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Paradox(역설) 3 (만 백성의 왕)(고린도전서 2: 6-9)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8. 7. 13. 18:32

 

 

담임목사 김종웅

Paradox(역설) 2 (만백성의 왕)

고린도전서 2: 6-9

2018 07 08일 주일 낮 예배

                                                                                                                                                  No. 364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아멘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심과 왕 되심을 믿는 것이다. 십자가의 죄패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그 왕 되심을 선포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의 역설이 거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재림과 함께 참여하게 된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그렇게 말하지만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해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와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라.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지라도 구원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예수를 믿는다고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야기를 하고 교회 생활 열심히 하지만 구원받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지옥 간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니까,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구원 현재적 구원을 말씀을 드리는데,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으면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늘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고, 내일에 대한 염려가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지 못하는 신앙 생활인가?

 

교회에 이래 봐도 언제나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보다 사실은 내일 염려 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이런 부분들이 더 적어져서 우리 교회의 여러 성도들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그런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설교를 하는 것이겠지요. 또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날마다 그런가, 그렇지 안 해요. 저도 성령이 나를 지배하면은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는데, 육신이 나를 지배하면은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고 근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화 되어져야 되고,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우리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삶이 우리의 삶이 점점 줄어들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이 우리의 삶을 많이 차지하도록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되요.

 

그런데 오래 믿어도 그런 변화와 그런 성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요. 출발이 잘못되었고 기초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하고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발전이 없을 때에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되잖아요, 그 기본이 뭐냐 하면은 예수를 믿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를 믿는 것이 무언지를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원수 맺고 이런 일들이 있다고요.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 드리는 거 거든요, 그리고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 드리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 드리려면은 진짜 예수는 그리스도인가, 예수님께서는 진짜 왕이신가 하는 문제에요. 

 

그런 것들을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성경에 그래 놨잖아, 이래 버리면은 여러분 반만 아는 거에요. 예수님이 그리스도냐 아니냐는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이야기해야 되는가 하면은 재판을 통해서 아셔야 되요. 또 예수님이 왕이시냐 아니시냐 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법정이라는 것은 재판이라는 것은 사실을 규명하는 일이잖아요. 진리에 대해서 판가름하는 것이 재판이거든요. 예수님이 그리스도냐 하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는 산헤드린공의회에서 여러분들이 그 재판의 과정을 보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구나 이렇게 아셔야 됩니다. 그 재판은 굉장한 역설이 존재한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이렇게 믿으셔야 되요.

 

1. 죄 패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조롱하기 위해서 써 놓은 예수님의 죄명이 모든 사람에게 왕 되심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지혜 역설이다. 예수를 그리스도와 왕으로 믿는 것은 세상의 지혜와 통치자의 지혜(아르콘)의 관점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왕이신 것은 정치적인 재판인 빌라도의 법정을 보면서 빌라도가 진리에 속하지 아니하고 빌라도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신 것을 확실히 믿고, 흔들림이 없어야 되요. 그래서 가장 중심 되는 복음의 중심 되는 것은 예수님이 왕이신 것은 어떻게 십자가에서 그것을 들어내시고 이루셨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죄 패가 위에 달려 있는데 그 죄 패가 뭐냐 하면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조롱하기 위해서 써 놓은 예수님의 죄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 왕 되심을 선포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의 역설이 거기에 있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그 글을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써 놓았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 되신 모든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내용이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을 그 사실 앞에서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은 너무나 겉 핥기로 예수를 믿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고, 교회에 다니면서 더 원수 맺는 이런 일들이 많아 지고, 내일 염려가 더 많아 지고, 욕심이 더 많은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왕 되신 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만 그리스도이신 것을 고린도 교회 오늘 본문에 보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인데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파벌 해서 나누어 버리고, 또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음의 교리가 상대방을 정죄하는데 사용 되어지고, 또 그 말씀들이 자신의 삶들을 굉장히 옥죄고 있었다고요.

 

그럴 때에 바울은 파벌 하지마, 싸우지마, 감사해, 이래 안 한다고요, 그건 교주들이 하는 말이에요. 바울은 뭐냐 하면은 너희들의 그런 모습에서 왜 그런가, 너희가 복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하기 위해서 고린도 교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과 왕되심을 입으로는 믿는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와 왕으로 믿는 것은 세상의 지혜와 통치자의 지혜의 관점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왕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 통치자 아르콘이라는 헬라어는 통치자라는 의미도 있고, 그 통치자의 범주 안에는 바리새인 제사장 서기관 그 다음에 정치적인 지도자 다 포함이 되는데 그 아르콘 이라는 말은 또 어디에 쓰는가 하면은 악령에게 동일한 단어를 쓴다고요.

 

그래서 통치자의 지혜의 이면에 있는 악령의 지혜로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에, 너희들이 말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내가 옛날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가 표를 던졌든 그 관점에서 보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세상의 통치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더라면은 예수를 죽이지 아니했을 것이다. 산헤드린공의회에서 사건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거든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내일의 염려가 있고,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고, 원수 맺음이 있을 때에는 내가 지금 아르콘의 지혜로 그리스도를 보고 있구나, 내가 아르콘의 지혜로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있구나, 자기 반성이 있어야 되요.

 

2. 하나님이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이 예수님이 왕 되심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고 왕 되심을 알았다, 바울이 바리새인일 때에는 유대교만의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로 알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했다.

 

자기가 이 아르콘의 지혜로 볼 때에는 예수는 절대로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고, 왕이 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로마서에 가보면은 3 2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더냐 이런다고,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에요. 세상의 지혜로 볼 때에는 하나님이나 구원하는 자가 유대인만이 구원자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지혜로서 볼 때에는 그 하나님이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이 예수님이 왕 되심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고 왕 되심을 알았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변화와 이 벽을 넘어가야 되요. 그러지 아니하면은 악령의 지혜로 예수를 믿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걱정이 왜 되는가, 왜 남에게 원수 맺는가, 왜 자신의 삶에 해이가 생기는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고, 나만의 하나님인 줄 알아요. 내가 그렇게 미운 그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거에요. 왜 내가 감사가 없는가, 나보다 더 잘된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점에서 봐야 감사가 일어나요. 왜 여러분들이 내일 염려가 있는가, 항상 여러분들의 삶의 경쟁 대상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요, 오늘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하나님만이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그리스도만이냐? 주님의 교회는 아니라는 말이냐? 동백의 교회는 아니라는 말이냐?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 구약적 관점을 제대로 알게 되면은 이 벽이 깨어져요. 바울이 바리새인일 때에 유대교일 때에는 유대교만의 하나님이시고, 유대교의 그리스도이신 줄 알았는데 자신의 눈에 비늘이 벗겨지면서 구약이 새롭게 보여 지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게 되었다는 거에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관원의 지혜는 유대인만의 그리스도가 아니고,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거든요, 우리가 오늘 얼마나 이런 일들이 우리 안에 비일비재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수많은 바다의 모래와 같은 자들 중에 구원받은 자는 별로 많지 않다는 거에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 구약 성경을 볼 때에도 우리 한국 교회만 해도 봐라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어서 복 받았나, 그건 복의 근원이야, 그래서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가 받아야 돼, 다윗 봐라 목동으로 있다가 하나님 믿어 가지고 그는 왕이 된 사람이야, 여러분 전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그런데 창세기 12 3절에 보면 뭐라는 가 하면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그랬어요. 유대교는 너로 말미암아 유대인이 복을 받으리라 생각했다고, 그 벽이 그들 속에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고, 세상의 분쟁과 핵 위험이 있게 만드는 거라고 그래요.

 

여러분 남북의 문제도 생각해 보세요, 북한을 우리가 복음화 시켜서 북한이 남한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핵은 남한을 자극하지 안 해요. 어떤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우리가 복음화의 이유가 그곳에 있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교회 때문에 동백의 모든 교회가 복을 받아야 되요. 여러분들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나라 때문에 전 세계의 민족이 복을 받아야 되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가정과 기업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복을 받아야 되요. 여러분 이럴 때에 말은 참 좋은 말 이거든요,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원의 한계가 있어요.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있어요. 이 세상에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은 그거는 거짓말입니다. 누이가 좋으면 매부가 힘들고요, 매부가 좋으면 누이가 힘들어야지 세상이에요.

 

3. 예수님의 십자가의 죄 패에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고, 헬라어와 로마어까지 쓰여져서 모든 세계의 왕이심을 선포하는 것을 알았든 바울은 자신이 부름 받은 것은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택한 것이라는 자신의 인식이 생겼다. 그 인식이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로 성령이 주시는 마음이다.

 

우리 교회가 좋으면은 다른 교회는 힘들어요, 여러분들이 편하면은 누군가가 힘 든다고, 하나님의 지혜로 볼 때에는 내가 좀 힘들지만은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내 삶의 안전과 행복을 볼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은밀한 구원을 보는 거에요. 여러분들의 삶에서 여러분들의 자녀가 대학에 떨어진 그 자리에 누군가 합격한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을 때 우리나라는 사교육의 문제는 해결이 되어져요. 우리나라의 청년의 실업이나 모든 문제는 내가 손해를 보려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투자하는 때에 나오는 거지요. 내 꺼 챙겨 놓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그것은 거짓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부르신 그들은 복의 근원이라는 말은 그들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복 받는 거에요.

 

바울이 그것을 알았든 거에요. 예전에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고, 유대인만의 그리스도로 봤는데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냐 이방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죄 패에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고, 헬라어와 로마어 까지 쓰여져서 모든 세계의 왕이심을 선포하는 것을 알았든 바울은 자신이 부름 받은 것은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택한 것이라는 자신의 인식이 생겼어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것은 내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교육의 문제가 내 때문에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사는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택하심을 알아야 되요. 우리 교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들 와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편하면은 누군가가 그 편함의 에너지를 제공해야 할 사람이 있어요. 그 인식이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로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이에요. 여러분 구약 성경은 유대교의 구원이고 신약은 모든 족속의 구원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호세아를 인용하면서도 그렇게 말해요.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를 사랑한 자를 부르리라고 했다. 그 말은 뭔가 유대인 너희들은 너희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너희들만을 사랑하는 줄 아는데, 너희들이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이니라. 호세아에서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지혜로 예수의 왕 되심을 보면은 내가 저 사람만 없으면은 살만한데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고, 아르콘의 생각이고, 그 생각을 넘어서게 한다고, 여러분 이 장벽은 어떠한 견고한 성보다 더 큽니다. 인문학으로 되지 아니하고 무엇으로 되지 않고, 여호와의 신 성령만이 가능한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장벽이 무슨 장벽입니까, 내 자녀만 중요하고 내 회사만 중요하고 내 교회만 중요한 이 혈연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어떻게 무엇이 가능한지, 성령의 강림의 교회가 그 장벽을 넘어서게 했는데, 오늘도 교회마저 교회끼리 경쟁하는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나 왕으로 모시기는 모시는데 전부 아르콘의 지혜로서 그리스도라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 속에 정말 예수님의 이 구원이 성령으로 임한 교회의 이 구속사적인 교회를 제대로 알므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런 구원이 올 때에 여러분들을 얽어 매는 많은 것들에서 자유가 일어나요.

 

4. 예수님의 왕 되심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영원의 세계까지 왕이시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지 아니하면은 몸과 영혼이 함께 죽는 것을 모른다.  혈연을 넘어서는 성령의 이 복음 앞에서 그러지 못했든 내 자신이 전전긍긍 되어져야 된다.

 

여러분들이 왜 염려되고 왜 여러분들이 걱정이 되는가, 세상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찬송가는 예수를 믿고 새로운 생명을 얻으니 이전에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되었다, 필요 없다 이 말이 아니에요. 예전에 그것이 절대적인 것인 줄 알았는데 상대화 되었다는 겁니다. 비로서 그 좋은 것이 좋은 게 되는 거에요. 예수를 믿고 새로운 생명을 얻으니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여러분들의 삶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내하고 성향이 같고 내 마음에 들면 친하고, 나하고 성향이 다르고 나에게 다른 말 하면은 저놈은 원수고, 그러면서도 예수 믿는데, 지옥 갑니다 교회에서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 하려면은 그 벽을 넘어서게 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아셔야 되요. 바울이 왜 그렇게 변했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두 번째로 예수님의 왕 되심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영원의 세계까지 왕이세요, 마태복음 10 28절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안 했거든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안 했거든요. 눈에 보이는 종교인들, 눈에 보이는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 눈에 보이는 경제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두려워했거든요.

 

그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말에는 전전긍긍하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 드리지 안 했거든요. 왜 종교인들의 말, 정치가들의 말에 전전긍긍하는가, 몸이 죽거든요.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지 아니하면은 몸과 영혼이 함께 죽는 것을 모르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라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정말 성령 받고 은혜 받으면은요 여러분들 회사 사장님 여러분들이 생계의 목줄을 쥐고 있는 자의 한마디에 전전긍긍 하잖아요 우리, 여러분들이 납품하는 회사 그 회사의 사장이 한마디 하면은 몸 둘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잖아요. 육에 속한 자에요.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에는 얼마나 전전긍긍하며 들어요,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얼마나 전전긍긍하면서 들어요.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에는 두려워하는 유대교와 같은 거에요. 여러분들이 정말 오늘도 내 자식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자녀도 중요하다는 혈연을 넘어서는 성령의 이 복음 앞에서 그러지 못했든 내 자신이 전전긍긍 되어져야 되요. 그래야 감사와 기쁨의 새로운 세계의 장이 열립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매여서 울고 웃든 사람이 이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그 신앙으로 나아가야 되요.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의 복을 개인에게 준 것이 아니에요, 이 세상의 그 복을 모두에게 복되게 하기 위해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고요.

 

5. 이 땅의 시간으로 생애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의 세계에서 이 현실을 보는 믿음이 있어야 된다. 개혁의 왕 요시야가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이스라엘을 개혁하려 할 때 므깃도 전투에서 바로느고의 화살을 맞아서 죽는다. 의인은 평안에 들어가 침상에서 쉰다는 것이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눈이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이 땅에 가치관과 이 땅의 시간으로 여러분들의 생애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의 세계에서 이 현실을 보는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왜 교회가 세속화 되어지고 이전에 좋든 것이 값없이 되지 못해서 세상에 매여서 사는가? 왜 원수 맺고 사는가, 죽음 이후에서 세상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유대교가 그랬든 거에요, 그것을 뒤에 깨달았든 거에요 바울은. 오늘도 여러분 예전에 목사님들은요 장례식에 교인들이 울면은 혼을 냈다고, 아버지가 더 좋은 천국 갔는데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랬다고, 그 말에 교인들이 전전긍긍 했어요.

 

오늘 제가 그랬다면은 시험 들어서 교회 떠날 거에요, 왜 아르콘의 지혜로 예수의 왕 되심을 보거든요. 왜 원수 맺는 것이 풀어지지 않고, 왜 세상에 매여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누리지 못하는가, 죽음의 권세를 이긴 영원한 구원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교인들 뭐 굉장히 암에 걸리고 어려운 분들에게 하나님 낫게 해 달라고 기도 안 하잖아요, 육신으로는 얼마나 간절하게 낫기를 바라지만은 그 말이 그 사람에게 자유 함을 못 주거든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암 걸려서 죽을까 봐 염려에서 자유케 되는 복음, 이 복음 앞에서 어떤 분들은 속으로는 우리 목사님 참 냉정하셔, 자기가 암에 걸려도 저럴까, 아르콘의 지혜로 말하는 거에요.

 

빌라도의 법정으로 내가 진리의 속하지 아니한 것을 스스로 들어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연민의 정으로 자기는 괜찮은 사람이야, Paradox 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 성경은 그렇게 말해요, 저는 정말 착하고 의롭고 또 예기치 않는 죽음을 맞이하는 성도들 가면은 제가 하는 설교가 있습니다, 이사야 57장을 가지고 세상사는 사람들이 모른다는 거에요, 그렇게 개혁의 왕 요시야가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이스라엘을 개혁하려고 하는데 므깃도 전투에서 바로느고의 화살을 맞아서 죽어 버린다고, 그 이후에 남쪽 유다는 급격히 기울어져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요, 저는 처음에 그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은 이럴 수가 있느냐는 거지요.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이 죽었는데 사람들이 모른다는 거에요, 그 의인은 평안에 들어가 있다는 거에요. 요시야는 평안에 들어갔다는 거에요, 침상에서 쉰다는 거에요. 관원의 지혜로 볼 때에는 왕의 자리에 천년만년 누리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은 하나님의 지혜로 보면은 왕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가 알게 되어져요. 얼마나 큰 짐인 것을 알게 되어져요. 왕의 고통은 자기의 눈 앞에서 나라가 멸망 당하는 것을 바라보는 거에요. 남쪽 유다는 이미 하나님의 저울에 모자라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왕 혼자 한다고 안 되는 것을 알아서 의인된 요시야를 불러서 평안에 들어가게 하고 침상에 들어가게 하고, 그 이후에 시드기야는 자기 눈앞에서 두 자녀가 눈알이 뽑히고 코에 갈고리를 끼어서 바벨론으로 들어갑니다.

 

6. 하나님은 의인을 화액전에 부른다고 그랬다.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보면은 죽음이 안식인데, 그 눈으로 보게 될 때에 모든 것이 감사와 기쁨이 일어난다.  손양원 목사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죽음을 본 사람이다. 손양원 목사는 9가지의 감사를 한다.

 

나라가 황폐화되는 것을 목격했다고요, 예수 믿으면은 죽은 자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산 자가 불쌍해요, 이 말에 전전긍긍해야 되요. 김대리 우리 회사에 있기는 너무나 능력이 특출한 것 같아, 혹시 우리 사장이 나 자르려고 하는 말이 아닌가, 저게 진짜의 말인가, 전전긍긍하는 그 말에 전전긍긍하지 말고요, 김사장 이제 배부른 갑네, 우리 회사 이제 납품 안 해도 납품할 때 많지, 그 말 한마디에 머리 싸매고 전전긍긍, 오늘 설교 말씀에 전전긍긍해야 되요. 내가 평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의인을 화액전에 부른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바울이 이 사실을 새롭게 알고는 데살로니가전서에 교인들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염려할 때 그래요,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서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한다.

 

성경은 죽음을 삶의 소멸이나 하나님의 형벌이라 하지 않고, 잔다고 말해요. 시편에도 보면은 어떤 분들은 그래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준다고 하니까, 잠 많은 것을 자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그래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준다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죽음을 준다는 거에요. 아벨의 죽음이 복된 죽음입니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왜 염려하고 걱정하고 원수 맺는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보면은 죽음이 안식인데, 그 눈으로 보게 될 때에 모든 것이 감사와 기쁨이 일어나요. 예전에 교회의 목사님들이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하고 틀린다고 그랬다고.

 

오늘과 같이 신학적인 지식은 부족 했지만은 이 시대의 삶을 부활의 관점에서 보았거든요. 손양원목사님이 신학박사였습니까, 문둥이들을 몇 명 데리고 목회했든 분입니다. 오죽 했으면 그들의 피고름을 자기 입으로 빨아 가면서 목회했겠어요, 그가 요즘 우리나라에 지금 한창 뉴스에 떠드는 제주 사건 있지요, 1948 4 3일 제주 사건 후에 제주 치안을 위해서 1948 10 19일 여수에 집결했든 육군 14연대 병력 일부가 반란이 일어났어요. 무수한 사람이 여수와 순천에서 죽었어요. 1948 10 21일 반란군에 의해서 손양원 목사님의 큰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도 죽었어요. 목사들 가운데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그 문둥이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가며 그들과 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목회하는 목사님에게 모두 죽더라도 두 아들 살려 주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관원의 지혜로 보면,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손목사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죽음을 본 사람입니다.

 

그는 9가지의 감사를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다르지요, 이런 사람을 누가 불행하게 하겠어요.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께 감사합니다.

 

셋째. 3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 자를 받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 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든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생떼 같은 두 아들을 죽인 그를 양자 삼는 것은 안 보는 것보다 더 아픔이에요. 눈에 안 보이면은 아들을 잃어버린 기억도 희미해 지지만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바라볼 때마다 그 두 아들이 생각 안 나겠어요.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랬어요.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그런 것들 쉼이 있는 잔치에서 다 했지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안 들으니까 기억에 없는 거에요. 회사 사장이 한마디 한 것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고.

 

여럷째. 내 두 아들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참는 기쁜 마음도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7. 하나님의 지혜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과 왕 되심을 바라볼 때에 혈연을 넘어선다, 죽음을 넘어서서 인생을 본다.  예수님의 왕 되심은 혈연을 넘어서서 유대인의 하나님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 까지도 받아 드린다, 그런 바울은 애먹이든 교인들을 자신의 면류관이라 그랬다.

 

아들을 죽인 그를 양자 삼고, 그의 아들이 지금도 목사 해요. 여러분 하나님의 지혜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과 왕 되심을 바라볼 때에 여러분들이 혈연을 넘어서요, 죽음을 넘어서서 인생을 보게 되지요, 이런 사람은 그 어떤 세상의 것에도 매이지 않아요, 평화가 있어요, 그런 사람이 영생에 들어가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한번씩 말씀 드리잖아요. 지금도 자녀 때문에 걱정 많지요, 요즘 애들 그런데 남자는 1m 80 이 되야 된다 했어요, 그런데 스카이는 나와야 된다고, 그것 때문에 걱정이 많지요, 죽음의 권세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수 대교 우리나라 잠실과 왕십리가 같은 학군이었어요, 재수없게 잠실에 있는 얘가 왕십리 무학 여중 배정받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성수 대교가 끊어지면서 죽었어요, 꽃다운 나이에 여중 얘 딸을 놔두고 아버지가 통곡하는 것이 내 귀에 아직 있어요, 누구누구야 공부 못하면 어떻니, 못생기면 어떻니, 눈 좀 떠봐라,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으로 사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하는 모든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그 걱정을 이용해서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어 가는 것이 오늘의 우리의 모습이 아니냐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자녀나 염려가 근심이 날 때마다 하나님의 지혜로 보세요. 저도 사람인데요 좋은 사람 미운 사람 왜 없겠어요, 나도 가지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럴 때에 욕심 버리자, 원수도 사랑하자 이래 안 합니다, 22살 나이에 청와대에 있는 장갑차 기동 훈련 하다가 독립문 로타리에서 무너질 때 옆에 있는 친구 죽었어요.

 

저는 온 머리가 깨어져서 통합 병원에 갔어요, 무의식 상태에 있지만은요, 눈으로 보지는 못해요, 말은 안 나와요, 귀는 열립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환자에게도 말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무의식이라도, 꿈꾼 것 같아요 정신이 돌아왔는데 그게 현실이었든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회진하면서 했든 그 군의관의 말 젊어서 내가 이렇게 부었는데, 제가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왔는데 내 친구가 내 얼굴을 모르더라고, 이 부위가 코만큼 부었거든요, 지금도 제가 여기에 신경이 오른쪽 눈의 신경은 끊겨서 보이지 않고, 여기엔 안면 마비가 좀 있는데 뇌 부종으로 죽는데요, 잘못하면 양안 실명 된데요, 그때 내 생각에 단 하나의 소망 살고 싶다,

 

그 다음에 생각이 뭐냐 하면은요 가지고 싶은 게 없어요. 여러분들이 부활의 예수를 믿으면은 가지고 싶은 게 없어요, 그런 사람을 누가 불행하게 하겠어요. 성질도 급하고 못되어서 의리도 있지만은 반하는 것은 눈에 못 보는 모난 성격에 그렇게도 미운 놈이 그렇게 귀하게 여겨 지더라고 사람이,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하니까 가지고 싶은 게 많고, 눈에 거스르지는 것이 많아 지지만은 그때마다 죽음을 경험했든 그때를 돌이켜 봐요. 용서 못할 것도 없고 가지지 못한 안타까움도 없어지더라고, 예수님의 왕 되심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어요. 죽음은 평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침상에서 쉬는 겁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은 혈연을 넘어서서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 까지도 받아 드리는 거에요. 그런 바울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렇게도 애먹이든 교인들을 자신의 면류관이라 그랬고요, 귀하게 여겼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참 자유롭게 살아갔어요. 여러분 돈 많아 지기를 바라지요, 왜 그러면은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아서, 돈 많은 대한항공 Owner 일가는 잠 못 자요, 돈은요 저는 내 지갑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만 돈이라 생각해요, 그 이상은 숫자입니다. 백 만원 이상 넘어가면 현찰 주고받아요? 숫자 주고 받지요, 우리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시는 하나님은 평생 먹을 것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에요.

 

8. 하나님과 사탄과의 전쟁을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초림을 D-day 이라 한다, D 시즌데이 결판 났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V-day 승리의 날, 완성 되었다는 것이다. 1944 6 6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Normandie 상륙 작전으로 연합군은 승리가 결정 되었다.

 

돌이켜 보건대 많이 받을 때도 있고, 적게 받을 때도 있지만은 내 생애 천 만원 이상 가지고 있는 때가 별로 없는데 내 지갑에 돈 떨어진 적 없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도 믿으세요. 그래서 여러분들 정말 자유하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하는 새 생명의 삶을 살다가 예수의 재림의 들어가야 되요. 이 죽음에 대한 하나님과 사탄과의 전쟁을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예수님의 초림을 D-day 이라 그래요, D 시즌데이 결판 났다는 거에요. 예수님의 재림은 V-day 승리의 날, 완성되었다는 거에요.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2차 세계대전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과 나치가 전쟁을 할 때에 1944 6 6일 노르망디 Normandie 상륙 작전으로 연합군은 승리가 결정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5 5 8일 히틀러가 자살을 하고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기 전 까지는 여전히 곳곳에서 나치 잔당 소탕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 전투는 전쟁에서 이긴 소탕 전투였어요. 이제는 더 이상 전쟁의 패전이 되지 않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이후에 D 시즌데이 결판 났어요.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지배하지 못해요. 그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재림의 V-day 날이에요. 초림과 재림 사이에 기독교인들은 사탄의 최대의 무기인 죽음을 소탕해 나가는 거에요. 죽음을 소탕해 나가는 게 뭐냐, 염려가 될 때마다 혈연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의 왕이 되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 염려를 극복해 나가야 되요.

 

원수와 정죄가 일어날 때마다 가족의 눈으로 보면서 그 사람을 용납할 수 있어야 되요. 이게 죽음을 극복하는 사탄을 소탕하는 신앙 생활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동안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하나님 왜 저 자식은 귀신이 왜 안 잡아가게 합니까, 하나님 나는 뭘 잘못했기 때문에 이렀습니까, 전부 전쟁에서 이기고 잔당에게 총살 맞아서 픽픽 쓰러지는 삶이 비일비재해요. 아멘

 

◈축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그렇게도 미운 사람 사랑하게 하시고, 가지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자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원수 맺기를 즐겨 하는 우리에게 오늘도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를 새롭게 해서 이전에 좋든 것 이제는 값없게 여겨 지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내 생명 줄을 쥐고 있는 사장보다 더, 성경과 목사님의 설교 앞에 전전긍긍해서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구원의 장벽 되는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