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겨자씨 헌금, 우리 집 헌금
고린도전서 10: 23-24
2019년 10월 6일 주일 낮 예배
No. 437
23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아멘
● 영생이 넘치는 삶을 맛보는 삶이 되려면은 복음과 성경의 가치판단을 하면서 살아야 된다. 나는 이 진영에 있어도 상대방의 진영을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는 마음이 복음 안에 있는 것이다. 신학적 지식이 없어서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좀 말씀을 드리고, 또 다음주에는 우리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인 면에서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판단하며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를 가지고 판단하는 거에요. 이 사람이 목사다, 뭐 이 사람이 국회의원이다 이런 게 아니에요. 이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가치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가치판단만이 아니고 그 가치판단으로 자기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적인 통념이 우리의 가치관이에요. 그래서 그 가치관을 가지고 가치판단 하면서 살아가요. 교회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여러분들의 삶이 영생이 넘치는 삶을 맛보는 삶이 되려면은 종교적인 가치를 가지고 가치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과 성경의 가치판단을 하면서 살아야 되요. 그러면 종교적으로 가치 판단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주일에 교회에 안 나오면은 이 사람은 신앙 생활 잘못하는 것이고, 주일에 나오면은 이 사람은 신앙 생활 잘하는 것이고, 11조를 안 하면은 잘못 신앙 생활하는 것이고, 하면은 잘하는 것이고, 이런 것은 종교적인 가치 기독교라는 관습과 전통을 가지고 가치판단 하면서 사는 거에요.
1.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멋진 모습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정말 볼 때에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누리며 교회는 평화가 넘치는 그런 복된 교회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치대로 살아가면은 잘 순응 하면은 그 사람은 참 좋은 기독교인은 되는데, 그 사람이 거듭났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거듭난 사람은 성경과 복음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데, 그냥 성경 말씀을 가지고 나는 성경적으로 살아 인용하면서 자기의 가치관과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은 성경적인가, 복음적인가 가 아니에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은 이 말씀을 언뜻 보면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하니까 여기에 모든 것이 가하다 이 말은 원문에는 모든 것이 합법적이다, 허락 되어져 있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래서 성경에 봐라 어떤 것도 다 허락되고 합법적이라고 해서 뭐 술 먹어도 괜찮고, 뭐해도 괜찮고, 그러면서 성경을 갖다 대는 것이 성경적이냐, 거기 갖다 대면서 나는 복음적이야, 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이 어떻게 복음적으로 성경적으로 가치 판단하는가, 하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이 들으면서 내 자신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가, 좀 살펴봐서 이제는 종교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의 멋진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이 아니라,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멋진 모습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정말 볼 때에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누리며 교회는 평화가 넘치는 그런 복된 교회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으면 합니다.
여기에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은 모든 것이 가하나 하는 말은 누가 주장하는가 하면은 고린도 교회의 열광주의 자들이 자기의 정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주장이에요. 그러면 이 고린도 교회의 열광 주의들 믿음이 강한 자들은 어떤 자냐 하면은 계속 제가 여러분들에게 쭉 말씀을 했지만, 우상은 없어, 우상에게 바쳐 진 제물은 고기일 따름이야,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신전에 가서 절은 하지 않지만은 그들과 교제하고 그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은 합법적이고 가한 거야,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다 아름다운 것이고, 우상이라는 게 어디 있어, 사람이 만든 것인데, 실체가 없는 우상의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린다고 그게 잘못되었는가?
실체가 없는 우상에게 가서 바친 제물인 고기를 먹는 게 부정 타고 잘못 되었는가, 신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이야,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인데, 라고 먹는 그들에게 바울은 그들 편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이 믿음이 약한 자들 편에, 그래도 그 사람을 지지하는 편에 있는데, 주장의 지지가 아니고 편들어 주는 거에요. 뭐라는 가 하면은 나하고 생각이 다른 그들에게 너희 생각이 옳다. 인정한다. 틀린 것이 아니다 이러는 거에요. 여기에 중요한 가치판단이 있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도 제가 말씀을 드리겠지만은 오늘 우리 한국이 좌파 우파 나뉘어 져 있는데, 좌파가 주장하는 것, 우파가 주장하는 것,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그 입장에서 보면은.
2. 상대방의 진영을 인정해 주는 마음, 그게 복음 안에 있는 것이다. 진리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이 알 수가 없다. 진리의 속성이 뭐냐 하면은 보편적, 상관성, 유익성이 있어야 된다. 여기는 맞는데, 저기는 아니면 아니다. 객관성이 있어야 된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나는 이 진영에 있어도 상대방의 진영을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는 마음, 그게 복음 안에 있는 거에요. 교회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은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데, 예전에 교회는 교회가 교회당이 교회냐,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냐 하는 것이 굉장한 중요한 문제였어요. 천주교는 교회당을 교회라고 했기 때문에 성당 거룩한 집이다 그래요. 교인들 중에서도 성전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은 개신교의 가치관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개혁주의 자들은 예배당 이래요.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에는 성전이나 성당 이러면 목사님들이 뭐라는 가 하면은 왜 성당과 성전이야 예배당이지, 그러니까 예전에 사람들이 뭐라 했는가 하면은 예배당을 또 웃기는 이야기도 참 많이 있었어요.
이럴 때에 어느 것이 맞느냐 어느 것이 틀리느냐가 아니에요. 저도 한 때는 예배당이지 뭐 거룩한 성전이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런 생각 하는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 이 말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은. 오늘도 여러분들이 우리가 말로는 복음으로 하나되자 교회가 하나되자, 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하나 되는 게 아니에요. 좋은 명분 있는 주장에 지날 따름이에요. 성경적으로 가치판단을 한다면은 오늘 이 말씀대로 상대방의 주장을 내 생각하고 다르다고 틀렸다 하지 말자. 인정해 주자 맞잖아요. 우상은 없잖아요.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잖아요.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뭔가 하면은 모든 것이 합법적이고, 허락이 되어 있지만은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여러분 여기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때에 사람들은 언제나 어느 것이 진리냐를 가지고 논하기 때문에 서로 의견에 대립이 있는 거에요. 그것은 주장이에요 진리에 대한, 왜 주장이냐 하면은 진리는 인간이 몰라요, 사람들의 착각이 자기는 진리를 아는 것이고, 진리를 주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에요. 어린 신앙과 어린 사람들이에요. 왜 진리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이 알 수가 없어요. 안다면은 그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하면은 이럴 것이다, 진리적인 측면에서 주장하는데, 그것은 그때 가서 봐야 알지요, 모르는 거에요. 그래서 미래에 우리가 예측은 하지만은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거에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 보지만은.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부분을 우리가 이런 것만이 아니고, 다른 면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진리는 무엇으로 속성이 뭔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잖아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은 믿는데 그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가 아닌가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아는 거에요. 자기 주장을 가지고 아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속성, 진리의 속성이 뭐냐 하면은 보편적이어야 되요. 상관성이 있어야 되요. 유익성이 있어야 되요. 여기는 맞는데, 저기는 아니면 아니에요. 객관성이 있어야 되요.
3. 야고보서에 보면은 네가 누군데 내 이웃을 판단하느냐, 그 말은 뭐냐 하면은 네가 유한한 인간이 뭐 선악을 판단해, 판단 자는 하나님 한 분이다. 오병 이어의 기적의 오병이어의 설교를 할 때 제 속에 큰 깨달음이 있었다.
오늘도 여러분 그러면은 우리가 같이 판단할 때에 뭐냐, 어느 것이 유익한가, 덕을 세운다는 것은 공동체를 세운다, 교회를 세운다는 말인데 어느 것이 국가를 세우는 것이고, 교회를 세우는 것인 가, 이 측면에서 봐야 되요. 주장이 아니에요, 내가 그래 주장한다고 해서 나라를 세우는가, 나라 생각 안 하는 사람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교회 생각 안 하는 사람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런데 생각을 깊이하고 사랑할수록 나라를 망치고, 교회를 망치거든요. 왜 성경 야고보서에 보면은 이렇게 말해요. 네가 누군데 내 이웃을 판단하느냐, 그 말은 뭐냐 하면은 네가 유한한 인간이 뭐 선악을 판단해, 판단 자는 하나님 한 분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교회의 문제는 이것이 옳고 그르냐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잘못된 거에요.
어느 것이 유익한가, 어느 것이 덕을 세우는가, 그러면은 교회당에 가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저는 예전에 교회당 때문에 많은 교인들의 삶이 파괴가 일어났어요. 그 중심에 뭐라는 가 하면은 예배당 지으면은 복 받는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에게 셋팅 시켜놨다고요, 그래서 복 받은 사람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것들이 파괴가 일어났다고, 왜 그랬는가 그럴 때에 성경에 봐라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지, 어데 예수님이 건물이 교회라고 했느냐, 이런 자기 주장 때문이에요. 여러분 저는 그래서 한 때는 교회당 있는 교회를 하지 않고, 교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한다고 제자 훈련이나 이런 것들을 열심히 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대학 교회에서 예배당을 건축 안 해도 할 수 있는 것을 10년 했는데, 아마 저를 다듬어 가는 과정이고 저의 교만을 깨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개척을 해서 예배당이 없는 교회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왔다고, 제일 큰 갈등이에요. 이 예배당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게 내가 제일 큰 갈등이었어요. 여러분 많은 헌금을 돈을 거기에서 주었지만은 우리 이 예배당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말입니다. 그래서 일부 교인들 중에는 건축 헌금을 해야 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은 주장하는 그분도 헌금을 할 처지가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헌금할 처지가 아닌데, 어떻게 건축 헌금을 해요.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고민을 하는데, 여러분들이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의 설교를 할 때 제 속에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는 건축 헌금을 하나도 안 하지만은 우리 집 헌금이나 겨자씨 헌금이 건축 헌금이에요. 우리 집 헌금은 예배당 건축 헌금이고, 겨자씨 헌금은 성도들의 모임인 건축 헌금이에요. 다른 교회에 없는 독특한 헌금이지요. 여러분 이 교회당을 지으려고 할 때에 제가 조사를 이래 해 봤어요. 쥬네브상가 당시 이렇게 해보니까 우리 교회가 지금 740평인데요, 분양 평수로 하면은 1,500평이 넘는 겁니다. 상가 전용면적이 40% 45% 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쥬네브 상가 가서 물어 보니까 일반 관리비가 13,000원인가 이러더라고,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월세 말고, 전기세 말고, 일반 관리비만 평당 그렇데요. 그러면 우리 교회가 1,500평이라고만 잡아도 일반 관리비만 내어도 2천만원이 거기에 전기세 하고 월세 낸다면은 이것은 상당한 금액이 나온다고요, 그래서 짓자, 라고 생각을 했든 거에요. 지으려고 할 때에 건축 헌금이 우리 헌금이 우리 교회 대학 교회에서 받은 것 뭐 10억 몇 만원 이지만 이 전체가 50억이 넘는 큰 돈이 들어가는 건축인데, 어떻게 감당해요. 교인 몇 명 안 되는데, 그래서 고민하고 뭐 금식 기도도 하고 이러는 가운데 이 말씀을 보는데 요한복음 6장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4. 제자들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빌립이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합니다. 안드레가 와서 한 소년이 가지고 있었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예수님에게 내놓으니, 축사하시고 너희가 가서 나누어 주라고 할 때에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더라.
예수님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교를 했어요, 설교를 하는데, 얼마나 설교가 재미있고, 유익했으면은 한 사람도 안 가고 설교를 다 들었는데, 밥 먹을 때가 된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제자들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래요, 여러분 모든 인생의 문제는 제가 그러잖아요,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교회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그런데 참 얼마나 황당한 질문입니까, 빌립이 수학적 머리기 굉장히 뛰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이 사람들이 다 먹이기에는 부족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2천 만원 정도가 있어도 이 사람들 다 먹기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 때 항상 결핍이 문제잖아요. 그런데 안드레가 왔어요, 한 소년이 가지고 있었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예수님에게 내놓으면서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아옵나이까 이래요. 저는 그때 내 머리를 콱 친 거에요, 인생의 모든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무의미한 겁니다.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것들이기 때문에 무의미함이다. 이게 극복되지 아니하면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말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무의미함을 극복하라는 것이 거든요. 천리길 생각하면서 한 걸을 안 디디게 되면 천리길 못 가는 것이고, 태산 높은 것 생각하면서 내 손에 있는 한줌의 흙이 무의미 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거든요.
그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 거에요 인간이, 빌립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못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에게 내 놓은 거에요. 예수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그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너희가 가서 나누어 주라고 할 때에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더라 이래요. 이 말씀을 가지고도 축사를 예수님이 축복 기도 하니까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무식한 사람의 해석이에요. 그래서 그 해석을 놓고 오늘날 교인들은 예수님이 축복만 하면은 그 무엇도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것은 미신이에요. 거기에 축사라는 말은 예수님이 감사하자 이런 말이에요.
물고기 두 리와 떡 다섯 덩이를 5천명이 먹이는 속에서 감사는 누가하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심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되요. 수학적 계산이 달라져야 되요. 여러분 티끌 모아 태산 누가하는가, 수학적 계산이 밝은 사람은 못해요. 투기하려고 하지요. 예수님이 감사하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요,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뭐냐 하면은 야 수십억의 은행 대출에 수천 만원의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는가, 건축 헌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천 만원이고 뭐 부자 500만원 만들어 가지고 열 구좌, 스무 구좌 이래 가지고, 대출 내게 하고 이런 것이 생기는데, 그 당시의 상황은 이 부분에서도 여러분들이 한가지 배워야 할 것이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5. 과거의 사건은 과거의 눈으로 봐야 된다. 현재의 유블리로 가치판단 하면은 그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산물로서의 축복이다.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각으로 판단하면 안 되요. 우리나라의 모든 많은 문제가 그거에요. 박정희 시대에 그 산업화를 현재의 시각으로 민주화가 산업화를 본다고, 그러니까 양분 되는 거에요. 과거의 사건은 과거의 눈으로 봐야 되요. 지난 주일도 말했지만 현재의 유블리로 가치판단 하면은 그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이에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분 그런 생각이 들 때에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아 그렇구나, 지금 동백은 그 당시 어떤 현실이었는가 하면은 우리 교회가 2007년 5월 마지막 주에 이곳에 입당을 했는데요, 오기는 2006년 10월에 동백에 왔습니다. 저 모아미래도에, 동백에 내가 와서 보니까 휴먼시아에 32평짜리 거기가 전세가 7천 만원 했어요. 지금은 엄청나게 비싸지요.
여기 분양이 내가 물어 보니까 2억 몇 천인데 어떨 때는 5억까지 올라가는 그런 꼭지점이 있었어요. 동백의 많은 사람들은 집을 사는데 자기 돈 가지고 산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대출을 다 끼고 살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교회 건축 헌금 하라 하면은 그것은 사람 죽이는 거지요. 그런데 그 말씀을 가지고 옛날에 봐 봐라 우리 한국이 이렇게 복 받은 것이 건축 헌금하고 예배당 잘 지어서 한국 곳곳에 예배당 지어서 복 받았다고, 논리의 비약이고요 그것은 믿음도 아니에요. 60년대 70년대 80년대 상황을 이해 해보세요. 우리나라가 고도 경제성장 시대였어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안 됩니다. 10%씩 성장 하는 그런 때였습니다.
당연히 은행 금리 높았고, 사채 2부 5리도 쌌지요. 부동산은 하루가 다르게 뛰었어요. 그때는 부동산을 사는 것이 지혜였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의 부동산 불패라는 말이 그때 생긴 거에요. 그때 그 가치관을 가지고 지금 부동산 불패하는 것은 망조 나는 일이지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 말은 부동산 불패라는 말, 그 시대의 맞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교인들에게 그때에는 교회당을 짓는 시대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 시대를 그것을 가지고 교회라는 교리적인 것을 가지고 비판을 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참 얼마나 교만하고, 근시안적이고 협소했는가 하는 것을 느낀다고요. 그래서 교회당을 짓는 것이 지혜로운 때였어요.
그래 교회도 땅 사고, 건물 지어 놔 놓으면은 은행 뭐 하더라도, 교회 교인들이 건축 헌금 하면은 교인들의 삶도 오늘 1억 하든 집이 내일 2억 하는데 천 만원 건축 헌금 못해요, 내라도 하지요, 천 만원 돈은 큰돈이 아니었다고요 그때에는, 왜 사회가 그런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가치판단 잘 하세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해 버렸다고, 그 하나님의 축복이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산물로서의 축복이에요. 그 시대에는 우리나라가 고도경제성장시대고 부동산이 하루가 다르게 뛰는 그 축복, 그래서 교회당도 더불어 교회당을 많이 짓는 그런 축복을 시대적 산물로 주신 것을 개인에게 주었다고, 개인의 행위에 대한 것으로 주었다고 해 버리는 순간 미신과 같은 기독교가 되어 버리는 거에요.
6. 서양은 성경적 가치관 위에 제도와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다. 우리 교회 개척할 시기의 이야기.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은 오늘날은 교회당을 건축하는 시절에는 어떤 때였는가,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은 빚내 가지고 집사 가지고 이자 내야지요, 또 여러분 참 얼마나 그래요, 분당에 살든 사람이 집값 올라가고, 전세 값 올라오니까 죽전에 오고, 죽전에서 또 올라오니까 동백 오고, 동백 올라가면 저리 가고, 오산에서 돈 좀 모아 가지고 동백 오고 이런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에 아 천 만원 2천 만원이 아니고, 렌트라 생각하자, 여러분 우리 사회가 왜 문제냐 하면은 우리가 몸은 변하지 안 했는데 갓 쓰고 여러분 양복만 입은 게 문제에요. 서양은 성경적 가치관 위에 제도와 모든 것이 이루어져 가 있어요.
우리는 가치관은 유교적이고 여전한데, 제도만 서양 것을 가지고 온 거에요, 기독교적인 것, 그것이 뭐냐 하면은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전부 소유의 복을 누리려고 해요. 예수를 믿으면 청지기 관리자의 삶이에요. 렌트의 삶이에요. 그래서 미국 같은 데에는 여러분 월급의 30%가 집세로 나가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현금 가지고 사면은 30% 그것 여유롭지 않느냐고 하니까 그러면은 세금으로 다 떼어 간다는 거에요. 내가 버는 소득에서 집세로 내는 것이 내 삶의 유익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유럽이나 이런 데에서 은행에 돈 넣어 놔 놓으면은 그것 가만히 넣어 놔 놓으면은 20%씩 가져가 버려요, 너는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그 모든 가치관이 뭐냐 하면은 인간은 청지기의 삶이지, 소유자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야 우리나라가 지금 교회당을 소유하려고 하니까, 이 고생을 하는 것이구나, 렌트라 생각하자고, 그래서 쥬네브에 보니까 렌트 하려고 하니까 수천 만원 되는데, 하나님께 렌트 하는 것으로 하자, 그래서 교인들에게 뭐라했는가 하면은 여러분 천 만원 이천 만원 헌금하지 말고, 교회의 의무인 11조를 하면서 5만원 정도 우리 집 헌금을 합시다. 그래서 11조가 제대로 된 용도로 사용되게 합시다. 있는 사람은 한 열 가정 정도 감당하자면 제가 50만원씩 했어요. 그 당시 이자가 천만 원에 대한 이자가 5만원 정도였어요. 지금은 절반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은 3만원만 해도 되어져요.
그래서 한두 분이 그렇게 하고 하면서 오늘날까지 쭉 해 왔어요. 그 속에 뭐냐 하면은 5만원이 5만원이 아니지, 천만 원이지, 저는 우리 교회 빚을 갚을 생각을 안 합니다. 왜 빚 갚는데 여러분들 희생시켜요, 저는 예비 고사나 중학교 다닐 때 상업은 늘 100점 맞았어요. 자산은 자본 + 부채다, 부채도 자산이에요. 그래서 내 다음 세대에 부채의 자산도 자본의 자산도 넘겨 주는 거지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지금 고생을 안 하는 거지요. 여러분들 실컷 고생하고 다음 세대에는 소유 해 가지고 재산 싸움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이 큰 예배당 좋은 예배당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담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가치판단 이 말씀이에요. 어느 것이 유익한가, 어느 것이 옳으냐가 아니에요. 건축 헌금 하는 것이 옳으냐, 우리 집 헌금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그 논쟁으로 들어가면은 싸움 박질 밖에 안 되요. 그래서 여러분 유익과 교회를 세우는 것, 아마 그때 건축 헌금 했으면 우리 교회는 무너졌을 거에요. 여러분 모든 가치판단이 그것도 이 가치판단도 사실은 예측이지요, 무너질까 안 무너질까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적 가치판단이 이런 거에요. 오늘날 우리 교회의 지금 현실이 어떤 현실이냐 하면은 우리 교회가 700석인데요 400가정이 우리 교회에 기본적인 가족 수에요. 아직 좀 모자라요.
지금 287 가정인데요 우리 집 헌금을 우리가 지금 얼마나 하는가 하면은 127 가정 46% 감당해요. 그러면 요렇게 해서 지금 우리 집 헌금을 우리가 하는 것이 60% 감당이 되어져요. 참여는 100% 학점이고 감당은 하나님이 절묘한 F를 면할 정도, 그러니까 여러분 이 좋은 목회적인 비전이 여러분들에게 피부에 와 닫지 않는 것은 목사님이나 당회가 잘못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참아 주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억지로 뭐 방법을 쓰지 않는 거지요. 우리 재정부에서 이런 데이터를 참 잘 내 줘요, 우리 집 헌금 60% 참여하면은 우리 교회는 100% 임대료를 낼 수 있데요.
여러분 참 저도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했지만은 40 몇%는 낙제에요 ㅎ ㅎ 60%가 턱걸이 하는 거에요. 80%가 되면은 우등생이 되지요. 60%가 참여하는 순간 우리 교회는 우리가 내는 하나님께 내는 임대료의 100%가 되어져요. 그 이상은 나오면 어떻게 하는가, 그러면 그때부터 교인들의 모임을 세우는 겨자씨 건축 헌금으로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겨자씨 건축 헌금이라는 게 뭐냐 하면은 이런 부분도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야 되요. 아이구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는 것 자기 의에요. 예수님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그날까지 너희에게 가난한 자가 없어지지 아니할 거다 이랬어요. 예수님도 가난한 자를 없애려고 안 했어요.
그러면 우리 집 헌금은 뭔가, 여러분들이 가족으로서 제가 이야기하지만 급한 일 당한 사람이나 큰일 당한 것을 함께 힘쓰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여러 형제가 있는데 똑 같이 재산 다 내 가지고 N분의 1 하자면 그게 공산주의에요. 그것은 잘못이잖아요, 그러면 뭐해야 되요. 형제 중에 누가 하나 큰일을 당하거나 급한 일을 당했을 때에 함께 힘을 합쳐 주어야지요. 그게 가정을 세우는 거지요. 우리 겨자씨 헌금이 그런 거에요. 여러분들이 뭐 참 강남의 수만 명 교회도요 장례식장에 가는 사람은 2-30명이에요. 우리 우장로님 너무 잘 알잖아요 상조회사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이 숫자지만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많이 가요, 어떨 때는 안 오지만은요 한 사람이 봉투를 가지고 이만큼 해 가지고 이름을 한참 쓰는 일들이 많아요. 그게 겨자씨 헌금이에요 여러분.
또 교회의 이번에도 강현이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 의료 현실이 그런 것 같아요. 이 나면서부터 했는데, 이전에는 그게 십 몇 세까지 의료보험이 되었는데, 7세까지 밖에 안 해 주었어요 이제는 엄마가 돈 다 내어야 되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것을 함께 힘 합쳐 주는 것이 겨자씨 헌금이에요. 거기에 교인 격려할 일이나 도와 주려고 할 때 그런 것들을 전부 왜 교회당을 세우는 것이 뭔가, 교회가 뭔가, 어느 것이 유익한 것이고, 어느 것이 교회에 유익한가를 가치판단을 가지고 살아갈 때, 행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런 부분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종교적인 가치판단이 아니고요, 복음과 성경적인 가치판단은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고, 그렇지만은 교회를 세우는 것과 어느 것이 유익한가를 알아야 되요.
7. 바울은 너희들의 주장이 옳고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신학적 지식이 없어서 두려워 떠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 누가 복음 안에 선 사람인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 해주고, 그렇지만은 어느 것이 유익하고, 어느 것이 교회를 세우는가로 가치판단 하는 것.
그 옳은 판단을 가지고 우상이 두려워서 덜덜 떠는 사람을 무시하고, 이렇기 때문에 서로 대립을 했든 거에요.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무시하고요, 없는 사람들은 그 신학적 지식이 있는 열광주의를 비판하고,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너희들의 주장이 옳고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신학적 지식이 없어서 두려워 떠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 그것이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교회를 세운다 이런 말이에요. 우리 사회가 다음주에도 말하겠지만 좌파의 주장 틀린 것 없어요. 우파의 주장 틀린 것 없어요. 서로가 인정하고, 서로가 용납을 할 때 국가의 유익이고 국가를 세워 나가는 것을 잃어버린 거에요.
복음적 가치관이 없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나라는 나중에 큰일 난다, 자기가 하나님인가, 그때 가서 봐야 되는 거지요. 언제나 인간은 자기 주장의 옳음을 위해서 미래의 위기를 조장해요. 언제나 인간은 자기의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서 과거를 마약으로 생각해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겸손 해져야 되요. 오늘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 거듭난 자들로 모여 지기를 바래요. 그게 뭔가, 주장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그렇게 해 왔어요. 그래서 내 교리와 틀리면은 다른 것은 틀렸다고 그래요. 그래서 사회에도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도 교회는 여전히 진리라는 것을 같다 대면서 다름을 인정하지 안 해요.
누가 복음 안에 선 사람인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 해주고, 그렇지만은 어느 것이 유익하고, 어느 것이 교회를 세우는가로 가치판단 하는 것. 우리 교회의 건축에 대한 것. 교회 교회당이 건축인가, 교인들의 모임이 교회인가에 대한 나의 편협 된 사고를 이 건축을 하면서 깨트리면서 하나님은 균형 있는 성장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신 거에요. 뿐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도 왔다가 많은 분들이 갔는데, 참 안타까운 게 그거에요. 나가는 사람이 나와 교회에 대해서 좋게 말하겠어요, 그러면 나가는 자기 행위의 정당성이 없어지는데, 나쁘게 말하지요. 그러면 그 말을 듣고 어느 것이 교회를 세우는 가를 봐야지요.
나가는 사람이 여러분들에게만 말합니까, 저에게는 와서 또 이야기 해요. 어느 장로는 어떻고 어느 권사는 어떻고, 어느 집사는 어찌해서 내가 간다고, 저는 그 사람의 말에 동조하지 안 해요. 자기가 나가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는 말인데, 어느 것이 교회에 유익이고, 앞으로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또 앞으로도 있다 나가는 사람 많을 거에요. 저는 교제하지 말라는 다른 교회 그렇게 안 해요. 그들의 주장에 여러분들이 저같이 생각해야 되요. 자기의 정당성을 위해서 그러는 구나, 그 사람들 말 틀린 것 하나도 없어요. 저한테 말한 것으로 보면, 그러나 유익하거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니었어요.
저와 교회의 대해서 말하는 것, 그 사람들 말 틀리는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교회에 유익하거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니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 가치판단을 가지고 살아요. 그러면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조금 있으면 우리 교단이 지금 둘로 쫙 나누어 졌어요. 당회에서 이 문제도 한번 논의해야 되는데, 너무 좀 독재적인 요소가 해서 개혁적인 상황이 나왔어요. 그래 개혁적으로 나간 전경총회장 핵심 되는 사람이 저를 만나자 해서 제가 두 시간 만났습니다. 그래 제가 이야기했어요. 새 대결하려 하지 마라, 큰 것 하지 마라, 앞으로 당신이 진짜로 개혁을 하려면은 좋은 목회가 양성하려고 해라.
8.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가, 이것으로 가치판단으로 나가야 된다. 사람을 키운다 해도 언젠가는 배반하고 열매는 없지만은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나가는 신앙 생활, 그 생활을 하도록 주님은 자기의 몸을 버려서 교회를 만드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겁니다.
전도사는 목사 후보생 이거든요, 새 대결은 교회당을 짓는 것하고 같아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요 건물이나 땅이나 이런 것 살려고 안 해요. 사람을 기르는 거에요. 이 사람을 기르는 것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요, 건물을 짓는 것이나 사람을 짓는 것이나 배신감과 허무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못하는 거에요. 제가 교회당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왜 생겼는가, 많이 나를 지배했는가 하면은 제 아버지가 김천시 옆에 있는 어모면 이라는데 면장을 쭉 하셨어요. 그 시골에서 지도자이지요, 그런데 전 재산을 팔아 가지고 어느 날 어모 중앙교회를 짓고는요 전도사로 출발을 해 버린 거에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는 지금도 어디 가다가 구루마든지 옷이 싸면 무조건 사요 맞으면, ㅎ ㅎ 왜 그런가, 저에게 트라우마가 있어요.
초등학교 때 옷이 한 벌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옷이 버려져서 엄마가 빠니까 아침에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친구 옷을 입고 갔는데, 그날 학교 가서 나는 부끄러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때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엄청 컸어요. 그것 팔아서 예배당 짓고, 목사 되어 가지고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안 팔고 돈 가지고 목사 되어도 되는 것이고, 목사 안 되면 더 좋은 것이고, 아버지에게 제가 참 많은 반항을 했어요. 그러다가 신학을 하고 제가 목사가 되어서 그곳을 찾아가 보았어요.가서 봤는데, 없어요. 옆에 보니까 돌로 지은 예배당이 잘 세워 져 있는데 그 허무한 마음은 말로 할 수 없어요. 이렇게 없어질 것 아버지가 지어서 나에게 이 상처를 줘, 나는 앞으로 목회할 때 그렇게 안 해야 되겠다.
인간이 지은 건물은 언젠가는 사라지는데,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죽는 사람에게 집중해야 되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우리 교회 아이를 사랑하는 거에요. 그것도 여러분 아셔야 되요. 건물도 사라지지만 사람도요 사랑하면은 배신에 대한 감정을 극복해야 되요. 그것 안 하면은 포기하게 되지요. 우리 교회에도요 지금 보면 참 요만했든 찬이 제가 이름 안 들어간다고 또 우리 아들 이름 안 들어갔나 시험 들지 말고요, 지환이 보민이 요런 것들이 커서 중학생이 되어 있어요. 얼마나 제가 사랑하고 했는데 요놈들 중에 배신한 놈도 있어요. 지환이 요놈은 안 나와, ㅎ ㅎ 그래도 또 해야지요.
여러분 또 보람도 있어요. 그래 이 보람은 천국의 상급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지환이를 사랑한 것만이 나에게 상이 될 것이다 저는 그래 생각해요. 또 언젠가는 지환이도 들어올 것이고 기다림이, 지난주일 효영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큰일 아버지가 당했잖아요. 참 같이 대화도 하고, 격려도 하고, 볼 때마다 그랬는데, 이제는 청년이 되어 가지고 지금은 뭐라 하는지, 우리 때는 육체미라 그랬어요 ㅎ ㅎ 육체미 대회 나가 가지고 은메달 땄다면서 교회 와서 내 방에 오더니만 뭣이 쾅, 힘도 얼마나 센지, ㅎ ㅎ 난 문 부서지는 줄 알고 빨리 나가 보니까 떡 서 있는데, 목사님 은메달 걸어 주는데, 잘 키워 주어서 감사합니다. 참 보람은 있는데 가만히 앉아 생각할 때 효영이를 내가 사랑한 것은 이렇게 보상을 다 받는구나, 사랑 했지만은 열매가 없는 그것만이 주님 앞에 기억이 될 것이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의 가치판단과 우리의 삶의 선택이 우리는 전부 진리 논쟁으로 가요, 그 진리 논쟁이 이래야 나중에 잘 될 것이다, 안 될 것이다, 같다 끌어 붙여요. 오늘도 여러분 과거의 문제를 보면서 오늘의 시각으로 가치판단 해 버려요. 교회당은 우리 한국은 70년대 80년대 그때는 교회당을 짓는 시대였지만 90년대 말 21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이제는 충분히 교회당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도 어떤 교회는 교회당을 지을 형편이 없는 교회도 있어요.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에요. 그것은 하나님만이 판단하는 거에요. 어느 것이 교인들을 행복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어느 것이 교회를 세우는가? 이 가치판단으로 오늘날까지 교회가 왔어요.
저만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가치판단에서도 정말 이래 되어져서 참 얼마나 기쁨이에요. 10년 동안 구역장 이 상 다 받은 거에요 구역장들, ㅎ ㅎ 목사가 칭찬하는 순간 상은 날라 가요 천국의 상은. 교회에서 메달 주지 않고, 기념패 주지 않고,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과 교회에 감사해서 점심을 내는 이런 교회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이것이 보편적이어야 되는데, 그래야 못하는 분들도 미안하지 않고, 했다고 어깨 힘줄 필요도 없는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가, 이것으로 가치판단으로 나가야 되요. 그래서 이 교회당도 언젠가는 허물어지겠지만 사람을 키워 나간다 해도 언젠가는 배반하고 열매는 없지만은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나가는 신앙 생활, 그 생활을 하도록 주님은 자기의 몸을 버려서 교회를 만드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겁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교회를 허무는 믿음의 강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틀렸다 하지 않고, 너희 주장이 옳고 인정되나 유익한 것도 교회를 세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생각이 틀린 그들을 위하여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 내 자유를 제한하겠다. 거듭나지 아니하면은 절대로 이런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아멘
◈봉헌 기도◈
광야에 주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가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배고픈 그들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배고픔을 해결하시려고 하신 주님 오늘도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교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고, 그래서 물질이 신을 대신할 정도로 사회적인 통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주님 앞에 드리는 예물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와 같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 그 속에 감사의 의미를 부여할 때 5천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남과 같이 오늘 성도들이 드린 이 한푼 두 푼의 헌금이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을 부유하게 하고, 복되게 하는데 아름다운 헌금으로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교회당만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성도들의 모임만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교리적인 입장에서 떠나서, 교회당과 성도들의 모인 모두를 중요한 것을 알고, 시대적 상황 속에서, 때로는 교회당을 위해서 교인들이 희생해야 될 때가 있는가 하면은, 이제는 교인들을 위해서 교회당을 생각을 접어야 하는 때도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가 정말 이 어려운 사회적인 현실 속에서도 우리 집 헌금의 46%가 참여하니까 낙제점은 면해서 60%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지 못하는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목사 되고 당회 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교회가 400세대 이제 75% 이상이 참여해서 이제 남는 것들은 다 겨자씨 헌금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급한 일 당한 것이나, 큰일 당한 사람들을 함께 가족으로 더불어 해결해 나감으로 말미암아 개인에게는 물질에 대해서 자유케 되어지고, 교회를 통해서 참된 먹고 사는 문제에 평화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잘못된 국가관 잘못된 아버지 하나님 회사의 경영관들이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 하나 무너지고 사회적만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생수가 흘러 넘쳐 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강단이 되게 하시고, 성도들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빛 발광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통념 내 속에 형성된 이념, 내 속에 있는 교회의 전통과 규례가 복음으로 폭발해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역사가 설교의 횟수를 더해 갈수록, 설교를 들은 횟수가 더해 갈수록, 우리 교회 신앙 연조가 더해 갈수록, 아름다운 역사로 일어나는 복된 교회 삼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변하지 않는 것 탓하지 않게 하시고, 울며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이 깨달은 바를 하나하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내 삶의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도록 예배 때마다,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성령의 강권적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의사가 하는 일은 골수를 이식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잘 착상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 홍영란 집사 자신의 분신과 같이 딸이 제공한 골수가 잘 착상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건물인 우리 집과 이 속에 있는 교인들의 모임인 겨자씨를 위한 이 모든 일에 적지만은 동참할 수 있는 은혜의 마음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게 하시고, 교인으로서의 의무인 11조를 잘 드려서 이제 교회가 집은 가난할지라도 교회를 통해서 최고의 문화와 최고의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복된 교회로 삼아 주시옵소서.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시고,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경험하도록 교회를 선물로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리화 해서 옳고 그름을 따짐으로 말미암아 공멸해 가는 유대교에게 이 말씀은 나를 증언하는 말씀이라고 하며,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랑의 눈으로 대함으로 말미암아 심판 받을 우리를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아직도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선악을 판단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유익이 되고 어느 것이 공동체를 세우는 것인가의 관점에서 판단해 감으로 우리나라가 세워 지고, 교회가 세워 지고, 이 지구촌의 평화가 깃들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그 모든 것의 쌤풀이 되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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