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그리스도의 편지)(고린도전서 11: 1)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11. 15. 22:52

 

 

담임목사 김종웅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전서 11: 1

2019 11 10일 주일 낮 예배

                                                                                                                                                  No. 442

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아멘

 

고대 고린도 지역에서 교회가 존재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었든 것이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가 문제였다. 가르침의 바탕에 있는 신학적 사상은 뭔가? 그것이 공식이다. 그 바탕은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라는 것이다.

 

이번 주 설교가 저에겐 참 어려운 설교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정을 했고 또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1부 예배 드리기 10분 전까지 설교를 수정하고 완성했습니다. 왜 어려운가, 저는 이 삶을 여러분들과 같이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11 1절은 8장과 9장에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한 말씀입니다. 8장부터 10장까지 길게 또 몇 달 동안 저와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듣는다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말씀을 잘아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때,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맛보게 되고, 신앙의 기쁨을 누리는 그런 복된 신앙 생활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1. 제사 문화와 술 문화에 대한 말씀. 8장에서 10장에 이루어서 말하는 그 성경의 가르침의 원리와 원칙을 가지고 살아간다면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은 멋있구나,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8장에서부터 10장까지의 말씀은 고대 고린도 지역에서 교회가 존재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었든 것입니다. 그 문제가 되었든 것이 뭐냐 하면은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먹어서는 안 되는 문제가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우리 한국에는 예수를 믿으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집안의 제사의 문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음주의 문제, 이런 문제가 제일 문제가 되고 걸림돌이 되지요. 저는 아버지가 목사였기 때문에 예수 잘 안 믿는다고 혼 참 많이 났습니다. 또 제사 음식은 먹을 기회도 없었고, 지금도 저는 산적을 좋아하고 육전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제사 음식이잖아요.

 

어릴 때 친구 집에 추석에 가면은 산적과 육전을 주면은 참 맛있게 먹었는데, 한편에서는 제 아버지가 고수레가 많은 부산 지역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는 것은 큰 죄를 짓는다 했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좀 찜찜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 마음에 너무나 맛있기 때문에 언제나 그 음식을 죄책감 속에서 먹었든 기억이 있습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목사가 되면 참 신앙 생활하기 편한 것은 뭐냐 하면은 저도 동창회나 친구들 모임에 가서 식사하고 술 먹는 자리에서 어떤 짓궂은 친구가 저에게 잔을 내밀면은 저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꼭 옆에 또한 친구가 뭐라 하는가 하면은 무식한 놈 친구가 목사님이잖아, 술 드리면 안 되지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사는 세계는 그런 세계가 아니잖아요. 사회생활 하다 보면은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자리도 있고, 또 예수를 안 믿는 가정에서 예수를 믿다 보면은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것이 제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서 오늘 8장에서 10장에 이루어서 말하는 그 성경의 가르침의 원리와 원칙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살아간다면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 속에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은 멋있구나, 이런 평가와 판단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게 될 줄로 압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 한국 교회는 이런 부분에서는 너무나 율법주의적으로 접근을 해서, 해서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을 가리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그런 생각 속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면은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되고, 술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 그리고 교회에 다니면은 주일 성수 해야 되고, 십일조 해야 되고, 그 다음에 봉사해야 되고, 뭐 여러분 이런 어떤 가장 신앙의 기본적인 것들을 지켜 나가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나 여러분들의 신앙이 성숙 되어져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대로 언제나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실행해 나가는 그런 교회 교인들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러려면은 오늘 바울이 이 가르침에서 행하였든 세 가지의 원칙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요,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해서는 안 되는 일, 해야 할 일을 가려서 신앙 생활하는 것.

 

우리 한국의 김교신 목사님인데, 1945년도에 돌아가셨어요. 이분은 많은 보수주의자들 속에는 무교회주의자라고 기억이 되어져 있지만은 이분이 말하는 무교회주의자라는 것은 이런 교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조직된 교회 보이는 교회의 잘못된 교회를 지적하고, 이 보이는 교회가 진정 보이지 않는 구원사에 나타난 교회가 세워 지기를 바라면서 복음 안에서 굳건히 섰든 분입니다. 이분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은 우리 한국 교회가 가리고 가리지 않고 가리는 것과 많은 교회를 성장시키는 대에만 천착[穿]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한국 교회는 구원의 열차 가운데에서 3등 열차 칸과 같은 교회이다.

 

2. 교회를 구원의 열차로 비유한 말씀. 올바른 헌신을 함으로 말미암아, 대가를 지불하고 편안히 특실에서 하나님의 구원 열차를 타고 천국에 입성하는 그런 복된 성도 복된 교회가 되어야 된다.

 

이제 한국 교회가 구원의 열차 칸에 특실의 교회가 되어야 된다, 라고 주장을 했든 겁니다. 여러분 지금은 뭐 KTX 나 이런 것이 참 안락하지만 이분이 살던 시대나 제가 성장하는 시대에 3등 열차는 굉장히 시끄럽고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차를 타지 아니하고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3등 열차에 탔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 보면은 굉장히 불편하고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이런 가운데에도 이 3등 칸에도 타지 아니하면은 천국이라는 구원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타고 가는 그런 성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 목회를 하면서 우리 교회가 3등 열차 칸과 같은 구원 열차가 아니고, 특실과 같은 구원 열차 칸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목회 해 왔습니다.

 

여러분 동일한 열차로서 목적지에 도달하지만 특실은 예전에 참 안락했습니다. 그리고 참 조용했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는 여러분들이 참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참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 오니까 참 이제는 편안하고 쉼이 있고 좋다고, 이름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교회라는 말, 특실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은 여러분들이 구원의 열차의 특실 칸에서 타려면은 3등 열차 칸에 타는 사람보다 대가를 더 많이 지불해야 되요. 이 지불이 없이 특실에 무임승차하게 되면은 여러분 이 특실이 특실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에도 여러분 보시면은 특실 같은 교회를 유지해 가는데 무임승차 하는 분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정말 올바른 헌신 그저 이것 하면 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리는 그런 헌신 말고요, 진짜 올바른 헌신을 함으로 말미암아, 대가를 지불하고 편안히 특실에서 하나님의 구원 열차를 타고 천국에 입성하는 그런 복된 성도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오복 중의 하나가 치아 건강입니다. 대부분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신 분들 보면은 치아가 참 좋습니다. 제가 목회했든 신영광 교회에도 105살 먹은 조경원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때까지 전부 자기 치아였어요. 여러분 이 치아 건강을 위해서 우리는 어릴 때에 아이들에게 반듯이 양치질을 하라고 하면서 치카치카 하면서 하는데, 이 아이들이 양치질을 안 하면은 혼이 나고, 하면은 부모님에게 칭찬받고, 삶이 좋기 때문에 양치질을 하는 거와 같은 신앙인들이 많이 있어요.

 

오늘날 여러분 해서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되는 일을 가리는 것은 참 쉬운 것이고, 의존적이고, 객관적 교육에 익숙한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설교 참 편하고 좋은 설교 같지만은 그런 것들은 3등 열차 칸으로 인도하기가 쉽습니다. 아이들이 마치 실큰 양치질하고 자기 전에 콜라 먹으면서 콜라를 입에 머금고 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양치질이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여러분들이 주일 성수하고 여러분 11조 하고, 여러분들이 참 많은 신앙 적인 것들을 행하면서도 이 신앙의 본질적인 목적 복음이 뭔지 모르고 그저 해야 되는 일 하지 말아야 되는 일을 가려서 좀 하면은 신앙 생활 잘하는 것 같고, 안 하면은 죄책감에 싸이고 이런 삶을 살아 간다면은 양치질하고 그 대가가 콜라를 먹고 자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3. 가르침의 바탕에 있는 신학적 사상은 뭔가? 그것이 공식이다. 그 바탕은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라는 것이다. 왜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금하였는가 하면은 물신주의의 삶을 살지 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교회에 없다고 저는 그래 봅니다. 오늘 이 설교를 여러분들이 들으시면서 이제는 여러분들이 정말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무엇을 가리며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라는 것들 이제는 여러분들이 매뉴얼을 아시고 공식을 알아서 목사님이 문제를 풀어 주는 것에 그냥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문제를 푸는 재미도 누리시고요, 여러분들의 삶의 얽혀 있는 많은 실타래들이 오늘 주는 공식으로 풀어져서 참 어디에 가도 저분은 매이지 않는 자유 함이 있구나, 또 이런 교회는 구원의 열차 칸 가운데 특실의 열차 칸에 여러분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 말미암아 편안하고 안락한 신앙 생활을 하다가 목적지인 천국에 도달하는 그런 기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가지 원칙이 뭐냐 하면은 첫째는 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시장에 파는 고기나 그 다음에 불신자 집에 초청 받았을 때에 고기를 묻지 말고 먹어라. 이것이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냐 아니냐 묻지 말고 먹어라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가르침의 바탕에 있는 신학적 사상은 뭔가를 아셔야 되요. 그것이 공식입니다. 그 바탕은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제일 한국에 못 누리는 신앙이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못하는 것 없다, 안 할 따름이다. 못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을 못하는 것이 되어야 됩니다.

 

그 본질적인 것이 뭐냐 하면은 우상숭배라는 거에요. 우리는 음주의 문제는 모든 문제에서 참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문화에서 자유로워야 되요. 그러나 복음의 본질에서는 여러분들이 못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복음으로 덧입는 문화 속에서는 안 하는 자유가 있어야 되요. 그게 성숙된 자입니다. 양치질하고 콜라 먹고 뭐 머금고 자면 뭐 합니까, 콜라 안 먹는 것은 치아 건강에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양치질하고 실컷 먹고 음식 입에 끼어서 자면은 양치질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여러분 오늘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먼저 제사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은 우상 숭배가 뭔지를 아셔야 되요.

 

우상숭배의 본질 제사의 그 본질은 물신주의에요. 이것을 알지 못하면은 우상숭배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 되어요. 왜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금하였는가 하면은 물신주의의 삶을 살지 마라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얼마나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그저 제사 안 드리고 절에 가서 불공 안 드리고, 무당 안 찾아가고, 이러면 다인 줄 알아요. 그런데 교회 와서 나름대로의 주일 성수도 하고, 적당한 11조도 하고, 적당한 여러분 신앙 생활 술도 잘 안 먹고, 이러는데도 하는 짓거리 보면은 정말 돈을 위해서는 별 짓을 다하는 그리스도 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이 물신주의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에요. 그 폐단[弊端]이 얼마 큽니까 여러분.

 

4. 주일날 주일 성수 유대교에서 안식일 지키고 할례하고 음식 가리는 것에 집중했으면 바리새인들은 11조에 집중을 했었다. 그런 유대교에 주님이 오셔서 그 모든 것을 넘어서게 했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사가 예전에는 어떤 제사였는가 하면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집안의 장손에게 모든 재산을 유산으로 줍니다. 요즘은 딸들도 여러분 받지만은 왜 주었는가, 그러면 그 장손의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 하면은 제사를 드리는 거에요. 그래서 종가 집 며느리는 일년 내내 제사를 드리다가 세월을 다 보내요.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도 제사를 드리는 데에 거의 다 써 버립니다. 여러분 그 받으려고 하는 것과 제사를 드리는 속에 뭐냐 하면은 바로 유산이라는 돈이라는 물질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 그 속에 존재해서 있습니다. 여러분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런 제사 드리지 마라는 거에요.

 

조상의 은덕에 힘입어서 살아가겠다는 제사 그것은 조상을 귀신을 만들고, 우상을 만드는 거에요. 이런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 정도는 제사의 방법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고, 기독교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제사를 드리는 그 재물을 가지고 형제에게 나누어 준다면은 훨씬 더 부유한 가족이 될 수 있지요. 이것이 구원의 열차 여러분 특실에 타는 신앙 생활이고, 여러분들이 이 열차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반듯이 지불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 그 속에 전제[前提] 되어져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유교에서 여러분 3년 상의 제사가 얼마나 많은 삶을 낭비 하셨습니까, 지금도 여러분 이 제사를 중요시 여기는 제사를 우상숭배적 제사를 드리는 집안에 보면은 참 제사상 차리는 데에 얼마나 많은 돈이 낭비 됩니까, 그 돈을 가지고 차라리 가족이 화목하고 즐겁게 사는 삶이 되어야 됩니다.

 

오늘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의 본질이 뭔가를 알아야 되요. 저는 왜 목사가 되었는가, 이 복음의 본질을 알고는 야 한국의 기독교가 이런 부분에서는 너무나 약하구나 그것을 알고 목사가 되기로 했든 거에요 신학을 하고. 1990년도에 제가 면목동에 있는 동부 교회에 제가 강도사로 갔었어요, 청년회를 맡았어요. 1990년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은 우리 한국에 모 기업이 막 불같이 일어날 때에요. 그 기업이 얼마나 많은 우수한 기독교인들이 지원을 했는지 몰라요. 그 기업에 가면은 아침 시작을 QT로 한데, 목사님이 훌륭한 목사님이 계셔, 그래 그 기업은 전적으로 선교에 헌신해, 그래서 우리는 월급을 적게 받아도 돼.

 

그래서 제가 맡은 청년회에 어느 대학 나온 아이가 뭐라는가 하면은 자기는 어느 어느 기업에 들어가고 이랜드에도 제가 합격을 했는데, 강도사님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기업에 가겠습니다. 그래 가지 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은 선교한다는 빌미로 저임금을 지불하는 기업이 아니야, 하나님의 기업이라면은 자기 직원들에게 봉급을 많이 주려고 하는 기업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업이야, 라고 이야기했든 거에요. 여러분 오늘날 보세요, 주일날 주일 성수 유대교에서 안식일 지키고 할례하고 음식 가리는 것에 집중했으면 바리새인들은 11조에 집중을 했었습니다. 그런 유대교에 주님이 오셔서 그 모든 것을 넘어서게 했든 거에요.

 

오늘 기독교의 기업이 직원들에게 기독교로 개종을 강요하고, 선교를 빌미로 해서 저임금을 지불하는 것, 그런 것들이 다 우상숭배가 뭔지를 모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그저 해야 될 일, 안 해야 될 일을 유치원 생에 가르치듯이 양치질은 주일날 와서 예배 드리면서 하면서 11조는 하면서 그 다음에 뭐 하는가 하면은 자기 전에 콜라 먹고 음식 먹는 것하고 똑 같은 거라고요.

 

5. 우상숭배 반대는 전적인 하나님께 헌신으로 인한 영광이다.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그런 통찰력이 없는 자를 무시하지 않고 배려하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하였든 이웃 사랑이 실천되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욕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저임금으로 거대한 기업이 되어 가지고 몇 년 전에는 엘에이다져서 사니 뭐니 이런 소리하고, 지금 와서는 사목들 수십 명 다 좇아 내버렸잖아요. 그것이 기업에서만 입니까, 교회에도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저 주일 성수 강조하고, 11조하고, 헌신하고, 뭐 이런 것들 교회 예법을 가리는 것 하면서 온갖 물욕적인 목회가 난무하지 않느냐 말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그래 생각해요. 오늘도 우리 교회 여러분들이 특급열차가 되려면은 무임승차하는 분들 이제는 좀 우상숭배 반대는 전적인 하나님께 헌신으로 인한 영광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려고 해야 특실이 됩니다.

 

참 여러분들에게 평안을 주셨는데, 무임승차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특실 타려 해야 되요. 오늘날까지 한번도 헌금도 한적도 없고, 교회에 무슨 행사가 있으면은 참여도 안 하고 이러면서 우리 교회에서 편안히 지내는 분들, 내같이 헌금하고 내같이 신앙 생활해서 교회가 되겠나, 한번 돌아보세요.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은 우리 교회가 유지되었겠는가, 특실에 여러분 타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그랬으면 해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차고 하는 것도 여러분들 희생해서 채울 마음 없어요. 하나님이 채워 주시면은 분량을 따라서 제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기를 먹어도 되냐, 먹지 말아야 되느냐 이런 것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되고요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그런 통찰력이 없는 자를 무시하지 않고 배려하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하였든 이웃 사랑이 실천되는 교회가 되어야 되요.

 

이것이 여러분들의 삶에 모든 영역 속에 존재해야 되는 겁니다. 음주의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 음주의 문제에서 술 먹으면 안 되는 것이 마치 기독교인의 표지 인양 이래 되어서는 안 되요. 여러분 기독교의 역사의 금주가 언제부터 되었는가를 알아야 되요. 우리 한국에는 술 먹는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 저에게도,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 했지, 술 먹지 말라는 소리 어디 있느냐고, 성경에 술 먹지 말라는 소리는 술 취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술 또 먹는 사람들은 그러면서 또 하는 소리가 그래요. 예수님도 첫 이적으로 포도주 만들어 주지 안 했나, 또 여러분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의 별명이 뭔 줄 압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할 때에 포도주를 즐기는 자 이랬다고요.

 

6. 대부 알 카포네 이런 사람들이 다 밀주 제조하고 불법으로 돈을 버는 그때, 그 금주령으로 인하여 많은 순기능도 있었고, 역기능도 발생했다.

 

이것을 가지고 술 먹는 것을 정당화 하는 것, 자 음주의 문제도 여러분들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기독교의 음주는 18세기 웨슬러의 의해서 감리교가 경건의 한 방편으로 금주를 했든 거에요. 왜냐하면은 그때에 술 때문에 너무나 많은 가정이 파괴와 문제가 일어났든 거에요. 그래서 이 웨슬러 교도들이 미국에 건너가고, 미국은 잘 알다시피 1910년부터 33년 까지는 법으로 금주령을 내렸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전에 많이 보았든 대부 알 카포네 이런 사람들이 뭐 하는가 하면은 다 밀주 제조하고 이래 가지고 불법으로 돈을 버는 그때 그 금주령으로 인하여 많은 순기능도 있었고, 역기능도 발생했든 거지요.

 

그 시대에 한국의 기독교가 전래[傳來]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독교는 한국은 자연히 금주를 하게 되었든 거에요. 또 그 당시 한국도요 여러분들 생활상을 보면은 산업화 되기 전에 농경시대에 가을 거지 끝나고 나면은 그 다음에 남자들이 하는 일이 뭐냐 하면은 한 동래에 모여서 노름하고, 술 먹고, 첩 데리고, 이러는 바람에 많은 가정이 파괴가 되었어요. 그래서 금주가 있는 기독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얼마나 많이 회복이 되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여러분들이 한번 보세요, 저는 우리나라가 지금 미투 운동이나 이런 김영란 법이나 이런 것들도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하는데요, 참 자영 업자들은 이런 것들 때문에 식당이 참 잘 안 된데요.

 

옛날에 뭐 우리나라가 얼마나 흥청망청 했는데 자기 돈 가지고 먹었습니까, 회사 돈 가지고 먹었지, 교회에도 보면은 어떤 분들은 자기 돈은 안 쓰면서 교회 돈 가지고 흥청망청 쓰려고 하는 사람들 참 많이 있어요. 뭐든지 교회 돈 가지고 하려는 사람. 그것 막아 놔 놓으니까 지금 여러 가지 자영 업자들이 어려운 것도 있거든요. 그런데 또 미투 운동도 겸하여 있으니까 이제는 회사가 회식 문화가 거의 사라져 버렸어요. 그런데 요즘은 여러분들이 예전과 같은 음주의 문화는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보니까 뭐 어디에 가도 예전에는 술도 전부 권하고 이러는데 지금은 자기가 먹을 만큼 먹는 것이 문화고, 적당하고 또 뭐 2차나 이런데 안 가는 이런 것이 거의 일상화 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볼 때 이제는 이 음주가 하나의 문화적인 것으로 접근해야지, 기독교의 본질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봐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에게 지금 말씀 드리면 이렇게 믿어라 이렇게 살지 마라는 거에요. 나는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술 먹는 회식 자리 갈 수 없어, 이런 것은 신앙의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거에요. 술 먹는 자리에 가서 사람들이 술잔 주면은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술잔 안 받아 하고 잔 뒤집어 놓는 것, 이제 문화적으로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그런데 가서도 참 멋있는 모습으로 보여 주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회에도 제가 듣고 있는데 뭐 어디에 교회에 공식적인 모임에 가서도 술판 벌리는 것, 그것도 문화적으로 여러분들이 생각 해보세요.

 

7. 문화적인 것이 뭐냐,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분간 못하면 안 된다. 한국 교회는 금주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공식적인 것에서는 안 먹는 것이 예의이고 문화이다. 기독교인이 참여 안 해야 될 자리, 하나의 문화로 접근해야 할 때가 있다. 스스로 판단해야 된다.

 

제가 벌리지 말라, 이런 것이 아니에요, 문화적으로 접근해서 여러분들이 스스로 아시라 이 말입니다. 그 문화적인 것이 뭐냐 하면은 그런 거에요.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분간 못하면 안 되요. 아직까지 한국 교회는 금주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공식적인 것에서는 안 먹는 것이 예의이고 문화에요. 우리 교회 초창기에 뭐 내 앞에서도 술을 먹고 할 때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먹지 마라 소리 안 했어요. 예의가 없는 사람이구나, 여러분 그 뭐 예의 없는 아이들 노는데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면 그것은 어른 잘못이지요. 그러나 개인적인 자리는 또 다른 거에요. 이런 것하고 같아요. 여러분 세상에 있는 그런 요즘은 회사의 이런 문화에서는 그 음주라는 것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가는 거에요. 이제는 본질적인 것 보다는.

 

그런데 나는 안 먹는다고 하는 것은, 전부 축구 한다고 체육복 입고 있는데 자기 혼자 양복 입고 공 차려고 하는 것 그것은 참 꼴 보기 싫은 거잖아요. 걸 맞는 여러분 자세, 교회 와 가지고 교회 공식 석상에서 술 먹는 것은 뭐냐 하면은 전부 교회는 또 운동복 입고 운동하는데 자기 혼자 양복 입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자유인이다, 오용이에요. 어디에 가나 그 자리에 걸 맞는 멋있는 삶,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이제는 이만큼 성숙 되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의 삶에 고린도후서 3 8절에 보면은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의문이라는 말이 뭐냐 하면은 조문 글을 말해요. 영은 뭔가, 그 조문과 글 이면에 있는 취지 하나님의 마음, 정신을 말해요.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되느냐, 제사를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의문이에요. 동일한 제사 속에서도 우상숭배가 있는가 하면은 이제는 하나의 문화적으로 트랜드로 자리잡는 제사도 있고요, 동일한 음주 속에서도 기독교인이 참여 안 해야 될 자리가 있는가 하면은 하나의 문화로 접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되요.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무슨 행사가 있을 때에 술판 벌리는 것 아직까지 본질적으로 잘못된 거에요. 그러면서 자기는 자연인이라고 모두다 추리닝 입고 운동하는데 양복 입고 구두신고, 공 차려고 하면은 그 참 예의가 없는 것이고, 멋진 모습이 아니잖아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이 말씀을 가지고 그런 문제 논쟁하지 말고요, 하나님의 구원의 열차 가운데에서 이제는 3등칸에서 특실로 옮겨 타야 되겠구나, 특실로 옮겨 타기 위해서는 문화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되요. 그리고 그 문화에는 여러분들이 정말 자연스런 어떤 자리에 가더라도 모나지 아니하고 멋있는 것, 이제는 제사가 조상의 은덕을 가지고 제사를 안 지낼 때에는 거기 가서 상대방을 인정해 주어야지요. 너는 절하고 이래라, 나는 기독교적으로 예배를 드리겠다, 그리고 그 제사상 차릴 돈 가지고 형제들이나 조카에게 용돈을 주면서 정말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모습을 가진다면은, 또 그런 것을 가지고 더 형제를 화목케 하는 것을 보인다면은 야 우리도 이제는 절하는 제사상 차리는 문화도 벗어 버리고 교회와 같은 그런 추도 예배로 드리자, 스스로 입에서 나오도록.

 

8. 하나님께 영광은 헌신이 없는 영광은 있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이 적절한 능력에 맞는 대로 잘 실천 되어야 한다.

 

기업을 하실 때에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 선교를 빌미로 해서 저임금 주려고 하는 그런 우상숭배적 탐욕을 기독교의 겉모습을 가지고 포장하지 말고요, 정말 직원들을 내 가족과 같이 그들이 더 많이 가져감으로 행복해 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런 삶을 살 때에도 꼭 이용하는 직원도 있고, 이용하는 나쁜 것도 있어요. 그럴 때에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복음의 원칙을 지키며 살 때 당했든 그 고통이 천국에 들어가는 희락의 기쁨은 없는 것보다 훨씬 커요. 이런 영적인 눈이 예배에서 열려야지요. 성령으로 인하여 귀신 보는 것이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이 아니에요. 새로운 세계가 보여져야 되요.

 

저는 이제 우리 한국 교회가 좀 3등칸에서 특실로 옮겨 가기를 바라고, 왜 양치질을 하는가 치아 건강을 위하는 줄을 알아서 예배 드리고 11조하고 온갖 헌신 다하고는 물신주의에 매여서 남들보다 더 많이 복 받으려고 현장에 가면은 더 진급하려고 하고, 더 많이 챙기려고 하는 이런 것은 여러분 얘들이 양치질하고 콜라 먹고, 음식 먹고 잠자는 것과 똑 같은 현상이에요. 이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은요 헌신이 없는 영광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함께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이 적절한 여러분들의 능력에 맞는 대로 잘 실천 되어져서 없다고 해서 초라하게 보이지도 말고요, 있다고 해서 남들에게 비난의 자리도 아니고, 정말 멋있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변모될 때 우리는 구원의 열차에요, 이 구원의 열차에는 특실도 있고, 2등칸도 있고, 3등칸도 있어요.

 

원하옵기는 특실에 타셨어요, 특실에 걸 맞는 대가 하나님께 헌신을 통한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그런 결단도 여러분들 속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얼마나 매 말라요 우리가,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제 해 가지고 나아가려고 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그 건조하고 드라이한 세상을 좀 봄비와 같은 그런 촉촉함을 적셔 나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라는 이름에 걸 맞는 구원의 열차 특등 칸이 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편안함 안락함에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정당한 헌신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이 구원 열차의 특등 칸은 진정한 특등 칸이 되어서 안락한 신앙 생활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혹시 무임승차하는 자는 없는지, 아버지 하나님 차장이 차표를 확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등 칸에 걸 맞는 헌신이 없는 숨은 그리스도인이 없도록 오늘도 성령님 그 심령 속에 있는 신앙적 양심을 깨우쳐 주시고 우리 교회가 열정페이를 요구하며 선교 지향을 하는 기업과 같은 교회가 되지 아니하도록 시끄럽고 번잡하고, 불편한 교회가 되지 아니하도록 오늘도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성령으로 물 붓듯이 부어져서 이제 그 탐욕의 하나님을 버리고,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그 하나님에게 집착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믿음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예물이 열정의 페이를 요구하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정당한 곳에 제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아버지 하나님 기독교의 교리로 종교적인 예전과 외형으로 기독교의 세력에 확장이 아니라, 이 세상에 전혀 다른 구원의 특등 칸을 통해서 열차밖에 있는 사람들이 탑승하고 싶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도록 당회에, 권사님들에게, 안수 집사님들에게, 서리 집사님들에게 그 신앙의 양심을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모든 죽음의 골짜기에 있는 인생에게 산 소망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완악한 심령을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오늘도 참고 기다려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그 인내의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넓은 길에서 좁은 길을 걸아 가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믿음의 권속들과 구원의 열차에 특등 칸이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와 3등칸일지라도 구원의 여정을 함께 가는 교회와 세상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