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디테일의 악마
고린도전서 10: 31-33
2019년 11월 3일 주일 낮 예배
No. 441
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아멘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 뭔지? 영광이라 함은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라는 말이다. 예수님 마지막 기도가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이듯이 저들도 하나 되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구주를 생각할 때마다 세상으로서 가지지 못하는 기쁨을 누린다.
우리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모든 교인들이 암송을 하고, 또 자신의 존재의 이유 자신의 신앙 생활하는 이유를 이 말씀에 의거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신앙을 잘 정리한 소요리문답 제 1문에도 우리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해요.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의 삶이나 성도들의 말 속에 가만히 보면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이제 벽장 속, 고전 속에나 있는 말이 되어져 버렸어요. 그만큼 우리의 신앙이 세속화 되어졌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 교회가 공멸해 하고 있는 거에요.
1.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을 것인가 먹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런 싸움의 와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라 이런 말이다.
또 이런 것들은 교회만이 아니에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융성하고 번영하기를 원할 때에는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기업하는 사람들 말에 언제나 대한민국에 번영과 영광을 위하여 이런 말들이 참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의 말 속에 그런 말들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고전 속에 있는 말과 같이 우리가 추억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점점 위기로 가는 겁니다. 여러분 이럴 때에도 우리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 뭔지,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하여 사는 삶이 뭔지,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저 그래 살아야만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나중에 설교에서도 말씀을 드리겠지만 나라의 문제나 교회의 문제나 똑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예배 때마다 교회에는 태극기가 있었다고요, 그만큼 신앙은 분리 되지 안 해요, 교회와 나라가.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여러분 가만히 지금 들여다 보면은 얼마나 참 우리가 이제 살만하니까 이 잘 사는 나라들이 우리나라 것 뜯어 가려고 하는 이런 모습이 오늘날의 우리 모습 아닙니까, 이럴 때에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권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보여져야 되요. 저는 그러면은 당연히 달라진다고 생각을 해요. 여러분 지금 우리 가장 큰 당면한 문제가 방위비[防衛費] 문제 아닙니까, 미국에서 우리나라에게 6조원을 달라 한다고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는 말은 나는 어떤 생애를 사는가, 나는 모든 생애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자기 합리화와 자기 변명을 위한 말이 아니에요 여러분.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사업을 하든지 뭘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고 만 하니까, 교인들은 말씀에 대한 해석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말만 듣고, 그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면은 하나님이 복 준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먹칠을 하는데도 자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착각하고 사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을 것인가 먹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런 싸움의 와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라 이런 말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도 여러분들이 잘 되고, 여러분들이 착한 일을 해 가지고, 하나님의 명성에 도움이 되라 이런 말이 아니에요. 내가 착하면 얼마나 착해요, 내가 의로운 행위를 하면 얼마나 의로운 행위를 해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라 이런 말이에요. 제가 요한복음 할 때 그렇게 설교 했잖아요. 그런데도 왜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기억하지 못하니까 이렇게 소화가 안 되니까, 주보에 예배자의 기도를 실어 가지고 이제부터라도 똑 같은 설교를 듣고, 어떤 반응을 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들의 가치판단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을 물가로 인도 할 수는 있지만은 물을 먹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간다고 해서 말이 물을 먹는 것은 아니잖아요, 말이 먹어야 되듯이, 똑 같은 거에요. 요한복음 17장에 보면은 대제사장의 기도 예수님이 마지막 이제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대제사장들의 기도가 뭐냐 하면은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이듯이 저들도 하나가 되어서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옵소서 이런다고요.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 따지는 그 속에서도 하나가 되라 이런 말이에요. 그래야만이 너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런 말이에요. 교회가 오늘날 간증을 얼마나 잘 못해요. 내가 이런 고생을 했는데, 내가 이렇게 신앙 생활 잘하고, 하나님 마음에 들게 했더니만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복을 주었다고, 이래서 하나님의 명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전부 우상숭배적 신앙이에요. 얼마나 만연해 있어요.
2.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른 데에도 하나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보면서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이렇게 보는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 무슨 말이냐, 옳고 그름을 따지는 나하고 생각이 다른 가운데서 논쟁하는 속에서도 하나됨을 잃지 마라. 그래야 교회가 교회다워 진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우리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 다른 가운데에서도 하나가 되고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에요. 저는요 예수 잘 믿었다고, 여러분들이 이 사람 예수 잘 믿어서 이렇게 복 받고 자녀가 잘 되었다 한번도 말한 적이 없잖아요. 저는 어떤 사람 속에 하나님을 보는가,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른데에도 하나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보면서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이렇게 보는 거에요.
여러분 이렇게 보면은 우리 한국 교회가 반성해야 할 문제가 있지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극한적인 대립이 있는 가운데서도 교회만 하나되는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죄악성을 드러내야 되는데, 세상이 교회를 염려해요. 교회는 왜 이렇게 교파가 많아. 교회는 왜 싸워. 그러면서도 싸워서라도 우리 교회 크게 하고 좋은 일 많이 하면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라고.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의 눈으로 보면은 요즘 뭐 그것 때문에 한창 시끄러운,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영광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제 가치판단이 달라지세요. 정말 이제는 내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한다면은 나하고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를 지라도 그들과 연합한 모습을 통해서 교회는 달라, 우리 목사님은 달라, 우리 장로님은 달라,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다른 모습이 있네, 이런 영광을 들어내려고 해야 되요.
이것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물가로 데려 가는 거에요. 이것을 여러분 취하고 안 취하고는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저는 가만히 보면은 먹어도 되느냐 안 먹어도 되느냐, 따지는 것, 옳고 그른 진리의 논쟁 속에 하나되는 것에서 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위해서 먹지 말아야 된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먹는 사람을 비판해요. 총론은 같아요. 강론이 달라요.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데 어떤 사람은 먹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먹는 사람 비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해요.
제가 지난 주일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잖아요, 예수를 믿고 나면은 이상한 가치관이 생겨요. 분명히 저 주었는데도 이긴 것이라는 가치관이 생겨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낮아지면은 높여 준다 하나님이, 겸손과 낮아짐과 지는 것을 높이 올라가는 하나의 전략적 수단으로 삼는 것은 성경을 세속화 시키는 거에요. 거듭나게 되면은 저 준 그것이 이긴 거에요. 정말 신비한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되요. 부모는 자식에게 늘 저 주는데 남들은 부모가 이긴 부모로 봐요. 이런 것이 부모와 자식 지간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야 되요. 교회가 왜 시끄러운가, 나라가 왜 시끄러운가, 전부 총론을 가지고 자기의 정당성을 이야기를 하고, 강론에서 이기려고 해 버려요. 그러니까 타협이 안 일어나는 거에요.
여러분 지는 자가 이기는 자라 말했는데 무엇에 지려고 해야 되는가, 강론에서 지려고 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저를 좀 보면서 그런 것 아셔야 되요. 저는 총론에서는 절대로 양보와 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총론문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제가 아집과 고집이 세다고 그래요, 그것은 버리면 안 되요. 그런데 저는요 강론에서는 이긴 적이 없어요, 저 주어요. 저를 보면서 그런 것 배우세요. 바울은 자기를 배우라고 했는데, 다른 것 배우는 것 아니에요. 우리 목사님은 사랑이 많아, 우리 목사님 그런 것 다 자기 의에요. 우리 목사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저 주어 강론에서는. 여러분 한번 보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면, 제가 대학 교회에 있을 때에 교회가 이런 것 가지고 싸워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번 보세요, 우리 성가대도 오늘 여기 있는데 제가 여기에 뭐 했는가 하면은 우리 교회 씨아이 붙이라 했는데 안 부쳤잖아, 그런데 나 말 안 하잖아요, 강론에서 왜 이미 진행이 되었겠다, 그러나 이것 한 사람도 교회를 사랑해서 잠깐 생각 놓쳤다, 이래 버리는 거에요. 그것을 가지고 질책 해 보세요, 진행한 사람 해 놔 놓고 시험 들지요. 여러분 총론에서 훼손이 아니면 강론은 저 주는 거에요. 이번에도 예배 위원회에서 목사님 추수 감사절에 위원장이 전화가 왔어요. 한편에 교구장들은 하자 그러고 작년에 너무 은혜 있었다고, 또 한편에서는 월초 때 다 했는데 뭐 또 할 것 뭐 있나, 대립이 있는데 목사님 어떻게 할까요, 그것 내가 편들었다가 큰일나거든요, 김치 큰일나듯이, ㅎ ㅎ 그래서 서로 좋도록 알아서 하세요.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이 드러나는 거에요.
찬송도 저는 내 진정 사모하는 그 찬양하고,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이 찬양하고, 또 오늘 부르는 구주를 생각만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이 3개가 생각나서 어느 것 할까 이러니까 저네 끼리 싸우다 가 85장 구주를 생각만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했어요. 다 찬송가가 여러분들의 마음에 말씀이 새겨 지도록 하는 총론인데, 강론은 다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도 설교의 여러분들에게 예수님 좋다고 보다 여러분들이 정말 거듭나면은 구주만 생각해도 내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되요. 그래야 저 주어야 된다, 라는 결론으로 갈 수 있는 거에요. 여러분 이렇게 강론에서 저 주었을 때 진짜로 이기는 것은요 결과가 나왔을 때 탓하지 말아야 되요.
3.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 속에서도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이 너희 가운데 드러나게 하라. 유대교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데 제3인종의 교회는 그런 것 따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됨이다.
나는 모든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라, 자기 합리화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고요,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 속에서도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이 너희 가운데 드러나게 하라. 이것이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면 이렇게 여러분들이 강론에 되려면은 여러분들의 모든 가치판단이 하나님의 영광만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 있어야 되요. 그 이웃 사람이 32절과 33절이에요. 32절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여러분 유대인들의 어법에서요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이렇게 해 하면은 파멸이라고 할 때에 부정적인 표현을 써요. 말고 이런 말 안 써요.
다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 이런 게 보여야 참 성경은 성경이구나 이런 게 나와요.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꿀 송이 보다 더 달다는 것은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말씀이 야 참 이런 생각이 들어요. 유대인들은 돈 낭비하지 마라, 이래 안 해요. 돈을 절약해라 이래요. 낭비 하면은 집안 망한다 할 때에 낭비하지 말라 이래요. 그런데 여기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이 말은 지금 먹고 마시는 문제 따질 때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 너희들 교회 끝나 이런 말이에요. 여기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라는 말은요 보통 옛날 유대인들은 사람을 구분할 때에 이 사람이 유대인이냐 아니면 헬라인이냐 이방인이냐 이것이 시림의 구분법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요 이랬든 유대인인데 또 한 그룹의 인류가 탄생했어요. 하나님의 교회라는 그룹.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 속에 제3인류의 탄생 이렇게 보는 거에요.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은 유대교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데 제3인종은 교회는 그런 것 따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됨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너희들은 제3인종인 하나님의 교회인데 지금 너희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유대인과 헬라인과 같은 옛날 유대교의 습성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거치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하나님의 교회 제3 인류를 탄생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원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런 말이에요. 얼마나 무서운 말이고, 얼마나 은혜 되는 말이에요. 이 말을 여러분들에게 한다면은 그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교회 다니면서 이제 여러분들의 모든 행동과 말은 우리끼리만 은혜가 되면 안 되요,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아멘이 되어야 되요. 이 설교가 진짜 진리 안에 있는 설교인가, 아니면은 이 설교가 진리밖에 있는 목사님의 담화인가는 무엇으로 판가름이 되는가 하면은요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제외하고 하나님의 교회 교인들에게만 은혜가 되느냐, 아니면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되느냐,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떤 주장을 할 때에 설교를 판단할 때에도 그렇게 하세요.
4. 예수 믿고 구원의 기쁨을 맛보며 사는 것은 저 주는데 힘들고, 상함도 있지만, 그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이 있다. 나와 같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이 아닌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구원을 받게 하라. 긍정적인 표현이 뭐냐 유익성이어야 된다.
내 마음에 들었다 은혜가 되었다, 감동이 되었다가 아니고요, 이 말씀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와 내 가족 내 자식에게만 유익한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가, 그 가치로 가치판단 하면서 살아 보기를 시작하세요. 그러면 희한한 기쁨이 생겨요. 옛날에는 내 자녀가 잘되고, 내 호주머니 내 통장에 액수가 늘어나는 것이 기쁨인데 그것은 아무나 다 있는 기쁨인데, 그것하고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은 세상의 어떤 환경 속에 환경을 넘어서는 희락이 생겨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잖아요. 언제나 강론에서 이기는 자식은 부모 때문에 불평하는데, 강론에서 저주는 부모는 지고도 보람과 기쁨을 느껴요. 이것을 맛보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예수 믿고 구원의 기쁨을 맛보며 사는 것은 저 주는데 틀림없이 힘도 들고, 상함도 있고 한데요, 그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보람과 기쁨이 생겨나요. 이것은 한번 따라 해볼까 샘표 간장이요, 샘표 간장 아세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것, 살아 봐야 맛보는 감정이에요. 늘 물가에 얕은 물가에 절벙거리는 신앙 가지고 자기 생각 포기 안 하고는 한번도 맛보지 못해요. 그래서 나중에 죽어서 주님 앞에 갔을 때, 아이구 억울하다 소리하든지, 아니면 지옥 가든지 둘 중에 하나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왜 우리 교회 다녀야 되는가, 이전에 내가 잘 되고 뭔가 이래 가지고 기뻐했든 그 삶 말고, 예수 때문에 제3인류가 느끼는 그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요.
분명히 저 주었는데도 강론에서, 총론에서 지면 안 되요. 그래서 때로는 마음이 좀 상하기도 했는데, 희한한 기쁨이 생겨나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정말 강론 때문에 다툼이 없는 그런 교회, 좀 우리나라가 모두다 대한민국 생각 안 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자유 민주주의 생각 안 하는 사람 어디 있어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은 자유민주주의 다 사랑하고, 대한민국 사랑해요. 강론에서 안 지려 하는 거에요.
분명히 이겼는데 떨어지잖아요 희한해요 여러분 왜 이것을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ㅎ ㅎ 오늘 여러분 이 말씀이 그런 말이에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마라. 우리끼리만 아멘 하면 안 되요. 안 믿는 사람에게도 야! 아멘이다 이래야 되요. 저 목사님 말씀 들으면은 우리나라 살겠구나, 야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성도들만 아멘 하면 안 되요. 옆에 있는 교회도 아멘이 되어야 되요. 여러분 그 뒤에 보면은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긍정적인 표현이 뭐냐 하면 유익성 유익되어야 되요.
5. 얼마나 보편적인가, 얼마나 상관적인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진리가 되어야 된다. 자녀에게 주고도 기쁨, 그 기쁨이 타인에게 확대 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무엇을 먹든 마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나게 하라.
그 유익이 개인에게만 유익이 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에요. 많은 사람에게, 나하고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만 이익이 되면 안 되요. 많은 사람에게,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되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진리를 판단할 때에 이런 이야기 하잖아요. 진리는 몰라요 진리 논쟁하지 마세요 우리 교회 와서는. 유익성을 가지고 보세요. 얼마나 보편적인가, 얼마나 상관적인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진리가 되어야 되요. 그리고 유익이 되어야 되요. 그 유익이 눈앞에 지금 이익이 아니에요. 먼 미래로 봐서, 유익이 되어져야 되요. 눈 앞에 유익은 분명히 손익에 대한 뚜렷한 그룹이 생겨나요. 좀 멀리 보면은요 손익이 없다니까요.
지금 뚜렷하게 눈앞에 보면은 옳고 그름이 다른 것 같은데, 지금 이긴 것이 이긴 것 같은데 멀리 보면은 저준 자나 이긴 자나 다 유익이 되어져요.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기쁨 구주만 생각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이 찬양이 여러분들의 심비에서 울려 나오는 그런 찬양이 되려면은 총론에서 양보하지 말고, 강론에서 저주는 부모와 하나님의 마음을 맛봐야 되요. 그리고 눈앞에 이익과 이런 게 아니라, 눈 앞에서는 내가 손해고 내가 잘못되는 것 같지만은 멀리 봤을 때 유익이 되는 그 기쁨을 여러분들이 맛을 봐야 되요.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이 금방 기쁘고 즐거운 것은 그것은 사탄이 주는 사탕 발림이에요.
수모를 당하고 다 이래 가지고도 자녀에게 주고도 기쁨 그것은 아무나 있는 거에요. 그 기쁨이 타인에게 확대 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도 보면은 자기 자식에게는 모든 것을 다 하는데, 남에게는 베풀 줄 모르는 것, 저는 참 보면은 안타까워요. 왜 맛을 본 적이 없거든요. 뭐든지 강론에서 이기려고, 참 뭐 결제하려고 그러면 저는 이때까지 목사에게는 결제 권한이 있지만 제 한번도 결제 해 본적이 없어요, 알아서 하세요. 책임은 내가 져요. 오늘도 여러분 여기에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그 순간에도 하나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나게 해라.
6. 주님 때문에 강론 저주고 살았습니다. 주님 때문에 내 육신의 새끼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구주를 생각할 때마다 세상으로서 가지지 못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그랬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강론에서 따지는 것이거든 절대로 총론에 따지는 것이 아니에요, 강론에서 저 줌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구원의 있는 그 기쁨을 맛보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우리는 제3인류에요. 제3인류는 뭔가, 진리의 보편성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물론 한국 교회가 무엇이 문제에요 보편성이 없어요. 그래서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해요. 특히 설교에 보편성이 없어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편협[偏狹]되는 거지요. 여러분들이 정말 지는 즐거움 분명히 힘이 들고, 내가 희생을 했지만 타인의 유익된 삶을 보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 자녀와 내 가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확대 된다면은 누가 그 사랑을 불행하게 할 거에요.
여러분 누구든지 죽습니다. 안 죽는 사람은 이 설교 듣지 마세요, 죽었을 때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눈 앞에 보여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보면, 천국에 다 가고 싶어요, 왜 천국에 갈래, 하면은요 나 주일 성수 잘했습니다. 십일조 열심히 했습니다. 곤란한데 저기를 가르친다고, 나 예수 믿었습니다. 그래 가 이러면 너무 좋아서 뛰어가요. 가려고 하면 주님이 잡고 물어요, 너 날 위해 무얼 했는데, 공짜로 천국에 가는데 물었을 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그것 아니에요, 주님 때문에 강론 저주고 살았습니다. 주님 때문에 내 육신의 새끼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주님이 주시는 구주를 생각할 때마다 세상으로서 가지지 못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러면은 주님이 그래 내가 네 마음 알지 하고 안고 안아 줄 때 이 땅에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희락은요 말로 다할 수 없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그랬습니다. 천국의 상급은 기쁨의 강도의 차이에요. 주님 때문에 한번도 저준 적이 없고, 모든 것을 자기가 다 구체적으로 이겨야 되요, 그저 자기 새끼만 아둥 바둥 하고 살아갈 때 주님이 내 널 위해 몸 버렸는데 너 나 위해 무엇 했나 할 때에 얼굴 못 들고 들어가요. 천국에 들어가는 기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수치와 모멸감을 느껴 지지는 않지만 이상한 부끄러운 감정이 생겨요.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해서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걸어 가보지 못한 그 길을 걸어가서 그것도 한번 해보고 가는 게 아니에요, 한 2-3년 해보면은 오늘 설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설교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지고, 그럴 때 우리 교회가 반석 위에 든든히 서가고 그럴 때에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가 우리와는 좀 달라, 이럴 때 교회가 참 약하디 약한 교회가 가장 강한 교회로 존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구주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 교회는 드렸다고 해서 어깨 힘줄 것도 없는 교회되게 하셨고, 드리지 못했다고 해서 기죽을 것 없는 교회가 한걸음 한걸음 나에게 하여 주심을 감사 합니다. 더디 가는 교회의 모습에서도 답답하고 힘 듦도 있지만은 그 속에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의 즐거움을 맛보며 나아가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도들의 삶이 든든해 지도록 이 나라가 번영되게 하여 주시고, 성도들의 삶이 아버지 하나님 남에게 나누어 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앙의 모습을 열납할 수 있도록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의 영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천국이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눈앞에 보이게 하심도 감사 드립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내가 네 마음 안다. 안아 줄 때 이 땅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천국의 희락이 더 크기 때문에 이 세상의 힘듦과 고난을 넉넉히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성령님, 우리 눈에 육신의 비늘을 벗겨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병석에 있는 자들에게 병마로 그들의 생각이 약해 지지 않도록 영생을 부어 주시고, 육신의 가난 때문에 불행해 지지 않도록 부유한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영성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과거의 시간이 내 불안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미래의 시간이 오늘의 염려가 도지 않도록 인자와 선하심이 많으신 하나님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나누어서 언제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유대교에게 너희를 창조하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구약의 하나님은 옳고 그름을 따져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저주는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낸 제3인류인 하나님의 교회가 과거의 습성대로 옳고 그름을 따질 때, 하나됨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도록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합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듯이 저들도 하나가 되어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해 달라고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렸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창조자이기에 인류의 번영과 온 우주 만물의 하나님의 가득 찬 영광을 위하여 오늘도 강론에서 인간에게 저주기에 우주 만물이 존재되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육신의 비늘이 벗어져서 이기는 쾌락이 아니라 저주는 희락을 맛보도록, 소유의 쾌락이 아니라 나눔의 희락을 맛보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위로와 교통하심이 오늘도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그 얼굴 뵈올 때 얼마나 좋으랴, 이 신앙으로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넉넉히 이겨 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천국을 맛이라도 보도록 몸 버려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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