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가치판단과 선택의 기준(고린도전서 9: 3-15)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6. 21. 17:32

 

 

담임목사 김종웅

가치판단과 선택의 기준

고린도전서 9: 3-15

2019 6 16일 주일 낮 예배

                                                                                                                                                   No. 422

3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아멘

 

○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주님이 나에게 능력이기 때문에 나는 가난에 처하였어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다.

 

제가 대학 교회를 섬길 때에 권사님이 수요일 날 기도를 시켰는데 어떻게 기도하는가 하면은 소크라테스가 말하기를 너 자신을 알라 했는데, 하나님 내 자신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더라고요, 여러분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은 참 웃기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질 거에요. 왜 그러는가 하면은 복음을 진짜로 알게 되면은요 어떠한 철학가나 위대한 사상가도 그 말이나 정말 하찮게 여겨 집니다. 복음을 진짜로 알게 되면은 사회적으로 어떤 지체에 있는 사람이나 또 무엇을 큰일을 했든 사람도 별로 그렇게 우러러 보여 지지 않습니다. 또 아무리 사회적으로 천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을 복음을 아는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겁니다.

 

1. 모든 일의 가치판단을 할 때에 내 생각이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것이 뭔가, 하나님의 뜻이 뭔가 이런 것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된다. 사도의 요건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제자여야 되고,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자여야 된다.

 

정말 여러분들이 이런 복음을 안다 라고 이야기할 때에 그저 예수를 믿는다, 성경의 내용을 내가 알고 있다 이 정도가 아니에요. 안다는 것은 연합한다 이런 삶을 말하는 것인데요, 복음적인 사고를 하면서 산다 이런 말인데, 우리가 살아갈 때에 많은 사건이 있고, 사람들에 대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복음으로 가치판단을 하고 선택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교회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늘 이렇게 억압 되어지고, 율법적으로 사는 것은 그냥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지, 모든 일의 가치판단을 할 때에 내 생각이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것이 뭔가, 하나님의 뜻이 뭔가 이런 것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한다 라고 할 때에도 자기 생각을 또 성경을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늘도 이 성경 본문은 제가 목사가 되고, 내가 예수를 믿는 삶을 살아갈 때에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것에 중요한 Motive가 되었든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정말 우리 교회의 신앙 생활하는 날 동안에 오늘 이 말씀을 좇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여러분들의 삶의 많은 자유로움이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이 모임으로 말미암아 교회 생활이 여러분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를 맛보는 그런 복된 신앙 생활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가치판단이나 여러분들의 그러한 행동에 있어서 선택해야 할 때에 그 기준이 되는 것을 어떻게 기준으로 삼아야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여기에 성경에 보면은 3절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바울인데요, 뒤에 예루살렘에서 파송 된 사람들이 와서 바울은 사도권의 자격이 없다 라고 시비를 걸고, 비판을 했든 겁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도 그런 것들 참 많이 존재하지요, 자신을 비판하는 일들이나, 많은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가치 판단과 선택을 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문제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비판한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있다면서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은 베드로는 언제나 다녀도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는 교회들마다 선교비와 생활비를 받으면서 전도와 목회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전혀 생활비를 받지 않고 사역을 하고 이랬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온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은 바울은 사도에 대한 자격이 없기 때문에 생활비나 선교 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했든 겁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사도의 요건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제자여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자여야 되요.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제자가 아니었고, 부활의 목격자만이었든 거에요.

 

2. 비판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복음에 대한 왜곡이 올 때에, 그런 것들은 용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진리를 알지 못한다. 그저 우리는 진리의 속성만 알 따름이다. 하나님을 누가 알아요,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래서 바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 아니냐, 그래서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는 교회들마다 생활비를 받으면서 생활했는데,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아내도 데리고 다니지 못하고, 선교 비나 생활비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 라고 이야기를 한다고요. 왜 이런 공격을 하는가 하면은 바울이 이런 공격에 대해서 자기의 사도 권에 대해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비판은 받아도 괜찮아요. 뭐냐 하면은 자기가 비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전한 복음의 왜곡이 올까 봐 지금 말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의 목사님이나 누군가를 이야기를 할 때에도 뭐 자연인 개인에 대한 비판은 괜찮지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그 비판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복음에 대한 왜곡이 올 때에 그런 것들은 용납이 될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바울이 지금 이야기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다른 사도들과 같이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나,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을 할 때에 이제 여기서부터 중요한 거에요, 7절에 뭐라는 가 하면은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리는 전부 의무 복무, 군대가 징집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지원병들을 말하는 거에요 당시에, 누가 군대에 지원을 할 때에 사례 안 받고 지원할 사람이 어디 있나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누가 양떼를 기를 때에 그 양 때에게 젖을 얻으려고 기르는 것이지 그냥 양 때 기르냐, 누가 포도를 심는데 그 포도를 심는 이유는 포도를 따먹기 위해서 심는 것이지 포도 심는 일 자체는 아니지 않느냐, 이런 것이 세상 이치고, 상식이다, 그래서 8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니라, 자 여러분들이 교회에 오면은 많은 사람들이 왜곡이 뭐냐 하면은 자기가 믿는 게 진리인 줄 알아요 진리를 믿어야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뭐 교회 다니면서 저래,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또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지 못하고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 경우는 바로 진리를 믿지 않고, 복음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러면 진리가 뭐냐, 진짜 복음이 뭐냐,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어떤 가치 판단을 선택을 할 때에 지금 내가 선택하는 이 가치판단을 하는 이 기준이 진짜 복음적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가, 이것을 할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요 상식입니다 상식, 제가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유한한 인간은 진리를 알지 못해요. 그저 우리는 진리의 속성만 알 따름입니다. 하나님을 누가 알아요,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거지요. 진리냐 진리가 아니냐는 것은 그 사람의 주장 누가 말했느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상식적이어야 되요.

 

3. 바울이 지금 사도권에 대한 참된 사도는 어떤 사도냐 할 때에, 먼저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세 오경은 교회에 신앙인들의 헌법이다. 이 율법이라는 것은 신명기의 법을 말한다.

 

지금 우리 한국에 가장 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사고가 뭐냐 하면은 상식적이지 안 해, 그냥 자기 세계에 갇혀서 가치판단하고 선택하니까,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웃기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의 성도들에게만 아멘 되는 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우리 교회에만 아멘이 아니고, 옆에 있는 주님의 교회의 성도들이 들어도 아멘 해야 되요, 이게 보편성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무엇을 판단하고 선택할 때에 나는 과연 얼마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인가, 알아야 되요. 바울이 지금 사도권에 대한 참된 사도는 어떤 사도냐 할 때에 먼저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거에요.

 

이 사람들은 사도로서 자격이 없어서 생활비나 선교 비 못 받는 것 아니냐 라고 이야기할 때 바울이 내가 못 받는 것이 아니고 안 받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하면서 지금 세상의 이치를 가지고 말하는 거에요, 상식적으로 말하는 거에요. 누가 군대 가는데 돈 안 받고 군대 가는 사람 어디 있냐, 누가 포도를 심는데 포도 안 따 먹으려고 심는 사람이 어디 있냐, 누가 양 떼를 기르는데 젖들 짜 먹으려고 기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사람의 상식이다. 내가 지금 고린도교회에 생활비 안 받고, 선교 비 안 받고 내가 자비량 선교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내가 말할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이고, 진짜 사도이기 때문에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생활비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게 정상이다 이런 말이에요.

 

저는 우리 교회의 성도들, 우리 교회가 아니라도 교인들을 이렇게 쭉 보면은 그저 자기 세계에 갇혀서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 너무나 많아요. 여러분 오늘도 정말 우리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지고,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니면서 많은 자유를 얻는 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상식적이어야 되요. 그런데 그 상식만 있어서 되느냐, 그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말을 하는 거에요.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않느냐, 모세 오경은 교회에 신앙인들의 헌법입니다. 이 율법이라는 것은 신명기의 법을 말해요. 그래서 신명기 25 4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거기에 보면은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입에 재갈을 채우지 말라, 이렇게 해 놨어요. 그런데 이 말씀을 지금 가지고 말을 할 때에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그 율법을 줄 때에 소가 염려 되어서 그 율법을 주었냐,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소를 위하여 염려하시느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을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다. 여러분 교인들이 왜 상식적이지 못한가 하면은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믿어요.

 

4. 소에게 재갈 물리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이 소를 염려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비판을 받는 것이나 어떤 일이 있을 때에 언제나 내가 그것을 판단할 때에 이것이 얼마나 상식적인가, 상식 선에서 판단해야 된다.

 

모세오경에 분명히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재갈을 물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말을 문자적으로 보면은 곡식 가는데 소에게 재갈 물리지 말라, 하면서 그것 물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 말씀을 지금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그것은 하나님이 소를 염려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은 그 말씀을 보면서 너희들이 예수 믿느냐, 너희들 직원에게 열정페이 요구하지 말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라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교회에 다니면서 농사 지을 때에 곡식 떨 때에 소에게 재갈 물리지 않는 것, 그게 신앙인의 표시면은 얼마나 웃기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면은 자기가 회사를 할 때에 열정페이 요구하면 안 되요. 저는 교회도 지금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얼마나 교인들에게 열정페이를 요구합니까, 옛날에 교회가 정말 목사님 사례를 주기도 힘들 때에는 그게 참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교회는 일년에 수십억 수백억 남는데 목사님은 뭐 어디에 다니면 비즈니스 타고 뭐 다하면서도 교인들에게는 사례 받지 말고 헌신해라. 이런 말씀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말씀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지금 형편이 안 되어서 제가 그렇게 못하지만은 제가 벌써 몇 년 전에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지난주 저 지난주 우리 1/4분기 회개 보고 드렸지만은 우리 교회에 십일조, 우리집 헌금 하는 분들이 한 30% 정도니까 못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가대를 하거나 교사를 하거나 구역장 하는 사람들은 참 힘이 들고, 또 나는 여러 가지 형편이 안 되어서 생업 때문에 못할 때 미안하잖아요. 왜 그래요? 그것은 이런 말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에요. 저는 정말 수고하는 지휘자나 반주자나 성가 대원들에게도 교회가 여유가 있으면은 남 줄 것 뭐 있어요, 주지요. 그 다음에 받은 사람이 내가 그것 가지고 내 도움이 안 되면 다시 헌금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의 표현이지 교회가 그것을 요구하면 되지 않는다 이런 말이에요. 어느 것이 상식적이에요? 우리 사회가 여러분 정말 어떤 많은 자기 직원들에게 열정페이를 요구하면서 사장은 흥청망청 쓰는 사회 속에 교회가 하나님 복 받았다, 참 얼마나 비상식적인 거에요.

 

교회는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 회사 가서는 또 더 많이 주라고, 모순된 거지요, 왜 그런가? 성경을 잘 몰라서 그럽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비판을 받는 것이나 어떤 일이 있을 때에 언제나 내가 그것을 판단할 때에 이것이 얼마나 상식적인가 상식 선에서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은 목사님에게 물어야 되요. 좀 상식인데 이상해, 이러면 목사님에게 물어서 이 상식이 맞느냐 성경적이냐 물어야지, 여러분들이 뭐 큐티 하고 성경 보면서 성경 문자 이런 것은 신학적 훈련이 안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잘못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사도로서 생활비를 받아야 되느냐 안 받아야 되느냐 이것을 가지고 시비 거는 그들에게 먼저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신명기의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하면서 그 신명기의 말씀의 의도가 소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 것이다.

 

5. 성령이 임하시면은 무엇이 탄생하는가 하면은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교회를 만드셨다. 옛날에 혈연적 가치관 연고적 가치관이 파괴 되어지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임을 아는 그런 가치관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땅끝까지 이르도록 증인이 되라.

 

그래서 내가 당연히 생활비와 사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데, 그 다음에 또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제가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예수 믿으면은 복 받습니다 먼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예수 믿어서 복 받은 사람이 많습니까, 안 믿은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 많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시라고, 저는 뭐라고 그래요? 예수 믿으면은 가난해도 비굴 해지지 않습니다. 부유해도 오만 해지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 상식 선입니까, 성경이 왜 그런 줄 아세요? 성경을 제대로 알고 믿으면은 가치판단이나 선택이 달라져요. 여러분 제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

 

문자로 보면은 성령 받으면은 큰 능력을 받아 가지고 손수건만 흔들어도 병이 낫는 능력이 생긴데, 기도만 해도 축복을 받는 일이 생긴데, 바울 봐라 이런다고요 문자 주의로. 그런데 그 말씀이 전체의 성경의 맥락에서 보면은 성령이 임하시면은 무엇이 탄생하는가 하면은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교회를 만드신 거에요. 이 지상의 그 어떤 종교 기관이나 모임도 없는 희한한 공동체가 만들어졌는데, 그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하면은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달라진 거에요, 성령이 임하시면서부터. 어떻게 달라졌는가, 내 가족과 자기만 알든 사람이 타인의 가족도 이해하는 사람이 된 거에요.

 

그래서 권능이라는 두나미스는 다이나마이트의 원어로서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네가 가지고 있었든 옛날에 혈연적 가치관 연고적 가치관이 파괴 되어지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임을 아는 그런 가치관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땅끝까지 이르도록 증인이 되라 이런 말이거든요. 여러분 이런 교회 제가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성령 받으면은 우리 교회가 좋은데 주님의 교회가 안 좋으면은 그것은 선택해야 할 일이 아니에요. 성경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된 말씀인데요. 저도 시차 즉응도 안 되고 해서 어제 한시 시작하는 축구는 아주 자연스럽게 봤어요. 세시에 잤다가 알람을 평소와 같이 네 시 반에 해 놓았다가 한 시간 반 자고 지금 설교하는데 아이구 일찍 잘걸 좀, 인간적 생각이지요.

 

사도행정 1 8절에 말씀이 나를 탁 지배하니까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은 그래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서 죽었는데, 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진 것에 대한 또 다른 위로를 받는 것이 신앙의 삶이에요. 성령이 오신 목적이 그런 것이다 이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은 여러분들의 자녀가 좋은 대학 간다고, 서울 대학 가서 한번 조사해 보세요, 기독교인이 많은지, 비크리스챤이 많은지, 예수를 믿고 난 뒤에 내 자녀가 서울 대학에 떨어졌는데 기분 나빠요, 그게 육 적인 거지요,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설교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받아 드리는 순간 내 아들이 떨어진 그 자리에 누군가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내 아들 떨어진 것에 대한 위로를 받는 것이 성령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이 말입니다.

 

6. 내 권한이 능력이 아니고, 내 학벌, 재물이 능력이 아니고, 주님이 나에게 능력이기 때문에 나는 가난에 처하였어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으면은 그 죽음과 아픔에서 자유가 일어난다.

 

얼마나 말씀을 지금 왜곡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앞에 예수 믿으면은 부자 되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부해도 오만하지 않게 된다고 하는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기도 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만 주시면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 율법을 가지고 곡식 밟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거에요. 그 말씀이 뭐냐, 그 앞에 보면은 나는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빈부에 처할 줄도 알아, 이랬다고, 너희들은 돈이 능력이고, 너희들은 학벌이 능력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이기 때문에 이 내 능력이 아니고 학벌이 능력이 아니고, 재물이 능력이 아니고, 내 권한이 능력이 아니고, 주님이 나에게 능력이기 때문에 나는 가난에 처하였어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난할지라도 부자 욕 안 해,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이기 때문에 내가 부자라고 오만하지 안 해요. 못했다고 무시하지 안 해요. 여러분 이런 가치판단이 정말 제대로 되어야 되요. 저는 두 가지 문제에요, 상식이 없고, 또 하나는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갔다 붙이는 거에요. 왜 신학적 훈련이 없는 교인들은 그래도 되지만은 목사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여러분들이 정말 우리 교회 다니면서 먼저 상식적으로 판단 해보시고요 그래도 갸우뚱 하거든요 수요일 날 제가 오픈 해 놓고 있잖아요, 목사님 제가 지금 이렇게 했는데 상식적으로 이상합니다, 성경적으로는 어떻습니까, 물어서 가치판단하고 선택해 나가면은 여러분들의 삶의 신앙의 연조가 더해 갈 수록 자유가 일어나고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평강을 맛보게 되어진다고요. 지금 바울이 지금 그 말씀하는 거에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사도권의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그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말씀 드리는 거에요. 예수 믿으면 병 낫는다고요, 예수 믿고 죽은 사람도 많아요,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 됨을 알면은 목사도 병 걸리면은 두려워요,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으면은 그 죽음과 아픔에서 자유가 일어나요. 여러분들을 얽어 매는 많은 것들에서 자유가 일어난다고요.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어야 할 이유가 그것이에요. 우리 교회의 온지 얼마 안된 성도가 저보고 그래요, 우리 교회 오기 전에는 자기가 늘 차 타면은 극동방송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는데 우리 교회 와서 설교를 듣고는 늘 그냥 뻔한 소리 하는 그 소리가 싱거워서 못 듣겠다는 거에요.

 

7.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바울의 모든 가치는 복음의 훼손이 일어날까 봐 교회가 교회다워 지지 못할까 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질까 봐.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한 것은 몇 군대 안 되고 여기 한번이다.

 

진리는요 어떤 위대한 사상하고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질이 다른 거에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나 그 누구도 뭐 인간적으로는 존경하겠지요, 차원이 높으니, 그런데 그것은 질이 다른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정말 이런 선택을 해 나간다면은 여러분들의 삶 속에 정말 많은 자유가 일어나고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을 때에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그 다음에 지금 하는 이야기가 여러분 그 말씀 전에 한가지 더 말씀 드리면은 참 답답해요. 사람들은요 너무 왜곡이 많아요, 어떤 분들은 아이구 내가 기독교 TV 보니까 어떤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말씀하시는데 이런다고.

 

자기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일반 방송국에는 정신과나 어떤 의사가 와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인 줄 알거든요, 사실은 우리 이택영 장로가 전문가인데 ㅎ ㅎ 와 가지고 또 오셨을 때는 반듯이 출연료 주거든요. 기독교 방송은 설교 한번 나가면은 자기가 많은 돈을 내야 되요.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올수록 돈을 많이 내야 되요. 유명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누가 말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말이 정말 복음적인가, 정말 복음적이라면 그 말씀이 정말 상식적이면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유익이 되는가, 여러분들이 이런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면은 여러분들의 신앙이 여러분들을 억압하게 되어지고, 교회는 이상한 교회가 되어져요. 세상사는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아요. 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복음도 없고 상식적이지도 아니하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 겁니까, 그 다음에 이런 말을 해요.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이것은 다음주일 할거에요,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주의 종은 신령해야 돼, 그런 말 아니에요. 내가 너희에게 설교를 해서 성령을 나누어 주었는데 내가 생활비 받는 것, 그것을 과하다고 하느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12절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나는 고린도교회를 개척했어, 개척도 안 하고 예루살렘에 어느 날 갑자기 온 사람도 생활비 받고, 베드로도 생활비 받는데, 내가 그런 것 받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었는데 내가 왜 안 받는 줄 아느냐, 이런 말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다.

 

바울의 모든 가치는 복음의 훼손이 일어날까 봐 교회가 교회다워 지지 못할까 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 질까 봐, 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어 지는 것도 자기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고, 그래서 계속해서 하는 말이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구약성경의 너희 이스라엘이 1,400년 동안이나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당연히 교인들이 받치는 헌금을 가지고 먹고 살지 아니했느냐 이런 말이에요. 구약만 그런 것이 아니고, 14절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다.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한 것은 몇 군대 안 되요 여기 한번 나와요.

 

8. 고린도 교회에는 내가 안 했지만 빌립보 교회에서는 선교비를 받으면서 선교하고 목회했다. 왜 빌립보 교회는 복음의 동지였다. 내가 자랑하는 주님 자유롭게 하여 주신, 그 주님이 선교비 받느냐 안 받느냐 옳고 그름 따지다가 교회 안의 왜곡으로 훼손 당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언제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가, 예수님이 제자를 파송 하면서 그랬잖아요. 전대를 가지지 말고, 뭐 이런 이야기 하잖아요, 두벌 옷을 가지지 말고, 그런데 너희들 대접 안 하면 그 집 앞에서 신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이것을 청빈하게 전하라 이런 말 하면 안 되요. 예수님의 그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살아야지 세상의 일을 하면서 하다 보면은 그 일에 전념 못해 이런 말인데요,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그래서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이것이 뭐냐 하면은 내가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리라고 하는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는 것은 베드로와 같이 쓰지 아니한 것은 왜 안 했느냐, 지금 여기에 많은 헬라의 생략이 생기는데요, 고린도 교회에는 내가 안 했지만은 빌립보 교회에서는 선교비를 받으면서 선교하고 목회했거든요. 왜 빌립보 교회는 복음의 동지였어요.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복음을 오해 해 가지고, 아볼로파, 바울파, 파벌이 생기니까 혹시라도 내가 이것 받으면은 내가 전하는 복음이 돈 때문에 전하는 것이라고 공격하고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안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많은 교인들 기독교 교인들이 청빈하고 검소한 것이 신앙인의 모습인가, 그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천교도에요. 형편에 따라서 사는 거에요. 빌립보 교회는 선교비 생활비 받았고, 고린도 교회는 복음의 왜곡이 오니까 안 받았든 거에요. 저도 우리 교회에 초창기에 지금 임대료 내기도 힘들고 어려울 때, 생활비 한번 안 받고 생활 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2백 만원 받고 했어요, 왜 권리가 없어서요, 교회를 세워야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 받으면서도 목회 활동비 밥 사고하는 것 전부 대학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좀 남은 것 가지고 썼어요.

 

지금은 우리 교회가 되니까 목회 활동비도 정해서 써요. 왜 내가 그래 안 쓰니까 자기 의가 안 되더라고, 나는 주님을 위해서 생활비 한번 안 받고, 생활비 사는 것 이것이 복음이 아니라는 거에요 바울에게는.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데 그 다음에 거기에 보면은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다, 나도 베드로와 같이 선교비 받고 생활비 달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상식적이고 율법적인 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이야기 했든 것은 안 받는 내가 의로운 것도 아니고, 받는 베드로가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베드로 같이 대접해 달라고 이런 말 하지 마라, 그러면서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마지못해서 한다는 거에요.

 

왜 복음의 손상이 옴으로,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자기 합리성을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전하는 복음의 손상이 올까 봐 한 말인데 내가 죽겠다 이런 말 안 하고 목회할 수 있게 해 달라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바울은 선교비 안 받고, 전도하는 것이 자랑 이런 말이 아니에요. 내가 자랑하는 주님 나를 자유롭게 하여 주신 주님, 그 주님이 선교비 받느냐 안 받느냐 이 문제를 가지고 옳고 그름 따지다가 훼손 당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거에요. 많은 왜곡이 교회 안에 있어요. 지난주일 여러분들에게 와서 설교했든 목승욱 목사 우리 노회의 나이도 어리고 목회 경륜도 저보다 짧아요. 굉장히 외고집인 사람이었어요.

 

9. 성경이 말씀하는 바가 과연 상식적인 생각에서 합당한 것인가, 보면은 모든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달라진다, 선택이 달라진다. 천하보다도 한 생명을 귀하게 여겼든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살아가는 삶이 참된 예배고 참된 신앙인이다.

 

4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 노회 목사님들 공부 했는데 열매는 그분 한 분이라고 봐요. 그 공부하면서 5 5일 날 제가 저 양수리 강변에서 목사님의 그런 그 외고집 자기 독선을 다 이야기를 다 해 주었는데, 그날 이후로 자기가 자유와 놀라운 변화가 있다면서 이분이요 내가 볼 때에는 내가 존경한다고 그래요 요즘. 너무 너무 겸손해요. 아마 여러분들이 보아서 알 거에요, 나보다 더 욕심이 없이 타인을 배려해요, 그런데 일부 노회의 목사님들은 그분을 위선자라고 그러고요, 그분을 욕을 많이 해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그랬어요, 목 목사님이 이천 명 이상 당회장 이었으면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존경 받는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50명도 안 되는 교회의 목회를 해요. 그러니까 무시하고 그런 소리 듣는다고. 나는 남들이 보는 외모를 보지 않고, 복음으로 인하여 안에 있는 목사님을 보기 때문에 내가 비록 나이도 많고, 목회 경륜도 많지만 목사님이 나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은, 이제는 내가 목사님 존경한다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제가 본다고요. 여러분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 거에요. 내가 믿는 것이 진리가 아니고, 진리를 믿어야 되는 거에요, 내가 진리를 믿기 위해서는 언제나 내가 보는 것이 상식적인가, 성경에 문자적으로만이 아니라고 그 성경이 말씀하는 바가 과연 상식적인 생각에서 합당한 것인가, 보면은 모든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달라져요, 선택이 달라져요.

 

여러분 그 선택의 기준은 사람이에요. 저는 우리 교회의 어떤 일보다 교회 성장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교회가 중요해요. 우리 교회 없어지면 어때요. 다른 교회 우리 교회 때문에 다 망한다면은 차라리 우리 교회 없어지고, 교회 한국 교회 전체가 이익이라면은 그길 선택해야지요. 여러분들의 가치판단이 복음으로 인하여 이런 변화가 좀 있었으면 해요. 오늘 오시면서 여러분들이 교회 얼굴 마당이 확 달라졌으리라 봐요, 밤에 보면 더 아름다워요. 이미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박영수 집사 손설희 집사 다 헌신한 건데요, 손설희 집사 어머님이 괴산에서 농사를 짓는데 허리가 이렇게 굽어서 펴지지를 않아요, 평생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그래서 딸 사위가 어머니 허리 펴 드리려고 수술비 놔 두었든 거에요.

 

서울에 유명한 병원 다니면서 어머니 수술해서 이제 허리 펴고 살수 있도록 해 드리려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에요. 그것 가지고 헌신한 것인데, 그 헌신보다도 여러분 이것 아셔야 되요. 제가 야 우리 교회의 카페의 밥 먹고 이러는 것이 참 답답하고 이래서 이것 홀딩도어 해서 툭 터면은 좋겠다는 소리를 지금 3-4년째 했습니다. 그런데 일반 재정이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안 했든 거에요, 못했든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언젠가는 하시겠지 했더니만 이런 일이 생긴 거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의 여러분들에게 제가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지만은 여러분 한강에 물 푸듯이 돈 나는 것 아니잖아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에요.

 

저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러분들의 삶이 부요롭고 힘들지 않는 거에요. 3년을 기다리니까 여러분들이 힘 안 드리면서 해져 나가는 거에요. 할 일이 참 많이 눈에 보여요 저는, 그러나 하늘에서 돈이 떨어집니까, 여러분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서 하는 것인데, 좀 불편하면 어때요. 또 하나님이 이런 일들이 하나하나 우리 교회 역사에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어요. 그 가치판단이 이 말씀 때문이에요. 여러분 누가 말을 했느냐,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보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 것이 얼마나 상식적인가, 그 상식적인 말을 가지고 또 말씀의 문자를 가지고 대입 하지 말고요. 정말 하나님의 마음의 말씀으로 보게 되면은 안 하면 되요. 때가 되면 하나님이 하셔요, 그러면 힘들지 안 해요.

 

내가 하려고 하니까 교인들 힘들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나의 모습이 여러분들의 가치판단에서 내가 한마디 말을 하면은 저 사람의 명예가 얼마나 손상이 될 것인가, 내 그 어려움에 빠져 나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사지에 넣는 일들이 얼마나 많아요. 예수 믿는 것은 그저 교회 와서 예배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이것 아니에요. 그 속에 무엇이 담겨야 되는가, 천하보다도 한 생명을 귀하게 여겼든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살아가는 삶이 참된 예배고 참된 신앙인이에요.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면은 선이고 마음에 안 들면 악이라고 판단해요. 나에게 이익이 되면은 좋은 사람이고 손해가 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영이 있으면은 그것을 넘어서게 되어져요.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당회가 헌금을 상대적인 액수로 평가하지 않고, 절대적인 가치로 보면서 과부의 두렙돈을 귀히 여겼든 주님의 마음을 소유한 당회가 되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목사님의 업적이나 교회당을 불리는데 힘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듦을 볼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래 오셨지만 우리 당회가 더욱 성도들의 삶을 살필 수 있는 당회가 되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자기가 믿는 바가 진리가 아니고 성경을 문자 주의에 빠져서 종교 원리주의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성경의 원래의 의미를 알아서 세상에서 그 어떤 사상과 어떤 철학가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말씀 로고스를 듣는 것을 기뻐하고, 그 말씀에 의해서 자신을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누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있음으로 말미암아 더웁게 하라 평화롭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배부르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더웁게 해주고 배부르게 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평안을 땅에서도 맛보는 교회를 세워 나가는 하나님의 선물인 예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을 하여도 취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우리의 삶의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허락해 주셔서 가난하다고 비굴 해지지 말고, 부하다고 오만하게 해지지 말고, 평안하다고 이 땅에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생각하지 않고, 어렵다고 주님 원망하지 않는 그런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도록 복음이 이들의 가치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이 땅에 버려 두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도록 선택하여 불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 내주 교통하심이 자신이 믿는 바가 진리가 아니고, 진리를 믿음으로 자유케 되어지며, 세상의 빛이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