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내 안에 그 분
고린도전서 10: 3-4
2019년 8월 4일 주일 낮 예배
No. 429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아멘
○영적인 음식과 음료를 영적인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을 물체화하고 인격화했든 하나님을 로고스가 예수님의 구원 사역 속에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 속에 이루어졌다.
요즘 제가 어떤 분을 만났는데 고등학교 때 자기가 굉장히 말썽쟁이였대요. 지금은 정말 너무나 근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그래서 자기가 어떨 때 책가방 잘 열지도 안 하는데 열어 보면은 엄마가 부적을 넣어 놓았대요 ㅎ ㅎ 그리고 자는 베개 밑에도 부적을 넣어 놓고 이랬대요, 그래서 자기 엄마에게 엄마 이 부적 살 돈 가지고 내 용돈 주면 엄마 말 잘 들을게 ㅎ ㅎ 그랬다고 그래요. 여러분 그 부적의 효력이 전혀 없어요. 고등학교 3학년을 자기가 아주 행복하게 엄마는 불행하게 지냈는데, 지금 자기 이렇게 사회생활 잘 한다고 하더라고. 예수 믿는 것이 그런 부적의 힘을 빌리는 것과 같은 신앙이 한국 교회에 너무나 많아요.
1. 성경의 하나님을 샤마니즘의 천지신명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다른 신을 믿는 것은 부적 신앙이다. 영적인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믿어야 되는가, 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삶과 구원은 뭔가?
그래서 쓸데없는 여러 가지 것들의 낭비 스스로의 위안, 전혀 이루어짐이 없는데도 신기루를 쫓는 거와 같은 그런 신앙 생활이 참 많습니다. 왜냐? 그런 것은 왜 그런가 하면은 성경의 하나님을 샤마니즘의 천지신명이라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이에요, 전혀 다른 신인데, 또 성경의 말씀을 그런 천지신명을 믿는 거와 같은 신앙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를 해 버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의 삶에 경험되지를 못하는 거에요. 그나마 여러분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교회를 통해서 행복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는 것은 뭐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거나, 당회가 잘하거나 이런 게 아니고, 성경 해석이 제대로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성경의 해석을 정말 잘하려면은 이 성경이 한국 사람에게 주어졌지만 처음에 기록될 때에는 한국 사람에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요. 유대인들에게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쓰여 졌다, 그러면은 유대인들과 유대 기독교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이해를 하지 못하면은 전혀 엉뚱한 신앙이 되어져 버리고, 또 우리 한국 교회가 그런 부적 신앙과 같은 것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샤마니즘적 신앙에서 천지신명을 하나님 예수님으로 이름만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곧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니라.
왜 이런 말씀을 하는가, 고린도교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모습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는 거에요. 여기에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나오는 출애굽와 민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고, 메추라기를 먹었고, 므리바 반석에서 물 나는 것을 먹고, 그들이 무사히 40년 광야의 길을 걷는 사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왜 이런 말씀을 하는가 하면은 바로 그러한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오늘날 세례와 성찬에 관한 말씀이에요. 그래서 10장과 11장은 세례와 성찬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여러분들도 우리 모두가 성찬과 세례를 참여하는데, 고린도 교회와 같은 생각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또 유대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모세오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부적 신앙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을 제대로 알려면은 신령한 음식 이러니까 뭐 음식 중에 신령한 것이 있는가 하지만 영적인 음식, 그리고 영적인 음료, 영적인 반석으로 함께 먹었다 이런 말인데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이런 것은 당시에 유대교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든 생각이었고, 그 유대교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든 생각이 여전히 고린도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가 생각하는 영적인 반석은 그리스도니라.
왜 너희가 생각하는 영적인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믿어야 되는가, 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삶과 구원은 뭔가, 이런 것들을 본문을 통해서 알지 못하면은 이 성경 천 번 읽어도 의미가 없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먼저 유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왜 생겼는가, 이런 것들은 1세기 유대 신학자이고 철학자인 필로의 글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치 우리 교회 교인들은 제 설교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의 가치관이 정립이 되는 거와 같이 당대의 기독교인들이나 유대인들은 유대의 랍비들의 영향을 받아서 가치판단하고, 선택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말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 또 므리바 반석의 물을 먹었기 때문에 무사히 광야 40년의 길을 걸어갔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면서 너희의 삶을 인도 하셨던 그 그리스도를 받아 드리는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그들의 그 가치관이 잘못된 것을 가지고 제대로 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부적 신앙이 진짜 여호와 신앙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또 그게 변해야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그래야 만이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필로의 글 속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에 유대의 지혜 신앙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여기에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또 그 다음에 므리바 반석에서 물 나는 것을 먹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사히 광야 40년의 길을 걸어갔든 거에요. 이것은 팩트이고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설명을 하는가 하면은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신령한 음료, 이 물을 먹으면서 지났는데 어떻게 먹었는가, 므리바 반석이 이스라엘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동행했다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을 따르는 반석이다 이런다고요, 이것은 팩트와 상관이 없이 민수기의 그 사건을 필로가 그렇게 설교했고, 유대의 랍비들이 그렇게 설교했든 거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1,400년 전에 우리 조상이 애굽에서 시나이반도를 그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그 므리바 반석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면서 물을 공급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그 광야의 길을 걸어갔든 것이야, 라고 하는 그들에게 그들의 그 생각 속에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동행하시면서 그들에게 신령한 음료와 신령한 물을 주어야만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어떤 생각이냐 하면은 그 므리바 반석이라고 생각하는 너희들과 동행하면서 물과 음료를 주었다고 하는 그 반석이 너희와 동행했든 그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야.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믿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이 광야와 같은 인생에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지금 이 말이에요.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는가 하면은 고린도교회는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면은 마력화로 생각했든 거에요. 지금도 마치 여러분들이 부적에 무슨 마력이 있는 것 같아서 말 안 듣는 아들 책가방 속에 부적 넣어 놓으면은 아들이 말 잘 들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거와 같이 지금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은 예수님이 마력을 발휘해서 우리의 삶을 평탄하게 할 것이라고 하는 이런 부적 신앙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에요.
그러면은 너희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면서 너희의 삶을 인도 하셨던 그 그리스도를 받아 드리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것을 말씀하고자 하는 거에요.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그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은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도와 주어서 우리를 평탄하게 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어, 믿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거에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거야, 이런 말들이 얼마나 난무해요, 전부 부적 신앙이에요. 이런 것은 우리의 컨셉의 너무나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 드리는 거에요. 그래서 신학의 부재 속에 있는 이야기란 말입니다.
3. 영적인 존재를 물체화하고 인격화하는 것이 모든 종교의 하나의 컨셉 이다. 그게 유대 지혜 신학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의 딸인 지혜를 통하여.
여러분 우리 천지신명은 우리가 비나이다 비나이다 정한 수 떠놔 놓고 열심히 빌면은 우리 아들 과거 급제 해 줘, 이런 신화가 얼마나 우리 조상들 속에 많이 있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예수라는 신 하나님이라는 신 속에 정한 수 떠놔 놓고 빌듯이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하고, 기도만 열심히 하면은 아들 과거 급제 시켜 주든 그 분이 내 아들 좋은 대학 보내 주고, 내 소원 이루어질 것이다. 이름만 바꾼 거에요. 유대인의 이 신앙에서 왜 반석이 동행하는가 하는 것은 모든 종교에는요, 보이지 않는 신, 영적인 존재를 물체화하고 인격화하는 것이 모든 종교의 하나의 컨셉 이에요. 그게 유대 지혜 신학이고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이나 그 다음에 잠언서나 시편에 보면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이야기할 때에 그 모든 하나님의 아들 지혜라는 것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가 하면은 영적인 존재를 인격화하고 물체화했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나님의 지혜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해 왔다는 것을 아셔야 된다고요. 여러분 우리가 오늘날도 한국의 교인들이 그러잖아요, 천지신명이 샤만에게 임하여서 그 샤만이 그 신령님과의 사이에서 말씀을 해주고 또 마력을 발휘해서 어떤 운명을 바르게 해주고, 그러면 다 종교잖아요.
여러분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유대 신학에서 필로의 글에 의하면은 지혜 신학이 하나님의 딸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유대인들은 하나님 하면은 일차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 왜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바 된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서 그런 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는 천지 신명을 없애고, 하나님 하면은 나를 창조하시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되요. 이것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이제 필로 같은 신학자들이 영회를 어떻게 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까 빛이 있었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게 요한복음 강해할 때 제가 1장에서 말씀하셨지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말씀을 했잖아요. 그러면서 1장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창조의 에이젠트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이고, 그 말씀을 들으면은 빛으로 들으면은 우리 속에 구원이 일어난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을 물체화하고 인격화했든 그 하나님을 로고스가 예수님의 구원 사역 속에 있다 이것을 말하는 거에요. 지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의 딸인 지혜를 통하여, 그래서 온 우주 만물이 이렇게 오묘하고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딸이 목수가 되어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되는 하나님을 알아야 부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그 신묘막측한 천지 만물의 조화를 이루는 그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면은 하나님의 대한 경외의 마음이 있어야 된다.
목수로서 에이젠트 역할을 해서 창조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지혜가 하나님의 모든 창조 속에 나타나는 것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야만이 온 우주 만물의 질서와 모든 것을 알게 되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는가, 하나님의 지혜와 딸을 통해서 계시의 수단을 통해서 알게 돼, 이런다고요. 그런데 우리 한국은 신령님의 뜻을 어떻게 아는가,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을 통해서 안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이 신앙이 한국 교회에 와서 기도를 많이 하는 권사님이나 기도를 많이 하는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돼, 이러면은 무당 신앙하고 같은 거에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거에요.
그러면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또 이런 것들이 성경에서 여러분들이 정리가 되어야 될 문제지요. 그래서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면은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속에 나타나,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계속 강조하는 것은 목사님이나 간증 자가 말하는 하나님을 믿지 마세요. 그 목사님이라고 이야기 할 때 저는 주관적인 간증을 이야기하는 목사님 말해요. 샤마니즘 적인 신학을 마치 참된 기독교의 신학이라고 생각하는 목사님을 말해요. 무슨 말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되는 하나님을 아셔야 되요. 그래야 부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하는 것을 아셔야지요. 그 하나님을 알고 받아 드리려면은 그 하나님에 대해서 경외감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잠언서에 보면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다, 라고 말을 하는데 그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주어서 공부 잘하게 돼, 세상을 알게 돼, 이래 버리면은 한국식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유대교의 지혜 신학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그 신묘막측한 천지 만물의 조화를 이루는 그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면은 하나님의 대한 경외의 마음이 있어야 되요, 이런 말이거든요. 경외라는 것은 범접할 수 없는 대상 앞에서 느끼는 공포스러운 마음을 말해요.
여러분들이 정말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으려면은 내 생각으로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그 하나님 앞에 가지는 경외의 마음이 있을 때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그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거에요.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아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쉬운 예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면은 앞의 그 부적 신앙인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어릴 때에 부모님을 자기 수준에서 생각해요. 왜 엄마 나는 메이커 있는 신발 안 사 줘, 엄마 나 스마트 폰 바꿔 줘, 그럴 때 엄마는 안 돼 기다려 할 때에 엄마가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나중에 철들고 난 뒤에 자기 입에 들어갈 음식 먹지 아니하고, 남에게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을 해 가면서도 벌어 온 그것을 가지고 자기 새끼 먹이려고 했든 그 부모 자식으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때에, 비로서 내가 부모 말씀 안 들으면 불효자 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구나 깨닫고 알게 되는 거지요.
5. 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경외감이 있어야 된다. 그 경외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놀라운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이다. 범접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지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는 어떻게 우리가 그런 신앙을 가지겠는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장을 많이 해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으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다면 하나님 내 생각대로 해 주셔야지, 왜 안 해주셔, 경외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 일어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니까 구원을 경험할 수 없는 거에요. 그런 그들에게 부적 신앙과 같이 하나님을 조정하는 신앙을 이야기하면은 참 좋고 구미에 딱 맞는다 이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 설교는 오늘 이 시간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열 번은 들어야 목사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것을 조금 이해하리라고 저는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 믿는 것이 참 이렇게 좋고 정말 예수님 예 자만 생각해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좋고, 내가 예수님 몰랐으면 이런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이것을 알려면은 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경외감이 있어야 됩니다.
그 경외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놀라운 은혜를 알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왜 이렇게 힘들고 우리나라가 왜 이런 줄 아세요, 부적 신앙 때문입니다. 열심히 믿고 기도하면은 이루어진다는 신앙 때문이에요.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은 뭔 줄 아세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다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 속에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은 제 식으로 이야기하면 하나님 제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동백에서 개척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교회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믿습니다 능력 주시옵소서. 전부 부적 신앙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왜 나를 동백에 개척하게 하고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담임목사 되게 했는지를 모르지만은 내가 이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생각을 해 나갈 때 우리 교회 형편 이곳에서 나의 자그마한 역할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비로서 목사의 영광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만 가득 나타날 때, 여러분들 속에 평화가 있는 거에요.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이 그런 거에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도 여러분들 속에 수많은 원함이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와 많은 갈등을 일으킵니까, 없을 수는 없지요.
그 육신의 원함을 열심히 해 나가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루어졌을 때는 이루어 주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그 뜻을 준행해 나가고, 이루어지지 안 했을 때에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그 메시지를 들으면서, 오늘도 2부 예배를 마치고 제가 제 방에 가 있는데 대학 교회에서 생활 하셨던 이치영 장로님 딸이 서울 휴가 갔다가 들어가면서 목사님 생각이 나서 우리 교회 와서 예배를 드렸대요. 그 장로님이 광주에서는 유명한 가문의 집안의 아들이에요. 학교 재벌이고, 건설 회사 하다가 폭삭 망하고 형제들에게 온갖 민폐를 끼치고 해서 서울에 와 있었다고요, 그래 그 딸이 음악을 하는데 우리 대학 교회에 왔다가 오빠 유히종 집사 아버지 해서 우리 교회 와 있었다고, 제가 그런 이야기한 거에요.
장로님의 그런 실패를 통해서 장로님 사람 만들어 가는 하나님, 지금 너무나 행복하게 사시는 거에요, 다 벗어 버리고. 지금도 광주에서 광주 시향에 있는데 교회에서 자기는 보수도 받지 안 했고, 전적으로 사는데, 큰 아버지가 그 학교 재단에 있는 그 학교 안에 교회의 온갖 음해와 갈등에서 이제 물러나서 자기 다른데 간다고, 그래서 속도 상하고 해서 목사님 생각이 나서 왔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지금은 속이 상하지만은 이 일을 통해서 집사님을 진정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봐야 돼. 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니야, 이런 생각은 범접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지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는 어떻게 우리가 그런 신앙을 가지겠어요.
6.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만이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알 때 진짜 교회가 세워 져 간다는 것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은 내 육신적 자아 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또 다른 자아가 생겨나는 것이다.
조그마한 경험 가지고 엄마 아버지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신앙이 우리 속에 얼마나 만연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엉망진창이 된 거에요. 다음주에도 계속해서 제가 말씀을 드리겠지만, 세례와 성찬을 마력화해 가지고 이것만 먹으면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생각들이 고린도 교회에 그 신학적 지식이 없는 자들을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느냐고, 그게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거에요. 사랑은 덕을 세운다 사랑만이 교회를 세워 나간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만이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알 때 진짜 교회가 세워 져 간다 이런 말입니다.
목사님의 종교적인 아성을 세워 나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든 그 교회가 세워 져 갈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가 얼마나 마력화된 신앙 부적 신앙이 너무나 많은 거에요 내가 볼 때,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동행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에게 날마다 영적인 음료와 음식을 불어 넣으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속에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게 한 것은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아버지가 되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어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고, 유대교의 신령한 보이지 않는 신을 물체화하고 인격화하는 그것을 샤만적인 신앙이 아니고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재된 그 성 육신 교리와 성령이 우리 속에 함께 하는 그 신앙을 통해서 부적 신앙과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했는가? 오늘도 여러분 열심히 수양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 전에 이루었든 그 사건을 받아 드리는 자 속에 성령님이 거하세요. 여러분들이 성령님이 거하신다는 것은 성령님만 거하시면은 어떤 병도 낫고 어떤 기도 응답도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 안에 거하시게 되면은 내 육신적 자아 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또 다른 자아가 생겨나는 거에요. 다음 주일 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게 아니고요, 하나님의 구원의 수단인 그 기도가 어떻게 도이져야 되는가, 너무 부적 신앙 샤마니즘 신앙이 한국 교회에 만연 되어져 있으니까 부적만 가지고 있으면 공부 안 하는 자식 공부 하게 될 것이라는 이런 신앙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힘든 일을 하게 해요.
7. 성령의 음성은 육신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마음의 음성이시다. 예배를 더해 갈수록 성찬을 더해 갈수록 여러분들 속에 그 마음이 크질 때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들 안에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세요. 성령의 음성은 육신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마음의 음성이에요. 여러분들 이해가 안 되니까 제가 말씀 드릴게요 또, 그것은 부모의 마음이에요, 성령 받으면 하나님 마음 부모의 마음이고요, 예배를 더해 갈수록 성찬을 더해 갈수록 여러분들 속에 그 마음이 크질 때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거에요. 가령 똑 같은 것을 가지고 이번에도 우리 교회가 수련회 갔습니다. 육신적 생각 어떤 생각인가, 교회가 가는데, 모두다 가야지, 장로는 가야지 권사는 가야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가져가는 거에요.
그러면 종교적인 과업은 성취되겠지요. 부모는요 잘된 자식보다 못된 자식 걱정하는 게 부모에요. 교회는 회사와 달라야 되요. 예전에 우리 어릴 때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양산 장사 아들과, 장화 장사 아들이 있는데 부모는 해가 쨍쨍 나는 날은 장화 장사 아들 때문에 잠 못 자고, 비 오는 날은 양산 장사 아들 때문에 잠 못 자는 게 부모더라고,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에요. 진짜 목사나 진짜 교인이 되어지면은요 잘하고 열심히 하는 교인들을 부추겨서 더 열심히 하게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만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거에요. 이 마음이 성령의 지배의 마음이에요. 나만 하지 말고요, 우리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마음 속에 있어야 되요.
잘하는 사람을 쌤풀로 해 가지고 더 잘하게 만들고, 그래서 못하는 사람들의 상실감을 주어서 도태 하게 하면은 그게 회사지 무슨 교회에요. 그렇게 하면 CEO지 무슨 하나님의 마음 부모의 마음이에요. 여러분 오늘도 저는 참 내가 13년 동안 설교한 것이 헛되지 안 했구나 하는 것은 이번 수련회도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에 갔을 때, 참 온 사람들 좋다 이번에 성공이다 이 생각 전에 이 좋은 장소에 못 온 교인들의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세요. 그러면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게 될 거에요. 그래서 그 경치 좋은 데에 그날 밤에 내 생각이 뭔가 하면 야 참 이 좋은 데에 몰라서 못 온 분도 있겠구나, 이번에 이만큼 온 게 너무나 감사하구나, 아무리 좋은 장소도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넘어서면 지옥이 될 텐데 적당한 인원이 왔다고.
그래서 다음 번에는 못 오신 분들을 위해서 1-2차 해서 그렇게 가야 되겠구나 이곳에, 우리의 지정 수양 관으로 삼아야 되겠구나, 그래서 이번에 못 온 사람은 다음 번에는 올 수 있는 여건을 따라서 정말 열심히 일한 자들에게 쉼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되겠구나, 그래서 설교도 3분 정도 했어요. 지난 수요일도 우리 교인들이 예배에 굉장히 적게 나왔더라고, CEO 목사라면 예배를 중시 여겨야 되겠지만은 저는 어떤 생각 했는가 하면 하나님 참 감사하네요. 하나님 믿는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해서 일하는데, 이 휴가철에 수요 예배는 1년 365일 돌아오는데, 휴가는 1년에 한번 있는 것인데, 예배 안 오고 휴가 간 분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구나, 아무나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이게 이상하게 여겨 지는 것은 그만큼 여러분들이 종교적인 관습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나만 이런 생각 해야 되겠어요. 모두다 여러분들이 그런 생각 해보세요. 교회가 얼마나 감사한데요, 늘 수요일 날 나오는 윤종복 집사님 수요일 날 안 보일 때 제가 너무 감사한 거에요, 야 참 말씀에 순종하는 집사님이구나, 그런데 CEO 목사라면은 휴가철이라고 안 나와 이런다고. 똑 같은 것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뭔가 지금 이것을 말하는 거에요 여러분. 그 좋은 방에 혼자 있으면서 야 다음에는 연세 드신 분들에게 이런 방을 주어야 되겠구나, 부모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고, 성령을 가진 자의 마음이에요.
8. 우리 교인 어느 누구 하나 쓸모 없는 자 없다. 어느 누구 하나 쓸모 없는 자식이 없듯이 어느 교인하나 버릴 교인 없다, 그 마음은 목자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는 과업 성취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에요. 또 여러분 CEO의 마음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바뀌어야 되요. CEO는요 회사의 필요한 사람들은 막 이랬다가 필요 없으면 도태 시켜요. 자존심 상해 해 가지고 스스로 사표 쓰도록 만드는 것은 CEO지요. 그런 목사 아니에요. 교회 다니면서 못하는데 자존심 상하고 미안하면은 미안한 마음을 드는 설교를 하면은 목사 아니고 CEO 목사에요. 성령이 있는 목사의 마음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 같지만은 귀하게 여겨져요. 여러분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쌤풀 이야기하는 거에요.
제 선친은 제가 그런 말할 때에 이제야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겠어요. 우리 교인 어느 누구 하나 쓸모 없는 자 없다. 어느 누구 하나 쓸모 없는 자식이 없듯이 어느 교인하나 버릴 게 없다. 오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이번에 조은누리양 그 가정에 그 얘는 짐이었을 거에요. 그런 얘도 산에 올라가 못 찾으니까 열흘 동안 부모는 울면서 그 자녀 찾기를 바랬어요. 그런 얘도 쓸모 없는 자식이 아니라, 버릴 것 없는 자식이에요 부모의 마음은,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세요. 저는 우리나라가 이제 제대로 되어 간다는 것은 그런 아이를 위해서 공수부대 투입하고, 모두 투입할 때 나라 꼴 제대로 되어 가는구나.
유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 없는 것 찾는 것은 아무나 찾지요. 이번 수련회에도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참 못 가신 분들이 그래도 수련회 잘 가서 행복 하라고 찬조한 것들, 못하신 분 탓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 분들 때문에 교회 예산 별로 쓰지도 안 하고, 다녀올 수 있었어요. 야 좋다 이런 게 아니고요, 제가 아침에 재정 부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제가 그런 이야기 했어요, 그러면 우리 좀 더우니까 구월 첫째 주에 온 교회 못 간분들 위해서 삼겹살 파티 하자. 이런 마음 가져야 되요. 정말 성숙 되어져 가는 모습이 말씀이 영적인 양식이 되었구나. 이번에도 여러분 육신적인 생각은 교회에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들 들어 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귀하게 보이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고, 어느 하나 버릴 교인 없는 것은 목자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번 수련회 가서 너무 감사한 것은 그 수련회에 장소에 펜션 주인이 저는 뭐 한번도 말 안 했는데 저보고 이야기 해 주더라고 누가, 우리 교회가 너무 분리 수거나 깨끗하게 해 가지고 다음에 교회가 쓰면은 30% dc 해 준다는 거에요, 우리 교회가 뭐 어디 하고 이래 중첩이 되었는데 우리 교회가 되었는데, 교회가 그런데 너무 깨끗하게 했다고 저보고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 평소에는 우리 교회의 별로 존재감이 없는 분들, 제가 말하는 것은 CEO 관점에서 말하는 거에요 지금, 유시흥 집사나 조성진 집사나 서상열 집사가 너무나 열심히 치워 가지고 깨끗해 졌다는 거에요, 제가 말하는 분들의 이름 여러분들 대부분 모르잖아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겠어요.
9.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서 가족 된 것을 받아 드릴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제가 목회를 할 때에 군산에 개복교회의 김종선 목사가 우리 목회학을 했는데, 나는 그때는 그 말이 뭔지 몰랐어요.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써야지, 굽은 나무 펴려다가 꺾인다 하더라고, 진짜 부모는요 굽은 것을 굽은 대로, 바른 것은 바른 대로 써는 거에요. CEO는 굽은 것도 바르게 해서 쓰려고 하는 것이 CEO에요. 여러분들 왜 자식 망쳐요, 공부 잘하는 아이는 공부 잘하는 그대로, 운동 잘하는 것은 운동 잘하는 그대로, 오늘 그 왔든 이치영 장로님 딸보고 제가 그랬어요, 오빠 이우종 집사는 서울대 경영학과 나왔거든요, 아버지가 그래 되니까 뒤 바라지 못 받았더라고, 지금 뭐하냐 이랬더니만 여기 우리 상가 까지도 따라왔었어요.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되었다 하더라고, 유학 갔다 왔니 하니까 유학 안 갔대, 기적으로 되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 딸 수연이는 공부 잘하는가, 악기 잘 다뤄요, 그래서 그 두 아들 보고 내가 그런 이야기 했어요, 하나는 삼촌 담고 하나는 엄마 닮았네, 그 말이 뭐에요,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이것 요구하지 말라, 아이돌 같은 아이에게 공부 잘하는 것 요구 하지 말고, 공부 잘하는데 끼 요구하지 말고, 그게 부모의 마음이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니면서 이런 생각이 목사가 훌륭한 게 아니에요. 복음을 알게 될 때,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거에요. 여기가 뭐 과업 성취를 위해서 새벽 별보기 운동하는 것이 교회입니까, 이 자식은 이래서 쓸모가 있고, 저 자식은 저래서 쓸모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고, 좋은 일이 있을 때, 거기에 참여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이런 마음을 길러 나가기 위해서 성찬식과 예배에 참여하라, 지금 이 말이에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고린도 교회가 믿음이 강한 자들이 그 믿음을 가지고 없는 자들을 무시해 가지고 실족하는 그들에게 성찬은 그런 마력이 아니야, 신령한 반석이 동행하면서 너희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거와 같이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고 구원에 이르라 그 말이 아니야, 너희가 생각하는 그 인도하심은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서 가족 된 것을 받아 드릴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게 될 거야,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 그 마음이 커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커져서 사람을 필요에 의해서 보지 말고요, 내 좋은 일, 과업 성취를 위해서 능력 있는 자만이 얼굴 들고 다니는 그런 세상이 아니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한편에서 기죽어 있는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져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예수님 때문에 없는 사람도 숨쉬는 세상, 저는 지금 사단이 온 세계를 너무나 힘들게 해요. 성찬에 더할수록 예배의 참여에 더할수록 여러분들 속에 부모의 마음이 더 커지고, 하나님의 마음이 더 커져서 발걸음 닫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어져 가고, 권력을 부러워하는 교회들 부끄러워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많은 액수의 헌금에 환호하지 않는 교회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드리고 싶지만 드리지 못해서 주눅들어 있는 성도의 마음을 헤아리는 교회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드릴 수 있는 형편이지만은 드리지 못하는 미안함도 헤아릴 줄 아는 교회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기다려 주고 참아 주어서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가 힘을 남용하는 교회가 아니라,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을 표본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져서 열광의 틈바구니에 갈팡질팡하는 우리 한국이 이제는 열광을 극복해서 진짜 강국은 이런 것이야, 보여 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한국 교회가 깨어 나기를 원합니다. 아멘
◈축도◈
우리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갖도록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버지를 계시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창조자이기에 사람을 기능으로 보지 아니하고, 존재 자체 잠잠히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자신 안에 거하는 성령의 음성을 예배를 통하여 날마다 들음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연조만큼이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믿음의 권속들과 회사가 아니오 국가가 아니오 영원한 영적인 가족의 공동체인 주님이 선물로 주신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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