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 III (마태복음 6: 31-34)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12. 14. 11:22

 

 

 

담임목사 김종웅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 (III)

마태복음 6: 31-34

2019 12 8일 주일 낮 예배

                                                                                                                              No. 446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아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의 샬롬을 누리는 삶.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완전히 세상사는 사람과 다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한다. 하나님은 창조자이기에 인간 살리려고 자기 죽는 신이다. 무엇을 선택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선택하라.

 

저는 주일날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납니다. 또 알람도 그래 놔 놓고, 일어나서 씻고 잠깐 Naver 검색 뉴스를 검색을 하는데 손흥민의 이야기가 나와요 폭풍 같은 질주를 했다고, 73미터를 단독 드리블해서 골을 넣었다는데 정말 머리끝이 쭈빗 설만한 기쁨이 있어요. 그리고 조금 보니까 박항서 감독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4:0을 이기고, 결성에 올라갔다는 것이 왜 나에게 이렇게 기쁘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전혀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일인데 기뻐요. 그것이 뭐냐 하면은 피의 힘이지요. 그것이 우리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감독으로 있는 베트남도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요.

 

1. 교회와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의 그 샬롬을 누리는 그 삶을 사는 것은 더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인가, 세상 나라에 속한 사람인가는 어느 것이 잘 되느냐에 따라서 기쁨을 가지느냐, 그것으로 결정이 됩니다. 이 사람이 말로 입으로만 할렐루야 뭐 날마다 감사 교회 이런 것이 아니에요. 정말 교회와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에요. 그러나 그가 목사 이던지 장로이던지 어느 누구라도 자기와 자기 자식만 잘 될 때 기뻐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해서 나와 내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은 또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내 자녀가 잘 되는 만큼 내 교회가 잘 되는 만큼 타인도 잘 되기를 바라면서 기뻐하는 그런 삶, 그래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오늘날 왜 교회가 세속화 되었는가, 교회에서 유행가 부르고 이런 것이 아니에요. 교회가 자기 교회만 잘 되면 좋아해요. 그러면은 세상에 속한 교회가 됩니다. 내 교회에 빈자리가 채워 지기를 바라면서도 이 빈자리가 다른 교회 다니는 교인이 와서 이 자리를 앉아서 채울 때에 그 목사님의 눈물이 보이는 목회를 할 때 하나님께 속한 교회가 되는 거에요. 그저 어떤 교회는 다 쓰러지더라도 내 교회만 채우면 돼, 그것은 세상에 속한 교회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번 대림절에 여러분들이 이 대강절에 하나님의 나라에 올바른 모습을 알므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환경이 초월하는 기쁨과 감사 그것 누리다가 여러분들이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 삶을 그 어떤 환경이나 무엇도 빼앗지 못하는 그런 삶을 누리다가 그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만나는 그런 귀한 대림절이 되었으면 해요.

 

여러분들이 세상에 속한 삶, 세상에 속한 자로서 종교 생활을 하면은 틀림없이 이 땅에서는 기독교인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 칭하지만 저는 천국에서는 그 사람 힘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왜 세상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대림절에 정말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서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제대로 들어야 되어져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많아요. 요 인근에 어떤 교회는 우리 교회에 와야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서울에서도 거기에 온데요.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목사님의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 다니면 안 되요. 자기 교회 잘 되기 위해서 남의 교회 울리는 것은 교회는 교회인데 세상에 속한 교회입니다.

 

또 여러분 저는 우리 한국에 보면은 북한과 같은 그런 천국을 말하는 교회가 너무나 많아요. 북한의 천국은 지상 낙원이래요 자기들끼리는, 그리고 김정은이가 한번 뜨면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서 안기고 박수를 쳐요. 하나님하고 예수님 이야기하면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치기는 치면서 그곳이 지상 낙원이라고 하는데, 자기네들 생각으로만 지상 낙원이에요. 지상 낙원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여러분 세상에서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 천당 밑이 분당이라고, 분당은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에요 동백보다는 틀림없이. 그러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돈 있으면 분당으로 이사 가도 되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곳에 있던지 그곳에 있던지 (어느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의 그 샬롬을 누리는 그 삶을 사는 것은 여러분 더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되어져요.

 

2. 경외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긴다고 할 때에 그 거룩 이라는 말은 이것은 신령한 것 종교적 거룩이 아니다. 물리적 개념이다, 물리적 개념이라는 것은 Section 이 속한 것 장소가 공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먼저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은 세상에 속한 나라는 자기와 자기 가족만 잘 되기를 바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도 잘되고 자기 자식도 잘되고, 남도 잘되는 그런 것을 기뻐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요. 여러분들이 그러지 아니하고, 정말 자기와 자기 가족만 잘 되기를 바라는 삶으로 예수를 믿고 기도를 하면은 훌륭한 기독교인인데, 천국에서는 만나기 힘들다고 봐요. 지난번 예전에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전도한다고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니까 어떤 며느리가 우리 시어머니도 교회 권사인데 예수 믿는데 천국 가느냐 하니까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 시어머니 가는 천국이라면 아무리 좋아도 나는 안 갈래요. 어떤 시어머니겠어요, 자기와 자기 자식만 좋아했지, 며느리는 다른 성을 가졌다고, 82년생 김지영이의 시어머니와 같은 거에요. 친정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요.

 

저는 정말 여러분 자기와 자기 자식만 아는 사람이 천국에 간다면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 천국 가고 싶지 안 해요. 왜 그곳이 지옥이기 때문에요. 정말 여러분 우리 교회가 제가 말씀 드리듯이 자기도 잘 되고 자녀도 잘 되지만은 타인도 잘 되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이런 교회 생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요. 그러면 그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들 속에 되려면은 여러분들 기도에서 보면은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할 때 그 앞의 세 개는 항상 당신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당신청원이라는 거에요 기도할 때에는. 당신 세가지 청원이 중심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을 그저 입만 열면 할렐루야 그러고 내가 좀 좋은 일이 있으면은 하나님께서 해 주셨다 하고,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에요. 또 제가 잠깐 더 2부 예배 때에 내가 박항서가 인도네시아를 이겼다고 했는데 결성에서 만나요, 그래서 내가 설교를 해도 이것 한 다리 건너니까 좀 그런 것 같아 ㅎ ㅎ 그래서 맞는가 싶어서 다시 예배를 마치고 검색을 해보니까 캄보디아 4:0 이겼는데 거기에 뭐가 또 나왔는가 하면은 손흥민이에 대해서 일본이 극찬을 하면서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대요.

 

그런 경외감이 아닙니다 여러분, 경외감이라는 것은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탁월한 무엇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은 세상에서 가지는 경외감이에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긴다고 할 때에 그 거룩 이라는 말은 이것은 여러분들이 잊으면 안 되요. 신령한 것 종교적 거룩이 아니에요. 물리적 개념이에요. 물리적 개념이라는 것은 여러분 Section 이 속한 것 장소가 다르다는 거에요 공간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야 되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완전히 세상사는 사람과 다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야 되요.

 

3.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있으면은 성과와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목회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에 범접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 앞에서 가지는 감정이 경외감이다.

 

하나님과 다른 존재 그 존재는 만나면은요 경외감이 생겨요. 세상에 대한 경외감은 힘에 의한 경외감이요, 그래서 조폭들은 문신을 그려 놓고 험상 굳게 해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두려운 마음을 주잖아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정말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신앙 생활을 해야 되요. 예전에는 신학교에 갈 때면은 사명으로 안 갑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부르심을 가지고 가요. 하나님과 만남이 없이 사명에 사로잡혀 버리면은 목회가 일이 되어져요. 그래서 성과주의로 가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있으면은 성과와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목회를 해요.

 

여러분 그 하나님과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런 것들은 믿음으로 여러분 봐야 되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여러분들의 삶을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들여다보면 들여다 볼수록 신앙의 연조가 더해 가면 더해 갈 수록 내 삶의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내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의 손길이 있구나, 정말 내가 경험 해보고 싶지 않는 이런 경험도 하나님은 왜 하게하셨는가, 나를 사람 되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철저히 하시는 것은 사람이 사람 되라고, 왜 사람이 사람 되라고 하는가 하면은, 사람은 나는 좀 힘들어도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좋아할 수 있어야 그게 사람이 되는 거에요.

 

나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나 싫어하는 사람 싫어하면 호불호에서 그것은 펫 동물이지요. 사람은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사랑해 줘요. 여러분 사람이 자기 좋다고만 살다가 이제 다른 사람도 생각하고 가정도 생각하고 이러면 우리 그러잖아요, 이제 인간 되었네, 어떻게 하나님 만나야지요. 그 하나님을 만나려면은 여러분들의 삶 속에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시는 하나님이 내 수준으로 인도해 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시험 들어요. 내가 경험 해보지 않는 그 깊은 곳에 떨어져 있을 때, 하나님은 왜 손 내밀지 않는가, 하나님은 나보다 더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나 사람 되라고, 성경에서 그것을 봐야 되요.

 

그러고 나면은 내 수준으로 헤아렸든 그 신이 내 수준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에 범접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 앞에서 가지는 감정이 경외감이에요. 큰 것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세상의 경외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성경을 제대로 봐서 여러분들의 인생의 해석을 제대로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삶에서 저 사람은 다른 사람하고 좀 다른 삶을 사네, 이런 평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하려고 해야 되요. 제가 여러분 설교 여러분 했어요. 한번 읽으면서 보세요, 창세기 20 11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4. 모세로부터 신앙 출발하지만 모세가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 창세기 신앙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가 된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과 형을 원망하지 않았다, ,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시는 하나님,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나님을 어릴 때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이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이 사는데 약속의 땅에, 기근이 왔어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이방 땅 블레셋 지역에 그랄 지방으로 이민을 갔어요. 갈 때에 뭐가 제일 걱정이었는가 하면은 아브라함의 아내는 참 예뻤어요, 자기 눈에 예뻤는지 객관적인 예쁨은 모르겠어요. 사래라는 이름은 나의 공주 이런 말이에요. 자기 아내를 맨날 나의 공주, 나의 공주 하고 부르다가 다른 지역에 이사를 가니까 그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예쁜 아내를 차지하려고 나 죽일까 봐 두려워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내 누이라고 했다는 거에요. 창세기 신학을 제대로 알아야 되요.

 

여러분 모세로부터 신앙 출발하지만 모세가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 하면은 창세기 신앙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가 된 거에요. 이 창세기에 보면은 세상의 나라와 가나안의 것을 그렇게 하나님의 두려워하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남의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게 세상이에요. 우리 교회의 좋은 것을 하기 위해서 다른 교회 죽이는 것, 그것은 세상이에요. 여러분들이 내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남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은 그것은 세상사는 사람이에요. 지금 우리가 힘든 게 그거잖아요. 제도는 얼마나 좋아요. 뭐 최저 임금이나 뭐나 전부, 무엇이 없는가 제도만 좋은 거에요. Born Again 이 안 되는 거에요. 그게 정착이 되려면은 정말 교회가 있어야 되는가 교회가 복음을 선포해야 되는 거에요.

 

남 좋게 하기 위해서 내 좀 손해보고, 내 갖고 싶은 것 절제할 수 있는 것, 어떻게 하나님을 만남이 있어야 되요. 또 그리고 그 다음에 보세요. 창세기 42 18절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요셉이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 해석을 이제 제대로 들으세요, 요셉은 하나님을 믿었더니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 그것은요 인간의 수준으로 성경을 보는 거에요. 그래서 세상에 속하게 만드는 거에요. 창세기 신앙의 요셉을 보세요, 저는 사실은 육체노동은 할 자신이 없어요, 왜냐하면은 대부분 책상에 앉아서 살았기 때문에, 요셉은 채색 옷을 입었어요.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형님들의 모함에 의해서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갔어요. 노예로 팔려 가서 육체노동을 할 때에 여러분들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하나님과 형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런데 그는 하나님과 형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시는 하나님, 십자가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을 어릴 때부터 알았기 때문이에요. 야곱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에 형들은 일할 때 요셉은 아버지의 품에서 말씀을 통해서 그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 이 고통이 내가 채색 옷 입고 있으면은 형들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는 아버지에게 나만 이쁨 받으려고 하는 못난 세상에 속한 나를 하나님은 노예가 되게 해서 나를 사람 만들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 노동을 이겼어요.

 

5. 하나님께서는 그 오해를 풀어 줄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풀어 주지 아니하고 요셉을 감옥에 보낸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생명은 보존될 거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십자가에서 계시 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생을 봐야 된다.

 

그랬다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하고 들은 설교하고 얼마나 차이 있는가 한번 보세요. 16세 때 한창 정욕이 불타는 나이에 사춘기에 보디발의 아내가 허리가 개미허리라 그런데 유혹을 해요. 그것을 물리치고 나가요, 옷을 붙잡을 때 벗고 뛰쳐나왔어요. 그러면 우리 생각에는 뭐냐 하면은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 유혹을 이겼으니까 보상을 주어야 되잖아요, 그게 인간에 생각하는 수준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오해를 풀어 줄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풀어 주지 아니하고 감옥에 보내요, 얼마나 이가 갈리겠어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러나 요셉은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신 그 하나님께서 나를 낳은 자이기에 내가 아플 때 나보다 더 아파하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야곱의 일생이 그런 일생이었잖아요.

 

그 속에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사람답게 묵묵히 수용 생활 했어요. 그 생활하는 가운데에서 여러분 절호의 찬스가 왔어요, 애굽의 바로의 대신인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이 왕 암살 계획이 들켜서 왔습니다. 꿈을 해몽 해 주는데 떡 맡은 관원장이 한 거에요. 이것은 사형을 당할 것 같고, 술 맡은 관원장은 풀려 나서 복직할 것 같다고, 그래서 그 꿈을 해몽 해주면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뭐라는가 하면은 당신은 곧 복직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내 억울함을 바로에게 좀 해결해서 나를 좀 나오게 해 다오. 술 맡은 관원장이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 나갔는데, 2년 동안 깜깜 무소식이요, 2년의 세월이 얼마나 요셉에게는 고통의 세월이었겠습니까.

 

이제 곧 창훈이가 제대를 한다는데 제대 명령직 받고부터는요 하루가 천년 이라, 지금 요셉에게는 석방의 통지서를 받고는 2년을 지나는데도 그 2년이 2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거에요.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2년인 줄 알지만은 그때에도 요셉은 하나님은 가치 없는 나를 만드신 그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줄 때에 내 수준에서는 분명히 내가 제대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되는데 안 주셔요. 왜 사람 되라고, 만약에 그런 고통이 없었다면 요셉은 어떤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입어서 채색 옷을 입으면서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 하면서 아버지의 귀염을 받았든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았을 터인데 그는 사람이 되고 난 뒤에 국무총리가 되어져요.

 

그래서 국무총리가 되고 난 뒤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와서 지금 자기 눈앞에 자기를 그렇게 고생하게 했든 철 천지 원수 고난과 고통 속에 내가 인고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든 것은 저 형을 어찌해 시원치 않을 그 형들에게 뽄 대를 보여 주려고 세월을 보냈는데 보통 사람이라면은, 그도 보통 사람 중에 하나이겠지요, 그 마음이 왜 가슴 속에 없겠어요 눈앞에 있으면, 베냐민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정탐꾼이라 몰고 사흘 동안 감옥에 가뒀다가 나와서 벌벌 떨고 있는 형들을 앞에 두고 하는 소리에요.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생명은 보존될 거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고 할 때에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십자가에서 계시 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들의 인생을 봐야 되요. 종교적인 체험으로 하나님을 만나니까 전부 자기 수준의 신앙 생활 해 버려요. 세상에 속한 신앙 생활 해 버린다고. 자기 수준이 뭡니까, 역전의 명소 하나님, 보상의 하나님, 십자가에 계시된 그 하나님은 내 수준에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이에요.

 

6. 요셉을 만드신 하나님은 요셉이 사람 되도록 아파할 때 더 아파했다.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자기가 죽더라도 남 살리는 사람이 되도록,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여러분 너무 신학적으로 이해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하여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으면은 구원을 얻는다 교리에요. 거기에 계시된 하나님 보세요, 하나님은요 창조자이기에 인간 살리려고 자기 죽는 신이에요. 그 신을 여러분들이 만나서 그 신으로 여러분들의 인생을 해석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생기는 거에요. 여러분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 자기 그 권력을 가지고 사랑하는 자에게 복 주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은 벌주는 그것은 인간이 만든 신이에요.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국무총리 되고, 마음에 안 든 사람은 국무총리 안 시키는 것은 인간이 만든 하나님이에요.

 

요셉을 만드신 하나님은 요셉이 사람 되도록 아파할 때 더 아파했든 거에요.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자기가 죽더라도 남 살리는 사람이 되도록,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에요. 그 부름의 시작이 신앙의 시작이 되어야 되요. 그 요셉은 그 형들에게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당신의 삶을 보존되게 하리라. 여러분 왜 하나님을 만나야 되는가, 종교적인 체험 방언 이런 것 하지 말고요, 그러면 미신 하나님 만나요. 십자가에 계시되는 하나님, 쓸모 없는 나를 위하여 자기가 죽는 신이 나를 존재하게 한 신이구나, 여러분 자녀가 사람이 되려면은요 자기 수준으로 생각할 때에 엄마는 나를 낳았으면 책임져야지, 원망 생겨요. 엄마는 낳은 자이기에 자식에 대해서 모든 것을 내어 주고도 유세하지도 않을 때 내가 도저히 그 동안 내 수준으로 생각하든 그 엄마가 아니고, 나를 낳은 자의 본질을 엄마의 삶 속에서 볼 때 효심이라는 게 생기지요.

 

여러분들 자녀가 왜 효도 안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 안 해서 그래요. 다 원하는 것 해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아, 자녀가 아파하고 고통 할 때에도 더 아파하고 고통 하면서도 사람 되라고 그 아픔을 통해서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라고, 기다려 주고 눈물 흘려 줄 때에 우리 엄마가 왜 그랬던가, 제 어머니가요 경상도 분이니까 엄마는 고동이다 이래요, 자식들 다 크고 나면은 빈 껍데기가 되어 가지고 냇물을 따라서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엄마라고 그래요. 저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게 뭐냐, 자기 품 안에서 난 자식이기 때문에 고동은요 새끼를 껍질 안에서 길러요. 그 껍질 안의 고동은 엄마의 살을 먹어요. 그래서 엄마의 살을 다 먹고 나면은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면은 엄마는 아무것도 없이 빈 껍데기가 되어 가지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요. 그것이 오늘날 인류[人類]를 있게 한 원동력이에요.

 

뭔가 큰일을 하고 업적을 한 것이 인류를 있게 하고, 국가를 있게 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데로 여러분들이 열심히 믿고 기도하고 여러분들이 하면 다 해주는 그 하나님이 교회를 존재케 한 게 아니라니까요. 나보다 더 아파하면서 내 아픔은 통하여 타인의 아픔을 알도록 나보다 더 아파하는 그 하나님을 십자가에서 바라보면서 내 삶을 조명해 볼 때, 받아 드릴 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생길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부름이 여러분들 속에 있었느냐, 왜 없었는가 목사 탓입니다. 아주 값싸게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 만나 가지고 하나님 때문에 부귀영화 누리라는 헛된 야망을 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 그 경외감을 십자가에서 보면서 그 십자가로 내 삶, 얼마나 많은 아픈 삶이 내 속에서 있게 했는가, 나 사람 되라고. 많은 산파들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가 십보라와 부아다. 내가 받는 남자 아이들은 다 살렸다, 그 속에 모세가 있었든 것이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경외감에서 이 대림절에 좀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 되어 보자 고요. 내가 아파서 다른 사람 세우십니다. 요즘은 좀 너무 인스턴트에요, 그저 교회 와서 이런 교회 없다고 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뭐 좀 안 좋은 일 있으면 언제 봤느냐고 가는 것, 거듭난 자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 그 경외감을 십자가에서 보면서 그 십자가로 내 삶, 얼마나 많은 아픈 삶이 내 속에서 있게 했는가, 나 사람 되라고, 그 하나님의 만남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여러분들의 삶의 목표가 내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삶으로 변화 되어져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맛보아 지고, 지금 전부 자기 살기 위해서 나라는 어떻게 되었든, 국민은 어떻게 되었든 자기 살길만 찾는 이 나라가 목사님들의 목회가 복음적이 되어져서 정말 사람 숨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는 그런 성탄절 이 동백 한 귀퉁이에 몇 명 모이지 않는 우리들이 쌤풀이 되어야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요. 그리고 출애굽기 1장 놔 보세요. 창세기 다음에 출애굽기 1 17절 다같이 읽어 봅니다. 시작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 지라. 창세기 신학을 잘못하니까 출애굽기에 와서 완전히 신학을 잘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김정은이의 미사일보다도 더 정확해 가지고 마음에 드는 자에게 복을 쌓아 가지고 복 받게 한다. 다 죽는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그를 산파를 보내어서 살렸다. 그러면 하나님은요 인간이지요, 인간을 사용해서 쓸려고, 그런 신앙을 가지면 여러분들이 굉장히 교회에 유익이 되게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기 보세요. 애굽의 바로가 산파들에게 남자 아이 히브리 아이들 중에 남자 아이 다 죽이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어요. 그 명령을 어기면은 자기가 죽습니다. 그 당시 2백만 명 정도인데 어른 남자만 60만이기 때문에 2백만 명이기 때문에 산부인과가 몇 명 있겠어요. 십보라와 부아만 아니고, 많은 산파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가 십보라와 부아에요. 그래서 내가 죽을지언정 자기가 받는 남자 아이들은 다 살린 거에요, 그 속에 모세가 있었든 거에요. 해석이 다르지요. 복수와 단수가 엄청난 차이를 일으키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당신을 훈련 하고 쓴다 이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되요. 진리는 보편성이에요. 모든 사람을 사랑 해요 하나님은..

 

그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나와 내 자식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요. 그렇게 되도록 내가 죽더라고 남을 살리는 신앙, 여러분 그것이 십자가에 계시되는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이 오늘도 내가 눈물을 흘리고 기도해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을 때, 안 보이는 게 아니에요. 그 속에 하나님의 눈물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려야 되요. 이 설교를 멸시하지 마세요. 천국에서 못 만날 수 있어요. 이 설교를 무겁게 들으세요. 그저 여러분 남이 한마디 하면은 열 마디로 갚아 줘야 되고, 내 천원 얻기 위해서 남에게 만원 손해 보게 하는 것, 관여 안 하고, 다 천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8.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사람 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의인의 후손을 번성케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은 그 일을 기꺼이 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그렇게 말해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제가 여러분들에게 비밀을 좀 하나 이야기 할게요, 오늘도 내가 그 이야기 했어요, 일부 예배에 우리 교회의 참 아픈 손가락이 저에게는, 김효주 이현숙 집사에요. 왜냐하면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잖아요.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 아이 때문에 늘 힘들잖아요. 생각을 오늘 좀 바꾸라고 그랬습니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엄마들의 소원이 뭡니까, 이 자녀보다 내가 하루 더 살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세상에 있는 사람이지요.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께 맡기는 게 뭔가, 하나님이 왜 이런 자녀를 주었는가, 그 아픔을 타인의 자녀를 보도록,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요. 저는요 목사로서 소양이나 기질은 제로라고 봐요, 성질도 급하지요, 지금은 엄청 다듬어 졌는데요 불 같았지요, 야망 컸지요, 저 싸우면 안 져요, 청소년 시절에 왜 안 지는가, 간단해요, 앓느니 죽지 이러면은 이겨요, 힘으로서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내가 참 목사 중에는요 제일 교인들에게 사랑 받는 목회를 해 온 것은 어찌해서인가, 내가 잘한 게 아니에요. 내 아버지 어머니 내 장인 장모 어릴 때 제가 그렇게 원망했습니다. 자기 몸에서 난 자식보다도 교인을 더 사랑해요. 하나님을 만난 자이기에. 그 자식들은 하나님이 책임지는 것 같아요.

 

제가 목회할 때에 이야기 하면은 모든 목사들이 부러워해요. 나와 같은 목회 계적이 없어요. 여러분 그래서 저는요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내 자녀에 대해서도 그래요. 제가 개척을 할 때 제일 아픔이 뭐였는가, 우리 대열이가 고2였어요, 서울 고등학교 7등정도 하는 아이였어요. 개척을 해서 성적이 꼴등이 되었습니다. 그것은요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이에요. 부모는요 자식이 힘든 것은 못 견뎌요, 거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만 내 자녀에게 용돈 줄 것 교인 얘들에게도 용돈 주고요, 내 자녀가 좋은 일에 축하 격려할 때, 남에게도 해 줘요. 하나님이 책임져 주어요. 용인대학 나와서 대한항공 다녀요. 믿음이 뭔지를 아세요.

 

여러분들이 사람 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의인의 후손을 번성케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 자녀, 하루 더 살고 싶어도 못살아요. 그 귀한 자녀의 마음을 교회 모든 사람에게 확대해 나갈 때 누가 그래 사는가, 하나님을 만나야지요. 어떻게 사람 살리려고 자기 죽는 신을 만나야지요. 자기 말 잘 듣는 자에게 복주고 안 듣는 자에게 벌주는 인간 수준으로 만들어 낸 우상을 만나지 말고요,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서 신을 만나지 말고요, 십자가의 그 하나님을 통해서 내 삶을 주관해 가는 하나님을 인정할 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렇구나, 저도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요.

 

내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의 그 복음 안에의 삶이 우리 자녀를 존재케 했지만 내 자녀에게도 적용이 될는지, 인간인데 왜 의심이 없겠어요, 이력서를 넣어서 떨어질 때마다 왜 마음 속에 부모로서의 한탄이 없었겠습니까, 부질없는 거지요. 두 번째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것이나 사는 것이 내 뜻을 이루는 게 아니에요.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그래요. 내가 부자 되어 가지고 하나님 잘 섬기는 것은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뜻이 뭔가, 베드로후서 3 8 보세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9. 모든 인류가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댜. 기독교의 최고의 가치는 회개다. 여러분 이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다. 기독교 성경은 성령이 있는 사람은 잘못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못을 복음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해요. 그래서 기독교의 최고의 가치는 회개에요. 여러분 이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에요. 회개가 없는 사람은 은혜가 없는 사람이에요. 감동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이런 부분에 독일의 메르켈수상이 또 아우츠비츠에 가서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 사죄를 했어요. 그래서 독일은 다시 나치로 돌아갈 확률이 없어요. 독일은 유럽에 유익이 되는 국가가 될 거에요. 일본은 아베는 우리 그런 위안부들을 절대로 사죄 안 하고 회개 안 해요. 그 차이가 뭔지 아셔야 되요. 왜 여러분들이 기독교가 존재해야 되고 성경이 존재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이런 데에서 찾아야 되요.

 

독일은 여러분 신성프로이센인의 후손이에요. 기독교 국가에요 지금도, 목사를 월급을 주어요 나라에서, 여러분들은 독일은 종교 세를 내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기본적인 가치는 기독교에요. 기독교는 성경은 성령이 있는 사람은 잘못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잘못을 복음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잘못 안 하는 의인을 하나님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했다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에 이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의인을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만 알든 사람, 내 자식만 알든 사람이 오늘 이 설교를 듣고 내 자식과 같이, 타인의 자식도 존중히 여기고, 내 명예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명예도 중요하게 여기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만큼, 타인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가를 가리는 이 회개가 있는 누구에게나.

 

그런데 일본은 보세요, 일본은 성경이 없어요, 사무라이 정신이에요. 사무라이는요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할복[割腹]해야 되요. 아베는 우리가 잘못했다 하는 순간 일본은 할복해야 되요. 그래서 잘못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어요.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여러분 교회에 다니면서 자기의 잘못을 인정 안 하는 것은 사무라이 정신이에요. 나중에 만나기 힘들어요. 잘못 없는 사람 없어요. 그 잘못도 어떤 잘못, 내만 알았든 잘못, 타인을 생각 안 한 잘못을 생각해야 되요. 거기에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요. 왜 이런 일이 안 일어나는가, 그 밑에 보세요 16절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0. 진리 모든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끄덕일 수 있는 보편적 진리로 풀어야 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 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경은 억지로 풀면 안 되요. 진리 모든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끄덕일 수 있는 보편적 진리로 풀어야 되요. 우리 교회만 와서 하나님만 잘 믿으면 복 받는다 억지로 푸는 거에요. 요셉 봐라 하나님 믿어 가지고 국무총리 되었다, 억지로 푸는 거에요. 그래서 멸망 당하는 거에요. 그 뒤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뭐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 모두가 가족이 되게 하신 그 지식을 아는 삶, 그 삶 속에 내포되는 삶의 자라 가라. 그 자라 가는 것이 그 다음에 데살로니가전서 자라 가면 어떻게 되는가, 522절 제가 읽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 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삶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뒤에 말하고 있어요. 19절 다 같이 읽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을 뭐 기도 안하고 성경 안 읽고 뭐 은사 방언 안 하고 이런 것이 성령 소멸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것은 성령은 우리가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으로 말미암아 혈연을 넘어서는 영적인 가족이 되게 하신 이 사실을 소멸하지 말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왜 항상 기뻐하지 못하는가 하면은 내 자녀만 잘 되기를 바라는 세상적 생각 때문에 얘 대학 성적 나빠진 것 때문에 울어요,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내 자녀 사람 되게 하려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그래야 이 자녀가 사람이 되는데, 범사에 감사하라, 요셉이 감옥에서도 감사하고, 유혹을 이겼는데 보상을 안 주소 더 나빠지게도 하는 하나님 감사했어요.

 

왜 성령을 소멸치 안 했기 때문입니다. 형님들을 원망하지 안 했든 거에요. 성령을 소멸치 않는 것을 우상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성령의 본질적인 것은 우리를 모든 인류가 하나의 가족임을 알게 하도록 보내신 거에요. 그 다음에 또 뭐에요, 20절 다같이 읽습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예언이 뭐냐 하면은 설교를 멸시하지 말라는 거에요. 네 수준에서 설교를 듣고 평가하지 말고, 성경을 네 수준에서 해석하고 평가하지 말고,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야 되요. 어떤 마음 이 마음 안 받으면 나중에 만나기 힘들다. 그 다음에 뭐에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범사 이게 뭐지요, 여기는 좋은데 여기는 안 좋은 Everything 모든 것에 여러분 제가 지난주일 이야기 했잖아요. 식칼이 어디에 들리느냐에 따라서는 흉기가 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해요.

 

11. 내 자녀도 잘 되고, 남도 잘 되는 삶을 사는 사람, 때로는 내가 손해 볼지라도 교회가 잘 되고, 타인에게 즐거움이 된다면은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삶, 하늘에 속한 자다. 네가 무엇을 선택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선택해라 이 말이다. 무명용사의 기도문.

 

예수를 믿으면은 돈 때문에 울일 없어요. 권력 때문에 울일 없어요, 내가 이 돈 때문에 자식 망쳤다, 이것은요 예언을 멸시한 결과에요. 그런 사람 많지요. 내가 돈으로 자식 키워서 자식 인생 망쳤다고, 왜 오늘 같은 설교를 안 들었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정말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이 나라에 속한 것, 간단히 이야기 하면은요 자기와 자기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 종교인으로서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내 자녀도 잘 되고, 남도 잘 되는 삶을 사는 사람, 때로는 내가 손해 볼지라도 교회가 잘 되고, 타인에게 즐거움이 된다면은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삶,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의 구원의 기쁨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어요.

 

이런 사람이라고 안 아픈 게 아니에요. 배반 당하면은요 밤새 힘들고 눈물이 나지만은 그것을 이기게 하는 성령의 역사 하심이 있습니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오지만은 그것을 이기게 하는 성령의 또 다른 힘이 있어요. 어떨 때,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야지요. 자기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야지요. 어떻게 수준이 달라야지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해야지요. 저는 뜻은요 이 교회 여러분들에게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도 사람 채우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다 11조 해 가지고 교회 부유하게 하고, 이게 내 뜻이에요.

 

하나님의 뜻은 그것 해서 뭐 하려고, 교인 행복하면 되지, 인간이 만든 바벨탑은 무너져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마가복음 12 30절과 31절 예수님의 말씀 가슴에 좀 담아 봅시다. 다같이 읽어 봅시다 시작.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것 여러분들에게 설교했는데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간단히 시간이 많이 가서 제가 설명하고 넘어갈게요. 목숨 걸고 열심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이 아니에요. 여기에 마음이라는 것은 의지력이에요. 의지력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내가 가치판단을 옳게 해서 선택하는 것이 우리 의지잖아요.

 

네 선택을 무엇을 선택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선택해라 이 말이에요.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그 다음에 목숨이라는 것은 내적 생명력을 말하는 거에요. 쉬운 말로 하면은 꼭 그 말이 아니라 감정을 말하는 거에요. 죽은 사람이 무슨 내적 생명이 있어요, 감정이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예전에는 네가 너에게 좋은 일이면은 기뻐했는데, 이제는 남 좋은 일에 기뻐하라 이런 말이에요. 힘써 예수 믿어라 이런 말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보다 바르게 믿어라 하잖아요. 그 다음에 여기에 뜻은 지식력[知識力]이고, 힘은 건강이에요. 왜 지식이 필요한가, 마음 때문에, 지식이 있어야지 옳고 그름을 구분하거든요.

 

건강해야 건전한 감정을 가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의 기도는 달라요. 우리 교회의 10년 전에 제가 이 설교를 하면서 무명 용사의 기도문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때는 코팅을 안 했는데, 우리 김효주 집사가 이것을 버리지 아니하고 싱크대에 10년을 놔두고 읽고 손 때문에 너덜너덜하게 된 것을 사진을 찍어서 카톡에 올렸다 하더라고 누가, 그래서 제가 이번에는 코팅을 해서 줘 라고 했어요. 카톡에 여러분 뭐 교회 비판 뭐 자기 자랑, 그런 것 하면 세상 카톡이 되 버려요. 신앙의 덕이 되는 카톡에 이런 것들 올리라 말입니다. 제가 읽어 드릴게요. 해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기도 했더니 연약함을 주어 겸손히 복종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였다. 사람 되게 했다.

 

더 훌륭한 일을 하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했더니 병약함을 주어 보다 선한 일을 하게 했다. 행복해 지도록 부유해 지도록 기도 했더니 빈곤함에 처해 지혜로워 지도록 하셨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위하여 권력을 달라 했더니 연약함을 주어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게 하셨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갓을 달라고 하였더니 생명을 주어 있는 것을 즐길 수 있게 하셨다. 내가 요구한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십니다. 내 자신의 보잘것없음에 불구하고 무언의 내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 입니다. 이 삶의 출발입니다.

 

이 대강절 둘째 주일부터 이제 첫걸음을 띠는 우리 모두가 되어져서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셨고, 자기만 알려고 하는 세상 속에서 당하는 그 고통의 눈물이 그 밤의 번민이 천국에서 우리를 제외하게 하는 것을 알아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여러분들 교회에서 만난 우리가 천국에서도 만나서 이 찬양 부르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었으면 합니다.

 

◈봉헌 기도◈

 

열심히 일해서 벌어서 자기도 행복하고, 타인도 윤택하도록 하나님께서 행복의 도구로 준 물질을 자기를 찌르고 자식을 다치게 하고, 남을 상하게 하는 흉기가 되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런 삶을 살도록 헌금의 제도를 주셨는데 주라 흔들어 부어 넘치게 하리라고 하신 주의 약속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성도가 되도록 그리스도의 주는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성령을 소멸치 아니하고 예언을 멸시치 아니해서 종교인이 아니라, 새로운 거듭남의 삶을 출발해서 천국에서 다시 기쁨으로 재회할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싸워서 승리해야 할 자기만 아는 세상과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