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그리스도 안에서의 自由者
고린도전서 9: 19-23
2019년 7월 14일 주일 낮 예배
No. 426
19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아멘
○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종이 된 것은, 자유 해야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덕을 세운다는 것은 원문엔 사랑이 교회, 국가, 가정을 세운다는 것. 교회는 평화가 있는 곳이 된다는 것. 바울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같이 된 것은 그들도 예수 믿게 하기 위함이다.
아마 오늘 여러분들이 성경 본문을 읽을 때에도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본문의 말씀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는데 그 해석을 내려놓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석 해주는 말씀 그대로를 좇아 오셔서 여러분들의 삶이 예전보다 더욱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그런 복된 생애가 되어지고, 우리 교회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교회가 되어지고, 또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잘 증거함으로 극한적 이념에 대립이 있는 이 나라가 아, 교회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었어. 이런 간증이 많이 나타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실상의 교회의 모습이나 신앙의 모습을 보면은 그런 Peace maker 의 역할보다는 Trouble maker의 역할이 참 많습니다.
1.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내가 믿는 것을 진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아집과 독선이 많아 보인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뭐라 하는가 하면은 교회는 왜 그렇게 싸우고 교회에 다니면은 왜 그렇게 아집과 독선이 많느냐 이런 이야기를 들어요. 그것은 제가 지금 하는 이야기 중요합니다.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내가 믿는 것을 진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보는 것이 다라고 생각을 해요. 내가 보는 것이 왜곡이 있고 착각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자세에요. 제가 언젠가는 여러분들에게 한번 이야기 했지요. 철길에 서서 요즘은 벌금 냅니다. 쭉 보면은 분명히 보일 때에는 철길은 합쳐 지지마는 가보면 아니에요. 사실과 보는 것이 다르다는 거에요. 어항 속의 물고기를 꺼내어 보면은 보는 것하고 완전히 달라요.
여러분들이 남의 삶이나 어떤 일들을 보는 것, 내가 보는 것이 사실과는 다르다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내가 죄인입니다 이런 자세인데, 그러면서 말로만 죄인이라 그래요. 여러분 죄인이 무슨 말해요, 정말 여러분들이 이제는 진리를 믿고 한국 교회가 진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말 오늘 성경 본문과 같이 19절에 보면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 사람이 교인이야 저 사람은 장로야 저 사람은 권사야, 저 사람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이야, 이런 것은 외형이에요. 진짜로 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저 사람은 교회 다니고 난 뒤에 모든 것에서 자유 하게 되었구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그런 자유가 있었어요. 그러면 그 자유는 뭔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사건을 보거나 어떤 일을 할 때에 내 경험이나 내 생각으로 가치 판단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인간이 어떻게 선악을 판단을 하고, 가치판단을 해요, 그저 여러분들은 가치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고린도전서를 주제로 삼을 때,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이 말씀 가슴에 일년에 새겨야 되요.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들이 살다 보면은 누가 어떻고 무슨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잖아요. 그 많이 들으면은 많은 판단이 생겨요.
지금도 여러분들이 뉴스를 듣고 이러면은 이 나라에 대한 생각 걱정, 뭐 나라가 이래서 되겠나, 지금 군인 하나가 휴대폰 쓰게 했더니만 뭐 1억 8천 만원 도박해서 빚들 지고, 이런 것 아니면은 교만하게 되어져요. 어떻게 나라가 왜 이렇게 가,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에요. 그런 것은 60만중에 한 두 명 있는 일 때문에 그일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는 않아요. 그러면 그 다음에 뭐냐 우리가 그래 살지 말자는 거에요. 교회에도 보면은 우리가 얼마나 사람에 대한 평가 행동에 대한 평가, 판단 많습니까, 그런 것 들을 때에 자기 생각을 판단하지 말라는 거에요. 사랑은 덕을 세운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사랑해야 사람이 덕이 있고, 인격이 있어 이 말 아닙니다.
원문의 뜻은 사랑이 교회를 세운다. 사랑이 국가를 세운다. 사랑이 가정을 세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그 사랑조차도 어려운 사람보고 같이 울어 주고 이런 것이 아니에요. 저 사랑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런 지식 그런 많은 일들을 봤을 때, 내가 그 지식을 내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성령님을 영접하는 것은 영접하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무엇을 보았을 때 무엇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가치 판단하는 거에요. 그래야 가정이 세워 진다는 거에요, 교회가 세워 진다는 거에요. 여러분 한번 생각 해보세요, 교회가 또 세워 지는 것도 많은 교인들이 모이고,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2. 교회가 세워 지는 것은 교회 때문에 국가가 이념적 갈등과 대립이 하나가 된다는 것. 이런 자유 함이 신앙을 제대로, 영접을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은 생겨난다. 하나님이 우리 부모들보다 더 노예 역할 한다. 왜 예수 믿어야 되는가, 노예가 되려고, 왜 그래야 자유가 있다.
교회는 평화가 있는 곳이 되어진다는 거에요. 교회가 세워 지는 것은 교회 때문에 국가가 이념적 갈등과 대립이 하나가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보세요, 어떤 목사는 좌파 목사, 설교 들어 보고 우파, 전부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자유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면은 자유가 일어나요, 또 우리가 좋은 말, 좋은 소리하자, 인간이 어떻게 좋은 소리해요? 저도 인간일 때에는 언제나 내 생각 내 판단이 서는데, 그래서 나에게 좋은 말하면 좋은 사람 같고, 내가 듣기 싫은 말 하면, 싫은 사람이 되어지고, 그건 인간이에요 육신을 가지고 있는, 그런데 거기에 우리는 하나 더 있어야 되요.
바울은 자기에게 싫은 소리하는 사람들 말 때문에, 자기가 그것 때문에 기분 좋고 나빠지지 않는다는 거에요. 이런 자유 함이 신앙을 제대로, 영접을 제대로, 성령의 지배를 제대로, 받으면은 생겨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은 제대로 된 부모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이러잖아요. 자식이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해 주었는데도 부모 원망하고 불평하는 그것 때문에 부모는 기분 나빠 하지 안 해요. 저놈이 언젠가 크면은 부모 마음 알겠지, 여러분 이런 것이 성숙된 자의 믿음이고, 이런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인데, 그저 교회 와서 전도 열심히 하고, 헌금 열심히, 봉사 열심히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것은 종교인으로서의 열심이에요. 여러분들의 생각 가치판단과 선택에 하나님의 생각이 점점 내 생각을 누르고 지배해 가야 되요.
이런 성화가 안 일어나는 것은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겁니다. 바울은 자기는 자유 하나 스스로 종이 되었다. 여러분 종이라는 말보다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번역을 이래 해야 되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 교회는 예수만 잘 믿으면 누구든지 왕 된다 그래 ㅎ ㅎ. 예수 제대로 믿으면은 노예가 되어져요. 노예는요 자기 주장이 있으면은 노예로서 실격이에요. 팔아 버려야 되요. 주인이 뭐라 해도 예 해야 되요. 노예는 혼을 내도 화를 내거나 기분 나빠 하면 그것은 노예로서의 자질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가 사회적인 신분에서 노예 같지만은 그게 우리 부모잖아요.
여러분들의 부모가 여러분들의 말에 따라서 화냈다가 뭐 분노하고 이러면 그게 뭔 부모에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이 우리 부모들보다 더 노예 역할 해요. 왜 예수 믿어야 되는가, 노예가 되려고, 왜 노예가 되어야 되는가, 그래야 자유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이 말에 여러분들의 생각을 지금 접으세요. 노예의 덕목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기 때문이에요. 왜 우리기 이런 삶을 살아야 되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해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다. 여기에 얻고자 함도 원문의 뜻을 모르고는 그렇게 살면은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는 다라고 해요. 저도 석사 과정을 Leadership을 전공했는데 전부 종의 리더십 무슨 리더십 할 때 왜 해야 되는가, 그래야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다고, 이런다고요, 그 말 아니에요.
3.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삶. 모든 것의 가치 평가를 율법에 의해서 가치 평가 하는 것.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주일 성수의 본질을 알면서부터 이제는 그것이 선악의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주일 성수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지지 받으려고 하는 생각 때문에 자기 한 것 다 까먹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 때문에 교회가 시끄러운 거에요. 여러분들이 겸손해야 되는 것도, 남에게 그래야 인정을 받는다고, 그것은 전부 인본주의적인 관점이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지지 받으려고 종 노릇 합니까, 아니에요. 여기에 얻고자 함 이라는 말은 더 많은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들려고, 신앙인 만들려고 그런다는 거에요. 그러면 예수 믿는 것이 뭔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지요. 예수 믿는 게 뭔가 하면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것인 줄 알아, ㅎ ㅎ 그냥 성경 읽는 것인 줄 알아, 예수 믿는 것이 뭔가, 20절에서 23절의 말이에요.
20절에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과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요 말씀이 뭐냐 하면은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이 말을 하고 그것을 설명 하는 게 뭐냐 하면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이랬어요. 과거에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이에요. 그러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이런 거에요.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삶. 모든 것의 가치 평가를 율법에 의해서 가치 평가 하는 것. 이 말을 좀 더 여러분에게 쉽게 알아듣게 이야기 하자면은 교회에 다니면은 주일 성수라는 율법이 교회의 룰이 있잖아요.
그러면은 교회에 다니면은 그 다음부터는 사람을 교회에서는 무엇을 평가하는가 하면은 저 사람이 주일 성수하느냐 아니냐 이런 것을 가지고 선하냐 악하냐를 판단해요. 그게 유대인이었어요. 왜 유대인들은 언제나 모두다 종교적인 율법 아래서 사람의 선악을 판단하는 자였다는 거에요. 그런데 바울이 이제는 자기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아닌데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같이 된 것은 그들도 예수 믿게 하기 위함이다. 이 말씀을 잘 이해 해야 되요. 우리 한국 교회가 이것을 잘 모르니까 유대교와 같은 거에요. 여러분 교회에 다니면은 그러잖아요 목사님들이 주일 성수 안 하면은 장로가 되어 가지고 주일 성수 안 해, 권사가 되어 가지고 십일조도 안 해, 전부 율법 아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안 하면은 죄책감에 자유가 없어요. 좋은 신앙인은 당회나 목사님이 하는 것에 결심만하면 우리는 따라가고 순종한다, 다 율법 아래 있는 거에요. 이 말씀이 뭐냐 하면은 내가 이제는 사람을 주일 성수 하느냐 안 하느냐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지만은 나는 주일 성수를 하는 사람들과 같이 그것을 지키는데,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주일 성수의 본질을 알면서부터 이제는 그것이 선악의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주일 성수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노예가 될 때 그래야 되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크로노스 시간에 주일날 와서 예배 드리는 것 이런 것이 주일 성수가 아니에요, 옛날에는 그랬어요.
4. 신앙을 제대로 가지게 되면은 모든 자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가치판단 내가 서로가 형제이지만은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에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다, 정죄의 수단만 있었다.
주일날 되면 밤 12시만 딱 되면은 토요일 날 제 어머니는 아무것도 못 먹게 했어요. 뭐 물건도 못 사게 했어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뭐냐 내가 죽도록 일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데, 쉬면서 일할 수 있는 내 일의 분복을 누릴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는데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같이 주일 성수 인간이 정해 놓은 그 예배의 틀을 나는 깨트리지 않는다. 우리 교회의 목회의 방법이 이런 것이잖아요. 왜 제가 복음 가지고 싸웠거든요, 신학 가면서부터. 여러분 정말 여러분들 속에 이런 자유 함이 있으면은 참 예수님 감사합니다. 바울은 과거에 유대인으로서의 율법 아래 있어 가지고 모든 사람을 율법을 지키느냐 아니냐 이런 것을 가지고 선악을 판단했고, 사람의 가치를 유대인 율법 아래 있는 자는 가치가 있고, 율법 아래 없는 자는 인간이 아니고, 개다 이렇게 생각했든 거에요.
그러나 유대교를 자기가 그렇게 안 하는 것은 그들도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있는 이 자유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발걸음 닫는 곳마다 평화가 일어나도록. 지금도 여러분 유대교는 세상의 화약고잖아요. 아랍하고 전혀 하나가 되지 못하잖아요. 왜 자기네들만이 진리이고, 저 아랍인들은 개와 같은 쓸모 없는 자들이거든요.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도 일본하고 이런 갈등에 있어서 인간적으로는 여러분들이 분노가 일어나고 이러지만은 여기에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 신앙을 제대로 가지게 되면은 모든 자와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가치판단 내가 보는 것에서 자유가 일어나야 되요.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 하는 데에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그것에 매이지 아니하고 변화 되어야 되요.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아니오 도리어 그리스도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다.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율법이 없는 자들, 이런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에요, 비 그리스도인 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기독교의 어떤 예법이나 규칙의 전혀 지배를 받지 않잖아요. 여러분 그런 자들에게 내가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오,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다.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뭐냐, 우리가 모든 예법이나 규칙을 실행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눈, 엄마의 눈으로 그 제도를 그 법을 실천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에요.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하신 일이 뭐에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를 가족이 되게 하셨고, 그 가족도 형제가 아니라, 서로가 형제이지만은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었어요.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에 무엇이 없었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어요. 정죄의 수단만 있었다고요. 판단의 수단만 있었다고요. 오늘도 여러분 정말 이 말씀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사람을 보고, 뭔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저 사람이 아버지라면은, 저 사람이 엄마라면은, 그 아버지 엄마라 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정상적이고 제대로 된 엄마 아버지에요. 왜곡된 엄마 아버지의 시각 말고요. 오늘도 제가 이렇게 설교 하니까 우리 아버지는 안 그런데, 그 아버지는 왜곡된 아버지에요.
5. 창조주의 마음이 있는 가장 인자와 선하심이 많은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규범들을 가지고 실행하고 판단하라. 누가 나에게 싫은 소리해도 싫은 소리하는 사람을 자식으로 보라, 그러면은 분노할 일이 없어진다.
나를 존재하게 하셨고, 나를 위하여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 준 그 창조주의 마음이 있는 가장 인자와 선하심이 많은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규범들을 가지고 실행하고 판단하라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은 교회가 고린도 교회와 같이 자기가 믿는 것이 진리가 되어 가지고 서로 내가 옳니 네가 옳니 싸울 일도 없고요, 내가 잘했니 못했니 싸울 일도 없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서 분쟁의 세상 속, 지배를 해 나가는 로마와 헬라의 세상 속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거에요. 죽은 문자로 만들어서도 안 되요.
오늘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이고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가치판단에서 그렇게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 교회는 평화가 넘쳐 나고 우리나라가 더 평화가 넘쳐 나는 나라가 되어져요. 천국을 경험하게 될 거에요. 그리고 22절에도 보면은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이러니까 교회는 사회적인 약자의 편을 들어야 돼, 그래서 저 동성연애자들 성소수자들도 교회가 해 주어야지 누가 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해야 돼, 그런 게 아니에요. 약한 자들은요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은 세상 끝날까지 존재한다고 했어요.
예수님은 사회적인 약자의 편을 드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 의가 생기는 겁니다. 저 교회 봐라, 쌀 나누어 준데, 뭐 나누어 준데, 그러면서 자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율법적인 판단을 다 해 버리고, 그 시선 때문에 무리해서 모든 것을 해 나가고, 샬롬이 없지요. 여기에 약한 자라는 것은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믿음이 약한 자들,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를 먹으면은 부정 탈까 봐, 못 먹는 사람들, 신학적 입장에서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들과 같이 우상은 없다, 받쳐 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약한 자들에게는 그들은 믿음이 없어 가지고 신학적 통찰력이 없어 가지고 그것 먹으면 부정 탈까 봐 벌벌 떨고 있는 그들에게 약한 자들, 나도 안 먹겠다.
교회의 여러분 제가 경험적으로 이야기 하면 이런 것들이 목회의 경험이고 여러분들의 삶의 경험이에요. 복음의 여러분들이 고민을 하면은 이런 가치판단이 생긴다고, 제가 부산에 남부민중앙 교회의 시절에 부교역자 시절에 있었습니다. 총동원 주일 해서 낮 예배 700명 하든 교회가 이제 한 1,100 명까지 올라가서 새 신자들이 참 많아 졌었습니다. 그것도 뭐 당회 하고 싸우면서 억지로 했었습니다. 그 교회는 예배를 마치면은 통로가 한군데 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두 군데인데, ㅎ ㅎ 참 편하지요 목사님 보기 불편하면 요리 가면 되니까 ㅎ ㅎ ㅎ 거기는 피할 수 없는 외길이에요 그래서 목사님 서고 수석 장로서고 차석 장로 이런 것까지도 웃기는 이야기에요 사실은, 쫙 서서 있으면은 교인들의 인사 받아요.
그런데 새 신자가 인사 하다가 여기에 꽂혀 있든 담배가 뚝 뜨러 진 거에요, 장로가 얼굴이 달라지면서 교회 와 가지고, 담배 집에 놓고 오지 하면서 화를 내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 담배 주어 가지고 주면서 담배 끊기 힘들지요. ㅎ ㅎ 여러분 그분 그 다음주에 교회 왔을까요 안 왔을까요, 저런 장로 있는데 내가 왜 가느냐고, 지식은 교만한 거에요.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정말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모든 것을 부모의 눈으로 보세요. 누가 나에게 싫은 소리해도 싫은 소리하는 사람을 자식으로 보라고, 그러면은 분노할 일이 없어져요. 그러면은 내가 옳다고 주장할 일도 없어져요.
6.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 것은 나를 존재하게 한 자이기 때문에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분. 그게 얼마나 복된 소식인지 모른다. 내 복음 선포를 듣고 구원 얻는 자들과 함께 나도 더불어 구원을 얻고자 함이다.
오늘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뭔지를 모르는 거에요. 그리스도 때문에 자유가 일어나지 않고, 유대교와 같이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되어서 그것이 모든 선악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고린도 교회에 지금 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23절에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다. 여기에 내가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이 아버지 된 것과 우리 모두가 가족이 된 것, 그게 그리스도적 사건이고 복음이거든요. 복음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 것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모든 것 해 준다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 것은 나를 존재하게 한 자이기 때문에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분. 그게 얼마나 복된 소식인지 몰라요.
그래서 여러분 부모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이 되잖아요, 지금 그 말이에요. 여기에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이 말은 그래서 이것을 정약하면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 내가 아버지 눈으로 모든 것을 용납하고 바라본다. 왜 그러는가 그렇게 해서 내 복음 선포를 듣고 구원 얻는 자들과 함께 나도 더불어 구원을 얻고자 함이다. 이 말이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종교적인 규범, 율법 아래에서 교회가 존재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구원이 일어나는 게 아니고, 그 율법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실행 되어져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도 구원에 참여한다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내가 그래야 나도 천국에 가기 때문이다. 두 가지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이 복음이 전해 짐으로 말미암아 이념의 갈등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평화가 더 이루어지고, 일본과 북한 까지도 샬롬이 일어나고, 왜 이래야 되는가, 그런 사람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주전에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 교회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천국에 다 모여 있어 보세요, 천국이겠느냐고, 전부 자기 잘난 맛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못하면은 죄책감 들고, 그것은 지옥이지요. 간단해요 저 사람이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 저 사람이 있는 곳이 천국이 될까, 지옥이 될까, 그렇게 보면 되요. 가장 간단해요, 그게 왜 예수 믿는 게 그것이기 때문에, 말로만 예수 믿는 게 아니고, 말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갈 것이 아니오 라고 말해요.
그 사람에게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 방언하느냐 능력이 있느냐 아니에요.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느냐,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 저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 그것 어떻게 다 하겠어요, 그게 본성인데 잘 들어야 되요. 누가 여러분에게 안 좋은 소리 하거든 내같이 아 고민해 가지고 위장병 생기지 말고요, 아버지 아들로 보세요. 그러면 이해가 되어져요. 성소수자의 생각들 요즘 뭐 분당에 큰 교회가 지금 하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니까 또 담임목사가 자기는 뭐 말로 하는 게 아니에요. 성소수자들 약자를 편드는 게 교회에요? 그것을 없애는 게 문제에요, 율법은 있지요 교회는 생육 번성 해야 되니까 그것을 인정 안 하고.
그 법을 실행함에 있어서 부모의 눈으로 보라는 거에요. 그러면은 시청앞 광장에서 성소수자들이 무지개 뭐 대회 할 때에 자기 자식 있다고 거기 가서, 나도 뭐 이런 자들 그것 부모 아닙니다. 진짜 부모는요 자기 아들이 성소수자일 때 죽을 때까지 용납 못해요.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해요. 그들과 어울릴 때에 너희 인권을 위해서 가서 내가 힘을 보태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울리지마, 네가 병이라서 그런 것, 내가 부모이기 때문에 받아는 주는데, 네가 언젠가는 깨닫고 돌아오도록 기다리는 그게 부모지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그들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고요, 편드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 뭐냐 하면은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때 있는 거에요.
7. 그리스도안의 율법 안에 있는 자는 그 율법이 있지만은 개인 개인의 형편을 헤아려 준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대 되어지고, 한 사람도 지옥 가지 않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 나는 때로는 율법이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와 같이 살았다.
그것 남의 일 먼 이야기니까, 교회 안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하자면은 지금 여름 수련회 같은 경우도 우리가 가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래 내가 되도록이면 참여해야지, 여러분 이런 생각이 여러분들의 생각이고, 목사님과 당회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못 오는 사람의 형편을 이해 해줄 수 있는 것, 이게 피차의 부모의 마음이에요. 어 우리 교회는 목사님과 당회가 결정하는 일에는 개인의 삶을 불문하고 다 실행하는 좋은 교회 그게 무슨 좋은 교회에요 독재이지 북한이지, 사람마다 형편이 다 다른데 뭐, 여러분 율법을 모든 개인의 형편을 이해하지 아니하고 다 동일한 잣대로 보는 것이 율법 안에 있는 거에요.
그리스도안의 율법 안에 있는 자는 그 율법이 있지만은 개인 개인의 형편을 헤아려 주는 거에요. 누가 그래요,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고, 똑 같은 것도 자식의 개인의 형편을 다 헤아려 주어요. 무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또 그렇게 할 때에 여러분들은 스스로 6대 4 정도일 때 따라갈 수 있는 마음, 얼마나 평화가 넘쳐요. 앞으로 여러분 참 나는 이해 안 되는 게 뭐냐 하면은 한번도 뭐 만난 적이 없으면서 원수가 되는 사람 많아요. 왜 남의 말 듣고, 지식이 교만하게 해 가지고, 자기는 한번도 경험도 안 해 놔 놓고, 그것 가지고 선악을 판단해요. 왜 나에게 잣대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목사가 힘든 거에요. 여러분 본인에게 물으세요.
나도 요즘 예배 마치고 인사를 못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나는 남들이 그러데요, 자기 아내 바람 피우면 자기 말고 세상사람 동래 사람 다 안다는데 잘 안 들리거든요, 그래 우리 전장로님이 나보고 목사님 교인들이 뭔가 그러는데 왜 인사 안 하세요, 그래서 내가 이야기해 준 거에요.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내가 요즘 몸이 너무 안 좋다, 또 토요일 날 여러분 목사는 토요일 날 자는 게 자는 게 아니에요. 설교를요 꿈속에서도 열 번도 더해요. 자다가 일어나서 생각이 나면 또 적어 놨다가 또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은 이 설교 듣고 누가 시험 당할까 봐, 이 말은 빼야지, 이런 게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 해도 실수해요. 그래 요즘은 이제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가는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지금 몸살 난 것 같아요 아파서, 췌장에 염증이 있다고 걱정도 많은데, 파김치가 되어요, 그래서 아 그 인사하는 것 보다 좀 쉬어야 되겠다. 또 한가지는 내 속에 뭔가 하면은 교인들이 하나님 만나러 와야 되는데, 목사님 얼굴에 도장 찍으러 하지 않을까, 성숙 되어져야 되는데, 이 두 가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 안하고는 우리 목사님이 시험 들었나, 뭐 했나,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거에요. 또 이런 소리 들었을 때 아 그렇구나 교인들 이런 생각들도 있구나, 해서 이제 내가 선선한 바람 불고 좀 컨디션 좋아지면 나도 인사 해야 되겠구나 이런 것이지, 여러분 작은 예지만은 여러분들 사이에 그래야 된다는 거에요 교인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있거든 그 사람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엄마의 마음으로 한번 보라고요. 다 용납이 되어지고, 정말 아름다운 결과로 봐요. 여기에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그 원리가 모든 것의 잣대, 들은 것이 모든 것의 판단의 근거 이런 것이 율법 아래 있는 자에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는 그런 규정을 부모의 마음으로 보는 거에요.
약한 자들 사회적인 약자 아니에요. 부모의 마음으로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를 받아 드리는 것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내가 천국에 간다, 이런 말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에요, 이 땅 위에 참된 평화 없어요. 예수님이 이루신 그리스도적 사건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아져야 되요. 그 마음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더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고자 가 아니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대 되어지고, 한 사람도 지옥 가지 않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 나는 때로는 율법이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와 같이 살았다.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로서의 삶을 살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살았노라,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믿음이 없는 자와 같이 살았노라. 그 말은 뭐냐 하면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판단하지 안 했다는 거에요. 교만한 자는 결과를 가지고 판단을 하는데, 부모는 원인을 살펴요. 목사님만 그러지 말고, 여러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되어지고, 우리 한국에 예수 안 믿는 정치가들도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정말 평화가 넘쳐 나는, 사람이 어떻게 다 같아요, 교회에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있고, 장로 권사라고 다 믿음 좋습니까, 장로 권사라도 뭐 시간이 없는 젊은 장로도 있을 테고, 있는 것이 시간인 장로도 있을 테고, 다 다르잖아요.
이런 자유가 자유를 위해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알게 하셨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어져서 이 세상이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는 그런 세상이 되게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이 헌금이 국가에서 추진하는 세금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 드립니다. 이 헌금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눈으로 보아서 절대적인 가치로 평가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평가해서 두렙돈 일지라도 천하보다도 더한 돈으로 보여 지게 하여 주시고, 이 헌금을 드리기까지 성도들의 수고한 그 눈물이 보여 질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부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성도들이 드리는 이 예물을 통해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서 우리 가운데 약한 자도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하늘의 평화를 누리는 복된 교회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도록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는 강한 믿음 더하여 주시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들에게는 드릴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해 주셔서 우리 모두가 정말 아버지 하나님 교회 때문에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는 평화를 조금이라도 맛보아서 막강한 나라, 막강한 회사를 자랑하는 세상을 부끄럽게 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어지고, 천국을 선물로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하늘의 평화를 땅에서 누리도록 인간이 만들어 낸 이념, 제도, 관습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계시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창조주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창조한 자, 땅에 있게 한 자이기에 천하보다도 우리를 귀하에 여기는 70억의 인구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하지 못하는 존귀한 자로 여기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내가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들은 대로 판단하지 않고, 아버지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봄으로 평화가 넘쳐 나게 하시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들음으로 어떠한 악한 말들 속에서도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그 말에 감정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자신 안에 있는 성령의 귀한 음성을 들어서 모든 사물, 모든 사건,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가치 평가 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죽어서 가야 할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게 선물로 주신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적 克日(극일)(고린도전서 10: 1-4)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9.08.02 |
---|---|
반석위에 세운 집(고린도전서 9: 24-27(주일 낮 예배 설교문) (0) | 2019.07.27 |
감사와 자랑(고린도전서 9: 15-19)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9.07.12 |
소명 (고린도전서 9: 16-18)주일 낮 예배 설교문 (0) | 2019.07.05 |
예배의 요소로서 헌금(고린도전서 9: 11 & 로마서 15: 27)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9.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