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요한복음 1: 11-13
2020년 1월 26일 주일 낮 예배
No. 453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아멘
●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도 없다. 창세기 10장에 셈과 함과 야벳의 족속 그리고 마지막에 각 족속과 종족과 나라대로 함께 살더라. 땅에 네피림 이라고 하는 용사가 생겨났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은 구원사의 사건이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시공의 제한 속에 있다.
많은 교인들의 오해가 성경이 역사인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이런 이론과 교리적 싸움의 매몰 되어져 있다 보니까 성경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를 참 많이 봅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개념들, 우리의 삶의 개념들, 우리의 삶, 전부 역사에 기인[起因] 되어져 있어야 되요.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은 인류의 미래도 없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우리 인간이 무엇인가, 이 사회가 무엇인가, 이런 개념들을 현상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개념을 가져가면 안 되고, 성경에 의해서 가져가야 되요.
1.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하와를 만들어서 둘이 살도록 했다.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이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에덴에서 쫓아냈다. 인간의 고통은 시간의 제한선 속에서 고통이 온 것이고, 공간의 제한 속에서 우리의 삶의 고통이 왔다.
창세기 2장에 보면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대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하와를 만들어서 둘이 살도록 했다. 이런 말씀을 해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우리 인류의 기원에서 보면은 또 성경에 의하면은 인생 중의 제일 안 좋은 모습이 혼자 사는 모습이다. 그래서 실존적으로 우리는 그러잖아요. 누가 제일 불행한가, 외로운 사람, 저는 그래서 친구들에게 가끔 농담 삼아 욕을 할 때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친구에게 너는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혼자 오래오래 살거라, ㅎ ㅎ ㅎ 그것만큼 큰 욕이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은 성경에 혼자 사는 것이 사람이 제일 불행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이라고 하면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에요. 우리가 교육이라든지, 우리의 모든 삶은 뭐냐 하면은 어떻게 하면은 남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것이 교육이 되어야 되요. 또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성숙된 사람이고 어른이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아이들에게 성경 요절 외우고 성경 가르치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은 꿀밤 꿈 밤 같은 경우 전부 혼자 요즘 낳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형아 동생들 친구들하고 하루 밤 자면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이런 훈련이 참 필요하지요. 우리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는데 그 다음에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이런 인간들이 타락을 했다는 것은 자꾸 신학적으로만 타락 타락 이러지 말고요, 타락을 한 인간이 하나님이 타락이라는 것은 자기만 아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에덴에서 쫓아낸 거에요. 이런 말씀도 에덴 동산은 저 중동에 있는 줄 알고 그 중동에 가서 에덴 동산을 찾는 것도 참 어리석은 거에요. 성경의 시작이 중동에서부터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시작이 되었으니까, 그곳이 무대다 보니까 거기에 뭐 유프라테스강이나 이런 강들을 에덴동산으로 이렇게 했지만 저는 어떻게 보는가 하면은 타락하기 전 에덴 동산은 3차원에 세계가 아니다, 그곳에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요, 이곳과 저곳이 분명히 다르지만은 지금과 같은 제한된 공간의 능력이 없는 곳이다. 우리의 몸도 시공의 제한을 받는 존재의 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만 아는 존재가 되니까 그런 존재로 영원히 살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었어요, 쫓아낸 것이 뭐냐 하면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런 3차원의 세계로 우리가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고통은 시간의 제한선 속에서 고통이 온 것이고요, 공간의 제한 속에서 우리의 삶의 고통이 왔다. 여러분 이런 이해가 너무나 중요해요. 그래야만이 우리의 삶이 제대로 되어진다고요, 또 뿐만 아니라, 인간은 타락을 하고 난 뒤에 그래도 인간이 유지되도록 하나님은 우리의 핏속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본능을 주신 거에요. 그래서 창세기 10장에 가 보면은 셈과 함과 야벳의 족속을 죽 하면서 맨 마지막에 뭐라는가 하면은 각 족속과 종족과 나라대로 함께 살더라.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2. 하나님은 모든 핏속에 자기와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도록 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에덴에서 쫓겨난 우리의 인류의 삶이 완전히 다르듯이 홍수 이전에는 수렵채취[狩獵採取] 시대였다.
그래서 사람은요 언제나 이렇게 혈연끼리 뭉쳐서 사는 것이 인간이 되었어요. 그래서 혼자 살수 없는 존재이지만은 피라는 이 인자 속에 하나님은 모든 핏속에 자기와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도록 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자기 가족만 알고, 자기 민족만 알고, 자기 가문만 아는 것이 문제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부분들 이해하셔야 되어요, 아 인생의 문제는 자기 가족만 아는 것이 문제고, 자기 가문만 아는 것이 문제고, 자기 민족만 아닌 것이 문제이구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에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데 이스라엘이 종교화 되면서 선민의식 유다이즘이 얼마나 많은 인류에 해악[害惡]을 끼치는가? 이런 것은 성경을 제대로 알 때 우리가 선악의 분별을 제대로 하게 되는 거에요.
미안하지만 저는 사람들을 보는 관점이 성경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 달라요. 교회에 얼마나 열심히 충실하게 행하는가, 이런 것은 종교적인 관점이에요. 저는 그 사람의 속 사람을 볼 때에 자기 가족만 중요하게 여기고 타인의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저는 별로 좋은 사람 아니라고 생각해요. 국가도 마찬가지에요. 자기 민족만을 중요시 여기고 다른 민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민족은 가치가 없는 악한 민족이에요.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조심해야 되는 것이 요즘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단일 민족을 자랑하지 말라. 다민족 다문화 사회가 곧 온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설 명절을 맞이하면서 이런 가족의 개념을 제대로 가져가야 되요. 왜 하나님이 그러면은 혈통적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서 살아가게 했는가, 타락한 인간이 에덴에서 이제 쫓겨나서 거기에 불화염검으로 하나님께서 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는요 이런 말씀을 하세요, 인간은 너의 근본인 땅을 갈면서 살아야 된다. 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살아야 된다. 이렇게 말을 해요. 여기에도 여러분들이 너무 우리가 교리적으로만 생각하니까 그런 이야기하는데 이 말씀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이것 아셔야 되요. 홍수 이전하고 홍수 이후는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요.
에덴 동산 하고, 에덴에서 쫓겨난 우리의 인류의 삶이 완전히 다르듯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예전에 한번 설교했는데 새로운 교인들이 많아서 한번 더 설교 하려고 그래요. 홍수 이전에는 인간의 수명이 900세까지 살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가, 제가 목사님들이 신학자들이 신학만 알지 물리학을 모르니까 이런 것에 대해서 설명을 못해 주어요. 물리학을 이해 해야만이 창세기도 또 이해가 되어져요. 여러분 900살 까지 살았고, 또 홍수 이전과 이후의 삶은 인간의 삶은 완전히 달라요. 우리가 사회 시간에 배운 대로 홍수 이전에는요 수렵채취[狩獵採取] 시대였어요. 인간이 농사지을 필요가 없었어요. 따 먹으면 되요.
3. 홍수 이후에는 인간이 땅을 갈면서 농경 시대가 시작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 인류를 만드셨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홍수 이전에는 인간이 고기를 먹지 안 해요. 오늘도 저는요 육전을 먹었는데 ㅎ ㅎ 홍수 이전에는 고기를 먹지 안 해도 우리의 단백질 영양 상태가 완벽하게 되는 그런 좋은 환경이었어요. 홍수가 나고 난 뒤에 완전히 인간의 환경이 바뀌어서 어떻게 말하는가 하면은 홍수 이후에는 인간이 땅을 갈면서 농경 시대가 시작이 된 거에요. 그러면은 수렵채취와 농경시대에 변화 되면서 사람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창세기 6장 1절에서 4절은 해석이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요, 이것도 여러분들에게 다 옛날에 설교했든 부분인데 사람의 가치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면은 그렇게 말해요, 땅에 네피림 이라고 하는 용사가 생겨났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딸 사람의 딸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이러는데 그 말씀 속에는 무엇이냐 하면은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고 가치 있는 사회가 된데요. 굉장히 중요해요. 지난주 제가 그런 이야기 했지요, 사람이 원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겨야 되는데, 타락한 세상은 사람의 기능을 따라서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 한다고. 그래서 우리 사회에도 보면은 얘들 공부시킬 때 전부 사자 만들려고 시킨다고요, 참 웃기는 세상은 요즘은요 사자를 좋아하다 보니까 목사도 서로 되려고 하는 사회가 되어 벼렸어요. ㅎ ㅎ 얼마나 웃기는 거에요. 인간은 인간 자체의 가치를 부여해야 되요. 그래서 거기에 네피림 용사 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힘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가치와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된 거에요. 싸움 잘하는 사람.
그래서 여러분 이 사회는 스스로 공멸해 간다. 오늘도 이런 사회 속에서 하나님께서 신 인류를 만들었어요. 저와 여러분들은 신 인류에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오늘 읽은 본문 요한복음이에요. 요한복음 이 본문도 네비게이터나 이런 데에서 전도하기 위해서 1장 12절만 딱 따서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준다 하지 안 했나, 예수님 영접해라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세상에 세상에 그런 비 논리적이고 논리의 비약이 있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이 말씀은 보면은 뭔가 하면은 예수님이 이 땅에 왔는데 자기 땅에 왔는데, 이스라엘 민족에게 왔는데 제가 말하는 것은 종교인으로서의 이스라엘을 말해요.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말고,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을 보니까 그리스도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영접을 안 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종교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중요해요.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기독교인이라고 이야기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다 라고 말을 해요. 그러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은 13절에 보면은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러분들이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은 혈통으로 태어나서 자기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되요.
4. 성경을 이렇게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 드릴 때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성령이 오시면서 2천년 전에 자기 가족만 아는 혈연만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에게 가치 체계가 파괴된 인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거기에서 한번 더 태어나서 내 가족이 소중 한만큼 다른 사람의 가족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라는 거에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은 오늘날 우리 한국의 기독교가 얼마나 복음에서 벗어나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저도요 육 적으로는 우리 한민족 대한민국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오늘도 또 예배 마치고 빨리 축구 봐야지, ㅎ ㅎ 올림픽 23세 이하가 우승해야 되거든요, 그것은 내가 혈통적으로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거듭나게 되어지면은 한국 사람이 귀한 만큼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되요, 여러분 우리가 지금 막 저는 염려가 그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성경을 이렇게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 드릴 때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요. 저는 다시 이야기하잖아요, 성경에 의해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귀하게 여기고, 타인의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은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 봐요.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교회가 참 중요해요. 거듭나게 되면은 다른 교회도 중요해요. 저는 대한민국의 자연인으로서는 대한민국이 참 한국 사람을 좋아해요. 거듭난 목사이기 때문에 흑인도 백인도 우리나라 사람만큼 귀하게 여겨요, 이 말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에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사도행전 1장8절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라고 할 때에 이 말씀도 제국적 기독교가 되면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는 거에요.
설령 받으면은 능력을 받아서 병도 고치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게 돼, 전부 신비주의나 잘못된 성경 해석이에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은 권능을 받고, 두나미스 다이나마이트, 다이나마이트가 하는 일이 뭐에요? 해체에요 파괴에요. 성령이 오시면서 2천년 전에 자기 가족만 아는 혈연만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에게 가치 체계가 파괴된 인간이 나타나게 된 거에요.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은 그렇게 말하는 거에요. 교회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갖다 놓으매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 이제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족도 중요하게 여기는 그런 에클레시아[Ecclesia] 교회가 탄생한 거에요.
유대교는 유대인만 중요하게 여기고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들에게 이제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교회가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그 교회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등이 없는 그런 교회. 성령이 와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타락된 혈연의 가치를 파괴하면서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혈연적 가족인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가족의 공동체도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의 삶은 어떤 삶을 사는가, 이게 중요한 거에요. 여러분 가족이라고 다 좋은 가족은 아니잖아요. 이번에 뉴스를 보니까 그래 놨더라고, 명절 끝에 가정 폭력이 40%나 더 늘어난다고, 여러분 이 부분 제대로 이해 해야 되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혈연적 가족이나, 영적인 교회의 공동체의 가족이나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런 것은 바울서신에 나온다고, 바울서신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성령을 나눈 성도들은 물질도 함께 나누어야 된다고, 제일 나쁜 가족이 뭔가 하면은 돈 때문에 싸우는 가족, 여러분들의 혈연의 가족의 공동체는 아버지로부터 형제만 된 게 아니고요, 물질도 함께 나누는 가족이 되어야 되요. 돈 때문에 싸우는 가족은 나쁜 가족이에요.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을 성령을 함께 나눈 우리가 가족이라면 물질도 나누어야 됩니다. 여기에 한가지 여러분들이 이해 해야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물질도 나누어야 된다. 사도행전 2장에 봐라, 모두다 재산을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갔다 놓고 다 나누니까 핍절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가 되지 안 했나, 오늘날 교회가 그래야 된다 이러면은 이단이 되는 거에요.
5.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우리들은 아직까지 시공의 제한 속에 있다. 가족은 내가 잘살면은 좀 부담스러워야 된다. 또 가난한 사람은 약간 가난하면 사랑의 빚은 져라 했다. 잘사는 형제가 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이것은 뭐냐 하면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린 것 잘 기억하시고 가치판단 제대로 해야 되요. 성경에 나오는 말씀은 구원사의 사건이에요. 우리가 죽어서 우리의 육신이 삼차원의 세계를 벗어나는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몸으로 바뀌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 같은 세상이 아니라, 삼차원의 세계가 넘어가는 4차원의 세계로 바뀔 때에, 그 때는 네 것 내 것이 없어요,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져요. 그러면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우리들은 아직까지 시공의 제한 속에 있다 말입니다. 성경의 초대 교회는 오는 세대 완전히 구원이 이루어진 그 때에 구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지금은 그 구원을 원리적으로 성취한 것을 이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구연해야 되는가? 이게 신앙 생활이고 목회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제가 말씀 드린 대로 두 가지에요. 여러분 혈연의 가족도 마찬가지에요. 절대로 형제들끼리 재산을 다 내어 가지고 N분의1 하는 게 가족 아니에요. 저는 제일 답답한 게 교회를 구제 기관으로 만드는 것. 가난한 사람 도와 주고 이러는 것인 줄 알아요. 그러지 안 해요. 가족은요 그 한 가족이 급한 일 당했을 때 힘이 되어 주는 거에요. 이번에도 우리 얘들도 다 모였을 때 자기네들끼리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 참 사모님 편해요. 예비 며느리가 와도 밥도 안 해주고 밥 사주더라고 ㅎ ㅎ 하면서 지네끼리 하는 이야기가 그래요 이제는 우리 형제들끼리 대열이도 이제 결혼을 하면은 같이 돈을 좀 모아서 이럴 때 나누어 써야 되겠다. 그게 맞는 거에요.
그럴 때에도 좀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내고, 능력이 없으면 적게 내고, 그래 하다가 누가 큰일을 당했을 때에는 다같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거에요. 그럴 때에도 그 형제들의 능력에 지나치게 하나 살리려다가 다 죽이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면 안 되요. 우리 교회의 겨자씨 헌금이 그런 것이잖아요, 가난한 사람 도와 주는 게 아니에요. 급한 일 당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을 하되 그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인들의 능력이 되는 만큼만 해주는 거에요. 이게 가족이에요. 예수 믿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혈연적 가족에도 그런 가족을 구성케 해야 되요. 그 샘플이 교회라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가족이라는 것은 잘사는 형제 때문에 부유함이 부유한 문화를 함께 향유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가 뭘 하더라도 능력이 되는 만큼 최고로 가려고 하는 거에요. 물론 우리 교회에는 잘사는 사람은 우리가 수련회 가고 어디에 가고 이럴 때 불편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것도 못해 본 사람들 때문에 교회는 좀 더 멋있는 편안한 곳으로 가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지만은 가족은요 내가 잘살면은 좀 부담스러워야 되요. 또 가난한 사람은 약간 가난하거든요 사랑의 빚은 져라 했어요. 잘사는 형제가 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면 안 되요.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 교회는 잘살면은 좀 부담스러워야 되고요, 좀 평균 좀 못살면서 우리 교회의 여러 좋은 문화를 누리는 사람은 그런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되요. 이번 명절에도 여러분들의 이런 혈연의 가족을 구성하는 복된 명절이 되시고요, 우리 교회도 정말 자기의 혈연적 가정만 아니라 타인의 가족도 동일하게 생각하면서 급한 일이 있을 때 함께 문제를 해결하되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능력이 되는 만큼만. 옛날에 우리나라 혈연이 너무나 진해 가지고 형제 하나 사업부도 나면 줄줄이 온 가문이 패착[敗着]을 일으키는 그런 것도 잘못이에요. 그러면서 못산다고 해서 기죽을 일도 없고, 잘산다고 해서 어깨 힘줄 것도 없는 그런 복된 가정이 성경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혈연적 가족도 그렇게 만드시고요, 이런 목회의 비전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나아가는 그런 복된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봉헌 기도◈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대 강국에 들어갔다는 것을 자랑하기보다 이제 모든 국민들이 세금을 올바로 냄으로 말미암아 불우이웃돕기 선금을 명절 때마다 거두지 아니하고, 세금으로도 얼마든지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도록 이제는 정부는 노인들의 일자리를 통해서 노인들에게 일을 제공하고 생활비를 제공하는 그런 정부가 되어지고, 기업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어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이 되도록 성경적인 가족관 성경적인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국 교회가 되어져서 사회의 통념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쫓아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이 한국의 사회를 교회가 변혁시키고 끌어 감으로 말미암아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대한민국이 교회 때문에 하나로 변화될 수 있도록 이 명절에도 성경을 아버지 하나님 교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 이해하고,
삶의 실존임을 알아서 예수님의 그 구원이 우리의 삶에 실존적으로 만져 지는 그런 구원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한국 교회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 교회도 점점 교인들이 11조의 삶을 모두다 제대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겨자씨 헌금을 드리지 아니하고 일년의 예산에 겨자씨 헌금의 항목을 충분히 드려서 우리 가운데 급한 일이 일어날 때, 교회 때문에 당황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교회가 우리 눈앞에 펼쳐 지도록. 말로만이 장년기 첫해가 아니고, 이제는 성숙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교인들이 우리 교회의 주류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주시고, 겸손한 마음 더하여 주어서 사회의 통념 자신의 경험으로 똘똘 뭉쳐 진 내 아집이 진리의 말씀에 파괴되도록 성령이 임하여서 두나미스가 되어져서 새로운 신 인류로 탄생하는 주일마다의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가족도 소중히 여기고, 내 민족이 소중한 만큼 다른 민족도 소중히 여기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 가운데 급한 일이 있는 자, 능력에 맞는 도와 줌을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권속들 비록 인간이 만든 사회의 구조 속에서 잘 맞지 안 해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지 못하는 가난한 위치에 있을지라도 부자들이 가보는 호텔에서 잠도 자보고 부자들이 탈 수 있는 좋은 교통편도 타 봄으로 말미암아 가족 됨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아름다운 구원, 성령을 보내어 준 교회의 참된 가치를 실현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혈연의 가족만큼 타락하지 아니한 영적인 가족의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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