 하나님은 남자를 여자에게 도와 주는 존재로, 여자는 남자를 도와 주는 존재로 만드셨다.
여러분들이 인생을 그렇게 사시라 이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흰색의 바탕 위에 그림을 그리려면은 무엇 때문에 살아야 되는가 하면은 주기 위해서 살아야 되요. 내가 얻기 위해서 사는 삶은 인간 사회가 만들어 낸 통념의 가치관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교하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성경을 사회적 통념으로 보지 마세요, 종교적 전통과 교리로서 성경을 해석하지 마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해 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생애를 가만히 한번 들여다보세요, 어떤 생애가 가치가 있고, 어떤 생애가 영원한가 변하지 않는 생애인가? 주는 거에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부모의 역할도 해야 되고, 또 여러분 정치인은 정치의 역할도 해야 되고, 목사는 목사의 역할도 해야 되고, 결혼도 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흰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가는 일들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참 이런 말에 속아서는 안 되겠지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그리스도 터 위에서 결혼을 보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적 터 위에서 보는 것이 아니에요. 결혼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고, 좋은 거에요. 그런데 왜 후회를 하게 되는가 하면은 결혼의 생활을 잘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회적인 통념으로 결혼 생활 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준 것은 창세기 2장에 보면은 사람이 독 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그랬어요.
인생이 제일 좋지 못한 모습이 외로움이에요 고독입니다. 여러분들이 돈을 벌려고 하고 여러분들이 건강 하려고 하는 것도 외롭지 않으려고, 돈 없으면 친구도 떠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독 처하는 것이 좋지 못해서 돕는 배필을 주었다 이래요. 그런데 이 사회적인 통념 인간 사회의 인간의 존재의 양태로 돕는 배필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은 도움을 받으려고, 남자 혼자 사니까 이거 나이 들어 가지고 밥해야 되고 뭣이 힘드니까 좀 좋은 예쁜 아내 하나 얻어서 좀 도움을 받아 볼까, 나 혼자 살기 힘드니까 좀 튼튼한 어깨 튼튼한 남자 하나 구해서 좀 사는 데에 의지해 볼까, 전부 인간이 만든 왜곡된 결혼 제도에요.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도와 주는 존재에요, 하나님은 남자를 여자에게 도와 주는 존재로 만드셨어요, 여자는 남자를 도와 주는 존재로 만드셨어요. 그래 서로 도와 주려고 결혼 생활 해야 되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거에요. 도와 주려고 결혼 생활하는 사람은 절대로 후회하지 안 해요. 여러분들이 내가 그 지하철 잘못 탔지, 전부 도움 받으려고 하다가 자기 의도대로 되지 아니하니까 후회하는 삶이에요. 여러분들이 안 살아 봐서 그렇지만은 탤래비젼 이런데 보면은 가끔 나오잖아요. 장애인과 아주 뭐 학벌이나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에 불행할 것 같지만은 그런 사람들은 평생 뭐라는 가 하면은 자기는 결혼의 후회하지 않는다고. 왜 그랬는가 주기 위해서 결혼 했기 때문이거든요. 부모도 마찬가지에요.
3. 부모도 그 자녀에 대해서 부모 노릇 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 것은 부모의 본질인 주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존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피고 섬기려고 할 때 그런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 교회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인생이 서야 된다.
여러분 부모 된 것 자체를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부모 노릇의 후회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자녀를 통해서 자기가 뭔가 목적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을 했을 때, 자녀를 통해서 뭔가 얻으려고 했을 때 그게 얻어 지지 않기 때문에 부모 노릇 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는 거에요. 부모의 본질은 뭔가 하면은 주는 것이거든요 하나님과 같이, 그래서 자식에게 주고도 또 주고 더 주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녀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부모 된 것 후회하지 안 해요. 여러분 뭐 정말 자기 몸하나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을 둔 엄마가 그 엄마 노릇한 것에 대해서 후회한 적이 없어요.
평생 그 자녀를 돌보고 평생 소원이 이 자녀보다도 내가 하루 늦게 죽는 것이 꿈인 그런 부모도 그 자녀에 대해서 부모 노릇 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 것은 부모의 본질인 주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목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목회도 뭔가 종교적인 어떤 위대한 과업을 위해서 교인들을 모두고 그 교인들을 선한 목적으로 잘 양육하고 이용을 해서 이룬 목회는 후회해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고 주려고 하는 목회는 절대로 후회하는 법이 없어요. 정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치도 뭔가 만들어 내는 것이고, 뭔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 약하고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되고 주려 하는 정치인들은요 절대로 후회하지 안 해요, 자기 정치한 것.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다는 것이 그런 겁니다. 교회가 뭐 세계 선교니 큰일을 하려고 하면은 후회해요. 교회의 존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피고 섬기려고 할 때에 그런 교회를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 교회라는 거에요. 고린도 교회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지 못하고 헬라철학이나 아니면은 유대주의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서로 자랑하고 교리적 다툼하고 이런 일들을 했다고, 그런 고린도교회에 내가 세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다른 것 세우지 마라 지금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어떤 삶을 사셨는지 몰라도 여러분들이 부모로서의 노릇이나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어떤 직업의 노릇이나 교회에 다니는 모든 목적이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유익되게 하는 것, 특히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은 여러분들이 다 살고 난 뒤에 내가 참 잘 살았구나, 이런 고백이 있을 거에요.
우리 교회도 오늘 홍민희 사모님이 오셨는데 늘 안 오실 때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하면은 요한이 참 목사님과 사모님이 좀 몸이 불편해서 우리 교회의 능력에 맞는 사랑을 제가 요한에게 많이 주었거든요, 그래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 했습니다, 합격 하고는 근무를 하고는 교회에 잘 안 나와요, 그러니까 엄마가 교회의 목사님이 그렇게 사랑했는데 네가 이렇게 해서 안 나오면 되겠니, 목사님 보기에 얼굴 미안해서 안 나올까 싶어서 제가 마음이 참 안 좋았어요. 그래서 사모님 오실 때마다 요한이 안부 한번도 안 물었거든요, 여러분 요한이를 그렇게 사랑한 것 자체로 만족해야 해요, 요한이가 직업 얻어서 이제 십일조 해서 교회에 덕되기를 바란다면은 목회는 후회 되어져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가 서야 되고, 여러분들의 인생이 서야 되요.
4. 인생의 그림을 이제는 방향을 좀 바꾸자, 얻으려고 살지 말고, 뭔가 남에게 주고 유익이 되려고 부모가 되고, 결혼도 그래 하고, 직업도 그래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래야 되고, 우리나라 목사들이 그래 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그림을 이제는 방향을 좀 바꾸세요, 뭔가 이루려고 하거나 뭔가 여러분들이 얻으려고 여러분들이 살지 말고, 뭔가 남에게 주고 유익이 되려고 부모가 되시고, 결혼도 그래 하시고, 직업도 그래 가지시고,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래야 되고, 우리나라 목사들이 그래 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겁니다. 그것이 흰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겁니다. 우리의 생애의 이 검은 색이 왜 죽음일까, 제가 그 생각을 해 볼 때에 우리 동기 노회찬의 죽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가 흰색과 검은색은 무채색이라 그래요, 그런데 이 검은색은 모든 색을 다 덮어 버려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다음주에 법정적인 의와 관계론적인 의로 신학적 의미를 여러분들에게 해석을 해 줄 텐데, 그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참 사람을 볼 때에 굉장히 말 한마디 그 사람의 행동 하나로 사람을 평가해 버려요, 그래서 우리는 본인은 억울하고 다른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왜곡이 참 많이 일어나요. 평생 친구도 평생 부부도 말 한마디 때문에 원수가 되어 버리고, 이혼하고 갈라지잖아요.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덮어 버리더라고, 그 사람의 삶의 방향만 생각하게 해요.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사회적인 약자의 삶을 산 것만이 사람들에게 기억 되어져요. 오늘 성경에 보면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고,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는데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바로 그런 거에요, 주는 삶을 사는 거에요.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이 부분에 대한 여러분의 해답을 가지고 믿어야 됩니다. 한 3주 후쯤 제가 설교를 하려고 준비 아우트라인outline을 해 놓았어요. 우리는 받은 것을 가지고 심판하는 것이 세상의 법정이지만, 하나님은 원인과 과정을 봐요, 무엇을 위해서, 진리에 대해서 다음주에 여러분들에게 좀 말씀을 드리겠는데 여러분 그가 죽었을 때에 영정 앞에 지지자가 구두 한 켤래 갖다 놨어요, 새 구두 좀 신어 보라고, 오늘도 여러분들이 죽음이 검은색인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말 한마디 행동하나 우리 그것 때문에 이 사람은 선하다 악하다, 저 놈은 나쁘다 좋다, 하는데 그게 다 덮여요, 그게 법정적인 의입니다. 남는 것은 관게론적 의, 무엇을 위해서 살았는가, 노회찬이가 그래 산 것은 그 훌륭한 어머니와 훌륭한 아내지요. 좋은 옷 입지 안 했고, 헌 가구 남이 쓰다 버린 가구들 가지고 살았고, 자식이 없었고, 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 살았다고 봐요.
5. 예수 믿는 게 뭔가, 자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하나님이 책임질 것을 믿어야만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예수님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뭔가, 그게 온 율법이라 했다. 설거지 한 것, 집 청소한 것, 공부하는 것 칭찬 안 하고, 동생은 어디 갔나? 금이나 은이나 집이 그것이다.
정말 어떻게 보면은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저는 그곳에 있다고 보는데, 저도 한 가정의 가장이에요, 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요. 자식과 아내를 위해서는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 많아요. 예수 믿는 게 뭔가, 내 자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책임질 것을 믿어야만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저도 때때로 타협하고 싶을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언제 한번 설교했지요. 부모를 전혀 믿을 수 없는 친구 목사 아이들은요 열심히 공부해요, 교회도 천명만 모이면 목사의 삶은 재벌급의 삶을 살 수 있어요, 자녀를 돈으로 키울 수 있어요, 그런 목사의 자녀들 보면은 마흔이 되고 오십이 되어도 사람 구실 못하는 사람 많아요.
사회적인 통념은 부모가 뒤 바라지 잘하면은 자녀의 삶이 좋으리라고,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들이 맡기셔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 지지 못하는 것은 오늘 설교 제목을 제가 재벌이 된 교회라고 했다가 바꾸었는데요, 미국에 상원의원의 채플목사인 리처드 핼버슨 손석희가 언젠가는 한번 어느교회의 세습일 때에 앵커브리핑 하면서 이말 했지요,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서 철학이 되었다, 정확한 진단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윤리도 아니고 교리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교회가 로마로 옮겨 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제가 종교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이다, 라고 하는 이유가 그곳에 있어요.
그리고 교회는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문화도 아니에요 교회는. 그래서 지난 주일도 여러분들에게 장로가 뭐 넥타이 매나 안 매나 문화에요. 교회가 마침내 미국으로 와서는 기업이 되었다. 미국의 실용주의적 그 가치관이 교회의 터를 옮긴 겁니다. 한국의 대형 교회 세습을 비판한 영화 쿼바디스를 감독 김재환 감독이 그 뒤에 덧붙인 말이 교회는 한국에 와서는 재벌이 되었다. 왜 교회가 재벌이 되었는가 교인들이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통념 크고 성공하면은 옳고 의롭다고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는 큰일도 하겠지, 이런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를 바꾼 거에요. 교회는 가족이 되어야 되요. 가족만이 유일하게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저도 한 때는 종교적인 과업의 성취를 지상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하는 것이 목회의 목적이라 생각해서 키르키즈에 선교사도 파송을 하고, 수많은 선교 단체에 후원도 하고, 아이들 단기 선교회도 보내고 그러다가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20년 전에 왜 바꾸었는가, 제가 설교를 한지 이 예 때문에 바꾼 거에요. 우리는 흔히 선교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라는 것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그때 제가 설교하면서 했든 말들 중에 하나가 이런 거에요, 하나님이 누구를 우리 교회의 장로 못 시켜서 우리 교회가 이럴까, 그 생각 했든 거에요. 누구를 시킬 수 있는데 안 시킨 것은 그게 본질이 아니라는 거지요.
장학금 교인들 헌금 기껏 힘들게 한 것을 가지고 몇 명 주면서 뭐 보람과 기쁨을 누린다고 하는데, 누구는 말 한마디 해 버리면 5만 명 주어 버리더라고 대학생들에게, 그게 본질이 아니거든요. 성경을 제가 다시 봤어요, 다시 보니까 예수님이 유언으로 하신 말씀은 땅끝까지를 복음을 증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들이 노회찬이는 무교입니다, 왜 기독교와 무교 그 이유를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이것도 3주 후에 여러분들에게 대답을 드릴 거에요. 우리 너무나 교리적인 것 교회의 전통 사회의 통념에 의해서 너무 왜곡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뭔가, 그게 온 율법이라 그랬거든요. 제가 설교하면서 그랬어요, 내가 묵상을 해봤거든요, 어머니가 아버지가 목사였기 때문에 늘 심방 가고 동생하고 나하고 집에 남아요, 그러면 제 어머니가 나가시면서 하는 말 한마디 동생 잘 봐라, 그 한마디에요. 그런데 내가 제 어머니는 집을 깨끗이 설거지 이런 것 해주면 참 좋아하세요, 그래서 어머니가 심방 가고 없는 사이에 동생은 어디로 가든 놔두고, 설거지 열심히 하고, 집 깨끗이 청소해 놔 놓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와서 하시는 말씀이 설거지 한 것 칭찬 안 하고요 집 청소한 것 칭찬 안 하고, 공부하는 것 칭찬 안 하고, 종주는 어디 갔나? 동생은 어디 갔나, 여러분 금이나 은이나 집이 그거에요.
6. 교회의 약한 자들은 어찌했냐? 그 질문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질문은 이것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는 인생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동생을 잘 봐야 좋은 사회 된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초석 위에 교회를 짓는 것이다.
교회 열심히 크게 지었어요, 선교사 많이 파송 했어요, 구제 많이 했어요, 주님 앞에 가면은 동생은 어쨌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약한 자들은 어찌했냐, 그 질문이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질문은 이것 놓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 신앙 생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터는 인생의 본질을 말하는 거에요. 저도 좋은 일 많이 하고 싶거든요, 그럴 때마다 내가 기도하고 눈을 딱 감으면 내 안에 있는 성령이 내 속에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거에요, 뭔 줄 아세요, 그것 해서 뭐 하려고, 장학금 주어서 뭐 하려고, 부모가 원하는 것은 동생 보는 거에요.
나는 설거지하고, 집 청소 해 놔 놓고, 공부하고 있는데 동생 서너 살 먹으면 빨빨 기어 나가 가지고 어디 갔는지도 몰라, 너 뭐했느냐는 거에요 너 뭐 했냐는 거에요, 동생 안 보고, 내가 언제 공부하라고 했냐고, 언제 설거지 하라 했냐, 언제 집 청소 하라고 했냐 동생 보라고 했지, 주님 앞에 갔을 때 여러분들이 나 무엇 했다고 할 때 주님이 그 질문할 거에요, 내 너희 위해 몸 버려 피 흘렸건만 율법주의와 율법과 신앙의 차이도 아셔야 되요. 다음주쯤 이야기하겠지만, 여러분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의 교인이 제일 중요해요, 세상 구원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이 힘들까 봐 안 해요. 여러분들도 후회하지 않으려면은 여러분들이 뭐 교회에 다니면서 말 한마디 잘못한 것, 행동 잘못한 것, 검은색으로 싹 칠해서 없어져요. 방향이 뭐냐?
우리 김화옥 권사님 한마디 덧붙이자면은 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준비했잖아요, 몇 주전에 여러분들이 점심 먹은 것 권사님 삐뚤 삐뚤 글자 적은 것으로 이계영 집사님이 연로하신 어머니를 우리가 잘 살피니까 어버이 주일 되면 여러분들에게 밥 내는 것을 보고, 자녀들이 교회에 안 나오지만 나도 그 20만원 내가 여러분들 한달 전인가 언젠가 밥 다 먹은 거에요. 요즘 자꾸 이름을 잊어버려요, 우리 김문일 집사님 가슴에 스턴트 수술 했습니다, 내가 나이 들어 가지고 병문안 못 갔는데 꼬개 꼬개 만원 접은 것 가지고 김문일 집사님 손 얹어 준 것 그것만 남아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너무 인생의 그림이나 교회의 그림을 잘 못 그리고 있어요. 백지에 그림을 그리고 검은색으로 뭉개 버려야 되는데, 주님이 여러분들 만나면은 분명히 물을 거에요. 내 너 위해 몸 버려 피 흘렸건만 넌 날 위해 무엇 했니? 나 교회 100만 명 만들었습니다, 세계 선교사 1,000명 파송 했습니다, 나 노동자 휴식 터 만들었습니다, 주님 뭐라 하는지 아세요, 네 교회의 약한 자들은 어떻게 했니, 그것 물을 거에요. 동생 잘 보라고 했지 내가 그일 하라고 했나, 여러분 큰일 하려고 하지 말고요, 저도 하고 싶은 것 많거든요 인간의 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그것 해가 뭐 하려고, 주님이 여러분들 속에, 엄마가 심방 가면서 종주 잘 봐라, 동생 잘 봐라 했지 공부하라 소리 한마디 안 했어요. 네 너 위해 몸 버려 피 흘렸건만, 우리 사회가 동생을 잘 봐야 좋은 사회 됩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초석 위에 교회를 짓는 겁니다. 세상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기세요. 아멘
◈봉헌 기도◈
종교인은 위대한 종교적 과업 성취를 위해서 큰 봉투 많은 헌금을 좋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강도가 드리는 제물 창기가 드리는 제물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이 헌금의 타인의 피와 눈물이 섞이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하심을 감사 합니다. 오늘 이 드린 예물이 동생 잘 보라고 부탁하고 천국에 심방 가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아름다운 예물이 되도록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시고, 사회적인 약자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주는 자의 삶의 가치관과 내 교회 안에 약한 자를 돌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한걸음 한걸음 세워 져 가는 데에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종교적 과업 성취를 위하여 유대인의 신앙을 이용하는 유대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 질 교회는 영원한 가족으로서 사랑함을 알도록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하나님은 종교적 관습과 유대교의 전통에 얽매여서 굳은 마음으로 과업의 성취를 위해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을 짓밟는 유대교에게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지금도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임재하여 우리의 인생은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죽음으로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 다 덮어 버리고, 우리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방향만 기억 나도록 감동을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주님 천국에 심방 가시면서 동생 잘 봐라, 그 한마디 부탁하고 가신 주님의 마음을 따라서 세상의 구원은 정치가에게 맡기고, 교회의 구원과 정치가들의 삶의 방향, 예수 그리스도의 터를 세우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세상의 풍파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 되는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주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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