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오십보 백보 (가치의 상대화)
고린도전서 4: 6-7
2018년 9월 2일 주일 낮 예배
No. 382
6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7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아멘
●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려면은 문자 주의로 믿는 게 아니고, 그 문자의 이면에 있는 행간을 읽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파와 게바파를 향하여 기록된 말씀을 넘어 가지 말라고 했다. 영적인 눈이 열릴 때, 장로교는 알미니안을 이해하게 되고 알미니안은 장로교를 이해하게 된다.
어제 우리가 축구 이겼습니다, 야구도 이겼는데 야구 이긴 것은 별로 좋지 않는데, 축구 이긴 것은 참 기분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주일 말씀을 드린 대로 국가 대표는 군 면제가 목적이 되어서 뛰면 안 됩니다.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자부심으로 대한민국의 영광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뛰기 때문에 우리가 국가 대표 승전을 우리가 이렇게 환영하고 즐거워하는 겁니다. 오늘도 인터넷에 제가 이렇게 보니까 손흥민이나 조현우나 수많은 그 선수들의 말이 군 면제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쭉 적어 놓았더라고요. 여러분들이 동일한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대표 선수로 선발 받은 자에요.
1. 우리 모두는 십자가가 가슴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 되어져야 되고, 하나님이 영광의 목적이 되는 것은 세상의 행복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에 먼지가 일어나는데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그런 종의 불과한 것인데 왜 그를 추종하느냐?
우리가 선발을 받아 가지고 마치 대표 선수가 군 면제가 목적이 되는 야구 대표와 같을 때에는 국민들이 욕해요. 오늘 왜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욕먹는가,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복 주려고 부르셨대요, 이게 군 면제하고 같은 겁니다. 우리 교회가 크게 되어서 좋은 일 많은 일해서 명성을 내려고 해요, 그게 군 면제하고 같은 거에요. 우리 모두는 십자가가 가슴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 되어져야 되고요, 하나님이 영광의 목적이 되는 것은 세상의 행복입니다. 이것을 교회가 자꾸 놓지는 거에요. 목사님들 설교에도 이런 설교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는가, 우리 때문에 세상이 행복하도록.
왜 내가 국가 대표로 부름을 받았는가, 국민들이 행복하도록, 똑 같은 겁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이 불러서 세상에서 대표 선수로 뛰게 만든 자들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것들을 놓치는가 하면은 저는 목사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을 하고, 그 중심에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 정말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되려면은 문자 주의로 믿는 게 아니에요, 그 문자의 이면에 있는 행간을 읽을 줄 아는 거에요. 목사님이 왜 설교를 하고 여러분들이 왜 설교를 들어야 되는가 하면은 문자 이면에 있는 행간을 이해 해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도록 증거하는 것이 설교에요.
여러분들에게 자녀에게 말 안 듣는 자녀에게 너 나가 죽어, 이럴 때에 이 자녀가 부모의 말을 순종한다고 내가 효도해야지 나가 죽어야지, 자살하는 것은 부모의 뜻을 완전히 왜곡하는 거잖아요. 그 말의 행간에는 너 그래 살면 불행하게 돼, 너 마음 정신 똑바로 차려서 바로 살아, 이말 이거든요. 그래서 그 말씀을 따라서 부모의 뜻을 따라서 살게 될 때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되는 겁니다. 왜 교회가 세상의 행복이 되지 못하는가, 문자 주의에 빠져 있는 거에요. 그래서 설교를 하고 교인들이 말할 때 보면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약속이 있다 이런다고요. 그 명령과 약속 이면에 있는 행간을 봐야 되요.
오늘 설교 본문에도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어떤 내용인가, 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해요.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여기에 보면은 이 일에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고린도 교회가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여러분 바울파, 이렇게 서로 자기 잘났다고, 자기들이 잘 믿는 것이라고 서로 분쟁하고 파당을 짓고 싸우는 그들에게, 다시 말하면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 나는 우파다 나는 좌파다 이러면서 태극기 들고 박정희를 추종하고, 촛불을 들고 노무현을 추종하는 그들에게 교회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은 우리는 장로교다, 감리교다, 교파 싸움하는 그들에게 여의도 순복음 교회다, 명성 교회다,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다, 주님의 교회다, 동백 교회다, 서로 싸움 박질 하는 교회에게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다.
3장 5절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서로 자기가 추종하는 사도들이 위대하다고 생각을 하며, 사도를 추종하여 파당을 짓는 그들에게 3장 5절에 뭐냐 하면은 아볼로는 뭐며, 바울은 뭐냐 말이야, 이렇게 말한 거에요, 그 본을 보였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아볼로나 바울 나는 디아코노스 종이다 이 말입니다. 그 말의 원어의 뜻은 어떤 중요한 일을 하다가 일어나는 먼지를 말해요.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은 그 일에 먼지가 일어나는데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그런 종의 불과한 것인데 왜 그를 추종하느냐, 아볼로와 바울 자기 자신을 들어서 본을 보였다, 이런 말이에요.
2.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게바파에게 우리에게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함이라. 유대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게바파를, 헬라적인 사람들에게는 아볼로파를 선호했고, 성령파는 그리스도파를 만들었고,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
그리고 그 다음에 보면은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여기에 이 말씀은 또 그리스도파와 게바파를 향하여 하는 말이에요. 게바파는 오늘날 치면은 성령파와 같아요. 기도 열심히 해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방언이 터지고, 예언을 하고, 그래서 자신들은 모든 하나님의 비밀을 안다고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메여 있는 자가 아니라, 자유함을 얻었어, 그러면서 하나님의 그 구원을 방종으로 흐르는 열광주의를 말해요. 그런 그들에게 또 게바파는 뭐라는 가 하면은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은 너희들 기록된 말씀으로 넘어가지마, 예수 믿고 구원 받아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아, 그래서 할례도 받아야 되고, 율법도 지켜야 돼, 라고 그리스도파의 방종을 비난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구약의 계시를 넘어가지 말라 라고 하는 그 게바파의 말 중에 옳은 부분을 차용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게바파의 잘못된 것은 또 나중에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바울파나 아볼로파나 그리스도파나 게바파에게 다같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은 이런 말을 해요, 우리에게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좀 배우라는 거에요 지도자들이, 그 지도자들에게 배우라는 것은 무엇을 배우라고 하는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가르침의 지금 마음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들의 가르침 중에 자기들이 선호하는 사도들을 위했었다 이 말입니다. 유대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게바파를 선호했고, 헬라적인 사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볼로파를 선호했고, 또 성령파는 그리스도파라는 것을 만들었고, 이런 그들에게 지금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우리에게 배우라는 거에요. 뭘 배우라는가,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은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사도들을 치켜 세워요. 왜 세우는가, 자기는 잘난 사도를 모시는 사람이라고, 못난 사도를 추종하는 자들에 비해서 자기 잘 났음을 과시하려고 하는 치졸한 교만이 그 마음 속에 있는 거에요. 이것이 죄의 본질이고, 파당과 분쟁의 뿌리라는 거에요. 그래서 싸우지 말라, 파당 짓지 말라 하고, 그 파당의 근본 죄의 본질을 지금 파헤치는 말씀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가 왜 나라가 망조인가 사색 당파 에서부터 기인되었네요, 그래서 태극기에서 흔들면서 박정희를 연호하고 그를 추종하는 것은 왜 하는가, 그 원인은 뭔가, 자기가 선호하는 경제성장과 자기가 추구하는 부자의 어떤 가치관이 박정희를 추켜 세워서, 저 노무현을 추종하는 자들에 비해서 자기 잘 났음을 과시하려고 하는 교만한 죄의 본질이 그 속에 있다는 거에요.
3, 칼빈은 예정론이 훨씬 더 성경적이고 우월하다고 해서 칼빈을 추종하므로 말미암아 알미니안을 추종하는 쟤들 보다는 우리가 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과시가 그 속에 있다. 우리가 하나이듯이 저들도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여러분들이 촛불을 들 때에도 왜 촛불을 드는가, 사람이 돈이 다야, 가치가 중요하지, 그래서 나는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노무현을 추종해, 그래서 저 못난 박정희 추종하는 것들보다 우리가 훨씬 더 고귀한 가치를 추종한다는 사람인 것을 과시하려고 하는 교만이 그 속에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타협이 안 일어난다는 거에요. 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싸우는가 칼빈은 예정론이 훨씬 더 성경적이고 우월하다고 해서 칼빈을 추종하므로 말미암아 알미니안을 추종하는 쟤들 보다는 우리가 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과시가 그 속에 있다는 거에요. 오늘날 한국의 교인들이 왜 명성교회 다니고,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다니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다니는가, 복음의 본질은 없고, 우리 교회가 훨씬 더 큰일 좋은 일 많이 해, 자기 과시가 그 속에 있어서 만들어 낸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목사님을 추종할 때에 그 목사님의 그런 추종보다는 나는 이 유명한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 다녀, 우리 목사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줄 알아, 그래서 자기가 추종하는 자를 치켜 세워서 그러지 못한 자보다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하는 교만이 죄의 본질이고, 그것 때문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에게 지금 하는 말이 우리에게 배워 서로 대적하지 말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내가 그래서 지금 이런 말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제가 지난 주일도 말씀을 드렸지만 국가 대표가 되면은 국민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야 되요, 참 이기니까 너무 좋지만은 여러분 독일과 16강 전에서 최선을 다해서 뛰고도 저도 국민들은 저는 박수를 보냈으리라고 봐요.
금메달을 딴 여러분 야구 대표팀이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은 병력 면제만 있었거든요,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고, 교회가 세상을 행복하게 할 때에도 어떻게 행복하게 하는 가를 알아야 되요. 교회가 뭔가를 퍼 주고, 좋은 일 많이 해서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 그런 데에 넘어가면 안 되요.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자기 잘남을 나타내려고 하는 지도자의 교묘함이 숨어 져 있습니다. 봐라 60년대에 70년대에 박정희가 이룬 경제 발전이 어떠했는데 우리가 태극기로서 이 나라를 사수해야지, 명분 뒤에는요 정치인들이 국회 뺏지가 있는 거에요. 그런데 놀아 나 가지고 가서 흔드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봐라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가치 있는 자야, 그것을 추종하면서 촛불을 밝히려고 할 때에 무엇이 있어요, 국회의원 뺏지가 있는 거에요. 정권이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추종하는 거에요. 여러분 정신 차려야 되요.
교회가 세상을 어떻게 행복하게 하는가, 퍼 주고 좋은 일하는 게 아니에요, 성경은 하나됨으로. 그래서 서로 대적하지 말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고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세상은 자기가 선호하는 사람을 추종해 가지고 왜냐하면은 절대적인 진리가 그들 속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우월한 자를 추종하므로 상대적으로 좀 가치가 못한 자, 그 가치의 판단을 바라보는 쪽이 어느 관점인가에 따라서 다르거든요. 그래서 자기 과시하려고 하는 교만 죄의 본질, 그래서 이 세상은 서로 싸우고 파당 짓고 분쟁해서 공멸해 가는 세상 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여러분 하나는 좌편에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가 요한복음 17장인데요,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이듯이 저들도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4. 그리스도파에게 게바파의 말씀을 가지고 인용을 하고, 또 게바파에는 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시 경고하는 것이 고린도전서이다. 왜 여러분들이 목사를 추종하고 교회를 추종하는가, 하나님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필요해서 사용했든 먼지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나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 내 잘났다고, 자기 주장 하지 않는 것,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파에게 게바파의 말씀을 가지고 인용을 하고, 또 게바파에는 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시 경고하는 것이 고린도전서에요. 여러분 여기에도 촛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태극기도 30% 20%는 지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 되요. 왜 여러분들이 목사를 추종하고 교회를 추종하는가, 하나님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 7절인데요 좀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들으세요. 이 본문을 설명해 주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어떤 병 고치는 은사 받은 목사가 능력이 있어요? 그렇다면은 그가 능력자라면은 지금 동백에서 개척해도 그 교회 만들어 내야 되요. 자기가 능력 자라면은 어떤 사람에게도 기도하면 병이 나아야 그 사람이 능력 자에요.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필요해서 사용했든 먼지라 말입니다, 교회를 이룰 수 있었든 것은 제가 볼 때에요 시대적 산물이에요. 우리나라가 농경 사회였어요, 옛날만 해도 도시에 사는 사람 별로 많지 안 했어요. 그러다가 산업화가 되면서 모두다 고향 등지고 도시로 왔잖아요. 여기에 고향이 시골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고향 등지고 와서 짐 푸는 데는 어디인가, 사대문 안이 아니에요, 저 변두리 대조동이에요, 거기에 짐 풀어놔 놓고, 루핑카바 오두막 집에 해 놔 놓고, 고향 등지고 먹고 살길 찾아 왔는데 새벽 별보고 저녁 별보고 들어오는데 죽을 지경이거든요, 그래도 고향에서는 내가 못 먹으면 옆집에서 그래도 쌀도 주고 하는데 이 도시는 얼마나 비정한 곳이에요, 내 것 없으면 죽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나라 60년대에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의 마음에는 불안의 정세가 있었든 거에요. 왜 열심히 일했어요, 불안해서 일했든 거에요. 왜 열심히 믿어요, 불안을 조장하면 열심히 믿어요. 그 불안한 마음으로 고향 떠나서 안절부절 하는 그들에게 당시의 교회는 장로 교회는 예전적 교회에요, 거룩거룩하고 교회에서 기타치고, 여러분 드럼치고 북 치면은 이단이라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저 할렐루야 있을지어다, 하고 가는데 현실의 불안한 마음이 위로가 됩니까, 안 되지요, 그런데 어떤 교회 갔더니만 북을 쳐, 내게 강 같은 평화 하고 하니까 막 흥분이 되어지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져요, 또 그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한 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요. 그러니까 장로교인들이 전부 그리 간 거에요. 그리 갔다가 조금 더 잘 살게 되면은 사람들은요 도심으로 와요.
5.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그 지역에 필요해서 잠시 중요한 일을 하는데 먼지와 같이 푹석 거리며 좀 보이게 한 것, 그것 하라는 것이다. 은혜는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설명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이 성경에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다.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동백에 좀 더 잘 살게 되어지면은 어디로 가는가 죽전 가는 거에요. 죽전에서 좀 더 잘 살면 분당 가는 거에요. 분당 가서 좀 더 잘 살게 되면은 강남 가는 거에요. 그러다가 진짜 잘 살게 되면은 동백 오는 거에요 다시, ㅎ ㅎ 그 조류를 따라서 교회를 옮긴 결과, 시대적 산물이에요.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그 지역에 필요해서 잠시 중요한 일을 하는데 먼지와 같이 푹석 거리며 좀 보이게 한 거에요 그것 하라는 겁니다. 설교 잘하는 아볼로 추종하지 말고, 경건을 과장하는 게바를 추종하지 말고, 성령 받았다고 하는 그리스도파를 추종하지 말고, 그 추종하는 그 이면에는 자기가 선호하는 사도를 치켜세움으로 말미암아 자기는 잘난 사도 잘난 신앙인이라는 것을 그러지 못한 자들에게 과시하려고 하는 죄의 본질은 치졸한 교만의 마음이 그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우파교회 좌파교회 저보고도 좌파 가깝다고 해요, 참 한참 몰라요 행간을 모르는 말만 가지고 보는 거에요. 여러분 그러면서 그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7절에 이렇게 말해요,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유대주의적 선민의식에 젖어 있다고요,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데 은혜가 뭔 줄 아느냐 이런 말이에요. 은혜를 알려면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알아야 되요. 은혜는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설명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다, 진화가 아니다. 이 싸움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치 있는 인간에게 투자하는 하나님이 아니다는 거에요. 하나님은 그에게 투자하고도 뭔가 반대급부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이 성경에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에요. 이 행위는 인간의 삶 속에 없었기 때문에 헬라어에 없는 말이에요. 가장 가까운 말이 카리스이기 때문에 카리스에 그 의미를 담은 거에요. 그래서 은혜라는 말에 개념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개념을 가지고 설정한 것을 모르고 그저 말로 하나님의 은혜 받았다고 한다면은 뜻의 왜곡이 일어나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부모들이 그렇잖아요, 가짜 부모 말고 진짜 부모, 형제 지간에도요 뭔가 도와 줄 때에는 희망이 있는 놈 도와 주려고 그래요, 그리고 반듯이 도와 준 대가를 결과를 얻으려고 그래요. 그러나 부모는 아니잖아요. 우리를 낳은 자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자에게 투자 안 해요. 여러분들이 똑똑한 놈 자식 낳아 가지고 똑똑한 자식 잘 기르려고 하는 것은 부모 아니에요. 진짜 부모는 못난 자식 때문에 눈 못 감는 거에요. 그리고 자식 덕 보려고 자식 기르는 것은 부모 아니에요. 주고도 또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게 부모에요. 악한 인간도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이랴 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드리게 되면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는 조금 지식을 가지고 자기 잘난 것을 알려고 아볼로 줄 서는 거에요. 조금 경건을 가지고 자기 잘남을 나타내려고 게바에게 줄 서는 거에요.
6. 복음을 알게 되어지면은 어떤 사람도 위대하게 보이지 않는다. 주님만이 나를 창조한 그 하나님만이. 오늘 내가 있는 이모든 것의 원천이구나. 내 잘난 것이 아니라, 못난 나를 선택하여 구원받은, 그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도 인정해서 하나가 되는 모습이 되도록.
그런 그들에게 받지 않은 게 어디 있냐, 자격이 있어서 받았냐, 여러분들이 복음을 알게 되어지면은 어떤 사람도 위대하게 보이지 안 해요. 주님만이 나를 창조한 그 하나님만이, 오늘 내가 있는 이모든 것의 원천이구나.
유대교가 우리는 잘나서 하나님이 선택했대요, 그래서 우리를 복 주실 거래요. 그런 그들에게 너희가 왜 선별 된 줄 아느냐, 국가 대표가 다른 선수들보다 지 잘난 맛에 대표 되면은 군 면제가 보이지만은 수많은 선수 나보다 더 잘난 선수들이 많지만은 은혜로 내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 태극기를 달았다고 할 때에 비로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뛰게 되는 거에요 지금 그런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설교를 들으면서 교회가 세상을 어떻게 행복하게 하는가, 여러분들이 낸 많은 헌금을 가지고 퍼 주며 의로운 일을 하는 포장에 넘어가지 마세요. 내 잘난 것이 아니라, 못난 나를 선택하여 구원받은, 그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도 인정해서 하나가 되는 모습이 되도록.
왜 좌파 교회 우파 교회가 있어야 되요. 왜 태극기 촛불이 교회에 존재해야 되요. 그것을 무너트리는 것이 교회인데, 촛불을 끄고 태극기를 내려놓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사명이 목사의 사명이고, 여러분들을 부른 하나님의 부름의 목적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본문을 보면서 이 행간이 보여야 되요.
목사님 어느 참고 도서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아니에요, 삼십 년 고민해야 나와요, 여러분들이 알게 되면은 세상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추종하는 자가 아니고요, 교회 자랑 목사 자랑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아야지요. 세상에 친구 자랑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인간이 어디 있어요. 왜 친구 자랑해요, 나는 이런 친구 있다고 생각을 해서 너보다는 내가 나은 존재라는 것을 자기과시가 그 속에 있는 거에요. 내가 왕년에는 이런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내가 형편없지만은 왕년에 내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은 자기 자랑을 통해서 너보다 내가 나은 인간이야 하는 비교 의식이 만들어 낸 치졸한 교만 경쟁 죄의 본질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요.
7.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삼위일체는 삼위가 하나의 하나님이듯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된다. 영적인 눈이 열릴 때, 목사와 교회에 줄 서는 일이 없다. 예수님의 옳은 게 절대적인 진리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여러분들이 김종웅 목사도 아니요, 어느 누구도 아니요,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삼위일체는 삼위가 하나의 하나님이듯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되요. 대한민국에는 태극기도 있어야 되고, 촛불도 있어야 됩니다, 시대를 따라서 태극기가 우세할 수도 있고, 촛불이 우세라 할 수도 있어요. 그 균형과 그 포용을 목사와 그리스도인들이 해 나가는 거지요. 어그스틴이나 기독교의 유명한 성자도 오십 보 백 보에요. 거룩한 하나님이 보이면은.
저도 여러분 우리 부교역 자들에게 나만 옳은 것이 아니야, 내 설교도 여러분들이 비판을 해야 해. 그런데 네 경험이나 전통이나 교리를 가지고 비판하지 말고, 성경에 삶의 정황 행간을 더 나보다 밝히 봐서 하나님의 뜻을 더 밝히 알았을 때 그것을 가지고 비판을 해.
제일 무서운 사람이 책한 권 읽은 거요, 자기가 본 것이 세상의 다야, 그래서 목사님 설교도 비판하고, 목사님 목회도 비판하고, 교회도 비판하고, 어찌하겠다는 이야기요, 그게 자기 지금 교만과 무식을 자랑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막 그러는 거에요, 나만 옳은 게 아니에요, 은혜 받으면 그것 알게 되요, 이것이 영적인 눈이 열리는 거에요. 영적인 눈이 열릴 때, 비로서 우리는 태극기는 촛불을 수용하게 되고, 촛불은 태극기를 수용하게 되요, 영적인 눈이 열릴 때, 장로교는 알미니안을 이해하게 되고 알미니안은 장로교를 이해하게 되지요. 영적인 눈이 열릴 때, 목사와 교회에 줄 서는 일이 없어져요. 예수님의 옳은 게 어디 있어요, 절대적인 진리지요.
8. 영적 눈이 열리면은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린다, 옳음은 주님 한 분 밖에 없다. 성령이 여러분들 속에 역사하면 그 어떤 위대한 일도 하찮게 여겨 진다 그리스도의 구원 앞에서. 실로암 못 가에 있는 소경이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를 때 그 눈이 열림과 같이 영적인 눈이 열려야 된다.
오늘 본문을 이해 했다면은 행간을 알면은 여러분들이 오늘 내가 하는 설교가 본문 속에서 보여지게 되어져요, 동의하게 되어져요. 자기 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안 해요, 교회의 존재의 이유는 세상의 행복이에요,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교회가 퍼 주는 것이 아니에요. 교인들 헌금 많이 해 가지고 퍼 주고 해 봐야 유명 해지는 건 목사 하나밖에 없어요. 여러분들의 행복이에요, 눈이 열려지세요, 눈이 열려 지면은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옳음은 주님 한 분 밖에 없어요. 성령이 여러분들 속에 역사하면은 그 어떤 위대한 사람도 별 것 아니게 여겨지고, 그 어떤 위대한 일도 하찮게 여겨져요 그리스도의 구원 앞에서.
얼마나 우리가 복음에서 멀리 떠나 있습니까, 그러니까 교회가 좌파 지지하는 교회, 우파 지지하는 교회, 절대적인 진리가 상대적인 진리에 줄 서는 이상한 교회가 되었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전함이에요. 받아 드린다면 성령이 하신 거고요, 못 받아 드리면은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는 거지요. 우리 모두는 세상의 진리도 그러잖아요. 틀린 것이 아닌 것이 아니고 다름이라고, 말은 그래 하면서도 전부 틀렸대, 목회하면서 제일 힘든 게 그거에요. 조그마한 경험 가지고 교회 비판하고 목사님 비판하고, 목회 비판하고 그러면서도 지 잘났대, ㅎㅎ 자기가 옳대, 그런 사람이 뭐 말해 주겠어요, 그렇구나 하는 거지요.
오늘 여기 말씀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어디 있느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하느냐. 오늘 우리 교회가 이만큼 모이는 것이 내 목회의 열매가 아니에요.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이 시대에 그래도 필요해서 요만큼이라도 주신 거에요. 실로암 못 가에 있는 소경이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를 때 그 눈이 열림과 같이 오늘도 여러분들이 영적인 눈이 열려져서 성경을 문자 주의에 매달리지 않고, 그 행간 속에 성경의 단어의 개념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발견해서, 다른 사람보다 났다고도 하지 말고요, 나만 옳다고도 하지 말고요, 사람을 추종하지도 말고, 교회를 추종하지도 말고요,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좌파 우파가 싸우는 이 대한민국이 교회 때문에 하나가 되는 교회가 세상을 그렇게 행복하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그 옛날 조선에는 유교의 정신이 지배할 때에는 선비와 양반에게 가치를 두었고, 상인이나 농민에게 가치를 두지 안 했습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시대가 되니까, 선비 정신은 간데 없고, 돈에 가치를 두는 가진 자가 선이고, 가진 자가 복이라는 가치가 만연한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주님의 가치를 둠으로 말미암아, 서로 지 잘났다고 자기 내세우는 죄의 본질이 만들어 낸 파당에 교회가 휩쓸리지 아니하고,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교회가 되도록 오늘도 주님의 진리의 말씀이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내 귓전에 들리어 지고, 그 말씀이 나의 인격이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비판으로 인하여 교회가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하여 교회가 새로워 져 가는 그런 한국의 교회가 되고,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그 일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계시는 시간이 지나면서 날마다 발전 되어져 간다 합니다, 옛날에 그 깨달았든 과거의 계시가 발전된 계시에 발목을 붙잡는 일이 없도록 주님 칼빈에게 줄 서지 말게 하시고, 기독교의 역사에 성자에게 줄 서지 말게 하시고, 오늘날에 큰 교회의 이름있는 목사에 줄 서지 않게 하시고, 주님에게 줄 서는 교회가 되어져서 작은 교회도 숨 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시고, 약한 자도 숨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시고, 큰 교회도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시고, 부자도 사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성령님 성경을 보고 맡은 자들 먼지에게 깨달음을 더하여 주시고, 선발하여 선수로 뛰는 교인들이 군 면제에 현혹되지 않고, 가슴에 달린 십자가에 자긍심으로 재림의 그날까지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수 있도록 오늘도 무한 경쟁의 시대에 생채기 난 헌금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더 이상 약한 자들이 생채기 나는 생존이 되지 않도록 교회라는 보호막 속에서 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오늘도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이름만 쉼과 회복이 아니라, 쉼이 있고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도록 목사님의 혼자의 외침이 아니라, 장로님들의 동의가 있게 하시고, 권사님들의 기도가 있게 하시고, 교인들의 참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착각해서 왼편 오른편 앉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이듯이 저들도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기도를 하시고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기가 잘나서 선택 받았고, 자기가 능력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뿐만 아니라, 오늘도 조그마한 경험의 지식이 다인 줄 알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 완악한 한 사람을 위하여 천연을 하루같이 십 이년을 하루같이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그 어떤 위대한 사람도 그 위대한 과업도 하찮게 여겨 지도록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나만 옳은 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절대 진리임을 알아서 날마다 자기를 개혁하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세상을 행복하게 하도록 선물로 주신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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