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제단에 참여하는 자
고린도전서 10: 18
2019년 11월 17일 주일 낮 예배
No. 443
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아멘
● 예법[禮法]예전[禮典]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우리의 삶에 표현하는 것. 지극히 적은 일에 충성하고 감사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난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되니이까 물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에는 많은 예법[禮法] 예전[禮典]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가 있고 또 뭐 11조의 제도라든지 그리고 성찬식 이런 예전들이 있습니다. 이런 예전들은 왜 하느냐, 우리가 이런 부분을 놓치고 신앙 생활하기가 쉽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우리의 삶에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단순하게 그것이 하나의 예전으로 전락되어 버리면은 기독교는 생명 없는 죽은 종교가 됩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뭐냐 하면은 첫째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아바지가 되게 하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우리는 이제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더 진한 성령을 나눈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1. 성령을 함께 나눈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라는 그런 인식이 있어야 된다. 구약의 레위기의 제사가 있는데 그 제사 중에 토다[Towdah]라고 하는 제사가 있다, 어려운 일을 해결이 되었을 때에 마치 다 자기의 문제가 해결된 것과 같은 기쁨을 나누는 제사이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예전이나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그런 영적인 가족의 삶을 이 땅에서 영위하며 살아가게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오늘도 성경 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여기에 제단에 참여한다, 제물을 먹는 자들은 이 말은 레위기 7장 6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레위기 7장 6절은 제사장의 남자들은 거룩한 곳에서 제물을 먹어라 라는 말인데 거기에 제사장의 남자라는 말은 원문에 뭐냐 하면은 제사장의 동무들이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함께 제물을 먹는 자들은 이 세상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길동무다 이런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성찬식을 우리가 추수 감사절을 맞이해서 하는데 그저 이 성찬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살과 피에 대한 상징이라고만 한다면은 죽은 종교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가 하면은 우리 모두는 성령을 함께 나눈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라는 그런 인식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이 성찬에 참여하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먹으면은 너희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해요. 그래서 장로교의 헌법에도 성찬식을 앞두고는 한 주간 자신의 삶을 정결하게 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이 성결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바로 그런 부분들이에요.
우리가 도둑질하는 것이나 거짓말하는 것이나 이런 것보다는 정말 나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교인들을 내 혈연의 가족만큼 생각하며 살았는가, 그러지 못하면은 이 성찬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는 그런 인식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의 예법에는 세례를 받지 아니한 자는 이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 라고 할 때에 단순히 형식적 세례에만 받았다고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이렇게 되면은 형식적 종교가 되겠지요. 여러분들이 혈과 육이 십자가에서 죽어 지고, 여러분들 속에 성령이 역사해서 이제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모든 성도들이 내 혈연의 가족만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자만이 성찬에 참여하라 라는 것도 우리가 인식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오늘도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봐야 되요. 유대교의 많은 제사 구약의 레위기의 제사가 있는데 그 제사 중에 토다[Towdah]라고 하는 제사가 있습니다. 이 토다는 살다가 무엇을 잃어버렸다가 찾았을 때나, 아니면 자신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이 되었을 때나, 병고에서 고침을 받고 나았을 때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단순히 그런 경우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제사를 드린다면은 토다 제사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본심을 알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어려운 일이 해결이 되었을 때에 마치 그것이 우리 커뮤니티[Community]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다 자기의 문제가 해결된 것과 같은 기쁨을 나누는 제사입니다.
2.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것은,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그런 힘을 교회를 통해서 건전한 기쁨을 누리라는 것이다. 공적인 예배도 모든 성도들이 참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토다[Towdah]의 제사 속에 있는 제단의 동무들이라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병고에 나았을 때에 드리는 이 토다 제사라는 것은 그 제물을 함께 먹으면서 마치 내 가족이 병이 나은 거와 같은 기쁨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라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 믿는 기쁨 신앙의 기쁨은 이런 형식적 종교와 형식적 종교적인 과업의 성취보다는 이제는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이 우리 모두가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는 그러한 신앙 생활이 여러분들의 삶의 중심에 있을 때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 가운데 경험되는 놀라운 신앙 생활이 됩니다. 이번 주에 우리 이성근 장로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제가 입관 예배 발인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우리가 온 가족이 연합 예배로 함께 많이 모이니까요 우리 성가대 찬양이 그 어떤 때보다는 힘있고 은혜로운 마음으로 와 닿거든요, 이것은 똑 같은 성가대인데 회중이 많으면은 군중이 가지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유명한 연예인이 몇 명 모아 놓고 여러분 가수가 노래할 때하고 만 명, 이만 명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노래를 할 때에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그것은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군중의 힘이라는 것이 있어요. 오늘도 여러분 왜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라 하고,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하는가 하면은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그런 힘을 교회를 통해서 건전한 기쁨을 누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성근 장로님이 돌아가셨을 때 제가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제 장모님이 이번 8월에 심장 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많은 교인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고 이럴 때에 참 이 장로님, 우리 교회의 누군가가 상을 당했을 때에도, 제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만큼 교인들이 관심을 가져 준다면은 어떤 교회보다도 좋은 교회가 되겠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저는 사실 아주 간소화하기 위해서 제일 작은 병실을 했는데도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 주었는지 몰라요. 여러분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이제는 정말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어떤 마음이 있어야 되는가 하면은, 우리 교회에 누군가의 희로애락이 있을 때, 또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생각해야 되는 것은 교회의 담임목사는 가지고 있는 담임권 설교권 뭐 이런 권한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주관하는 그 모든 것에는 모든 성도들이 참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것은 이것이 전제되고 난 뒤에 특별한 어떤 일들, 또 어떤 성도들은 보면은 직장에 다녀야 되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자유를 주었는데, 시간이 되고, 얼마든지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자기가 자유를 누리려고 하는 것은 방임[放任]이지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다른 생각보다 저는 그런 생각해 봅니다. 정말 목사님 가정에 애경 사에 대한 관심이 목사님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삶 속에, 또 공적인 예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 예전에는 공적인 예배를 생명 걸고 했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예배에 대한 자유를 드리는 것은 생명을 걸고 예배를 참여했는데 어쩌다가 예배적인 것이나 자신의 삶에 어떤 특별한 경우가 있어서 빠지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자유를 주었는데, 이것은 회의[懷疑]의 기회로 삼더라고, 이제는 우리가 성숙 되어졌는데, 여러분들이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느꼈든 이 감정과 같이 목사님이 주관하는 입관 예배라든지, 또 수요 예배나 그 어떤 공적인 예배도 모든 성도들이 참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토다[Towdah]의 제사 속에 있는 제단의 동무들이라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이번 추수 감사절과 이후의 교회는 참 많이 달라졌으면 해요.
3. 오병이어의 사건, 어린 소년의 그 떡을 예수님에게 드렸을 때에 예수님이 그 떡을 가지고 축사 하시고,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할 때에 5천명이 다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지극히 적은 일에 충성할 때, 그것에 감사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난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이렇게 여기에 세울 때에 가장 기초의 말씀이요 제가 언젠가 한번 우리 집 헌금하면서 했잖아요. 요한복음 6장에 있는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우리 교회의 이곳에 있게 한 거에요. 거기에 보면은 예수님께서 빈들에서 장정만 오 천명 어린아이 여자들까지 하면은 2만 명이 해가 지도록 먹을 것이 없이 굶어 있을 때에 제자들에게 누가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랬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장 영적인 것은 가장 육 적인 것이구나, 그럴 때에 빌립이 그런 말을 합니다. 2백 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 하리이다. 이천 만원이 있어도 2만 명이 먹기에는 좀 부족합니다. 누구나 계산은 할 수 있어요,
우리 교회가 이렇게 꽉 차는 것은 한 사람이 한 명만 전도하면 된다는 계산은 되지만은 그것이 여러분 계산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 뒤에 보면은 안드레가 뭐라는가 하면은 이곳에 어린 소년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가 있는데 라고 하고 주님 앞에 드렸습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 보리떡은 지금이나 그때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입니다. 어린 소년의 그 떡을 예수님에게 드렸을 때에 예수님이 그 떡을 가지고 축사 하시고, 각 사람이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라고 할 때에 그 2만 명이 장정만 5천명이 다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고 그래요.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축사라는 말을 우리 한국은 너무나 해석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축복 기도하니까 5천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그래요. 원문은 축복이 아닙니다, 감사입니다. 여러분 그 5천명 앞에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는 너무나 적은 것인데 그 적은 것에 예수님이 감사를 할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어요. 언제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왜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는가 하면은 전부 큰일 하려고 그래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 내가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우리 교회의 모든 것 한방에 해결한다, 회개하세요. 교만이고 자기가 교회의 주인 행세하려는 거에요. 지극히 적은 일에 충성할 때, 그것에 감사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요.
저는 우리나라의 가장 적은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우리나라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나라가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오늘도 여러분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 교회 그 말씀을 따라서 정말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래요. 큰일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겨 놓고요, 특히 저는 오늘도 우리 요즘 제 속에 계속 머리에 맴도는 게 그거에요. 우리 장로님들 작은 일에 충성하려고 하세요.
4. 오늘 이 성찬은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성찬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어떤 문제에서 자신의 직업상 도저히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은 제외하고는 Schedule 을 잘 맞추어서 우리가 이런 희로애락에 함께 하자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 목사님이 주관하는 예배 그것이 장례 예배든지 수요 예배 어디든지 저는 그런 생각 한번 해봅니다. 이제는 교회 탓, 목사님 탓, 하지 말고요 우리 교인들이 장로님 안 보이니까 참 서운했어요, 그러면 교회 변화 될 것 같아요. 저는요 어떤 모임에도 항상 예배 Schedule 먼저 봐요, 그리고 뭘 해요. 우리 장로님 권사님들이 집사님들하고 다를 게 뭐냐고, 가장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지요. 그 작은 일을 하지 못하고 큰일은 할 수 없는 거에요. 그 작은 일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여러분 여기 주보에 나와 있지만은 남 성도의 말씀 나눔, 설교를 듣고 나눔이 없으면 소화불량이 일어나요. 소화불량이 뭐냐 하면은 설교를 판단하는 것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거에요.
소화는 그 말씀으로 자기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나가는 거에요. 여러분 여기에 보면서 저는 이런 일에 우리 장로님들이 정말 앞장서기를 바래요. 물론 장로님들 속에서도 화사 일이 중요하고 그 빠지면 안 되는 이런 일들이 다양하게 존재해요. 그런 분들에게는 예외적이더라도 얼마든지 시간의 Schedule 에 조정할 수 있거나 이럴 때에는 정말 여러분들이 교회를 가장 중요시 여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오늘 이 성찬은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성찬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해요. 정말 여러분 이런 마음이 여러분들에게 좀 전달 되었으면 싶어요. 목사님의 상가의 일이 목사님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가장 약한 자들에게도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그런 교회.
저는 우리 교회에 공식적인 모임은 최소화 하려고 해요. 현대 사회가 얼마나 바쁜 사회입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 이 최소한도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 인정 받으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웃기는 것이다, 여러분 앞으로 교회의 공적인 모임, 공적인 모임은 목사님이 주관하는 어떤 모임들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어떤 문제에서 자신의 직업상 도저히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은 제외하고는 Schedule 을 잘 맞추어서 우리가 이런 희로애락에 함께 하자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뭐 해외에 선교 가라, 헌금 많이 하라 이런 것 안 하잖아요.
교인을 돌보는 일이 장로님들의 일입니다. 목사님은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치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여기에 제단에서 참여하는 자들이라는 것이 레위기에 관계 되는 것이나 Towdah 의 제사라는 것이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정말 묵상하고 이것이 뭔가라는 것을 고민 끝에 나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 속에 적용이 되어져서 이제 우리 교회가 저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그래요.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되니이까 물을 때에 예수님이 뭔가 하면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거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그래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에요.
5. 그리스도가 이루신 혈연을 넘어서는 모든 성도들이 한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교회의 지극히 작은 자에게 마음을 써 나갈 때,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이 성찬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구원을 받아 드리는 것, 하나님의 일이 뭐냐, 선교 뭐 여러분 교회의 화려한 프로그렘 이런 것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리스도가 이루신 혈연을 넘어서는 모든 성도들이 한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오늘날 얼마나 잘못된 일들이 한국 교회에 많이 난무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위대한 종교적인 과업은 성취되는데, 그 속에 성령의 교통하심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늘 이 성찬에 참여하는 여러분들 마음 속에 얼마나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가, 우리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저 예배에 참여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이 있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내일과 같이 생각하며 나의 모든 삶의 스케쥴에서 그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가, 여러분 이러한 반성이 없다면은 그것은 이 성찬을 욕되게 하는 겁니다.
이번 발인 예배에도 직장에 다니는 집사님이 한 분 참여 했어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회사는 안 가고 어떻게 왔느냐고, 목사님 당연히 와야지요. 작은 일에 충성하세요. 여러분 청량리에서 구리로 가는 그 큰 도로 옆에 보면은요 ㅎ ㅅ 교회라고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부교회에서 부목사를 했는데, 그 교회가 거기에 지어 질 때에 놀라운 히스토리[History]가 있어요. 어떤 것이냐 하면은 예전에는 교회를 지으려고 특별새벽기도 뭐 부흥회 이런 것 많이 했어요. 부흥회를 하면서 새벽 기도회에 중학생이 참여한 거에요. 그래서 교회당을 지어야 되는데 돈도 없고 땅도 없었든 거에요.
그래서 이 중학생이 하나님 앞에 나는 돈도 없고 이런데, 하나님 내가 이 교회당 짓는데 뭔가 좀 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가는 길에 길 거리를 지나가는데 불룩하게 눈에 무엇이 덮여 있는 거에요. 아이들의 속성은 차는 거지요 발로, 툭툭 차 보니까 느낌이 이상했든 거에요, 그래 눈을 헤쳐 보니까 사람이었든 거에요. 요즘 같으면은 119를 부르겠지만은 70년대에 무슨 119가 있었습니까 그때, 그런데 이 아이가 이 할아버지를 업고 자기 집에 가서 몸을 녹여 가지고 살린 거에요. 이 할아버지가 깨어나서 보니까 중학생이 그랬다는 거에요. 그 할아버지가 내가 죽을 목숨 살았는데 네 소원이 뭐냐 라고 하니까 얘가 한다는 소리가 우리 교회의 예배당을 짓기로 했는데 땅을 살 돈도 없고, 나는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요, 이랬더니만 할아버지가 그 땅이 할아버지가 그 곳에서 철강 장사하는 땅에 절반을 떼어서 교회로 준거에요.
작은 마음, 교회당을 생각하는 마음, 우리 교회의 지극히 작은 자에게 여러분들의 마음을 써 나갈 때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이 성찬에 그저 자기 이름 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든 보지 않든 내 믿음 지켜 나가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크고 기이한 일을 목격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봉헌 기도◈
부자의 쓰다 남은 돈의 헌금을 받지 아니하시고, 마음과 정성이 담긴 과부의 두렙돈을 열납하시는 아버지하나님 우리 교회는 학벌이 있는 자, 능력이 있는 자, 재벌도 없는 교회이지만은 지극히 작은 자들의 헌신을 통하여 오늘날과 같이 기적과 같이 교회가 이어져 왔음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이 예전에 참여하지 않는 자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가 이제는 성도들에게 더웁게 하라, 따뜻하게 하라, 말로만 기도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몸을 데워 주고, 먹을 것을 주는 교회로 더 풍성한 교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는 은혜의 마음을 더하여 주시고, 성도들에게 아버지 하나님 이 작은 것에 충성함으로 하나님의 놀랍고 크고 기이한 일을 목격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자 김씨 박씨 이씨 송씨 다른 성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도록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혈연을 넘어서는 영적인 교제를 하게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의 길을 걸어가는 동무인 것을 확인하고 그와 같은 신앙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의 모임인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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