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
마태복음 6: 5-13
2019년 11월 24일 주일 낮 예배
No. 444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세가지 보물: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산상수훈에는 빼어난 가르침과, 구제와, 나눔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너를 얽어 매고 있는 것에서 금식을 통해서 결박을 풀어 라고 한다.
여러분들은 왜 예수를 믿습니까, 그리고 왜 교회에 오십니까, 그리고 왜 설교를 들으시고, 성경을 읽습니까, 이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올바른 대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아니하면은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할 때에 구원의 기쁨이 없어요. 여러분들의 삶의 원망이나 불평이 있는 것은 예수를 믿는 목적, 신앙 생활의 목적, 설교를 듣는 목적, 성경을 읽는 목적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를 못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목적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들은 설교를 들을 때, 위로를 받으려고 성경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설교나 성경을 읽을 때에 자신의 기도의 응답과 자신의 삶의 합리성을 위해서 성경을 읽기도 합니다. 잘못된 겁니다.
1. 십계명은 우리가 바르게 살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규정이구나 이것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신앙의 고백과 이런 계명을 위해서 우리에게 경건의 훈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또 기도이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는 뭐라는가 하면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 다음에 여러분들 속에 기억하세요. 교.책.바.의. 교훈과 책망함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에게 교훈 되어져야 되고요, 그 다음에 책망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바르게 하려고 해야 되고, 그리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 성경 말씀이고 이 성경 말씀에 의한 설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든지 설교를 들을 때에 내가 이 힘든 세상에 위로를 좀 받으려고, 복 받으려고, 전부 이런 분들이 참 많아요. 또 그런 것들을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는데 얼마나 부끄러운가 하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거에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좀 출발이 그랬으면 싶어요. 정말 내 삶의 좋은 교훈, 그리고 바르게 살려고, 그리고, 내 삶의 책망을 받으려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다면은 여러분들의 신앙의 연조가 더 해갈 수록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런 경건의 훈련이 있는 교회에는 반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어져 갑니다. 교회에 몇 년의 연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의 출발이 제대로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참 내가 예수 잘 믿었구나, 내가 참 교회를 몰랐다면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신앙의 기쁨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다 교훈을 받을 수 없고, 책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그런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해서 기독교는 세 가지의 중요한 보물을 만들었어요.
그 첫 번째가 뭐냐 하면은 사도 신경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배 때에는 사도신경을 고백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도신경에서 앞에 수식어가 있어야 되요. 무슨 수식어냐 하면은 바르게 살기 위한 신앙의 고백 사도신경. 왜 신앙의 고백을 해야 되는가, 사람들은 신앙의 고백을 하면은 구원 받고 천국 가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데, 그렇지 안 해요. 바르게 살기 위해서 신앙 고백해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린 숫자가 늘어날수록 여러분들의 삶이 바르게 되어져야 되요. 그리고 기독교에는 십계명이라는 보물이 있어요. 이 십계명은 우리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최소한 계명을 말해요. 그래서 바르게 살기 위해선 최소한 정도 이 계명 정도는 지켜야 된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내용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십계명은 우리가 바르게 살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규정이구나 이것 생각해야 되요. 그리고 우리가 이런 신앙의 고백과 이런 계명을 위해서 우리에게 경건의 훈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또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중심이 주기도문인데요, 이 주기도문 역시 우리가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을 하게 되는데, 이 주기도문에도 여러분들이 수식어가 있어야 되요. 바르게 살기 위한 기도문 이래야 되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전부 우리 한국에는 제가 볼 때 이런 사람이 너무 많아요. 복 받으려고, 잘 되려고, 그러면 여러분 우리 실상을 한번 보자고요.
2. 산상 수훈에는 세 가지를 담고 있다. 산상수훈 가장 빼어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또 구제이다, 바른 삶은 나누기 위해서 사는 삶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는 행위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을 받은 사람 많은가, 삶이 잘 된 사람이 많은가, 그러면은 그렇게 믿어야 되겠지요.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말한 대로 문벌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교회에. 여러분 우리 사회가 능력 있고 문벌 좋고, 가문 좋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뭐 잘 이끌어 갑니까? 우리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부자도 아니고, 학벌 있는 사람도 아니고, 좋은 가문 있는 사람도 아닌데, 세상 사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 사람은 바르게 돼, 이런 말을 들어야 되요. 예전에는 그런 평가가 교회 안에 있었어요.
왜 교회에 다니는가 하면은 교회 가면은 그래도 사람이 돼, 이런 말이지요. 그런데 바르게 라는 말과 바르게 하자는 말은 많은데, 바르게 하는 삶이 뭔지를 구체적으로 모르는 거에요. 그것이 경건입니다. 이 바르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요 마태복음 6장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 그래요. 산에서 강의한 설교인데요, 수훈 가장 빼어난 가르침이라는 거에요. 이 산상 수훈에는 세 가지를 담고 있어요. 하나는 구제입니다, 저는 그런데 이 번역이 잘못 되었다 생각해요. 나눔이에요. 여러분들이 바르게 사는 삶은 어떤 삶이냐 하면은 나누기 위해서 사는 삶이에요. 바르지 못한 삶은 가지기 위해서 사는 삶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지금 한국에 보세요, 전부 복 받으려고, 가지려고, 기도하고 뭐 종교 생활하고, 교회 다니고 하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해.
옛날에는 어디에 가서 장로 명함 내면은 일단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었는데, 요즘은 장로 명함 내면은 장로 중에 사기꾼 많아 이런 소리 한다고요. 왜 그런가 하면은 출발 자체가 잘못된 거에요. 바르게 하는 것이 뭔지를 모르는 거에요. 그저 종교적인 규범이나 이런 것을 잘아는 줄 알아요. 여러분 바른 삶은 나누기 위해서 사는 삶이에요.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교회에 다닐 때에요 한번 바꾸어 보세요 그러면 이전에 누리지 못했든 기쁜 삶이 있어요. 사람을 만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은 어떻게 하든지 나누고 도와 주려고 해야 되요. 그런데 이 나누고 도와 주는 것도 전부 물질로 나누어 주는 줄 알아요. 아니에요.
시간으로도 나눌 수도 있고요, 재능으로도 나눌 수 있고,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는 행위에요. 저는 이 사람이 거듭났는가, 이 사람이 성숙된 사람인가,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이고, 어떻게 보는가 하면은 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나누어 주려고 하는가,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는가, 이것을 통해서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가, 이것을 가지고 가치판단 해요. 앞으로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 신앙 생활 할 때에 이제 사람들을 볼 때 여러분들이 이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다 아니다 이런 것은 말투라든지 종교적인 행위로 보지 말고,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전부 나누어 주려고 하는가, 마음을 나누려고 하는가, 아니면은 이용하려고 하고, 자기 중심적인가, 이것으로 가치 판단 해야 되요. 그래야 우리 교회가 변화 되어져요.
3. 그래서 나눔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바름의 기준이 되는 거에요. 이 나눔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경건의 훈련이 뭐냐 하면은 기도와 금식이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러분들이 저에게서 그런 부분들 보셔야 되요. 우리 교회에 교역자가 좀 부족해요, 그래서 참 힘들어요. 그래서 뭐 교회 재정을 고려 해서 Part 정도는 하나 있어야 되겠다 하고 6개월 전부터 내기는 뭐 공고도 내고 이러는데 여러 가지 볼 때마다 저는요 이력 좋은 사람, 뭐 좋은 사람, 많이 있었어요, 다 안 했어요, 이번에 이제 오늘 당회 때 하는데, 읽어 보는데 참 감동이 와요. 그래서 했는데, 여러분들이 이 교역자를 볼 때 저는 그래 생각해요. 이 사람 우리 교회에 어떻게 써먹을까, 어떻게 우리 교회에 이용해서 성장에 도움이 될까 그러면 나는요 경건한 목사 아니에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도 모시지만은 어떻게 하면은 이 분을 도와 드릴까, 기본적으로 이런 것이 있어야 되요. 내가 목사 선배로서 어떻게 도와 줄까, 인생의 선배로서 어떻게 도와 줄까, 그래서 여러분 오실 때에 내가 뽑은 것에 대해서 갑 질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못 도와 주는 것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거에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돈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능력에 맞게끔 주려고 해야 되고요, 시간이 있는 사람은 시간의 능력이 맞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려고 해야 되고요, 남들이 갖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은 이것을 자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고 해야 되어요. 이것이 이런 삶을 살도록 우리는 신앙의 고백을 하고, 또 십계명을 우리가 계명으로 삼고, 주기도문으로서 우리가 기도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눔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바름의 기준이 되는 거에요. 이 나눔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경건의 훈련이 뭐냐 하면은 기도와 금식이에요. 그런데 유대교에는 이 세 가지가 경건의 훈련인데요, 어찌했는가 하면은 나눌 때에 조금 주어 놔 놓고 거리에서 나팔을 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거리에서 나팔 불지 마라,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랬어요. 유대교에는 경건이 기도의 중요한 기도가 경건의 수단이에요.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잘하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아요. 그런 유대교에 대해서 거리에서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서 하라, 이러니까 이것을 가지고 기도 굴에서 기도하라는 줄 알아요, 이런 말이 아니에요 골방에서는. 남에게 인정 받으려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어디에 가서 어떤 목사님들이 또 교회에도 야 저 권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권사님이라고, 예수님은 이미 네 상은 받았느니라.
어디에 가서 저 목사님 기도 많이 하는 목사님이야, 기도 잘못하고 있는 거에요. 제가 받은 명함 중에 제일 놀란 명함 목사님에게 금식 기도 4회한 목사, 웃을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삶 속에도 그런 것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금식도 금식을 많이 한 사람들은 인정 받지요 교회에도, 유대교도 그랬어요. 그래서 슬픈 기색이나 얼굴을 흉하게 하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하면서 예수님이 경건에서 끊임없이 하신 말씀, 우리 한번 4절 읽어 보세요 시작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4. 나누기 위해서 사는 것이고, 이 나누는데 이 힘을 얻는 것이 기도와 금식이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18절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고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도를 많이 했는데 금식도 했는데 나는 구제도 많이 하는데, 내가 왜 이래, 사람에게 보이려고 해서 그래요. 하나님은 누구에게 갚으시는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하신 일을 하나님은 갚으신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놀라운 비결을 알아야 되요. 뭐 금식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기도는 축복을 받는 통로 그것은 부흥 사가 한 말이에요.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은밀한 것을 하나님은 갚으시리라.
우리 교회 여러분 그런 부분들이 잘 안 드러나잖아요. 우리 교회 오면은 여러분들이 제일 인간적으로 실망이 뭐냐 하면은 목사님이 칭찬을 안 하는 거에요.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했는데, 칭찬하면 안 되요. 그것은 CEO가 되는 거에요. 사람을 능력에 지나치도록 해 가지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과 도구로 삼기 위한 거에요. 진짜 하나님의 은혜는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편한 거에요. 저의 목회의 가치판단이 산상수훈에 있는 거에요. 여러분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푼다고 하잖아요, 여러분 금식하면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풀어 주셔, 성경은요 흉악이라는 것은 가난이나 질병이 아니에요. 너를 얽어 매고 있는 것에서 금식을 통해서 결박을 풀어 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나누며 살려고 하면은 걱정도 되는 자기를 얽어 매는 것들이 있다고요, 그럴 때에 금식을 하게 되면은 그 얽어 매는 것에서 자유 하게 되어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저도 어디에 가면 사람에게 인정받고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요. 그럴 때에 금식을 하게 되면은 금식은 뭐냐 하면은 생명을 거는 것이거든요, 나를 죽이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했잖아요, 저는 사형 선고를 받았었다고 한번, 의사가 죽는다는 소식을 무의식 중에 들을 때에 나를 얽어 매는 것들 남에 대한 미움, 가지고 싶은 것, 아무것도 없어져요.
바르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나누기 위해서 사는 것이고, 이 나누는데에 이 힘을 얻는 것이 기도와 금식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유대인의 기도는 언제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 같은 종교 안의 유대교가 아니고, 이방인의 기도와 신앙인의 기도가 달라야 될 것,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도가 달라야 될 것을 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그 본질적인 것이 뭐냐 하면은 이제 7절 보세요. 다 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여기에 이방인의 기도는 어떤 기도라고요, 중언부언의 기도라 했지요. 중언부언은 뭐라고요, 말을 많이 해야 되는 기도라고 하지요. 그러면 이 중언부언 기도, 말을 많이 하는 기도는 뭔가,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되요. 성경은 헬라시대의 수사학적 기법을 통해서 기록된 거에요. 그래 수사학에 인쿠르지오[Inclusio]라는 말이 있는데 그 뒤에 31절을 보세요. 짝을 이루는 말씀이 뭐냐 하면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뭐라고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그러면은 이방인들의 기도를 앞에는 중언부언이라 했고, 31절에 가서는 뭐라고 해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여 하는 기도다 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 뒤에도 똑 같은 말을 해요.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5. 신앙인의 기도는 뭔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말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다.
그러면은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하여야 하는 이방인의 기도는 뭐냐 하면은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요. 응답할 때까지 기도 해라, 때 쓰면 주시는 하나님이다, 왜 못 받느냐 기도를 안 해서 그렇고, 기도를 그 잠깐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기도하는 그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돼, 그 모양이니까 그래 살지, 전부 이방인의 기도를 가르치는 거에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아무리 기도해도 중언부언의 기도가 되요. 우리 한국에 그런 것 있잖아요. 기도 응답 뭐 다니엘 기도, 무슨 기도 전부 응답을 끌어내기 위한 거에요. 40일 금식 기도, 전부 말을 많이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이방인의 기도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중언부언의 기도인데 지금 보세요 한국에 왜 예수 믿는 사람이 구원의 기쁨이 없고, 교회가 샬롬이 없는가 하면은 이방인의 기도를 해서 바르게 사는 사람 나누려고 하는 사람의 능력을 갖지를 못해요. 교회에 오래 다니고, 설교를 들어도 사람만 보면 이용하려고 그러고, 모든 것을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로 가치판단하고, 사람에게 나에게 자신의 인정만 받으려고 하고, 기도 없는가 기도는 열심히 해요 이방인의 기도를, 그러면 우리가 신앙인의 기도는 뭔가, 거기에 33절 다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면 여기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이런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나는 금식한다, 자기 주관적인 견해[見解]에요. 성경에 그 앞에 다시 가보세요. 7절 제가 읽습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뒤에 말씀과 똑 같지요. 그러면서 뒤에는 뭔가 하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했는데, 9절에는 뭐라 해요, 그러므로 너희는 뭐 하라고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무엇이에요, 주기도문이에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주기도문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 목사님 그러면 지금 기도 할 게 없네요 이런다고, 여러분 우리 한국의 교인들이 왜 거듭난 자의 삶이 시작이 안 되는가 하면은 기도를 자기 마음대로 해서 그래요. 유대교도요 기도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공적인 기도가 있어요 테필라나 카디쉬나 예수님이 여기에 주기도문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인데요 누가복음 11장에 가면은 똑 같이 또 짝을 이루어요. 요 부분을 말할 때에 예수님이 왜 주님이 기도문을 가르쳐 주었는가 하면은 예수님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에게 건의를 했어요. 예수님 요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는데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그때 예수님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말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랬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에요. 굉장히 유대교의 기도문이나 성당 다니는 사람의 기도문 보다 짧고 간결[簡潔]해요.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들에게 대림절에 다음주부터 대림절이에요. 대강절 이라고도 해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4주간을 말해요. 이 4주간에 예수님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런 절기에요. 여러분 이 교회의 문화도 중요해요. 그래서 교회는 크리스마스 장식은 대림절과 함께 장식을 해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번 주 토요일 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고, 그리고 다음주 3부 예배 때에는 점등 식도 해요 대림절의 시작.
6. 왜 예수님을 기다려야 되는가? 나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나누려고, 주님은 그것 때문에 오신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무시로 기도하는 시시때때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는 기다림과, 왜 기다려야 되는가, 복 받으려고 하면 안 되요. 바르게 살려고, 왜 예수님을 기다려야 되는가, 이제는 사람을 이용하고 뭔가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삶을 살려고, 돈 많이 벌어서 나누려고 하지 말고요, 나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나누려고, 주님은 그것 때문에 오신 거에요. 그랬다가 성탄절의 장식도 2월 달 까지 가는 이런 것은 잘못된 거에요. 주현절[主顯節] 1월 7일 날 다 거두어 드려야 되요. 이번 대림절에 제가 주기도문을 강해할 거에요. 우리 교회 이미 한번 했어요, 그래서 책도 냈어요. 인간이 바라는 천국,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 그것이 주기도문 강해에요.
그런데 목사님 왜 이번에 또 하는가, 제가 보니까 그렇게 안 살아 ㅎ ㅎ, 그저 교회도 이용하려고 하고, 잘 되려고 하고, 이렇게 사는 모습이 보여요. 책까지 냈는데, 그래서 이제는 정말 제대로 사는 삶, 바르게 살려고 예수 믿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야 되겠다. 그러면 목사님 우리가 기도 그러면 주기도문만 하면 끝납니까, 아니에요, 개인 기도는 무시로 하는 기도에요. 이것을 아셔야 되어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무시로 기도하는 시시때때로 기도하라는 거에요. 시시때때로 기도할 때에 여러분들이 하나님 주시옵소서, 시시때때로 가 아니에요. 왜 무시로 쉬지 말고 기도 하라 했는가 하면은 여러분들이 어떤 말을 듣거나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때에 눈을 뜨고 기도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께 기도 할 때에 기도는 하나님의 대화라고 했잖아요, 주기도문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은 자기 뜻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왜 보았습니까, 물어야 되요. 시시때때로 물어야 되요. 물을 때에 응답이 뭐냐 하면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 여러분들에게 응답이 되어져야 되요. 그 기도문의 세계관을 가지고 보셔야 되어져요. 내가 지금 보는 것 내가 지금 바라는 것들이 이 기도문의 원하는 것에 합당한가, 그러면 여러분들 제가하는 경건의 삶을 open 을 좀 해 드릴께요.
7.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싸인을 주신다. 그 싸인을 내 식으로 보는 게 아니고 주기도문의 세계관으로 봐야 된다. 바르게 살려고 신앙 고백해야 된다. 바르게 사는 최소한의 삶을 십계명으로 한다,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어른 노릇 하는 분이 없으니까 이것을 통해서 듣게 하셨구나, 내가 설교 때 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판단이 아니고 잘 들으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의 속에서 싸인을 주시는 거에요. 그 싸인을 내 식으로 보는 게 아니고 주기도문의 세계관으로 봐야 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 드렸잖아요. 우리 교회에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어요 건물에도, 두 종류 사람이 있어요, 우리 교회 이런 것 해야 되는 게 보이는가 하면은 목사님 그것 제가 이번에 이것 하려고 했는데 이것 할게요 이런 분이 있는가 하면은, 우리 교회 이런 것 해야 되는데 왜 안 합니까 목사님, 이런 것 우리 합시다 재정으로 합시다. 물론 재정이 넉넉하면 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있어야 교회가 되겠어요,
참 우리 다음주부터 대림절기[待臨節氣] 들어가는데, 이제 책까지 냈는데 이제 한번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찔림을 받아서 한번 해 보자고요, 또 어떤 사람들 마찬가지에요, 저는요 사람 이래 보이잖아요, 그러면 이 사람의 좋은 점, 부족한 점이 보이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했잖아요, 왜 남이 못 보는 것 내가 보는가, 내가 그것 커버 해주고 도와 주라고, 유대교는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를 본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그 말씀하신 것은 여러분들이 목사님의 부족한 부분이 보이잖아요, 우리 목사님 저게 문제야,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이지요. 왜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내가 보게 되었는가, 그 부분을 내가 목사님 도와 주라고, 나도 여러분들에게 마찬가지에요, 피차에요.
우리 집사님이 이런 부분이 부족한 것은 도와 주라고, 여러분 보세요 지옥은 어떤 곳이냐 하면은 전부 다 문제 있는 것을 남 탓하고 지적하고, 자기가 하나님 노릇해서 판단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지옥이에요. 유황불 불타는 곳은 그것은 상징이고 다니엘 시대에 가장 극형이 뭐냐 하면은 풀무 불 형이거든요, 그 형을 통해서 절대로 지옥에 가지 말라는 상징이고요, 유황불이 아니고 지옥은 어떤 곳이냐 하면은 전부 상대방에 대한 판단과 손가락질과 정죄만 있는 곳이에요. 교회가 지옥 되는 것 간단해요.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 온전한 사람의 좋은 점보다는 좋은 점은 많은데, 이점 이런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지옥 되요.
천국이 되는 것이 어떠냐 하면은 천국에는 천국에 가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은 하나님 나에게 저 부분은 채워 주라고 나에게 보이게 했구나, 덮어 주라고 보이게 했구나, 이런 삶을 위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준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정리하자면은 예수를 믿으려고 할 때에는 복 받으려고, 잘 되려고, 그것은 여러분들 이용하기 위한 종교인들의 주장이에요. 여러분들이 바르게 살려고 신앙 고백해야 되거든요. 바르게 사는 최소한의 삶을 십계명으로 하고요,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기도가 있어야 되요. 그 기도를 할 때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는 이방인의 기도하지 말고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40일 금식 24시간 기도 해도 하나님은 들어 주지 안 해요. 있어야 할 바를 아시는 하나님이세요.
8. 구원의 삶을 살아 보면 찬양이 나온다. 하나님의 그 뜻이 얼마나 신묘막측 하는가 하는 것은 살아 본 자만이 경험하게 된다.
어떤 기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 주기도문, 그리고 여러분들은 무시로 기도 해야 됩니다. 여러분 남이 어떤 문제가 보이거나, 교회 어떤 문제가 보이거나, 친구의 어떤 문제가 보이면은 그것을 내가 하나님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이러는 게 아니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요, 내가 그 부분을 메꾸어 주려고, 여러분 무시로의 기도가 뭐냐 하면은 어떤 문제가 탁 있으면은 하나님 이런 것을 왜 내가 듣게 했습니까, 왜 나에게 보이게 했습니까, 질문을 해서 주기도문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가치판단 해 나가면은 이제는 원망이 변하여서요 찬양이 비로서 나와요. 찬양을 해서 기뻐 지는 게 아니에요.
구원의 삶을 살아 보면 찬양이 나와요. 하나님의 그 뜻이 얼마나 신묘막측 하는가 하는 것은 살아 본 자만이 경험하게 되어져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교회는 그냥 지적 질이 아니고, 요 부분 주기도문 맨 마지막에 또 부록으로 붙은 부분이 요 부분이 붙어 있어요. 그때 하겠지만 오늘 여러분들의 삶 속에 무시로 좀 기도 할 때 질문 하세요. 목사님이 이런 설교도 했는데 저것 나보고 하는 소리다 이러면은 사탄이 역사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서 나에게 귀한 말씀 주셨구나, 찔림을 받아서 그 동안에 내가 살아왔든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책망을 받아서 바르게 의로 교육하는 자리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신앙의 연조가 예배를 드린 햇수가 많아 질수록 사람들이 저 사람 예수 믿더니만 사람 되었네, 사람 되는 게 뭐에요, 한자에도 사람 인자 사람은 혼자 안 되고 밭치는 것이라 하잖아요.
다른 사람이 밭쳐 줄 때 사람 되는 거에요. 사람이 온전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누가 밭쳐 주어야 되잖아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Care 와 밭침과 보호를 받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세워 주고, 챙겨 주고 감추어 주고, 제대로 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전부 어른이 되는 그런 복된 대림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예물을 드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듣습니다.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여도 취하지 못한다고 하는 음성 듣습니다. 과도히 아낄지라도 남는 것이 없고, 흩어 나눌지라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아굴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드린 예물을 열납해 주시고,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삶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서 자신만 알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서 모든 것을 가치판단 하는 삶 속에서 살든 우리를 죄인의 모습으로 서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결단하심이 오늘도 말씀에 찔림을 받고 돌이켜 주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이들이 모여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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