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완료형의 신앙과 미 완료형의 신앙(고린도전서 10: 25-26)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10. 26. 03:14

 

 

담임목사 김종웅

완료형의 신앙과 미 완료형의 신앙

고린도전서 10: 25-26

2019 10 20일 낮 예배

                                                                                                                                             No 439

25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아멘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기쁨의 소식이다. 우리를 얽어 매는 많은 것들 특히 사단의 권세에서 주님이 노임을 받게 한 것이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약의 모든 제사를 단번에 완성해 버렸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여러분들이 스토콜롬 증후군이라고 잘 아시지요. 스웨덴의 스토콜롬에서 인질범이 사람들을 인질로 잡았는데, 나중에 인질범을 제압 하고 풀어 주니까 그 인질에 잡혀 있든 사람들이 인질범을 옹호하고 편드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어요. 그러한 현상을 스토콜롬 증후군이라 이러지요. 또 사람들은 참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런 것만이 아니고,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은 요즘은 그런 것이 없어졌겠지만 우리 시대에는 점호를 하고 나면은 군대 말로 한따까리 해야 되요.

 

1. 율법주의를 가지고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하고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억압당하고 희생을 당했다, 그것이 유대교였다. 유대교에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런 사단의 권세에서 자유 함을 주셨다.

 

좀 매를 맞든지 기압을 받아야만이 편안하게 잠이 드는데, 어떤 날에는 고참이 기압을 안 주고 안 때리면은 불안해 가지고 잠이 안 와요. 여러분 이런 것이 죄인 된 인간의 신념 속에 있는 이상한 현상입니다. 이런 것은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고, 교회 안에도 여전히 존재해요. 여러분들을 참 억압을 한다고, 죄와 사망으로 억압하는 것, 이런 것들이 뭐냐 하면은 저는 종교적인 학대와 억압이다 이래 봐요. 그래서 그 억압과 학대에서 노임을 받게 한 것이 그리스도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기쁨의 소식이라는 거에요. 우리를 노임을 받게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데, 그 노임 받은 그 기쁨도 잠깐이고 사람들은 다시 억압과 학대 속으로 들어가려고 그래요.

 

그래서 갈라디아서에 보면은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는데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런 말씀들이에요. 교회 안에도 여전히 이런 영적인 스토콜롬 증후군 증세가 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세우신 초대 교회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교인들 중에 참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우리에게 얽어 매는 것이 뭔가, 뭐 신학적으로는 우리가 율법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생활 용어로 신앙 용어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장로님 그래 믿어 가지고 하나님이 복 주시겠어요. 권사님 그래 믿으니까 자녀들이 잘 안 되는 거야. 이런 것들이 다 율법주의고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을 얽어 매기 위한 영적 스토콜롬 증후군에 빠지게 하기 위한 용어들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 좀 안 되면은 내가 하나님 앞에 뭘 잘못해서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요. 그런 생각 율법주의를 가지고 종교적인 과업을 성취하고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억압당하고 희생을 당해요. 그것이 유대교였어요. 구약도 아니에요. 그런 유대교에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런 사단의 권세에서 자유 함을 준거에요. 예전에 우리가 그 인질범에 매여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학대이고 억압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하시고, 참 자유를 주신 거에요. 그 예수님이 어떻게 자유를 주었는가, 하나님이 사랑 이시라는 거에요.

 

그럴 때에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도 자기 말 잘 듣고 착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은 자기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진심을 몰라서 가출하려고 그러고, 마음대로 자행 자지 하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사랑한다는 말은 내 마음에 들고, 나하고 성향이 같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그것은 사랑 아니에요.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사랑한다는 거에요. 이 사랑이 우리를 얽어 매는 많은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한 거에요.

 

그런데도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저 교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 우리가 참 책은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많은 은혜를 받아서 사람들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면서도 실제의 삶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사단은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의 그 탐욕을 이용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자기가 원하는바 데로 매이게 함으로 자기가 원하는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는데, 신앙이 여러분들의 삶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해요.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도 저는요 참 그런 자유를 주는데, 다시 종의 멍에를 메려고 할 때에 바울과 같이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이 있어요.

 

2. 종교적으로 얽어 매는 그래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유대교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하나님이야,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큰 기쁜 소식이다.

 

여러분들이 이런 부분들을 아셔야 되요. 우리가 구약과 신약을 이렇게 볼 때에 개혁주의는 구약과 신약이 언약과 성취의 관점에서 봄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을 놓이게 하는 신학이에요.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세대주의가 너무나 만연해요. 구약은 공의의 하나님 신약은 사랑의 하나님 이래 버린다고요. 그래 버리게 되어지면은 여러분들에게 얽어 매는 그 많은 율법주의가 당연시 여겨 진다고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에도 보세요, 절대로 그런 게 아니에요. 구약 성경에도 보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왜 이런 말씀을 하세요, 하박국 선지지가, 하나님이 너와 같이 신앙 생활하면 함께 안 하셔. 이런 사람들에게 임마누엘 하나님을 말씀하신 거에요.

 

그 뒤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은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왜 이런 말씀을 하세요, 당대에 종교인들 제사장들이 너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 해, 이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되게 하시고, 종교적으로 얽어 매는 그래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유대교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하나님이야,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야. 그저 좋아서 호들갑 떠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야, 교회라는 것이 그런 것이에요. 새신 자가 오면 그저 호들갑 떨 때에는 뭔가 자기의 목적을 위한 거잖아요. 그냥 존재 자체가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 여러분 우리 육신의 부모도 마찬가지잖아요. 말 잘 듣고, 착한 일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그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 무슨 부모에요.

 

본심을 몰라 주어서 가출하려고 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그를 위해서도 그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진짜 부모인데, 부모와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은 그보다 더한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곳에 와서 어떤 하나님을 만나는가, 계시 설교를 통해서 이 하나님을 전할 때 받아 드리는 순간 여러분의 삶에는 많은 얽어 매는 것에서 자유 하게 된다고요. 이것이 말씀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인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얼마나 너희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는가, 하는 것도 자꾸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기도하면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져, 복 받아, 이래 버리니까 예수님이 기도 응답이 있는 사람에게만 기쁜 소식이 되어지고, 그런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더 얽어 매임을 당하게 되는 율법주의가 만연한 것이 오늘날 교회지요.

 

그래서 종교적인 목적은 잘 이루어지는데 교인들은 그저 예수님이 기쁜 소식이고 그리스도가 복 되다고 하는 것을 자기에게 복 준 것 가지고 기쁜 소식이라고 해 버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선포가 없기 때문에 복음이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저는 정말 여러분들이 이런 부분에서 정확했으면 싶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많은 얽어 매는 종교적인 억압과 학대에서 정말 예수님 때문에 놓임 받는 신앙 생활하는 것을 참 감사하구나, 이런 사람들은 신앙의 투기를 절대로 하지 안 해요. 여러분 부모도 자식에게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일까 보랴.

 

3.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예수님을 욕하는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다.

 

자식이 제일 힘든 게 뭐에요. 부모가 내 능력을 이렇게 해 놔 놓고, 내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할 때 자식들은 빗나가잖아요. 그것은 잘못된 부모에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능력대로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 다니면서 기쁨이 이런 신앙의 기쁨이 있어야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절대로 능력에 지나친 요구를 안 하잖아요. 저는 30 40대에 장로님이 되거나 이래도 60 70대에 시간의 헌신을 요구하지 안 해요. 여러분 30대에 50 60대에 경제적인 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고요. 왜 안 하는가, 저는 그 하나님을 믿거든요. 이런 것에서 자유 함을 얻어서 여러분들이 능력에 맞는 그런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든든히 세워 지고, 여러분들이 그 신앙의 자유에서 기쁨을 누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는데, 자꾸 또 다른 종의 멍에를 메려고 하는 것, 그 중심에 뭐가 있는가 하면은 내가 이래 믿어서 이래 안 되는가, 사단이 여러분들을 얽어 매는 제일 무기가 그 무기에요.

 

얼마나 그런 것이 설교에 많고, 또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그런 마음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해요. 그래서 성경은 요한복음에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거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이처럼 이 뭐냐 하면은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사랑하신 것, 어떤 자를,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죽으셨다 안 해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착한 자를 위하여 칭찬하지만은 사랑하지만은 그런 사람들만이 필요하다고 하지만은 부모만큼은 죄인 된 자,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그를 어떠한 의인과 바꾸지 않는 것이 보모인데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한국에 너무나 많은 율법주의가 횡 횡 하고, 그래서 교인들은 마치 그래 믿는 것이 제대로 믿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왜 기쁜 소식인가를 몰라요. 그런 것은 뭐냐 하면은 역사적 정황 속에서 성경과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가 하면은 유대교가 그래 믿으면 복 못 받아,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질로 잡았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인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그 유대교에게 하나님은 구약에 나는 너희를 창조하신 나는 그런 하나님 아니야,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자기를 욕하고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는 그 예수님을 욕하는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잖아요.

 

여러분 정말 여러분들이 지금 복음이 뭐냐 하면은 정말 하나도 마음에 안 더는 나를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에게 사랑이라는 거에요. 이것을 받아 드리는 순간 여러분들의 삶은 새로운 삶이 전개[展開]가 되어져요. 여러분들에게 절대로 이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되요, 그런 말이 뭐냐 하면은 이런 거에요 친구들이, 우리 엄마가 이번에 내 공부 잘했다고, 스마트폰 바꾸어 주었다고, 사탄의 속삭임이에요. 내가 예수 잘 믿고, 뭐 잘했더니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복을 주었어, 대한민국에 이런 간증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그 사람과 같이 복 받으려고 자기의 능력에 지나친 헌신을 하다가 안 되면은 실족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요. 그게 율법주의에요. 그게 유대교였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도 나는 이래 가지고 하나님 복 받았다고 하는 것은 친구가 같이 가출을 도모하게 하는 악마의 속삭임인 줄 알아야 되요. 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고, 선생님은 공부 잘 하는 아이를 사랑하는지 몰라도 네 엄마는 공부를 못하는 너를 그저 존재 자체를 좋아해, 그게 부모야, 누가 이런 조언 합니까, 친구가 아니고, 어른이지요. 인생을 아는 자이지요. 이것이 부모를 아는 자이지요.

 

4.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이 땅에 오심도 그 정황 속에서 이해 해야 된다. 구약성경을 하박국 선지자는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왜 다시 종의 멍에를 메려고 하나, 그런 복음을 전하는 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지어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신앙이 새로운 출발이 되어져야 되요. 무엇이 여러분들에게 복된 소식인가, 내 이랬더니만 하나님이 복 주셨어, 친구가 나 이랬더니만 우리 엄마가 이번에 메이커 옷 사주셨어, 그 말 듣는 친구는 뭐냐 하면 우리 엄마는 맨날 나보고 잔소리만 하는데, 내가 이런 집구석에 언제 벗어 날고, 결론이 그래 나오잖아요. 성경은 그런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왜 이런 것들이 있느냐, 좀 여러분들이 성경 아무나 해석하고 설교 한다고 해서 그것이 설교고 해석이 아니에요. 성경에는 이런 해석과 이런 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논쟁이 있었고 이러는지 몰라요. 이름만 장로교 간판이 있다고 장로교가 아니에요.

 

개혁주의 신앙을 표가 한다고 해서 개혁주의가 아니에요. 개혁주의라는 게 그런 거에요. 성경을 구악과 언약의 관점에서 봐야 되요. 세대주의로 보면 안 되요. 구약은 공의의 하나님인데, 신약은 은혜의 하나님 전부 잘못된 관점에서 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하나님을 못 보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역사적인 정황 속에서 성경과 정황 속에서 성경을 이해하셔야 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이 땅에 오심도 그 정황 속에서 이해 해야 되요. 구약성경을 하박국 선지자는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 네가 잘할 때 함께 있는 게 아니다. 그는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지기 못하는 하나님이다 왜 너를 지은 자 이기 때문에. 이 선지자 말을 안 들었든 거에요.

 

하나님 말씀대로 잘살고 축복하면 천대까지 복 준다고 하지 안 했나, 율법주의로 만들어 버린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얽어 맨 거에요, 그 이면에 사탄이 있는 거에요. 그게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거에요.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게 뭔지를 제대로 아셔야 되요. 율법주의 아래 있는 것이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신 거지요. 그것을 보면서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아니하고, 더 이상 억압과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느니라 진짜 매이지 않는 자유를 주셨노라.

 

그래서 예수님은 나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구나, 바울도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해 주셨느니라. 그런데도 갈라디아서에는 그래 믿으면 복 받지 못해. 하는 유대주의 자들이 와서 주신 자유를 억압해서 다시 메려 하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왜 다시 종의 멍에를 메려고 하나, 그런 복음을 전하는 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지어다.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다시 조건적 사랑으로 바꾸어서 사람을 얽어 매려고 하는 것이 악마의 속삭임이고,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

 

제가 우리 교회에 여러분들에게 전한 복음이 이런 것이잖아요. 민수기도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민수기 강해할 때에 가데스바네아 사건이 얼마나 중요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걸어왔을 때 가데스바네아 가데스라고하는 오아시스에 왔을 때에 정탐군을 보내잖아요. 젓과 꿀이 흐르는 너무나 좋은 땅이었어요. 그리스도안에는 너무나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있는 땅이에요. 여러분들이 그 풍요라는 것은 남들보다 돈이 많은 풍요가 아니에요. 저는 풍요를 어떻게 보는가, 얼마를 가져야지 부자가 되느냐, 정말 웃기는 이야기거든요, 저는 풍요라는 것이 뭔가, 오늘 쓸 돈 있는 것에 만족한 사람은 제일 풍요로운 사람이에요.

 

5. 율법주의는 조건절이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에게 조건을 건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 조건을 없애고 이유를 거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능히 이기리라. 큰 축복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돈만 있으면은 행복해 하는 사람, 하나님 믿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속에 뭐가 있는가 하면은 아낙 자손이 있었다는 거에요. 거대한 거인의 자손, 그게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의 그 풍요에 인도하지 못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율법주의에요 사탄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적 사랑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우리를 이곳에 와서 죽이려고 하나,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까지 인도했나, 구원한 모세를 원망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그런 자만을 사랑한다 라고 하는 그런 율법주의에 빠지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은 예수 믿어 가지고 나를 이렇게 죽게 만들려고 하는가?

 

자유의 복음을 이래 믿어도 되는가, 그런 그들에게 여호수아와 갈렙이 뭐라는 가 하면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이 땅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우리가 올라가자, 능히 취하리라. 굉장한 사탄의 유혹이 있는 잘못된 번역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 하시면이 아니고요, 여호와께서 기뻐 하시니에요. 이 구절과 조건절은 너무나 달라요. 율법주의는 조건절이에요. 사단은 언제나 우리에게 조건을 걸어요. 성령은 우리에게 그 조건을 없애고 이유를 걸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능히 이기리라. 여러분 어떤 하나님 믿으세요, 여러분들의 복음은 뭐에요, 이랬더니만 하나님께서 복 주셨다, 그분의 간증과 같이 나도 이래서 복 받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좋아. 사단의 음성이에요.

 

여러분들을 얽어 매려고 하는 영적 스토콜롬 증후군에 빠지게 하는 잘못된 가짜 복음이에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뻐하세요, 예수님께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못하도록 구약의 제사를 완성한 거에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여러분들이 성경을 구속사에서 성경을 보는 게 그런 거에요. 구약은 레위기 법이 레위기가 예배잖아요, 그 레위기 법에는 보면은 짐승을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제사를 하고 이런 것들이 좍 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는 험 없는 짐승을 잡아서 이런 경우에는 이런 짐승을 잡고, 이렇게 잡아서 번제와 뭐 화목제 소제 이렇게 드리라고 이런 제사를 드렸어요. 지금 우리 그래 안 드리잖아요. 왜 안 드리는 줄 알아야지요.

 

구약에는 공의의 하나님이라서 그랬고, 신약에는 은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의식의 법이 없어 그건 신학자들의 이야기에요. 언약과 성취의 관점에서 보면은 그 제사의 제도는 뭐냐 하면은 레위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을 얻는 부여하는 것이 제사였어요. 그래서 그 짐승에게 자기의 죄를 증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 여러분들이 가장 큰 축복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히브리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당당하게 나아갈 자격을 얻었다 그래요. 그런데 종교인들이 그 자격을 얻게 하는 은혜로 얻게 하는 그 제사를 통해서 사람들을 얽어 맨 거에요.

 

6. 유대교에게 레위기의 제사는 그런 게 아니야, 더 이상 자격에 부여한 제사를 통해서 사람을 얽어 매지 못하도록 완성 시켜서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를 기쁜 소식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격을 주신 것을 받아 드릴 때 주님 아니면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그래서 제사를 드리면 드릴수록 더 얽어 매는 유대교에게 레위기의 제사는 그런 게 아니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약의 모든 제사를 단번에 영원히 완성해 버린 거에요. 더 이상 자격에 부여한 제사를 통해서 사람을 얽어 매지 못하도록 완성 시켜서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를 기쁜 소식이다. 여러분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려면은 어찌해야 되는가, 그 동안에 내가 얼마나 자격을 얻기 위하여 애썼는가, 얽어 매였는가,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은 그런 자격을 부여해서 우리를 받아 드리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격을 주신 것을 받아 드릴 때 주님 아니면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앞에 여러분들에게 용어대로 말씀 드린 대로 하면은 우리 엄마는 공부 잘하는 동생만 좋아해, 전부 자격으로 사랑의 대상을 삼으니까 가출하려 하잖아요.

 

그런데 부모는 어떤 부모에요, 공부 못하는 그를 위해서 그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잖아요. 여러분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저 가정은 쟤만 없으면 행복하다 해도 낳은 부모는 걔 때문에 기뻐해요.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얼마나 모독하는 거에요. 조건의 하나님을 만드는 순간, 이 사단의 공작이에요. 여러분들에게 조건의 하나님을 셋팅 시키는 순간 인질범에 매이듯이 셋팅 시킨 자에게 매임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손가락질 하는 대로 움직이잖아요. 자기의 능력에 지나친 헌신도 기꺼이 해 버리잖아요. 그래서 위대한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지만은 여러분들이 삶의 유익은 없잖아요.

 

오늘도 여러분 이 본문의 말씀 제가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면은 이 말씀에 대한 이해가 이런 거에요. 먼저 제가 이것을 말씀 드려요.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도 저는요 참 이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은혜 받는 게 뭔지를 몰라, 교회 와서 참 한 주간 살고 지쳤는데 위로 받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해요, 그게 은혜 아니에요. 전자가 은혜에요. 내가 이제까지 말한 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해 드릴게요, 오늘날 저는요 왜 이 복음이 여러분들 속에 참 자유와 행복과 평안을 주지 못하는가, 기독교의 역사에 이런 교회들 없어요. 저는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 노래방이야, 게임방이야, 옛날에는 여러분 찬양을 할 때에 기타도 못 치게 했대요, 왜 그랬는가 교회는 노래방이 아니라는 이야기에요. 게임방이 아니라는 거에요.

 

저는 그런 근본주의적 신앙이 아니고, 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거에요. 학생이 노래방 가고, 게임방 가면 잘못되었습니까, 아니에요. 공부 하다가 가서 스트레스 풀 수도 있어요. 어떻게 맨날 사람이 맨날 공부만 하고 해요.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싸이면 노래 부르다가 풀고 다시 공부하고, 공부 하다가 스트레스 싸이면 한 시간쯤 게임하고 풀고 다시 공부하고, 그런데 학교가 얘들 스트레스 풀려고 노래방 기계 갔다 놔 놓고 학교가 계속 학교가 노래방만 틀어 주면은 아이들이야 끝내 주는 거지요, 유익이 아니에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에요. 공부조차도 많은 지식을 쌓아서 출세 하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게 공부에요.

 

그래서 저는 학교는 검정고시 학원도 아니고, 방통대학도 아니라고 하는 거에요. 성경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 교육이에요. 전인적 교육이라는 게 한 사회의 구성으로서의 자기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건강한 사회가 되어지고, 자신의 삶의 유익성을 위해서 학교는 존재하는 거에요. 그런데 오늘날 제가 보는 한국의 교회는 노래방이 너무 많아, 그래서 교인들 조차도 아이구 목사님 우리 교회는 왜 뜨겁게 찬양 안 합니까,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교회 와서는 여러분들이 학교와 같이 여러분들의 삶을 유익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 생활하시고, 이것만 있어서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나 여러분들이 구역별로 스트레스 풀고 노래방 기도원 가보라 하잖아요. 또 가끔 여러분들에게 스트레스 풀라고 찬양 사역자인 중의 최고의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김현호 불러 놨는데, 제가 볼 때에 전부 금붕어라 입만 빵긋 빵긋하지 이 훌륭한 인도 자에게 들어가지는 안 하고, 맨날 우리 교회는 뜨겁지 안 해 한다고, 그러면 어쩌란 말이야, ㅎ ㅎ 여러분 이 부분 아셔야 되요, 교회는요 학교에 공부하러 와야 되요, 한국의 학교들이 전부 노래방 같이 게임 방 같이 되었을 때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7. 고린도 교회가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어야 되느냐 안 되느냐를 가지고 싸운다 그게 율법주의다, 경건주의 분리주의 이런 신앙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단의 권세를 이미 이겼느니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 때문이다.

 

한국의 학교가 지금 전부 검정고시 학원과 방통대학 같이 지식을 전달하는 그런 학교로 전락해 버렸잖아요. 그 지식이 얼마나 그 사회에 유익이 되게 하는 학교가 없잖아요 전인교육이. 오늘도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앞으로 은혜가 없어 이런 말 하거든 목사님 설교에 은혜가 없어 하거든 그건 율법주의에요, 세속주의에요.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 설교인데요 지금, 그런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목사고 사랑하는 하나님이세요. 오늘 그 말씀이 이 말씀이에요. 오늘 여기에 보면은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 말씀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듯이 고린도 교회가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어야 되느냐 안 먹어야 되느냐를 가지고 많이 싸우잖아요, 그게 율법주의에요.

 

그래서 먹어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고기일 따름이야, 하고 먹는 그들에게 그 고기 먹는다고 너에게 유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가리는 것이,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으면은 혹시 부정 타고 하나님이 노할까 싶어서 안절부절 하는 그들에게 경고하는 말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무시하지 마세요. 지금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으면 부정 탄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것이 잘못된 경건주의에요. 분리주의에요. 이런 신앙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라는 거에요. 왜 우리 하나님은 사단의 권세를 이미 이겼느니라. 오늘도 여러분들이 교회 다니면서도 징크스에 매여 있다든지 아니면은 차를 사면은 십자가를 달아 놔야만이 마음이 편하다든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에요.

 

그것이 잘 믿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에게 매 맞을까 봐 주일 성수 하고, 하나님에게 무엇 빼앗길까 봐 11조하고 그래서 완벽한 신앙 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에요. 여러분 그런 그들에게 안절부절 하는 그들에게 묻지 말고 먹어, 왜 그랬는가, 오늘도 여러분들이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날 때마다 하잖아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란입니까 곤고 입니까 굶주림 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한 칼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사단은 때로는 환란도 주고, 곤고도 주고, 굶주림도 주고, 헐벗음도 주고 위협하기도 하지 어떻게 그래 믿어 가지고 하나님 기뻐하시겠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 때문이지요.

 

8. 창조주 하나님은 그 어떤 인간도 존재하는 자체를 사랑하셔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다면은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 임이라. 개혁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이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이 확신이 예배 때 그냥 의식으로 하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요. 이 확신을 가지고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 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기쁨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사단이 큰 사단이 있을 지라도,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나를 어쩌지 못해, 여기에 얼마나 자유와 평안이 있어요. 이런 생각을 하고, 신앙 생활하고 믿으라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었는데, 고린도 교회는 우상에게 받쳐 진 고기를 안 먹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안절부절 하는 그들에게 그 신앙 잘못 되었다.

 

? 하나님에 나아갈 자격을 얻는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너희를 억압하고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는 그 유대교에게 더 이상 사람을 얽어 매지 못하도록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누구든지 이 사실을 받아 드리면은 누구든지 창조주 하나님은 그 어떤 인간도 존재하는 자체를 사랑하셔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다면은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그러잖아요, 나는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러 왔다. 사단은 우리에게 불안을 조성해요. 그 불안을 조성해 가지고 자기가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서 자기대로 따라오게 하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가짜 복음, 너희에게 평안을.

 

자기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격을 스스로 부여해 가지고 그 방법에 얽어 매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순간, 친구는 우리 엄마는 이랬더니만 나에게 이래 주었어, 내가 왜 부모는 울어라 그랬어요, 말 안 듣는 그를, 공부 안 하는 그를, 짐만 되는 그를, 존재 자체를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여기는 그 부모를 받아 드리는 순간, 그 아이는 집이 천국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교회가 천국이 되려면은 이 하나님을 받아 드리는 순간 교회의 모든 율법은 짐이 되지 아니하고, 기쁨이 되어져요. 그 부모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순간 그렇게도 옛날에는 잔소리로 여겼든 공부 해라는 소리가 그리워진다고요.

 

그 신비함이 그리스도의 복음이에요. 그 말씀이 여기에 담겨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 말씀의 신학적 근거가 26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 임이라. 개혁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이에요. 헬라 사상에 의한 많은 잘못된 신앙, 특히 근본주의 같은 경우는 성속을 구분해 놨어요. 교회 와서 찬양하고 예배 드리는 것은 거룩한 일이고, 가서 태극기 가고, 촛불 가는 것은 더러운 것이고, 더러운 게 아니에요. 사상의 자유에요. 모든 것이 선하다는 거에요. 저는 우리 교회에서 그러잖아요. 택극기 가는 것도 선한 것이고요, 촛불 가는 것도 선한 거에요. 일반 은총이에요. 그 일반 은총에 선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특별 은총으로 이끌어 갔어요.

 

이런 것도 모르고 이분법으로 구분해 버려요. 그래야지 그게 다인 줄 알아, 정말 요즘 얘들 말로 미치고 환장할 일이에요. 복음을 알게 되면은 세상의 모든 것은 선하다, 개혁주의 자,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 했는가 하면은 성속을 구분한 유대교에게 사람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더럽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들어가는 생각이 나쁜 게 아니라, 생각을 뱉어 내는 말이 나쁘다는 거에요. 악독과 사기와 투쟁과 질시와 분쟁의 말들, 바울도 뭐라고 그래요,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다. 하나님 모독하지 말라 이런 말이에요.

 

9. 땅과 땅 위에 있는 좋은 것도 모두 주님의 것이니라. 못박는 자들 그들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 주는 하나님의 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애먹이고, 속 썩이고, 반대하는 그들을 위해서도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사랑을 알면은 응답하신 기도에 감사 모든 것에 감사가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우리 사회가 지금 복음 안에 들어가야 교회의 사명이 여기에 있는 거에요 우리 사회를 하나되기에는 얼마나 큰 복음이 있는대도 목사들조차도 말로만 개혁주의라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을 현대어에 번역하면은 땅과 땅 위에 있는 좋은 것도 모두 주님의 것이니라. 여러분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 임이다. 그것을 위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의 주장만이 옳다고 하고, 여러분들을 얽어 매 가지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게 하고,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악한 무리들, 정치인만이 아니고 종교인들 중에서도 많아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말씀 드려요, 우리 교회 와서 정말 노래방같이 스트레스 풀려 하지 마세요. 그건 기도원에 가세요 가끔, 게임 방에서 얘들 스트레스 풀듯이 교회 와서 예배시간에 스트레스 풀려 하지 마세요. 목사님에게 위로 받으려고도 하지 마세요. 바른말 들으려고도 하지 마세요. 목사님은 바르고 좋은 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사랑은 애먹이고, 속 썩이고, 반대하는 그들을 위해서도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사람 되게 하는 것이고요, 이런 전인적 교육을 하는 것이 학교이고 교회에요.

 

성경의 지식을 전달하는 검정고시 학원도 아니에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은혜 받았다는 말을 위로 받았고 스트레스 푸는 것을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은 악마의 속삭임에서 나온 소리인 줄 아셔야 되요. 학교 가면 재미없어, 악마의 속삭임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 복음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서 자기를 못박는 자들을 향하여 그들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 주는 하나님의 그 사랑, 이 사랑을 알면은 응답하신 기도에 감사하고, 거절하신 기도의 감사하고, 길가의 장미의 감사가 일어나고요, 장미꽃 가시도 감사하고요, 향기로운 봄철에도 감사가 있고요, 외로운 가을날에도 감사가 있어요.

 

못난 나를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 들이는 순간 그렇게 지옥 같은 가정이 천국이 되어져요. 저 경험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교회를 하려고 하는데 자꾸 바람을 빼는 소리가 있어, 그래서 풍선이 부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오늘도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랑, 여러분들 있는 그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보시는 그 하나님을 이 시간도 여러분들이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똑 같은 가정인데, 천국이 되는 그런 신앙 생활 이 신비함, 체험이 여러분들의 간증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인질범과 같이 헌금을 하면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힘에 지나치게 하면 더 사랑한다는 신앙의 최고로 우리를 얽어 매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가짜 복음에 현혹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 헌금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격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삼은 잘못된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격을 얻은 자가 하나님이 너무나 좋아서 드리고도 또 드리고 싶은 기쁜 마음을 가지며 신앙 생활할 수 있는 자 누가 할 수 있습니까,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신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린 자만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는 요한의 깨달음이 있는 자만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해 주셨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원하는 것에 해 주는 것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확인하려고 하는 자만이 우리를 얽어 매는 많은 사단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고, 신앙 생활이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신앙 생활이 출발이 됨을 믿습니다. 오늘도 이 예물이 하나님의 복 받을 자격과 수단이 아니라, 복 받은 자의 기쁨의 헌신이 되도록 그래서 이 헌금을 하는 자도 어깨 힘줄 것도 없고, 하지 못하는 자도 미안해 할 수도 없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복음 위에 서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도록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아니하기에 짐승의 피로서 정결케 하는 자격을 부여하는 그 제사를 이용해서 사람을 얽어 매고 자신의 탐욕과 종교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은 유대교에게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격의 부여의 제사를 통하여 사람을 얽어 매지 못하도록 단번에 영원한 멜기세덱에게 제사장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 십자가를 통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존재하게 한 자이기에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하는 짓마다 실망케 하고 섭섭하게 할지라도 그를 내치지 아니하고,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오늘도 참고 기다리시고 한 명도 멸망치 아니하도록 돌아오도록 창조자이기에 인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창조주만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림으로 교회와 신앙 생활이 짐이 되었든 우리에게 그 신앙 생활이 기쁨이 되게 하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하나님 한 분이 계시기 때문에 가난이 두렵지 않고, 죽음의 권세가 두렵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자를 부러워하지 않게 되는 신비하고 놀라운 복음 안에서 있는 믿음의 권속들과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땅에서도 맛보도록 선물로 준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