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소명 (고린도전서 9: 16-18)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7. 5. 18:46

 

 

 

 

 담임목사 김종웅

 

소명

고린도전서 9: 16-18

2019 6 30일 주일 낮 예배

                                                                                                                                               No. 424

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아멘

 

복음을 듣는 것을 가장 복되고 귀하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 구원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이 왜 복된 소식인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소명이다.

 

저도 어디에 가고 하면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를 유심히 들으면서 갑니다. 그럴 때 참 화가 날 때가 많이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사술과 같이 아니면 덕담 수준의 말씀을 전할 때 자 저 말씀의 영혼이 살아나겠나, 저는 예수를 믿고,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복음을 접하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 가장 복이고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교회 와서 우리 교회에서 김종웅 목사의 설교나 말이 아니고, 복음을 듣는 것을 가장 복되고 귀하다 하는 생각으로 교회에 다닌다면은 여러분들의 삶이 분명히 신앙의 승리와 함께 이전에 맛보지 못했든 구원을 맛보는 귀한 은혜가 있을 줄 압니다.

 

1. 예수님이 어떻게 구원을 하셨으며 이루신 구원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은 그 천국의 사람으로 만드셨고, 그런 사람을 변화시켜서 그 천국을 땅에서도 맛보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복음이라는 것이 뭔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복음인데요,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어요. 그럴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사업이 잘되고 병 낫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요,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어요. 당연히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은, 예수님이 어떻게 구원을 하셨으며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믿어야 되요. 우리가 이런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이 이전과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에 천국에 가기 위해서 믿는데, 지금 내 모습 이대로 천국에 갔을 때 그게 천국이 될 것인가?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교인들의 모습이 천국에 있을 때 그 천국이 천국일까? 그렇지 않다면은 잘못 믿는 거에요.

 

오늘날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 천국이 될 것인가,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래 말씀 드리잖아요, 예수 믿고 부자 되는 것, 예수 믿고 병 낫는 것,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일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이용하면서 살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하거나 사람을 사귈 때에도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이것이 선악의 기준이에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상에 사람을 섬기도록 만드셨어요. 성령님을 보내어 주어서, 저는 목회를 하면서 언제나 내 싸움은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에 올 때에 저 사람을 목회에 이용하는 목사인가? 저 사람을 섬기는 목사인가? 그 싸움이 있어요.

 

인간적으로는 이용해서 교회를 잘 사용하고 싶더라도, 그러면은 그런 목사 그런 목회라면은 천국에 갔을 때 그게 천국이겠어요? 여러분들이 누구에게나 섬기려고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겠어요? 천국에 갔는데 사람보고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내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그러면 지옥이지요. 예수님은 그 천국의 사람으로 만드셨고, 그런 사람을 변화시켜서 그 천국을 땅에서도 맛보도록 하신 거에요. 영적인 싸움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되요. 직업을 선택하고 무엇을 할 때에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 본능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거듭나게 되면은 섬기려고 하는 마음이 내 마음 속에 싹터요. 예수님이 그런 구원을 이루셨는데 여러분들이 그래 살면은 분명히 이 땅에서는요 상처받아요, 목회도요 교인을 이용해서 종교적인 목적을 종교적인 업적을 달성해 가려고 하는 목사들은 상처 받을 일이 없어요. 그러나 진심으로 교인을 섬기고 교인이 잘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은요 꼭 상처 받아요. 여러분들 사업도 마찬가지에요. 사업을 하실 때에 여러분 직원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자기 거래처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내가 이 사업을 통해서 내 직원들이 잘 되고, 내 거래처가 복되게 하려고 사업을 하고, 직장 생활도 그래 하면은요 분명히 상처 받아요.

 

2. 운명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운명을 거스르면은 파멸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의 이 사명은 전하지 아니하면은 내 구원이 취소된다는 생각을 했다.

 

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이용하거든요, 내 본심과 상관 없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고, 자기가 좀 감정에 손상이 오면은 그 다음에는 본색을 들어내서 그래서 우리가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꺼꾸로 살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왜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야 되는가, 예수님이 왜 복된 소식인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적어요. 초림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지만은 재림의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그래요, 분명히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요, 우리가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나, 우리의 삶의 모습에 대한 분명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사실,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받은 그 구원,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 그래서 남들보다 더 고난의 길을 걸어갔어요 고린도전서에 보면은, 그는 배고프고 헐벗고 풍랑을 만났으며 강도를 만났으며, 자기가 개척한 교회 교인들에게 사도권에 대한 시비가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는 그러한 구원을 위해서 자기 길을 포기하지 안 했든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본문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은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된 선교사들이 와 가지고 자기네들은 베드로에게 파송을 받았다고,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을 받았다고, 자기를 자랑했어요. 지식을 자랑 했어요.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해요.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복음을 전해도 나는 자랑 할 것이 없다. 왜냐 그것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여기에 이 부득불 이라는 말은 굉장한 이교적인 용어에요. 헬라 세계를 한마디로 규정짓는 단어가 부득불 이에요. 아난케[Ananke]라는 말인데 헬라시대의 사람들은 운명 속에 살았어요, 운명주의 속에, 숙명주의에 삶을 사는 자들이 헬라인 들입니다. 그 이교적인 용어를 가지고 자기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 그 이교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절실하고 그만큼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운명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운명을 거스르면은 파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운명 숙명에 따라서 사는 것이 순리에 따라서 사는 것이 인생의 복된 생애고, 평탄한 생애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거스르는 순간 자기 인생은 파멸이라는 겁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의 이 사명은 전하지 아니하면은 내 구원이 취소된다는 생각을 했든 거에요. 저는 왜 교회가 생명을 잃어버렸는가, 잘못된 교리 때문입니다. 왜 잘못된 교리가 생기는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주의에 빠져서 그래요. 네 입으로 시인하면은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은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시인만하게 하는 거에요.

 

그러나 그 당시에요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는 순간 그 사람은 사회에서 열외 되는 사람입니다. 순교를 당할지도 몰라요. 그런 상황 속에서 네가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이랬는데 그 상황은 없이 말만 하면 된다는 거에요. 성경은 네가 그러한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그러한 마음으로 네가 사업을 하고 직장 다니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그러한 마음으로 목사가 되지 아니하면은 너의 구원은 취소된다. 오늘 본문이 그 말이에요.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세상의 모든 사람은요, 자기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라 그러고, 못해 주면은 나쁜 사람이라 그래요.

 

3.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서 내가 죽어 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내 안에 성령님이 있으면은 섬기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목사는 여러 사람 대하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누가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할 때에 목사님 그 집사님 얼마나 좋은 줄 아세요 하면은 아 집사님에게 잘해 주는군요, 이래 생각해요. 그 집사님 얼마나 몹쓸 집사님인 줄 아세요 하면은 지금 당신에게 못하는군요. 죽일 사람이라 해도 어떤 사람은 와서 그 사람은 천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게 인간이에요. 왜 그렇게 되는가, 전부 사람을 이용하려고 해서 그래요.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서 그래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서 내가 죽어 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내 안에 성령님이 있으면은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용하고 싶다 하더라도 섬기려고 해요.

 

여러분 우리나라도 그래야 되요. 욕먹으려고 해야 되요. 국회의원 떨어지려고 해야 되요. 그런 사람이 진짜 부름 받은 자에요. 그래서 여러분 예전에는 목사가 되려고 하면은 신학교 갔을 때 처절하게 삼 년의 싸움이 그 싸움이에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왔는가, 어떤 목사 보니까 유명한 목사 보니까 교인들에게 존경 받고, 뭐 비즈니스 타고, 뭐 그래서 나도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 일도 하고, 세상의 영광도 받고 그래서 온 것 아닌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가, 예전의 목사들은요 그 부르심과의 싸움이 있었어요. 왜 구원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해요,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받으려니와 이 말은 뭔가 하면은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사도가 되었다면은 당연히 보수를 받으려니와,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의 직분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어서 내가 되려고 되었다면은 내가 이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을 받으려고 하지만은, 사람들이 내가 진심으로 섬기고 진심으로 했는데, 몰라줘 그래도 나는 그만둬 안 하고, 그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진짜 목사냐 목사가 아니냐는 거기에 있는 거에요.

 

정말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해 주어도 나중에 배신하고 할 때에 내가 뭐 이 짓 거리 할 필요 뭐 있나, 자기가 선택해서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가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에 사업하시는 분들 주일에 행하는 내 설교를 듣고, 직장에서 해 보세요. 여러분들 본심 안 알아 주어요, 이용하려고 해요. 내가 하나님 말씀 듣고, 이게 뭐냐 이런 회의가 수시로 생기지만은 내가 이 사업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하는 것이라 믿을 때에 그것과 상관 없이 자기의 길을 걸어 간다는 거에요. 500년 전 칼빈이 했든 말을 빌리지 안 해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소명이에요.

 

부르심이 없으면은 구원이 없는 거에요. 그 소명은 그 일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이런 마음으로 하라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믿는 것은 어느누구도 소명 때문에 하는 거에요. 국회의원도 그 소명 때문에 하는 것이고요, 기업도 그 소명 때문에 하는 거에요. 진심을 다해서 해 주어도 세상은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내가 그 길 걸어간다고, 독성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아집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속에 이런 독성과 아집은 있어야 되요. 내가 사업 망해도 나는 사람을 이용 안 해, 나는 사람을 섬길 꺼야, 오늘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 믿어 가지고 자기 아들 좋은 대학 가 가지고 좋은 직장 가지고 케이티 들어가고 이러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천국에 바글바글 하다면은 천국이겠어요?

 

4. 내가 손해가 되어도 감정적인 손상이 올지라도, 근본적인 관계의 변화가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구원을 위해서 오셨지만, 재림은 심판을 위해서 오신다.

 

예수를 믿는 이유 때문에 내 자녀가 대학에 떨어졌는데도 그 떨어진 자리에 다른 사람의 자녀가 합격해서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위로 받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천국 아니겠어요. 제 설교가 그런 설교지요. 그래서 복음적이라는 거에요.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 잘 해주는 것은 세상의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내가 손해가 되어도 감정적인 손상이 올지라도, 근본적인 관계의 변화가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지요. 부름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교회 저는 그래 생각해요, 설교 준비하면서 앞으로는 우리 교회의 안수집사나 장로나 권사나 목사가 하는 몇 시간의 강의 가지고 교육 안 해야 되겠다.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그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는 분이 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교인들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고, 자기의 감정에 손상과 자기의 손해가 올지라도 그 사람을 섬기는 그런 사람에게 직분을 주어야 되겠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그 사람의 구원이 취소 되지 않지요.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라 그랬어요. 왜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보수를 바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지만은 나는 이것이 내 운명이기 때문에 안 하면은 여기에 내게 화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참된 선지자들의 구호인데요, 임박한 재앙 앞에서 하는 마지막 절교의 소리에요. 이것 안 하면은 나 지옥에 떨어진다.

 

여러분들이 직업 속에서나 교회의 직분을 그 마음으로 감당해 본적이 있느냐고요, 이제까지는 안 했더라도 이제 이 말씀을 들었다면은 그 다음에는 여러분들 몫이에요. 누구나 죽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확실히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에 구원을 위해서 오셨지만은, 재림은 심판을 위해서 오세요. 이미 그 심판은 시작되고 있어요. 안 죽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여러분 저는 우리나라가 좀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정권 보이면 안 되요. 국회의원이 다음에 당선 보이면 안 되요. 기업가가 자기 기업이 더 잘 되는 것이 보이면 안 되요. 국민이 보여야 되요. 내가 이럼으로 말미암아 누군가가 울지 않는가를 봐야 되요. 나도 사람이에요, 사람을 이용하고 싶더라도, 왜 진심으로 섬겨 봐야 남는 것은 상처거든요.

 

그러나 그길 걸어가야 하는 이유는 내 운명이기 때문이에요. 거스르면은 내 구원이 취소 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기업이나 사람들이요 이말 들어야 되요. 그래서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에 소명 의식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고, 지금 소명 의식 없어요.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자기 아들 어디 가야 월급 많이 받을지, 무슨 일을 해야 얘가 굶어 죽지 않을지, 그것이 전부 우리 선택의 기준이잖아요. 예전에는 안 그랬어요. 저는 우리 주일 학생들하고 가끔 대화를 합니다, 용돈도 주지만.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응 네 엄마가 진짜 거듭났구나, 얘들 보면은요 뭐 의사 판사 뭐 훌륭하게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섬길래요 이런 얘들이 있어요 간혹.

 

5.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 삶이다. 천국은 가서 보상이 아니고 이 땅의 삶이 천국의 상이 결정된다, 바울은 그렇게 생각했든 것이다. 세상에서 사람이 칭찬하고 알아주면은 천국에서 네 상이 없다.

 

예전에 기독교인들은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 생명을 잃어버렸어요. 그 생명이 잃어서 구원이 안 나타나는 것은 할 수 없겠지만 교회가, 오늘날 교회 한국 교회의 모습이 천국의 모습이라면 천국 갈 마음 없지요. 실큰 남들 골프 치러 다니고, 놀러 가는데 나는 주일날 예배 드리고, 내 쓸 것도 못쓰고 마지막이 지옥이라면 얼마나 불행한 삶이에요. 그래서 바울이 18절에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자기 보수가 뭔지 아느냐 이 말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 삶이다. 내가 전혀 보수를 바라지 아니하고 돌아오는 것은 상처만이라도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 주님과 만날 때에 이것이 내 상급이다.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들을 수 없어요. 그래서 성경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그랬어요. 쉼이 있는 잔치에 천국 상급에서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예수 잘 믿고 복 받아서 천국 가서 좋은 자리 차지하면은 그게 무슨 천국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평화는 좋은 관계 속에 있는 사람하고 평화는 아무나 있는 거지요. 원수 된 자와 평화가 있는 곳이 천국이에요. 희락 기쁨이에요. 소유로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그 눈물의 길, 모든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데, 섬기려고 하다가 받은 배신 속에서도 그 길이 운명이라 생각하고, 구원이 취소될 것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면서 당뇨 걸리고 혈압 걸리고, 우울증 걸릴 때 그 삶이 천국에서 입성 할 때에 상급 희락이 더 크다.

 

천국은 가서 보상이 아니고 이 땅의 삶이 천국의 상이 결정된다, 바울은 그렇게 생각했든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 말하지 않았습니까, 황영조가 금메달을 땄을 때에 그가 그 금메달 따기 위해서 땀을 흘린 대가만큼 금메달의 가치가 경정되는 거에요. 그냥 여러분 올림픽 금메달 사서 하나 주면은 그게 무슨 감격이 있어요. 그냥 자기 마음대로 세상에 있는 대로 자기 좋은 사람 좋고, 자기 나쁜 사람 나쁘고,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들마다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면서도 예수 믿고, 거룩 이라고 하다가 천국에 가는 사람이 뭐 기쁨이 있겠어요. 남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성경은 그렇게 말하잖아요. 세상에서 사람이 칭찬하고 알아주면은 천국에서 네 상이 없다.

 

우리 목사님 같은 분 없어, 듣는 순간 내 상은 없어요 천국에. 이것이 교회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나라 정치나 우리 사회에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간다면은 하나님의 나라가 조금 이루어지지 않겠어요. 누가 금메달을 따고, 수억 보상금 받아서 남양주에 카페 멋있게 지었다고 해서 내가 가 보았어요. 마라톤의 누구는 나의 우상이고, 존경할 대상이었지만 안 좋게 보이더라고. 생긴 것 마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봉달이 아저씨 그 많은 보상을 받고도 지금도 매일 5키로 10키로 뛴대요. 달리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거듭나게 되면은 이런 말이 내 가슴에 쾅 와요.

 

6. 본심의 왜곡을 당할 때에도 구원이 취소될 줄 알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예수 믿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구원이고, 그 구원의 길을 걸어가도록 주님은 재림하신다 했다. 배신과 손해를 봐도, 예수님 때문에 용서 해지는 경험이 있을 때 생명이구나 한다.

 

여러분들과 함께 참 우리 김운희 집사님 보면은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교회 오빠 영화 좀 보세요. 지난주 아침마당에 나온 것 내가 봤어요. 부인이 뭐라 하는가 가장 그 피디가 말할 때 가장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들이었대요. 그 불행한 사람들의 일생을 찍은 게 아니고, 가장 불행하면서도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이래요. 그 교회 오빠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영화는 내가 못 봤지만 지금 보려고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느냐, 이러니까 부인이 덤덤하게 하는 소리가 우리에게는 다시 만날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 믿음 있으세요? 어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이길 힘은 거기에 있어요. 오늘 설교를 마치고 부를 찬양 우리 이 땅에 몸으로 태어나, 최용덕 이라고 하는 작곡가에요 복음성가.

 

80년대에 대구에서 활동했는데 제가 그때 대구 있을 때 간증을 들었는데 야 진짜 거듭났구나 나중에 뭐 설암이 걸리고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 들었는데, 그분이 지은 복음성가에요.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씨씨씨 대학생들이 우리나라 복음이 제일 낮은 지역이 해변가입니다. 우리 김영매 권사님이 구룡포지만은 그 포항 구룡포 그 서생 울산 간포 이쪽이 복음이 제일 낮아요. 그래서 포항에서부터 쭉 거지 순례 단이에요 그 사람들은, 돈도 안 가지고, 젊은 애들이 남들 다 캠핑 가는데,

복음 전하고 맨 마지막 날 해운대에 와서 해수욕을 하는데 한 명이 죽었어요. 최용덕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계시로 부른 작사지요. 어떤 이는 긴 인생, 어떤 이는 짧은 인생, 천국이 없다면은 인생은 허무한 것.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너무 값싼 것 같고요, 값싼 구원을 믿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복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입으로만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고 하는 잘못된 교리입니다. 내가 사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내가 목사이든, 내가 장로이든, 내가 집사이든 권사이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는데, 이 부름에 응답하지 아니하면 부름의 응답이라는 것은, 모두다 사람을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보수를 위해서 살아가는데, 보수를 받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본심의 왜곡을 당할 때에도 구원이 취소될 줄 알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예수 믿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구원이고요, 그 구원의 길을 걸어가도록 주님은 재림하신다 그랬어요.

 

처음에 주님은 구원하러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심판하세요. 오늘도 저는 우리 교회의 교인들이 구원이 취소되지 아니한 교인들이 되었으면 싶어요. 이 믿음이 있어야 교회가 평화가 있습니다. 교회 좀 더 크면 뭐해요. 큰일 하면 뭐합니까, 저는 싸우면서 일 안 해요. 안 하면 되지 뭐, , 평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이 가장 복되게 들리는 주일이 되시고, 이 말씀이 여러곳에 여의도의 수많은 재벌들의 빌딩의 회장의 자리까지 소명으로 가득 찬 자들이 이 땅의 지도층이 되었으면. 흑 수저라는 말, 유리 천장 이라는 말, 사라지지 않겠어요? 어디서 듣겠어요, 생명의 말씀인 목사의 설교지요. 이것을 듣고 보상이 아니라, 배신과 실패와 절망 그것이 천국에서 주님 만날 때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아는 자, 이것은 경험 해봐야 되요. 배신 당하고 손해보고, 잠 못 자는 속에서도 예수님 때문에 용서 해지고, 이런 경험이 있어 질 때 이게 생명이구나 하는 거에요. 그저 요만큼 하고 자기 자랑하고, 자기 들어내고,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것은 절대로 이런 맛 못 봐요.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욕심 많고, 죄악 덩어리인 부정한 종이 헌금이 상대적 가치로 보여 지지 않고, 절대적 가치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종교적인 업적보다 교인들의 아픔을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교회의 부유함과 위대한 일보다 교인의 부유함을 기뻐할 수 있는 믿음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예전에는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나에게 좋은 말을 하느냐 나쁜 말을 하느냐, 이것이 선택의 기준이었지만 주님 안에 거듭나고,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섬기는 십자가의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의 동지가 됨을 감사 드립니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주님의 재림과 주님 만날 때 받아야 할 심판 속에 나의 부르심이 운명인 줄 알아서 처음 마음 변하지 않고 그길 걸어감으로 말미암아, 변하지 않는 세상 때문에 자신의 변질을 탓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시고, 이들의 삶이 서로 격려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도록 누룩이 피지 아니하도록 복음의 생명력이 말씀 속에 있게 하시고, 성도들의 심장을 적시는 예배가 되게 하심을 감사 드리오며 학벌 없고 가문 없는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귀한 자녀 삼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려서 하나님적 삶을 살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나의 직업에서나 교회의 직분에서나 구원의 신분에서나 하나님의 부르신 운명 속에 있음을 알아서 이 사명 감당하지 아니하면은 임박한 재앙 앞에서 부르짖는 마지막 절교의 소리 네게 화가 있다. 지옥에 떨어질 줄 알아서 배신을 당할지라도 남이 나의 본심을 거스를지라도 아무도 내 의의를 알아주지 아니할지라도 주님 걸어가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천국에 갔을 때에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천국을 맛본 모습이었구나 라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