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프롤로그
스가랴 8: 13
2020년 1월 5일 주일 낮 예배
No. 450
13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아멘
● 성경은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을 선지자를 통해 미리 계시해 주신 말씀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임하여 어디에 가나 이방인의 조롱 거리가 되었다. 기드온 1차 32,000명 2차 10,000명 3차 300명의 용사, 300명과 미디안 135,000과 싸움의 위대한 승리였다.
아모스 3장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 구원의 계획을 선지자들에게 미리 보이지 아니하고 결코 행하심이 없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여러 가지들을 선지자를 통해서 미리 계시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계시의 말씀을 듣고 순종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고, 불순종 하게 되어지면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리 떠난 저주의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기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도 보면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내가 이것을 이루었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셨다 하고, 그래서 자기의 수고의 열매들을 함께 나누게 되면은 천대까지 복을 받게 되고, 그러지 아니하면 3-4대에 망하리라.
1.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가 다 멸망 당했다.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메시야의 시대에 대한 비전으로 준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가랴서가 기록이 되기 그 전에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했다.
여러분 이미 그 모든 신명기의 말씀이 우리는 구약 성경을 보면서 그대로 이루어졌구나 하는 것을 알면서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들으면서 이 말씀을 잘 받아 드려 순종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지요.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가 다 멸망을 당했다. 여러분들의 삶이 은혜 가운데 있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것은 설교 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 하는 데에서 달려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도 그러잖아요. 교훈 받아야 됩니다. 나에게 위로 받는 시간이 아닙니다. 책망 받아야 되요. 그래서 교정해야 되고, 그래서 의로 교육을 받아야 되요.
그래야만이 내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견고히 서 나갑니다. 예수를 얼마나 믿었고 신앙 생활 몇 년 했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래 믿을수록 말씀을 등한시 하고, 자기 식으로 믿기가 쉬운데 2020년부터는 정말 설교 말씀을 중하게 여겨서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첫째 주일날 스가랴 8장 13절 제가 2020년 프롤로그 20년대가 시작하는 첫 주일인데 참 중요한데 무엇으로 열까, 벌써 오래 전부터 고민을 했는데 스가랴 8장 13절 이 말씀이 머리에 떠나지 안 해요. 이 말씀은 언제 우리 교회가 주제 성구로 잡았는가 하면은 2006년도에 주제 성구입니다.
2006년도는 우리 교회가 세워 진 설립의 원년이고 또 6월 첫째 주부터 우리 교회가 이 예배당에서 입당 예배로서 쭉 들어가는 그런 해였습니다. 그럴 때에 이 말씀을 제가 주제 성구로 잡았든 것은 너희가 이제는 구원하여 너희를 복되게 하리라. 스가랴 말씀을 왜 했는가 하면은 학개서는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돌로 지은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성전을 짓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스가랴서는 그 성전의 거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메시야의 시대에 대한 비전으로 준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당의 우리가 입주를 하면서 이 좋은 아름다운 예배당 우리 누구도 뭐 헌금한 것 없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는데 이 안에 있는 아름다운 성전이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되겠다, 해서 이 말씀을 주제로 삼았든 겁니다. 14년을 지나고 난 뒤에 정말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복된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은 그러지 못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장년기 첫해가 되어지고 20년대가 시작되는 첫해 첫 주일날 다시 한번 마음을 새롭게 해서 이제는 이 말씀을 무겁게 들어서 하나님의 구원이 여러분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 정말 복된 생애를 사는 그런 출발점이 되어야 되겠다, 해서 이 말씀을 잡은 겁니다.
여기에 이 말씀을 보면은 8장 13절에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 가운데에서 칭송을 받아야 되는데 저주가 되었대요.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가랴서가 기록이 되기 전 그 전에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했어요. 이것이 우연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신명기의 말씀대로 그들이 흩어짐을 당하였든 거에요. 그리고 이 신명기의 말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그들을 흩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많은 경고를 했어요. 너희가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를 이방인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겠다, 라고 말씀을 했든 거에요,
예레미야에 보면은.
2. 그 시대에도 애굽으로 피난살이 이민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민 가지 아니하고 남은 자들이나 애굽에 피난간 사람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조롱 거리가 되게 하겠다, 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그 당대의 왕이었든 시드기야나 뿐만 아니고 고관들 남은 자들 왜 남은 자들이라 했는가 하면은 그 시대에 너무나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나라가 힘들면은 아이구 이민이나 가야 되겠다 하는 거와 같이, 그 시대에도 애굽으로 피난살이 이민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민 가지 아니하고 남은 자들이나 애굽에 피난간 사람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조롱 거리가 되게 하겠다, 라고 말씀을 했든 거에요. 그 조롱 거리가 되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는데, 이 사람들이 롯의 사위들과 같이 농담으로 여기고 받아 드리지 안 했어요. 설마 늘 하는 말씀이지,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방 나라의 조롱 거리가 되어져 버린 겁니다.
어쩌면은 제가 이 동백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한국 교회 위상이 바로 그런 시대였습니다. 예전에 한국 교회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였어요. 오래 전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은 사람, 시골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 한번 보세요. 시골의 교회는 마을의 한복판이나 마을에 제일 잘 보이는 언덕 위에 교회가 있어요. 그런대도 그 마을이 우리나라가 어던 나라 입니까, 반만 년의 역사 가운데 샤마니즘이 지배를 했고, 불교가 지배를 했고, 유교가 지배를 했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서양 종교 라고 해서 배척을 했든 그런 종교 인대도, 마을에 교회가 설 때에 그렇게 반대가 심하지 안 했어요, 어떤 데는 있었지만.
또 교회가 세워 지고 난 뒤에 시간이 좀 지나면서 부모들은 나는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야 되지만은 너는 교회 가는 것 내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종손은 안 돼, 장남은 안 돼, 제사 받아야 되기 때문에. 이런 것이 우리 한국 교회에 역사입니다. 왜 그랬던가, 교회가 세워 지고 난 뒤에 반대도 하고 뭐 이래서 이렇게도 했지만은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 보니까 사람이 되거든요.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는 조상의 법도대로 제사도 드려야 되서 못 나가지만은 자기 자식만큼은 좀 잘 되기를 바래서 장남은 제사 드려야 되기 때문에 못 나가도 다른 자식들이 이러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 교회였다고. 2006년도에 오래 전부터 신앙 생활 하신 분들 한번 돌이켜 보세요.
제가 이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 제일 했든 말 중에 어떤 말들이 있는가 하면은 우리 동백이 교통 섬인데, 세상은 여러분 교통의 편리에 따라서 아파트 가격이 결정이 되잖아요, 그런데 동백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있기 때문에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왜 교회가 혐오 시설이 되어야 됩니까, 교회 가까이 있는 것이 복이라고 하는 이런 교회가 되어야 된다, 그래서 교회당을 이렇게 하면서 문화 행사나 많은 것을 지역사회에 우리가 유익을 주기로 했는데 14년 결산을 해보면은 별로 우리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광교는 그래 올라도 동백은 안 올랐든 거에요.
그러면 왜 우리 교회가 그 역할을 못했는가 목사님 탓인가, 여러분들이 좋은 교인이 못되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제가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좋은 교인이 있는가 하면은 참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교인들도 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 오늘도 여기 저주 거리가 되게 하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 임하여서 그들은 애굽으로 피난을 가나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가나 그곳에 있으나 다 이방인의 조롱 거리가 되어져 버렸든 거에요. 그 사실을 지금 지적하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 왜 교회가 교인들이 세상에 사람들에게 조롱 거리가 되는가, 우리가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일은 순종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 조그마한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해 나가신다. 먹어도 배부르지 못했다면은 하나님이 그것을 불어 버린 줄 알아서, 나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해서 하나님이 큰일 하시도록.
여러분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뭐에요,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많은 돈 벌려고 하고 이런 것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지요.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다시 되는 것이 아니고요, 영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돈에 사로잡혀 사는 삶, 권력에 사로잡혀 사는 삶, 하나님 나 돈 주면은 이렇게 좋은 일 하겠습니다, 이런 삶, 그런 삶도 다 내면을 들여다보면은 돈에 매여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순종으로 하는 것이 거든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 조그마한 말씀에 순종하면은 하나님이 해 나가시는 거에요.
조금 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 조롱 거리가 된 거에요. 성경은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우리보고 큰일 하라 안 해요. 작은 일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큰일을 너희에게 맡기리라. 큰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전부 하나님 돈에 매이게 되고 권력에 매이게 되요. 나에게 주시면 하겠다고. 그래서 조롱 거리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도 이 주일날 내가 오늘 날까지 이방인에게 조롱 거리 되었다, 내가 큰일 하려고 했구나, 돈에 매여서 살았구나, 권력에 매여서 살았구나 라고 생각해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제가 금년에 지극히 작은 일이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잖아요. 공적인 예배에 참여하자는 거요.
그러면은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살아 주는 삶, 이제까지 내가 살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어요, 그래서 얼마나 많이 수고했어요, 그랬는데도 학개서 말씀대로 별로 얻은 것이 없다면은 내가 많이 얻으려고 했지만 내 얻은 것이 적었다면은 내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했다면은 하나님이 그것을 불어 버린 줄 알아서 이제 내가 노력해서 하나님께 뭣을 하려고 하지 말고요, 나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해서 하나님이 큰일 하시도록. 여러분 이런 삶을 살려고 지금 스가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건물 짓는데 메시야의 시대는 이런 시대다 라고 말하면서 이런 말씀한 거에요. 경고를 받으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공적인 예배에 참여하라 라는 것은 참 잘 들어야 되는 것 같아요. 교인들이 오해가 많아, 우리 교회에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말씀 드리지만은 얼마나 여러분들에게 배려하는 목회를 하는지 몰라요. 주일날 여러분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법정 공휴일에는 교회에서 어떤 예배도 어떤 행사도 하지 말라는 거지요. 여러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최소한이에요. 여러분 분명히 예배를 드리는 것하고 기도회라는 것하고는 또 틀려요. 예배는 필수에요. 기도회는 선택이에요. 선택을 하면 여러분들의 삶이 더욱 부요로워져요. 그래서 주일 예배나 수요 예배 그리고 당회가 주관하는 장례 예배 이런 것들에는 반듯이 참여 하자, 너무나 적은 일이잖아요.
4.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크리라.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책임져 주는 삶, 이제까지 내가 열심히 살았는데도 내 손에 쥔 것 없고 별로 이룬 것 없고, 이렇다면은 이제는 적은 일에 한번 충성해 보라.
이 일을 하게 되면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책임져 주는 삶, 이제까지 내가 열심히 그래 살았는데도 내 손에 쥔 것 없고 별로 이룬 것 없고, 이렇다면은 이제는 적은 일에 한번 충성하려 해 보세요. 2부 예배 때 제가 기도회는 내가 선택이라 했더니만 목사님 왜 그래 말씀하세요, 기도회도 반듯이 오시라고 하세요 하던데, 기도회는 선택이라고 하는 말을 제가 한 것은 기도회는 안 와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그만큼 우리를 배려해 주고 법적으로 정확하게 하구나 이래 해야 되는데, 듣는 것을 또 이상하게 듣더라고, ㅎ ㅎ 여러분 정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야 되요. 제가 기도회라는 것은 옵션이라는 것은 그래서 금요기도 수요기도회 그야말로 기도회에요. 수요예배 주일예배 대 예배 뭐 그런 것은 없어요. 예배는 대 예배, 소 예배가 없어요.
여러분 장례 입관예배 발인예배 여러분 그래서 제가 경조위원장에게 금년에 지시했어요. 내년부터는 지금은 우리가 입관예배 입관하고 입관 예배하고 별로 상관없이 시간에 맞추어서 예배 드리잖아요. 이왕 드리는 것 저녁 8시로 고정 해라고, 그래야 장로님들도 오고, 다올 수 있지 않겠냐고, 혹시 어린아이를 둔 분들이 아이구 얘들 오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나는 못 가요 이러거든 일년에 열 번 정도다, 열 번 정도도 하나님 앞에 그 배려를 안 하면서 뭐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려고 하느냐, 이렇게 말해라 그랬어요. 여러분 학개서에 보면은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그들이 짓는 예배당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비해서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그 마음을 두지 못할 때 학개서 2장 9절에 그렇게 말한 거에요.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크리라. 그게 뭐냐 하면은 그들은 수 만 명 모여도 발인 예배 장례 예배에 2-30명 모이는데. 우리 교회는 여러분 프로테이지가 50프로 60프로 또 목사님 100프로 안 하느냐 이러는데 그것은 여러분 천국에 가서 일어나는 일이고, 이 세상에는 예외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한번 보세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주일 예배나 수요 예배나 공적인 예배에 성도들이 다 참여하는 그런 교회라고 생각할 때 얼마나 빛나고 영광스럽습니까, 앞으로 핵가족 시대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얼마나 여러분들에게 큰 부담이에요.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것을 만들어 놨어요. 그렇게 하자고 2006년에 이 말씀 드렸든 거에요. 14년 동안 여러분들이 한번 돌이켜 보세요,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성전을 귀하게 여기며 살았는가, 그저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쫓아 다녔는가, 열심히 벌어서 내가 뭐 큰일 하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맨날 하나님 절대로 안 속아요. 작은 일 여러분 우리집 헌금도 지극히 적은 것, 하나 하면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잖아요.
5.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 가족이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복되게 하리라. 네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구약의 그 수많은 예전을 예수님에게서 의식 법을 다 철폐하게 하시고, 가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여러분 그래서 그 다음에 뭔가 하면은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라, 맨날 먹고 사는 일에 쫓아서 교회 수요 예배에도 못 나오고, 장례 예배에도 못 나오고 이럴 때에 이제는 너희가 구원하여 어떻게 구원했습니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성령을 보내어 가족이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복되게 하리라. 네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제가 옛날 목사 되기 전에 사업을 조그맣게 할 때에 연세 드신 분이 하는 소리가 늘 있어요. 상놈 발 떡으로 살고, 양반 하늘에서 준 복으로 산데요. 쌍놈은 맨날 자기 발로 좇아 다니면서 뭐 하려고 하는데 크게 노력하고 이루는 것은 작고, 양반은 작게 노력해도 크게 나오는 것.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삶이에요. 작게 그럴 때 작게만 노력하면 하나님이 복 준다 하는 게 아니에요. 작게 노력하는 거에요, 왜 작아 지는 거에요, 모이기 힘쓰다 보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책임져 나가는 이런 삶, 이 삶을 살도록 예수를 보내어 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구약의 그 수많은 예전을 예수님에게서 의식 법이 다 철폐하게 하시고, 가족이 되게 하신 거에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많은 구약의 제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교인들의 시간을 얽어 매 버린다고요. 여러분 이 우리 교회에 시작하며 스가랴 할 때에 그냥 한 것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이 의식의 예배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이 변화 되어져서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거에요.
많이 바랐으나 적은 것은 내가 불어 버렸다는 거에요. 내가 먹어도 배부르지 안 했다는 학개 시절에, 왜 매여 살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제는 메시야의 시대가 되어지면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과 성령을 보내어서 가족이 된 것이 내 삶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갈 때, 여러분들이 먹고, 사는 일에 좀 적어, 그 일에 시간이 빼앗길지라도 하나님이 복되게 하리라. 이런 삶을 한번 살아 보시라고요. 어디 가서 밥은 내가 실큰 내면서 헌금은 말라기에 이야기 하잖아요. 너의 수상에게 드려 보라고, 좋아하겠는가, 혼내겠는가, 손을 하나님 앞에 펴고 살아라.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참 내 생애가 복되구나 이런 사람은 그냥 그대로 사시고요, 아 이것은 아니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번 방향을 전환해 보세요.
6. 스가랴서에 듣기를 싫어하고 등을 돌리며,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선지자들이 전한 말을 듣지 안 해서 너희에게 재앙이라 했다. 왜 잘 안 되는가? 설교 말씀을 듣기를 싫어했고, 등을 돌렸고, 금강석 같이 딱딱하게 굳어 가지고 내 생각만이 나를 지배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가 예배나 한 지체가 아파 고통을 당하면 모든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두가 즐거워하는 발인 예배나 입관 예배나 이런 예배는 어느 교회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교회. 그것 어떻게 만들어요, 여러분들이 이제 저주 아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영육으로 오셔야지요. 그러면 분명히 그런 교회 됩니다.
여러분들이 행복한 삶, 지금 놀라운 계획을 또 하고 있어요. 저는 여러분들의 삶을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책임지려고 해요. 교회만 다니면은 행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목사님의 생각의 비전이 여러분들이 함께 해야지요.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설교 말씀에 스가랴가 그래요. 듣기를 싫어하고 등을 돌리며 듣기를 싫어하지 마세요. 등을 돌렸다면 이제 바로 돌리세요.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선지자들이 전한 말을 듣지 안 해서 너희에게 재앙이라 그랬어요. 왜 잘 안 되는가, 설교 말씀을 듣기를 싫어했고, 등을 돌렸고, 금강석 같이 딱딱하게 굳어 가지고 내 생각만이 나를 지배하며 살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여러분들을 위한 거에요. 왜 이제까지 이런 것 안 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충분히 어떤 잘못된 의도로 그렇게 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에 증명이 되었기 때문에 저의 어떤 말도 이제는 듣는 시기가 되었다, 라는 생각을 하는 거에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제는 너희를 구원하여 복이 되게 하리라. 먹고 사는 일에 매여서 얘들의 문제에 매여서 늘 교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못하고 사는 삶이 이제는 정말 가장 기본적인 삶을 살아서 하나님이 내 삶을 대신 살아 주는 삶, 이런 삶은요 힘든 삶이에요. 그래서 뭐라는가 하면은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견고히 하라. 왜 그래 못사는가, 두려워하기 때문이에요.
사업할 사업의 관계된 사람하고 약속은요 어떤 경우에도 지키려고 하잖아요. 왜 그 이면에는 두렵기 때문이에요. 저 사람하고 내가 약속 어기면은 내 사업의 Damage가 오기 때문에, 그것은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과 예배의 약속은 두려워 안 해요. 참 웃기잖아요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과의 약속된 시간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그것을 하려면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요 뭐에 대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가, 먹고 사는 일에, 내가 이 사람과 약속이 잘못되면 내 사업이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이겨져야 되요. 손을 견고히 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용기를 내라는 말이에요. 이것은 사사기에서 똑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사사기에서 어떤 말이냐 하면은 2006년도에 제가 또 이 설교 참 많이 했습니다. 사사기 이 부분만.
7. 기드온이 미디안 135,000명과 전쟁을 한다. 하나님이 기도원 보고 두려워 떠는 자는 가라, 만 명만 남았다. 또 가고 300명이 남았다.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준비하라 그 말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났다 135,000명 다 무너졌다. 기드온의 위대한 승리다.
기드온이 미디안 135,000명과 전쟁을 하려고 해요. 135,000명이 벌 때와 같이 눈앞에 있는데, 하나님이 기드온보고 군사를 모병하라고 그래요. 했는데 32,000명이 왔어요, 135,000명 앞에 32,000명이 얘들 말로 쨉이나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는가 하면은 기드온보고 두려워 떠는 자는 다 가라, 그러니까 22,000명 가고 10,000명만 남았어요. 제가 우리 교회 목회 하면서요 두려워 떠는 자는 가야 되요. 안에서 암 노릇하면 안 되거든요, 10,000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만 명 보고도 뭔가 하면은 물가에 데려가서 물을 먹이는데, 떠서 먹는 사람은 집에 돌려보내고, 핥아 먹는 사람은 택하라는 거에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하나님이 만 명이 다 그래 먹게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집에 가야 할 사람이9,700명이고 남아야 할 사람이 300명이에요. 도저히 인간으로는 계산 안 되는 일이 일어났잖아요. 그럴 때에 300명이 남았는데 전쟁을 해야 되는데 활과 방패를 잘 수리해야 되는데 하는 일이 뭐냐 하면은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준비하라 이래요. 창하고 칼은 전혀 말 안 해요. 여러분 이럴 때에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 300명에 있는 군사라면은 지도자 기드온을 보고 뭐라고 그러겠어요, 저 양반 정신 나간 것 아닌가, 저것 믿고 내가 전쟁을 해, 이래야 되요.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 그 말에 반기를 들지 안 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기드온 이 말씀을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목사님의 목회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우리의 합리의 생각하고는 달라요, 반대되는 삶이에요. 그런데 기드온도 얼마나 두려워 떨었겠어요, 300명은 그래도 기드온이나 믿지만은 기드온은 믿을 사람이 없잖아요, 책임만 져야 되요 300명에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책임만 져야 되잖아요. 그래서 벌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이 뭐라 하는가 하면은 네 부관을 데리고 저 미디안 진영에 한번 가보라는 거에요. 그래서 변장을 하고 미디안 지역에 떡 가서 보니까 보초를 서는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뭔가 하면은 한 놈이 어제 밤에 내가 꿈을 꾸었는데 우리가 이스라엘에게 몽땅 망하는 꿈 꾸었다 이러는 거거든요, 그 말을 듣고 기드온이 손이 견고하여 져 용기를 얻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 300명을 데리고 가자 이러니까 어느 누구 하나 주저 없이 따라와요. 여러분들 한번 보세요, 이제까지 목사님이 작은 일 이제까지 주제성구 목회의 당부를 할 때 주저 없이 따라 왔는지, 아이구 목사님 목회하니까 세상 모르고 하네, 이러고 자기 생각으로 살았는지, 목사님 목회에 전적으로 여러분들이 순응하며 살았는지 아니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선입견과 종교적인 관습에 매여서 불순종 했는지, 300명 따라 왔습니다. 이제까지 따라온 여러분들이라고 봐요 저는, 두려워 떠는 자들 많이 갔어요. 그래서 기드온이 세 대로 나누어서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어요, 밤에 여러분 횃불을 들고 간다는 게 전쟁에 거기에 맞는 이야기 아니잖아요.
그런 것도 목사님들은 합리적으로 해석을 해서 물을 핥아 먹는 사람은 개 같이 먹는 사람은 적군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런 것은 군대 자격이 있고, 그래도 핥아 먹는 300명 뽑았다, 아무리 핥아 먹는 사람 뽑아도요 안 되요. 그것은 인본적인 해석이에요. 순종하는 사람, 그래서 항아리를 깨고 나팔을 부는 순간 지난밤의 그 꿈이 미디안 진영에 다 퍼져 있었든 거에요. 이제는 이스라엘이 침략해 왔구나 하고 자기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다 135,000명이 다 무너져 버렸다고, 위대한 승리를 했든 거에요. 여러분 교회의 어떤 일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합리적인 방법과 생각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8. 가장 작은 일, 예배에 출석에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이 경험된다. 지극히 적은 일을 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복됨을 알려고 할 때에, 이 지극히 적은 일에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고, 용기가 있어야 된다.
지극히 적은 일,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합리적인 생각이에요. 지극히 충성하는 거에요. 가장 작은 일, 예배에 출석에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이 경험되는 거에요. 그러자고 제가 사사기 말씀을 2006년도 이 스가랴서를 할 때에 많이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자들 우리 교회가 두려울 수밖에 없잖아요. 한번 보세요, 떠난 사람 왜 떠났느냐 여러 이유를 대지만 저는 두려움이라 봐요. 우리 교회 자산이 1조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경우에도 안 떠나요. 알곡을 남기는 거에요 하나님은, 왜 진짜 복되게 하려고,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정말, 용서하고 들으세요 목사가 자기 가족 이야기 안 해야 되는 게 사실 설교의 금어인데 여러분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하는 겁니다.
이번에도 우리 가족이 모였는데 손자가 둘이에요, 큰놈이 아주 그 참 명석하고 이러는데 착해, 밥을 먹는데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데, 동생은 또 뭔가 하면 뼈대가 벌써 굵고 우직해요, 두 살이나 어린 게 형이 가지고 노는 것 턱 빼앗으니까 형이 뭐냐 하면 흐흐 하고 울고 앉아 있는 거에요. 그래 내가 우리 지한이 정말 훌륭한 사람 되겠다 하니까 지 아버지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장인어른 저는 아이 그래 안 키울 랍니다 이러더라고, 왜 자기 것 빼앗기냐고, 빼앗으라고, 이 험한 세상에 자기 것 양보하면서 키워 못산다고 이러더라고, 제가 그래서 내 자식이면은 뭐라 하겠는데 한 다리가 천리라고, 말을 제대로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제가 대열이 이야기 해준 거에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 보세요. 우리나라 국회 욕하지 마세요, 전부 여러분들 탓이에요 자식 기를 때 다 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맞고 오면은 이 자식 똑 같은 밥 먹고 너 뭐했니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안 지려 하잖아요. 저 주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삶인데, 배려의 삶이에요. 여러분 왜 적은 일에 충성 못해요? 내가 혹시 이 경쟁에 대해서 처질까 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 이 지극히 적은 일을 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복됨을 알려고 할 때에 이 지극히 적은 일에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고, 용기가 있어야 되요.
9. 예배에서 중요한 것이 그런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그랬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서로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예배에서 중요한 것이 그런 거에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그랬어요. 주님은 제사를 원하시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그랬습니다. 스가랴서 말씀대로 마음을 금강석같이 먹지 마세요. 옥토로 만드세요. 설교를 듣기 싫어하지 마세요. 점점 더 가까이 와서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 보세요 순종하는 마음으로. 등을 돌리지 마세요. 그게 여러분들의 복이에요. 금년에 에필로그 설교할 때에 이야기 했잖아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서로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말세가 되어 갈수록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이 생기더라고, 왜 그렇습니까 누가복음의 말씀대로 롯의 때와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와 같다고 한다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 짓다가 멸망 당했다 했어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 짓는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줄 알고, 최소 한도로 금년 한해는 공적인 예배에 여러분들이 참여해서 상놈 발 떡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신앙의 양반으로서 하나님의 덕으로 살아가는 그런 복된 생애가 2020년 더 나아가서 20년대에 여러분들의 삶에 걸음 걸음과 신앙의 간증과 자국이 되는 아름다운 장년기 첫 주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한마디 더 붙이자면은 저 어릴 때에요 요즘은 그러지 않아요, 예전에는 만만한 엄마 집 가면은 전부 남자 얘 여자 얘 다 모여 한 이불 딱 뒤집어쓰고 군불 때 놔 놓고, 발가락으로 신호 보내면서 있잖아요, 하면서 하는 이야기 뭐에요, 도깨비 이야기하는 거지요. 우리 저 정관 넘어가는 언덕 거기 있지 지난번에 무슨 노인이 걸어가다가 술 먹고 가다가 도깨비 만났다 해, 그래서 밤 새도록 도깨비하고 싸워 가지고 나무에 꼭꼭 묶어 놨는데 날 밝아서 가보니까 몽당 비짜루더라 뭐 이런 이야기가 우리 어릴 때 하는 주로 하는 이야기에요. 도깨비하고 싸우면은요 여러분 그 때 말하는 게 뭐냐 하면은 쳐다보면 하늘같이 커진대요 도깨비는, 내려다보면 한없이 작아 지기 때문에 도깨비하고 싸우면 내려다보며 싸워야 된다는 거에요. 중요한 진리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에 문제가 도깨비거든요,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문제가 커져요. 문제는 내려다봐야 되요. 이러한 목회를 해 왔는데도 교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여러분 입시철이 되면 야 이번에 입시를 위해서 우리 모두 함께 모여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하고 했는데 그런 교회는 그러면 다 서울대학 갔어야지요. 그 문제가요 더 아들을 매이게 해 버려요. 저는 우리 교회의 뭐 병 나도 그렇게 환자를 위해서 뭐 크게 그렇게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은 병에 집착해 버린다고, 여기에도 투병이라고 써 놨던데 투병이라는 말 쓰면 안 되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해야 되요. 그래야 그것이 여러분들을 지배하지 못해요.
왜 요즘 공황 장애 걸립니까, 전부 문제에 매어 달린다고, 문제를 문제시 안 하게 되어져요 하나님 믿으면. 왜 목회를 전부 교인들에게 그래서 마음 빼앗으려고, 저같이 목회하면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내 문제에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지 이래 생각해 버린다고, 그럴지라도 문제에 함몰되지 않게 해 주어야 되요. 그래서 제가 그러잖아요 병들면 나으면 좋고, 안 나으면 더 좋고, 이런 사람을 누가 불행하게 하겠어요. 좋은 대학가면 좋고, 못 가면 더 좋고, 살아 보세요, 아이들 다 망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요즘 아이들이 다 여러분 엉망이고 이러는 것이 뭐냐 하면은 부모가 망친 거에요. 전부 나는 공부를 못하고 이래 가지고, 너는 잘해야 된다고 이러니까 얘들에게 자존 감이 다 낮아진 거에요, 공부 잘하는 얘는 딱 정해 져 있잖아요, 60명의 1등은 하나지 60명이 다 1등 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공부 못하는 것 때문에 아이의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그러니까 다른 일 안 하려 하는 거에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여러분 대한민국에 열등의식에 우리 전집사나 이택영 장로님이나 우리 60살은 빼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 보려면 서울 대학 가보라는 거에요. 전부 공부 잘하는 것 하나 때문에 인정받고, 못하는 것에 대한 전부 자신감을 상실해 있어요. 진짜 여러분 하나님 앞에 그 가치가 상대화 되면은 자존 감이라는 것은요 자그마한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자그마한 성공에 자만하지 않는 사람, 그러려면은 뭐냐 하면은 그것 별 것 아니게 생각해야지요, 그렇다고 해서 공부만 안 하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자기가 잘하는 데에서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공부 잘하는 누나 틈바구니에서 공부 못하는 아들 하나 두고 만날 공부로 그랬다면은 얘 자존 감은 땅바닥 되었을 거에요.
여러분들의 가치가 어디에 있어야 되는가, 그 가치는 모임에서부터 출발해요. 이것도 못하면서 그런 큰 위대한 가치를 어떻게 가지겠어요. 우리 곽채진 집사가 1부 예배 때 장인 어른 국립 묘지에서 가기 때문에 온 가족이 왔더라고, 참 유망주였지요, 잘 했지요, 그래 삼성에서 또 해태타이거즈로 갔다가 결국 부상 때문에 중도 하차 했는데 양준혁이 하고 같이 팔려 갔었잖아요. 여러분 오늘날 유명한 류현진이나 손흥민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제가 말을 들어 보면은, 얼마나 많은 좌절할 일이 있었겠어요, 그때 좌절하지 않고 포기 안 거에요. 류현진이도 재작년에 부상에 포기해 버렸다면은 안 되잖아요, 그 좌절하지 않으려면 뭐해야 되요, 성공에 자만하지도 안 해야 되요. 그러려면은 이기고 지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야 되요. 그런 것을 가지고 세상은 즐기라 이런다고, 그 즐기라고 하는 이면의 그런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말 쓰는 거에요 좋은 말만.
곽집사는 보세요 단기간에 하려고 하다가 제가 이야기 했어요. 경주 고등학교 감독이 당신 병들게 하고 부상당하게 했다고, 눈앞에 이익을 위해서 잘한 얘 어깨 혹독하게 해 버리니까, 정말 류현진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인생을 가장 눈 앞에 이렇게 보지 마세요, 금년 새 출발하는데, 금년에도 가다 보면 여러분들이 실패할 일도 있고, 성공할 일도 있지만은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그 삶을 살아가게 되면은 실패했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요, 좀 성공했다고 해서 자만할 것도 없고, 그냥 한번 해 보는 거에요. 말씀대로 큰일 하려 하지 말고요, 교회의 공적인 예배에 쭉 참석하는 일을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에 두고, 이 말에 듣기 싫어하지 말고, 등돌리지 말고, 금강석과 같이 마음을 굳게 하지 말고, 한번 받아 드려서 열심히 살았지만 하나님이 불어 버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적게 노력했지만 하나님이 채워 주는 은혜의 삶, 그 삶이 여러분들 앞에 예비 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느냐 가지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이 말씀을 받아 드리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저는 하나님이 자기의 비밀을 선지자에게 결코 알려 주지 않고 행하심이 없다고 하신 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그저 전해 줄 따름입니다,
14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도 여러분 하나님이 구원하여 복에 이르는 삶의 미치지 못하는 일 없도록 두려워하지 마시고, 손을 견고히 용기를 내시고, 기드온의 얼토 당토 않는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내세울 때도 왜 그래야 되는가 이유도 묻지도 않고, 자기 주장도 안하고 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300명이 135,000명을 초토화 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는 거와 같이 이제는 한국 교회가 세상의 조롱 거리에서 칭송의 거리로 바뀌어야 되는 것은 전광훈 탓 누구 탓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 탓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내가 먹고 사는 일 이 일을 내가 삶의 가장 중심에 두고 살았기 때문에 세상의 칭송 참 받지 못하는 것이 되었구나, 저는 우리 교회에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종종 그런 것 있어요, 자기는 장손인데 나 제사 안 드릴 테니까 동생들 다 가져가라, 그랬는데도 지금 잘 사세요.
◈봉헌 기도◈
많이 바랐으나 적은 것은 내가 불어 버린 것이고,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삯을 받아도 구멍 난 전대를 가지고 있는 거와 같은 삶을 산 것은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 한데 먹고 사는 일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너희들의 행위가 옳으냐, 이 말씀으로 우리가 경고를 받아서 이제 2019년을 우리가 결산하고, 2020년 다가오는 또 10년의 세월은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복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 다시 우리 가슴에 알아서 비록 예배당은 적고 초라할지라도 서울의 유수한 교회에 비하면은 턱없이 적은 740평 밖에 되지 않지만 이 안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도들의 모임인 성전은 그 어떤 교회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이제는 내가 발로 뛰어 다니면서 사업하고 직장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목도하기를 원하는 믿음 있는 자들이 드린 이 예물을 주님이 열납해 주셔서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곡간을 채워 주시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서 이 나라의 희망 칭송 받는 그리스도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일에 교회를 세우는 하늘의 밀알이 되기를 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이제는 구원하여 복이 되리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약속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순종으로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 아래 거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모여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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