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반석위에 세운 집
고린도전서 9: 24-27
2019년 7월 21일 주일 낮 예배
No. 427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멘
○ 신앙 자체는 집을 세우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인 터전이 뭐냐? 반석 위에 대리석으로 지은 것도 천 년이 지나고 나면은 허물어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영원하다. 주의 영이 있는 자에게는 권세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위임한 것인 줄 알아서 섬기는 종이 된다
우리 10장부터는 내용이 많이 달라집니다. 9장까지 이제 결론의 부분인데 고린도교회가 엉망진창인 교회였어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처음 믿으면은 참 좋다 이랬다가, 또 교회 생활 하고 신앙 생활해서 깊숙이 보면은 교회가 뭐 이래, 이런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것은 아직 예수님이 재림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고, 저는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세상에는 아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가 왜 이래, 하는 것은 그 말 속에 교회는 달라야 된다고 하는, 전제가 있는 교회는 세상과 다르구나 하는 이런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해요. 그럴 때에 어떻게 달라야 되는가, 왜 그런가, 복음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1. 신앙 생활에 자기가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왜 그러는가, 하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자기와 같이 신앙 생활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쓰는 말이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터전 위에 교회를 세워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으로 말씀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의 예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삶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 마지막으로 신앙 생활에 자기가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왜 그러는가, 하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자기와 같이 신앙 생활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쓰는 말이에요. 신앙 생활을 무엇에 비유하는가 하면은 달리기와 권투 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지금 권투가 아니고, 옛날에는 원형 경기장에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그런 검투사의 권투를 말을 해요. 그 권투를 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은 달리기하는 자가 살아 남으려면은 첫째는 권투 하는 자는 절제해야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 지금도 그렇잖아요, 만약에 아마 지금 우리 국민 마라톤 봉다리가 뛰면은 그 점수 안 나와요, 왜냐하면은 벌써 살이 투실투실하게 쪄 가 있어요. 옛날에 대한국민 만세를 외쳤든 홍수환이가 다시 링에 올라갔을 때 카라스키야의 4전 5기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어요. 벌써 이렇게 크기 때문에, 운동선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절제거든요. 우리 신앙 생활에서 정말 우리 한국은 잘 되고 복 받고, 비계를 자꾸 찌우려고 그래요. 여러분들이 예배 드리고 신앙 생활의 연조가 더 해 갈수록 여러분들이 다이어트가 되요 영적으로. 그것이 뭐냐 무엇에 대한 절제냐 말입니다. 그럴 때에 참 저는 안타까운 것이 뭐냐 하면은 열심히 하기 위해서 절제해야 된다, 헌금도 열심히 자기 돈 쓰지 않고, 하는 것이 헌금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 버린다고요.
바울이 말한 성경이 말하는 의도하고는 전혀 다른데, 성경을 제대로 모르니까 교인들은 그런 갚다 이런다고요. 당신 할일 다하면서 교회 봉사 어떻게 해 이래 버린다고요. 그러면은 교회는 회사가 되지요. 위대한 종교적인 과업은 성취할지라도,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분들이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어요. 그런 것도 나중에 천국 가서 보상을 약속하고 이 땅에서 복 받는 보상을 약속해서 신앙 생활 하면서 더 힘들게 하는 것들이 비일비재한 것은 무엇을 절제해야 되는가, 이런 부분이에요. 또 우리가 오늘 설교를 마치면은 부를 찬송이 뭐냐 하면은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다. 행 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세운 집이다, 라고 말을 해요.
우리 신앙 자체는 집을 세우는 것으로 비교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터전이 뭐냐는 거에요. 지금도 해운대 가면은 아마 거대한 모래 축제로서 성도 만들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모래로 쌓은 것들, 모래 위에 세운 것은 한철이 지나면은 사라져 버려요. 여러분들이 작금의 교회에 일어나는 것들이나, 인생을 보면서 그냥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말씀에 의한 가치판단을 해보라고요.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사라져 버려요. 반석 위에 대리석으로 지은 것도 천 년이 지나고 나면은 허물어져 버려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영원해요. 여러분 교회는 인간에 의해서 세워 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터전 위에 교회를 세워야 된다는 거에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터전 위에 세우는 것이 뭐며, 우리 신앙 생활에 우리가 절제해야 할 것이 뭐며, 이 근본적인 질문은 없이 그저 열심히 하기 위해서 내 삶을 포기 해야 되는 것 같이 말해 버린다고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국의 교회 현실들을 보세요. 또 교회의 현실들을 보세요. 우리 한국에 있는 교회는 제가 말하기가 좀 뭣하지만은 제가 신학을 다닐 때마다, 모든 목사님이 닮으려고 갔든 교회가 로버트슐러의 크리스탈처치에요. 그분이 우리 한국에 교회들마다 유행시킨 것이 적극적인 사고, 긍정적인 사고, 그래서 엄청난 교회당을 지었고, 엄청난 교인들을 모아서 화려한 퍼포먼스에 예배를 드렸는데, 반세기가 못 가서 사라져 버렸어요.
2. 우리가 절제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 위에 세우는 것이 뭐냐?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에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사라져야 된다.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주인의 자리를 견고히 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은혜.
그 교회는 로버트슐러의 교회였지, 예수님의 교회는 아니었다는 거에요. 거기에 뭐 할렐루야라는 위대한 찬양이 부활절에 흘러 넘쳐도 주님과 상관없었든 찬양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날 보세요. 80년대 90년대에 한국의 강남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표어가 오직 예수라고 쓰여 있다고 오직 예수 이었던가 아니에요. 목사님 교회였고 장로님 교회였어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오늘 여러분 이 9장까지를 마치면서 고민이 뭐냐 하면은 우리 교회의 터전은 어디에 세워야 할 것인가? 이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우리 교회를 2007년 3월 26일을 설립 일로 정하지 않고, 2천년 전 오순절이다.
2천년 전 갈보리 언덕에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 교회의 기원이다. 그래야 내가 없어져요. 사람이 없어져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정말 그런 마음들이 함께 공유 되어져서 우리 교회는 주인이 예수님 하나님이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언제나 영존하면서 이 교회에 드나드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맛이라도 보는 그런 아름다운 구원의 방주의 역할이 되어야 되겠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절제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 위에 세우는 것이 뭐냐, 오늘 바울이 말하는 것은 수요일 날 나오면 여러분들이 로마서를 쭉 강해를 할 때에도 나오지만은 인간이 하는 것은 자기 의의에요. 내가 했다는 것, 내가 한다는 거에요.
내가 했다 내가 한다, 이것을 깎아 내는 거에요. 누가 하시는가,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도 여러분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일이 결과가 나왔을 때,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이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에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에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사라져야 되요. 또한 어떤 일들의 결과가 나왔을 때 잘못되었을 때, 누구 탓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볼 때에는 잘못된 것 같지만, 그 속에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예수님이 주인 된 교회로 만들어 갑니다. 내 인생의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그 일을 통해서 내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것.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이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 은혜 아래 삶이에요.
왜 이런 삶이 교회에 없는가, 전부 구원을 교리적으로 이론으로 생각하는 거에요. 은혜 아래 있는 자의 삶의 모습이 뭐다는 것에 대한 설교가 없어요. 절제하라는 말은 있는데 그 절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절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에 설명이 없기 때문에 제가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의 지난날에 있든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 교회가 그때 안 그랬으면은 전부 자기 의의에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주인의 자리를 견고히 나아가는 하나님의 은혜, 이것은 교회만이 아니에요. 국가나 여러분들의 삶에도 동일한 사고로 접해야 되요. 그것을 교회나 국가나 여러분의 삶을 나누면은 헬라적 이분법이 되어 버리는 거에요.
3. 은혜 아래 있으면은 65년도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형편을 헤아려서 탓 안 한다. 성경은 은혜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라고 그런다.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윤례와 규례를 배웠노라. 내 인생에 고난 당함이 유익이다.
지금 우리나라 보세요, 일본하고 무역 마찰, 경제 보복 이런 것들이 있는데 전부 자기 의의에요, 토론에서 보면은, 자기 의의가 뭔 줄 아세요, 65년도에 왜 그렇게 했느냐는 거지요. 또 65년도에 우리가 뭐 전부 자기 의의에요. 은혜 아래 있으면은 65년도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형편을 헤아려서 탓 안 해요. 그래야지 보수와 진보가 하나가 되지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하는 것 잘못 되었다 이런 소리 안 해요.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그랬지만은 이제는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바로 해 나가야 되지 않나, 다 은혜 아래 있을 때에 내 기준이 무너지고, 내가 한 것, 우리 편이 했든 것, 우리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런 것이 다 무너지고,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 아래 있는 것들 볼 때,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일본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는, 그럴 때 여러분 그것을 가지고 잘했니 못했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무슨 일이 있으면 그것은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지만, 또 지금은 지금대로 여러분 이러지 안 했다고 교회들이요. 과거에 행한 업적을 우리 목사님이 우리 장로님이 요즘은 왜 그래, 이런 생각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자기 의의 내가 했다는 것, 내가 한다는 것, 적극적인 사고, 긍정적인 사고,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모르는가, 무조건 잘 되고 크면은 옳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성경은 은혜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라고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왜 오셨는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도록, 뭔가 되었을 때 저는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아세요,
우리 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은혜 받으면은요 은혜 아래 있으면은 나는 망할 짓만 했는데, 나는 실수만 했는데, 주님이 이곳까지 오게 했구나. 자기 의의가 있으면은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했는데, 잘못 되었을 때, 나는 잘못하고, 실수할지라도 그분은 그 일을 통해서 나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고 우리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뜻이 있을 꺼야. 그럴 때에 그 잘못된 것에 대해서 탓하지 않는 모습들. 그런 모습을 통해서 교회가 극단적인 분열 속에 있는 대한민국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지요. 여러분들의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에요. 날마다 여러분들의 삶이 뭐냐 하면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 목적이 되느냐 하면은 일이 목적이고 성공이 목적이에요.
적극적인 생각을 하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는 말이 결론으로 나오겠어요, 성공하자가 결론이 나오겠어요. 그래서 성공적인 생애 산 사람치고 수많은 장례를 했지만은 후회 없이 간다, 이 말하는 사람 못 봤어요. 내가 왜 그래 살았던고, 그 성공이 무엇이라고, 그 돈이 무엇이라고, 모래성 무너지듯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너무나 많이 봤어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서 이룬 것도,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나는 실패하고 실수만 했는데, 하나님이 이루셨구나, 실패 했을 때에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 중에 하나가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윤례와 규례를 배웠노라. 내 인생에 고난 당함이 유익이다.
4. 주의 영이 있는 자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권세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위임한 것인 줄 알아서 그 권세를 가지고 행세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종이 된다.
내가 그 고난이 없었으면은 얼마나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런 생애를 산 사람들은 한 세상 살고 갈 때에 참 예수님 때문에 잘 놀다 갑니다. 김운희 집사 시에 나오는 것과 같이. 성공과 실패로 자기 인생을 보지 않는 눈.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생각이에요. 이 땅의 모든 문제는 자기 의의에요 내가 했다, 내 자랑. 앞으로 여러분 우리 교회가 주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존재하려면은 내가 했는데, 내가 뭘 했는데, 이런 생각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다이어트 해야 되요. 옛날에 뭔가 잘못 되었을 때에 왜 누구에게 책임 돌리는 것도 발 붙이지 못하게, 그런 모든 생각은 자기 의의에요. 절제하지 못하는 자기 의의에요.
그런 절제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에베소서에도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 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 권세 자라고 하니까 교회는 권세 자들에게, 권세 자들은 뭐냐 하면은 그 권세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 이면에는 악한 영이 있는 자에요. 주의 영이 있는 자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권세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위임한 것인 줄 알아서 그 권세를 가지고 행세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종이 되는 겁니다. 이 싸움이 있어야 되요 이 싸움이.
오늘도 여러분 교회도 한번 보세요. 왜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의 교회들이 하나같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은혜 아래 세우지 안 했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오직 예수고, 말로만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설교했든 이 내용의 삶의 모습을 아마 목사님도 몰랐었겠지요. 저는 제가 목회하는 사이에 좋은 쌤풀 몇 개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해요. 설명이 아니거든요 쌤풀이 되어야 됩니다. 왜 예전에 교회가 좋았는가, 그때도 문제는 많았지만 그래도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옛날에는 이런 게 있었거든요, 나도 저 장로님같이 믿어야 될 터인데, 나도 저 권사님같이 믿어야 될 텐데, 교회마다 쌤풀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쌤풀이 되지 못합니다. 왜 목사님이니까 그렇지 한다고. 목사님은 쌤풀을 만드는 자에요. 그 쌤풀이 제 목회 사이에 만들어 지고 나면은 그 다음에 양산될 때에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세상의 빛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갑니다.
여러분 쌤풀 이라고 할 때에도 부산에 부정교회나 초량교회가 제일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크기도 했고, 은혜도 있었습니다. 부정교회의 장로님이 백남주 장로님이 한신모방이라고 하는 기업의 회장이었고, 초량교회는 정태준이 성창기업의 회장이었습니다. 그 기업의 간부들은 다 그 교회의 장로들이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철저히 목사님 중심으로 무슨 소리하면 목사님에게 그러면 안되지, 이렇게 해 버리면은 모든 장로들이 조용해, 왜 하는가, 회사의 회장이거든요. 그러니까 교회가 된 거에요. 그 목사님이 그 장로님들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밑의 장로님들이 전부 다 그 행세를 하는 거에요, 그 장로님의 권리를. 그러니까 교회가 엉망진창 되었다가 이제 한 30년 지나면서 제자리를 잡아가요.
5. 우리 교회가 수련회 가는데 3천 만원 이상 든다. 교회 예산 얼마 해 놨다. 그러면 안 가시는 분들의 마음, 이분들에게 내가 무엇 해주지, 이분들도 헌금해서 교회 예산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장로님의 권력과 돈이 교회의 질서였든 거에요. 그 장로님이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가,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지만 이번 수련회에도 제가 지난주일 이런 모습이어야 되요. 지난주일 토요일에 교역자 회의 하면서도 교역자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된다고요. 우리 교회가 수련회 가는데 3천 만원 이상 들어요. 교회 예산 1,400 만원 해 놨어요. 참 좋은 교회지요 나름대로의 또 이렇게 회비 안 거두어도 채워 지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이번에 한 20% 내지 25% 가요 세대 수로 보면은 그러면 안 가시는 70%와 75%의 마음, 이분들에게 내가 무엇 해주지, 이분들도 헌금해서 교회 예산인데, 그래서 내가 뭐라 했는가 하면은 예산이 1,400 이라는 것은 100% 갈 때 하는 예산이야, 20%면 20%만 쓰도록 해.
그런데 버스라든지 기본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에 절반은 써야지, 예산 아끼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것은. 못 가는 분들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그런 것이고, 부모의 마음이 그런 거에요. 이게 목사에게만 있으면 안 되요. 장로님들과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되요. 어제 밤에도 내가 아 이것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때문에 뒤척이다가 왜 여러분들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잘 알아 들어야 되요, 우리 교회의 이금희 권사님을 제가 쌤풀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권사님 진짜 열심이잖아요, 제일 먼저 교회 와서 제일 늦게 가시고, 구석구석 보는데, 이런 열심을 쌤풀로 세우면 안 되요. 여러분 장로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열심히 돈 버는 장로님 이었다가 그래서 자기가 어느 정도 써 지면은 한 50대 되면은 그 돈을 가지고, 교인들이나 주변을 잘 살피는 모습, 60이 넘으면 시간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살펴 나갈 때,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빚진 마음으로 하는 이런 쌤풀, 아 우리 장로님 헌금 많이 하고, 우리 장로님은 자기 사업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고, 이건 쌤풀이 아니에요. 자기 의의가 될 수가 있어요. 어떻게 한 사람이 슈퍼멘이 되어지고 이렇게 되어져요. 젊은 날의 삶이 다르고, 중년의 삶이 다르고, 노년의 삶이 다른데요. 그러면 이금희 권사님 쌤풀이 하나 이제 겨우 만들어 지려고 하는 것이 왜냐하면은 이금희 권사님이 처음에 주방을 쫙 장악을 했을 때에 내가 권사님 한번도 말 안 했지만은 교인들이 권사님 때문에 주방에 못 들어 가겠어요, 이런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뭘 하고 나면은 권사님 얼굴이 변해요, 그런데 그때는 자기 의의라고, 은혜로 하는 권사님 되니까 지금은 뭔가 하면은 목사님 자기 마음대로 해 놓으면 나중에 내가 다 정리하면 됩니다.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해 되세요 은혜와 자기 의의에 차이. 열심히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누구나 들어와서 하게해요.
지금 우리 교회에 여러분 보세요, 이번에 관리부장 나가고 나니까 월요일에 누가 와서 청소했다, 뭘 했다, 어느 장로님이 뭘 했다, 내가 한 게 아니에요.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 주더라고. 오늘도 여러분 이 말을 이해해야 되요. 그래서 이것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이금희 권사님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 우리 속에 그런 것 얼마나 많이 있어요. 내가 주도권 잡으려고 하고, 전부 자기 의의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목사님 누가 안 해요. 대학도요 설립자 시절에는 설립자의 카리스마가 학교를 세워요. 2대 3대 가면은 설립자의 영향이 자라져서 이제는 주인이 없는 대학 될 때 진정한 대학이 되는 거에요. 모든 사항이 보세요.
6. 교회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 그런 쌤풀이 되어야 되요. 나 칭찬할 것 없다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여러분 이 고민이 있어야 된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되지 안 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나를 다듬어 가시는 것이구나.
여러분 서울대학에 총장이 누구인지 알아요, 총장이 없으니까 서울대학이 유명해 지는 거에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목사님이 누군가가 몰라 질 때 비로서 교회는 예수님 교회가 되는 거에요. 김운희 집사님 책을 읽으면서 제가 참 한편에는 부러웠어요, 10몇 년 동안 그 말썽쟁이들을 사랑으로 키웠기 때문에 10년이 지나고 12년 지나고 13년 지나 얘들이 선생이 아프다니까 잊지 않고 찾아와서 위로 해주고 격려 해주는 모습, 교사의 위로지요. 목사는 그러면 안 되요, 목사가 10년 20년 지나고 난 뒤에 교인들이 찾아와서 아이구 그때 목사님 이렇게 하셨는데, 그러면 그 다음에 담임목사는 어떻게 되어지는가? 외로워야 되요. 제 아버지 어머니는요 늘 하시는 말씀이 그랬어요, 나는 됐다, 너희들만 잘 살고 행복하면 돼. 은혜 아래 있는 자의 삶이에요.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 그런 쌤풀이 되어야 되요. 나 칭찬할 것 없다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여러분 이 고민이 있어야 되요. 우리 부 교역자들에게 제가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절에 있는 스님들도 동안거 한다. 자기 죽이려고 면백 한다. 생명을 다루는 우리가 그 싸움이 너희들에게 얼마나 있냐, 능력 받으려고 교회 커지려고 금식 기도하는 게 아니고요, 내가 했든 이 싸움을 쳐 복종시키려고, 왜 성경은 말합니다.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무엇이 두려워야 되는가, 하나님 앞에 버림 당할까 봐, 내가 한 것이 없어요.
여러분 내가 한 것이 있는 순간 바울은 지옥 간다 생각했어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해요, 주여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주여 영광 받으시옵소서 라고 천국 안 간데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이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얼마나 여러분 한국의 교회에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자존심과 자기의 자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빙자해서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말이 얼마나 많아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을 때 내가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되지 안 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나를 다듬어 가시는 거구나.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에요.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교회 60개 개척하고, 내가 3,000명 교회 모으고, 내가 선교사 파송 얼마하고, 내가 기도하면은 암 환자가 낫고, 마지막 날에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함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여러분 재림은 확실합니다.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그 시각으로 오늘을 봐야 되요. 그 시각으로 오늘을 살아야 되요. 어쩌면은 김운희 집사님이 삶이 묻고 죽음이 답한다는 것이 이 말이지요.
저는 우리 교회가 영웅이 필요한 교회 아닙니다. 능력자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만 능력자가 되면 됩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가 될 때, 한 세대 만에 사라지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존재하면서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런 교회,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의 싸움이 무엇에 대한 절제인가? 내가 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내 입에 밥 들어갈 때, 누군가가 내 상품을 사 주었구나 라는 빚진 마음 허락해 주시고, 내 입에 밥 들어갈 때, 누군가가 여름철 뙤약볕에 일사병 감수하고, 수고의 열매구나, 사회의 빚진 자의 마음을 허락해 주셔서 우리 사회가 유리 천장이나 흑 수저라는 말이 사라지고, 우리 사회가 이념적 갈등이 사라지고, 세대적 갈등이 사라져서 미국이 중국이 일본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복음의 국가가 될 수 있도록 교회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이제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금식 기도하는 목사가 아니라, 내가 하고, 모래성 쌓는 야망을 죽이는 금식 기도가 있는 목사 장로 권사들 많아 지도록 주님 말씀이 심령 골수를 쪼개는 주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남에게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는 복된 생애 되도록 인도해 주시고, 병약한 자들에게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있도록 그래서 어떠한 질병이 자신의 생애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생기가 넘쳐 날 수 있도록 긍휼이 여겨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생애가 잠시 있다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생애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 책에 영원히 기록되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자신이 죽어 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리오며 오늘도 에서골 골짜기에 죽은 마른 뼈와 같은 우리들에게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심을 감사 드리오며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우리의 창조자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위로와 교통하심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라는 바울의 마음을 헤아려 내가 주의 일을 크게 하고도 주님 만나는 그날 외면당하지 않도록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주님이 머릿돌 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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