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교회가 왜 그런데요? (고린도전서 8: 7-13)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6. 1. 00:43

 

 

 

담임목사 김종웅

교회가 왜 그런데요?

고린도전서 8: 7-13

2019 5 26일 주일 낮 예배

                                                                                                                                                No. 420

7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아멘

 

.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내가 잘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이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더 깊이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다. 신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실족하는 그 사람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죽으셨다. 완벽한 법 십계명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셨다.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 또 교회만이 아니고,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는 복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요즘 교회마저 왜이래,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교회가 복음 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은 교회가 좋은 공동체가 되고요, 또 교회가 좋은 공동체가 됨으로 우리나라 우리 사회 여러분들 가정이 좋은 공동체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공동체 좋은 교회라고 할 때에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통념을 가지고 그저 국민소득이 높고 아니면은 좋은 일 많이 일어나고, 교회가 좋은 일들 많이 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인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1. 바울과 같은 사고를 가질 때 우리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더 깊이 아는 것은 우리의 창조자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더 깊이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좋은 공동체라는 의미도 제대로 알아야만이 되어져요. 이런 것에 대한 사명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되는데, 우리 한국에 그리스도 인들은 이런 분들이 많아요. 그저 나 하나 잘되면 좋고, 또 내 자녀 잘되면 좋고, 내 사업 잘되면 좋고, 이런 생각만 하면서 예수를 믿어요. 그러면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은 내가 잘되는 것도 좋지만은 세상이 좋은 세상이 되는 것,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라면은 내가 잘되고 내 입장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한 거에요. 여러분 회사도 그렇잖아요, 회사의 직원은 월급만 받으면 되요, 그래서 회사는 어떻게 되든지, 내가 월급 많이 받으면 좋아요.

 

그래서 회사의 미래보다는 내 통장 월급이 얼마나 들어오느냐 이게 관심이 있어요. 그러면 종이에요. 그 회사의 사장 아들은 월급 많은 것도 좋지만은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더 우선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잖아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라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이 세상 살면서 그저 나 하나 잘되면은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산다면은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잖아요, 교회의 주인이 아니잖아요. 이제 여러분들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고요, 정말 여러분들이 이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 되고, 우리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가 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만큼 여러분들의 소원이 되고, 여러분들의 존재의 목적이 되어 지고, 여러분들의 신앙의 목적이 될 때, 정말 주님 앞에 갔을 때, 부끄럽지 않는 구원받은 자가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그럴 때에 야 예수 믿는 사람 달라, 이런 평가도 받게 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보면은 그런 사람들보다 그저 예수 믿는 신앙이 문제가 되어서 교회도 더 큰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게 고린도 교회에요.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교회의 모든 문제가 고린도 교회 안에 있고, 또 그것은 세상의 모든 문제가 그대로 내포 되어져 있어요. 그래서 문제 많은 교회가 오늘 바울에게 질문을 해요, 그 문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할 때에 고린도 교회의 생각하고, 바울의 생각이 참 많이 다름을 느낍니다. 바울과 같은 신앙을 가지게 될 때에 좋은 교회가 되고요, 바울과 같은 사고를 가질 때 우리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요.

 

오늘 고린도 교회의 여기에 보면은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렇게 해 놨어요. 교회에는 중요한 것이 신학적 지식이거든요, 신에 대한 생각이에요. 여러분들이 신앙이 더 깊어 지면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는데 더 깊이 아는 것을 헬라적으로 아는 것을 안다 생각하면 안 되요. 더 깊이 아는 것은 우리의 창조자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더 깊이 인식하고 깨닫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아요, 어떤 지식이 있는가, 우상은 없다, 신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그래서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는 것은 괜찮다. 이런 신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지식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래요.

 

2.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을 배려하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그런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다. 우리가 먹지도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런 신학적 지식이 없어 가지고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를 먹으면은 부정타 가지고 어려운 일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이 두 그룹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거에요. 신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무시해요. 또 신학적 지식이 없는 그들은 우상 제물을 먹는 그 사람들의 자유를 보면서 비판하고 비난해요. 이런 갈등이 있다 이 말입니다. 이런 것은 교회 안에서는 이런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 사는 세상에 오늘 이 말씀대로 하면은 아무나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이 사회에 부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아무나 되는가, 아무리 되려 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공부 누구나 다 잘하기를 원하지만은 다 공부 일등 할 수 없어요. 공부 못하는 얘도 있어요. 운동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래 잘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다 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착각을 한다고요. 하나님은 그렇게 안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서 잘 하는 사람들은 부자들은 없는 사람 무시해요. 왜 가난해 열심히 일하면 되지, 요즘 청년들보고 우리 때는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일했는데 저것들은 요즘 힘든 일 안 하려고 한다고, 이해하지 안 해요. 또 젊은 사람들은 연세 드신 분들을 인정하지 안 해요. 이런 갈등이 세상에 존재한다고요.

 

교회 신학적 문제나 사회의 모든 문제는 가만히 보면은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한 갈등이 있어요. 좋은 사회는 많은 사람이 다 가지게 되는가 아니에요.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을 배려하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그런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에요. 하나님 알게 되면은 슈퍼멘 요구하지 안 해요. 바울의 생각이 바로 그런 생각이었다고요, 그런데 바울은 처음부터 그랬는가, 그렇지 안 했다고요, 처음에 유대교일 때에는 신앙이 없는 사람을 굉장히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바리새인일 때에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는 없는 사람들 이방인들은 개 취급 했다고요, 그런 것도 몰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사람으로 여기지도 안 했다고요.

 

그랬든 그가 오늘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신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것으로 그들이 양심이 약하여 지고 더러워지느니라, 라고 말을 하면서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도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도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우리가 안 받아 드려서 그렇지.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신학적인 것 말고 우리 일상의 용어대로 하면은 남들보다 좀 더 많이 가졌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좀 못 가졌다고 해서 못사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3. 하나님이 내 속에 있으면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절대시하는 그 가치가 상대화 된다. 바울이 그것을 내가 먹음으로 말미암아, 없는 사람이 실족하게 된다면은 나는 평생 동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다.

 

공부를 좀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좀 못한다고 실패한 인생도 아니다. 찬양을 우리 김현호 선생 같이 한다고 해서 뭐 멋진 것도, 내같이 박치 라고 해서 뭐 쓸모 없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내 속에 있으면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절대시하는 그 가치가 상대화 되여 져요. 그 때 자유 함과 행복이 있는 거에요.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문제는 교회 와서 자꾸 세상의 가치를 절대화 하는 것이 문제에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나니까 이제 뭐 신학적 지식이 있어 가지고, 그 좀 먹는 것, 못 먹는 것, 이런 것이 별로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옳고 거르고 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해요.

 

그래서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을 가지고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이 그렇게 특권이고 좋은 것이고, 없는 사람은 그것을 먹는 것을 비난하고, 못 먹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정당화 하려고 하는데, 내가 옛날에 복음을 알기 전에는 나도 너희들하고 같았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 그래서 나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나는 너희들 믿음이 강한 사람들 신학적 지식이 있는 너희들의 생각이 옳은 것 안다.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는 고기일 따름이지 그게 뭐 부정 탄 것이 아닌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먹음으로 말미암아, 없는 사람이 실족하게 된다면은 나는 평생 동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다.

 

왜 고기 먹는다고 해서 잘 사는 것도, 못 먹는다고 해서 못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내가 먹는 것 때문에 실족하는 네가 신학적 오른 지식을 주장하고 옳은 삶을 산다고 하는 것 때문에 신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실족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죽은 자이다. 이런 인식이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교회에도 보세요, 참 우리 교회의 이런 부분들 좋은 것이라고, 내가 뭐 돈이 있어서 명품 백 들어도 그것 때문에 누구에게 실족한다면은 그것 안 들면 되잖아요, 집에 혼자 놔두면 혼자 들고 다니면 되지 뭐 교회 와서 흔들고 다녀요, 우리 교회가 참 좋은 교회는요 그래도 우리 교회 나오는 여러분들이 고마운 거에요.

 

좋은 대학 갔다고 해서 제가 절대로 칭찬이나 감사 안 하거든요. 왜 떨어진 부모 마음 이해 해 주어야지요. 이것이 신앙 생활이고 이것이 복음 안에 있는 삶이라는 거에요. 우리 교회의 몸이 안 좋은 분들 편찮은 분들 있지요, 그거 가지고 자신을 막 이래 안 해요, 내가 아프다고 해서 내가 불편함이 다른 사람의 불편함이 되지 않도록. 다 복음 안에 있게 되면 이렇게 되어져요. 옛날에 유대교는 그러지 안 했어요. 이런 변화는 어떻게 있어야 되는가, 저도 그래요 사람 여러분 살다 보면은 싫은 사람 좋은 사람, 그것 없으면 죽은 거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하고 성향이 맞는 사람은 좋고, 성향이 안 맞으면 안 좋은 것은 당연해요.

 

4. 바울이 유대교일 때에는 율법주의 자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는 복음 안에 있으면서 은혜의 속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 그게 죄다.

 

또 누군가가 나에게 좀 어려운 일을 하면은 싫어 지고 미워 지는 것이 있지요, 그럴 때에 아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지, 내가 사랑해야지, 사람 죽이는 겁니다. 목사님이 와서 아이구 집사가 되어 가지고 그런 것도 용서 안 하고 사랑, 누가 몰라서 안 하나, 그럴 때에 지금 바울은 뭐라는 가 하면은 나는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그 사람을 용납할 수 없지만은 그 사람도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죽은 자라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여러분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요, 어떻게 인간이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요, 경험 안 하면 모르는데,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내가 이해 안 되는 그 사람을 그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죽으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요.

 

고린도 교회는 그런 생각이 없었든 종교인이었다고요. 그러면 바울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이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된다고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이런 변화가 바울에게 있었는가, 그가 유대교일 때에는 율법주의 자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는 복음 안에 있으면서 은혜의 속한 자가 되었어요. 여러분 이 변화가 한국 교회나 저와 여러분들 속에 분명히 있어야 되요. 그 변화를 일으킨 것에 결정적인 것의 복음이 뭐냐 하는 것이 로마서에요. 그래서 수요일 날 제가 로마서 강해를 죽 하는데 몇 명 안 나와, 그래서 주일날 바울이 이렇게 해서 변화 되었다고 이야기 해야 되니까 설교가 길어져 ㅎ ㅎ 요기서 딱 마치면 되는데, ㅎ ㅎ

 

지난주 수요일에 했든 몇 주 간에 했든 로마서 5장을 한번 펴 보세요. 여러분들이 성경을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 되요. 로마서 5 12절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설명해 드릴께요,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랬잖아요, 이 말씀은 창세기의 말씀을 말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요. 성경의 모든 출발은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율법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나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 이런 성경적 관으로 봐야 되요. 자꾸 사회적 통념으로 말하지 말고요.

 

제가 교인들 상담하고 뭐 이야기할 때 제일 힘든 것이 그거에요. 사회적 통념을 가지고 그 가치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에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면은 자기가 경험한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에는 자기 생각이 옳거든요. 그래서 안 고쳐 지는 거에요. 여기에 보면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래서 사망이 들어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다 알잖아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다. 이것을 가지고 창세기 3장에 있는 아담의 사건이구나 라고 말을 하면서 죄를 주일 성수 안 하는 것, 십일조 안 하는 것, 아니면 도둑질 안 하는 것, 윤리나 이런 것들로 생각해요.

 

그래서 그래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사망 우리가 죽게 되었다. 이러면은 교회는 이 성경은 생물학이 되고, 윤리학이 되어 버립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어서 이 모든 단어를 신학적 의미로 그 개념을 생각해야 되요. 아담이 죄를 지은 죄는 뭐냐 하면 이런 거에요.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 그게 죄에요. 여러분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보세요, 어떤 일이 있으면 그 사건에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하는가?

 

5. 사망은 생물학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생명이 왕 노릇 하는 삶을 살려면은 내가 잘하는 것, 남이 잘하는 것, 인정해서 그 잘 하는 것을 가지고 서로가 섬기고 보완해 주려고 하는 것. 이게 생명이 왕 노릇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내가 원하는 것 내 고집 내 생각대로 되어 지기를 바라는가, 대부분 후자들이잖아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사망이 들어가는 거에요. 그 사망이 왕 노릇 한다고 할 때에 이 사망은 생물학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 이것을 말해요.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고집대로 살려고 하면은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의 인간이 되고, 그 인간에 의해서 세상이 타락 되었다 이래요. 그러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뭐가 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면은 생각의 타락이 와요. 그 생각의 타락이 뭐냐 하면은 염려하고 근심하는 거에요.

 

여러분들 걱정이 있어요 없어요,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담이 범죄한 그 죄로 인한 타락 때문이에요. 그래서 걱정이 생기면은 뭐하는가 하면은 얘에게 스트레스 줘요 공부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더 잘 되어야 돼, 걱정과 염려가 있으면 일부러 막 위기를 가장해 가지고 더 열심히 하게 해요. 그래서 열심히 하면은 나중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가는 종교인들 많아요. 여러분들의 염려와 근심이 되거든 내가 아담이 지었든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내 생각이구나, 그래 우리 아들이 공부를 못할 때, 걱정이 되거든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해 보세요. 그러면은 우리 아들이 망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사랑하는 하나님이 우리 아들의 앞길을 인도해 갈 거야 기대가 생겨요.

 

또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한다면은 우리 아들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 대학에 떨어진 자리에 다른 사람의 자녀가 대학에 합격한 것을 가지고 또 다른 위로를 받아요. 이것은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걸어간 길이고, 그 안에 성령님이 있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에요. 여러분들의 생각이 이렇게 파탄이 일어나면은 감정의 파탄이 일어나요. 그 감정의 파탄이 욕심이라는 거에요. 인간의 모든 욕심은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것이 욕심이에요.

 

이 욕심이 어떤 인간의 이 사망의 증상들을 제가 말하는 거에요. 이 욕심이 인간 관계의 파탄을 가져와요. 어떤 파탄이 와요, 모든 사람을 이기려고 그래요. 모든 사람을 이용하려고 해요. 사망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것은 만인이 만인에 대해서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서 이기려고 하는 것, 이것이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것인 줄 모르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나라가 힘이 드는 것이 뭐냐 하면은 다른 나라보다 생존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힘 드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 의와 생명이 왕 노릇 하는 삶을 살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잘하는 것, 남이 잘하는 것, 인정해서 그 잘 하는 것을 가지고 서로가 섬기고 보완해 주려고 하는 것. 이게 생명이 왕 노릇 하는 거에요.

 

6. 인간 관계의 파탄은 사회적 파탄 무한 경쟁의 시대가 되어 버린 거에요. 이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세상이에요. 바울이 그것 알은 것이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더불어 살아가도록 율법을 주신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은 저도 세상사는 방법 잘 알아요. 그러나 그런 것 여러분 이야기 안 하잖아요, 여러분 잘 사는 방법 뭔 줄 압니까, 내 식으로 싸워야 돼, 옛날에 권투 선수 알리 있었잖아요. 레슬링 이노키 안토니 두 사람 세기의 대결을 시켰다고요, 그런데 세기의 쇼가 되어 버렸지요 왜 땡 하니까 이노끼는 누워 가지고 뱅뱅 돌고, 알리는 뱅뱅 도는 거에요, 자기가 유리한 것 가지고 싸우려는 거에요 ㅎ ㅎ 잡히면은 알리는 끝나고, 일어나는 순간 이노끼는 간다고, 여러분 싸울 때에요 내가 잘 하는 것 가지고 싸우고, 내가 유리한 환경으로 싸우는 것이 세상인데, 성령을 받으면은 그렇게 안 사는 거에요.

 

이노끼가 누워 있을 때에 달라 들면은 알리는 달라 더는 놈 주먹으로 물리쳐 주고요, 잡히면은 이노끼가 물러 쳐 주고, 이래야 서로가 조화로운 거에요. 그래서 사람 인자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인데 혼자 살 수 없는 게 인간인데,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살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 도와 주라고 만들어 졌는데,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고집하며 살면서 타인을 이기려고 하는 인간관계의 파탄이 왔고, 이 인간 관계의 파탄은 사회적 파탄 무한 경쟁의 시대가 되어 버린 거에요. 이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세상이에요. 바울이 그것 알은 거에요. 이런 세상에 하나님이 더불어 살아가도록 율법을 주신 거에요.

 

그래서 그 율법에 대해서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율법주의 자로 산 거에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13절을 말하는 거에요. 13절에 보면은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성경은 출애굽기가 성경의 출발이에요, 창세기 아니에요. 출애굽기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면서 율법이 세상에 들어온 거에요. 물론 그 전에 사회에도 함무라비[Hammurabi] 법전이 6백 년 전에 있었어요, 메소포타미아문명에, 있었지만은 그것은 인간의 만든 원시적인 법이고, 완벽한 법 십계명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거에요.

 

그런데 옛날에는 바울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율법을 받기 전에도 시내산에서 도적질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뭐 이런 여러 가지 율법을 받기 전에도 세상에 죄는 있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죄를 죄로 여기지 안 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기지 않는다는 원문의 말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사람에게 돌리지 아니했다 이런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은 도적질 하지 말라는 법이 없을 때에는 도적질이라는 죄는 있지만은 도적질 한다고 해서 그 책임을 도적질 한 사람에게 안 묻는다 이 말이거든요, 책임은 안 묻지만은 도적질하는 사회에 고통은 세상에 존재하는 거에요. 그게 창세기의 세상이라 말입니다.

 

7.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주일 성수를 안 해도 그 나쁘다고 인정을 안 한다. 교회 나오니까 주일 성수 안 하니까 목사님이 나쁜 교인이라 한다. 유대교는 율법을 왜 주었는가 도둑질 하지 말라는 법이 생김으로 도둑질하는 것이 죄라는 인식이 되어져서 그때부터는 도둑질하면은 벌을 준다.

 

다시 여러분들에게 예수 믿은 사람의 이야기를 해 줄게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나면은 이제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와야 된다는 율법이 여러분들에게 생겨요, 그런데 주일날 교회에 다니기 전에는 그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주일 성수를 안 해도 그 나쁘다고 인정을 안 하는데, 교회 나오니까 주일 성수 안 하니까 목사님이 나쁜 교인이라 그래, 그런데 주일 성수를 안 하는 것이 옛날에는 죄는 되지 안 했지만은 그 주일 성수 안 하는 죄에 대한 결과를 자기가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거에요. 어떻게 받고 있었는가, 여러분 우리나라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양반은 365일 풍요하고, 상놈은 365일 노동했든 나라에요.

 

그러니까 노동이 고통이 되었든 나라였어요. 교회가 들어오면서 주일 성수를 하면서 뭐라 하는가 하면은 누구에게나 안식일은 쉬어라, 이제 더 나아가서 주4일 근무까지 오는 거에요. 이것은 성경보다 한걸음 더 나가는 거에요 내가 볼 때에는. 그러니까 이 법이 옴으로 말미암아 그때에는 이 법이 없을 때에 상놈이 365일 일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죄를 묻지는 안 해요. 지금은 주 52시간 넘으면은 처벌을 받아요. 그러면은 그 처벌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넘지 않게 일을 한다 이게 율법주의에요. 교회에서도 십일조 안 하면 하나님이 율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면은 항상 징계와 채찍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한국 교회가 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세상을 아름답게 고치는 복음 위에 서지 못하고 교인들이 종교적인 짐을 지고 가는 이런 교회가 되어졌는가 하면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났든 그 은혜의 복음 위에 서지 못하고 바리새인과 같은 유대교와 같은 신앙 때문이에요.

 

유대교는 율법을 왜 주었는가 도둑질 하지 말라는 법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도둑질하는 것이 죄라는 생각이 인식이 되어져서 이제 그때부터는 도둑질하면은 벌을 주어요. 그래서 도둑질 하는 것이 좀 줄어들어, 부모 공경하라는 법이 없을 때에는 부모를 공경 안 해도 처벌을 안 했는데 그 법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하기 위해서 부모 공경을 안 하면은 하나님에게 혼난다는 이런 처벌 조항을 넣어 준다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법을 준수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간다고, 그런데 이 법은 그러면은 그 법에 의해서 좋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지금 법에 의해서.

 

우리나라 보세요, 우리나라 재벌들을 규제하는 법을 주어서 이제 재벌들이 무한히 욕심을 부리지 못하게 하니까 재벌들이 그 법망을 피해서 해외에 출자해요. 이것 어떻게 막아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교회가 그 책임이 있다는 것 목사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되요. 그래서 인간의 사회에는 항상 성장을 해야 되거든요 사회는. 성경만 읽지 말고 자본주의라는 이런 책도 읽어 보세요, 읽어 보면은 이 자본주의 체제는 성장하지 아니하면은 사회가 파탄이 와요. 자전거가 계속 굴러 가야 하듯이 서는 순간 무너지듯이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2% 성장해서 위기의식을 가지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8. 사회가 잘되기 위해서 우파는 성장, 좌파는 분배, 다 옳다. 성경에 보면은 두 옳은 그 생각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 성경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니까 바울이 옛날의 자기의 모든 율법은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되어졌다, 이런 말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이 그런 말이다.

 

그래서 이 사회가 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우파들은 성장 해야 되고, 좌파들은 분배해야 돼 이런다고, 두 가지 생각이 다 옳아요. 그래서 싸우는 거에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은 두 옳은 그 생각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 성경이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기독교는 우파 생각하고 맞다 고 하는 목사들이 많고, 또 어떤 일부 목사들은 기독교는 좌파 생각 분배를 해야 된다고, 이러니까 두 옳은 생각을 하나로 묶는 복음의 역할이 없기 때문에 힘든 거에요. 그러면 그 하나로 묶는 것이 뭐냐, 율법이 아니라 말입니다. 재벌이 욕심 부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것, 독과점법 이런 것 만드는 것 이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빠져 나가요.

 

유대교가 율법을 가지고 죄가 들어온 세상을 하나님의 의와 생명으로 통치하는 세상으로 만들려고 해보니까 실패한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뭐했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준 거에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니까 바울이 옛날의 자기의 모든 율법은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되어졌다, 이런 말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죄 많이 지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율법의 의해서 살아가다가 이 법 안 지키면은 언제나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율법주의에 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값없이 베풀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의 마음 속에 오니까 주일 성수나 십일조의 법이 더 이상 자기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되더라고.

 

그 은혜가 뭐냐, 여러분들이 알아 듣는 이야기로, 이제는 재벌들을 규제해서 기업을 자꾸 규제 해 가지고 없는 사람도 잘 살게 하고, 재벌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가지고, 잘 살게 하려고 법을 규제하니까 해외로 투자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그것을 법으로 규제하려고 하는 것이 율법이에요 은혜는 그 재벌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재벌 될 수 없는 자인데, 약한 사람들 너에게 재벌 아버지를 만나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너 친구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 직장 없는 사람들에게 일자리 만들어 주려고 너 그 자리 준거야. 그것 가지고 없는 사람 무시하지마, 하나님의 이 은혜의 마음이 있으면은 이제는 더 이상 법이 소용이 없는 나라.

 

좀 더 쉽게 이야기할게요, 어릴 때 아이들에게 이빨 양치질이 얼마나 중요해요, 그래서 양치질 안 하면 이빨에 벌래 생긴다 치카 치카 이것 먹으면 사탕 준다 뭐 한다, 그래서 아이로 하여금 그것을 하게 하다가 아이가 좀 크고 나면은 뭐하게 됩니까, 이제 엄마의 채찍과 당근이 통하지 아니하면은 안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양치질을 하게하는 그 부모가 그렇게 애쓰면서 자기에게 하게했든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될 때, 건강한 이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될 때, 이제는 부모가 양치질 하라고 한다고 하고, 안 하라고 한다고 안 하는 그 부모의 법이 효력이 사라져 버리는 그것이 은혜라는 말이에요.

 

9.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은 교회에 있는 모든 법이 나를 구속하는 법이 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을 자격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은혜의 도구가 된다. 인간의 관계의 파탄, 무한 경쟁 사회를 만들었든 죄 성을 주님 앞에 회개하고, 새로워 져야 된다.

 

오늘도 기독교가 여러분들에게 주일 성수 하세요, 십일조 하세요, 안 하면 하나님 벌줍니다 전부 율법이에요. 주일 성수를 십일조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은혜 여러분들이 주일날 이 설교를 들을 때에도 하나님 이 세상에 박사 학위 많고, 수많은 잘난 사람 많은데 나 같은 자에게 이 말씀을 듣게 해서 내 마음대로 고집하며 살아왔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걱정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말씀을 듣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은 교회에 있는 모든 법이 아무런 나를 구속하는 법이 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이제는 다른 사람을 자격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은혜의 도구가 된다고요.

 

바울은 십자가를 통해서 그것을 알고부터 나는 지식이 있지만은 그 지식을 가지고 없는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들이 실족한다면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 우리 기업이 투자를 해 가지고 회사가 어려워 진다 할지라도 이 기업을 하나님이 받을 자격 없는 기업주에게 맡겨 주신 것을 인정한다면은 망할지라도 나는 젊은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 투자하겠노라, 이게 은혜에요. 교회에 이 은혜가 사라져 버린 거에요, 왜 전부 바벨탑 문화 쌓으려고,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율법으로 목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예배에 와서 받을 자격 없는 나에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나에게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여러분들이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염려와 근심과 걱정 그것으로 인한 탐욕 그것으로 인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였든 인간의 관계의 파탄 그래서 무한 경쟁 사회를 만들었든 죄 성을 주님 앞에 회개하고, 새로워 져야 되지요.

 

내가 남들보다 좀 더 가지고 있다면은 다른 사람에게 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아서 그렇게 써 나갈 때, 세상은 저 사람 예수 믿더니만 사람 되었네, 사람 되었다는 게 뭐에요, 자기만 알든 인간이 이제는 다른 사람도 생각하게 될 때 세상도 인간되었네 라고 이야기 해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더 자기만 알고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이 된다면은 더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사탄의 자녀로 변화되는 이런 것이 교회에 얼마나 비일비재하잖아요. 오늘 여러분들이 정말 바울이 더 먹는다고 해서 잘 사는 것도, 못 먹는다고 해서 못사는 것도 아니다. 내가 고기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그일 때문에 실족을 당한다면은 그 사람도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죽은 자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 이런 배려 이런 사랑은 복음을 알고 은혜 아래 자기 인생을 쌓아 가려고 하는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삶입니다. 아멘

 

◈봉헌 기도◈

 

주님 복음을 알지 못했다면은 남들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서 더 많은 소비의 즐거움과 쾌락으로 살면서 그것이 인생의 성공이요, 인생의 행복이라고,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착각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 인생들에게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오,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도 아닌 무지한 나에게 복음을 듣게 하고, 잘 이해는 못해도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알아서 사람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바울이 먹는다고 잘 사는 것도, 못 먹는다고 못사는 것도 아니라 했듯이 흩어 나누어 줄지라도 부족함이 없고, 과도히 아낄지라도 남는 것이 없는 빈손으로 가는 인생임을 알아서 수고의 분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 허락해 주심을 감사 드리고,

 

나의 누림과 함께 누리기 위해서 10 1은 구분하여 주님 앞에 드리는 헌금, 주께서 열납 해 주시되 이 헌금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인과 신을 알아서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으실 만한 예물이 되도록 십자가의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극한적인 대립과 무한 경쟁 속에서 신음하는 세상에 더불어 살아가는 주님이 선물로 주신 교회를 통해서 한줄기의 빛이 되고, 한줌의 소금이 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오며 우리 가운데 약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긍휼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오며 아무런 공로 없는 죄인을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시고 천국을 유업으로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이제는 율법이 무력화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무한 경쟁 속에 공멸해 가는 세상 속에 한줄기의 빛이 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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