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거룩한 무리, 성도(고린도전서 10: 18)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9. 26. 22:55

 

 

 

 

담임목사 김종웅

 

거룩한 무리, 성도

고린도전서 10: 18

2019 9 22일 주일 낮 예배

                                                                                                                                               No. 435

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택한 선민이고, 이방인들은 개와 같은 자. 바울이 거듭나고 난 뒤에 사람 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마라. 아카페는 가치가 없는 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그것이 십자가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 이주 전에 2부 지휘자 김인호 선생이 주기도문 찬양을 특송 했습니다. 3부 때는 아주 우렁차고 감동 있는 찬양을 드렸는데, 2부에는 그냥 저음으로 Aㅑ 나보다 못한다, ㅎ ㅎ 할 정도로 그렇게 했어요. 마치고 난 뒤에 나보고 뭐라는 가 하면은 목사님 2부 때에 자기가 이 악보를 가지고 하니까 음이 너무 낮았다고, 그래서 3부에는 찬송가를 가지고 자기가 주기도문 찬양을 했습니다 이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이 악보를 보니까 샵이 3개가 있고, 또 찬송가는 플랫이 2개가 있어요. 제가 음악에 문외 하지만 그 정도는 알아요. 그런데 그 차이가 뭔가, 나는 그저 높고 낮은 것, 도레미파 이 정도는 아는데, 그 샵 3, 플랫2개가 어떤 키이기에 그런 차이가 있는가, 악보를 보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똑 같은 악보를 가지고도 똑 같은 소리를 해 버린다고요.

 

1.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유대교에서 이스라엘들은 이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인가, 이방인인가, 헬라인인가, 구분한다. 종교인이 아니라, 본어개인 예수님을 정말 그리스도로 섬김으로 인하여 달라지는 삶.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목사님이 늘 앵무새마냥 같은 소리를 하고 그 다음에 교인들도 보면은 성경을 읽고 신앙 생활하는데 변화가 없는 고정적인 그런 선입견의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성경을 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은 우리의 삶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변해 져 가요. 오늘도 이 말씀에 보면은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여기에 이 말씀을 그냥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유대교를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은 제단에 속한 자들이 아니냐, 우상 제물에게 바친 사람들은 잘 못된 거니까, 우상 제물을 먹지 말라 정도로 이해를 한다면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에요.

 

이 말씀에 깊은 의미를 알려면은 말씀에 재대로 여러분들이 이해할 줄 알아야 되요. 여기에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대교에서 이스라엘들은 이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인가, 이 사람이 이방인인가, 헬라인인가, 이렇게 사람을 구분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택한 선민이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아닌 저 개와 같은 자들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바울 자신도 처음에는 그래 생각했는데, 32절에 가보면 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이런다고요. 바울이 거듭나고 난 뒤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받아 드리고 난 뒤에 사람을 보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신에 속한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육신에 속했다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나지 안 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안 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같다. 그래서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나 가치판단 하는 것이 세상사는 사람들하고 같다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이 사람들은 구약에 참 이스라엘,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뭐라고 이야기하는 가 하면은 너희들은 이제 유대교인들과 같이 종교인으로 존재하지 말고, 진짜로 거듭나야 된다.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져야 된다.

 

그래서 언제나 종교인들하고, 거듭난 자를 구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그 동안에는 그저 교회에 다니나 안 다니나 가지고 사람들을 신앙을 구분했다면은 이 말씀을 보면서 정말 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가요, 아니면 나는 종교인 인가, 여러분들이 이 부분에 대한 자기 반성이 있어서 이제는 신앙 생활이 여러분들의 인생의 짐이 아니고, 정말 기쁨이 되어지고, 여러분들이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여러분들이 이제는 종교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어개인 예수님을 정말 그리스도로 섬김으로 말미암아 그 사건을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내가 가치판단이나 내 삶의 선택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달라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가 연조가 더해 갈수록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대 되어져 가는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됩니다.

 

여기에서 그러면은 누가 육신의 이스라엘이냐, 왜 육신적 이스라엘을 보라고 이야기했는가, 라고 말을 하면서 그 뒤에 뭐라는가 하면은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만은 고린도 교회에 믿음이 강한 자들, 신학적 지식이 있는 자들, 신학적 통찰력이 있어서 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어, 우상은 없는 거야,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는 부정 탄 게 아니야, 그냥 고기야, 왜 우상이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것을 먹어도 된다고 하는 그들에게 지금 육신적 이스라엘이 왜 유대교가 그러는 줄 아느냐, 왜 너희들이 하나님을 그래 열심히 섬기면서 유대교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안 한 줄 아느냐?

 

2. 너희들이 그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고, 촛불을 밝히지 않지만은 그들과 함께 한 동료로서 교제를 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우상숭배 자와 같은 거야. 그래서 그런 짓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는 자신을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함을 왜 누리지 못하는 줄 아느냐, 너희들이 제물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제단에 참여하는 것, 이방인의 모든 삶과 똑 같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지금 유대교와 같이 믿고 있는 거야,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거야,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여기에 제물을 먹는 자는 제단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냐, 이 말도 바울이 자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레위기 7 6절에는 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에 먹을지니라 라는 말씀이 있어요. 이 말씀은 제사장인 남자들은 제사를 드리고 난 뒤에 음식을 먹을 때에 거룩한 곳에서 먹어라 라는 요런 말씀만 한다면은 그냥 악보를 보고서 도레미파만 아는 것, 키를 모르는 것과 같은 것 같아요.

 

여기에 제사장인 남자들이라는 말은 이 제단에 참여하는 제단의 동무들이라는 말이에요. 제사장들의 남자라는 말은 뭔가 하면은 제사장으로서의 동료들, 같은 부류의 사람들, 다른 말로 하면은 같은 가족들, 같은 운명 공동체의 사람들이 제단의 제물을 먹는 것 아니냐, 이런 말이에요. 이 말을 통해서 말 해주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은 너희들이 저 고린도 지역에는 아프로디테 신전하고 포세이돈 신전이 큰 두 개의 신전이 있어요. 잘아는 대로 아프로디테 신전은 사랑의 여신을 섬기는 것이고,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을 섬기는 거에요. 고린도는 항구 도시이기 대문에요. 그래서 그 곳에 가서 제사를 드릴 때에 이 사람들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아프로디테 신이 어디 있어, 포세이돈 신이 어디 있어, 신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지, 그래서 그 곳에 가서 자기는 향불에 초도 밝히지 아니하고, 그 신전에 절도 안 하면서 그 곳에 온 사람들과 어울려서 고기를 먹고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들이 그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고, 촛불을 밝히지 않지만은 그들과 함께 한 동요로서 교제를 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우상숭배 자와 같은 거야. 그래서 그런 짓 하지마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이 말씀이 여러분들 속에 그저 아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구나, 라고 한다면은 역시 악보를 키는 모르고 도레미파만 아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게 뭐냐 하면은 절에 가서 절밥 먹으면 안 돼, 제사 드리는 제사상의 밥 먹으면 안 돼, 이런 말만 한다고요.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제가 물어 볼게요, 절에 가서 절 밥 안 먹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까, 절 밥만 안 먹으면은 그리스도의 구원이 자신의 삶에 나타납니까, 제사 음식만 안 먹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 있으면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까, 아니라는 거에요.

 

3. 고린도교회 너희들 정말 거듭났느냐, 그러면은 너희들은 그 사람들과 같은 목적으로 인간 관계를 맺어서는 안 돼, 이방인들은 항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교제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해야 된다.

 

지금 이 말씀이 뭔지를 아셔야 되어져요. 오늘도 여러분 고린도후서 16 14절에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마라. 했는데 이 말씀을 그냥 도레미파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은 멍에을 메지 말라는 것은 이방인과 동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 한국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과 동업해서는 안 되는 거에요. 그래 장로가 만일 그러면 장로가 치리를 당한다고, 그러면 여러분 내가 예수를 안 믿는 사람하고 동업을 안 하면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요, 이런 사람들로 우리 교회가 가득 차면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어떤 악보를 봐도 내같이 그렇게 찬양하는 사람하고 같은 거에요. 이 악보를 보면서 여러분 우리 김현호 선생같이 정확한 자기 음을 내는 것이 뭐냐, 동업을 왜 하지 말라고 했는가, 왜 우상 제물을 먹지 말라고 했는가, 이것은 동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이방인들은 항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교제를 하는 거에요. 왜 이방인들이 동업합니까, 내 혼자 힘이 약하니까 힘을 합쳐서 더 많은 이익을 극대화해서 그 이익을 나누려고 하잖아요. 그게 동업이에요. 우상 제물을 왜 이 사람들이 그 곳에 가서 절을 안 하고 향불을 피우지 아니하면서 고기를 먹으면서 그들과 교제를 했는가?

 

당대에 제사들은 길드 중심의 제사가 많았다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교제를 안 하면 내 사업적 손실이 일어난 거에요. 그것 때문에 그 사람들은 그 제사에 참여를 한 거에요. 그 제사에 고기를 음식을 먹으면서 그 사람들과 같은 목적으로 교제를 한 거에요. 그럼 이 말씀이 뭐냐 하면은 동업하지 말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제물을 먹는 자는 제단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냐, 그들과 똑 같지 않느냐, 이 말은 고린도교회 너희들 정말 거듭났느냐, 그러면은 너희들은 그 사람들과 같은 목적으로 인간 관계를 맺어서는 안 돼, 이익을 위해서 인간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인간 관계를 맺는 거야, 너희들이 왜 그 회당에 나와야 돼, 회당을 통해서 내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필요한 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는 거에요.

 

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해요. 이방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나서 컨소시엄[Consortium]이나 카르텔[Kartell]을 맺어요. 그런데 그렇게 맺는 사람에게 상대방을 섬기고,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힘든 일이 일어나는 거지요. 그래서 이방인과 동업 하지 말라, 기독교인을 보호하기 위한 말씀이에요.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동업만 안 하면 되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이 되어지려면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어지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일에도 행복 해집니다.

 

4. 길드 안에서 교제를 하는 그들에게 제물을 먹는 것은 제단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냐, 그 사람들과 똑 같은 목적으로 네가 가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말이다. 이방인과 동업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과 같이 사람의 관계를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갖지 말라는 것이다.

 

왜 화가 나고 힘들어 지는가, 모두다 이익을 위해서 도모 하듯,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다가 혼자 시험 들고 혼자 힘들어 지는 거지요. 교회에도 왜 여러분들이 힘든가, 내가 이 교회에 필요를 채워 주려고 해서 교회를 등록하는 사람은 교회 어떤 형편에서도 행복해요. 이 교회를 통해서 자기의 어떤 원하는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늘 시험에 빠집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이 그저 절 밥 먹지 마라, 제사 음식 먹지 마라는 것도 아니고, 이방인과 동업하지는 말라는 그런 형식적인 말이 아니고요, 교회 다니냐, 네가 정말 거듭났느냐, 사람을 보려고 하거든 이제 이 사람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이 사람을 어떻게 내 사업에 이용해 먹을까, 투자 받을까, 이렇게 인간관계 가지지 말라는 거에요.

 

정말 거듭난 사람은 상대방에게 필요를 채워 주고, 상대방의 이익을 내려고 하는 사람, 고린도 교회의 교인 믿음이 강한 자들이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고, 우상에게 받쳐 진 제물은 그저 고기일 따름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신전에 가서 향불도 붙이지 아니하고, 절도 안 하면서 그들과 함께 길드 안에서 교제를 하는 그들에게 제물을 먹는 것은 제단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냐, 그 사람들과 똑 같은 목적으로 네가 가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종교인인가, 내가 거듭났는가, 무엇으로 아는가, 나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공동체에 참여하거나 교회에 올 때에 어떻게 하면은 나에게 이익이 될까, 그러면 육신적 이스라엘이에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어요. 좀 더 심하게 하면은 그 사람은 천국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 되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려서 성령 받고,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사건을 받아 드려서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면은 그게 없어지지는 안 해요. 왜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시작이 되는 거에요. 저도 여러분 목사로서 싸움이 뭐냐, 그 싸움이에요. 우리 교회에 교인이 하나 등록하면 이 사람 어디에 써먹을까, 성가대 써먹을까, 이 사람 교사로 써먹을까, 뭐로 써먹을까, 그래 되면은 육신적 목사에요, 종교인의 목사에요. 누군가 우리 교회에 오면은 저 사람은 필요가 뭔지를 내가 채워 주어야 되겠다. 어떻게 저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질까, 참 목사에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악보를 보는 능력이 없으니까, 어떤 악보를 갖다 대도 같은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는 눈에 능력이 없으면은, 어떤 성경을 가지고도 그저 절 밥 먹지 마라, 제사 음식 먹지 마라, 이방인과 동업하지 마라, 이런 말만 한다고요. 그 말씀 속에 있는 깊은 의미를 모르는 거에요. 여러분 먹지 말라는 말이나, 이방인과 동업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과 같이 사람의 관계를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갖지 말라는 거에요. 그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이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런 말을 할 때 참 조심스러워요.

 

5. 왜 내가 목사가 되어야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 처절하게 네 싸움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교인들 이용 잘해서 종교적인 과업에 성취를 해서 내 이름 내세우려고, 종교인 목사다. 내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교인들이 행복 해지게 하려고, 참 목사다.

 

여러분들이 이런 삶을 살아 봐야 이 말씀의 진리가 확 들어 나기 때문에 제 간증을 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 드리세요. 제가 우리 부 교역 자들에게도 왜 내가 목사가 되어야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 처절하게 네 싸움이 있어야 된다고 그래요. 교인들 이용 잘해서 종교적인 과업에 성취를 해서 내 이름 내세우려고, 종교인 목사에요. 내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교인들이 행복 해지게 하려고, 참 목사에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돈을 알면 안 되요. 돈 보이면은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가지면서 여러분들의 많은 인생의 선택이 있잖아요. 그 선택에서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복이 됩니까 라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인간의 관계의 선택이나, 교회의 선택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은 종교인 육신적인 이스라엘이라는 말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신학적 지식은 확실히 있어 가지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도 알고, 우상에게 받쳐 진 제물은 고기일 따름이지 부정 타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신전에 가서 향불을 붙이지도 아니하고, 절도 안 하면서 길드 중심의 제사에 참여해서 그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했는가, 왜 동업을 하지 말라 했는가, 그 의미를 알아야지, 악보를 제대로 아는 성악가와 같은 거에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서 인간관계 맺어 동업해, 그런데 너는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한 거듭난 네가 거기에 가면 살아남겠니, 그런 말이에요. 오늘 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왜 교회의 어느 유명한 장로 목사 이야기를 해야 됩니까, 그 사람과 인간 네트워크를 가지면은 내 인생의 도움이 될까 봐, 그것이 성장 일변도 있었든 80년대 90년대에 있었든 한국 교회. 생명은 사라져 버렸지요.

 

옛날에는요 내가 필요한 자리가 내 자리에요.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내 자리에요. 가족은 여러분 생각 해보세요. 오늘날 가족이 왜 분개되고 파괴 되어져요, 진짜 부모는요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는 부모에요. 나에게 짐이 되어지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그 부모를 공경하려고, 그게 진짜 자식 아니에요.

 

6. 에로스는 무엇에 가치를 느껴서 가지려고 하는 욕구가 에로스다. 본성적인 존재의 마음이다. 아카페는 필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나에게 오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생겨나기를 시작한다.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안에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영적인 가족이 되어져서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 사이에 성령의 교통하심이 뭐에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교제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 인간이 만든 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 책에 써 놨잖아요.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을 이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요 피조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줄려고 그게 아카페에요 아카페, 에로스와 아카페를 사전 찾아서 이해하지 마라 말입니다. 에로스는 인간의 사랑이에요. 유한한 인간은 항상 무엇을 채워서 자신의 삶을 유지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에로스는 무엇에 가치를 느껴서 그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구가 에로스에요. 그냥 남녀간의 사랑 정도가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적인 존재의 마음이에요. 아카페는 필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조건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이, 그것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요한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기에서 본 거에요. 그 사랑을 받아 드리면서 자신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거에요. 내가 그 동안 유대교에 있을 때에는 항상 무엇에 가치를 느껴서 그것을 가지려고 하는 육신적 생각으로 가득 찼었구나, 성령님이 나에게 오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생겨나기를 시작하는 거에.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이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은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이 말은, 제단에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를 먹으면은 우상숭배하는 자와 같아, 그것 먹지마, 이래 버리면은 악보 못 보는 사람과 같아요. 절 밥 먹지 마 이런다고요, 제사 음식 먹지마 이정도 밖에 안 되요, 그것 안 먹는다고 하나님 나라 이루어집니까? 왜 그들과 함께 음식 먹어, 그들과 같이 길드를 통한 이익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 하지 않나, 그러면은 유대교가 그런 육신적 생각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유대교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안 했든 거에요. 구약에 참된 이스라엘은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내가 왜 이스라엘이 되어져야 되요, 타인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여러분 이 길은 살아 보면은요 소유로 느끼는 재미하고 또 다른 재미 있어요. 이제까지 예수 믿는 기쁨 못 느꼈습니까, 신앙 생활의 즐거움 못 느꼈습니까, 교회 탓 누구 탓 하지 말고 내가 육신을 따라 산 이스라엘과 같았구나, 사람만 보면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교회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했고, 내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어서 유익된 삶을 살려고 하지 안 했구나, 내 안의 성령의 탄식조차 없었구나, 이 말도 한번 살아 봐야만이 깨달을 수 있는 거에요.

 

7. 싸움이 이제는 타인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삶, 그 싸움이 예배 시간에 있어야지 된다. 기도 그 싸움에서 승리하려고 기도해야지. 영적인 싸움에서 실패 했다가 일어섰다가 한걸음 한걸음 가는 것이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삶이 180도로 뒤돌아 가는 삶이 되기를 바래요. 여러분들의 싸움이 이제는 타인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삶, 그 싸움이 예배 시간에 있어야지요. 기도 그 싸움에서 승리하려고 기도해야지요. 그 싸움에서 승리하려고 말씀 들어야지요. 그래서 그 싸움 한번 살아 보면은 참 힘이 듭니다 내 자리는 여기까지다 하고 이리로 왔는데 여러분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그 싸움하면서 사는 목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올 때에 이 교인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육신을 따라 사는 이스라엘과 같은 종교인으로서의 목사가 내 속에 존재해요, 그러나 또 내 한 속에 어떤 교인도 섬기려고 하는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하는 참 목사가 내 속에 존재해요.

 

영적인 싸움에서 실패 했다가 일어섰다가 한걸음 한걸음 가는 거에요. 이 싸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무가 되자는 거에요, 그래야 거룩한 무리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아모스에 뜻이 의합지 아니하고 어떻게 같이 길을 가겠느냐, 그 뜻이 뭐에요, 둘이 힘을 합쳐서 더 많은 힘을 가지고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육신적 뜻의 의합이 아니에요. 그런 세상 속에서 바보와 같이 내어 주는 그 삶의 뜻이 하나 되어져야 되요.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해 주신 그런 것, 왜 한국의 가정이 파괴 됩니까, 몰라요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지요, 부모들이 자식을 이용하려고 해요. 자식은 부모를 이용하려고 그래요, 그게 뭐 부모 자식입니까,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게 부모고, 짐만 되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진정한 자식이지요, 그게 어디서부터요, 말씀에서부터. 아멘

 

◈봉헌 기도◈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의 재물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얻기 위한 형식적인 재물이 되지 않게 해 주시고, 형제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는 예물, 형제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영적인 교제가 있는 아름다운 예물을 열납 해 주어서 비록 큰 교회 부유한 교회는 아닐지라도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있으면은 장로님이 권사님이 집사님이 내 아픈 마음 헤아려 줄 거야, 내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 줄 거야, 시기와 질시 없을 거야, 이런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축도◈

 

오늘도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다가 서로 찢기고 찢기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관계는 이익을 도모하는 관계가 아니고, 나누기 위한 이간의 관계임을 알도록 한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이고 백성임을 깨닫도록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창조자이기에 어떤 인간도 어떤 사람으로 대체하지 않고, 한 영혼도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육신적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는 마음을 거슬러서 사람을 섬기려고 하는 은혜의 마음을 주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위로와 교통하심이 오늘도 교회 안에서 인간의 관계를 이익을 도모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기 위한 아름다운 관계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보도록 선물로 준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